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 계곡

네팔 여행의 기록도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카트만두(Kathmandu)계곡과 나갈콧(Nagarkot)에서의 나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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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공항은 우리의 여느 시골 고속터미널만한 크기입니다. 카트만두 자체가 분지에 위치해있는데, 그 분지를 둘러싼 봉우리들이 히말라야산맥의 수천미터 높이 산봉우리들입니다. 비행기가 나선으로 비행하며 오르내리는데 그만큼 위험하다고 합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점보기를 띄운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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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2시간 여 떨어진 나갈콧은 히말라야를 보거나 가벼운 트래킹을 위해 들르는, 해발 3천미터 높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조금만 걸어다녀도 조금씩 숨이 차오지만, 발 아래로 펼쳐지는 깊은 계곡과 마을의 풍경들이 근사한 곳입니다. 한가지 문제라면, 높은 지대의 마을 답게 날씨가 워낙 변덕이라 정작 히말리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2007년 방문 때에는 이틀 내내 히말라야를 볼 수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운이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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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라면은 우리식 라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양이 조금 적다는 것과 매운맛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입맛에 잘 맞습니다. 나갈콧 전망대로 가는 길의 어느 카페에서 맛본 라면은 꽤 맘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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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내내 안개속에 있었는데, 덕분에 이런 풍경들입니다. 2007년도의 파란 하늘이 그리워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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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가까이의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입니다. 그야말로, 높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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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더욱 높은 곳에 있습니다. 2층 테라스를 내려다보러 옥상까지 올라가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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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안개로 가득찼지만 숙소는 아늑했습니다. 카페에서 짜이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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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떠날 순간이 되니 개는 안개를 보며 나갈콧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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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슈퍼티나트(Pashupatinath)는 네팔 최대의 화장터입니다. 인도의 바라나시(Varanasi)와 달리, 이곳에서는 원한다면 화장터에 아주 가까이 갈 수 있고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물론, 죽음의 장면 앞에서 쉽사리 셔터를 누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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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풍습에 따라, 사람이 죽으면 한시간 내로 이곳 화장터에 옮겨집니다. 단 위에 장작을 쌓고 짧은 의식을 뒤로 한 채 순식간에 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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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이질적인 풍경입니다. 우리네처럼 우는 사람도 없고, 고인을 기리는 행사도 기껏해야 10분 남짓, 불을 붙인 뒤 시체가 잘 타도록 뒤집어 주는 사람, 타들어가는 시체에서 뼈마디가 튀어나오면 집어서 불길에 던져주는 행인, 소 한마리가 다가와서 구경하고 원숭이들이 뛰어다니는, 시체의 재를 강물에 그냥 버리면 물에 잘 풀리도록 저어주는 꼬마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섭니다.

그저 멍하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곁에서 들려오던 네팔인 가이드의 삶과 죽음, 힌두 철학과 풍습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흘려보내는구나,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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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계곡에서의 마지막은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입니다.

네팔에서 가장 큰 불탑이 있고, 지혜의 눈이 카트만두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곳입니다. 참배객들과 원숭이들, 때로는 개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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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여행치고는 결말이 흐지부지입니다.

곧, 다시, 네팔을 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나푸르나를 비추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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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Pokhara)는 안나푸르나(Annapurna) 입구에 위치한 네팔(Nepal)의 작은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페와(Fewa)호수가 자리하고 있고, 깨끗한 숙소와 수많은 편의시설들, 예쁜 호반 카페테리아들이 즐비합니다.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한 전진기지지만,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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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는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시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리 큰 도시는 아닙니다. 걸어서 두어시간 정도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길 한가운데에 모모(Mono)를 파는 손수레가 놓여있고, 열대과일과 특산품 가게가 이국적이고 여유로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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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주스를 파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천원을 내면, 손으로 돌리는 믹서에 과일을 갈아서 작은 유리잔에 찰랑찰랑하도록 내줍니다. 바삐 길을 가던 사람이라도 다 마실때까지 멈춰설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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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버스 지붕에 올라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다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지붕 위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줍니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하지만, 해발 3, 4천미터를 넘나드는 꼬불꼬불한 길에서 마주칠 때면 아찔한 기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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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가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올드 바자(Old Bazzar)라 부르는 구시가가 있습니다. 현재의 호반도심이 개발되기 전 중심가였다고 하는데, 다른 네팔의 도시들처럼 수백년 이상은 되었을 장면들이 남아있습니다. 낡은 풍경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제격인 곳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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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호수는 안나푸르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새벽에는 일출과 함께 안나푸르나의 반영이 비치고, 저녁이면 호수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배 한 척인데, 우리 돈으로 7천원 쯤을 내면 선착장에서 빌릴 수 있습니다. 배를 손수 저어 호수를 돌아다니거나, 그냥 하루 종일 배에 누워 호수에 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노를 젓던 파란 눈의 청년은 해질녘까지 그대로 풍경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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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호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Machapuchare)입니다. 네팔사람들은 마차푸차레를 ‘마의 산’이라고 부르며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여깁니다. 실제로 보니 그 웅장함에 압도되는 기분이었고, 왜 네팔사람들이 평생을 신과 함께 살아가는 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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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쯤 떨어진 곳에는 사랑콧(Sarankot) 전망대가 있습니다.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뿐 아니라 주변 고봉들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높은 봉우리만큼 깊은 계곡의 풍경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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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 사랑콧에 올라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 맑은 눈물 한방울로 풍경 속에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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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네를 구경하고 올드바자로 물건을 팔러 간다는 나팔사람들을 따라 길을 내려왔습니다. 포카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티벳 망명자 거주지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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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르초(風幡)만이 쓸쓸히 나부끼는 마을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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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룸비니(Lumbini)로 이어진 싯달타 하이웨이(Siddhartha Highway)에 올랐습니다.

