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s

01

개빼꼼 1

.

.

.

02

개빼꼼 2

.

.

.

03

개빼꼼 3

.

.

.

03-1

집 지키는 개 1

.

.

.

04

집 지키는 개 2

.

.

.

05

집 지키는 개 3

.

.

.

06

집 지키는 개 4

.

.

.

07

집 지키는 개 5

.

.

.

08

집 지키는 개 6

.

.

.

09

간접흡연 개

.

.

.

10

바닷가 개 1

.

.

.

11

바닷가 개 2

.

.

.

12

바닷가 개 3

.

.

.

13

골목길 개 1

.

.

.

13-1

골목길 개 2

.

.

.

14

골목길 개 3

.

.

.

15

줄 따라 걷는 개

.

.

.

16

우측보행 개

.

.

.

17

자가용 타는 개 1

.

.

.

18

자가용 타는 개 2

.

.

.

19

자가용 타는 개 3

.

.

.

20

안겨서 가는 개 1

.

.

.

21

안겨서 가는 개 2

.

.

.

22

할머니와 개 1

.

.

.

23

할머니와 개 2

.

.

.

24

할머니와 개 3

.

.

.

2018년 개의 해를 맞이하여 개 사진들을 모아 봤습니다  🙂

 

Nikon S3 Limited Editon Black (2002)

니콘빠도 몰랐던 니콘 RF카메라

 

15년도 넘게 지난 옛 기억이다. 남대문 어느 카메라 수리점에 선배 한명과 함께 들렀던 날이었다. 수리할 카메라를 맡겨두고 잠시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벽에 붙은 니콘 카메라 계보도(?)가 눈에 띄었다. 당시 나는 F3HP를, 선배는 F2AS를 쓰면서 니콘 수동 플래그쉽 모델을 쓴다는 부질없는 자부심에 으쓱거리며 니콘은 그래도 좀 ‘빠삭’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는데 거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처음보는 니콘 RF카메라들이 있었다.

 

 

171

좌측 맨 위에 있는 니콘 RF 카메라들에게 시선을 뺐겼었다.

 

 

‘야 저건 뭐지? 겁나 이쁘네.’

‘니콘에도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가 있었네요?’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라면 당연 라이카였지만 학생 신분에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가격이라 감히 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던 때였다. 당연히 RF카메라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지 않았기에 니콘에서도 그런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리가 없었다. 당시 스마트폰이 있길 했나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성능이었는지 그 자리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카메라 답게’ 생긴 그 멋진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눈을 못떼며 한참을 바라보다 수리점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요즘도 저런게 나오면 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요즘도 나오는’ 카메라였을 줄이야!

 

그 날 보았던 멋진 니콘 RF 카메라들은 50년대에 생산된 니콘의 S시리즈였다.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를 다분히 참고하고 카피한 니콘은 S2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콘탁스를 따돌리기 시작한다. S2는 시원시원한 등배파인더에 50미리 프레임 라인을 지원했으며 와인딩 레버 및 리와인딩 크랭크 등을 적용하며 한결 현대적인 RF카메라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1957년에는 시차보정이 되는 6개 화각(28/35mm, 50/85/105/135mm)의 프레임을 지원하는 유니버셜 뷰파인더를 탑재한 S시리즈 끝판왕 SP를 출시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S3-and-SP

Nikon SP(上) & S3(下)

 

그리고 이듬해에는 복잡한 SP의 파인더를 간략화한 S3를 출시하기에 이르는데 35/50/105mm 프레임 라인이 등배 파인더에 모두 표시되는 방식으로 시차보정 기능도 생략된 모델이었다. 3개의 화각이 상시 표시되다 보니 파인더 내부가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28mm, 35mm 렌즈를 사용할 때 오른쪽 파인더에서 초점을 맞추고 왼쪽의 28/35 파인더로 눈을 옮겨야하는 SP에 비해 편리한 측면도 있고 가격도 보다 저렴해,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모델이었다. 바로 그 S3가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복각 생산 되었던 것이니, 그야말로 요즘도 나오는 카메라였던 것이다.

 

 

 

 

 

니콘의 낭만적인 프로젝트

 

90년대 초반부터 올드 모델 복각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가 니콘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가장 열의를 보인 곳은 Nikomat, F3, F4, FM2, FM3a 등 수동모델들의 생산을 주로 담당했던 미토 니콘(Mito Nikon)이었다. 1994년 봄, 미토 니콘은 진지하게 S시리즈 복각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번째 모델로 1958년에 생산된 Nikon S3가 잠정적으로 선정되게 된다. 저속/고속셔터가 분리되어 있고 50미리 프레임만 지원하는 S2는 다소 구식이었을테고 복잡한 유니버셜 뷰파인더를 가진 SP는 꽤 부담스러웠으리라. S3가 선정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토 니콘은 우선 S3 설계 도면을 입수하여 면밀한 검토를 시작하게 되는데 제대로된 복각 생산을 위해서는 새로운 제작 설비와 도구를 갖추는 등 많은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당연히 생산 단가를 상승하게 하는 요인이었고 아무리 한정판이라고 하더라도 납득이 갈만한 수준에서 가격을 책정하는데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토 니콘이 주저하고 있을 때, 마침 경기는 불황으로 접어들었고 1995년, S3 복각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된다.

 

 

 

 

 

다시 시작된 프로젝트

 

3년이 지난 1998년, 미토 니콘은 다시 한번 S3 복각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최초 검토 당시에 추정되었던 높은 생산 단가는 각개의 부품들을 다시 검토하고 생산 공정을 개선하면 상당 수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도 높아짐을 의미했다. 미토 니콘은 Nikon Photo Products Inc.(現 Nikon Imaging Japan Inc.) 측에 S3 복각 프로젝트의 매력과 의미를 강력하게 어필했고 결국 Nikon, Mito Nikon, Nikon Photo Products Inc., Tochigi Nikon 까지 총 4개사가 참여한 ‘S팀’이 구성되었다. 그렇게 야심찬 S3 복각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닻을 올리게 된다. 98년 12월이었다.

 

 

 

 

 

모든 것을 오리지널과 동일하게

 

S팀은 복각될 S3의 모든 부품과 품질 수준을 40년전 당시와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S3에 들어가는 부품의 수는 816개에 이르렀고 이를 완벽히 재현하는데는 엄청난 정성이 필요했다. 40년전의 도면을 면밀히 재해석하는 한편 역설계를 위해 중고샵에서 S3를 구입해 와 철저히 분석했다. 프레스 및 다이 캐스팅 설비까지 생산 시설을 새로 설계해야 했고 나사 모양, 표면의 질감, ​​페인트의 색상과 광택, 각인 두께와 깊이, 셔터 스피드 다이얼의 글자 색, 인조 가죽의 느낌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심지어 오리지널 S3의 상판 각인의 깊이 0.5mm를 맞추기 위해 이미 공급된 상판 중 절반 가량을 폐기하기까지 할 정도로 S팀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제작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특히 콘탁스와 니콘 바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바디 오른쪽의 포커싱 기어의 재현은 생각보다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미세 피치 기어가 맞물리며 작동되는 복잡한 구조로 인해 마운트 부분 헬리코이드와 정밀하게 연동이 되지 않았고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야 완벽하게 작동되도록 조정될 수 있었다.

니콘내에서 S3 복각 모델은 M200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렸으며 M은 Mito Nikon을 의미했다. 니콘의 M200 개발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하고 있던 협력사들도 수익과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협력사 출신 고령의 엔지니어들 중 소수만이 S3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고 바디를 감싸고 있는 인조가죽의 샘플이 협력사에 남아있어 이를 바탕으로 동일한 질감을 재현할 수 있었던 점도 행운이었다. 니콘 S3의 복각은 엔지니어들의 공돌이 정신이 똘똘 뭉친 열정과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조립 공정

 

부품 생산이라는 큰 산을 극복하자 조립 공정이라는 또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옛 도면을 그대로 읽고 이해하여 조립할 수 있는 숙련공은 거의 없었고 체계적인 조립 절차에 대한 자료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토 니콘은 당시의 조립 방식을 최대한 현대적인 생산 공정에 맞추어 절차화하며 이를 극복해 나갔다. 40년전과 달리 수작업만으로 카메라를 제작해본 숙련공들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니콘에 남아있는 숙련공으로부터 관련한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고 6개월간의 교육을 거친 후 니콘 S3는 본격 조립되게 된다. 특히 섬세함이 요구되는 셔터막 조립은 여성 숙련공들이 전담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생산은 하루 한 대에 불과할 정도로 더디게 진행됐다. 거기다 부품 공급 지연 등 몇가지 이유로 제품 출하는 예정보다 2개월이나 지연되기도 했다. S3의 생산 속도는 같은 시기 생산되던 FM3a에 비해 6~10배 가까이 느렸지만 지속적인 노력 끝에 애초 목표였던 월 300대 생산을 초과하여 500대까지 생산이 가능케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세상에 다시 태어난 Nikon S3 Year 2000 Limited Edition (2000~2001)

 

니콘이기에 가능했던 이 멋진 프로젝트에 매니아들의 지지는 열렬했고 2000년 4월 6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된 사전 예약에 504,000엔이라는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 수천명의 예약자가 몰리는 대성공을 기록했다. 완성된 S3는 ‘Nikon S3 Year 2000 Limited Edition’이란 이름으로 그해 10월부터 구매자들에게 인도되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2001년 10월까지 8천대의 S3가 생산되었다. 모두 실버 크롬 버전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열정적인 엔지니어들은 물론, 카메라를 보지도 못했음에도 기꺼이 예약했던 매니아들 모두에게 잊기 힘든 추억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IMG_9018

L형님이 소장하고 계신 Nikon S3 Year 2000 Limited Edition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 (2002)

 

그리고 2년후인 2002년, S3 블랙 페인트 버전이 새롭게 출시됐다. 블랙 페인트 카메라에 대한 매니아들의 사랑은 유별난데, 실버 크롬에 비해 도장 처리과정이 복잡한 탓에 S3는 5만엔 가량이 더 비싼 556,500엔에 판매 되었다. 생산대수도 훨씬 적어 실버 크롬 버전의 1/4 수준인 2,000대만이 생산되었다.

 

 

DSCF3683

멋진 자태의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 (2002)

 

 

Nikon S3 Olympic Model(?)과의 관계

 

NIKONOL3

Nikon S3 Black Paint (1965)

 

구글이나 이베이를 검색하다 보면 1964년 도쿄 올림픽 모델이라고 하는 S3 오리지널 블랙페인트 모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니콘 공식 홈페이지에는 올림픽 기념으로 S3를 발매했다는 얘기가 없다. 정작 올림픽을 앞두고 재생산 된 모델은 SP였는데,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프레스와 잡지사 쪽을 중심으로한 재발매 요구에 응하여 S3가 아닌 SP를 한정 재생산되었던 것이다. (1959년 니콘은 SLR에 집중하기 위해 S시리즈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고 SP 재생산과 함께 사이즈가 더 커진 개선형 Nikkor-S 50mm f1.4가 출시된다. 그렇다면 올림픽 버전 S3의 정확한 정체는 무엇일까. 니콘 홈페이지에서는 1965년에 블랙 페인트 버전 S3가 생산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NIKON S3 재발매

쇼와 40년(1965년)의 니콘 S3 재발매를 알리는 신문기사

 

1965년 9월, 니콘은 S3 블랙 페인트 모델을 2,000대 한정으로 재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올림픽을 앞두고 출시됐던 개선형 Nikkor-S 50mm f1.4가 세트로 구성됐다. 구글에서는 이른바 올림픽 S3의 출시시기가 1962년부터 64년까지 다양하게 검색되는데 결론적으로 니콘 홈페이지의 내용과 위 신문기사가 일치하는 1965년이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올림픽과 비슷했던 생산시기, 올림픽 버전 50미리의 구성, 그리고 한정판, 거기에 프레스용 이미지가 느껴지는 블랙페인트 모델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올림픽 버전이라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엄밀히 말해 오리지널 S3 블랙페인트 모델을 올림픽 버전이라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올림픽이 끝난 후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사용될 프레스용이라 보기는 어려웠으며 이미 대세는 SLR이었기에 필드에서 험하게 사용될 기회도 적었다. 덕분에 상당수의 블랙 페인트 모델들은 콜렉터들의 손에 들어갔고 지금도 아주 상태가 양호한 것들을 이베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이는 Nikon S시리즈의 마지막 생산이었고 37년이 흐른 2002년, S3 복각 블랙페인트 모델은 65년 당시와 같은 2,000대만이 생산되게 된다.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 박스를 열어 보자

 

니콘 S3 복각 모델은 공식적으로 일본 내수 시장에서만 판매되었다. 실버 크롬 8천대, 블랙 페인트 2천대로 1만대나 생산되었으니 한정판치고는 생산량이 제법 많았던지라 적지 않은 물량이 알음알음 전 세계 매니아들 손으로 퍼져 나갔고 현재도 가격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이베이에서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도 모르긴 몰라도 S3 복각판이 제법 들어와 있을텐데 국내 블로그에서는 관련된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실버 크롬 버전은 가뭄에 콩 나듯 몇몇 포스팅을 찾을 수 있었으나 블랙 페인트 버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실제 유저들이 찍은 사진과 소감을 보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여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박스 개봉샷을 보기로 하자.

