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를 비추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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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Pokhara)는 안나푸르나(Annapurna) 입구에 위치한 네팔(Nepal)의 작은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페와(Fewa)호수가 자리하고 있고, 깨끗한 숙소와 수많은 편의시설들, 예쁜 호반 카페테리아들이 즐비합니다.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한 전진기지지만,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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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는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시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리 큰 도시는 아닙니다. 걸어서 두어시간 정도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길 한가운데에 모모(Mono)를 파는 손수레가 놓여있고, 열대과일과 특산품 가게가 이국적이고 여유로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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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주스를 파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천원을 내면, 손으로 돌리는 믹서에 과일을 갈아서 작은 유리잔에 찰랑찰랑하도록 내줍니다. 바삐 길을 가던 사람이라도 다 마실때까지 멈춰설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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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버스 지붕에 올라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다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지붕 위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줍니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하지만, 해발 3, 4천미터를 넘나드는 꼬불꼬불한 길에서 마주칠 때면 아찔한 기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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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가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올드 바자(Old Bazzar)라 부르는 구시가가 있습니다. 현재의 호반도심이 개발되기 전 중심가였다고 하는데, 다른 네팔의 도시들처럼 수백년 이상은 되었을 장면들이 남아있습니다. 낡은 풍경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제격인 곳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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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호수는 안나푸르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새벽에는 일출과 함께 안나푸르나의 반영이 비치고, 저녁이면 호수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배 한 척인데, 우리 돈으로 7천원 쯤을 내면 선착장에서 빌릴 수 있습니다. 배를 손수 저어 호수를 돌아다니거나, 그냥 하루 종일 배에 누워 호수에 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노를 젓던 파란 눈의 청년은 해질녘까지 그대로 풍경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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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호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Machapuchare)입니다. 네팔사람들은 마차푸차레를 ‘마의 산’이라고 부르며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여깁니다. 실제로 보니 그 웅장함에 압도되는 기분이었고, 왜 네팔사람들이 평생을 신과 함께 살아가는 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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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쯤 떨어진 곳에는 사랑콧(Sarankot) 전망대가 있습니다.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뿐 아니라 주변 고봉들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높은 봉우리만큼 깊은 계곡의 풍경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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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 사랑콧에 올라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 맑은 눈물 한방울로 풍경 속에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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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네를 구경하고 올드바자로 물건을 팔러 간다는 나팔사람들을 따라 길을 내려왔습니다. 포카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티벳 망명자 거주지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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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르초(風幡)만이 쓸쓸히 나부끼는 마을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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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룸비니(Lumbini)로 이어진 싯달타 하이웨이(Siddhartha Highway)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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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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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장 옆 야산을 허물고 터를 닦았다. 나는 이 때 이 양반이 차 장사나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멍하이, 2015]

사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가 조탁한 세계를 말하는 것 보다 괴로운 일이다. 언어로 묘사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세계와의 만남 또는 충돌 같은 것이어서 프로토콜 맞추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표정, 채취, 숨소리, 목소리, 생김새, 어투, 습관 따위를 섞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다른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내 세계로 걸러낸 주관이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주관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어서 내 세계로 걸러지는 것 말고는 받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를 그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능이다. 그는 반드시 나로 이해된다. 근원적 한계는 절망과 고통이다.

사내를 만나면서 시간의 두께만큼 사진이 모였다. 늘어놓고 보니 그가 조금 보인다. 글 몇 줄 붙여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말 하지마. 난 이제 한 살이여!” 세상 배우고 연습하는데 한 갑자 보냈단다. 이제 살아내기 시작한다는 사내. 용렬한 글로 무구한 어떤 것이 훼손되거나 멋대로 규정되지나 않을까 걱정 되지만 이 사내를 말하고 싶다. 그는 이 용렬한 글에 갇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매섭거나 모질거나 거칠거나 소박하거나 무구한 것이 뭉치고 섞여서 만들어진 사내는 한잔 술에 늘어진 빤스 고무줄처럼 자유롭다. 결핍을 버무려 불쏘시개로 태워 쓴다.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에 변덕스럽지만 동의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한다. 즉흥적이지만 손발이 움직일 때를 알고 행동 해야 할 때 사리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뿜지만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 따위를 담배연기에 짱박아 뱉을 줄 아는 낭만이 있다.

