꽃보다 청춘

3월29일~ 4월2일

4박5일간의 미래숲 내몽골 쿠부치 사막 나무심기 행사에 촬영으로 동행하여 다녀왔습니다.
아직까지 환경보호나 이런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닌지라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감등 그런 감정 보다는
하나의 경험의 일환으로써, 촬영이 주 목적으로 따라간 일정 이였습니다.

가기전 저를 이곳으로 이끈 실장님과 발대식 끝난 이후에 소주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눴죠
저야 어짜피 촬영이니 모든 스냅은 맡아서 하는거고
실장님께서 망원렌즈 하나 준비하셔서 이미지컷만 담으시는게 어떤가 하고 말이죠
그리고 나서 장비 구성을 마무리 하고 출발했습니다.
D4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D850 하나 챙겼구요
렌즈는 24-120 ,14-24 줌렌즈 두개에 58.4 단렌즈 하나 챙겼습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Q는 챙기지도 않았죠 . 놀러가는게 아니니까요.
카메라 쥔 팔자가 사진에 찍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Sofort 하나 챙겨서 필름 3팩도 챙겨봅니다.(사막 인증샷 같은거나 찍어보자 뭐 이런…)

첫날 역시나 어색한 관계
낯가림이 심한 저로썬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잘 못나누는데 (일하는거랑 실제 성격이 좀 다르죠) 아무래도 나이차이도 많고 하니 먼저 다가오기도 어려워 하는거 같고
그냥 저는 제 일이나 하면 되니까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물론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알콜의 힘을 빌린것도 사실이나
참여한 단원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이들의 생각도 공유하며
또한 제 얘기에도 귀기울여주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뭐랄까요? 무장해제 된 기분?

돈을 받고 촬영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인지라
일할때는 너무 가까워지는건 좀 꺼려 하는데도
점점점 제가 단원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거 같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사실 굳이 제가 찍지 않아도 되는 사진들이였죠, 행사 관련 스케치와 스냅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인스탁스 필름 30장 중에 저한테 온건 2장이구요
사막을 가지 못한지라 저녁먹고 밤거리의 예쁜 불빛을 볼때면
D5에 105.4도 챙기고 28.4도 챙길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더 많이 담아주고 더 예쁘게 인생샷 남겨줬더라면….
모두와 말좀 걸어보고 얘기를 나눴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들…
인스탁스 필름도 좀 넉넉히 챙겨가서 줄걸 하는 아쉬움들
그렇게 4박5일이 총알같이 지나고 지나간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곱씹어봅니다.

아쉬운게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버스를 계속 하나만 타서 다른 버스 팀과 교류가 적었던 부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막에서 별을 못본거죠
하지만 비록 사막에서 별을 보진 못했지만
별빛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단원들의 눈빛이 저에게 사막의 별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들과 함께 하게 해주신 미래숲 관계자 분들과
(네다바이의 스멜이 좀 나지만…)어쨌던 저를 사막으로 인도해주신 Starless 실장님께도 감사합니다.

ほっかいどう D-12

삿포로 예비모임 2018.1.13

벌써 반년전? 쯤이군요.
삿포로 겨울 출사를 진행 하시는걸 보고 꽤 많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영업자라서 내가 저길 갈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악마같은)Starless 님께서 저에게 그러셨죠

`우리같은 술꾼은 꼭 가야할 곳이야!’

마침 개인적인 비보도 있었고 바람좀 쐬러 자주 가는 제주도는 슬슬 지겹고
(그러면서 2월에 또 간다죠? ㄷㄷ)
그냥 못먹어도 Go!

그렇게 시작된 출사 준비가 하나둘 착착착 진행이 되더니
결국 이렇게 오늘 예비모임도 하게 되었습니다.
누추한 공간에 참석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합니다.
특히나 여행 준비로 진두지휘 하고 계신 Starless , Human 두분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12일 정도 남았는데 (오늘이 딱 D-12 더군요)
2주 후에는 신나게 일본 여행기를 올릴 그날이 오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히 1월25일에 만나요

p.s 오늘 제비 뽑기 하신 두 형님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ㄷㄷ

 

B급 사진 – study를 시작 하며

1. 사진의 기초

2. 노출의 이해

3. 사진 장르

4. 사진 이론

5. 빛의 이해 -1

6. 빛의 이해 -2

7. 이미지후처리

8. 사진을 보는 법

9. 프로젝트 하기

10. 과제 제출 & 비평

스터디를 시작하기로 논의가 오간 후 최종 동의를 하고 1차로 완성한 스터디 진행표입니다.

처음 구상을 하시고 진행을 진두지휘하고 계신
LaFesta 님과 Starless 님 두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스터디 강좌를 진행 해주실 분들,
그리고 이 스터디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무슨 다 끝나고 에필로그 적는 것 같은데요,
이제 시작입니다.
바로 지난 일요일 스터디 시작을 위한 예비모임을 했습니다.
1기 총 7분의 회원님들에게 카메라를 빌려드리고 필름 넣는 법부터 이 분들의 궁금점까지 3시간으론 너무 부족했던 하루였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열정적이어서 5개월동안 풀어야 할 얘기를 그자리 에서 다 해버릴 뻔 했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은 몇몇은 떼놓고 설명 할게 아니라
사실 계속 꾸준히 같이 묶어서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사진이란게 그렇죠.

좋은 분들과 만나 즐겁게 술 한잔(으로 끝나지 않아서 문제지만) 하는
즐거운 모임인 B급사진
하지만 즐겁게 술 한잔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고
남아도는 에너지가 너무 아까워서 이 에너지를
숙취 해소가 아닌 다른 걸로 풀기 위한 수단으로 스터디에 수락을 했습니다.
업무에 방해가 되면 안되지만 업무와 별개로 이것저것 해 볼 생각에
17년전 학교 처음 입학해서 교수님들 말씀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스무살 제가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는데요,
역시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심장이 흥분 되고 짜릿해집니다.

내년 5월말에서 6월 초에는 1기 멤버분들과 즐거운 척 하는 가식적인 얼굴로 스터디 마무리 단체사진을 찍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건투를 빕니다.