 

 

DSCF3582

겉으로 봐선 별로 특별함이 느껴지진 않는 니콘 특유의 황금색 박스.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이라고 적혀 있다.

 

 

 

 

DSCF3583.jpg

상자를 열면 두개의 상자가 자리잡고 있다. 왼쪽에는 카메라, 오른쪽에는 전용 가죽 케이스가 들어 있다.

 

 

 

 

DSCF3584

상자를 꺼내고…

 

 

 

 

DSCF3585

카메라 쪽 상자를 여니 상자가 안에 또 있다. 실버 크롬 버전은 흰 바탕이었던 것에 반해 블랙 페인트 버전은 검정색이 바탕을 차지하고 있다.

 

 

 

 

DSCF3587

뚜껑을 열면 짠 하고 나올 줄 알았더니 또 다시 흰 상자가 있다.

 

 

 

 

DSCF3588

흰 상자를 열자 드디어 블랙 페인트 니콘 S3의 모습이 나타났다. 니콘에서 보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패키지라 다소 낯설긴 하지만 역시나 한정판다운 느낌이다. Nikkor-S 50mm f1.4가 마운트되어 있고 전용 후드가 함께 들어있다.

 

 

 

 

DSCF3589

오리지널의 렌즈캡은 플라스틱이었지만 복각 모델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니콘 S3 복각의 의미 중 하나는 오리지널에 비해 퇴보된 부분없이 작은 부분이나마 개선하려고 했던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다. 단, 아쉽게도 뒷캡과 43mm UV필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DSCF3594

렌즈캡을 열었더니 황홀한 코팅색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렌즈는 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생산되었던 개선형 Nikkor-S 50mm f1.4와 같은 모양으로 40년전의 광학 설계에 현대적인 멀티 코팅이 더해진 독특한 케이스가 되었다.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DSCF3595

뒷면엔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다. 바디를 감싸고 있는 인조가죽은 협력사에 샘플이 남아 있어 오리지널과 같은 느낌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M4 이전 라이카 바디들은 요즘은 생산되지 않는 볼커나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재료로 수리할 수 없는 것과 달리 무척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DSCF3597

뒷판을 열어봤더니 셔터막 위에 보호종이가 딱! ㄷㄷ 왠지 건드리면 안될거 같고 사용하면 안될거 같은 압박감이 엄습해온다. 문득 대학교 사진동아리 때 일화가 떠오른다. 한해 선배였던 누나가 신입생이었던 시절, 집에 안쓰는 카메라가 있더라며 동아리방에 달랑달랑 들고 갔었는데 그게 무려 니콘 F3HP였다고 한다. 너무나도 깨끗한 상태에 선배들이 놀라 ‘와 이런게 집에 그냥 있었다고? 완전 새거 같은데?!’ 하면서 뒷판을 열었는데 저 종이가 셔터막 위에 곱게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야, 이거 진짜로 새건데?!!’ 놀라운 광경이었으리라. ㄷㄷ

 

 

 

DSCF3598

어쨌든 그 놀라운 종이를 치우면 이렇게 셔터막이 보인다. S3, SP 오리지널 모델의 셔터막은 천 재질의 초기형과 티타늄 재질의 후기형으로 나뉘는데 복각 모델은 모두 초기형과 같은 천 재질로 되어있다. 셔터 작동의 부드러움과 정숙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잘 조정된 라이카 M3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유저들이 호평할만하다.

 

 

 

 

DSCF3600

바디를 살펴 봤으니 전용 케이스를 꺼내 봤다. 니콘 글씨 역시 옛 폰트를 따르고 있다.

 

 

 

 

DSCF3601

두툼한 가죽에 굵은 실밥, 다소 투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척 튼튼해 보인다. 귀한 녀석이니 옷을 입혀서 곱게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다.

 

 

 

 

DSCF3603

카메라를 꺼내 후드까지 끼워봤다. 라이카가 아름답다면 니콘은 역시 멋지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DSCF3605

세부적으로 살펴보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다. 내 것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렌즈의 레터링이 지워진 것이 제법 보인다. 수십년된 독일제 렌즈들, 아니 같은 일제 렌즈들에서도 그리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한정판으로 만들어진, 그것도 15년 밖에(?) 안된 렌즈에서 이런 헛점을 발견하니 다소 허탈하다. 니콘의 S3, SP 복각 프로젝트는 진짜 공업 예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칭송 해주려다가 여기서 김이 좀 샜다. -_-

 

 

 

 

DSCF3609

그러는 한편 스트랩 고리 위에는 보호 테잎을 꼼꼼히 붙여주었다. (이런건 내가 해도 된다 -_-)

 

 

 

 

DSCF3629

마지막으로 종이 쪼가리들. S3와 SP 복각 모델은 공식적으로 일본 내수용으로만 발매되었기 때문에 매뉴얼도 일본어만 적혀 있다. 뭐 굳이 읽어볼 것도 없는 내용들이지만.

 

 

 

 

s3-manual-1

매뉴얼도 오리지널과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S3와의 비교

 

 

DSCF3615

마침 내게 지인의 오리지널 S3가 와있는지라 복각 모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1. 시리얼넘버 형식

 

DSCF3610

오리지널은 63으로 시작하며 복각은 시리얼넘버 앞에 S3라는 모델명이 붙는다. 2000년의 실버크롬 버전은 S3 20XXXX, 2002년의 블랙페인트 버전은 S3 30XXXX로 구분된다.

 

 

 

2. 와인딩 레버의 형태

 

DSCF3611.jpg

와인딩 레버의 형태도 조금 다른데 복각은 끝단의 경계면이 직각에 가깝게 떨어지는 반면, 오리지널의 완만한 경사를 보인다. 이거야 뭐 별로 안중요한데..

 

 

 

DSCF3612.jpg

복각은 꽉 차있는 통쇠고 오리지널은 프레스로 찍어낸 속이 빈 형태임을 알 수 있다. SP, S3 후기형의 경우는 복각 모델처럼 통쇠의 형태로 개선됐다고 하는데 정확히 확인은 못해봤다. 어쨌든 오리지널의 저 텅빈 와인딩 레버는 대리석 타일이 붙지 않은 건물의 뒷면을 보는 듯한 실망스런 느낌이다. 다행히 복각 모델은 이를 개선해두었다. 물론 그렇다고 복각 모델의 와인딩 레버가 월등히 좋은 조작감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가득찬 쪽이 좋아 보인다.

형태의 문제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니콘 RF 모델들에게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 와인딩 레버인데, 바디 자체는 튼튼하고 남성적인 기계적 느낌이 물씬 나는데 반해 와인딩 레버는 유독 연약해 보이기 그지 없다. 바디에 비해 좀 작지 않나 느껴지는 외관상의 불균형은 둘째로 하고 상하의 유격이 있어 까딱까딱 움직이는데 이 같은 허술한 만듦새는 라이카 M3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3. 하판 부분

 

DSCF3613

오리지널의 하판, 감도 표시 다이얼의 기준이 ASA로 되어 있고 빨간색과 흰색으로 레터링이 되어 있다.

 

 

DSCF3614.jpg

복각모델은 감도 표시 다이얼의 기준이 ISO로 바뀌어져 있고 오리지널 모델엔 없는 MADE IN JAPAN 각인이 추가되어 있다. 단, 1965년의 S3 블랙 페인트모델에는 동일한 제조국 각인이 있다.

 

 

 

4. 그 외

 

렌즈 마운트 부에 거리 단위가 ft에서 m로 바뀌었다. (S3 후기형에는 m단위로 표기된 모델들도 있다.) 필름 카운터에 함께 있는 필름 컷수 셀렉터가 20컷/36컷에서 24컷/36컷으로 바뀌었고 스트랩 고리의 재질이 니켈 도금된 황동에서 크롬 도금 스테인레스로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복각 S3는 사소한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오리지날의 그것을 아주 충실히 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농이냐 필드냐

 

개봉기용 사진을 찍고 S3는 다시 박스 속으로 고이 들어가 책장 높은 곳으로 올려졌다. 카메라는 물론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S3 복각 모델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 진짜로 이걸로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필름 한번 못 물려보고 10여년 째 장농 속에서 박제처럼 지내고 있는 복각 한정판들이 적지 않을터인데 나 역시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것이 과연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니콘 역사 속 빛나는 작품인지(놔두면 비싸지려나..흠흠) 아니면 실사용으로 열심히 써주는게 가장 멋진 것인지 결정이 쉽지는 않다. 발매 당시 공식 예약가에 비해 상당히 저렴해진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투자자(?)들에게 그리 쏠쏠한 재미를 주진 못한 것 같고, 니콘의 추억과 열정에 대해 기꺼이 값을 지불한 애호가들에게 뿌듯한 행복을 안겨준 카메라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깨끗할 때 증명사진은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

 

 

 

DSCF3681

 

 

 

 

DSCF3691

 

 

 

 

DSCF3692

 

 

 

 

DSCF3696

 

 

 

 

DSCF3698

 

 

 

 

DSCF3699

 

 

 

 

DSCF3700

 

 

 

 

DSCF3702

 

 

 

 

 

 

 

 

 

섬진강 이야기

하늘에 매화꽃이 날렸다.

‘응? 바람도 안부는데?’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이었다.

‘3월에 눈이라니…’

잔뜩 찌푸린 하늘 탓에 매화가 싱그럽게 담기지 않을 것 같아 불만이던 차에 눈까지 내리다니. 아무래도 날씨 좋았던 지난 주에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다시 밀려온다. 남자는 삼각대를 접었다.

다압면에서 섬진교를 건너 다시 하동읍으로 돌아온 남자는 눈을 피해 터미널로 들어왔다. 이 날씨에 어디를 가나. 그냥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몇개 적혀져 있지도 않은 행선지 시간표를 바라보던 중 마침 화개행 버스가 들어오길래 남자는 이내 올라탔다. 뿌옇게 김이 서린 차창을 손을 문질러 달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막막한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새학기가 시작됐고 학교는 활기가 넘쳤지만 남자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는 동기끼리의 신인전 전시회가 막 끝난 후였다. 남자는 최종 프린트를 담당하게 된 3명의 작화 위원 중 한명이었고 저녁 때 암실에 들어가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 반나절 동안 기절하는 생활을 몇주간 해왔던 터였다. 전시회 후 이어진 임원진 선거에서 남자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간발의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암실을 관리하고 후배들 기술 지도를 맡는 기술부장 자리를 남자는 몹시 하고 싶어했고 그럴만한 충분한 실력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종이 한장 차이도 나지 않을 그 어설픈 실력만이 전부가 아님을 남자는 선거가 끝나고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고 싶었다. 어제밤 청량리발 마지막 무궁화호에 오르자 마자 남자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두었다.

화개장터 앞에서 남자는 버스에서 내렸다. 평일 아침, 눈까지 내리는 궂은 날, 섬진강 동편의 19번 국도에는 돌아다니는 차조차 거의 없었다. 딱히 어디로 가야할지 떠오르진 않았지만 남자는 텅빈 도로의 중앙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남자의 어깨 위에 소복히 쌓여만 갔다. 거짓말처럼 온통 하얗게 변한 섬진강 일대에 오로지 남자만이 있는 것 같았다. 얇은 외투가 눈에 젖으며 남자는 추위를 느꼈다.

전시회는 막을 내렸고 임원진 선거는 이미 결론이 났지만 남자는 사실 하나를 더 결정해야 했다.

J는 애초에 동아리에서 그리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은 아니었다. 그런 J가 신인전 준비에는 열정을 쏟기 시작했고 암실 순번을 먼저 맡으려고 첫 차로 학교로 오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새벽부터 동아리방에 도착해 전기 난로를 쬐며 암실이 비길 기다리던 J와 암실에서 나온 남자는 자주 마주쳤고 퀭한 눈으로 동아리방 쇼파에 쓰러지는 남자를 J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곤 했다.