“야~피울아!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여서 그게 그이야긴데 본론이 무엇이건 결말은 언제나 자기자랑으로 갈무리한다. ‘기승전자기자랑’ 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맘에 들어 한다. 이 별명은 내가 지어준 것이다. 굳이 생색내는 이유는 누가 지어 준 것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먹기 때문이다. 매번 그렇다.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후천적 습득의 결과다. 천성은 공인이지 싶다. 천지를 후비고 다니다 차가 나는 산에 들어서 저 닮은 사람들과 섞여 놀았다. 그러다가 차 만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차는 밥이 되었고 사내를 뜨겁게 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 불러 모아서 놀고 싶다.
황제가 마시던 차를 만들어야지.
사람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주고 싶다.
그가 그린 풍광(그는 늘 ‘그림’이라고 말한다) 가운데 내가 아는 몇 가지다.

꿈의 성공은 꿈의 달성이 아니다. 내가 열 개의 풍광을 그렸을 때 그것을 전부 이루겠다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그린 풍광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 대부분의 풍광이 아직 그림으로 있지만 … 달성되고 달성하고 달성 할 것에 관한 정렬이 아니라 풍광(꿈 또는 그림 어떤 것) 그 안에 삶의 중심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물건은 품는 순간 의미와 가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꼼짝 없이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꿈은 … 꿈꾸는 자는 뜨겁다.

난 사내의 서사에는 관심 없다. 몇 살이고 고향이 어디고 따위의 과거 찌꺼기나 후비적거려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 뜨거운 물건을 아직 품고 있는 사내. 그가 그려놓은 그림과 만들어질 풍광이 궁금할 뿐이다.

그는 ‘바람의 꿈’ 그것을 품고 산다.

그대도 가슴 뛰는 풍광 몇 개쯤 품고 있겠지!

2015년 멍하이 창대한 땅을 고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창(차를 만드는 제조회사)을 열었다. 이방인이 이룬 창업이다. 고수차(100년 이상 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 바람이 불면서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10 여년 축적한 힘으로 공장 옆 산을 허물고 거대한 터를 닦았다. 고향에서 친구를 청해 축제를 열었다. 이 사내가 그림을 그리고 실현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고 그것을 심을 땅을 닦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그만큼 세운다. 맘에 안 들면 허물고 기다린다. 다시 때가 오면 또 쏟아 붓고…이곳은 그가 ‘바람의 제국’을 상상하고 그린 땅이다.

R0012654[고향에서 친구들이 왔다. 잔치를 벌이기 전에 고향방식으로 의식을 치뤘다. 뭉클한 감동이 일렁거렸다. @멍하이, 2015]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그가 보냈을 시간을 생각했다. @멍하이, 2015]

 

2017년 쿤밍, 복합문화공간을 열다.
차 시장을 버리고 경제개발구 심장으로 본사를 옮겼다. 생뚱맞은 이곳으로 옮기는 것을 모두들 의아해했다고 한다. 차 사업하기엔 인프라가 모여 있는 차 시장이 적합하다는 것은 상식에 관한 것이다. 도박 같아 보이던 시도는 ‘복합문화공간’을 겸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중국 전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 분야전문가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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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 차산에 초제소와 객잔을 만들겠다고 또 땅을 밀어 놓았다. 완전 신이나서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내려다 보이는 구름이 낮설기만 했다. 이무에서 노가를 통째 업어와서 덩그러니 세워놓았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다. @의방초제소터에서, 2017]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쿤밍,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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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의방차산, 2017]

[사내들의 방황이란 것이 본디 거칠고 고단한 맛이 좀 있어야 제격인 것이다. @시솽반나, 2017]

2018년 ‘바람의 제국’ 건설 중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벅찬 일이라고 했다. 공장건물이 들어서고 나면 이어서 객잔, 공연장, 전시장, 연구소 등이 차례로 들어설 것이다. 한 귀퉁이 뼈져달라고 했더니 아무 때나 와서 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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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과정을 조금이라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이 풍광은 감격이다.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제국은 공사중. @멍하이, 2018]

[새벽까지 취했다. “이 돌대가리 같은…” “해봤어?…해 보고 말해…”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그림을 그려…그리고 가…똑바로 가” “야이 멍청한 놈아!”. 자동 재생 중이다ㅠㅠ. @쿤밍, 2018]