끝으로 카메라 빌려주신 모든 분들께 레알로 오지게 감사합니다.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모든 컬러 사진은 D5+58mm1.4N
*모든 흑백 사진은 Monochrom

** 보정 1도 안해서 사진 담긴 모든 분들께 Sorry Sorry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위에 앉고 싶어라
밤하늘 보면서 느껴보는 그대의 숨결
두둥실 떠가는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유재하 – 그대 내 품에 中

 

DAH_0662

살면서 내가 별을 찍을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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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카메라 잡은지도 거의 20여년
그런데 유달리 안했던 작업 중 하나가 야경, 그중에서도 별사진 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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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별을 담고 싶더군요.
아픔을 잊는 방법중 하나가 무언가에 몰두 하는건데
사진 이란게 내 옆에 있어서 참 다행 이란 생각이 드는 요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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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플땐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세요.

Inspiration – Dog’s Eyes

사진의 장르 중에서 파인아트를 하는 분들이 놀라울때가 종종 있다.
도대체 뭘 했는지 이해조차 안되는 난해한 결과물을 만들고 예술이라 말하는 태도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뭔가 창조 해내는 그 작업 방식에 대해선 나처럼 뼈속까지
상업사진가는 감히 꿈도 못꿀 그런 작업들을 종종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뭔가 내가 먼저 창조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 작업중에 하나다.
그냥 Order에 의해서 요구사항을 맞춰주는 작업이 훨씬 쉽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어떤 작업을 시작하기전에 기존의 위대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연구하고
이걸 어떻게 내 방식으로 체화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이 과정이 길고 진중할수록 추후에 작업은 한길로 올곧게 뻗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고
이 처음 준비 과정을 짧게 대충 했을 경우 나의 경우 대부분 우왕좌왕 갈지자 행보를 보이곤 했다.

ERE1974017W00016/36Elliott Erwitt (American, b.1928) – Felix, Gladys & Rover, NY USA

Elliott Erwitt의 사진을 보면 길에서 담은 사진들이 참 많다 .
위에 작품도 그중 하나인데 이 사진을 보고 조금 다르게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시선을 아예 저 작은 강아지의 눈높이로 맞춰보는건 어떨까?”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사진은 아무리 내 머릿속에서 굴리고 굴려봐야 답도 안나오는거
그냥 촬영하는게 가장 속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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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eoul
개님, 그것도 작은 개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앵글파인더라는 물건을 사고
쭈구려서 무릅까지고 멍드는것도 모르고 기어다니고 그랬다. 어떤 느낌인지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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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eoul
초반 몇일 작업을 하면서 느낀건
그냥 땅바닥에서 붙어 다니는거 말곤 달라진걸 모르겠다.
이미지 자체가 훌륭한것도 아니고 도대체 뭘 하는지 감도 못잡겠고
앞서 말한대로 초반 준비를 너무 성급하게 하면 꼭 이런 꼴을 겪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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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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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eoul
일단 예열을 위해 힘없고 약한 대상자를 상대로 연습을 해본다. 요즘 같았으면 절대 절대로
스스로에게 납득할수 없는 행동들.. 그냥 어린 학생때니까 라고 스스로 자기 방어를 해본다.
11년전엔 나도 카메라를 참 폭력적으로 사용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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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eoul
본격적으로 사람이 많은곳을 가본다. 사람 많은 주말의 인사동
혼자 카메라 들고 바닥을 기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1000% 변태로 몰리고 즉심 넘어갈거 같아
당시 여자친구에게 인사동 구경가자고 말도 안되는 감언이설로 데리고 와서
옆에서 사진찍는거 구경이나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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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Seoul

요즘 다시 이 작업을 혼자 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인근 지구대에 시비가 붙어 있을 확률이 높을거다.
여전히 카메라를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공개한 사진은 이때 3달간 촬영했던 50롤 중에 5~6롤 분량이다. 1학기 내내 하나의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학기가 끝날때까지 담았는데 다시 봐도 참 별로인게 개의 시선외에는 도무지 공통적인
어떠한 시선이나 주제를 찾을수가 없다.
아니면 최소한 이미지라도 예쁜 달력사진이라도 만들던가…

사회고발로 가거나, 스냅으로 갔거나 뭔가 하나를 정해서 움직이지 못했던 부분은 지금 봐도 참 아쉽다. 이런 아쉬움 하나하나가 모여서 다른 작업으로 이어져서 꾸준했더라면…
분명 지금보단 더 나아진 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도 밀려온다.

11년전의 기억을 공개하는건 역시나 낯뜨겁고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쯤 영감을 받기만 하지 않고 영감을 줄수 있는 사진가가 될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고 험난한 길이다.

 

내가 필름을 사용 하는 이유

https://www.format.com/magazine/features/photography/film-photography-is-horrible

얼마전 SNS에서 본 필름을 사용 하기 싫은 이유 라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프로 사진가로써 고충이 느껴지고 공감할수 있는 상황과 내용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멋진 글에 반박을 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필름 카메라만 5대를 구입 하면서 취미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왜 나는 상업사진을 하면서
필름 카메라를 쓰는가.왜 나는 필름을 사용하는가 라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인 경험과 생각입니다.

필름으로 담는 사진이 왜 끔찍한지는 위의 링크를 자세히 읽으시면 공감이 가실거 같구요
저는 필름을 쓰는 이유를 4가지 정도라 생각 합니다.
1.흑백사진
2.장노출
3.다중노출
4.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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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사진을 배웠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필름값은 정말 비쌉니다.
처음 제가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을때 사진이라는 취미의 영역은 돈많은 부자들의 취미라고 했는데
마치 그때로 돌아간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정도로 말이죠.
아직까진 기술이 부족해서 디지털 파일을 멋진 흑백사진으로 변환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기준에서)
그리고 흑백필름으로 담은 사진과 디지털로 변환한 사진의 차이가 있다고 느끼구요.
그러니 비싼 카메라 만드는 핫셀이나 페이즈원이나 그리고 라이카에서조차 디지털백이나
디지털 카메라 지만 흑백만 지원하는 카메라를 아예 따로 만들까요?
빛에 반응이니 색의 변환이니 이런걸 논하고 싶은게 아니라 흑백 필름으로 다양한 약품과
현상기법으로 달라질수 있는 그 무한한 확장성과 다양성이
아직도 저를 흑백사진을 담게 하는 큰 이유라 생각 합니다.