전시회 기간동안 닷징, 버닝 따위를 알려주거나 프린트의 톤을 봐주기도 하며 남자는 J와 조금 가까워졌다. 사실 남자에겐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활동이 별로 없었던 J와는 그런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남자는 약간 떨리는 듯한 J의 목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했고, 암실에 먼저 들어가려고 캄캄한 새벽에 첫차를 타고 학교로 오는 J의 모습을 보며 야무진 면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 익숙하지 않은 화장이었지만 파우더를 칠한 뽀얀 볼이 싱그러웠다.

왼편에 화개나루라고 써진 작은 간판이 보였다. 미끄러운 눈길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가자 줄을 잡고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다. 강 건너 광양 사람들이 화개장에 나올 때 이용하는 작은 나루였다. 소복히 눈이 쌓인 강건너의 모습은 오히려 솜이불을 덮은 듯 따뜻하고 또 아련했다. 눈 덮인 섬진강을 남자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에 젖지 않기 위해 가방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며칠전 농구를 하다 넘어져 다친 손바닥에 카메라가 닿자 찌릿했다. 생각보다 살이 깊이 패인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아 진물이 계속 나오고 있어 카메라를 잡기가 꽤 불편했다. 눈 덮인 섬진강과 강너머를 바라보며 세로로 두 컷을 찍었다. 제대로 파지가 되지 않아 약간 흔들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픈 손으로 차가운 삼각대를 펴기 싫었던 남자는 미련없이 나루를 떠났다.

꺼두었던 핸드폰은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꾸만 존재를 알렸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이던 남자는 전원을 켜보았다. 몇시간 동안 수신되지 않고 있던 문자 메시지 몇개가 동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J가 보낸 메시지들이었다.

남자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용택 –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030300

2001년 3월, 섬진강 화개나루

 

역사가 있는 풍경 – 구마모토성과 가토 기요마사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토,일,월 황금연휴를 놓치지 않고 5월 2일(금)에 월차신공을 더해 3박 4일 일정으로 규슈(九州)로 향했다. 규슈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하우스텐보스나 유후인으로 향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흥미있는 곳이 아니었다. 규슈에 가게되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가토 기요마사의 성인 구마모토성이었다. 후쿠오카 역에서 쓰바메 특급을 타고 내린 구마모토역에서 구마모토 성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곳곳의 모습을 스냅으로 담으며 1시간 정도 후 도착할 수 있었다.

.

.

.

2008kyushyu 016

구마모토성은 마침 축성 40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동안 계절 단위로 나눈 축제가 계속되고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을 3월 중순 ~ 4월초였다면 더욱 끝내주는 풍경을 보여줬겠지만 그만큼 붐볐을 생각을 한다면 뭐 이 정도 시점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

.

.

2008kyushyu 016-1

구마모토성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구마모토성의 주인공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加藤淸正)의 동상이다. 일본 특유의 갑옷 형태와 무사계급들의 상징이던 두 자루의 칼, 가토가 즐겨썼다는 긴 형태의 특이한 투구와 원모양의 문양까지 조각되어 있는 섬세한 형태다. 수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이 동상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웃고 있었다.

.

우리나라에선 흔히 한자 발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많이 부르는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을 떠올릴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음가는 정도의 유명세(?)를 보유한 일본의 맹장이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의 많은 장수들 중 유독 가토 기요마사의 이미지가 강렬한 것은 동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하고 선조의 왕자들을 포로로 잡은 전공 외에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성안의 모든 사람과 가축까지 몰살시킨 잔인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구마모토성에 한국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이 동상과 그 앞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을 보며 이들이 과연 이 녀석이 저지른 잔인한 학살극을 알기나 할런지 하는 생각이 들며 우리에게 원수와도 같은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에선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실이 못내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

.

.

2008kyushyu 016-2

가토 기요마사 동상 아래에 있던 영문 설명문. 그의 삶을 간단히 요약한 이 설명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한 언급만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의 패권을 놓고 동군과 서군이 대회전을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에 섰고 눈부신 전공을 세운 결과 이 곳 구마모토 일대에 영지를 하사받고 7년에 걸쳐 성을 세웠다. 정작 우리에게 가토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준 임진왜란에 대한 얘기는 빠져있는데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에 대해 굳이 언급하기 싫었을테고 규슈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에 민감한 사안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오히려 그래서 구마모토성을 찾았다.

.

.

2008kyushyu 017

한글로 된 안내도 충실하다. 허접한 번역으로 인한 어색한 표현과 오류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수준으로 규슈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임을 실감케 한다. 위 설명에 나오는 수많은 실전 경험 중의 하나가 정유재란 당시 울산성 전투로서, 이 전투에서 얻은 교훈이 구마모토성 건축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뒤에 보기로 하고..

.

.

.

2008kyushyu 017-1

구마모토성 외곽의 해자. 이건 뭐 참호같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강이다. 상당한 폭도 폭이거니와 둑의 높이에 더해진 축대의 높이 만으로도 공격군의 기를 질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로 북방 기마민족을 상대해야했던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방어 전략은 전쟁 발발시 평지에서의 접전을 피하고 산성으로 민관군이 이동하여 수성전을 펼치는 방식이었지만, 일본은 19세기까지도 막부 체제 하 지방 영주들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며 각자의 영지에서 성을 쌓고 살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후 일본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지만 서로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겪으며 일본의 성은 철저하게 실전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일본의 성은 영주가 거주하는 작은 궁궐임과 동시에 방어 시설이 되어야 했고 지형에 의지한 우리의 산성과 달리 평지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본의 성은 이처럼 해자의 폭과 성벽의 높이에서부터 우리와 크게 다르다.

.

.

.

2008kyushyu 020

높은 성벽 위에는 위처럼 조총을 쏠 수 있는 총안구가 빽빽하다. 16세기 무렵 유럽에서 도입된 조총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고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에서 왜군의 조총에 조선군은 크게 당황했다. 일본의 성은 이 처럼 사수가 완전히 보호를 받은 상태로 사격이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져있어 실제 외부에서 내부의 사수를 조준해 명중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면 우리의 성곽은 총,포의 활용이 높아지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크게 변화하지 못해 신미양요 당시 우리 군사들은 초지진 성곽 위에서 상체를 드러낸채 사격하며 미해군 육전대를 상대해야 했다.

.

.

.

2008kyushyu 021

.

.

2008kyushyu 022

일본성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꺾어진 출입구의 모습. 성문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ㄴ’,’ㄷ’자형 등으로 꺾인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덕분에 성문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화포나 공성기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될 수 있으며 성문으로 도달하는 동안 방향을 틀어야하는 공격군은 전방과 좌우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총탄으로 부터 몸을 숨길 곳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성문을 보호하듯이 성문 전면에 반원형으로 옹성을 친 형태(동대문)가 일부 있긴 하지만 일본의 성처럼 보편적인 설계방식은 아닌듯 하다.

.

.

.

2008kyushyu 025

구마모토성 안에서는 축성 400백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었다. 위 사진은 더운 날씨에 구마모토성의 마스코트 분장을 하고 고생 중인 어느 녀석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는 진행자인데 일본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대략 ‘구마모토성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요?’였다. 답은 당연히 가토 기요마사였고 곁다리 답안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거론되었다.

.

.

.

2008kyushyu 027

구마모토성의 가장 핵심부인 혼마루 쪽은 입장료를 지불해야했다. 500엔이었나. 상당히 저렴한 편인 우리나라 문화재 입장료 기준으로 봤을 때 제법 비싼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성 안엔 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

.

.

2008kyushyu 029

구마모토성의 중심, 일본식 성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텐슈가쿠(天守閣). 엄청난 높이의 기단부 석축 위에 우뚝 솟아있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3대 성(城) 중 하나로 꼽힐만큼 그 규모와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실제 2004년 오사카성을 찾았을 때 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 때는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초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인지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인지도.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정말 진리인듯.

.

.

.

2008kyushyu 034

사실 이 웅장한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화가 나기도했다. 우리나라를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가토는 자신의 영지에서 이처럼 웅장하고 강한 성을 짓고 부귀영화를 누렸단 말인가. 안타까운(?) 점은 이 웅장한 모습도 원형이 아닌 콘크리트로 지어진 복원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구모모토성은 19세기 세이난(西南)전쟁에서 많은 건물이 불타 사라졌다. 실제 일본 관광 안내서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고 멋진 목조건물들은 대부분 애초의 모습이 아니라 복원된 것들이 많은데 특히 2차 대전 당시 미공군 B-29 폭격기에 연일 융단 폭격 당했던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의 주요 도시에 있던 유적들이 특히 그렇다. (교토는 미군의 폭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

.

.

2008kyushyu 034-1

재미있는 유적, 구마모토성 안에 있는 우물이다. 안내판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농성(籠城)에 대비해 구마모토성 안에 우물을 120여 곳이나 팠다고 적혀 있었다. 이 많은 우물이 바로 성 입구에서 봤던 ‘수많은 실전 경험을 살려’ 성을 건축했다고 한 부분 중 하나인데 일본 녀석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생략하고 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처럼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 우물을 파게 된 계기는 바로 정유재란 당시의 울산성 전투였다.

.

당시 사로병진책의 일환으로 조명연합군은 울산성의 가토 기요마사, 사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 순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육군이 공격하고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순천성 외곽을 차단하여 함포 사격을 가하며 공격을 지원하는 한편 고니시의 탈출을 가로 막았다.

.

이중 가토가 주둔하고 있던 울산성의 상황이 왜군 입장에서는 가장 절망적이었는데 성을 완전히 포위한 조,명 연합군은 치열한 공격을 퍼부어댔다. 성안에 고립된 가토의 군사들은 갈수로 인해 처절한 경험을 해야했고 밤에 물을 뜨러 태화강으로 내려오는 왜군들은 조명 연합군의 매복에 걸려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럼에도 가토 기요마사는 악귀처럼 성을 지켜냈고 역시 가토의 군사들이 주둔하던 서생포성에서 원군들이 태화강 하구로 밀려오며 결국 조명연합군은 막대한 인명피해만 내며 퇴각하고 만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울산성의 왜군들은 물이 없어 말을 잡아 피를 마시고 소변을 받아 마시기도 했으며 식량이 떨어진 후 성벽의 흙을 긁어 먹을 정도로 처절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심지어 가토는 할복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가 구마모토로 돌아와 성 안에 우물을 120여개나 팠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144904242065_20151203

울산성 전투도. 울산성은 지금의 학성공원이다. 성곽의 흔적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

.

.

2008kyushyu 037

천수각으로 들어가는 바로 입구 쪽도 만만치 않은 경사의 성벽과 굽이굽이 계단과 통로로 성 내부에 진입한 적들이라 해도 본부격인 천수각을 침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

.

2008kyushyu 037-1

천수각으로 들어가는 입구. 2004년에 갔던 오사카성과 달리 구마모토성의 천수각은 내부 개방이 되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내부는 애초 60년대 복원 당시 부터 박물관 형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란 측면에서는 다소 불만족스럽지만 건물의 유지와 보수, 활용성 측면에선 합리적인 선택인 듯 했다. 저 문양은 가토 가문에서 쓰인 것 같았다. 가토의 투구는 물론 그릇 같은 생활 용품에도 빠지지 않는다.

.

.

.

2008kyushyu 039

그 놈의 우물은 천수각 안에도 또 있었다. 정말 울산성에서 고생 많이 한 듯.

.

.

.

2008kyushyu 046

문제의 주인공,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초상. 이순신 영정이나 다 똑같이 생긴듯한 논개, 춘향이 영정 그림 처럼 상상의 그림이 아닌 당시에 직접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德이 느껴지는 상은 절대 아니다. 눈빛에선 냉정함과 교활함이 보이는 듯도 하고 감히 마주 보지 못할 강한 포스도 느껴진다. 일본에서 이처럼 그림이 남겨진 이들은 당시에 권력이 있던 이들이고 당연히 대부분 무사계급이었으므로 우리 선비들의 상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달리 험상궂고 거칠고 냉정한 인상들이 많은 것 같다.

.

.

.

2008kyushyu 058

‘기요마사公의 생애’라는 전시코너 쪽엔 태어날 때의 일화부터 동네의 분쟁을 해결하는 대범함과 판단력을 보여준 성장기의 가토의 모습 등을 다루고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는 분명 일본의 영웅 중 하나로 추앙받는 듯 했다. 특히 군사 뿐 아니라 건축, 토목 등 다양한 방면에 재주가 많아 오늘날 구마모토현의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지로 부임하는 가토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묘사된 뱃머리에 서서 붉은 갑옷을 입고 서있는 가토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이다.