[차산에 가면 표정이 바뀐다. 편하고 순하다. 돼지 쓸게 받아 들고 흐뭇하다거나 꼬봉 한놈 잡아 놓고 썰을 푼다거나 새로운 차밭은 획득한다거나 모두 즐거운 일이다. @멍하이, 2018]

R0073197[다시 그림을 그린다. @젠수이, 2018]

 

 

 

 

 

떠남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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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는 인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한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부유浮遊했고 그렇게 수만 년을 흘러 다녔다. 매순간 만나는 위험과 공포에서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날선 긴장 말고는 없다. 여행을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과 흥분은 꼬리뼈 흔적마냥 부유하던 그들의 유전자가 남은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떠남은 본능적 작용이고 새로운 세계(세상)와의 만남은 필연적 결과일 수밖에 없다.

기필코 떠나야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내 주변머리로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삶이 정주가 아니라 여행이길 바랬다.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이 삶을 닮은 것인지 삶이 여행을 닮은 것인지 아니면 삶이 여행 그 자체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삶이 여행이라면 나는 왜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것인가!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나를 떼어내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숭고한 의식이며 순례다. 나를 내게서 떼어내 낯선 곳에 팽개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 숲에서 멀어져야 숲이 보인다.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나를 떼어내 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기실 순례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안목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순례자를 만날 수 있다. 회사에서 거리에서 마트에서 만원 지하철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간다. 그것은 마치 오체투지의 간절함이나 절정과도 같아서 뚜벅뚜벅 진리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운남으로 가야할 이유 따위는 없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함과 익숙한 곳에서 그리던 낯섬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떠나온 그곳이 두발 꼭 붙이고 있어야 할 곳임을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돌아 와야 할 이유를 얻는다. 일상의 찬란함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에서 만원 버스와 지옥철에서 섞이지 못하고 박리된 나는 꼼짝없는 이방인이다.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객관적 기록으로 관조할 수 있다. 동동거리는 세상을 낯선 곳에서 발견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곳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처는 치유된다.

여행은 육십억 가운데 하나이던 내가 ‘육십억 가운데 유일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따분하고 존재감 없던 내가 나로 빛난다. 일상이 미늘달린 바늘을 삼킨 것 마냥 토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여행은 온전히 내 것인 냥 순하고 편안하다. 이 시간 안에서 비로소 나는 일상과 유리되어 일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아웃포커싱 되고 나는 세상의 주연이 된다.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움직이는 것이 달라졌다. 어제보다 찬란한 오늘이다. 이 순간도 결국 삶 한 덩어리 뭉툭 베어 쓰는 것이므로 삶의 살덩어리다. 일상에 함몰되어 쪼그라든 나는 사라지고 빛나는 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여행은 ‘만남’과도 맞닿아 있다. 떠나서 만나게 되는 것인지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떠남은 만남을 전제하고 만남은 떠남을 전제한다.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으니 결국 떠남과 만남은 동의어인 셈이다.

나를 떠나서 나를 만나고 나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자.

어쩌자고 또 가슴이 벌렁거리는가. 길 떠났던 먼 조상들의 부름이 잠들었던 유전자를 깨워놓고야 마는 것인가. 생활에 목매고 있지만 짐짓 그렇지 않은 듯 살 수 있길 바란다. 나란 놈은 굴림 하는 것도 굴림 당하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 생활과 관습의 봉인을 해체하고 나란 인간에게로 좀 더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내면적 울음에 기꺼이 보내는 위로, 그리고 아직 가 보지 못한 길로 들어서고 싶다. 내면의 깊고 광활함을 확인하고 싶다. 열린 가슴으로 교만을 내려놓고 더 낮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라. ‘해냈느냐?’라는 세상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해냄’으로 ‘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이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여서 내겐 여간 곤혹스런 것이 아니다. 움켜질수록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것. 정제되지 못한 욕망에 대한 반성, 세상의 욕망은 성숙한 심연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잘 쓰고 싶다. 여행은 그것을 배우는 것이다.

 

관도고진,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일요시장,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with GR

 

 

 

Strum’s

Strum’s

110 Jupiter St. Bel-Air Makati City
Tel. 895-4636, 890-1054
Open from 5:30pm to 2:30pm, Monday to Sunday

스트럼은 마닐라의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입니다. 마닐라에 간다면 꼭 들러야죠.

