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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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빼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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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빼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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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빼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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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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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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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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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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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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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는 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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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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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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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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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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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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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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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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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따라 걷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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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보행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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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타는 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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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타는 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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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타는 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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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겨서 가는 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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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겨서 가는 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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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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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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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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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의 해를 맞이하여 개 사진들을 모아 봤습니다  🙂

 

광고

Nikon S3 Limited Editon Black (2002)

니콘빠도 몰랐던 니콘 RF카메라

 

15년도 넘게 지난 옛 기억이다. 남대문 어느 카메라 수리점에 선배 한명과 함께 들렀던 날이었다. 수리할 카메라를 맡겨두고 잠시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벽에 붙은 니콘 카메라 계보도(?)가 눈에 띄었다. 당시 나는 F3HP를, 선배는 F2AS를 쓰면서 니콘 수동 플래그쉽 모델을 쓴다는 부질없는 자부심에 으쓱거리며 니콘은 그래도 좀 ‘빠삭’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는데 거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처음보는 니콘 RF카메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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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맨 위에 있는 니콘 RF 카메라들에게 시선을 뺐겼었다.

 

 

‘야 저건 뭐지? 겁나 이쁘네.’

‘니콘에도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가 있었네요?’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라면 당연 라이카였지만 학생 신분에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가격이라 감히 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던 때였다. 당연히 RF카메라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지 않았기에 니콘에서도 그런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리가 없었다. 당시 스마트폰이 있길 했나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성능이었는지 그 자리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카메라 답게’ 생긴 그 멋진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눈을 못떼며 한참을 바라보다 수리점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요즘도 저런게 나오면 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요즘도 나오는’ 카메라였을 줄이야!

 

그 날 보았던 멋진 니콘 RF 카메라들은 50년대에 생산된 니콘의 S시리즈였다.

자이스이콘의 콘탁스를 다분히 참고하고 카피한 니콘은 S2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콘탁스를 따돌리기 시작한다. S2는 시원시원한 등배파인더에 50미리 프레임 라인을 지원했으며 와인딩 레버 및 리와인딩 크랭크 등을 적용하며 한결 현대적인 RF카메라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1957년에는 시차보정이 되는 6개 화각(28/35mm, 50/85/105/135mm)의 프레임을 지원하는 유니버셜 뷰파인더를 탑재한 S시리즈 끝판왕 SP를 출시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S3-and-SP

Nikon SP(上) & S3(下)

 

그리고 이듬해에는 복잡한 SP의 파인더를 간략화한 S3를 출시하기에 이르는데 35/50/105mm 프레임 라인이 등배 파인더에 모두 표시되는 방식으로 시차보정 기능도 생략된 모델이었다. 3개의 화각이 상시 표시되다 보니 파인더 내부가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28mm, 35mm 렌즈를 사용할 때 오른쪽 파인더에서 초점을 맞추고 왼쪽의 28/35 파인더로 눈을 옮겨야하는 SP에 비해 편리한 측면도 있고 가격도 보다 저렴해,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모델이었다. 바로 그 S3가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복각 생산 되었던 것이니, 그야말로 요즘도 나오는 카메라였던 것이다.

 

 

 

 

 

니콘의 낭만적인 프로젝트

 

90년대 초반부터 올드 모델 복각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가 니콘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가장 열의를 보인 곳은 Nikomat, F3, F4, FM2, FM3a 등 수동모델들의 생산을 주로 담당했던 미토 니콘(Mito Nikon)이었다. 1994년 봄, 미토 니콘은 진지하게 S시리즈 복각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번째 모델로 1958년에 생산된 Nikon S3가 잠정적으로 선정되게 된다. 저속/고속셔터가 분리되어 있고 50미리 프레임만 지원하는 S2는 다소 구식이었을테고 복잡한 유니버셜 뷰파인더를 가진 SP는 꽤 부담스러웠으리라. S3가 선정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토 니콘은 우선 S3 설계 도면을 입수하여 면밀한 검토를 시작하게 되는데 제대로된 복각 생산을 위해서는 새로운 제작 설비와 도구를 갖추는 등 많은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당연히 생산 단가를 상승하게 하는 요인이었고 아무리 한정판이라고 하더라도 납득이 갈만한 수준에서 가격을 책정하는데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토 니콘이 주저하고 있을 때, 마침 경기는 불황으로 접어들었고 1995년, S3 복각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된다.

 

 

 

 

 

다시 시작된 프로젝트

 

3년이 지난 1998년, 미토 니콘은 다시 한번 S3 복각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최초 검토 당시에 추정되었던 높은 생산 단가는 각개의 부품들을 다시 검토하고 생산 공정을 개선하면 상당 수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도 높아짐을 의미했다. 미토 니콘은 Nikon Photo Products Inc.(現 Nikon Imaging Japan Inc.) 측에 S3 복각 프로젝트의 매력과 의미를 강력하게 어필했고 결국 Nikon, Mito Nikon, Nikon Photo Products Inc., Tochigi Nikon 까지 총 4개사가 참여한 ‘S팀’이 구성되었다. 그렇게 야심찬 S3 복각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닻을 올리게 된다. 98년 12월이었다.

 

 

 

 

 

모든 것을 오리지널과 동일하게

 

S팀은 복각될 S3의 모든 부품과 품질 수준을 40년전 당시와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S3에 들어가는 부품의 수는 816개에 이르렀고 이를 완벽히 재현하는데는 엄청난 정성이 필요했다. 40년전의 도면을 면밀히 재해석하는 한편 역설계를 위해 중고샵에서 S3를 구입해 와 철저히 분석했다. 프레스 및 다이 캐스팅 설비까지 생산 시설을 새로 설계해야 했고 나사 모양, 표면의 질감, ​​페인트의 색상과 광택, 각인 두께와 깊이, 셔터 스피드 다이얼의 글자 색, 인조 가죽의 느낌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심지어 오리지널 S3의 상판 각인의 깊이 0.5mm를 맞추기 위해 이미 공급된 상판 중 절반 가량을 폐기하기까지 할 정도로 S팀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제작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여러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특히 콘탁스와 니콘 바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바디 오른쪽의 포커싱 기어의 재현은 생각보다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미세 피치 기어가 맞물리며 작동되는 복잡한 구조로 인해 마운트 부분 헬리코이드와 정밀하게 연동이 되지 않았고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야 완벽하게 작동되도록 조정될 수 있었다.