 

원령공주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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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屋久島)는 일본 남서쪽 80km 해상 – 태평양과 동중국해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섬입니다. 제주도의 1/4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1,936m의 미야노우라다케(宮之浦岳)를 품고 있고, 7,200년을 살아온 조몬스기(縄文杉)가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곳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もののけ姫)의 실제 무대이기도 한 야쿠시마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야쿠시마까지는 직항이 없고, 일본 내에서도 야쿠시마행 비행기를 운영하는 공항이 적습니다. 편수도 많지 않구요. 그래서 루트가 조금 복잡했는데, 한국에서 후쿠오카(福岡)로 간 뒤 가고시마(鹿兒島)로, 마지막으로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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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아침 9시 5분 비행기를 타니 10시 20분에 후쿠오카에 도착했습니다. 후쿠오카공항은 일본 공항 중 가장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일본)국내선 터미널이 국제선보다 크다는데, 아마 일본인들이 휴양을 많이 오는 곳이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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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15분 쯤 하카타(博多)역으로 달렸습니다. 교토의 좌석버스보다는 좀 작고, 어딘지 입석버스라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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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키벤(駅弁)을 사고 가고시마행 신칸센(新幹線)에 올랐습니다. 신칸센은 꽤 넓고 쾌적했는데, 가격을 생각하며 당연한 것이겠습니다. 뭐 그래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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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까지는 한 시간 남짓이었습니다. 창밖으로 낮은 산과 바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온천이 유명한 곳이니 화산들도 섞여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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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추오(鹿児島中央)역에 도착했습니다. 역 건물 위로 대형관람차가 보이는 모습을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야쿠시마행 페리를 타러 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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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선착장에서는 가까이 사쿠라지마(桜島)가 보였습니다. 2013년 분화한 활화산입니다. 화산재가 5천미터 가까이 솟았다는데 한번 쯤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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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부터 꼬박 9시간의 여정 끝에 야쿠시마를 처음 마주했습니다. 하늘은 야쿠시마에 다가가며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섬의 중턱 위로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운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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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는 세계자연유산이라는 플래카드가 특산인 날치 그림과 함께 붙어있었습니다. 렌터카를 찾고 부지런히 숙소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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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1시간 가량 더 걸린 탓에, 미용실에 가지 못했습니다. 엉뚱한 얘기지만, 야쿠시마에서 머리를 자르려고 예약해뒀었거든요. (야쿠시마가 좋아서 10년 전 낙향한 여성 마스터가 운영하는 곳을 찾아냈었습니다.)

어쨌든 긴 하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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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에서의 첫날은 동네 산책으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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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답게 작고 깨끗한 마을 풍경은 먼 야쿠시마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을 걸은 후 차를 타고 센피로폭포(千尋滝)를 보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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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피로 폭포는 “못초무다케(モッチョム岳) 기슭의 거대한 화강암 암반을 다이노강(鯛之川)이 깎아서 장대한 V자 계곡의 경관을 만들어낸 것으로 폭포의 높이는 약 60미터입니다. 중앙으로부터 대량의 물이 흘러 떨어지는 야쿠시마(屋久島)를 대표하는 폭포 중 하나입니다. 폭포의 왼쪽에 있는 암반은 마치 1,000명이 손을 잡은 정도의 크기라고 해서 센피로의 폭포(千尋の滝) 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출처. 규슈관광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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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폭포를 바라보다 기념사진을 찍고 원시림 사이를 지나 작고 예쁜 샵 호누(HONU)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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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호누는 야쿠시마의 조개껍질, 돌, 삼나무 조각 등을 이용해 작고 예쁜 물건들을 만들어파는 곳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찌감치 야쿠시마에 자리를 잡고 기념품을 만들어 팔거나, 쉬는 날에는 서핑을 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Gone Surfing 팻말 보이시죠?)

