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자기_건수자도

젠수이(建水)는 아름다운 도시다. 2009년 처음 왔을 때 아직 이곳은 고풍스런 한적한 도시였다. 십여 년이 지났건만 눈부신 개발 한편으로 옛것을 보존하려는 몸부림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젠수이는 윈난의 다른 큰 도시들에 비해 일찍 발전된 곳이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 말이기도 하다. 리장, 따리와 함께 윈난 3대 고성이 있는 곳이다. 중국 3대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 가운데 하나가 중원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창대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이방인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이곳은 일찍 유가풍의 문화가 자리 잡은 선비의 도시이기도 하다. 글줄이나 읽은 노인들이 심심파적 삼아 붓 놀이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먹을 것 볼 것이 풍부하고 소박하고 깨끗한 환경 덕분에 근래 중국에서도 뜨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젠수이 여행 마지막 날, 자도(紫陶)공방을 다시 찾았다. 첫날 도예촌에서 실망한 탓도 있으려니와 자도와 관련된 문화나 자도의 제작과정이 궁금하던 터였다. 형님을 졸랐더니 꽌시가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공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젠수이 자도는 우리에게 비교적 늦게 알려진 도자기다. 송대에 시작된 자도의 역사는 산업화와 함께 근래까지 다른 전통도자기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양길을 걸으며 명맥을 유지하다가 전통문화 부흥 정책과 보이차의 역대급 히트에 힘입어 근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천연의 오색토((五色土: 적, 황, 청, 갈, 백의 다섯 가지 색깔의 원료) 원료를 숙성시켜 기물의 형태를 만들고 상감기법으로 문양, 그림, 글자를 넣는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온(1150 ~ 1200 ℃)으로 소성한 후 숫돌로 물광을 내서 완성한다. 이싱의 자사호와 비슷한 듯 다른 점은 재료, 상감기법 그리고 물광을 내는 것 정도가 되겠다. 항아리, 병, 화분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들지만 근래에 차호로 각광받고 있는 아름다운 도자기다.

R0073062[오후 도자촌 거리는 한산하다. 작은 공방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섰다.]

 

R0073064[누가 오거나 말거나 저 할일에 집중하던 도공이 작업 한대목을 마치자 차를 내며 자리를 청한다. 잡히면 한 두개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아 사양하고 물러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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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쌍용교 근처 제법 갖추어진 공방을 찾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이 어리둥절한 여사장은 속살을 내어보이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R0073353[원료창고, 오색토로 자도의 원료가 된다. 소성되면 각각의 빛깔을 낼 것이다. 덩어리가 보이는 것은 괴상으로 보이지만 만져보면 분처럼 부드럽다.]

 

R0073356[제토과정을 거쳐서]

 

R0073352[정제된 원료를 숙성한다.]

 

R0073362[자사호는 대부분 판성형을 하는데 자도는 물레로 성형한다. 이름 없는 도공이지만 숙련도가 장난아니다. 공방에 소속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기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을 것인데…]

 

R0073359[성형된 기물이 어느정도 건조되면 형태를 다듬는다.]

 

R0073364[깍고 다듬고]

 

R0073365[또 깍고 다듬고]

 

R0073369[건조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 공방에선 철저한 분업이다. 제토하는 사람, 성형하는 사람, 다듬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상감하는 사람 등…20여명의 여성들이 지난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 마디 물어도 대꾸를 안한다…ㅠㅠ]

 

R0073367[밑그림이 그려진 자도 성형품에 그림을 따라 기벽을 파낸다. 색깔이 다른 흙으로 파낸 부위를 채우고 다시 다듬는다. 상감기법이다. 글, 그림, 문양 등 다양한 장식을 하는데 우리 정서는 아니다 싶다.]

 

R0073372[소성하기 전 바닥에 시그니쳐!]