니콘내에서 S3 복각 모델은 M200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렸으며 M은 Mito Nikon을 의미했다. 니콘의 M200 개발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하고 있던 협력사들도 수익과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협력사 출신 고령의 엔지니어들 중 소수만이 S3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고 바디를 감싸고 있는 인조가죽의 샘플이 협력사에 남아있어 이를 바탕으로 동일한 질감을 재현할 수 있었던 점도 행운이었다. 니콘 S3의 복각은 엔지니어들의 공돌이 정신이 똘똘 뭉친 열정과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수작업으로 진행된 조립 공정

 

부품 생산이라는 큰 산을 극복하자 조립 공정이라는 또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옛 도면을 그대로 읽고 이해하여 조립할 수 있는 숙련공은 거의 없었고 체계적인 조립 절차에 대한 자료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토 니콘은 당시의 조립 방식을 최대한 현대적인 생산 공정에 맞추어 절차화하며 이를 극복해 나갔다. 40년전과 달리 수작업만으로 카메라를 제작해본 숙련공들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니콘에 남아있는 숙련공으로부터 관련한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고 6개월간의 교육을 거친 후 니콘 S3는 본격 조립되게 된다. 특히 섬세함이 요구되는 셔터막 조립은 여성 숙련공들이 전담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생산은 하루 한 대에 불과할 정도로 더디게 진행됐다. 거기다 부품 공급 지연 등 몇가지 이유로 제품 출하는 예정보다 2개월이나 지연되기도 했다. S3의 생산 속도는 같은 시기 생산되던 FM3a에 비해 6~10배 가까이 느렸지만 지속적인 노력 끝에 애초 목표였던 월 300대 생산을 초과하여 500대까지 생산이 가능케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세상에 다시 태어난 Nikon S3 Year 2000 Limited Edition (2000~2001)

 

니콘이기에 가능했던 이 멋진 프로젝트에 매니아들의 지지는 열렬했고 2000년 4월 6일부터 6월 30일까지 진행된 사전 예약에 504,000엔이라는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 수천명의 예약자가 몰리는 대성공을 기록했다. 완성된 S3는 ‘Nikon S3 Year 2000 Limited Edition’이란 이름으로 그해 10월부터 구매자들에게 인도되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2001년 10월까지 8천대의 S3가 생산되었다. 모두 실버 크롬 버전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열정적인 엔지니어들은 물론, 카메라를 보지도 못했음에도 기꺼이 예약했던 매니아들 모두에게 잊기 힘든 추억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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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형님이 소장하고 계신 Nikon S3 Year 2000 Limited Edition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 (2002)

 

그리고 2년후인 2002년, S3 블랙 페인트 버전이 새롭게 출시됐다. 블랙 페인트 카메라에 대한 매니아들의 사랑은 유별난데, 실버 크롬에 비해 도장 처리과정이 복잡한 탓에 S3는 5만엔 가량이 더 비싼 556,500엔에 판매 되었다. 생산대수도 훨씬 적어 실버 크롬 버전의 1/4 수준인 2,000대만이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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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자태의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 (2002)

 

 

Nikon S3 Olympic Model(?)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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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S3 Black Paint (1965)

 

구글이나 이베이를 검색하다 보면 1964년 도쿄 올림픽 모델이라고 하는 S3 오리지널 블랙페인트 모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니콘 공식 홈페이지에는 올림픽 기념으로 S3를 발매했다는 얘기가 없다. 정작 올림픽을 앞두고 재생산 된 모델은 SP였는데,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프레스와 잡지사 쪽을 중심으로한 재발매 요구에 응하여 S3가 아닌 SP를 한정 재생산되었던 것이다. (1959년 니콘은 SLR에 집중하기 위해 S시리즈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고 SP 재생산과 함께 사이즈가 더 커진 개선형 Nikkor-S 50mm f1.4가 출시된다. 그렇다면 올림픽 버전 S3의 정확한 정체는 무엇일까. 니콘 홈페이지에서는 1965년에 블랙 페인트 버전 S3가 생산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NIKON S3 재발매

쇼와 40년(1965년)의 니콘 S3 재발매를 알리는 신문기사

 

1965년 9월, 니콘은 S3 블랙 페인트 모델을 2,000대 한정으로 재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올림픽을 앞두고 출시됐던 개선형 Nikkor-S 50mm f1.4가 세트로 구성됐다. 구글에서는 이른바 올림픽 S3의 출시시기가 1962년부터 64년까지 다양하게 검색되는데 결론적으로 니콘 홈페이지의 내용과 위 신문기사가 일치하는 1965년이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올림픽과 비슷했던 생산시기, 올림픽 버전 50미리의 구성, 그리고 한정판, 거기에 프레스용 이미지가 느껴지는 블랙페인트 모델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올림픽 버전이라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엄밀히 말해 오리지널 S3 블랙페인트 모델을 올림픽 버전이라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올림픽이 끝난 후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사용될 프레스용이라 보기는 어려웠으며 이미 대세는 SLR이었기에 필드에서 험하게 사용될 기회도 적었다. 덕분에 상당수의 블랙 페인트 모델들은 콜렉터들의 손에 들어갔고 지금도 아주 상태가 양호한 것들을 이베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이는 Nikon S시리즈의 마지막 생산이었고 37년이 흐른 2002년, S3 복각 블랙페인트 모델은 65년 당시와 같은 2,000대만이 생산되게 된다.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 박스를 열어 보자