흑백전용 디지털백이나 라이카의 모노크롬 같은 장비에 비하면 그래도 아직까진 흑백필름을 쓰는게
더 싸게 먹힌다고 생각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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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노출의 경우 디지털이라고 안될게 뭐냐?
안될거야 없죠. 다만 편의성의 차이라고 봅니다.
물론 노출의 측면에서 필름을 날리면 어쩌냐? 라고 반문이 들어오겠지만…장노출이라는 특성상
상반칙불궤 라는 사진이론을 조금만 대입하시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그리고 극한 상황이나 단순히 몇초가 아닌 수분 수시간의 작업에서 기계식카메라와 필름으로  작업이
디지털로 하는것보단 안정성 측면에서 훨씬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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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은 잘 안쓰지만 다중노출의 경우 아직까진 필름으로 구현하는 방식이 더 깔끔합니다.
다중노출을 하는 순간 이미 정석적인 눈으로 보는 이미지의구현은 사라지고 변칙적이며 한 필름에
두가지 장면이 노광이 되면서 생기는 그 특수한 경우의 수를 노리는 요행성(?) 작업이 되기에
디지털로 하는 레이어 합치는 식의 다중노출은 아직까지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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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번째 이유
바로 필름그레인입니다.
요즘은 디지털 바디들이 워낙 고감도에서 깔끔하게 나오니까 이해가 안되시는 부분이라 생각도 들지만
필름은 100짜리 200짜리 400짜리 감도가 올라가면서 입자감도 거칠어 지고 차이가 커집니다
거기에 같은 필름도 현상 방법에 따라 차이가 생기고
또 같은 필름이라도 판형에 따라 스캔방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 그레인은 디지털에서 흔히 볼수 있는 노이즈의 개념과는 좀 다르고 실제 모습도 다릅니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차이랄까요?
오죽하면 요즘은 제가 사용하는 캡쳐원프로나 라이트룸 포토샵등 디지털을 위한 프로그램에
필름그레인 효과를 넣고 VSCO같은 효과를 넣어서 아날로그적인 필름느낌을 구현할려고 할까요?
아직까진 툴을 다루는 사람의 차이가 있겠지만 필름 느낌은 필름이 가장 정확하게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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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날 우려먹는 이사진
참고로 이사진은 Sinar P2 에 RDP 100 4×5시트필름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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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후 가상드럼 방식으로 스캔을 돌렸습니다.왠만한 디지털 촬영 데이터만큼 깨끗하죠?
어떻게 표현할것이고 어떻게 만들건가? 그건 전적으로 사진가가 결정 하고 책임질 문제죠

그럼 논점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죠
이전에 필름을 사용하면 바로 확인이 안된다는 아주 큰 단점아닌 단점이 있었습니다.
필름만 사용할땐 당연시 되던게 디지털이 생기니 단점이 된거죠
그런데 디지털이 나온후 일반인도 쓸만큼 가격이 낮아지니
디지털로 사진을 담는 분들의 공통적인 패턴이 보이더군요.
촬영을 하고 바로 LCD확인 그리고 마음에 안들면 삭제

지금은 메모리 가격도 싸고 워낙 고용량이라 요즘도 그럴까 싶긴 하지만,
10년전만 하더라도 참 많이 보던 풍경중에 하나 였습니다.
사진은 천분의 일초 1초를 100분의1로 쪼게는 찰나의 순간을 담는 매우 예민한 작업이지만,
반대로 촬영 할때 조급 하면 안됩니다.

촬영을 하고 현상소에 맡기고 2시간의 기다림 끝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라이트박스 위에
필름을 올리고 루빼로 들여다 보고 사진이 잘 나왔는지를 기다려본 사람은
그래도 사진에 대한 진지한 마음과 인내를 배울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디지털로 쉽게 하는거 보단 그래도 사진을 진지하게 대하고자 한다면
제가 16년전에 학교에서 무조건 수동카메라에 흑백필름 끼워서 촬영하라고 했던
교수님들의 방법이 올드스쿨 교육법이 아닌 어찌보면 정석이니까
그렇게 가르쳐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방법에서 제가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건
업무의 영역이 아닌 그래도 배워가는 과정 그리고 취미라면 실패를 느껴보는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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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모니터에서 이정도 흔들림 이면 확대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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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가 확 나갔죠? 촬영 당시에는 바로 확인이 안되죠. 그렇다고 한정적인 필름 막 찍을수도 없구요
이걸 나중에 보고 촬영자가 ‘에이 망쳤네’ 라고 그냥 넘겨버릴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으로
놓쳐버린 이장면 이 사진 이 필름이 아깝고 아쉽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그만큼 작게나마 발전을
이룬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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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런 사진을 보면 12년전 기싸움에서 밀려버린 아주 어리고 미숙한 학생 한명이 보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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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사진은 복구도 안되죠 . 요즘에야 워낙 VR이니 IS니 OS니 온갖 스태빌라이저가 달린 렌즈에
바디에서도 흔들림 지원을 하고 초고감도를 마구마구 사용해서 흔들림이 생기는게 더 어색한 시대죠
하지만 취미라도 내가 뭔가 하고 싶을때 그래도 이렇게 실패해보면 DSLR을 사용하더라도 조금 어두울때 감도를 확 올리기 보단 낮은 셔터에도 숨을 참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본인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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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디지털 파일의 불안정성도 참 무시 못합니다.
물론 필름이라고 매우 안정적인것도 아닙니다.
현상소에서 뭔짓을 할지도 모르고, 감기지도 않은 카메라 뚜껑을 열수도 있구요
위험요소는 언제든 많습니다.
그래도 일단 제대로 현상이라도 되어서 건조된 필름으로 나오면
재빨리 스캔을 해서 놔두면 참 안정적인 데이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장황하게 글을 썼지만, 그리고 최근 무차별적 필름 카메라 구입이 어느 정도 제가 하는
업무적인 영역에서 필름작업도 시도하기 위함이지만,
처음 링크에 글을 작성한 Benjamin Kanarek 이라는 분의 말처럼
일할때는 그냥 디지털이 제일 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뭐든 인과관계가 있죠?
이렇게 제가 디지털 장비를 처음보다 익숙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사용하게 된 계기는
분명 필름을 먼저 접했던 부분도 있을것입니다.