 

R0073375[나서기 전에 전시장을 찾았다. 내내 쫄쫄 따라다니면서 낮빛이 울그락 불그락 하던 여사장이 이 대목에선 판매담당경리라면서 소개시켜 주고 방구새듯 빠져 버린다. 여우같으니라고…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깍아 달랬더니 자기는 깍아줄 권한이 없고 쿤밍과 젠수이 시내 총판이 있는데 그곳과 가격 차이가 나면 안된단다. 여사장이 도망간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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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물든 쌍용교가 교태롭다.

 

봄이 오지 않는 캠퍼스

6월 20일 오전 9시 30분. 전국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관계자들은 이날 교육부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올 초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대학 기본역량진단 1단계 평가에 대한 결과였는데, 비록 잠정결과라고는 하나 평가 대상교의 64% 비율로 합격 판정된 자율개선대학의 범주에 들지 못한 탈락 대학은 정원감축 권고와 정부 재정지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일부 대학들에는 그야말로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발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정대로 발표된 ‘살생부’로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4년제 대학 120개교, 전문대학 87개교가 합격으로 안도의한숨을 내쉰 반면, 4년제 67곳, 전문대 49곳 등 116개교는 정원감축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정부는 이들 대학의 정원을 총 2만 명 가량 줄일 계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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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학 정원이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른 원인은 90년대 대학설립 간소화로 무분별한 대학설립에 따른 정원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정원은 60만 명 수준으로 2000년도만 하더라도 대입자원인 학령인구는 80만 명 수준이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대학이 학생을 골라서 선발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6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2020년 이후엔 50만 명 아래로 급감할 예정이다. 즉, 대입자원 전원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대학 재정이 탄탄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90년대 등록금 장사를 위해 설립된 사학들 재정이 여유로울 리 만무하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부실사립대학의 대량 폐교사태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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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러한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1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사업 초기 54만 명이던 대학정원을 48만 명 수준으로 5년간 6만 명 가량을 감축하였다. 이어서 올해 후속으로 추진되는 2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은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형태로 대학 전반에 걸친 평가를 통해 대학별 ‘체력’을 평가하고 함량 미달인 대학들은 정원감축 권고 또는 정부재정지원의 제한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골자로 하고 있다.

수 년간 지속하고 있는 대학등록금 상한제(라고는 하지만 실질적 동결)와 부실사립에 대한 정원감축으로 인해 실제 대학이 문을 닫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12년부터 올해까지 12개 대학이 폐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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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찾아뵙는 처가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2017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폐교된 학교가 하나가 있어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 대학 정문 주변은 이미 대형화물차들의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낯설게 변해버린 주변 풍경 속에 활짝 열린 정문은 아직 이곳은 학생들의 마음과 추억이 떠나지 않은 캠퍼스라며 큰 소리로 시위하는 듯 보였다. 나는 정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가 무색하게 캠퍼스에서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을 학생들은 보이질 않는다.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것은 조로(早老)하는 것일까. 본관까지 이어진 캠퍼스 중심도로 양옆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등하교 시 북적였을 법한 통학버스 정류장과 텅 빈 게시판, 해진 채로 힘없이 펄럭이는 본관 앞 태극기는 버려진 캠퍼스의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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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 교육정책의 폐해는 앞뒤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온 우리 사회의 업이라 흘리기엔 아픔이 절대 만만치 않을 듯하다. 특히, 2주기 구조조정에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린 지금으로서는 대학 간 통폐합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학사회는 변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불어 폐교 후 캠퍼스 토지와 건물, 교육/연구용 기자재 등과 같은 학교 기본자산의 처분방법, 재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지역 경제의 직격탄이 될 교직원의 실업 문제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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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미나토