늦은밤이면, 가게 앞에서 꽃 파는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될겁니다. 장미 한 송이를 건네며, 유어 파인 레이디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어, 라고 말하겠죠. 거절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했다잖아요. 세 번 쯤 마주치면 꽃 대신 미소를 건네며 “오늘은 늦었네?”라고 말을 걸어올겁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그 날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게 되겠죠.

아주머니 옆에는 나무 상자를 끈으로 목에 걸고 까치담배를 파는 아저씨가 있을 겁니다. 담배를 고르면 불을 붙여주는데, 가끔 직접 입에 물고 불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당신이 취해보인다거나, 당신의 하루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거나 하면 말이죠. 어떤 위로라고 느껴질 겁니다. 그리고, 그 담배 맛있을 겁니다.

가게에 들어가면, 아주 포멀한 정장을 입은 늙은 웨이터가 자리로 안내해줄겁니다. 마닐라의 ‘진짜’ 음악이 연주되는 스테이지 바로 앞에 앉을 수도 있고, 연주자와 관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도 있는 먼 구석에 앉을 수도 있겠죠. 메뉴는 없습니다. 당신이 마시고 싶은 걸 얘기하면 적당히 가져다줄겁니다. 그리고, 가게 앞의 아주머니처럼, 늙은 웨이터도 세 번 쯤 마주치면 당신을 기억할겁니다. 그 증거로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대신 “늘 드시던 걸로?”라고 물어올 겁니다. 멋진 일이죠.

마닐라에 간다면 스트럼에 세 번 쯤 가보세요.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적어도 셋은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이 건네는 하루의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멋진 일이겠죠.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이 당신을 기억하는 공간이라니. 그리고, 어쩌면 마닐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장담하는데, 그건 좋은 일입니다. 세상 어딘가에 사랑하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 존재한다는 건 여행자가 되는 첫걸음이거든요.