하다 못해 필름을 스캔하고 고해상도로 스캔된 필름에서 보이는 엄청난 양의 먼지를 보면서
좌절하지 않고 한땀한땀 먼지를 지우고 함으로써
이제는 일할때 수많은 양의 미역도 쉽게 지우게 되지 않았을까요?

All Photo By DasFoto 

 

별 쏟아지던 트레킹

*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경어는 포기합니다.

2005년 인도에서 벌어진 일
더위를 피해 들어간 다람살라 , 그곳의 맥그로드간즈 라는 지역의 한국식당에서 벌어진 일
한국 여행자를 끌어들여 일 시키기로 악명 높은 D식당, 뭐 언제나 그랬듯 일 하고 있을 때였는데
(2주 정도 여기서 눌러붙으면서 먹고 일도 하고 뭐 그랬죠.)
같이 놀던 누나 한 명이 갑자기 왠 여자애 둘을 가리키며 나한테 이런다.
‘야~ 쟤들 이쁘네 함 꼬셔봐~ 남친 없대 둘다~’
이런 돌직구스러운 경상도 아가씨 같으니..
아무튼 그렇게 별거 아닌 기억으로 넘어가고 다음 여행지인 마날리로 몸을 날린다.
1살 많은 경상도 누나랑 1살 어린 동생 한명이랑 셋이서 버스 타고 마날리로 12시간의 버스 여행
마날리 도착 이틀째 한국 식당이 있다 해서 찾아가 보았다.
흥카페 (흥이 많아 흥카페는 아니고 흥선대원군 이라는 카페를 줄여서 흥카페라 했다.)
밥은 안시켜먹고 얘기 좀 나누다 고스톱이나 치자는 사장님의 제안에 훅해서 고스톱 치다 보니
왠 아가씨 두명이 합석 하게 된다. 바로 맥그로드에서의 그녀들 !!
고스톱 좀 치다 보니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고 어떻게 여행 하고 하던 와중에
흥카페 사장님이 발굴하려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한다.
왠 외국인이 가보고 나서 좋았었다고 그래서 루트 개척을 할 필요가 있을거라고,
그렇게 얘기가 오고가다 이 당돌한 두 아가씨가 나한테 그런다.
‘저희랑 같이 트레킹 가실래요?’
아…내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살아있네…라는 착각을 가득 안고
그렇게 출발 했다.

트레킹 루트는 대략 이렇습니다.
마날리 – 마니까란 (버스이동)
마니까란 – 깔가 – 키르강가 – 깔가 – 마니까란 (도보이동)
마니까란에서 키르강가까지 도보로 가서 거기서 다시 U턴해서 돌아오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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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도착지 Calga (깔가)
사실 첫 도착지는 마니까란이라 표현해야 맞는데 버스 내리자마자 바로 쉬지 않고 이곳 깔가로 왔다.
아침에 출발한 버스가 대략 마니까란까지 6시간 그리고 깔가까지 걸어서 3~4시간 코스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도착해서 밥이라도 먹고 하루 잘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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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는 참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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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묶은 숙소
숙소가 여기 하나였나? 그랬을듯…2층에 있는 방하나 빌리는데 50Rs
밤새 때고 자야 할 나무 한 짐 하는데 50Rs
나무를 왜 사야만 하는지 그날밤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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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바라본 동네 전경,그야말로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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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숙소에 있는 화덕에 불피워서 그위에 감자구워먹고 뭐 그랬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들, 허접한 동네 식당에서 먹는 쵸면 이런걸론 배가 안차서
구멍가게에서 감자를 사와서 이렇게 구워서 먹는다.
나랑 같이간  K와 C는 두여인은 추워서 그런지 침낭속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밀고
나는 감자 구워서 까주고….뭔가 큰그림에 당했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08

불 참 잘탄다.
다만 아주 얇은 쇠판으로 만든 화덕이라 열 보존율이 최악이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또 불지피고 다시 잠들고..이걸 반복한다.
우리 어머니가 밖에 나가서 처음 보는 여자 조심하란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09