돗토리현 서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사카이미나토는 일본 국민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으로 그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를 테마로 한 요괴마을로 유명함과 동시에 산인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한 세계적 사진가 우에다 쇼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돗토리 사구는 일평생 그에게 있어 훌륭한 스튜디오였으며, 이 곳에서 가족사진과 유머러스한 셀프사진 그리고 평생의 모델이었던 아이들을 원없이 찍었다. 지금도 요괴거리 ‘미즈키 시게루 로드’ 한켠에는 70년간 우에다 쇼지 작업의 근간이 된 ‘우에다 카메라’가 그의 셋째 아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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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사카이미나토 수산진흥협회를 통해 예약해 둔 어시장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 나는 숙소를 나와 요괴들의 천국인 미즈키 시게루 로드로 들어섰다. 산인(山陰)지방의 8월 하늘은 지명마냥 우중충하고 무겁다. 인기척 없는 새벽거리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눈알 가로등과 검은 고양이 그리고 신사나무에 둘러쳐진 금줄은 오직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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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벽적으로 깨끗하고 단조로운 골목풍경을 벗어나 탁트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출발지인 호텔로부터 어시장은 정동쪽이었으므로 왼쪽으로 꺽은 채 두 블럭 정도 걸어나가면 나카우미호에서 미호만으로 흐르는 해협을 만날 수 있다. 멋스런 구름 스카프를 걸친 해협 건너 이나리산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문득 호수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은 어떤 지점을 경계로 민물과 해수로 구분되어지는지 궁금해졌다. 학문적인 접근에서 염분의 농도구배 따위로 구분하자니 드넓은 강을 두고 일일이 측정이 가당키나 할까 싶고, 행정편의적 접근으로 지리적 생김새에 의거해 구분하자니 섬세하고 정교한 자연이 섭섭해할 것만 같다. 어쨋든, 이런 저런 잡생각은 마침내 나를 목표지점인 어시장 입구로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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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 투어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예약 관계로 주고받은 메일에서 먼저 알게된 ‘에지리상’은 실제 만나보니 나이 지긋한 백발의 신사였다. 30대 전후의 젊은이일거란 내 멋대로의 추측 따위는 보기좋게 빗나간 것이다.

오전 7시 투어참가자는 나 혼자였음은 이내 알 수 있었다. 에지리상은 나를 보자마자 수산협회 사무실로 안내했고, 어판장 내 간단한 안전수칙을 일러준 후 투어참가자 식별용 노란 모자를 건넸다. 사카이미나토 항과 마찬가지로 넉넉한 동해바다를 등에 업은 죽도시장에서 사진잔뼈가 굵은 나였기에 ‘경매에 방해되지 말 것’, ‘지게차와 바닥 미끄럼 주의’ 등 어판장 투어 유의사항은 이미 체화된 터였다.

노란모자 쓰고 병아리마냥 어미닭 에지리상을 따라 어판장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봄에는 연어, 여름은 참치와 굴 그리고 가을과 겨울은 각종 게와 오징어가 주류를 이룬다며, 계절 따라 많이 잡히는 어종에 대한 설명을 곁들어주신다.

한편, 사카이미나토 어판장 풍경 중 눈에 띄인 것은 바로 호가방식이 죽도시장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수신호로 호가하고 경매사는 그 중 최고가를 제시한 입찰자를 지명하여 낙찰하였다. 오히려 같은 일본이라도 손바닥만한 수첩을 사용하던 가고시마와는 달랐다. 포항과 사카이미나토는 씁쓸한 역사 위에 동해바다를 매개로 수산자원 뿐 아니라 경매시스템 또한 공유하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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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방문 그것도 제한된 시간 50분간 찍어낼 수 있는 사진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투어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견학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시점에 이미 사진욕심은 내려두었기에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위엄서린 경매모자 사이에서 어판장이 발산하는 낯선듯 낯익은 자극들을 나의 감관을 동원하여 최대한 수용하려 애를 썼을 뿐.

사카이미나토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날의 일포드 흑백필름은 기억의 책갈피로서 나에게 훌륭한 6번째 감관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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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카이미나토 교통편: 에어서울 ‘인천-요나고’ 노선와 DBS크루즈 ‘동해-사카이미나토’ 노선이 운영 중임
  • 사카이미나토 수산경매장: 경매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으며, 수산진흥협회에서 주관하는 투어를 통해 참관이 가능함. 비용은 1인당 300엔이며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음. 투어시간은 50분이며 오전 7시, 9시, 10시에 진행됨. http://sakaiminato-suisan.jp
  • 우에다카메라 주소: 〒684-0012 Tottori-ken, Sakaiminato-shi, Nakamachi,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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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ilford hp5+