 

니콘 S3 복각 모델은 공식적으로 일본 내수 시장에서만 판매되었다. 실버 크롬 8천대, 블랙 페인트 2천대로 1만대나 생산되었으니 한정판치고는 생산량이 제법 많았던지라 적지 않은 물량이 알음알음 전 세계 매니아들 손으로 퍼져 나갔고 현재도 가격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이베이에서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도 모르긴 몰라도 S3 복각판이 제법 들어와 있을텐데 국내 블로그에서는 관련된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실버 크롬 버전은 가뭄에 콩 나듯 몇몇 포스팅을 찾을 수 있었으나 블랙 페인트 버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실제 유저들이 찍은 사진과 소감을 보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여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박스 개봉샷을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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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봐선 별로 특별함이 느껴지진 않는 니콘 특유의 황금색 박스. ‘NIKON S3 LIMITED EDITION BLACK’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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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열면 두개의 상자가 자리잡고 있다. 왼쪽에는 카메라, 오른쪽에는 전용 가죽 케이스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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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꺼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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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쪽 상자를 여니 상자가 안에 또 있다. 실버 크롬 버전은 흰 바탕이었던 것에 반해 블랙 페인트 버전은 검정색이 바탕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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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면 짠 하고 나올 줄 알았더니 또 다시 흰 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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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상자를 열자 드디어 블랙 페인트 니콘 S3의 모습이 나타났다. 니콘에서 보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패키지라 다소 낯설긴 하지만 역시나 한정판다운 느낌이다. Nikkor-S 50mm f1.4가 마운트되어 있고 전용 후드가 함께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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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의 렌즈캡은 플라스틱이었지만 복각 모델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니콘 S3 복각의 의미 중 하나는 오리지널에 비해 퇴보된 부분없이 작은 부분이나마 개선하려고 했던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다. 단, 아쉽게도 뒷캡과 43mm UV필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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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캡을 열었더니 황홀한 코팅색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렌즈는 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생산되었던 개선형 Nikkor-S 50mm f1.4와 같은 모양으로 40년전의 광학 설계에 현대적인 멀티 코팅이 더해진 독특한 케이스가 되었다.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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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엔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다. 바디를 감싸고 있는 인조가죽은 협력사에 샘플이 남아 있어 오리지널과 같은 느낌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M4 이전 라이카 바디들은 요즘은 생산되지 않는 볼커나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재료로 수리할 수 없는 것과 달리 무척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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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판을 열어봤더니 셔터막 위에 보호종이가 딱! ㄷㄷ 왠지 건드리면 안될거 같고 사용하면 안될거 같은 압박감이 엄습해온다. 문득 대학교 사진동아리 때 일화가 떠오른다. 한해 선배였던 누나가 신입생이었던 시절, 집에 안쓰는 카메라가 있더라며 동아리방에 달랑달랑 들고 갔었는데 그게 무려 니콘 F3HP였다고 한다. 너무나도 깨끗한 상태에 선배들이 놀라 ‘와 이런게 집에 그냥 있었다고? 완전 새거 같은데?!’ 하면서 뒷판을 열었는데 저 종이가 셔터막 위에 곱게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야, 이거 진짜로 새건데?!!’ 놀라운 광경이었으리라.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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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놀라운 종이를 치우면 이렇게 셔터막이 보인다. S3, SP 오리지널 모델의 셔터막은 천 재질의 초기형과 티타늄 재질의 후기형으로 나뉘는데 복각 모델은 모두 초기형과 같은 천 재질로 되어있다. 셔터 작동의 부드러움과 정숙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잘 조정된 라이카 M3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유저들이 호평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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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를 살펴 봤으니 전용 케이스를 꺼내 봤다. 니콘 글씨 역시 옛 폰트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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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가죽에 굵은 실밥, 다소 투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척 튼튼해 보인다. 귀한 녀석이니 옷을 입혀서 곱게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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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꺼내 후드까지 끼워봤다. 라이카가 아름답다면 니콘은 역시 멋지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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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으로 살펴보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다. 내 것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렌즈의 레터링이 지워진 것이 제법 보인다. 수십년된 독일제 렌즈들, 아니 같은 일제 렌즈들에서도 그리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한정판으로 만들어진, 그것도 15년 밖에(?) 안된 렌즈에서 이런 헛점을 발견하니 다소 허탈하다. 니콘의 S3, SP 복각 프로젝트는 진짜 공업 예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칭송 해주려다가 여기서 김이 좀 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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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한편 스트랩 고리 위에는 보호 테잎을 꼼꼼히 붙여주었다. (이런건 내가 해도 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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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종이 쪼가리들. S3와 SP 복각 모델은 공식적으로 일본 내수용으로만 발매되었기 때문에 매뉴얼도 일본어만 적혀 있다. 뭐 굳이 읽어볼 것도 없는 내용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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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도 오리지널과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S3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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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내게 지인의 오리지널 S3가 와있는지라 복각 모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1. 시리얼넘버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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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은 63으로 시작하며 복각은 시리얼넘버 앞에 S3라는 모델명이 붙는다. 2000년의 실버크롬 버전은 S3 20XXXX, 2002년의 블랙페인트 버전은 S3 30XXXX로 구분된다.

 

 

 

2. 와인딩 레버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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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딩 레버의 형태도 조금 다른데 복각은 끝단의 경계면이 직각에 가깝게 떨어지는 반면, 오리지널의 완만한 경사를 보인다. 이거야 뭐 별로 안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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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각은 꽉 차있는 통쇠고 오리지널은 프레스로 찍어낸 속이 빈 형태임을 알 수 있다. SP, S3 후기형의 경우는 복각 모델처럼 통쇠의 형태로 개선됐다고 하는데 정확히 확인은 못해봤다. 어쨌든 오리지널의 저 텅빈 와인딩 레버는 대리석 타일이 붙지 않은 건물의 뒷면을 보는 듯한 실망스런 느낌이다. 다행히 복각 모델은 이를 개선해두었다. 물론 그렇다고 복각 모델의 와인딩 레버가 월등히 좋은 조작감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가득찬 쪽이 좋아 보인다.