주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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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교토(京都)를 가보지 못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악전고투 끝의 이직과 포르투갈로의 늦은 휴가로 일정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지간히 좋아하는 도시,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도 훌쩍 떠나게 되는 곳, 교토로의 주말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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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도착한 간사이공항(関西国際空港)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습니다. 단풍시즌 마지막 주인데다 금요일 아침이라 잔뜩 긴장했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문과 홍채 등록 프로세스를 별도로 구축한 것이 주효한 것 같았습니다. 별도 카운터를 설치하고 한국어, 중국어가 어느 정도 되는 직원들이 진행을 돕고 있었습니다. 처음 일본에 오시는 듯한 분들의 “대체 지문등록은 왜 하는거냐?”는 클레임에 씁쓸한 기분을 공유하면서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여러 번 경험해도 매번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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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공항리무진 왕복을 끊고 버스에 올라 오사카만(大阪湾)을 지났습니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고 했는데, 청명한 하늘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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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교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한적한 풍경은 볼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길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오사카-교토 간 전철은 영영 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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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방문 때 이세탄(伊勢丹)백화점의 라멘골목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늘 가던 스미레(すみれ) 교토점이 없어졌으니 새로운 라멘집을 찾아갔습니다. 트립어드바이저 라멘 부문 2위, 음식점 전체로는 25위를 차지한 혼케 다이치아사히 다카하시(本家 第一旭 たかば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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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가게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잠깐 세어보니 55명이었습니다. 허허.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것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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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납품하는 아저씨의 바쁜 모습을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한 시간 남짓,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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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오면 받는 인상 중 하나는, 작은 가게, 큰 가게를 떠나 대부분의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무척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곳 역시 그랬습니다. 바쁜 스탭들의 모습이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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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와 특제라멘을 주문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꽤 괜찮은 라멘집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푹 우려낸 돼지뼈 육수에 두 종류의 차슈와 신선한 파를 푸짐하게 얹어서 내주는 라멘은, 보통의 일본 라멘보다 덜 짜고 덜 느끼했습니다. 가게에 외국인이 많은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메뉴에서 한, 중, 일 3개국의 흔적이 느껴지는 점이었습니다. 군만두는 중국식으로 한쪽만을 바삭하게 구워서 내주고, 사이드 메뉴에는 김치가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걸 보니 한국식이었습니다. 공기밥도 주문할 수 있는데, 라멘만 주문하면 주지 않던 쓰케모노(漬物)를 함께 내줬습니다. 라멘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 다양한 메뉴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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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清水寺)에서 가까운 숙소는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짐만 내려놓고 저녁을 보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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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데라마치도리(寺町通り)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맛보지 못한 교토규(京都牛) 스테이크집 하푸(Hafuu)에서 저녁을 먹고, 부탁받은 차를 사러 잇포도차호(一保堂茶舗) 교토 본점에도 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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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간에 맞춰 갔지만, 하푸는 예약이 모두 차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예약받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고 더 이상은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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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잇포도차호를 찾아갔습니다. 1717년 영업을 시작했다는 차 명문가는 외관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내공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차를 시향하거나 마실 수 있고, 체험도 할 수 있는 매장 안에서 차향에 취해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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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받은 차와 두 종류의 티백을 구입하고 점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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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가게의 시바를 쓰다듬어주고 가와라마치(河原町) 방향으로 길을 걸어내려갔습니다. 양쪽으로, 고풍스럽고 세련된 상점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산책하러 와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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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지카키모토(紙司柿本)에 잠시 들렀습니다. 가미지라니, 자부심 가득한 이름답게 가게 안은 온갖 종류의 종이와 공예품들로 가득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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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카드를 구입하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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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마지않는 앙제르(ANGERS)에 도착했습니다. 일년만에 찾은 매장에는 여전히 세련되고 흥미로운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1층에서 신형 융한스(Junghans)의 블랙 페이스와 70년대 펠리컨(Pelikan)에 정신을 뺏겼다, 2층에서는 요모우또오하나(羊毛とおはな)의 음악을 들으며 매대 사이를 걸어다녔습니다. 브래디(Brady)의 꽃모양 파우치를 들여다보다,  3층의 무민(Muumi) 한정판 식기 세트를 한참 노려보고 나서야 가게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위험한 방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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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쇼윈도의 순록 모형에 손을 흔들고 산조(三条)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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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척이나 바쁘군, 스시노무사시(寿しのむさし 三条本店)의 도시락을 잠깐 구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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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헌책방을 흘낏 들여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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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페(Parfait)전문점의 모형을 신기하게 쳐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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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시조(祇園四条)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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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가와(鴨川)를 따라 늘어선 가시와야초(柏屋町)의 음식점들에는 오늘도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한번쯤은 저곳에서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엄청 취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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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건너 기온(祇園)거리로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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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들의 불빛 사이를 걸어 이즈우(いづう)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에서는 아무래도 이요마타(伊豫又)지만, 한번 쯤은 사바스시(鯖寿司)로 이름 높은 이곳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1781년 열었다는 가게는 작고 정갈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품격있는 공간이 묘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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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마타(400년)보다 업력이 짧다(236년)고는 하나, 그 세월이 결코 만만치 않겠습니다. 둥글게 말린 다시마를 벗겨내고 맛을 보니, 과연, 적어도 사바스시로는 이요마타보다 한 수 위라고 느껴졌습니다. 기온마쯔리(祇園祭)의 공식 지정 도시락이라는 설명도 납득이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가끔은 들러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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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스시 외에도 도미와 여러 종류의 초밥을 맛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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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가는 길에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있었습니다. 확실히 이요마타와는 방향이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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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도 먹었겠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기다란 줄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당고를 사기 위한 줄이었습니다. 눈 짐작으로 대략 30명 쯤,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무슨 당고길래 이런 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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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넘게 줄을 서서 받은 당고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떡을 숯불에 구워 콩가루를 듬뿍 뿌린 뒤, 말린 바나나잎에 조청과 함께 싸주셨습니다. 뭔 당고를 이렇게까지, 싶으면서도 과연 일본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작 110엔의 당고지만, 그 정성에 살짝 감동까지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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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산타 장식을 올려다보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성냥갑 마을