황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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经开区(jīngkāiqū)! 알아듣는 택시기사가 신기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김없이 데려다 준다. 낡은 것들이 쓸려나가고 매일 아침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이곳을 사람들은 ‘경제개발구’라고 부른다. 길 건너 우람한 정원이 드리워진 화려한 아파트촌이 펼쳐지고 그곳에 황금성이 있었다. 작년엔 없던 건물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기웃거려 보지만 황금성은 거대한 담벼락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한 동안 기웃거렸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다.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는 길 잃은 실레노스를 후대하였다.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를 길렀다고 알려져 있는 그의 스승이다. 디오니소스는 스승을 잘 돌봐 준 미다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제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황금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디오니소스는 의아했지만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이제 미다스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이 되었다. 손이 닿자마자 황금으로 변하는 것은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통에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야 자신의 소원이 부질없음을 알고 철회해 줄 것을 신에게 간청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신은 파크톨로스 강에 몸을 씻으라 명했다. 미다스 왕은 신의 뜻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에 몸을 씻은 후에야 원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부터 파크톨로스 강은 사금이 넘쳐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전한 이야기다.

길 건너 고치 구이 판을 앞에 두고 난장에 앉았다. 넘어가는 해가 걸린 황금성이 붉게 물들어간다. 부귀, 영화, 권력, 탐욕…너는 어느 것의 것이냐!

 

 

지진 그 후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모니터에 띄워진 워드프로세서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파리 물소떼라도 몰려오는 듯이 세상 낯선소음과 함께 사무실 바닥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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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덜….크르렁…드르르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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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더더기 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책상 아래 몸을 구겨넣었다. 1년 전 규모 5.8의 역대급 경주 지진에 따른 실전경험 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머리를 조아린 채 두려운 지진파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 뿐이었다. 사무실 내 모든 집기비품들이 점호라도 하듯 일제히 큰 소리를 내며 덜그덕거리고, 거대한 손이 건물외벽을 뒤흔드는 듯 바닥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같은 사무실 직원들은 흔들림이 멈추자 즉시 건물 밖으로 튀어나갔다. 계단은 어찌 내려갔는지 문은 어떻게 열었는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쳐나왔다. 안전한 야외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가족 걱정에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주머니가 허전하다. 급한 마음에 핸드폰이고 뭐고 몸만 빠져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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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일평생 겪음직한 사고와 재난이 어디 하나, 둘이겠냐만은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기에 미리 조심하고 주의한다면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엄습하는 무지막지한 지진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진정한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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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공포로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에 미디어에서는 한술 더 떠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만약 일본처럼 규모 7이상의 대지진이라도 발생한다면 어떻게 되나. 1995년 한신대지진의 영상을 찾아봤다. 육중한 건물과 고가도로는 맥없이 무너지고 화재로 인한 검은 연기가 도시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아비규환이다. 고베 시가지에 자꾸만 포항 풍경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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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다시 지진 온다 한들 목구멍 풀칠용 직장에 단단히 매인 신세라 포항 땅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손에 쥐어진 유일한 옵션은 그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미소가 늘 함께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존재의 무력감은 참으로 잔인한 것이다. 지진은 그렇게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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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는 주로 진앙지에 인접한 포항 흥해지역에 집중되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곳으로 알려진 흥해 대성아파트는 지진 후 전체 6개 동 가운데 절반인 3개 동이 붕괴 우려가 높아 시에서는 사용금지 처분을 내렸고 3∼4도 가량 기울어진 건물 1동은 철거가 이미 결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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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관련 뉴스를 매일 접하니 실제 피해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선뜻 현장을 찾을 용기가 없었다. 치기어린 행동으로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지진에 큰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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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은 그곳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은 결코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사진으로부터 배웠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안된다. 십년 뒤 후회하지 않을 자신 따위는 없었다. 결국 시간을 내어 흥해에 들렀다. 무거운 마음에 장비는 최소한으로 챙긴 터였다. 카메라는 크로스로 매고 여분의 필름 한 통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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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금지처분으로 인기척 없는 대성아파트는 늦오후의 따뜻한 햇살로도 을씨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3~4도 기울었다는 건물은 실제 10도 이상 휘청한듯 보였다. 기울어진 쪽 기단부 콘크리트는 과도한 압축력을 이기지 못하여 부서지고 으스러졌으며, 팔뚝만한 크랙이 여기저기로 음흉하게 손을 뻗쳤다. 한때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돕던 관리실은 재난안전대책본부로 변한듯 보였고 아파트 한켠의 단촐한 놀이터에는 깊은 슬픔으로 영원히 볕이 들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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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파트를 벗어나 옆으로 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주변 빌라와 주택들 역시 아물지 못한 상처를 드러낸 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노랑색 어린이집 승합차는 난데없는 낙하물에 속 빈 맥주캔마냥 힘 없이 찌그러져 버렸다. 평소 즐겨 마지않던 채집행위였지만 오늘만은 금세 지쳐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감정이입의 결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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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의 거대한 재해 앞에서 일개 인간이 느끼는 참을 수 없는 무기력함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끔 만든다. 트라우마 이전의 삶을 지탱하던 규칙이나 목표, 신념 따위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재난 발생 후 시간이 흘러 피해자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과 사람들이 차차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트라우마는 오롯이 남겨진 자들만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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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일수록 그 기억은 잔인하도록 디테일하기에 나는 이들의 아픔이 이들만의 아픔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여기 사진들은 다만 잊지않기 위한 나만의 다짐이자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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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깜깜한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볼이 시린 날씨였지만 어쩌자고 이렇게 포근한 것일까요. 짊어지고 온 피로에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만 어디서 온 것인지 스멀스멀 밀려드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집니다. 늘어지고 싶었습니다. 반듯하게 각진 택시 타고 숙소로 가는 잠시 동안 창밖 풍경은 신비였습니다.