형태의 문제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니콘 RF 모델들에게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 와인딩 레버인데, 바디 자체는 튼튼하고 남성적인 기계적 느낌이 물씬 나는데 반해 와인딩 레버는 유독 연약해 보이기 그지 없다. 바디에 비해 좀 작지 않나 느껴지는 외관상의 불균형은 둘째로 하고 상하의 유격이 있어 까딱까딱 움직이는데 이 같은 허술한 만듦새는 라이카 M3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3. 하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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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의 하판, 감도 표시 다이얼의 기준이 ASA로 되어 있고 빨간색과 흰색으로 레터링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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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각모델은 감도 표시 다이얼의 기준이 ISO로 바뀌어져 있고 오리지널 모델엔 없는 MADE IN JAPAN 각인이 추가되어 있다. 단, 1965년의 S3 블랙 페인트모델에는 동일한 제조국 각인이 있다.

 

 

 

4. 그 외

 

렌즈 마운트 부에 거리 단위가 ft에서 m로 바뀌었다. (S3 후기형에는 m단위로 표기된 모델들도 있다.) 필름 카운터에 함께 있는 필름 컷수 셀렉터가 20컷/36컷에서 24컷/36컷으로 바뀌었고 스트랩 고리의 재질이 니켈 도금된 황동에서 크롬 도금 스테인레스로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복각 S3는 사소한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오리지날의 그것을 아주 충실히 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농이냐 필드냐

 

개봉기용 사진을 찍고 S3는 다시 박스 속으로 고이 들어가 책장 높은 곳으로 올려졌다. 카메라는 물론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S3 복각 모델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 진짜로 이걸로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필름 한번 못 물려보고 10여년 째 장농 속에서 박제처럼 지내고 있는 복각 한정판들이 적지 않을터인데 나 역시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것이 과연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니콘 역사 속 빛나는 작품인지(놔두면 비싸지려나..흠흠) 아니면 실사용으로 열심히 써주는게 가장 멋진 것인지 결정이 쉽지는 않다. 발매 당시 공식 예약가에 비해 상당히 저렴해진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투자자(?)들에게 그리 쏠쏠한 재미를 주진 못한 것 같고, 니콘의 추억과 열정에 대해 기꺼이 값을 지불한 애호가들에게 뿌듯한 행복을 안겨준 카메라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깨끗할 때 증명사진은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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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이야기

하늘에 매화꽃이 날렸다.

‘응? 바람도 안부는데?’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이었다.

‘3월에 눈이라니…’

잔뜩 찌푸린 하늘 탓에 매화가 싱그럽게 담기지 않을 것 같아 불만이던 차에 눈까지 내리다니. 아무래도 날씨 좋았던 지난 주에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다시 밀려온다. 남자는 삼각대를 접었다.

다압면에서 섬진교를 건너 다시 하동읍으로 돌아온 남자는 눈을 피해 터미널로 들어왔다. 이 날씨에 어디를 가나. 그냥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몇개 적혀져 있지도 않은 행선지 시간표를 바라보던 중 마침 화개행 버스가 들어오길래 남자는 이내 올라탔다. 뿌옇게 김이 서린 차창을 손을 문질러 달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막막한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새학기가 시작됐고 학교는 활기가 넘쳤지만 남자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는 동기끼리의 신인전 전시회가 막 끝난 후였다. 남자는 최종 프린트를 담당하게 된 3명의 작화 위원 중 한명이었고 저녁 때 암실에 들어가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 반나절 동안 기절하는 생활을 몇주간 해왔던 터였다. 전시회 후 이어진 임원진 선거에서 남자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간발의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암실을 관리하고 후배들 기술 지도를 맡는 기술부장 자리를 남자는 몹시 하고 싶어했고 그럴만한 충분한 실력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종이 한장 차이도 나지 않을 그 어설픈 실력만이 전부가 아님을 남자는 선거가 끝나고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고 싶었다. 어제밤 청량리발 마지막 무궁화호에 오르자 마자 남자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두었다.

화개장터 앞에서 남자는 버스에서 내렸다. 평일 아침, 눈까지 내리는 궂은 날, 섬진강 동편의 19번 국도에는 돌아다니는 차조차 거의 없었다. 딱히 어디로 가야할지 떠오르진 않았지만 남자는 텅빈 도로의 중앙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남자의 어깨 위에 소복히 쌓여만 갔다. 거짓말처럼 온통 하얗게 변한 섬진강 일대에 오로지 남자만이 있는 것 같았다. 얇은 외투가 눈에 젖으며 남자는 추위를 느꼈다.

전시회는 막을 내렸고 임원진 선거는 이미 결론이 났지만 남자는 사실 하나를 더 결정해야 했다.

J는 애초에 동아리에서 그리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은 아니었다. 그런 J가 신인전 준비에는 열정을 쏟기 시작했고 암실 순번을 먼저 맡으려고 첫 차로 학교로 오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새벽부터 동아리방에 도착해 전기 난로를 쬐며 암실이 비길 기다리던 J와 암실에서 나온 남자는 자주 마주쳤고 퀭한 눈으로 동아리방 쇼파에 쓰러지는 남자를 J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곤 했다.

전시회 기간동안 닷징, 버닝 따위를 알려주거나 프린트의 톤을 봐주기도 하며 남자는 J와 조금 가까워졌다. 사실 남자에겐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활동이 별로 없었던 J와는 그런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남자는 약간 떨리는 듯한 J의 목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했고, 암실에 먼저 들어가려고 캄캄한 새벽에 첫차를 타고 학교로 오는 J의 모습을 보며 야무진 면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 익숙하지 않은 화장이었지만 파우더를 칠한 뽀얀 볼이 싱그러웠다.