포르투갈에서의 5일째, 리스보아(Lisboa) 일정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여행의 후반부를 보낼 포르투(Porto)까지는 320km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포르투로 향하면서 몇 군데의 도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의 도시, 코임브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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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까지는 210km로 제법 먼 거리였지만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포장상태가 좋았고, 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아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사실 코임브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적지는 네비게이션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템포를 맞추느라 시속 200km 가까이 달린 탓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두시간이 채 안 걸려 코임브라에 도착했습니다. 대학 부속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있는 것 같았는데, 대학도시는 처음 와보는 터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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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대학교는 1290년 설립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입니다. 201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언덕위의 대학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설립자인 디니스1세(Dinis I)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로는 다소 낡았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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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엽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코임브라대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제게는 큰 영광일 것입니다, 엽서를 보여주는데 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원하시는대로,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엽서도 마음에 들어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아뿔싸, 차에 지갑을 두고 온걸 알았습니다. 실수다, 지갑을 두고 왔다, 정말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엽서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한 장을 고르세요. 당신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순간이 지나고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과 코임브라대학교를 기억하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구대학의 건물들이 그려진 엽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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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학교(Velha Universidade) 광장으로 들어서자 주앙3세(João III)의 석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인 돌아다닐 시간은 없어서 광장 주변과 탑, 도서관 정도를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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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방문을 뒤로 하고 코임브라대학교를 떠났습니다. 시간을 좀 더 할애해서 돌아봐도 좋았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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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레일라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좋겠지, 나보다 훨씬 잘하니까 싶어서 키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을 자처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뒷좌석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테일 스핀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좌우로 흔들림이 제법 있었습니다. 줄곧 멀미가 날 것 같다던 레일라의 얘기가 이해되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메르세데스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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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목적지인 아베이루(Aveiro)로 접어드는 고속도로에서 산불을 만났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고온현상으로 여기저기 큰 불이 나고 있다더니 실제로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산불을 본 것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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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베니스(Venice)라고 불리우는 아베이루에서 운하의 풍경을 만났습니다. 운하를 중심으로 예쁜 건물들이 서있었습니다만, 어쩐지 전형적인 관광지로 보였습니다. “그냥 갈까?” 레일라의 제안에 따라 곧장 코스타 노바(Costa Nova)로 차를 돌렸습니다. 아졸레주(Azulejo)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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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여 분을 달려 코스타 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코스타 노바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포르투갈의 도자기 제품명으로 더 알려졌습니다만, 본래 대서양과 아베이루강 사이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코스타 노바 제품에 새겨진 로고는 이 마을의 독특한 건축양식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찌보면 인형의 집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성냥갑 같기도 한 형형색색의 스프라이트 무늬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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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의 집들이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달이고 돌아오지 못했고, 안개가 자욱한 지역 특성상 돌아와서도 자기 집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길을 잃지 말라고 각자 독특한 색과 무늬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기만 한 것 같은 풍경이 사실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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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과 무늬의 집들 사이를 질리도록 걸어다녔습니다. 스프라이트 뿐 아니라 다양한 색과 무늬로 칠해진 집들이 파란 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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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와 아베이루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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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트립어드바이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역 3위 안에 드는 곳이라면 가도 좋지 않을까?” 앞장 선 레일라를 따라 길가의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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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식 조개찜(Ameijoas a Bulhao Pato)과 해산물 리조또(Arroz de Mariso)를 주문했습니다. 셋이 먹기에 너무 많은 양에 놀라고 해산물이 정말 신선해서 놀랐습니다.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라며 웨이터가 엄지를 내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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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마을의 반대편으로 걸어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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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를 소개하는 가이드북과 웹사이트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니 집안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 집들은 숙소로 제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정도 머물며 대서양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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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 뒷골목으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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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디냐(Sardina)겠지, 바닥의 물고기 문양을 구경하다 고개를 들자 일광욕 중인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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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자 바닥에 뒹굴뒹굴, 잔뜩 애교를 부렸습니다만, 줄 게 없어서 열심히 머리만 쓰다듬어 줬습니다. 궁딩팡팡도 해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간혹 싫어하는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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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하얀 꽃들을 잠시 바라보다 코스타 노바를 떠났습니다.

… to be continued

남는 건 사람 뿐

초상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 사람이 전부다. 이번 여행에선 TC-1 덕분에 MP에 50mm를 물려 떠났다. 덕분에 초상사진이 다른 여행에 비해 많이 남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를 보는 순간 잊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났고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Leica MP + Summicron 50mm + 400TX
Ricoh GR

사족: 각 인물들과의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이다 사족 같아서 결국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아쉬워서 또 사족을 단다. 처음 인연이 다수지만 이미 십년이 넘은 인연도 있고 몇년 째 만나는 친구도 있다. 늘어 놓고 보니 남기지 못한 기록이 많다. 취재 설계 따위를 하지 않으니 계통이 있을리 없고 나중에 끼워 맞추자니 엉성하고 남루하다. 의미여서 찍은 것인지 찍어서 의미인 것인지 더더욱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