어제 저녁을 먹었던 동네 유일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서둘러 키르강가로 출발 한다.
히말라야의 숲은 정말 사람의 글자로 표현이 잘 안된다. 그냥 가서 한번 보는게 가장 정답.
제주도 사려니숲의 나무는 여기 나무에 비하면 불쏘시개 수준의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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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흔하게 마주칠수 있는 산양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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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까란을 기준으로 키르강가까지 가는길은 흡사 타원형 코스라 보면 된다.
가운데 계곡을 중심으로 마니까란 기준, 오른쪽으로 가면 깔가, 왼쪽으로 가면 나탕 이라는 마을이다.
그렇게 깔가를 지나 키르강가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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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설산을 어디서든 볼수 있다.
사실상 깔가에서 키르강가까지의 6시간 정도 트레킹 코스에서 두 여인의 노새 역할을 하다 보니
정작 키르강가에 왔을 때는 사진이고 뭐고 귀찮아졌다.
(돼지 얼굴 보고 잡아 먹는거 아니라는 어른들 말씀이 떠오르는 하루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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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강가는 한번쯤 가보길 권한다. 물론 사먹을곳도 거의 없고 잠자리는 최악의 컨디션 이지만
그래도 이런 오지 체험 이런데서 해보지 언제 또 해보나?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아쉬람에서 저녁에 공짜로 제공하는 저녁은 꽤 꿀맛이었다.
그리고 이곳 키르강가에는 노천탕이 있다.
여성용은 건물로 가려져 있어서 가보질 못했고(나는 남자니까)
남성용 노천탕은 오픈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원숭이 마냥 발가벗고 가면 안된다. 바지 하나 입자.
따뜻한 물에서 노곤하게 있으면 술생각도 나고 뭐 암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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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강가에서 지옥의 2박을 해보고
(난방도 안되는 나무 판때기 가옥에서 화덕 하나 침낭하나에 의존해서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밤을 이틀 정도 겪으면 사람이 정신이 나감)
4박5일 일정의 트레킹의 마지막밤 마니까란을 위해 부지런히 출발한다.
싸두가 있음을 알리는 삼지창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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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트레킹 코스의 자연 경관은 정말 너무 황홀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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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로 한창 접어들던 6월의 꿀루 계곡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늦게 출발한것도 있지만 비까지 오니 등산화 신지 않은 두 여성은 길에 미끄러지고 이동속도가
전혀 나오질 않아 결국 예정에 없던 나탕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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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보리밭이 참 이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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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문 해서 유일한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와서 일단 비를 피하고 본다.
깔가에서의 숙소, 그리고 키르강가의 아쉬람은 호텔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그 흔한 화덕조차 없다. 내일 구안와사 올 것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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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없는 숙소, 어두우니 초라도 태워 본다.
25세 남성, 22세 여성 둘
전쟁터에서나 피어날법한 러브라인?
그딴거 없다. 서로 추워서 손을 초에 대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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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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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주인께 부탁해서 저녁을 요청 했다. 외국인 여행자를 잘 안만나는 동네라 영어도  잘 안통하고
손짓 발짓으로 밥이랑 난이랑 달, 커리 이런거 있는대로 다 달라고 했다.
엄청난 양을 …
주인아주머니와 손짓 발짓으로 해서 50루피라는 가격을 확인 했는데
당연히 1사람당 가격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5명 정도가 먹을수 있는 밥과 짜파티
그리고 두종류의 달프라이와 야채볶음을 가져다 주셨고
너무 배부르게 먹었던 나는 150루피를 낼려고 했더니 50이라는거다 ㄷㄷㄷ
큰돈이라 부담스러워 하고 계속 안받을려고 하길래 표정연기로 최대한 얘기했다.
‘이건 너무 맛있게 먹은 나의 마음이니 받아줘요.’

너무 썩어서 만지면 녹아버릴거 같은 아주 두껍고 눅눅한 이불
하지만 얼어죽고 나면 무슨 소용일까 하고 배부른 상태에서 각자 침낭에 들어가서
냄새나는 눅눅한 이불을 위로 올리고 살기 위한 숙면에 들어간다.
그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날 부르는거 같아 랜턴을 들고 너무 깜깜한 1층으로 내려가서 볼일을 보다가
남자라는 이유라서 집중하기 위해 랜턴을 끄고 스탠딩 자세로 있다가 잠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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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내 입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온 한마디
너무 많은 별들이 쏟아질거 같은 느낌으로 계곡 사이를 아주 빼곡하게 가득 채웠다.
너무 황홀한 느낌이라 자고 있는 두 여성을 깨우고 나도 디카를 가져와서 막 셔터를 눌러댔다.
(그래서 저렇게 나옴…카메라는 좋은거 쓰고 봐야함)
처음엔 잠깨워서 짜증 내던 K와 C도 놀라운 모습에 추위도 잊은채 별 구경을 하다가
다시 들어와서 잠이 들었다.
몸에 열이 많은 덕분에 비록 각자의 침낭이였지만 양옆으로 K와 C를 두고 내가 가운데서 잠이 들었다.
이렇게 낳아주셔서 감사 합니다 부모님…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나는 그날밤 22살 어린 아가씨들의 이성과 본능의 경계에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으로 거의 잠을 못잤다.
추우면 굴러서 내몸에 몸을 기대다가 다시 좀 살만하면 몸을 뗐다가…
다시 추우면 몸을 쓰윽 기대고 (내가 무슨 핫팩이냐..)
양쪽에서 엇박자로 계속 그래서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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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오간 나탕의 하룻밤을 보내고 이제 마지막 종착지 마니까란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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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탕에서 마니까란으로 가는길
이 드넓은 인도 한복판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본다.
마찬가지로 남자1 여자2로 출발한 후발대를 만난거다.
창호녀석 고생 많았겠지…왕누님들 모시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한장 찰칵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길로 우리는 우리의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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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도 이 꿀루 계곡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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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직전 허름한 식당이 있길래 가서 요기를 해본다.
마니까란을 제외하고 모든 트레킹 코스에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아무리 억만 장자라도 돈이 남아 돌아도 돈쓸때가 없다는거다.
대부분 허름한 로컬식당, 파는건 짜파티 달프라이 쵸면 볶음밥
돈이 있어도 쓰고 싶어도 쓸수가 없다.
3명이서 3박4일동안 숙박비+식사비용으로 250루피? 정도밖에 안썼으니 말 다했다.
(당시 보통 일반적인 남성 1인의 하루 여행비용이 400루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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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돌아온 마니까란
이곳은 시크교의 여름 휴양지라고 한다.
그리고 성지이기도 하고 그래서 거의 대부분 터번쓴 시크교 아저씨들과 그들의 부인 아이들만 가득하다. 물론 시크교 휴양지라 육식을 정말 많이 할수 있다. 3박4일동안 아낀 여행 경비를 단 두끼 식사로 거덜냈으니 이해 될려나?
모처럼 침대가 있고 따듯하고 뜨거운물이 나오는 숙소에서 샤워도 하고
사람의 몸에서 시멘트물이 흐를수도 있는 경험을 하고 그렇게 다시 마날리로 왔다. 그리고 계속 여행을 하게 되었고 한국 돌아와서 그중 한명은 나와 연인이 되었다.
아직 나는 미혼이고
K와 C는 둘다 결혼해서 애낳고 잘살고 있다고 한다.
문득 그립다 이때의 추억이 그리고 이때의 설레임이..
너무 추웠지만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고 없던 감정도 생기던
순수했던 20대의 내가 이때는 있었나 보다.

벌써 추억을 그리워 할 나이라 하기엔 아직 젊은데..