입구에서는 이루카(イルカ)라는 이름의 댕댕이가 손님을 반겼습니다. 이루카는 돌고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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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게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거북이 기념품과 조몬스기 유화 한장을 구입하고 인근의 도자기 공방으로 향했습니다.

파란색 유약을 잘 다루는 것 같은 공방은 예쁜 그릇들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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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히라우치(平內) 해중온천을 보러갔습니다. 입욕료 대신 기부금 100엔을 내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해수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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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들과 남녀 관광객이 온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남녀혼탕이었는데, 알몸으로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눈길을 피하거나 하지 않더군요. 별로 가리지 않는 모습이 이채로워 보였습니다. 카메라는 내려두고 잠시 발을 담그고 돌아섰습니다.

 

다시 길을 서둘러 오코노타키(大川の滝)를 보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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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굵어진 빗줄기 속을 걸어 일본 10대 폭포에 들어간다는 오코노타키를 만났습니다. 88미터라는 높이도 그렇지만, 풍부한 수량과 엄청난 소음이 대단했습니다. 용소 바로 앞에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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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유도마리온천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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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마리온천은 히라우치와 마찬가지로 해중온천이었습니다만, 좀 더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온천 입구에서 마주친 냥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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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탕의 가운데에 칸막이를 세워 남녀탕을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칸막이 한쪽에는 女, 반대편에는男이 새겨져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지만, 어쨌든 히라우치온천과 달리 혼탕은 아니라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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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발을 담그고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to be continued

사이묘지, 진고지 西明寺 神護寺

고잔지(高山寺)를 벗어나 사이묘지(西明寺)가 있는 마키노오(槇尾)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별도로 인도가 있지 않은 탓에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도로의 차들도 적절히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레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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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단풍 명소답게 표지판에도 단풍 그림이 그려져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런걸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자기하고 귀엽지만 촌스럽지 않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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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나무의 풍경은 화려함보다는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였습니다. 바짝 마른 나무의 색과 바랜 단풍의 색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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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을 걸어 사이묘지로 이어지는 붉은 다리를 만났습니다. 도리이(鳥居)의 붉은색을 떠올리며, 제례적 의미는 같은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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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묘지는 아주 작은 곳이었습니다. 10여 분 정도면 돌아볼 크기였습니다. 경내 이곳 저곳에 세워둔 석등이 자꾸 눈길을 끌었는데, 역시나, 석등이 이 절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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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나지(仁和寺)의 긴 회랑에서 보이던 액자정원을 발견했습니다. 두 칸에 불과했지만, 나름 운치있는 풍경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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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하나는 다실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저곳에 앉으면 어떤 풍경일까, 궁금했지만 길을 재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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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앞의 석등들에 일일이 손을 대보고 돌아섰습니다.  이제 진고지(神護寺)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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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진고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물가에 놓인 평상들이, 화려했을 여름날을 떠올렸습니다. 왁자지껄 모여앉아 잔을 기울였겠지요. 폭이 좁은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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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개의 찻집을 지나쳐 낙엽을 태우는 풍경을 만났습니다. 무작정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서서 한동안 연기를 구경했습니다. 냄새도, 풍경도 근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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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의 세 사찰 중 진고지가 가장 큰 절입니다. 그대로 자연에 융화된 듯한 고잔지와 작고 아담한 사이묘지에 비해 웅장하고 남성적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엔랴쿠지(延曆寺)와도 무척 닮아서 같은 시대에 지어진 것인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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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경내를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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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난 길을 따라 한무리의 사람들을 따라가니 가와라케나게(かわらけ投げ)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왔습니다. 가와라케나게는 질그릇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것인데, 깊은 계곡을 향해 멀리 던질수록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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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질그릇을 던졌습니다.

다른 소원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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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되짚어 내려왔습니다. 진고지는 다른 두 절에 비해 상당히 높은 곳에 있는 탓에 내려가는 계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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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올 때 보아둔 찻집에 들렀습니다. 만추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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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특산인 모미지(紅葉)떡과 맛차(末茶)를 주문했습니다. 주인할머니가 함께 내주신 모나카는 그리운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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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람소리를 듣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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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되짚어 사이묘지를 멀리서 바라보며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에 올라, 언젠가 녹음이 가득한 여름, 혹은 눈 쌓인 겨울에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성냥갑 마을