.

.

.

2008kyushyu 051

바로 이 투구가 위의 그림에 나오는 긴 형태의 투구. 가토 기요마사가 직접 썼던 바로 그 투구라고 한다. 다른 장수들의 투구와 달리 전투에 적합한 형태는 아니지만 가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좋은 독특한 모양이다. 가토가 저걸 쓰고 조선에도 왔었을거란 생각이 드니 400여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

.

.

2008kyushyu 075

천수각 꼭대기 층에 가까워 올 수록 전시물의 내용은 구마모토성이 불탔던 세이난(西南)전쟁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다. 사쓰마 군이 맹공을 펼치고 있고 구마모토성에서 군사들이 농성하고 있는 그림이다. 아쉽게도 세이난 전쟁에 대한 사전 지식은 거의 없었다. 관련 내용은 더 공부해봐야 할 듯.

.

.

.

2008kyushyu 083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줄을 지어 겨우 올라간 천수각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천수각은 구마모토시 전체를 거의 조망할 수 있는 사령탑이다.

.

.

.

2008kyushyu 085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까마득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황룡사 9층 목탑이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몽골군에 의해 불타지 않았어도 숭유억불 정책의 조선에서 무엄하게 높은 그런 건물이 살아남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

.

.

2008kyushyu 090

힘들게 올라간 천수각을 내려와 전 날 편의점에서 사둔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충 떼우고 성을 빠져나와 다시 걸어걸어 구마모토역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날 의외로 빡쎈 왕복 도보 이동경로와 천수각 내부에서의 지체현상에서 체력소모가 커 후쿠오카로 돌아가서 들르기로 계획했던 후쿠오카 타워와 후쿠오카돔은근처에도 못가고 호텔에 뻗어 있었다. 그렇지만 최우선 순위로 잡혀있던 구마모토성을 봤기에 그 정도쯤은 생략해도 별로 아깝지 않았다. 이번 구마모토성을 찾음으로써 가토가 지은 성 3곳이나 답사한 셈이 됐다. 가토가 조선에 장기 주둔하며 지었던 울산성과 서생포왜성, 그리고 이번 구마모토성까지.

.

.

가토 기요마사라는 한 인물도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처럼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수천년을 마주해온 우리는 또 앞으로 그렇게 일본과 손도 잡고 싸우기도 할 것이다. 구마모토성을 빠져 나오면서도 내 머리속에는 일본과 가토 기요마사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

.

 

2008년 5월 규슈 구마모토

Canon A700 (허접 똑딱이 ㄷㄷ)

 

올해 마지막 고추 따던 날

171007 Rollei35se 400TX 02-1

 

 

 

171007 Rollei35se 400TX 05-1

 

 

 

171007 Rollei35se 400TX 06-1

 

 

 

171007 Rollei35se 400TX 07-1

 

 

 

171007 Rollei35se 400TX 09-1

 

 

 

171007 Rollei35se 400TX 11-1

 

 

 

171007 Rollei35se 400TX 13-1

 

 

 

171007 Rollei35se 400TX 14-1

 

 

 

171007 Rollei35se 400TX 15-1

 

 

 

171007 Rollei35se 400TX 16-1

 

 

 

171007 Rollei35se 400TX 18-1

 

 

 

171007 Rollei35se 400TX 19-1

 

2017.10.07. 청송

처가에서 올해 마지막 고추 따던 날의 기록.

일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카메라를 꺼내드는 사위를 보고 우리 장모님은 ‘우서방 거 사진은 자꾸 찍어서 어디나 쓰나?’ 라고 물으셨고 나는 ‘언젠가 다 쓰일 날이 있을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모님은 ‘그런게 다 쓸데가 있나?’ 하며 피식 웃으시곤 다시 바삐 손을 움직이셨다. 내가 송도 사진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신 후로는 ‘우리 사위가 그냥 재미로 찍는 수준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시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 사진들이 쓰일 곳이 있으랴. 거창한 사진전이나 사진집은 아닐지라도 우리 가족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이 날 찍은 사진들을 와이프에게 보여주며 얘기했다.

‘나중에 보면 눈물날거야.’

Rollei 35SE / Kodak 400TX / IVED

 

2009년 12월, 송도

사실 창고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서재’라고 부르고 싶은 내 방 책꽂이 한 켠에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수백롤의 필름이 차곡차곡 담겨져 있는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필름들을 보다 못한 와이프가 넣어준 것들이다. 내 저것들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텐데 하며 가끔 노려보기도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만다.

‘에이, 나중에 하자.’

그러다 지난 금요일밤 괜히 한번 상자를 열어봤다. 마구잡이로 섞인 필름들을 천장의 형광등에 비추어보며 간만에 추억에 젖다가 송도 해수욕장을 촬영한 필름 하나를 발견했다. 36컷을 모두 살펴봐도 그 필름에서 기억나는 이미지는 단 한 컷도 없었다. 메모조차 해두지 않아 언제 찍은 건지도 알 수 없는 필름 속 이미지들은 전혀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빠듯한 용돈 사정으로 인해 인화지 한 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굳이 ‘불필요한’ 밀착 인화는 생략했고 확대 인화 역시 한 롤에서 고르고 고른 몇 컷 외에는 하지 않았다. 이 버릇은 나중에도 그대로 이어져 스캔할 때도 한 롤 전체를 긁지 않고 네가티브를 비추어 보고 괜찮다 싶은 몇 컷만 추려 스캔을 해왔기에 네가티브를 보다가 새롭게 눈에 띄는 컷이 있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롤에서 한 컷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 건 단 한 컷도 스캔하지 않은채 쳐박힌 필름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 필름은 왜 버림받았을까? 일단 한롤을 채로 긁어보기로 했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04-1.jpg

송도의 뒷골목 입구에서 부터 내 발걸음은 시작되고 있었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08-1.jpg

모래사장의 유실로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송도 해변의 회생을 포기하고 해안 도로가 건설되던 때의 막바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산책로는 거의 다 되었고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던 시점이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09-1.jpg

지금 평화의 여신상이 있는 광장 해안 축대 옆의 테트라포드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12-1.jpg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산책로에는 아직 모래가 많이 남아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아이들이 두꺼운 차림에 장갑까지 끼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추운 날이었나보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13-1.jpg

우리의 기억은 이미지와 글에 얼마나 의존적인가. 21미리로 강아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찍었을 정도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현상 후 스캔조차 하지 않았던 탓에 이날 촬영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27-1.jpg

송도 해변 일주도로 건설을 맡았던 청구 건설의 현장 사무소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14-1.jpg

송도 해변 방파제 위에는 허름하고 어설픈 포장마차촌이 있었다. 송도 해수욕장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도 사라졌다. 당연히 무허가 불법이었을테고 태풍이라도 오는 날엔 위험하기 그지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쉽기도 하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16-1.jpg

동남아의 수상가옥 마냥 방파제 한 귀퉁에 의지하여 바다 위에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들. 자리에 앉으면 판자로 만든 바닥과 천막 틈 사이로 파도가 출렁였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며 회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고 모래사장에 세워둔 차에서 눈을 붙히고 아침에 바로 출근했던 날도 있었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18-1.jpg

천막을 뒤집어 씌웠던 철골과 계단의 녹물이 방파제 바닥 곳곳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 기억난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20-1.jpg

배에서 내린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는 손길들. 포장마차가 사라진 지금, 더이상 배들은 이 곳에 접안하지 않는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22-1.jpg

방파제 왼쪽의 풍경. 송도 해변과 포항 구항이 멀리 보인다. 늘상 보는 장면이라 새롭지 않지만 이곳이 동해안에 몇 없는 지형인 영일만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19-1.jpg

다소 과다현상이 되어 콘트라스트가 강한 네가티브가 되었다. 암부가 많이 죽었음이 느껴진다만 평소 사진의 톤에 비해 칼칼한 것이 또 나쁘지 않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24-1.jpg

방파제에서 굿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가, 요즘은 송도에서 굿하는 장면을 거의 보지 못했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30-1.jpg

변해버린 방파제 위 풍경과 달리 송도의 퇴락한 뒷골목은 이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골목 사이를 누비면서 정적인 사진에 동감을 불어 넣고자 누군가 지나가기를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래본들 무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겠나 싶다. 부질없다.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33-1.jpg

앙상한 나뭇가지가 낡은 하얀 벽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흑백인데도 차갑고 투명한 겨울 공기가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려오는 걸 보니 늙은 듯 ㄷㄷ

 

 

 

091226 ContaxIIa Biogon21mm 400TX 06-1.jpg

이 사진 덕분에 이 필름이 언제 찍은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8년전의 블로그 포스팅에는 Nikon D700으로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이 날 찍은 파일은 모두 지워 버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찍은 사진도 맘에 안들고 앞으로 어떤 사진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유와 함께. 아마 그래서 이 날 찍은 필름도 스캔조차 하지 않고 던져뒀던 듯 싶다.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날 느꼈던 회의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뭘 찍어야 하고 뭘 표현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찍어야 하는가. 아니 그런 것에 답은 있는가. 답을 찾을 필요는 또 있는 것인가. 여전히 머리 속은 복잡하지만 이렇게 출토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사진들이라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지니 기록으로라도 가치가 있겠다 싶으니 그건 또 다행이라 해야하나. 아직도 모르겠다.

 

 

2009.12.26. 포항 송도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Kodak 400TX / IVED

Nippon Kogaku의 Topogon : W-Nikkor 2.5cm f4.0

 

거침없이 달리시는 만수동생님 덕분에 관심있던 렌즈를 빌려 써보게 됐다.

54년에 발매된 W-Nikkor 2.5cm f4.0이 그 주인공. 환갑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어마무시한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녀석이다. 원래는 Zeiss Ikon의 Contax와 같은 형태의 니콘 S마운트로 발매되었지만 라이카에서도 사용가능한 M39(LTM) 마운트로도 발매되었다.

 

 

DSCF2484.JPG

Nippon Kogaku W-Nikkor 2.5cm f4.0 (LTM버전)

 

오늘날 기준으로 25mm라는 화각은 다소 낯설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초광각에 해당하는 것이라 사진가들의 환호를 받았으리라. 이 렌즈에 대한 매니아층은 오늘날도 제법 두터운데 그 이유는 우수한 성능도 성능이지만 특이한 구조에 기인한다.

 

NikkorRF25mm4.jpg

보다시피 이 렌즈는 4군 4매 구성된 완벽한 좌우대칭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극단적인 좌우 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 렌즈에서 왜곡을 비롯한 각종 수차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마치 구슬과도 같은 렌즈 알을 보고 있자면 영롱한 매력에 빠져드는데 이같은 설계의 원조는 사실 Carl Zeiss의 Topogon이었다.

 

 

topogon2.jpg

요것이 오리지날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화각부터 최대개방값까지 똑같다. 50년대 니폰 코가쿠,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은 독일 메이커들의 설계를 다분히 참고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한편 그들의 성능을 뛰어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뭐 하나라도 개선된 점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했던지라 오리지날 Topogon이 거리계와 연동되지 않는 목측식이었던 것에 반해 W-Nikkor 2.5cm는 거리계 연동이 가능하게 출시되었다. (캐논의 25mm f3.5는 최대 개방값도 아주 조금 더 밝아졌다.)

 

 

DSCF2485.JPG

코팅 역시 당대 독일 렌즈들보다 두터워 보이는데 역시나 역광에서 버티는 능력도 제법 준수하다.

 

 

DSCF2486.JPG

Topogon 타입임을 증명하듯 렌즈알이 반구형으로 볼록하게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DSCF2482.JPG

뒷면에서는 더욱 그 형태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구슬을 하나 박아넣은 듯한 모양이라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DSCF2487.JPG

다만 Topogon 타입은 급격하게 꺾인 렌즈 끝단의 곡률로 인해 주변부의 화질이 많이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는데 이때문에 최대 개방시에도 조리개는 완전히 다 열리지 않게 설계함으로써 그 문제를 최대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에서도 최대 개방에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는 비네팅이 제법 발생하며 개방시에는 더욱 심해진다. 반면 오리지날의 위엄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지 칼 자이즈의 Topogon은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면서도 W-Nikkor에 비해 비네팅이 적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이다.