왼편에 화개나루라고 써진 작은 간판이 보였다. 미끄러운 눈길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가자 줄을 잡고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다. 강 건너 광양 사람들이 화개장에 나올 때 이용하는 작은 나루였다. 소복히 눈이 쌓인 강건너의 모습은 오히려 솜이불을 덮은 듯 따뜻하고 또 아련했다. 눈 덮인 섬진강을 남자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에 젖지 않기 위해 가방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며칠전 농구를 하다 넘어져 다친 손바닥에 카메라가 닿자 찌릿했다. 생각보다 살이 깊이 패인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아 진물이 계속 나오고 있어 카메라를 잡기가 꽤 불편했다. 눈 덮인 섬진강과 강너머를 바라보며 세로로 두 컷을 찍었다. 제대로 파지가 되지 않아 약간 흔들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픈 손으로 차가운 삼각대를 펴기 싫었던 남자는 미련없이 나루를 떠났다.

꺼두었던 핸드폰은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꾸만 존재를 알렸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이던 남자는 전원을 켜보았다. 몇시간 동안 수신되지 않고 있던 문자 메시지 몇개가 동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J가 보낸 메시지들이었다.

남자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용택 –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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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섬진강 화개나루

 

역사가 있는 풍경 – 구마모토성과 가토 기요마사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토,일,월 황금연휴를 놓치지 않고 5월 2일(금)에 월차신공을 더해 3박 4일 일정으로 규슈(九州)로 향했다. 규슈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하우스텐보스나 유후인으로 향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흥미있는 곳이 아니었다. 규슈에 가게되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가토 기요마사의 성인 구마모토성이었다. 후쿠오카 역에서 쓰바메 특급을 타고 내린 구마모토역에서 구마모토 성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곳곳의 모습을 스냅으로 담으며 1시간 정도 후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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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은 마침 축성 40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동안 계절 단위로 나눈 축제가 계속되고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을 3월 중순 ~ 4월초였다면 더욱 끝내주는 풍경을 보여줬겠지만 그만큼 붐볐을 생각을 한다면 뭐 이 정도 시점도 나쁘지 않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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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구마모토성의 주인공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加藤淸正)의 동상이다. 일본 특유의 갑옷 형태와 무사계급들의 상징이던 두 자루의 칼, 가토가 즐겨썼다는 긴 형태의 특이한 투구와 원모양의 문양까지 조각되어 있는 섬세한 형태다. 수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이 동상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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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흔히 한자 발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많이 부르는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을 떠올릴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음가는 정도의 유명세(?)를 보유한 일본의 맹장이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의 많은 장수들 중 유독 가토 기요마사의 이미지가 강렬한 것은 동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하고 선조의 왕자들을 포로로 잡은 전공 외에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성안의 모든 사람과 가축까지 몰살시킨 잔인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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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에 한국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이 동상과 그 앞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을 보며 이들이 과연 이 녀석이 저지른 잔인한 학살극을 알기나 할런지 하는 생각이 들며 우리에게 원수와도 같은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에선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실이 못내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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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 동상 아래에 있던 영문 설명문. 그의 삶을 간단히 요약한 이 설명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한 언급만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의 패권을 놓고 동군과 서군이 대회전을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에 섰고 눈부신 전공을 세운 결과 이 곳 구마모토 일대에 영지를 하사받고 7년에 걸쳐 성을 세웠다. 정작 우리에게 가토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준 임진왜란에 대한 얘기는 빠져있는데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에 대해 굳이 언급하기 싫었을테고 규슈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에 민감한 사안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오히려 그래서 구마모토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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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된 안내도 충실하다. 허접한 번역으로 인한 어색한 표현과 오류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수준으로 규슈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임을 실감케 한다. 위 설명에 나오는 수많은 실전 경험 중의 하나가 정유재란 당시 울산성 전투로서, 이 전투에서 얻은 교훈이 구마모토성 건축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뒤에 보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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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 외곽의 해자. 이건 뭐 참호같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강이다. 상당한 폭도 폭이거니와 둑의 높이에 더해진 축대의 높이 만으로도 공격군의 기를 질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로 북방 기마민족을 상대해야했던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방어 전략은 전쟁 발발시 평지에서의 접전을 피하고 산성으로 민관군이 이동하여 수성전을 펼치는 방식이었지만, 일본은 19세기까지도 막부 체제 하 지방 영주들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며 각자의 영지에서 성을 쌓고 살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후 일본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지만 서로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겪으며 일본의 성은 철저하게 실전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일본의 성은 영주가 거주하는 작은 궁궐임과 동시에 방어 시설이 되어야 했고 지형에 의지한 우리의 산성과 달리 평지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본의 성은 이처럼 해자의 폭과 성벽의 높이에서부터 우리와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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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벽 위에는 위처럼 조총을 쏠 수 있는 총안구가 빽빽하다. 16세기 무렵 유럽에서 도입된 조총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고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에서 왜군의 조총에 조선군은 크게 당황했다. 일본의 성은 이 처럼 사수가 완전히 보호를 받은 상태로 사격이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져있어 실제 외부에서 내부의 사수를 조준해 명중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면 우리의 성곽은 총,포의 활용이 높아지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크게 변화하지 못해 신미양요 당시 우리 군사들은 초지진 성곽 위에서 상체를 드러낸채 사격하며 미해군 육전대를 상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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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성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꺾어진 출입구의 모습. 성문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ㄴ’,’ㄷ’자형 등으로 꺾인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덕분에 성문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화포나 공성기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될 수 있으며 성문으로 도달하는 동안 방향을 틀어야하는 공격군은 전방과 좌우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총탄으로 부터 몸을 숨길 곳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성문을 보호하듯이 성문 전면에 반원형으로 옹성을 친 형태(동대문)가 일부 있긴 하지만 일본의 성처럼 보편적인 설계방식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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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 안에서는 축성 400백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었다. 위 사진은 더운 날씨에 구마모토성의 마스코트 분장을 하고 고생 중인 어느 녀석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는 진행자인데 일본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대략 ‘구마모토성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요?’였다. 답은 당연히 가토 기요마사였고 곁다리 답안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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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의 가장 핵심부인 혼마루 쪽은 입장료를 지불해야했다. 500엔이었나. 