포르투갈에서의 5일째, 리스보아(Lisboa) 일정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여행의 후반부를 보낼 포르투(Porto)까지는 320km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포르투로 향하면서 몇 군데의 도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의 도시, 코임브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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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까지는 210km로 제법 먼 거리였지만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포장상태가 좋았고, 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아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사실 코임브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적지는 네비게이션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템포를 맞추느라 시속 200km 가까이 달린 탓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두시간이 채 안 걸려 코임브라에 도착했습니다. 대학 부속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있는 것 같았는데, 대학도시는 처음 와보는 터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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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대학교는 1290년 설립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입니다. 201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언덕위의 대학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설립자인 디니스1세(Dinis I)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로는 다소 낡았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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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엽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코임브라대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제게는 큰 영광일 것입니다, 엽서를 보여주는데 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원하시는대로,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엽서도 마음에 들어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아뿔싸, 차에 지갑을 두고 온걸 알았습니다. 실수다, 지갑을 두고 왔다, 정말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엽서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한 장을 고르세요. 당신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순간이 지나고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과 코임브라대학교를 기억하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구대학의 건물들이 그려진 엽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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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학교(Velha Universidade) 광장으로 들어서자 주앙3세(João III)의 석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인 돌아다닐 시간은 없어서 광장 주변과 탑, 도서관 정도를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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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방문을 뒤로 하고 코임브라대학교를 떠났습니다. 시간을 좀 더 할애해서 돌아봐도 좋았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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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레일라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좋겠지, 나보다 훨씬 잘하니까 싶어서 키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을 자처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뒷좌석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테일 스핀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좌우로 흔들림이 제법 있었습니다. 줄곧 멀미가 날 것 같다던 레일라의 얘기가 이해되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메르세데스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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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목적지인 아베이루(Aveiro)로 접어드는 고속도로에서 산불을 만났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고온현상으로 여기저기 큰 불이 나고 있다더니 실제로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산불을 본 것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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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베니스(Venice)라고 불리우는 아베이루에서 운하의 풍경을 만났습니다. 운하를 중심으로 예쁜 건물들이 서있었습니다만, 어쩐지 전형적인 관광지로 보였습니다. “그냥 갈까?” 레일라의 제안에 따라 곧장 코스타 노바(Costa Nova)로 차를 돌렸습니다. 아졸레주(Azulejo)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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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여 분을 달려 코스타 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코스타 노바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포르투갈의 도자기 제품명으로 더 알려졌습니다만, 본래 대서양과 아베이루강 사이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코스타 노바 제품에 새겨진 로고는 이 마을의 독특한 건축양식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찌보면 인형의 집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성냥갑 같기도 한 형형색색의 스프라이트 무늬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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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의 집들이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달이고 돌아오지 못했고, 안개가 자욱한 지역 특성상 돌아와서도 자기 집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길을 잃지 말라고 각자 독특한 색과 무늬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기만 한 것 같은 풍경이 사실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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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과 무늬의 집들 사이를 질리도록 걸어다녔습니다. 스프라이트 뿐 아니라 다양한 색과 무늬로 칠해진 집들이 파란 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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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와 아베이루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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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트립어드바이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역 3위 안에 드는 곳이라면 가도 좋지 않을까?” 앞장 선 레일라를 따라 길가의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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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식 조개찜(Ameijoas a Bulhao Pato)과 해산물 리조또(Arroz de Mariso)를 주문했습니다. 셋이 먹기에 너무 많은 양에 놀라고 해산물이 정말 신선해서 놀랐습니다.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라며 웨이터가 엄지를 내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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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마을의 반대편으로 걸어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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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를 소개하는 가이드북과 웹사이트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니 집안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 집들은 숙소로 제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정도 머물며 대서양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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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 뒷골목으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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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디냐(Sardina)겠지, 바닥의 물고기 문양을 구경하다 고개를 들자 일광욕 중인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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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자 바닥에 뒹굴뒹굴, 잔뜩 애교를 부렸습니다만, 줄 게 없어서 열심히 머리만 쓰다듬어 줬습니다. 궁딩팡팡도 해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간혹 싫어하는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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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하얀 꽃들을 잠시 바라보다 코스타 노바를 떠났습니다.