 

 

DSCF2488.JPG

거리계의 단위는 FEET로만 적혀있고 라이카 스크류 렌즈들과 같은 형태의 무한대 잠금 장치를 가지고 있다. 크롬 코팅이나 레터링 각인의 수준은 훌륭하다. 코팅된 렌즈임을 표기해주는 빨간색 “C”마킹도 적당한 시각적 포인트가 되어준다. Carl Zeiss 렌즈들의 “T”마킹을 보는 듯 하다.

 

 

DSCF2494.JPG

필터 구경은 상당히 특이한 34.5mm로 오늘날 해당하는 사이즈의 필터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중앙카메라 수리실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었다. 앞으로 애매한 사이즈의 필터는 비싸게 구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부탁드려 만드는 것이 더 좋을 듯.

 

 

DSCF2495.JPG

얇은 필터링에다가 광택도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되어 제짝인 듯 잘 어울린다.

 

 

DSCF2493.JPG

단단하고 야무진 렌즈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이라 좀 깬다만 올드 렌즈에서 일반적인 금속제 슬립온 방식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클립온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앞캡.

 

 

DSCF2478.JPG

바디와의 매칭. 슬림한 경통에 짧은 길이의 컴팩트한 렌즈로 바르낙 바디에 제법 잘 어울린다. 25미리 파인더가 없어서 일단 Voigtlander 28mm 파인더로..ㄷ

많은 롤을 찍어보지 못해 렌즈의 특성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니콘은 니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는 물론 장단이 존재하는데 흔히 니콘 렌즈의 특성으로 평가받는 높은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는 이미 이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칼라 색감 역시 화사하고 예쁜 쪽은 아니지만 Topogon타입의 특징에 기인하는 강한 비네팅 효과와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쭉쭉 뻗는 시원시원함은 렌즈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준다.

 

 

B/W Neagtive : Kodak 400TX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03-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04-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06-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11-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15-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1-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2-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4-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9-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30-1

 

 

11

 

 

12

 

 

13

 

 

Positive : Fujifilm RVP 100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03-1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07-1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15-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2-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9-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3-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5-1

 

 

끝으로 귀한 렌즈 빌려주신 만수동생님과 렌즈 뒷캡으로 IIIf를 보내준 Qunaj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보다 훌륭한 리뷰를 보려면

Qunaj님의 ‘W-NIKKOR C 2.5cm 1:4 LTM

Goliathus님의 ‘[Nikon]W-Nikkor 2.5cm F4

Jupiter-12 35mm – Biogon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 전쟁의 종말

 

1945년 04월 30일 베를린.

일체의 정규 방송이 모두 중지된 베를린 라디오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신들의 황혼’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소련군에 맞서 절망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소련군을 저지하는 동안 보다 많은 민간인들과 패잔병들이 미,영 연합군이 있는 엘베강 너머로 투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미없는 ‘현진지 사수’와 같은 명령보다 더욱 절박한 이유였다.

이미 와해돼버려 존재하지도 않는 사단들을 가지고 ‘이리 보내라, 저리 보내라’ 심지어 역습을 가해 공세로 전환하라고 미친듯이 지시하던 히틀러도 더이상 무의미한 작전 지휘를 그만두었고 벙커 속은 침묵만이 흘렀다. 그는 이 날 발터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고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은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었다. 소련은 베를린 함락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고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그에 걸맞는 장소였다. 죽기를 각오한 독일군 수비대 6천여명이 이에 맞섰고 치열한 교전끝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소련군은 국회의사당을 점령할 수 있었다. 날이 밝고 국회의사당에 소련 국기가 걸렸다. 노동절을 맞아 가장 극적인 승리의 장면을 묘사하고 싶던 스탈린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1945년 05월 02일. 베를린을 수비하던 독일군은 항복을 선언했다.

.

.

Flaggenhissung 2. Mai 1945, Reichstag Berlin

.

.

.

■ 독일에서의 달콤한 전리품들

 

전쟁 중에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비록 손을 잡았지만 애초부터 미국,영국과 소련은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패튼은 소련을 의식하는 아이젠하워의 조심스런 전략에 불만이 많았고 ‘그렇게 소련이 무서우면 이대로 전차군단을 계속 몰아 모스크바까지 점령해버리면 될 것 아니냐.’는 막말을 걸핏하면 내뱉었을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미,영 폭격기들이 학살 수준의 공습을 가했던 드레스덴 폭격은 진격하는 소련군의 전방에 가해지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영이 보유한 무시무시한 공군력을 소련에게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은 전쟁이 끝난 후 재무장한 독일군을 앞세워 미,영이 쳐들어올까 두려워했고 서방은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진영 확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냉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가까워 올 수록 양측은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해야했고 독일의 군사 기술은 승전국들이 노리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Me262 제트전투기와 V1, V2 로켓은 특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미처 실전 배치되지 못하거나 연구,개발 과정에 있었던 다양한 무기들의 자료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승전국들은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소련이 탐을 낸 것이 더 있었으니 바로 세계 최고의 독일 광학 기술이었다.

.

.

.

■ Zeiss Ikon을 내놔라.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Zeiss Ikon의 생산 설비와 기술을 요구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부담해야했던 가혹한 전쟁 배상금의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참전국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은 소련 입장에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소련군 점령지에 속한 예나와 드레스덴의 Zeiss Ikon 공장 설비들이 열차에 실려 소련으로 옮겨진다. Contax와 교환렌즈의 생산 라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생산할 엔지니어와 숙련공들도 함께였다.

.

.

419084976a5a4

패전과 함께 생산이 중지되고 소련으로 생산 설비가 옮겨진 Contax II. Biogon 35mm가 장착되어 있다.

 

그렇게 옮겨진 설비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Krasnogorsk와 우크라이나의 Kiev 등지의 공장에 설치되어 국산화 과정을 거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당대 최고의 카메라와 렌즈를 생산할 수 있게된 것이었다. 그리고 Zeiss Ikon에서 획득한 광학 기술을 통해 조준경, 잠망경, 정찰용 카메라 등 군사용 광학 장비의 성능 향상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

.

■ Soviet’s Carl Zeiss – Jupiter의 탄생

 

Kiev에서 Contax II/III의 카피 모델이 생산되면서 Krasnogorsk에서는 Contax용 렌즈들을 카피하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독일에서 가져온 칼 자이즈의 부품 재고를 이용해 조립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이 시기의 제품들은 칼 자이즈 오리지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다 독일에서 가져온 부품들이 모두 소진된 1950년 이후부터는 유리알을 비롯한 모든 부품이 국산화되며 100% 소련제로 본격 대량 생산이 시작된다. 이처럼 칼 자이즈에서 원설계하고 소련에서 재생산한 렌즈들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혀지게 된다. 바로 Jupiter였다.

로마 신화에서 최고의 신으로 여겨지는 Jupiter는 승리의 주피터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집정권들이 취임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참배하는 대상이었고 로마의 스타틀 신전은 로물루스가 주피터에게 기원한 후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대가로 얻어낸 렌즈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은 Jupiter 시리즈의 본격 출시에 나서면서 오리지날인 Contax 베이요닛 마운트와 함께 LTM버전도 병행하여 생산했는데 자국의 Zorki나 Fed 카메라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는 소련의 자체적인 재설계로 볼 수는 없고 전쟁 기간 중 Carl Zeiss에서 아주 극소량으로 생산했던 LTM버전 렌즈들을 자국의 필요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Carl Zeiss에서 자사의 Contax용이 아닌 경쟁사인 Leica에 맞는 LTM버전의 렌즈들을 만들어 낸 것에는 사연이 있다. 전쟁 기간 중 드레스덴의 Contax 제조 시설이 폭격을 맞아 생산이 중단되자 Carl Zeiss는 렌즈를 생산해도 함께 판매할 카메라의 공급이 끊어져 버렸고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경쟁기종이던 라이카에 사용할 수 있는 LTM버전 렌즈들을 잠시 생산했던 것이다.

오늘날 전쟁 기간 중 생산된 오리지날 Carl Zeiss LTM버전 렌즈들은 극히 귀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물건이라 현실적으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Jupiter LTM 버전 렌즈들은 Carl Zeiss가 설계한 올드 렌즈들을 가볍게 즐겨보고 싶은 라이카 유저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

.

zLTM_5xb

Carl Zeiss에서 생산된 LTM버전 렌즈들. 소련은 이 중 5종류를 Jupiter라인으로 생산하게 되는데 Jupiter-3, 8, 9, 11, 12가 그것인데 순서대로 각각 Sonnar 50mm f1.5, Sonnar 50mm f2.0, Sonnar 85mm f2.0, Sonnar 135mm f4.0, 그리고 Biogon 35mm f2.8이었다.

.

.

.

■ Jupiter-12에 대한 재인식

.

6717604335_59d24b628e_b

Jupiter-12 35mm f2.8 (for Contax/Kiev)

.

.

5종류의 Jupiter렌즈 중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렌즈는 단연 Jupiter-12가 아닐까 싶다. RF에서 가장 대중적인 35미리 화각이라는 점, 명성이 자자하던 비오곤의 카피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1950년대 당시 자국에서 생산된 세계 최고 수준의 35미리 렌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소련의 사진가들은 얼마나 흥분되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늘날의 처지는 그저 ‘싼맛’에 쓸만한 그냥 그런 렌즈일 뿐, 애정을 갖고 대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들이 대세가 되면서 이종교배용으로 알음알음 유저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기는 하나,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개인적으로 Biogon 타입에 대해 애정이 많아 그 영혼이 담긴 Jupiter-12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번 리뷰를 통해 조금 자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Jupiter-12의 넘버링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은 화각 순으로 번호가 진행되는데 반해 Jupiter-12는 35mm임에도 왜 맨 마지막인 12번을 얻게 되었을까? (쓸데없는 의문..ㄷㄷ) 나름의 논리로 추론해본 결과는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이 모두 Sonnar타입이니 Biogon타입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 주려다가 ‘그냥 얘도 주피터로 해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거나, 아니면 제조가 까다로운 탓에 가장 늦게 재설계가 이루어졌던 탓에 가장 늦게 번호를 부여받았던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Biogon이 원래 Sonnar 설계에서 파생된 형식이니 소련에서 Jupiter라는 이름을 붙힌 것 자체가 광학설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12번이라는 가장 늦은 번호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 넘어가자. ㄷㄷ)

.

.

.

■ Sonnar에서 Biogon으로 다시 Juputer-12까지

.

BIOGON

위 자료를 보면 Sonnar부터 Biogon, 그리고 Jupiter-12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Sonnar에서 파생된 Biogon 35mm는 전쟁 후 서독의 Zeiss Opton Biogon 35mm와 소련의 Jupiter-12로 나뉘어지게 된다. 서독의 비오곤은 새롭게 개발된 Contax IIa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비오곤의 상징과도 같았던 엄청나게 큰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백포커스가 조금 길어지는 여유있는 설계를 택하게 되는 반면 Jupiter-12는 오리지날 비오곤의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아 여전히 큰 후옥과 짧은 백포커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Jupiter-12는 전전형 비오곤과 같은 설계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는데 위 그림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설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Jupiter-12는 렌즈 구성이 Biogon의 4군 7매에서 4군 6매로 간략화 되었고 각매의 렌즈알 크기나 곡률도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소련제 렌즈알에 따라 최적화 설계를 다시해낸 것인지 원가절감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혹은 소련에 끌려간 독일 기술진에 의해 보다 향상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설계가 이뤄진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일본에서는 Jupiter-12를 전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 Opton Biogon보다 높게 친다고 하니 성능의 저하도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호들갑스런 일본애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겠지만 또 걔들만큼 집요한 애들도 없기에…)

.

DSCF2598-1

입사부보다 훨씬 큰 후옥과 필름면 가까이 들어오는 짧은 백포커스를 가진 Jupiter-12, Biogon의 설계가 충실히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리지날인 Contax용은 아답터를 이용해도 라이카 바디에서 사용할 수 없었는데 소련에서 LTM버전을 대량으로 생산해준 탓에 라이카에서도 Biogon 설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

DSCF2583-1

Carl Zeiss Sonnar나 Biogon에는 일명 ‘자이즈 버블’이라는 기포가 한두개씩 흔히 발견되는데 Jupiter-12 역시 이러한 기포가 발견된다. 화질에 영향은 전혀 없기에 구매시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고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오리지날 칼 자이즈와 유사한 재료를 이용해 동일 제조 공법으로 생산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발가락도 닮은 셈.

.

.

.

■ Jupiter-12의 세대별 구분

.

0_12a5e0_15fcb911_XXL

Contax II의 카피 Kiev II와 Biogon 35mm의 카피 Jupiter-12. 위 사진과 같은 50년대 Kiev는 오리지날 Contax II와 거의 같아 거래가격이 제법 높다.

