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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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장 옆 야산을 허물고 터를 닦았다. 나는 이 때 이 양반이 차 장사나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멍하이, 2015]

사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가 조탁한 세계를 말하는 것 보다 괴로운 일이다. 언어로 묘사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세계와의 만남 또는 충돌 같은 것이어서 프로토콜 맞추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표정, 채취, 숨소리, 목소리, 생김새, 어투, 습관 따위를 섞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다른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내 세계로 걸러낸 주관이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주관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어서 내 세계로 걸러지는 것 말고는 받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를 그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능이다. 그는 반드시 나로 이해된다. 근원적 한계는 절망과 고통이다.

사내를 만나면서 시간의 두께만큼 사진이 모였다. 늘어놓고 보니 그가 조금 보인다. 글 몇 줄 붙여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말 하지마. 난 이제 한 살이여!” 세상 배우고 연습하는데 한 갑자 보냈단다. 이제 살아내기 시작한다는 사내. 용렬한 글로 무구한 어떤 것이 훼손되거나 멋대로 규정되지나 않을까 걱정 되지만 이 사내를 말하고 싶다. 그는 이 용렬한 글에 갇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매섭거나 모질거나 거칠거나 소박하거나 무구한 것이 뭉치고 섞여서 만들어진 사내는 한잔 술에 늘어진 빤스 고무줄처럼 자유롭다. 결핍을 버무려 불쏘시개로 태워 쓴다.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에 변덕스럽지만 동의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한다. 즉흥적이지만 손발이 움직일 때를 알고 행동 해야 할 때 사리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뿜지만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 따위를 담배연기에 짱박아 뱉을 줄 아는 낭만이 있다.

“야~피울아!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여서 그게 그이야긴데 본론이 무엇이건 결말은 언제나 자기자랑으로 갈무리한다. ‘기승전자기자랑’ 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맘에 들어 한다. 이 별명은 내가 지어준 것이다. 굳이 생색내는 이유는 누가 지어 준 것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먹기 때문이다. 매번 그렇다.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후천적 습득의 결과다. 천성은 공인이지 싶다. 천지를 후비고 다니다 차가 나는 산에 들어서 저 닮은 사람들과 섞여 놀았다. 그러다가 차 만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차는 밥이 되었고 사내를 뜨겁게 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 불러 모아서 놀고 싶다.
황제가 마시던 차를 만들어야지.
사람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주고 싶다.
그가 그린 풍광(그는 늘 ‘그림’이라고 말한다) 가운데 내가 아는 몇 가지다.

꿈의 성공은 꿈의 달성이 아니다. 내가 열 개의 풍광을 그렸을 때 그것을 전부 이루겠다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그린 풍광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 대부분의 풍광이 아직 그림으로 있지만 … 달성되고 달성하고 달성 할 것에 관한 정렬이 아니라 풍광(꿈 또는 그림 어떤 것) 그 안에 삶의 중심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물건은 품는 순간 의미와 가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꼼짝 없이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꿈은 … 꿈꾸는 자는 뜨겁다.

난 사내의 서사에는 관심 없다. 몇 살이고 고향이 어디고 따위의 과거 찌꺼기나 후비적거려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 뜨거운 물건을 아직 품고 있는 사내. 그가 그려놓은 그림과 만들어질 풍광이 궁금할 뿐이다.

그는 ‘바람의 꿈’ 그것을 품고 산다.

그대도 가슴 뛰는 풍광 몇 개쯤 품고 있겠지!

2015년 멍하이 창대한 땅을 고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창(차를 만드는 제조회사)을 열었다. 이방인이 이룬 창업이다. 고수차(100년 이상 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 바람이 불면서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10 여년 축적한 힘으로 공장 옆 산을 허물고 거대한 터를 닦았다. 고향에서 친구를 청해 축제를 열었다. 이 사내가 그림을 그리고 실현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고 그것을 심을 땅을 닦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그만큼 세운다. 맘에 안 들면 허물고 기다린다. 다시 때가 오면 또 쏟아 붓고…이곳은 그가 ‘바람의 제국’을 상상하고 그린 땅이다.