All photo by Nikon F100 AF20-35 F2.8D

TMX

Ladakh – 마지막 샹그릴라

Lost Horizon – 제임스 힐튼 1933
소설속 이상향으로 상상속의 도시로 등장한 이후 이제는 일반적 어휘로 쓰이는 단어
바로 ‘샹그릴라’ 입니다.
흔히 세속적이지 않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낙원 같은곳을 칭하곤 하는데
처음 갔던 인도에서 가이드북에 Leh라는 도시를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 라고 표현을 쓰더군요.
골든트라이앵글 이라 불리는 델리-아그라-자이뿌르 이 3곳을 거치면서 더운곳은 딱 질색인 제가
다람살라 – 마날리 이렇게 추운 지역만 골라 다닌건 바로 이곳 Ladakh를 가게될 운명 이였던것 같습니다.

Leh를 육로로 가는건 매우 험난한 여정 입니다.
6월 중순은 되어야 눈이 녹으면서 마날리에서 가는 450여km의 길고 긴 육로가 열립니다.
마날리에서 첫 관문인 로탕패스를 지나면서 부터 인간이 고산병을 느낀다는 3천m 고지대를 계속 달려 가기 때문에 고산병과 울퉁불퉁한 육로에서 느껴지는 차멀미를 온통 안고 갑니다.
돈 아낄려고 로컬버스를 택하면 그여정이 1박2일이 되고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20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해결 한다는 지프로 출발을 하게 됩니다.
지프에 한국인 7명과 운전자 1인 이렇게 1대의 타타스모 RV차량으로 새벽 5시에 출발한 여정
문제는 그 높디 높은 로탕패스에서 앞에서 다른 버스가 눈녹은길에 차가 빠지는 바람에 6시간 정도 정체 하면서 일은 꼬이고 결국 일행중 4명이 고산병+멀미 증상으로 쓰러지고 시간은 지연되서 중간에
이름모를 도시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점심쯤 겨우 겨우 도착을 하게 됩니다.
지옥이라 표현하기엔 가는길이 너무 아름답고 이국적이여서 좋았지만
그래도 고산병으로 고생 하던 사람들은 지옥길 같았던 30시간 이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도착 해도 기대 했던 샹그릴라는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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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했던 낙원은 없고, 몸은 고생했고, 그냥 시원한 찬바람 부는 사막기후
딱 그게 Leh의 첫 인상이였습니다. 결국 이탈자도 발생 하고
(온지 하루만에 고산병으로 결국 비행기 타고 하산)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기대 했던 낙원은 아니여도
Leh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이 서서히 저에게 스며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조금 부족하다 생각은 계속 들었구요.
그렇게 매너리즘에 빠져 들어 갈때쯤 같이 여행 하던 멤버들과 상의 해서
라마유르로 떠나 보기로 했습니다.
가이드북에는 아주 짧게 `예쁨’ 이런식으로만 표현된 곳이기에 도전 해보기엔 충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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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덤오브헤븐 에 보면 성지를 찾으러 갈려고 하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알려주죠
‘이태리어가 들리다가 아랍어가 들리면 바로 거기야’
뭔가 날카로운 설산이 보이다가 갑자기 산의 모습이 묘하게 바뀌면서
뭔가 직감적으로 다른곳에 오게된 기분이 들게 됩니다.
“아..이곳이 라마유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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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불편한 숙소 씻기도 어려울만큼 찬물이 콸콸콸 나오는 숙소
라마유르에 대한 첫인상 이였습니다.
하지만 라마유르 곰파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왜 이곳을 아름다운 장소라 말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 라고 여행 내내 건강했던 가장 나이 어린 친구의 갑작스런 몸살 증상으로
오래는 못있고 사람이 쉴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고 그렇게 진짜 낙원으로 생각하는 사스폴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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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폴은 알치를 가기위해 잠시 멈춘 곳인데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돌아오는길에
다시 한번 꼭 오자 마음을 먹었던 곳이고,
결국 이렇게 다시 와서 너무 편한 느낌이 좋아 몇일 눌러 앉아 버렸죠.
침대가 좁아서 그냥 바닥에서 침낭깔고 자자 해서 누웠더니
넓은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시간 가는줄 모르게 만든곳
진짜 샹그릴라는 이렇게 조용한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모든 이에게 같은 장소가 같은 감정으로 다가오진 않을 겁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장소를 가도 언제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듯 말이죠.
가이드북의 샹그릴라는 Leh를 칭하는 말이였지만,
저에게 있어서 샹그릴라는 Ladakh 전체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지금은 한국인 여행자들 보다 더 좋은 최신 스마트폰을 쓴다는 인도 사람들이라 이곳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면서도 ,
한편으론 그냥 12년전 내 마음속 보물같은 장소로 기억과 추억을 다듬지 말고 그대로 두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겐 악몽같은 고산병과 건조한 날씨 뜨거운 태양과 추위를 동시에 느낄수 있는 장소로
기억되겠지만 그래도 인도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에겐 샹그릴라로 기억될것입니다.

킹덤오브헤븐에 보면 발리안이 항복하고 살라딘에게 묻죠.
‘예루살렘은 어떤 의미냐고’
살라딘이 답하죠
‘Nothing’
‘Everything!’

지금도 라다크 라는 곳은 저에게
“Nothing and everythin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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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F100 Afs17-35, Af20-35, AF80-200
RDP,R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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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B 그리고 Memorable

The Most Memorable Scene
제가 운영 하는 DasFoto의 Motto 입니다.

* 이글은 결혼식을 준비 하는 신랑님께 특히나 권해 드립니다 

사진을 취미가 아닌 학업으로 대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사진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단언컨데 저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라고 봅니다 HCB
이분의 사진집 제목 L’instant decisif – 결정적 순간
이걸 접하고 사진을 보고 아직 아무런 지식적 소양이 없는 학생 신분이라면 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달콤한 단어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위해 모든 정열을 쏟아 내고 카메라를 든 좀비마냥 눈에 불을 키고 모든 사물을 무섭게 무섭게 달려들곤 합니다.
이 광기가 사라지고 나서야
`아…다큐멘터리…또는 스냅이라는 분야는 나랑 안맞는구나 ‘
라는 자아 성찰를 끝으로 (사진을 계속 한다는 전제하에) 다른 사진의 길로 들어서게 되죠
(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입니다)

결혼식, 제가 담는 본식 스냅 이라는게 재미와 위험을 동시에 지닌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뭐 암튼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스튜디오 촬영이나 야외 촬영 같이
촬영자가 컨트롤을 할수 있는지와 그렇지 않은것에 대한 차이가 매우 크죠.
이미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진행 될지 모든 스케줄은 타임테이블로 만들어져 있지만 워낙 여러사람이 만들어 가는 이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의 특성상 항상 우발적인 상황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우발적인 상황이 뇌리에 기억될만한 사진으로 남는걸 너무 좋아하고 말이죠.