… to be continued

키리에

아침 일찍 차를 꺼내 레일라를 태우러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포르투갈의 남부 내륙 도시들과 바닷가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왕복 600km 정도 운전을 해야 하니 제법 긴 하루가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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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를 건너 처음 찾아간 곳은 구세주 그리스도상(Santuário Nacional de Cristo Rei)입니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상(Cristo Redentor)과는 형제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브라질이 원조고 이쪽이 나중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크기도 브라질 쪽이 30m로 이쪽(26m)보다 큽니다. 브라질이 식민지였던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어쨌든 두 상은 마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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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으로 조성된 공간에서는 4월 25일 다리가 내려다보였습니다. 타구스(Tagus)강 위에 놓여 리스보아(Lisboa)와 포르투갈의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는 1966년 건립되었는데, 카네이션 혁명(Revolução dos Cravos)이후 독재자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의 이름을 버리고 혁명일인 4월 25일을 기념하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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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리스보아의 언덕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파마(Alfama)지구도 보였습니다. 그저께 밤에는 저쪽에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이 들어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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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구세주 그리스도상 외에 거대한 십자가, 성모마리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강변을 따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물며 그리스도를 올려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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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피를 형상화한 조각이 보였습니다. 다가가보니 순례자들의 이름으로 보이는 명단이 새겨져있었습니다. 조금은 무거워진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습니다.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신념에 의해 스스로를 바친 분들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 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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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한참을 달렸습니다. 두번째 방문지인 에보라(Évora)는 150km 떨어진 도시였는데, 본래 포르투갈의 수도였고 오래된 중세도시라는 것 외에는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 찾아가면 어쩌나, 기대했던 풍경은 맞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시간 반 이상 고속도로를 달려 에보라 입구에 도착했을 때, 도시로부터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수도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 좀 찍고 가자, 레일라의 제안에 차를 대고 잠시 거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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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된 수도교였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다는 로마시대의 거대한 수도교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대로 남아있는 비바람과 시간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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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아 도시를 둘러싼 성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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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전반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중세도시라고 하기에는 건물들이 깨끗하고 현대적이어서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로 찾아온 것은 맞나. 공원 한쪽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을 바라보다 지랄두 광장(Praça do Giraldo)을 향해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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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은 리스보아에서 처음 만났던 흰색과 노란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낡은 골목과 최근 칠한 듯한 벽을 따라 화사한 색들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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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오자 길이 크게 넓어지며 번화가가 나타났습니다. 에보라의 중심가에 가까이 온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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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전쟁 영웅 지랄두(Geraldo Geraldes)의 이름을 딴 광장은 때로는 권력 암투의 장으로, 때로는 종교재판의 장으로 화했다고 합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의 피가 흘렀고,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이곳에서 불에 태워졌답니다. 광장을 바라보며 서 있는 상 안토니우 교회(Igreja de Santo Antonio)의 육중한 건물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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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지려는 머리를 흔들고 대성당(Sé Cathedral)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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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대성당을 한바퀴 빙 돌았습니다. 와이프와 함께 서둘러 뛰다걷다했지만, 레일라와의 약속시간은 지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각자 돌아다니다 대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걱정과 달리 느긋한 표정으로 쉬고 있는 레일라를 만나 양해를 구하고 에보라 로마 신전(Templo Romano Évora)을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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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트(Corinth)양식의 기둥이 인상적인 에보라 로마 신전은 2세기 경 전쟁의 신 다이아나(Diana)에 바치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컸으면 좋았겠다 생각하며 언덕쪽으로 나 있는 정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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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을 구경하고 언덕 위에서 에보라 시내를 내려다봤습니다. 옅은 노란색과 벽돌색이 인상적이었는데, 깨끗하게 칠해진 벽 때문인지 낡은 도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이 도시가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왔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줬습니다. 도시의 풍경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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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으로 돌아가 레일라와 함께 상 프란시스쿠 성당(Igreja de São Francisco)으로 향했습니다. 에보라 특산이라는 코르크(Cork) 기념품들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어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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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은총의 성당(Igreja da Graça)에 들렀습니다. 굳게 닫혀 있는 성당 문앞을 서성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본 마카우(Macao)의 성 바울 성당(Ruínas de São Paulo)이 떠올랐습니다. 폭이 무척 좁은 종탑을 올려다보다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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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상 프란시스쿠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15세기에 건립된 성당은 그 규모도 압도적이지만, 뼈로 지어진 예배당(Capela dos Ossos)으로 유명합니다. 포르투갈에 오면서 꼭 들러보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와이프와 레일라는 들어가지 않으려 작심한 것 같았습니다. 성당 앞의 식당에 자리잡고,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조금 더 집중하는 것도 좋겠지, 혼자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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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2층 테라스에서 에보라 시내를 내려다봤습니다. 멀리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에보라 로마 신전의 뒷편에서 보는 풍경보다 좀 더 아기자기해보이는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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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서 가져온 수집품들로 가득찬 복도를 지나, 마침내 뼈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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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의 건립은 17세기였다고 합니다. 묘지가 가득차 시신의 처리가 곤란해지자, 수도사들의 뼈를 모아 예배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약 5천개의 뼈로 가득찬 예배당 입구에는 “우리는 이곳에 묻혔으며 너의 뼈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명상에 빠졌다고 합니다.