.

.

Jupiter-12는 1950년부터 90년대까지 무려 40여년에 걸쳐 생산될 정도로 생산 기간이 긴데다 2개의 제조사(KMZ, LZOS)에서 생산되었던 탓에 자잘한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이베이에 떠있는 수많은 매물 중 어느 것을 구해야할지 구매자들은 난감해 지곤 하는데, 사실 뭐 열심히 공부해서 족보를 꾀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는 렌즈는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리뷰이니 이참에 한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우선 마운트에 따라 Contax/Kiev용과 LTM 버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마운트만 다를 뿐이니 사실상 같은 렌즈로 보는 것이 맞겠고 이번 리뷰에서는 LTM버전에 한정하여 생산 시기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

.

1. KMZ제조 BK (Biogon-Krasnogorsk) : 1947~50년

.

DSCF2585-1

Jupiter라는 이름이 붙기 전의 최초기 버전이다. KMZ에서 오리지날 자이즈의 부품과 유리알을 사용해 조립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외관상으로도 오리지날 비오곤 LTM버전과 거의 동일하다. 이중 47~48년에 생산된 PT0805 버전은 100%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49~50년의 PT0810은 100% 혹은 부분적으로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관상 이를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으며 시리얼넘버가 00으로 나가는 것은 PT0805, 49 혹은 50으로 시작하는 년도가 앞에 붙으면 PT0810이라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본격 양산형이라기 보단 Jupiter-12를 생산하기에 앞서 이루어진 과도기적인 시기의 렌즈라 자료가 명확하지 않고 생산 수량도 적어 오늘날 구하기가 쉽지 않다.

위 사진의 왼쪽이 50년에 생산된 이른바 BK렌즈이며 우측이 55년에 생산된 Jupiter-12다. 내가 가진 BK는 각인은 BK이지만 경통의 형태가 Jupiter-12와 거의 같고 최초기형임에도 렌즈의 코팅이 더 두터워보여 각인을 조작한 짝퉁이 아닌가 의심도 들지만, 그렇게 해봐야 이게 100만원짜리가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괜히 이런거 구하려고 애쓰지 마시라;;

.

.

2. KMZ 생산 Jupiter-12 (1950~60년대 초)

.

DSCF2589-1

두번째는 50년부터 생산된 버전으로 이때부터 비로소 Jupiter-12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렌즈에는 엷은 블루톤의 코팅이 되어 있는데 전쟁 전 자이즈의 T코팅과 아주 유사한 느낌이다. 코팅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붉은 색 ‘n’ 마킹이 찍혀있는데 이는 키릴어로 ‘P’에 해당한다. 이 마킹은 BK부터 60년대 초반 생산 렌즈에만 존재하는데 칼 자이즈의 빨간색 ‘T’코팅 표기와 같이 검정과 흰색 뿐인 밋밋한 렌즈 전면부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되어주어 예쁘다. 그래서인지 이베이에서도 매물 설명에 굳이 ‘Red P’를 강조하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KMZ생산 버전은 PT0815와 PT0820으로 나뉘는데 PT0815는 앞선 BK와 마찬가지로 경통의 형태가 오리지날 비오곤과 유사한 형태로 1950-52년 사이 적은 수량이 생산되어 오늘날 매우 드물고 흔히 보이는 버전은 PT0820으로서 경통이 다소 길어지고 지름이 조금 늘었다. 이 시기의 생산 제품들은 소련 공산품 수준이 막장이 되기 전이라 가장 만듦새가 좋고 품질 관리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가장 인기가 높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래봤자 200불 미만이지만..

.

.

3. LZOS 생산 Jupiter-12 (1950년대 말 ~ 90년대)

.

R0031075.JPG

세번째는 LZOS 생산 버전이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초반에 걸쳐 Jupiter-12는 KMZ와 LZOS 양쪽에서 병행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62년쯤 부터는 LZOS에서만 생산되게 된다. 이때부터 빨간색 ‘n’코팅 마킹이 사라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뭐 그게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고 오래된 렌즈니만치 관리 잘된 개체면 크게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

PT0825, 0833, 0835 등에 해당하는 버전으로 KMZ 생산 시절과 비교해 외관상 달라진 부분은 거의 없고 코팅이 다소 진해지고 키릴어로 표기되었던 Jupiter 표기가 수출을 염두에 둔 듯 영문으로 바뀌기도 했다. 71년부터는 크롬 버전을 대신해 검정 페인트로 마감된 버전(PT0835)이 생산되게 된다. (물론 블랙 페인트라고 해서 라이카의 멋진 도장 상태 따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위 사진의 렌즈는 91년 시리얼 블랙 페인트 버전인데 코팅이 두터워져 제일 바깥 쪽 렌즈에는 노란색이 선명하고 안쪽은 분홍, 보라, 주황 등 코팅색이 아주 유치찬란하고 요란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역광에서의 성능은 앞선 버전들에 비해 더욱 좋아졌다고 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생산된 탓에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은 물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50년대 시리얼에 비해 가격이 낮아 가장 가성비가 높은 버전이기도 하다. 지인 한 분이 얼마전 이 버전의 렌즈를 블랙 페인트 Leica III에 마운트하여 가지고 오신걸 보았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

IMG_6228

지인의 Leica III와 88년 시리얼 Jupiter-12

.

대략 이렇게 크게 세가지로 분류를 해보았지만 막상 이베이에서 만나는 물건들은 천차만별의 상태와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60년 시리얼인데도 붉은 색 ‘n’마킹이 없는 경우도 있고 조리개 수치 폰트나 눈금선의 형태도 제각각이고 세대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인 경우도 많다. 이래서 소련제의 진정한 문제는 광학적 성능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QC라는 말이 나왔나 싶기도 하다.

각 세대에 속하는 다양한 타입들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 가보시면 되겠다.

http://www.sovietcams.com/index.php?-736220353

.

.

.

■ Juputer-12의 성능

그렇다면 이 렌즈의 성능은 어떨까. 태생 자체가 Carl Zeiss Biogon 35mm이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Carl Zeiss Biogon 35mm는 당시로서 놀라운 해상도로 유명했고 f2.8이라는 밝은 개방값을 가지고도 수차를 효과적으로 억제한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렌즈였다. (같은 시기 라이츠의 Elmar 3.5cm와 비교해보라 ㄷㄷ) 그런 Biogon의 설계를 이어받았다는 점이 오늘날까지도 애호가들이 Jupiter-12에 관심을 가지는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화면 중앙부는 최대 개방에서도 제법 높은 해상도를 보여주며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f8.0~11 정도에서 최대 해상도에 도달한다. 비네팅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며 약간의 실패형 왜곡을 보인다. 주변부 빛망울의 흐려짐은 쐐기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Sonnar와도 유사하다. 초기형부터 모두 코팅이 적용되어있어 역광에 버티는 능력도 괜찮으며 색감과 콘트라스트는 과하지 않고 중립적이다.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무척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데 한눈에 느껴지는 확실한 개성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실 올드 렌즈의 개성이라는 부분은 제어되지 못한 각종 수차와 비네팅, 떨어지는 해상도 등이 어울어진 이른바 ‘병신력’에서 기인하기 마련인데 그런 결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Biogon, 그리고 Jupiter-12를 보면 당시 칼 자이즈의 렌즈 설계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알 수 있다.

.

.

.

■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Build Quality

사실 Jupiter를 구입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빌드 퀄리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다고 한들 모양도 예뻐야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후기형으로 갈수록 레터링 각인의 수준도 떨어지고 경통 표면은 부식되거나 때가 잔뜩 끼어 지저분한 경우도 많다. 가격이 싸다 보니 돈들여 오버홀하는 이들도 드물어 윤활유는 떡져 포커스링을 돌리는 느낌도 싼티가 철철 넘치기 십상이다. 소련도 나름 할말은 있다. 못생긴 디자인은 애초에 칼 자이즈의 LTM버전이 그렇게 생겨먹었고 전쟁 중에 생산된 것들이라 고급스럽고 화려한 크롬 코팅이 아닌 알루미늄 혹은 두랄루민으로 제작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 Jupier-12였기에 ‘소련제라서 그렇다’라는 평가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

$_57.jpg

오리지날도 요따구로 생겼다. -_-

.

위와 같은 이유에 더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서 오는 불신(주피터가 좋아봤자지..), 그리고 ‘소련제’라는 편견 때문에 비싸고 고급진 카메라(라이카?)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눈에 찰리가 없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던 주변 지인 몇분이 나의 권유에 못이겨 Jupiter-12를 구입하셨는데 몇롤을 찍어보시고는 렌즈 성능에 모두들 놀라 예찬론자가 되셨다. 개인 취향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Jupiter-12 때문에 Summaron 3.5cm f3.5를 내친 분도 계시고 80불 짜리 렌즈가 아니라 800불 정도의 가치는 하는 렌즈라고 평가하신 분도 계시다. 그 중 한분이 못생긴 외모를 빗대어 ‘양동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고 그 이후 우리는 양동이 만쉐이를 외치고 다니고 있다. 정말 비싸봐야 20만원도 안하는 가격으로 이 정도 성능의 35미리 f2.8이라니. 이건 사실 거저라고 봐야한다. (요즘 Summaron 35mm f2.8 LTM버전 구하려면 100만원 이상을 줘야한다).

.

.

.

■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Juputer-12

Jupiter-12는 1950년부터 무려 40여년간 생산되었다. 자본주의 진영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소련에서는 가능했다. 경쟁이 사라진 경제 체제에서 굳이 더 좋은 렌즈를 개발해야할 동기가 충분할리가 없었다. 물론 그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을 만큼 Biogon의 탄탄한 기본 설계을 이어받은 Jupiter-12의 성능이 우수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오리지날인 Carl Zeiss Biogon 35mm는 서독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60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지만 Contax IIa의 단종과 함께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후 카메라 시장의 대세는 SLR이 되었고 퀵 리턴 미러가 자리잡은 공간에 Biogon처럼 필름면 가까이 들어가는 광각렌즈는 들어갈 수 없었다.

비록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철의 장막 속으로 들어간 Biogon은 Jupiter-12로 다시 태어나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Jupiter-12는 단순히 ‘소련제 짝퉁 비오곤’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렌즈로 평가해줘야 함이 더 옳지 않을까?

.

.

DSCF2602-1.jpg

Jupiter-12 35mm f2.8 (1950~1990’s)

Elements/Gropus : 6/4
Number of Aperture Blades : 5
Close Focus Distance : 1m
Filter Diameter : 40.5mm
Weight : 130g
Mount : Contax Bayonet or LTM

.

.

.

■ 작례

 

1. B/W Negative (Kodak TMY & 400TX)

.

170306 LeicaIIIa Jupiter35mm TMY 14-1

.

.

170306 LeicaIIIa Jupiter35mm TMY 15-1

.

.

170407 LeicaM6 Jupiter35mm 400TX 13-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08-1.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09-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18-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19-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20-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22-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31-1

.

.

.

2. Colar Negative (Kodak Color Plus 200)

.

4

.

.

1

.

.

3

.

.

2-1

.

.

4-1

.

.

.

3. Positive (Fujifilm RDPIII)

.

5

.

.

6

.

.

7

.

.

8

.

.

9

.

.

끝.