하지만 매우 슬프게도 그런 우발적인 상황이란게 기분좋게만 다가오는 경우는 많지 않은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누가 연출 해주지 않습니다. 미리 만드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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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몰래 준비한듯한 신랑님의 깜짝 웨딩카, 추운날 기대도 안한 웨딩카가 예쁘게 장식되어 메이크업실 입구를 기다리고 있다면 참 기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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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입장 하기전 신부님에게 다가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해주는 신랑님
신랑님들이 노래를 너무너무너무 잘하면 물론 좋겠죠. 하지만 노래를 못해도 삑사리가 나도
그래도 열심히 불러주는 그 모습을 신부님들께서 더 좋아하시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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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례 없는 예식을 참 많이 하십니다. 주례 없는 예식이 주례선생님을 아예 빼는쪽에서 이제는 아버님들이 그 주례 선생님을 대신해주곤 합니다. 그런데 늘 듣는 뻔한 멘트가 아닌 아버님들이 직접 손수 쓰신 편지를 들을때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버님을 두신 신랑 신부님이 부러워지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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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축가의 가장 큰 묘미는 재미입니다. 늘 듣던 노래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참 다른게 결혼식 축가죠. 특히나 신랑 신부님의 미소를 많이 이끌어 내주는 분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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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액추얼리를 보고 자란 사람들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남다를수밖에 없죠.
행진때 나오는 그 멋진 퍼포먼스, 신랑 신부님도 아예 모르는 깜짝 축가자들의 연이은 방문으로 이렇게 기억에 남는 사진도 남길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많은 신랑 신부님도 참 좋은 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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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샤!샤!
신부님과 예식전에 이벤트가 있는지 살짝 여쭤봤는데 친구분들과 춤을 추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뭐 큰걸 하실려나 했는데 알고 보니 신랑님 몰래 준비한 깜찍 이벤트!
그것도 대세중에 대세인 트와이스의 Cheer Up 과 TT 메들리! 춤도 완벽하게 소화하시고 남성 하객분들의 우렁찬 샤샤샤 때창이 지금도 머리속에 기억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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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님의 축가+ 친구분들의 꽃송이 선물
예상치 못한 작은 선물이지만 그래도 신부님에겐 감동이 될수도 있습니다.
(신랑님들이여 축가를 두려워 하지 말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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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플래쉬몹으로 진행된 신랑 신부님의 행진
쑥스러워 하기보단 그 상황을 즐겨주신 신랑 신부님 덕분에 이렇게 유쾌한 장면이 남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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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때는 참 돌발변수가 많습니다.
4월의 예쁜 야외 결혼식, 장소가 장소인지라 하필 아버님 덕담 순서에 대학병원 응급환자 수송 헬기로 인해 아무런 얘기가 들리지 않았던 너무 웃펐던 예식
행진 하시는데 날라온 종이비행기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신랑님
이렇게 맞기도 어려운데 말이죠. 아마 이사진만 보시면 그때 그생각이 많이 나시겠죠?
웃픈게 아니라 진짜 아팠던 행진 으로 기억 하시겠지만 끝까지 미소 잃지 않은 두분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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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하면 바로 이 플라워샤워를 빼놓을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버진로드로 올라오셔서 화면을 너무 가득 채워진 친구분들
그런데 기계보다 더 멋지게 플라워샤워를 진행 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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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분
이렇게 멋지게 플라워 샤워를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바로 셀프 플라워샤워
갑자기 지인들 손에 있던걸 뺏어서 직접 뿌리신 센스 만점 신랑님
2017년 2월 26일 현재 가장 멋진 플라워샤워로 기억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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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케씬 이후의 순수해야할 키스씬을 코믹에로로 만들어준 지인들
신랑님을 뒤에서 힘껏 밀어주신 분 덕분에 모두가 웃는 기억될만한 사진으로 남겨졌습니다.

7년전?
제가 본식 스튜디오를 그만두고 잠시 쉴때, 지인의 결혼식을 부탁 받은적이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친한 동생이였는데 결혼전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있다고 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더랬죠
‘안되더라도 축가는 너가 해줘 그래야 기억에 남아’
그렇게 시작된 결혼 이벤트는 저의 무지막지한 축가로 시작되어 신랑이 바통을 이어받는 가사를 잊어버린 축가, 그리고 친구들의 단체 꽃송이 선물로 마무리 되어 결코 잊기 어려운 결혼식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별거 아닐수도 있는데 조금만 시간 투자해서 조금만 찾아보면 할수 있는 이벤트는 참 많습니다.
그러면 준비하는 신랑님 혹은 신부님이 단독으로 준비 하시더라도 두분에게 결코 잊을수 없는 행복하고 특별한 순간으로 남게 되는거죠.

참 쉽죠?

어려운 결혼준비에 비하면 매우 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를 하고 상황을 만들어준 분들에게 제가 해드릴수 있는건 예쁘고 아름답게 담아드리는것 뿐이죠.

같은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는 굉장히 어려운 사진을 담고 목숨을 걸고 일을 하기도 합니다.
퓰리처상을 받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케빈카터 같은 작가도 있구요.
제가 하는 일이 그렇다고 종군기자나 다큐멘터리 작가분들에 비해서 쉽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행복한 순간과 사랑이 가득한 모습을 담으면서 좋은 에너지를 받는 다는건
개인적으로 축복이라고 생각 합니다.언제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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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사람이 있습니다 – 교동도

“호기심이 강하면 명이 짧다”
제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입니다. 모험 정신이 강할수록 그만큼 몸이 피곤 해지는 건데 ,
제가 스스로 그게 더 맞는거 같단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마음속에 고향이 된곳이 있습니다.
바로 교동도 입니다
계기는 신문에 나온 하나의 기사 였습니다.
아직도 때묻지 않은 그런곳 이런식의 기사가 올라온걸 우연히 보게 되죠
그 유명한 강경의 젓갈시장 , 군산 철길마을
그리고 이 교동도 라는 곳을 그렇게 기사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참 오래되고 옛모습을 간직한 곳이라는걸.