상당히 저렴한 편인 우리나라 문화재 입장료 기준으로 봤을 때 제법 비싼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성 안엔 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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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성의 중심, 일본식 성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텐슈가쿠(天守閣). 엄청난 높이의 기단부 석축 위에 우뚝 솟아있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3대 성(城) 중 하나로 꼽힐만큼 그 규모와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실제 2004년 오사카성을 찾았을 때 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 때는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초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인지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인지도.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정말 진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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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웅장한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화가 나기도했다. 우리나라를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가토는 자신의 영지에서 이처럼 웅장하고 강한 성을 짓고 부귀영화를 누렸단 말인가. 안타까운(?) 점은 이 웅장한 모습도 원형이 아닌 콘크리트로 지어진 복원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구모모토성은 19세기 세이난(西南)전쟁에서 많은 건물이 불타 사라졌다. 실제 일본 관광 안내서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고 멋진 목조건물들은 대부분 애초의 모습이 아니라 복원된 것들이 많은데 특히 2차 대전 당시 미공군 B-29 폭격기에 연일 융단 폭격 당했던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의 주요 도시에 있던 유적들이 특히 그렇다. (교토는 미군의 폭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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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유적, 구마모토성 안에 있는 우물이다. 안내판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농성(籠城)에 대비해 구마모토성 안에 우물을 120여 곳이나 팠다고 적혀 있었다. 이 많은 우물이 바로 성 입구에서 봤던 ‘수많은 실전 경험을 살려’ 성을 건축했다고 한 부분 중 하나인데 일본 녀석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생략하고 있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처럼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 우물을 파게 된 계기는 바로 정유재란 당시의 울산성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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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로병진책의 일환으로 조명연합군은 울산성의 가토 기요마사, 사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 순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육군이 공격하고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순천성 외곽을 차단하여 함포 사격을 가하며 공격을 지원하는 한편 고니시의 탈출을 가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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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가토가 주둔하고 있던 울산성의 상황이 왜군 입장에서는 가장 절망적이었는데 성을 완전히 포위한 조,명 연합군은 치열한 공격을 퍼부어댔다. 성안에 고립된 가토의 군사들은 갈수로 인해 처절한 경험을 해야했고 밤에 물을 뜨러 태화강으로 내려오는 왜군들은 조명 연합군의 매복에 걸려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럼에도 가토 기요마사는 악귀처럼 성을 지켜냈고 역시 가토의 군사들이 주둔하던 서생포성에서 원군들이 태화강 하구로 밀려오며 결국 조명연합군은 막대한 인명피해만 내며 퇴각하고 만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울산성의 왜군들은 물이 없어 말을 잡아 피를 마시고 소변을 받아 마시기도 했으며 식량이 떨어진 후 성벽의 흙을 긁어 먹을 정도로 처절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심지어 가토는 할복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가 구마모토로 돌아와 성 안에 우물을 120여개나 팠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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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성 전투도. 울산성은 지금의 학성공원이다. 성곽의 흔적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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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으로 들어가는 바로 입구 쪽도 만만치 않은 경사의 성벽과 굽이굽이 계단과 통로로 성 내부에 진입한 적들이라 해도 본부격인 천수각을 침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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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으로 들어가는 입구. 2004년에 갔던 오사카성과 달리 구마모토성의 천수각은 내부 개방이 되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내부는 애초 60년대 복원 당시 부터 박물관 형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란 측면에서는 다소 불만족스럽지만 건물의 유지와 보수, 활용성 측면에선 합리적인 선택인 듯 했다. 저 문양은 가토 가문에서 쓰인 것 같았다. 가토의 투구는 물론 그릇 같은 생활 용품에도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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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우물은 천수각 안에도 또 있었다. 정말 울산성에서 고생 많이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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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주인공,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초상. 이순신 영정이나 다 똑같이 생긴듯한 논개, 춘향이 영정 그림 처럼 상상의 그림이 아닌 당시에 직접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德이 느껴지는 상은 절대 아니다. 눈빛에선 냉정함과 교활함이 보이는 듯도 하고 감히 마주 보지 못할 강한 포스도 느껴진다. 일본에서 이처럼 그림이 남겨진 이들은 당시에 권력이 있던 이들이고 당연히 대부분 무사계급이었으므로 우리 선비들의 상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달리 험상궂고 거칠고 냉정한 인상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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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마사公의 생애’라는 전시코너 쪽엔 태어날 때의 일화부터 동네의 분쟁을 해결하는 대범함과 판단력을 보여준 성장기의 가토의 모습 등을 다루고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는 분명 일본의 영웅 중 하나로 추앙받는 듯 했다. 특히 군사 뿐 아니라 건축, 토목 등 다양한 방면에 재주가 많아 오늘날 구마모토현의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지로 부임하는 가토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묘사된 뱃머리에 서서 붉은 갑옷을 입고 서있는 가토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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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투구가 위의 그림에 나오는 긴 형태의 투구. 가토 기요마사가 직접 썼던 바로 그 투구라고 한다. 다른 장수들의 투구와 달리 전투에 적합한 형태는 아니지만 가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좋은 독특한 모양이다. 가토가 저걸 쓰고 조선에도 왔었을거란 생각이 드니 400여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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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 꼭대기 층에 가까워 올 수록 전시물의 내용은 구마모토성이 불탔던 세이난(西南)전쟁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다. 사쓰마 군이 맹공을 펼치고 있고 구마모토성에서 군사들이 농성하고 있는 그림이다. 아쉽게도 세이난 전쟁에 대한 사전 지식은 거의 없었다. 관련 내용은 더 공부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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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듯한 더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줄을 지어 겨우 올라간 천수각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천수각은 구마모토시 전체를 거의 조망할 수 있는 사령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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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까마득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황룡사 9층 목탑이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몽골군에 의해 불타지 않았어도 숭유억불 정책의 조선에서 무엄하게 높은 그런 건물이 살아남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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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올라간 천수각을 내려와 전 날 편의점에서 사둔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충 떼우고 성을 빠져나와 다시 걸어걸어 구마모토역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날 의외로 빡쎈 왕복 도보 이동경로와 천수각 내부에서의 지체현상에서 체력소모가 커 후쿠오카로 돌아가서 들르기로 계획했던 후쿠오카 타워와 후쿠오카돔은근처에도 못가고 호텔에 뻗어 있었다. 그렇지만 최우선 순위로 잡혀있던 구마모토성을 봤기에 그 정도쯤은 생략해도 별로 아깝지 않았다. 이번 구마모토성을 찾음으로써 가토가 지은 성 3곳이나 답사한 셈이 됐다. 가토가 조선에 장기 주둔하며 지었던 울산성과 서생포왜성, 그리고 이번 구마모토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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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라는 한 인물도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처럼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일본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수천년을 마주해온 우리는 또 앞으로 그렇게 일본과 손도 잡고 싸우기도 할 것이다. 구마모토성을 빠져 나오면서도 내 머리속에는 일본과 가토 기요마사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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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규슈 구마모토