R0012654[고향에서 친구들이 왔다. 잔치를 벌이기 전에 고향방식으로 의식을 치뤘다. 뭉클한 감동이 일렁거렸다. @멍하이, 2015]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그가 보냈을 시간을 생각했다. @멍하이, 2015]

 

2017년 쿤밍, 복합문화공간을 열다.
차 시장을 버리고 경제개발구 심장으로 본사를 옮겼다. 생뚱맞은 이곳으로 옮기는 것을 모두들 의아해했다고 한다. 차 사업하기엔 인프라가 모여 있는 차 시장이 적합하다는 것은 상식에 관한 것이다. 도박 같아 보이던 시도는 ‘복합문화공간’을 겸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중국 전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 분야전문가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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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 차산에 초제소와 객잔을 만들겠다고 또 땅을 밀어 놓았다. 완전 신이나서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내려다 보이는 구름이 낮설기만 했다. 이무에서 노가를 통째 업어와서 덩그러니 세워놓았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다. @의방초제소터에서, 2017]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쿤밍,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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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의방차산, 2017]

[사내들의 방황이란 것이 본디 거칠고 고단한 맛이 좀 있어야 제격인 것이다. @시솽반나, 2017]

2018년 ‘바람의 제국’ 건설 중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벅찬 일이라고 했다. 공장건물이 들어서고 나면 이어서 객잔, 공연장, 전시장, 연구소 등이 차례로 들어설 것이다. 한 귀퉁이 뼈져달라고 했더니 아무 때나 와서 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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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과정을 조금이라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이 풍광은 감격이다.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제국은 공사중. @멍하이, 2018]

[새벽까지 취했다. “이 돌대가리 같은…” “해봤어?…해 보고 말해…”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그림을 그려…그리고 가…똑바로 가” “야이 멍청한 놈아!”. 자동 재생 중이다ㅠㅠ. @쿤밍, 2018]

[차산에 가면 표정이 바뀐다. 편하고 순하다. 돼지 쓸게 받아 들고 흐뭇하다거나 꼬봉 한놈 잡아 놓고 썰을 푼다거나 새로운 차밭은 획득한다거나 모두 즐거운 일이다. @멍하이, 2018]

R0073197[다시 그림을 그린다. @젠수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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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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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는 인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한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부유浮遊했고 그렇게 수만 년을 흘러 다녔다. 매순간 만나는 위험과 공포에서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날선 긴장 말고는 없다. 여행을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과 흥분은 꼬리뼈 흔적마냥 부유하던 그들의 유전자가 남은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떠남은 본능적 작용이고 새로운 세계(세상)와의 만남은 필연적 결과일 수밖에 없다.

기필코 떠나야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내 주변머리로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삶이 정주가 아니라 여행이길 바랬다.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이 삶을 닮은 것인지 삶이 여행을 닮은 것인지 아니면 삶이 여행 그 자체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삶이 여행이라면 나는 왜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것인가!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나를 떼어내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숭고한 의식이며 순례다. 나를 내게서 떼어내 낯선 곳에 팽개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 숲에서 멀어져야 숲이 보인다.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나를 떼어내 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기실 순례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안목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순례자를 만날 수 있다. 회사에서 거리에서 마트에서 만원 지하철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간다. 그것은 마치 오체투지의 간절함이나 절정과도 같아서 뚜벅뚜벅 진리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운남으로 가야할 이유 따위는 없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함과 익숙한 곳에서 그리던 낯섬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떠나온 그곳이 두발 꼭 붙이고 있어야 할 곳임을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돌아 와야 할 이유를 얻는다. 일상의 찬란함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에서 만원 버스와 지옥철에서 섞이지 못하고 박리된 나는 꼼짝없는 이방인이다.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객관적 기록으로 관조할 수 있다. 동동거리는 세상을 낯선 곳에서 발견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곳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처는 치유된다.