신문기사로 본건 그렇게 잊혀지다가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 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때
교수님께서 프로젝트 할거 3가지 제안서 내라고 해서
정말 그냥 3가지를 내라고 해서 마지막에 써낸게 바로 교동도 촬영 이였습니다.
그런데 1차 2차 제안은 다 퇴짜…그런데 교동도는 OK하시더라구요.
그렇게 교동도와 인연은 시작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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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는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특성상 2000년에야 섬 주민이 아닌 외지인에게 공개된 섬입니다.
덕분에 ‘당시 제가 봤던 신문기사에서는’ 매우 때묻지 않고 순수하고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2007년부터 교동도로 가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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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갔을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합니다. 분명 섬내에 마을버스가 다닌다고 했는데 마을버스는 오질 않고 섬 주민들께서는 아주 당연한듯 봉고트럭 뒤에 올라타서 그대로 섬내로 들어가시고, 결국 저도 섬주민분의 도움으로 봉고차안에 같이 합승해서 대룡리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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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를 열댓번 다니다 보니 그냥 선착장에서 하루에 4번 다니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것 보단
그냥 1시간 반정도 걸어서 대룡리까지 걷는게 더 편하더라구요. 동네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하고 뚜벅이 여행이라는게 뚜벅이만의 장점이 분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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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지만 대부분 외지인들은 이곳 대룡시장 안쪽만 훑어보고 갑니다.
오래된 옛모습의 시장길에 호기심이 가지만 크기가 워낙 작아서 30분만 걸어 다니다 보면 금방 질려버립니다.
저같이 성격 급한 사람은 더 분통을 터트릴수 있을 정도로 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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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를 느끼는 방법중에 하나가 대룡시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대룡리를 벗어나면 호젓하게 정말 도시 사람이라도 미디어로 상상속에서나 접했을 고향의 모습을 만날수 있습니다.
촬영된 시점이 대부분 겨울이라 따듯한 느낌이 없는게 참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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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대룡시장에서 교동면사무소를 지나면 나오는 길 초입에 있는 나무 입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던 2007년 3월을 기억 합니다.
강제 1박2일을 하게 되어 교동도 여인숙에 홀로 있다가 오밤 중에 촬영 이라도 하자 해서 라이트 하나 들고 어두운 밤길을 걸었는데 빛 도 하나 없는 그곳에서 라이트페인팅 하겠다고 비췄는데 이 나무가 있더 군요. 그때의 느낌은 딱 영화 컨저링의 포스터 사진속 나무를 만난거 같은 음산함?
너무 조용 하고 어둡고 그속 에서 내가 비추는 불빛 으로만 비춰 지는 이 나무 소름 돋는 모습의 형상 ,
그 형상이 저에게 준 느낌을 아직도 피부가 기억 합니다.
대낮에 봐도 여전히 을씨년 스럽구요. 황병기님의 미궁을 틀어 주면 아주 어울리는 느낌 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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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가 있는 대룡시장을 지나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면 날것을 보게되어 좋습니다.
아니 좋다기 보단 새롭습니다.
물론 그 기억이 밝은 파스텔톤이 아니라 무겁고 어두운 BW프린트 지만요.

그래도 제가 이 교동도를 다시 가게 된다면 이유는 딱 하나 때문 입니다.
바로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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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국의 계단 기억하시나요?
주인공 아이가 구두를 잃어버려서 마라톤을 해서 꼭 3등해서 구두 받을려고 했다가
1등이 되어 엉엉 울던 그 순수한 모습
교동도의 아이들은 카메라를 두려워 하지도 피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멋지게 포즈를 잡아주죠
처음 교동도를 가서 정말 얼레벌레 뭘 담아야 할지도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할지도 모를때 카메라를 쥐고 있다는것만 보고 다가와서 사진 찍어 달라 말하던 순수한 아이들, 자기들끼리 카메라 앞에서 포즈 잡고 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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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최고의 모델
처음 봤을때도 알아서 귀여운 미소 보내주던 이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지금쯤 대학생 정도 되었겠죠?

저랑 같이 갔었던 지인이 교동도 아이들을 보고 가장 놀란 부분이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 한다는거죠.
물론 저도 처음엔 매우 놀라웠다가 어느 순간 그냥 그걸 당연하게 생각도 하고 같이 그냥 인사 해주고 했는데 도시에서 살던 그분은 단지 나이 많은 형이라고 (사실 거의 아빠뻘?) 지나가던 아이들이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 해주는 모습이 매우 놀라웠나 봅니다.

교동도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무엇이 있을까요?
히치하이킹? 아마 대한민국에서 히치하이킹이 되는 거의 유일한 동네 같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차로 교동도로 여행했을때 교동도에 계신 모녀 두분을 차로 태워서 선착장에 태워다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제가 외지인이라는걸 알고 저한테 물으시더군요.
‘여기 주민도 아닌데 왜 저희를 태워주세요?’
그래서 얘기 드렸죠.
‘저도 교동도에 차없이 왔을때 참 많이 히치하이킹 해봤다고,(거의 대부분 입니다)
어떤 아저씨는 저희가 차를 잡은곳이 바로 집앞이셨는데도 굳이 차몰고 왕복 20분 거리의 선착장까지 태워주셨다고’

마지막으로 갔을때 그곳도 둘레길이니 뭐니 이제 세속적인 모습이 점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엔 좋은 사람들이 아직도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늘 그리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교동도는 사람이 가장 좋은 곳입니다.

– All photo by DasFoto –
Pentax 645 & Pentax67-2

(주) 마지막으로 가본게 2013년 가을이니 벌써 3년도 훨씬 전이네요.
그 이후에 결국 교동대교도 개통 되었고, 지금은 검색 해 보면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안변했을거라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