Canon A700 (허접 똑딱이 ㄷㄷ)

 

올해 마지막 고추 따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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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7. 청송

처가에서 올해 마지막 고추 따던 날의 기록.

일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카메라를 꺼내드는 사위를 보고 우리 장모님은 ‘우서방 거 사진은 자꾸 찍어서 어디나 쓰나?’ 라고 물으셨고 나는 ‘언젠가 다 쓰일 날이 있을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모님은 ‘그런게 다 쓸데가 있나?’ 하며 피식 웃으시곤 다시 바삐 손을 움직이셨다. 내가 송도 사진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신 후로는 ‘우리 사위가 그냥 재미로 찍는 수준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시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 사진들이 쓰일 곳이 있으랴. 거창한 사진전이나 사진집은 아닐지라도 우리 가족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이 날 찍은 사진들을 와이프에게 보여주며 얘기했다.

‘나중에 보면 눈물날거야.’

Rollei 35SE / Kodak 400TX / IVED

 

2009년 12월, 송도

사실 창고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서재’라고 부르고 싶은 내 방 책꽂이 한 켠에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수백롤의 필름이 차곡차곡 담겨져 있는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필름들을 보다 못한 와이프가 넣어준 것들이다. 내 저것들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텐데 하며 가끔 노려보기도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만다.

‘에이, 나중에 하자.’

그러다 지난 금요일밤 괜히 한번 상자를 열어봤다. 마구잡이로 섞인 필름들을 천장의 형광등에 비추어보며 간만에 추억에 젖다가 송도 해수욕장을 촬영한 필름 하나를 발견했다. 36컷을 모두 살펴봐도 그 필름에서 기억나는 이미지는 단 한 컷도 없었다. 메모조차 해두지 않아 언제 찍은 건지도 알 수 없는 필름 속 이미지들은 전혀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빠듯한 용돈 사정으로 인해 인화지 한 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굳이 ‘불필요한’ 밀착 인화는 생략했고 확대 인화 역시 한 롤에서 고르고 고른 몇 컷 외에는 하지 않았다. 이 버릇은 나중에도 그대로 이어져 스캔할 때도 한 롤 전체를 긁지 않고 네가티브를 비추어 보고 괜찮다 싶은 몇 컷만 추려 스캔을 해왔기에 네가티브를 보다가 새롭게 눈에 띄는 컷이 있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롤에서 한 컷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 건 단 한 컷도 스캔하지 않은채 쳐박힌 필름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 필름은 왜 버림받았을까? 일단 한롤을 채로 긁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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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뒷골목 입구에서 부터 내 발걸음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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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의 유실로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송도 해변의 회생을 포기하고 해안 도로가 건설되던 때의 막바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산책로는 거의 다 되었고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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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평화의 여신상이 있는 광장 해안 축대 옆의 테트라포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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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산책로에는 아직 모래가 많이 남아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아이들이 두꺼운 차림에 장갑까지 끼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추운 날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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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은 이미지와 글에 얼마나 의존적인가. 21미리로 강아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찍었을 정도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현상 후 스캔조차 하지 않았던 탓에 이날 촬영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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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변 일주도로 건설을 맡았던 청구 건설의 현장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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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변 방파제 위에는 허름하고 어설픈 포장마차촌이 있었다. 송도 해수욕장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도 사라졌다. 당연히 무허가 불법이었을테고 태풍이라도 오는 날엔 위험하기 그지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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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수상가옥 마냥 방파제 한 귀퉁에 의지하여 바다 위에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들. 자리에 앉으면 판자로 만든 바닥과 천막 틈 사이로 파도가 출렁였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며 회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고 모래사장에 세워둔 차에서 눈을 붙히고 아침에 바로 출근했던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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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을 뒤집어 씌웠던 철골과 계단의 녹물이 방파제 바닥 곳곳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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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린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는 손길들. 포장마차가 사라진 지금, 더이상 배들은 이 곳에 접안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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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왼쪽의 풍경. 송도 해변과 포항 구항이 멀리 보인다. 늘상 보는 장면이라 새롭지 않지만 이곳이 동해안에 몇 없는 지형인 영일만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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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과다현상이 되어 콘트라스트가 강한 네가티브가 되었다. 암부가 많이 죽었음이 느껴진다만 평소 사진의 톤에 비해 칼칼한 것이 또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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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서 굿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가, 요즘은 송도에서 굿하는 장면을 거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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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방파제 위 풍경과 달리 송도의 퇴락한 뒷골목은 이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골목 사이를 누비면서 정적인 사진에 동감을 불어 넣고자 누군가 지나가기를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래본들 무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겠나 싶다.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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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가 낡은 하얀 벽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흑백인데도 차갑고 투명한 겨울 공기가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려오는 걸 보니 늙은 듯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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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덕분에 이 필름이 언제 찍은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8년전의 블로그 포스팅에는 Nikon D700으로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이 날 찍은 파일은 모두 지워 버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찍은 사진도 맘에 안들고 앞으로 어떤 사진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유와 함께. 아마 그래서 이 날 찍은 필름도 스캔조차 하지 않고 던져뒀던 듯 싶다.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날 느꼈던 회의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뭘 찍어야 하고 뭘 표현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찍어야 하는가. 아니 그런 것에 답은 있는가. 답을 찾을 필요는 또 있는 것인가. 여전히 머리 속은 복잡하지만 이렇게 출토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사진들이라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지니 기록으로라도 가치가 있겠다 싶으니 그건 또 다행이라 해야하나. 아직도 모르겠다.