밤새 끙끙 앓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습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거실 창을 열었습니다. 쌓이는 눈이 세상 평화롭습니다. 한참 멍 때리다 감전된 듯 챙겨 입고 길을 나섰습니다. 발이 이끄는 곳으로 걸었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했고, 어느 골목에서 한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셔터를 몇 번 눌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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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는 … 이 곳에서 그렇게 한 동안 어슬렁거렸다. ]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한 동안 서 있던 그 골목이 그리웠습니다. 영화 보다가 스프링 튕기듯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 골목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그랬던거죠. 언제인지도 모를 언젠가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곤 하얗게 잊었어요. 세월이 흘러 영화의 장면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의식 저편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던 장면하나가 의지와 관계없이 소환되었습니다. 포근함, 안도감, 익숙함 따위의 느낌은 깊숙히 저장되었던 몇 개의 장면 덕분이었을까요.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겪게 되는 영혼의 끌림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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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 중에서]

카트만두 계곡

네팔 여행의 기록도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카트만두(Kathmandu)계곡과 나갈콧(Nagarkot)에서의 나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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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공항은 우리의 여느 시골 고속터미널만한 크기입니다. 카트만두 자체가 분지에 위치해있는데, 그 분지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히말라야산맥의 수천미터 높이 산봉우리들입니다. 비행기가 나선으로 비행하며 오르내리는데 그만큼 위험하다고 합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점보기를 띄운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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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2시간 여 떨어진 나갈콧은 히말라야를 보거나 가벼운 트래킹을 위해 들르는, 해발 3천미터 높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조금만 걸어다녀도 조금씩 숨이 차오지만, 발 아래로 펼쳐지는 깊은 계곡과 마을의 풍경들이 근사한 곳입니다. 한가지 문제라면, 높은 지대의 마을 답게 날씨가 워낙 변덕이라 정작 히말리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2007년 방문 때에는 이틀 내내 히말라야를 볼 수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운이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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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라면은 우리식 라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양이 조금 적다는 것과 매운맛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입맛에 잘 맞습니다. 나갈콧 전망대로 가는 길의 어느 카페에서 맛본 라면은 꽤 맘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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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내내 안개속에 있었는데, 덕분에 이런 풍경들입니다. 2007년도의 파란 하늘이 그리워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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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가까이의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입니다. 그야말로, 높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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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더욱 높은 곳에 있습니다. 2층 테라스를 내려다보러 옥상까지 올라가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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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안개로 가득찼지만 숙소는 아늑했습니다. 카페에서 짜이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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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떠날 순간이 되니 개는 안개를 보며 나갈콧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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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슈퍼티나트(Pashupatinath)는 네팔 최대의 화장터입니다. 인도의 바라나시(Varanasi)와 달리, 이곳에서는 원한다면 화장터에 아주 가까이 갈 수 있고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물론, 죽음의 장면 앞에서 쉽사리 셔터를 누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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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풍습에 따라, 사람이 죽으면 한시간 내로 이곳 화장터에 옮겨집니다. 단 위에 장작을 쌓고 짧은 의식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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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이질적인 풍경입니다. 우리네처럼 우는 사람도 없고, 고인을 기리는 행사도 기껏해야 10분 남짓, 불을 붙인 뒤 시체가 잘 타도록 뒤집어 주는 사람, 타들어가는 시체에서 뼈마디가 튀어나오면 집어서 불길에 던져주는 행인, 소 한마리가 다가와서 구경하고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는, 시체의 재를 강물에 그냥 버리면 물에 잘 풀리도록 저어주는 꼬마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섭니다.

그저 멍하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곁에서 들려오던 네팔인 가이드의 삶과 죽음, 힌두 철학과 풍습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흘려보내는구나,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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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계곡에서의 마지막은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입니다.

네팔에서 가장 큰 불탑이 있고, 지혜의 눈이 카트만두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곳입니다. 참배객들과 원숭이들, 때로는 개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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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여행치고는 결말이 흐지부지입니다.