 

두물머리

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옆에서 자고 있는 와이프와 딸냄이 깰라 얼른 알람을 끄고 이불 밖으로 기어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동생도 부시시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 있다. 얼굴에 물만 바르고 카메라를 챙겨 차에 올랐다. 여름이라 벌써 밖이 환하다. 지금 가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나기엔 늦었겠다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강바람 맞으며 잠시 유유자적하면 될것인데. 상관없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13-1

30여분을 달려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역시나 새벽부터 부지런함을 떤 수많은 사진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팔당호를 지나며 보니 물안개가 제법 피었던 것 같은데 저들은 늦잠을 포기한 보람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 같다. 다 늦은 시간 도착해 삼각대도 없이 허접해보이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혀를 찼을 이도 있었으리라. ‘난 꼭 사진찍으러 온게 아니라니깐.’ 괜히 속으로 변명해본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16-1

사실 저들처럼 나도 두물머리를 자주 찾은 적이 있었다. 회기역 뒷편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은 물안개가 피어올라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사실 잘 찍어봐야 달력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그 땐 그래도 그 한 컷을 건지고 싶었다. 일교차가 큰 늦가을, 초겨울에 주로 찾아야 했던 탓에 강가의 새벽 한기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고, 심지어 두물머리에 가면 서 있는 커다른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쪽잠을 자며 밤을 샌 적도 있었지만 한번도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  두물머리 출사는 고생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2-1

해가 이미 높다. 작정하고 사진을 찍으러 왔으면 역시 더 일찍 왔어야겠다. 예쁜 풍경 사진, 이른바 달력 사진은 전형적인 아마추어들의 몫이지만 어쨌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 또한 쉽지 않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3-1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로 구성된 동호회 회원들은 이제 철수를 시작했다. 저마다 최신의 DSLR에 짓조 삼각대 따위를 갖추고 있었다. 같은 위치에서 우루루 모여서 셔터를 눌러댔으니 얼마나 다른 컷들이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기대를 안고 메모리 카드를 PC에 꽂아 오늘의 수확물을 확인하며 즐거워 하리라. 저 모임 안에서도 이른바 사진을 제일 잘 찍는다는 에이스가 있을거고 좋은 장비를 많이 가져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있겠지. 고만고만한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누가 더 잘 찍고 못 찍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역시 ‘이놈의 사진 찍어봤자 뭐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6-1

연배가 조금 지긋해보이는 분에게 셔터를 좀 눌러달라고 부탁드렸다. ‘하나~두울~ 셋!’ 셔터를 누르시고 나더니 버릇처럼 카메라 뒷면을 보신다. ‘아 이거 필름 카메라네요? 라이카네.’ 내 니콘 D700은 제습함에 들어가 나오지 못한지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세상의 주류는 역시 디지털인갑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0-1

여전히 나 하고 싶은건 하겠다며 돈지랄인 필름 사진질을 놓지 않고 있는 나와 달리 직장 생활과 육아에 지친 동생은 이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대학교 다닐 땐 이 곳에서 찍은 슬라이드 컷으로 학교 동아리 전시회에 걸기도 했던 동생이지만 이제는 핸드폰으로나 두물머리의 풍경을 찍고 있다.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렇게 어른이, 가장이 되어가는건가 싶기도 하고 피곤에 찌든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늘 안쓰럽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15-1

동생은 3군 사령부 직할 통신대에서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선임들이 칼 같이 다려준 전투복을 입고 100일 휴가를 나와 할머니께 ‘선봉!’하고 경례를 붙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휴가 나올 때와 달리 복귀 때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않을 정도로 의기소침했던 동생은 부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아직 복귀 시간이 남았다며 들어가기 싫어했다. 돌아갈 길이 먼 부모님과 나는 그냥 일찍 들어 가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복귀 시간까지 더 있어줬고 그래서 시간을 떼우러 들른 곳이 이 곳 두물머리였다. 동생의 중대는 이 근방이었다.

.

.

.

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7-1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고 주변엔 까페도 많이 생겼다. 땅값도 제법 올랐을텐데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개발이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낡은 빈집은 그대로 남아있다. 변하지 않은 건 한강 뿐인가.

.

.

.

두물머리는 그동안 찾은 횟수에 비해 건진 사진이 그리 없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법 많은 추억이 쌓여진 곳이었다. 이제 예전처럼 여기에 오면서 뭔가 ‘작품’을 건져야겠다는 욕심은 들지 않지만 서울에 오게되면 동생과 드라이브 삼아 찾고 싶은 곳은 여전히 두물머리긴 하다.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는 사실이 소스라치게 놀랍지만, 동생이 막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출장 길에 서울에 들른 나는 늦은 밤에 문득 두물머리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지금 가보지 뭐.’ 라며 동생은 차를 돌렸다. 아버지께서 물려준 구형 SM520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중형차라 하기에 실내 공간도 좁고 인테리어도 올드했지만 전형적인 세단처럼 생긴 디자인이 멋졌고 탄탄한 서스펜션의 주행감각도 나름 좋았다. (게다가 수동 미션이었다) 동생이 운전하는 그 SM520을 타고 음악을 크게 틀고 하늘만큼 캄캄한 한강을 거슬러 두물머리로 향하던 그 날 밤이 문득 그립다.

.

.

.

2017.06.04. 양평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Topogon의 영혼 / Orion-15 28mm f6.0

▶ Orion하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

012315a38b894a4890b591fa79b43b4f_hzvUWnPSILqr24ACTqADY.png

쵸코파이, 포카칩, 고래밥, 오감자 따위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

.

P-3_Static_Images-1024x576

잠수함 잡는 대잠초계기 P-3C ORION이 생각난다면 당신은 밀덕!

.

오리온 자리.jpg

오리온 자리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천체나 신화에 관심이 많은 고상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

R0032290

하지만 이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면, 당신은 환자! ㄷ 환자들을 위한 오리온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한다.

.

.

.

▶ Made in U.S.S.R.

.

라이츠와 자이스이콘(칼 자이즈)이라는 막강 원투 펀치로 대표되는 독일 업계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당시 여러 나라의 여러 군소업체들은 그 나름의 방식대로 수많은 카메라와 렌즈를 생산하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당시의 제품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거래되고 있는 것들은 소수에 불과한데 그 중에서 소련제 카메라와 렌즈들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로 남아 있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당시에 제대로 된 카메라와 렌즈를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았다. 비록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보유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괜찮은 성능의 제품을 대량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게다가 라이카와 콘탁스를 카피한 제품들을 출시했기에 구하기 어렵고 가격이 비싼 올드 라이카와 콘탁스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오늘날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중에는 독일제 카피가 아닌 독자적인 설계로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비오곤과 슈퍼 앵글론에 앞서 등장한 Russar 20mm가 그러하고 오늘 리뷰하려는 Orion-15 28mm 역시 손에 꼽을 수 있는 렌즈라 하겠다.

.

.

.

▶ Orion-15 28mm f6.0 : 소비에트 Topogon의 등장

.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하고 동부전선의 소련군이 독일군을 점차 서쪽으로 밀어내고 있던 1944년. Orion-15라는 새로운 28미리 렌즈의 프로토 타입이 등장했다. 온 국토가 그야말로 초토화된 소련에서 정신없는 전쟁의 와중에도 새로운 민수용 렌즈가 연구 개발되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은 이 렌즈의 특이한 설계 방식때문이었다. Orion-15는 Carl Zeiss가 선보였던 4군 4매 좌우대칭의 Topogon 설계를 따르고 있었다.

.

.

orion-15 1951 proto typeorion-15 1952

Orion-15 28mm f/6.0의 설계도

.

렌즈의 설계는 결국 수차와의 싸움인데 다양한 수차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매수의 렌즈를 투입해 보정해야 하지만 코팅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렌즈 매수의 증가는 결국 투과율 저하로 인한 해상도, 콘트라스트의 저하와 내부 난반사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고 결국 최소한의 렌즈로서 최대한 수차를 억제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Tessar나 Elmar같은 3군 4매의 단순한 렌즈들이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를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Topogon은 정확한 좌우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렌즈에서의 왜곡 수차를 극도로 억제할 수 있었고 4군 4매라는 적은 렌즈 매수 덕분에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렌즈의 높은 곡률로 인해 구슬과도 같은 렌즈알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자칫 주변부의 해상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기 쉬웠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한 구성에 비해 생산이 쉽지 않았던 것인지 Topogon타입을 개발한 Carl Zeiss조차 Topogon 25mm f4.0를 대량으로 생산해내지는 못했다.

.

topogon.jpg

본가의 전설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f/4.0

.

그럼에도 1944년에 소련에서 이러한 Topogon 설계를 적용한 Orion-15를 개발했다는 점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Topogon의 본가 Carl Zeiss와 달리 소련의 광학 기술에는 한계가 느껴지는데 Orion-15가 비록 Topogon 설계를 따랐다고는 하나 렌즈의 단면도를 보면 날렵하고 얇게 만들어낸 오리지날 Topogon과 달리 상당히 두툼하고 곡률도 낮음을 알 수 있다.

.

13.gif

단면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주변부의 성능도 본가의 명성에는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화각이 다르긴 하지만 Carl Zeiss의 Topogon은 25mm에 f4.0을 달성한 반면 Orion-15은 28mm에 f6.0에 머물고 있다. 물론 당시 Carl Zeiss의 Tessar 28mm가 f8.0, Leitz의 Hektor 28mm도 f6.3에 불과했으니 Orion-15의 f6.0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이 6.0이란 개방수치는 소련제 토포곤의 한계로 인한 것이었는데.

.

.

.

▶ 완전히 열리지 않는 조리개의 진실

.

553efa58.jpg

Orion-15를 살펴보면 최대개방 상태에서도 조리개가 모두 열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한참이나 더 열릴 것 같은데 f6.0이 최대 개방으로 멈춰지게 만들어져 있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일부 환자분들께서 직접 개조를 해본 결과 f2.8 정도에 해당하는 값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강제로 개방값을 확장했을 경우 사실상 중앙부를 제외하곤 쓸 수 없는 수준의 화질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Topogon 구조의 특성상 주변부 화질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고 앞서 언급하였는데 Orion-15를 개조해 완전히 개방해보면 그 같은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대 개방에서의 화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기에 ‘의미없는’ 최대개방값은 포기하고 ‘사용가능한 수준’의 최대개방치에 맞춘 것이 f6.0이었던 것이다. f4.0에서도 조리개가 거의 다 열리는 Carl Zeiss의 Topogon과의 기술 격차를 엿보게 해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어쨌든 이 같은 선택으로 결론적으로 렌즈 설계의 결점이 감춰질 수 있었고 원래 6.0부터라 생각하고 사용하면 전혀 문제는 없는 부분이긴 하다(응?). 이미 충분히 조여진 상태를 최대 개방으로 ‘표기’하다 보니 1스탑만 조여도 최대 해상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는 장점도 있고 최대개방시에도 비네팅이나 주변부 화질 저하가 적다. (뭔가 크롭바디에 풀프레임 렌즈를 꽂은 느낌이..)

그러나 Topogon타입에서 이런 꼼수(?)를 쓴 것은 Orion-15 뿐은 아니었다. 50년대에 Topogon타입에 매력을 느낀 니폰고가쿠와 캐논도 이런 렌즈를 출시하게 되는데 이들은 보다 Carl Zeiss Topogon 설계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화각도 동일한 25mm로 출시하기에 이른다.

.

NikkorRF25mm4

니폰고가쿠의 W-Nikkor 2.5cm f4.0은 렌즈 단면도에서부터 오리지날 Topogon의 향기가 강하게 난다. 같은 25mm 화각에 최대 개방값도 f4.0으로 동일하다.

.

DSCF2487.JPG

(Lee S.K.님의 W-Nikkor 2.5cm f4.0 LTM)

.

하지만 이 렌즈 역시 최대 개방시에 조리개가 살짝 덜 열린다. 물리적으로는 f3.5 이하의 개방값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W-Nikkor도 f4.0에서 멈췄다. 당시 독일 렌즈보다 더 밝게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일본 기술진들이 토포곤을 뛰어넘자고 덤볐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역시 f4.0으로 리밋을 걸어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c-Canon-25mm-F-35-Lens-for-Leica-Screw

Canon에서도 Topogon 타입 25mm f3.5를 출시했다. 니폰고가쿠와 달리 칼자이즈보다 조금 더 밝은 개방값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역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는 않는다. 사실 이 렌즈는 Topogon타입의 변형인데 완벽한 좌우대칭 4군 4매가 아니라 후면의 2매가 조금 더 크고 아주 특이하게도 맨 뒤에 평면유리가 자리하고 있다. 저 평면유리의 역할이 무척 궁금했는데 Goliathus님의 실험에 따르면 저 렌즈를 빼고 촬영하면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고.. 어쨌든 이 렌즈는 순수한 Topogon 타입으로 보긴 어렵겠지만 그리 많지 않은 형식이니 끼워주기로 한다.

.

IMG_5535.JPG

오리지날의 위엄.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f4.0의 경우 짝퉁(?)들과 달리 최대개방에서도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quanj님 제공)

.

.

.

▶ Orion-15 의 두가지 타입, Contax Mount & M39 Mount

.

orion 2

Orion-15 브로셔

.

Orion-15는 프로토타입이 등장할 1944년 당시 콘탁스용 베이요닛 마운트로 설계되었다. 소련이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을 본격 양산하게 되는 시기는 1948~9년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나와 드레스덴의 칼자이즈와 자이스이콘 콘탁스 생산 라인을 뜯어간 후 부터인데, 따라서 Orion-15를 개발할 당시 소련제 카메라 중 콘탁스 마운트를 적용한 제품이 없었음에도 왜 굳이 콘탁스용 마운트로 설계했던 것인지 다소 의아하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소련에서 콘탁스 마운트로 제작한 첫번째 렌즈가 Orion-15일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현재 콘탁스 마운트 버전 Orion-15 매물은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운데, 오늘날 콘탁스 유저가 극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

orion-15 1944.png

Orion-15 프로토 타입(1944)

.