 

 

2009.12.26. 포항 송도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Kodak 400TX / IVED

Nippon Kogaku의 Topogon : W-Nikkor 2.5cm f4.0

 

거침없이 달리시는 만수동생님 덕분에 관심있던 렌즈를 빌려 써보게 됐다.

54년에 발매된 W-Nikkor 2.5cm f4.0이 그 주인공. 환갑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어마무시한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녀석이다. 원래는 Zeiss Ikon의 Contax와 같은 형태의 니콘 S마운트로 발매되었지만 라이카에서도 사용가능한 M39(LTM) 마운트로도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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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on Kogaku W-Nikkor 2.5cm f4.0 (LTM버전)

 

오늘날 기준으로 25mm라는 화각은 다소 낯설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초광각에 해당하는 것이라 사진가들의 환호를 받았으리라. 이 렌즈에 대한 매니아층은 오늘날도 제법 두터운데 그 이유는 우수한 성능도 성능이지만 특이한 구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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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이 렌즈는 4군 4매 구성된 완벽한 좌우대칭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극단적인 좌우 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 렌즈에서 왜곡을 비롯한 각종 수차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마치 구슬과도 같은 렌즈 알을 보고 있자면 영롱한 매력에 빠져드는데 이같은 설계의 원조는 사실 Carl Zeiss의 Topog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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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이 오리지날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화각부터 최대개방값까지 똑같다. 50년대 니폰 코가쿠,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은 독일 메이커들의 설계를 다분히 참고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한편 그들의 성능을 뛰어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뭐 하나라도 개선된 점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했던지라 오리지날 Topogon이 거리계와 연동되지 않는 목측식이었던 것에 반해 W-Nikkor 2.5cm는 거리계 연동이 가능하게 출시되었다. (캐논의 25mm f3.5는 최대 개방값도 아주 조금 더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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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팅 역시 당대 독일 렌즈들보다 두터워 보이는데 역시나 역광에서 버티는 능력도 제법 준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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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ogon 타입임을 증명하듯 렌즈알이 반구형으로 볼록하게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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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에서는 더욱 그 형태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구슬을 하나 박아넣은 듯한 모양이라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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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Topogon 타입은 급격하게 꺾인 렌즈 끝단의 곡률로 인해 주변부의 화질이 많이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는데 이때문에 최대 개방시에도 조리개는 완전히 다 열리지 않게 설계함으로써 그 문제를 최대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에서도 최대 개방에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는 비네팅이 제법 발생하며 개방시에는 더욱 심해진다. 반면 오리지날의 위엄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지 칼 자이즈의 Topogon은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면서도 W-Nikkor에 비해 비네팅이 적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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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계의 단위는 FEET로만 적혀있고 라이카 스크류 렌즈들과 같은 형태의 무한대 잠금 장치를 가지고 있다. 크롬 코팅이나 레터링 각인의 수준은 훌륭하다. 코팅된 렌즈임을 표기해주는 빨간색 “C”마킹도 적당한 시각적 포인트가 되어준다. Carl Zeiss 렌즈들의 “T”마킹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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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구경은 상당히 특이한 34.5mm로 오늘날 해당하는 사이즈의 필터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중앙카메라 수리실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었다. 앞으로 애매한 사이즈의 필터는 비싸게 구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부탁드려 만드는 것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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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필터링에다가 광택도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되어 제짝인 듯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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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야무진 렌즈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이라 좀 깬다만 올드 렌즈에서 일반적인 금속제 슬립온 방식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클립온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앞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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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와의 매칭. 슬림한 경통에 짧은 길이의 컴팩트한 렌즈로 바르낙 바디에 제법 잘 어울린다. 25미리 파인더가 없어서 일단 Voigtlander 28mm 파인더로..ㄷ

많은 롤을 찍어보지 못해 렌즈의 특성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니콘은 니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는 물론 장단이 존재하는데 흔히 니콘 렌즈의 특성으로 평가받는 높은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는 이미 이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칼라 색감 역시 화사하고 예쁜 쪽은 아니지만 Topogon타입의 특징에 기인하는 강한 비네팅 효과와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쭉쭉 뻗는 시원시원함은 렌즈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준다.

 

 

B/W Neagtive : Kodak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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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9-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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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itive : Fujifilm RVP 100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03-1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07-1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15-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2-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9-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3-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5-1

 

 

끝으로 귀한 렌즈 빌려주신 만수동생님과 렌즈 뒷캡으로 IIIf를 보내준 Qunaj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보다 훌륭한 리뷰를 보려면

Qunaj님의 ‘W-NIKKOR C 2.5cm 1:4 LTM

Goliathus님의 ‘[Nikon]W-Nikkor 2.5cm 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