숨이 막힐듯한 압도적인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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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로 이뤄진 벽은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예배당 입구에 손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틈으로 해골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머리에 손 끝을 대보았습니다. 차가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해골은 미지근한 온기를 전해왔습니다. 어쩔 줄 모르다 잠시 눈을 감고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편안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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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와이프와 레일라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단지 식당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식당이자 식료품점이자 마트 역할을 하는 곳 같았습니다. 에보라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이 식당의 주인아저씨에게 난생 처음 ‘아이스 커피’를 가르쳐줬다며 레일라가 미지근한 커피를 건네왔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커피에 얼음을 넣어 먹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음료를 더 주문하고 식사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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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칼라우(Bacalau)였습니다. 리스보아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조금 짜고 질긴 맛이었는데, 무척이나 소박한 것이 이쪽이 원형에 가깝지 않나 생각되었습니다. 함께 나온 채소와 계란까지 싹싹 먹어치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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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POS)로 계산하는 주인아저씨를 흥미롭게 바라보다 식당을 나섰습니다. 잘 먹었다는 인사에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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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길어지는 시간, 골목길을 되짚어 차로 향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세상의 끝

신트라(Sintra) 페냐국립왕궁(Parque e Palácio Nacional da Pena)을 나와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헤갈레이라별장(Quinta da Regaleira)으로 가려면 신트라(Sintra) 중심가까지 내려가서 갈아타야했는데, 예정보다 늦어진 일정이라 중심가에서 조금 기다려보고, 바로 탈 수 없다면 신트라의 다른 유적들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걱정했던대로 갈아탈 버스는 꽤나 늦게 도착했고, 중심가의 헤비 트래픽은 차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카스카이스(Cascais)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다음에는 신트라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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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카이스는 호카곶(Cabo Da Roca)에서 가까운, 대서양 연안의 휴양도시입니다. 고급 빌라들과 리조트가 많고 대서양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드라이브나 산책을 하기 알맞은 곳입니다. 신트라로부터 1시간 쯤 달려 해안 산책로의 출발점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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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잔잔하지만 짙푸른 바다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멀리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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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낚시와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서양에서의 수영이라, 속이 훤히 들여다보는 짙푸른 색으로 뛰어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다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지옥의 입(Voca Do Inferno)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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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향하고 있는 고급 빌라촌과 리조트를 두리번거리다, 이런 곳은 비싼가, 잠시 찾아보니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습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하루 이틀 쯤 묵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다를 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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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입에 도착했습니다. 오래전 포르투갈사람들은 바다로 입을 벌린 해식동굴을 보고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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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난 길을 따라가보니, 무서운 이름과는 달리 사람들은 여유있게 낚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바다가 이들에게는 낚시터 혹은 수영장이라는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습니다. 스케일이 다른건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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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들러 호카곶이 있을 쪽을 바라보다 이곳에서의 일몰도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예 일몰까지 보고 갈까, 얘기했더니 초행길에 야간운전은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와이프의 얘기가 돌아왔습니다. 서둘러 호카곶으로 출발했습니다. 리스보아(Lisboa)에 늦은 밤 도착하지 않으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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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시간 여를 달려 호카곶에 도착했습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오래된 마을과 산길, 절벽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은 운전하기 만만치 않았습니다.

호카곶은 유럽의 서쪽 끝으로,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이베리아반도(Península Ibérica)의 코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에서 신구할아버지가 홀로 찾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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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곶의 기념비에는 카몽이스(Camoes)의 시가 적혀있습니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CAMOES)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다

호카곶의 또 다른 별명은 세상의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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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올라왔습니다. 뭔가 한고비를 넘었다는 기분도 들고, 새로운 도전과 인간의 의지라는 단어도 떠올랐습니다.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한참 동안 마주하고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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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은 명상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굳게 잡은 두 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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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이어진 길을 내려가다 문득 셀피(Selfie) 한 장을 남겼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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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에서 다시 대서양을 마주했습니다.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왔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다들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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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차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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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오기 전 다시 한번 세상의 끝을 바라봤습니다.