곧, 다시, 네팔을 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된 시간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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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타푸르(Bhaktapur)는 네팔(Nepal)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 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카트만두, 파탄(Patan)과 함께 가장 번성했던 중세 도시국가였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것은 9세기 아난다 말라왕때고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위치상으로는 카트만두에서 15km 떨어져 있는데, 카트만두나 파탄과 달리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고요하고 한적한 곳입니다. 도시는 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돌길이 동서로 이어져 있고, 3대 광장인 덜발(Durbar), 타우마디 톨(Taumadhi Tole), 타추팔 톨(Tachupal Tole)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도시 내에는 100여 개의 사원들이 사방에 존재하고 있어 열 걸음을 뗄 때마다 새로운 사원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느 책자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박타푸르에 3일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담아온 흔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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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라는,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 때문이었을 겁니다. 뭔가 이해하고 기억하려 하기보다, 감각적으로 흡수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흔적들에 집착하며 걷고, 셔터를 누르고, 다시 걸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박타푸르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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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네팔 대지진으로 박타푸르 본래의 모습은 상당 부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 우연한 장면들이 박타푸르의 마지막 오래전 풍경으로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나푸르나를 비추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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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Pokhara)는 안나푸르나(Annapurna) 입구에 위치한 네팔(Nepal)의 작은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페와(Fewa)호수가 자리하고 있고, 깨끗한 숙소와 수많은 편의시설들, 예쁜 호반 카페테리아들이 즐비합니다.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한 전진기지지만,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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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는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시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리 큰 도시는 아닙니다. 걸어서 두어시간 정도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길 한가운데에 모모(Mono)를 파는 손수레가 놓여있고, 열대과일과 특산품 가게가 이국적이고 여유로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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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주스를 파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천원을 내면, 손으로 돌리는 믹서에 과일을 갈아서 작은 유리잔에 찰랑찰랑하도록 내줍니다. 바삐 길을 가던 사람이라도 다 마실때까지 멈춰설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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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버스 지붕에 올라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다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지붕 위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줍니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하지만, 해발 3, 4천미터를 넘나드는 꼬불꼬불한 길에서 마주칠 때면 아찔한 기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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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가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올드 바자(Old Bazzar)라 부르는 구시가가 있습니다. 현재의 호반도심이 개발되기 전 중심가였다고 하는데, 다른 네팔의 도시들처럼 수백년 이상은 되었을 장면들이 남아있습니다. 낡은 풍경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제격인 곳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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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호수는 안나푸르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새벽에는 일출과 함께 안나푸르나의 반영이 비치고, 저녁이면 호수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배 한 척인데, 우리 돈으로 7천원 쯤을 내면 선착장에서 빌릴 수 있습니다. 배를 손수 저어 호수를 돌아다니거나, 그냥 하루 종일 배에 누워 호수에 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노를 젓던 파란 눈의 청년은 해질녘까지 그대로 풍경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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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호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Machapuchare)입니다. 네팔사람들은 마차푸차레를 ‘마의 산’이라고 부르며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여깁니다. 실제로 보니 그 웅장함에 압도되는 기분이었고, 왜 네팔사람들이 평생을 신과 함께 살아가는 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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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쯤 떨어진 곳에는 사랑콧(Sarankot) 전망대가 있습니다.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뿐 아니라 주변 고봉들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높은 봉우리만큼 깊은 계곡의 풍경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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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 사랑콧에 올라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 맑은 눈물 한방울로 풍경 속에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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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네를 구경하고 올드바자로 물건을 팔러 간다는 나팔사람들을 따라 길을 내려왔습니다. 포카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티벳 망명자 거주지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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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르초(風幡)만이 쓸쓸히 나부끼는 마을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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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룸비니(Lumbini)로 이어진 싯달타 하이웨이(Siddhartha Highway)에 올랐습니다.