1951년에는 드디어 M39(LTM) 마운트 버전이 출시된다. 이로써 자국의 조르키나 페드에서도 Orion-15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서방세계로 수출도 이루어졌다. 물론 당시엔 Summaron 28mm f5.6이 등장하던 시기라 듣보잡 못난이 Orion-15 따위가 고급진 라이카 유저들의 눈에 찰리는 없었겠지만 Orion-15의 출현으로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비싸기만한 주마론의 가격 대비 20% 미만의 비용을 지불하고도 바르낙에서 28미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ORION-15 28mmF6(L)_19.jpg

Orion-15 28mm f6.0(LTM)

.

.

.

▶ Carl Zeiss Jena Tessar 2.8cm와의 관계는?

.

Orion-15의 두가지 버전(Contax용과 LTM용)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꽤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두가지 모두 Carl Zeiss Jena Tessar 2.8cm의 외관과 꼭 닮았다는 점이다. Carl Zeiss Jena Tessar 2.8cm는 세계 최초의 28미리 렌즈로서의 영혼과 상징성을 갖는 렌즈인데 Contax 마운트로만 제작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LTM 버전도 생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2차대전 중 칼 자이즈는 콘탁스용 교환렌즈들을 LTM 버전으로 생산하기도 했는데 그 중 Tessar 2.8cm는 관련 자료나 사진을 거의 보질 못해서 존재를 몰랐다. 이베이에서 출현한 매물과 가뭄에 콩 나듯 검색에 걸리는 몇몇 사진들을 검토해본 결과 짝퉁이나 개조 버전은 아닌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각각의 버전 사진을 보자.

.

p1160168_600

Carl Zeiss Tessar 2.8cm f8.0 (for Contax)

.

Carl Zeiss Tessar 2.8cm f8.0 (LTM)

.

글을 위아래로 왔다갔다 비교해보면 Orion과 Tessar는 정말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에서 Fed 28mm를 개발할 때는 Leitz Hektor 28mm를 카피했고 Orion-15를 개발할 때는 Carl Zeiss Tessar 2.8cm를 카피했던게 아닐까. 외관은 거의 그대로 베낀반면 렌즈 구성은 3군 4매의 테사 형식에서 4군 4매 토포곤 형식으로 변경됐다. 아마 좀 더 밝고 왜곡이 적은 설계를 적용하려 했던 것이리라. 어쨌든 LTM 버전 Tessar 2.8cm의 존재를 확인하고 났을 때 비로소 Orion-15의 헤어진 엄마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네가 그냥 못생긴게 아니었고 근본있는 못생김이었구나!’ (결국 소련 잘못이 아니라 독일애들이 잘못한거였.. ㄷ)

.

.

.

▶ Topogon의 영혼을 이어간 Orion-15

.

50년대 이후로는 렌즈 제작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서 수차를 보정하기 위한 보다 많은 매수의 유리가 들어가고도 코팅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며 더이상 제조가 까다롭고 밝은 개방값을 갖는데 한계가 있는 Topogon 타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Topogon의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지만 광학적 성능의 발전과는 별개로 구슬같이 아름다운 Topogon 타입에 대한 매니아들의 호기심과 열정은 유별나, 몇 안되는 종류의 Topogon 타입 렌즈들은 여전히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고 물건도 귀해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그런 반면 1944년 프로토타입이 처음 등장한 이후 1978년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된 Orion-15는 화석이 될뻔한 Topogon의 생명력을 유지해준 최후의 계승자가 되었다. 생산 기간이 길었던 만큼 여전히 많은 개체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LTM용 28미리에 절대 강자가 없는 현실에서 200불 내외에 구입할 수 있는 Orion-15는 Topogon 타입을 즐겨보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상당히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Orion-15가 이렇게 오랜 기간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꼭 성능의 우수함이나 소비자들의 선호에 기인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시장에서의 경쟁이 사라진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에 더 큰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긴 생산 기간에도 불구하고 성능상의 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피터 계열 렌즈들은 후기형으로 갈수록 그나마 코팅이라도 두터워지는데 반해 Orion-15는 초기형과 별반 다르지 않은 블루 계열의 싱글 코팅이 계속해서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불편한 조리개 조절 방식과 어두운 개방값도 그대로였고 못생긴 외형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이 렌즈가 주마론처럼 예뻤다면 지금 중고가격이 저렇게 싸진 않겠지만)

orion-15_topogon

KMZ에서 ZOMZ로 제조사가 바뀌면서 렌즈 형태가 다소 바뀌긴 했다.

.

이처럼 발전이 더뎠던 탓에 후기형의 메리트는 크지 않아 대부분의 소련제 렌즈들이 그러하듯 Orion-15 역시 50년대~60년대 초반까지의 제품들이 인기가 높다. 비교적 품질 관리가 우수했으리란 믿음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그런 이유보다는 KMZ 생산 60년대 초반 제품까지만 붉은 색 ‘n’코팅 마킹이 있어서 보기에 더 예쁘기 때문이다. (칼 자이즈 렌즈의 T코팅 표기와 같은 느낌) 이왕이면 영혼이 느껴지는 50~60년대초반 개체를 구하고 싶었으나 Jupiter-12와 달리 Orion-15는 이 시기의 매물이 많지 않고 있다해도 상태가 좋은 것이 드문 편이었다.

.

p.jpg

이왕이면 영혼있는 ‘n’마킹이 있는 걸로..

.

.

.

▶ 영혼가득 볼매 Orion-15

.

Orion-15는 사실 보고 만지는 재미가 쏠쏠한 렌즈는 아니다. 개체수도 많은 편이라 소장가치가 높은 것도 아니고 알루미늄 경통은 표면이 부식되거나 때를 타 지저분한 물건이 많고 디자인도 단순 무식하기 짝이 없다. 냉장고를 뜯어서 만들었다는 우스갯 소리가 괜한 것이 아닐 정도로 못생긴 외모에 경악하곤 한다. 게다가 소련제 저질 윤활유로 인해 초점링의 조작감도 고급스럽지 못하다. 물론 윤활유야 수리실에 맡겨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10~20만원 정도 주고 산 싸구려 렌즈에 돈을 들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쓰다가 싫증나면 팔고 산 사람도 ‘소련제가 이렇지 뭐.’ 하면서 계속 그 상태로 돌고 도는 경우가 많으니 안타깝다.

그럼에도 이 렌즈에는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들고 나갔을 때 폼 나지도 않고 귀한 걸 갖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일도 없는 렌즈, 아니, 대부분의 이들이 ‘그런 렌즈도 있냐? 잘 나오냐?’ 정도의 약간의 호기심만 표현할 뿐 관심조차 사지 못하는 렌즈인데도 말이다.

못생긴 외모와 저렴한 가격은 이 렌즈를 객관적으로 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생긴게 못생겼으니 흥미를 갖지 않고 가격을 듣고는 ‘뭐 싸네. 사진은 그럭저럭 나오나보네.’ 정도의 반응을 넘어서는 사람도 많지 않다. 비록 못생겼어도 만약 이 렌즈가 오리지날 토포곤 처럼 비쌌다면 반응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비싼 렌즈를 좋다고 하기는 쉽지만 싼 렌즈를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꽤나 힘들구나 라는 걸 이번 리뷰를 쓰며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문과 출신이라 아는 것도 없고 객관적 테스트를 나열하며 리뷰를 쓰는 체질도 아니라 글로만 떼워 왔었는데 나 부터도 이번 리뷰는 그런 것들을 들먹이며 써야하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이거 정말 좋아요!’ ‘어 그래 안좋은 렌즈 있나.’ 이런 무미건조한 반응을 방지하려면 ‘오 그래요?’ 하는 리액션이 나올만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데이터가 나오는게 별로 없다. 그래서 결국 이번 리뷰도 이렇게 글로 떼우다가 끝내긴 하는데.

사실 사진을(카메라를?) 취미로 하면서 가성비만 찾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오리온이 싸고 좋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생각은 없다. 싸고 좋은 렌즈는 얼마든지 많으며 싸다고 해서 수십배에 달하는 가격의 라이카 렌즈와 비교해 그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싼 맛에 쉽게 살 수 있는 렌즈에 대한 호기심과 만족도는 금세 시들게 마련이다. 결국 소유에 따른 만족감은 렌즈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역사성, 그리고 적정수준의 희귀성, 즉 내가 늘 얘기하는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쿨럭, 렌즈에 무슨 영혼..) Topogon 형식이라는 이제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당대 최선의 설계로 만들어진 구슬과도 같은 앙증맞은 작은 렌즈알과 거기서 뽑아주는 왜곡 없는 시원한 이미지와 높은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만들어주는 칼칼한 느낌. 이만하면 내 기준엔 충분히 소유할 가치가 있다.

못생겼네 어쩌네 이 렌즈를 깔 필요도 없다. 기껏해야 민트급 Irooa 후드 하나 가격밖에 안하는 렌즈에 미학적 완벽을 바라는 것부터 과한 욕심이다. Topogon의 영혼을 지닌 Orion-15, 근래 써본 렌즈 중 가장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싸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매력이 넘치는 렌즈다. (믿어주세요) 28미리 화각, 그리고 Topogon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

orion_Large-e-mail-view.jpg

오리온 자리의 사진을 다시 보니 Orion-15의 이름이 괜히 오리온이 아니란 걸 알겠다. Topogon의 특징이 좌우대칭이란 점에서 착안한 이름임에 틀림 없으리라. 렌즈 구조의 특징을 별자리에 빗대어 이름을 정하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Summaron? 무슨 뜻임? ㄷ)

.

.

.

▶ 바디와의 장착 샷 (못생김 주의)

.

 

막상 바디와 매칭하면 미친듯이 못생기진 않았다.. -_-

.

.

.

▶ 작례

.

170301 LeicaM3 Orion15 HP5 17_36-1

.

.

170301 LeicaM3 Orion15 HP5 22_36-1

.

.

170301 LeicaM3 Orion15 HP5 34_36-1

.

.

170301 LeicaM3 Orion28mm 400TX 04_34-1

.

.

170301 LeicaM3 Orion28mm 400TX 15_34-1

.

.

170301 LeicaM3 Orion28mm 400TX 21_34-1

.

.

170301 LeicaM3 Orion28mm 400TX 22_34-1

.

.

170301 LeicaM3 Orion28mm 400TX 23_34-1

.

.

170301 LeicaM3 Orion28mm 400TX 24_34-1

.

.

170330 Leica IIIa Orion28mm HP5 01-1

.

.

170330 Leica IIIa Orion28mm HP5 15-1

.

.

170330 Leica IIIa Orion28mm HP5 20-1

.

.

170330 Leica IIIa Orion28mm HP5 25-1

.

.

170330 Leica IIIa Orion28mm HP5 27-1

.

.

01_170408 LeicaIIIa Orion28mm HP5 11-1

.

.

01_170408 LeicaIIIa Orion28mm HP5 14-1

.

.

01_170408 LeicaIIIa Orion28mm HP5 18-1

.

.

02_170409 LeicaIIIa Orion28mm HP5 07-1

.

.

02_170409 LeicaIIIa Orion28mm HP5 29-1

.

.

02_170409 LeicaIIIa Orion28mm HP5 31-1

.

.

02_170409 LeicaIIIa Orion28mm HP5 32-1

.

.

03_170409 LeicaIIIa Orion28mm HP5 06-1

.

.

03_170409 LeicaIIIa Orion28mm HP5 28-1

.

.

04_170410 LeicaIIIa Orion28mm HP5 08-1

.

.

04_170410 LeicaIIIa Orion28mm HP5 13-1

.

.

04_170410 LeicaIIIa Orion28mm HP5 19-1

.

.

05_170410 LeicaIIIa Orion28mm HP5 04-1

.

.

05_170410 LeicaIIIa Orion28mm HP5 14-1

.

.

오리온 만쉐이~!

 

Special Thanks to LEE T.Y.

 

 

※ 참고로 뒤적였던 자료들

https://en.wikipedia.org/wiki/Topogon

http://www.sovietcams.com/index.php?398258553

http://www.sovietcams.com/index.php?1740225226

http://www.marcocavina.com/articoli_fotografici/Soviet_and_wide_lenses_on_Leica_M/00_p.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