… to be contined

달의 산

포르투갈(Portugal) 여행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렌터카를 고려했습니다. 리스보아(Lisboa)와 포르투(Porto) 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내륙 소도시들과 대서양의 해안도로를 달려보고 싶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운전은 조금 긴장되었지만 국제면허증을 발급받고 포르투갈의 교통체계를 찾아보며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리스보아에서의 3일째 아침, 예약해 둔 렌터카를 받으러 리스보아공항(Aeroporto de Lisboa)으로 향했습니다. 레일라는 리스보아 박물관 투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신트라(Sintra)와 카스카이스(Cascais), 호카곶(Cabo Da Roca)를 돌아보는 오늘의 일정은 와이프와 둘이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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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도착한 탓에 공항 풍경이 생경했습니다. 처음 와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두리번거렸습니다. 포르투갈에서의 아웃은 포르투공항(aeroporto do porto francisco de sá carneiro)입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장면들을 기억속에 차곡차곡 채워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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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에 적힌 위치에서 렌터카 업체 담당자를 찾았습니다. 보이지 않아 다른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셔틀에 간 것 같다고 잠시 기다려달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담당자가 오자  손을 흔들어 나를 가리키며 네 고객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열정적인 소개가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내 담당자가 안내하는 셔틀을 타고 차고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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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10여 분 쯤 셔틀로 이동하니 제법 큰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레일라의 설명으로는 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곳이라는데, 익숙한 유럽 브랜드를 비롯 다양한 브랜드의 차량들이 운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외 렌터카 초짜답게 두리번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가니, 부스에 있던 직원이 환영인사를 해왔습니다. (역시나 온몸을 흔들고 손짓을 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직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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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를 검토하고 추가로 화재(!)보험을 들고 하이패스 예치금을 지불하니 차량을 인도해줬습니다. 인도 직전에 다시 점검하고 세차까지 해주는게 흥미로웠습니다. 물이 뚝뚝 흐르는 손잡이를 당겨야했지만요.

처음 운전해보는 메르세데스였습니다. 기어는 어디있나, 시트 포지션은 어떻게 바꾸는 건가, 네비게이션에는 왜 영어가 없나, 차폭이 꽤 넓네, 엉덩이는 왜 이리 굼뜬가, 한참 헤매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네비게이션 언어를 영어로 변경하지 못해, 구글맵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써보는 구글맵 네비게이션과 처음 경험하는 교통체계(대부분 회전교차로입니다)가 익숙하지 않아 몇번이나 길을 잘못 들고 나서야 신트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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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는 리스보아에서 서쪽으로, 카보 다 호카를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달의 산’이라는 뜻의 세라(Serra)산을 중심으로 10세기 무어(Mouros)인들이 세운 난공불락의 무어성(Castelo dos Mouros),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페냐국립왕궁(Parque e Palácio Nacional da Pena),  미로와 인공 동굴, 기묘한 건물들로 가득찬 헤갈레이라별장(Quinta da Regaleira), 우아한 비밀의 정원 몬세라트궁전(Parque e Palácio de Monserrate) 등 수많은 유적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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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 입구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천천히 걸어올라갔습니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신트라역이 있는 중심가에 도착해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시스템이었습니다. 보통은 리스보아에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역에 내려 434번, 435번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게 일반적이라고 했는데, 도착하고 나서야 입장권이라던가 성과 성 사이의 거리라던가 버스 이동 시간 같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곳이었고, 돌아보려면 하루를 꼬박 써야 하는 상황인데다 무엇보다 관광객이 너무 많았습니다. 정류장에서 30분 넘게 줄을 서고 나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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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과 산길을 거슬러 30분 쯤 달려 페냐국립왕궁에 도착했습니다. 페냐국립왕궁은 독일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는데,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의 유럽 성보다는 동화속에 나올 것 같은 예쁘고 알록달록한 성에 가까웠습니다. 입구에서 15분 쯤 낮은 언덕을 오르자,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성벽과 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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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산 꼭대기에 보이는 무어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무어성은 그야말로 전투성, 험한 능선을 따라 지은 위협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페냐국립왕궁은 흡사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하고 낮은 건물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 방어시설들을 보며 조금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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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안은 마누엘 양식의 회랑과 벽화, 스테인드 글래스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규모만큼이나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복도를 따라 몇 개인가의 방을 지나치자 금새 출구로 나왔습니다. 작기는 작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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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테라스에 서서 바라보니, 신트라 멀리 리스보아가 보였습니다. 반대편으로 돌아가자 대서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한 외형과는 달리, 지리적 요충지에 지은 성은 맞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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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참 마주했습니다. 청량한 바람이 가슴 가득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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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느새 오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올라올 때 소요된 적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고, 서둘러 길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카스카이스와 카보 다 호카를 돌아보려면 아무래도 계획을 조정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 to be continued

마음은 무뎌질 줄 모른다

“어둡고 짙은 바다로 떠나는 연인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희뿌연 약속만을 남기고 간다. 항해를 마치고 온 고단한 배는 그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돛을 휘날린다. 연인은 대서양의 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을 뿐 영원히 그녀의 마음 속에 있다. …운명 또는 숙명이라는 뜻의 파두는 바다로 떠나는 이의 향수와 남은 이의 그리움을 나타낸다. 지금도 리스본 골목을 파고드는 파두Fado, 시간이 흘러도 날이 선 마음은 무뎌질 줄 모른다.”  – 송윤경