여행은 육십억 가운데 하나이던 내가 ‘육십억 가운데 유일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따분하고 존재감 없던 내가 나로 빛난다. 일상이 미늘달린 바늘을 삼킨 것 마냥 토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여행은 온전히 내 것인 냥 순하고 편안하다. 이 시간 안에서 비로소 나는 일상과 유리되어 일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아웃포커싱 되고 나는 세상의 주연이 된다.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움직이는 것이 달라졌다. 어제보다 찬란한 오늘이다. 이 순간도 결국 삶 한 덩어리 뭉툭 베어 쓰는 것이므로 삶의 살덩어리다. 일상에 함몰되어 쪼그라든 나는 사라지고 빛나는 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여행은 ‘만남’과도 맞닿아 있다. 떠나서 만나게 되는 것인지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떠남은 만남을 전제하고 만남은 떠남을 전제한다.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으니 결국 떠남과 만남은 동의어인 셈이다.

나를 떠나서 나를 만나고 나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자.

어쩌자고 또 가슴이 벌렁거리는가. 길 떠났던 먼 조상들의 부름이 잠들었던 유전자를 깨워놓고야 마는 것인가. 생활에 목매고 있지만 짐짓 그렇지 않은 듯 살 수 있길 바란다. 나란 놈은 굴림 하는 것도 굴림 당하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 생활과 관습의 봉인을 해체하고 나란 인간에게로 좀 더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내면적 울음에 기꺼이 보내는 위로, 그리고 아직 가 보지 못한 길로 들어서고 싶다. 내면의 깊고 광활함을 확인하고 싶다. 열린 가슴으로 교만을 내려놓고 더 낮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라. ‘해냈느냐?’라는 세상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해냄’으로 ‘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이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여서 내겐 여간 곤혹스런 것이 아니다. 움켜질수록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것. 정제되지 못한 욕망에 대한 반성, 세상의 욕망은 성숙한 심연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잘 쓰고 싶다. 여행은 그것을 배우는 것이다.

 

관도고진,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일요시장,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with GR

 

 

 

안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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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남쪽. 그곳은 피안이고 동경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이곳이 어째서 피안이고 동경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지 않지만 하도 오래 되서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잊어버렸다. 그땐 투하된 노력이 최소한 대등한 경제적 가치로 치환되어야 옳다고 믿었다. 투입은 줄이고 산출을 늘이려면 계획을 짜야 했고 가성비를 높이려면 그것은 더 치밀해야 했다. 바쁘게 움직였다. 계획에 맞춰 움직이고 먹고 볼거리를 찾아 다녔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면서 뿌듯했고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깃발 따라 찍고 찍고 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갑다고 생각했다. 난 그들보다 좀 다른 … 더 깊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 문득 생각났는데 윈난에 대한 로망은 ‘천룡팔부’로부터 시작되었지 싶다. 단씨성을 가진 바람둥이 녀석이 주유하면서 만나게 되는 기연과 사랑의 대서사시는 어른이에게 더 없는 재미였다. 북송과 요나라가 대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서하, 토번, 대리국에 이르는 거대한 스케일을 담아낸 ‘천룡팔부’는 김용(필명)의 구라가 절정에 이른 시절 발표한 무협지다. 단예, 교봉, 허죽 3형제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적 느낌의 이야기는 저리가라. 선술과 요술이 낭자하게 펼쳐지고 기연을 얻어 얼떨결에 신공을 익히고 초절정 고수가 되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절세미인을 만나 사랑이 싹트지만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라네. 두둥!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의 원인제공자 되시는 단예의 아버지. 이야기 캐릭터 중에서 제일 부러운 이 양반은 대리국 15대 황제 단정순을 모티프로 만든 캐릭터 되시겠다. 젊은 시절 천하를 주유하러 갔다가 만나는 모든 미녀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훗날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소설 막판에 갈등이 해결되고 자신의 여인들과 함께 스스로 최후를 맞는 의리의 카사노바 아저씨. 그 아버지에 그 아들(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닌 것으로 결론나지만) 단예란 놈도 마찬가지다. 부러운 놈.