 

포토제닉 아일랜드

지척에 바다를 끼고 산다는 건 참으로 행운이다. 먼 옛날 어미의 양수같은 바다는 월화수목금 방전돼버린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주곤 하기에.

포항에서 가까운 바다라면, 당장 도시와 어깨를 맞댄 영일대해수욕장을 비롯해서 남으로는 구룡포나 도구, 북으로는 월포와 칠포 등이 있는데 잔잔한 바다와 더불어 정감있는 골목까지 후하게 품은 송도라면 마음의 재충전 뿐 아니라 그럭저럭 사진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으니 여느 주말아침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한 나는 그저 송도로 향한다.

포항 송도는 원래 포항과 떨어진 작은 섬 중 하나로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깨끗한 모래와 솔숲으로 이름난 전국적 휴양지였다. 그러나 산업화는 송도의 모래를 차츰 잡아먹었고 넓고 풍요롭던 백사장은 시멘트벽으로 겨우 막아내야만 하는 볼품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소나무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송도는 그리 낯선 지명이 아니다. 포항과 더불어 인천과 부산에도 송도가 있고, 한글지명인 솔섬까지 범위를 넓히면 이름난 곳만 셈하여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이 중에서 유명세로 따지자면 몇 해 전 마이클 케나의 저작권 논란 중심에 섰던 삼척 ‘솔섬’이 단연 톱이겠으나, ‘송도’라는 지명으로 한정지으면 단연코 안성용 작가의 동명의 사진집을 잉태한 ‘포항 송도’라 하겠다. 송도라는 이름이 주어진 이상 태생적으로 사진적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일까. 불리는 이름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솔섬’과 ‘송도’ 모두 어쩌면 이렇게도 사진과 친밀한 사이인지 ‘소나무섬’의 영혼은 이토록 사진적이다.

나는 아직 송도를 알지 못한다. 5년 남짓 얕은 시간으로 속깊은 송도를 논할 자격도 없거니와 이미 멋진 좋은 작가와 지인들이 camera eye로 보여준 심상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울렁이는 마음 가라앉히고 이유모를 갈증을 적셔주는 샘물 같은 송도의 매력에 나는 오늘도 이 곳 송도를 바라본다. 이 섬에 기거하고 있는 누추하고 그늘지고 소외되고 외로운 것들이 결코 나와 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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