대서양, 항해, 파두, 포트와인(Port wine), 아줄레주(Azulejo), 노란 트램(Tram)을 만나러 포르투갈(Porgutal)로 떠난 길입니다. 바랜 색과 어스름한 빛, 소박한 음식과 달콤한 와인으로 가득했던 시간은 기억에 깊은 각인을 남겼습니다. 흐려지지 않는 기억속에서 차곡차곡 그 순간들을 꺼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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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던 어느 여름날 푸랑크푸르트(Frankfurt)행 비행편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직항편이 없다보니 어딘가를 경유해야했는데, 마침 독일로 가는 마일리지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3시간의 대기 후 다시 3시간 비행이라는 기나긴 여정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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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행 항로의 트래픽이 많아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지루하기는 했지만, 연결시간이 단축된다는 생각도 들고 연결시간을 3시간 이상으로 잡지 않았으면 안될 뻔 했네,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결시간 1시간 반만에 입국하고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던 3년 전 모스크바에서의 기억도 났습니다. 따지고보면 참 간이 컸습니다. 비행편을 놓치기라도 하면 예약을 줄줄이 미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50분 정도 늦게 비행기는 활주로로 이동했습니다. 차가 밀리듯 줄 서있는 비행기들의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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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몽골, 러시아와 북극을 지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독일도 처음이었는데 하루 정도 머물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발권할 때 그냥 지나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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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올 때마다 보는, 구름이 낮게 떠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계속 눈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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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꼭 뭔가를 빼놓습니다. 체코에 갈 때에는 프라하(Prague)에서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로 가는 방법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떠나기 전 날 찾아보니, 옆동네도 아니고 고속버스로 3시간 반을 가야 하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못 갈 수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버스편을 찾고 예약하고 바우처를 출력해야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인천 – 프랑크푸르트 항공편과 프랑크푸르트 – 포르투갈 항공편을 각각 구입하고는 득의양양해하다가, 공항 카운터에서 두 항공편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독일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짐을 찾은 다음, 다시 출국장으로 이동해서 체크인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해야 했습니다. 터미널 두 군데의 동선도 복잡해서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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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터미널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며 모든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모노레일을 타고나서야 느긋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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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행 비행편에는 독일인과 포르투갈인이 각각 절반 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승객 중 동양인은 우리 뿐인 것 같았습니다. 단체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듯한 포르투갈 학생들의 큰 목소리에 익숙해질 때 쯤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창 밖으로는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대를 거꾸로 여행한 덕에 오후에 출발하고도 15시간이 지나서야 해지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두꺼운 구름 위로 사라져가는 빛을 한참을 좇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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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리스본은 영어식 표현입니다. 포르투갈식이 훨씬 매력적이죠.) 공항에 도착했을때, 시간은 이미 자정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출발 지연 탓이었는데, 호텔에 부탁해서 마중나오기로 한 기사님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약속시간이 이미 한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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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입국절차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독일과 포르투갈이 모두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 가입국인 덕분에 입국심사도 세관검사도 없었습니다. 마치 국내선을 타듯이 비행기 내려서 짐찾고 끝이었습니다. 이런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짐을 찾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느긋한 컨베이어 벨트는 한참 만에야 짐을 내줬습니다.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1시를 바라볼 때 쯤에야 공항 밖에서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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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한 늙은기사님은 오랜 시간 기다렸음에도 환한 미소로 맞아주셨습니다. 20년은 된 듯한  낡은 벤츠에 올라 30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리스보아에서의 첫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 to be continued

 

미스터리한 추억 in 불가리아

사진은 실재의 재현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실재가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미스터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2006년 가을, 불가리아의 소도시 이흐티만.

곧 비가 내릴 듯 우중충한 날씨에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거닐다 만난 풍경이 떠 올랐다.

이 작은 도시에 서커스라.

어렸을 때 대전에서 보았던 서커스단이 생각났다. 그때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었었는데.

아마도 관객을 모으기 위해 동네 퍼레이드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 낡은 노란색의 서커스 차량은 묘하게 흐린 날씨와 동네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있었다.

삼삼오오 어른들 손을 잡고 입장하는 동네 꼬마들을 보며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여기 진짜로 코끼리도 있어요?”

“코끼리는 없지만 브리짓 바르도는 있단다.”

……. 브리짓 바르도라. 도대체 왜 그런 대답이 나왔을까 싶다. 한 시대를 풍미한 금발의 미녀 배우, 이 곳에 오다 정도의 느낌이랄까.

가끔씩 이 사진을 생각하며 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마치 그 시간과 대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몽환적인 느낌이다.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내가 그이와 나누었던 이야기의 추억은 과연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아마도 사진의 추억이란 이처럼 실재와 몽상을 넘나 들어서 더 즐거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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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timan, Bulgaria. / Fall, 2006. / Pentax *ist DL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