그래서 … 아무튼 사랑과 모험이 넘치는 이곳은 상상속 샹그리라였다. 왕소저나 목꾸냥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희미해질 무렵 이야기의 무대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산과 강이 갈라놓은 작은 문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하는 그곳이 궁금했지만 아직은 로망일 뿐 닿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푸얼차와 다큐멘터리 ‘차마고도’가 아니었다면 운남은 아직까지 상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안오냐?”
“가야죠!”
“언제 올래?”
“마음은 거기 살아요.”
“후다닥 다녀갈 거면 오지마.”
“…”
“여긴 그러고 와서는 몰라. 적어도 한 달은 작정하고 와라.”

계획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 말고는 정한 것이 없다. 눈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어디라도 가게 되면 가겠지. 처음 며칠은 어슬렁거렸다. 눈뜨면서 찻물 올리고 있으면 화롯불을 바쳐들고 할아버지가 올라오신다. 차 마시다 할머니 차려 놓은 늦은 아침을 먹거나 집 앞 식당에서 미시엔(운남 쌀국수)이나 콩국물과 튀긴 빵을 먹었다. 차실에 가서 놀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해질녘엔 친구만나 한잔하고는 꽁꽁 얼어서 들어왔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차곡차곡(차와 술을 번갈아 마시는 것) 뼈가 녹았으면 싶을 만큼 마시기도 하고 이마저 시큰둥해지면 츄리닝 바람으로 안마집가서 코를 골았다.

말하자면 이곳은 쿤밍에서도 신도시랄까! 경제개발구로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현대식 초고층 건물에 삐까번쩍한 세단부터 70년대나 있을 법한 풍광이 공존한다. 물론 옛 풍광들은 쾌속으로 지워지고 있다. 거리 노점 뒤로 황금빛 초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하수도 시설도 마무리 하지 못한 너덜너덜한 길목에서 화이트칼라 삐끼들이 분양광고 짜라시를 돌리는 활화산 같은 이곳에서 동네아저씨마냥 어슬렁거리면서 눌러 놓은 기록 몇 장을 늘어놓고 보니 쌉쌀하던 공기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여행! 잘 하고 온 것 같다.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남는 건 사람 뿐

초상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 사람이 전부다. 이번 여행에선 TC-1 덕분에 MP에 50mm를 물려 떠났다. 덕분에 초상사진이 다른 여행에 비해 많이 남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를 보는 순간 잊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났고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Leica MP + Summicron 50mm + 400TX
Ricoh GR

사족: 각 인물들과의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이다 사족 같아서 결국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아쉬워서 또 사족을 단다. 처음 인연이 다수지만 이미 십년이 넘은 인연도 있고 몇년 째 만나는 친구도 있다. 늘어 놓고 보니 남기지 못한 기록이 많다. 취재 설계 따위를 하지 않으니 계통이 있을리 없고 나중에 끼워 맞추자니 엉성하고 남루하다. 의미여서 찍은 것인지 찍어서 의미인 것인지 더더욱 모르겠다.

남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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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떠난 화살 같다는 따위의 표현이 마뜩찮지만 허망한 시간을 표현할 마땅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겠다. 여행을 다녀 온 지 반년이 흘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자마자 심장이 팔닥 거리며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불편하고 불안한 기분은 어미품을 떠난 아이같다. 피안에서 멀어지는 듯 팍팍한 현실로 쾌속 돌진하는 비행기 소음이 몹시 거슬렸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으나 지난 시간들이 영사기를 돌려 놓은 듯 흘렀다. 3할 쯤은 투덜거리면서 보냈고 3할 쯤은 의무감으로 보냈으며 3할 쯤은 즐겁게 마시고 떠들며 보냈지 싶다. 잘난 척 하느라 1할 쯤 썼을 것이다. 작은 시비 때문에 심장이 새가슴처럼 촐싹거린다거나 여러 사람 빈정 상하게 한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면구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이 어렵지만 또 그렇다고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탓에 매순간 성찰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돌아와서 제법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운남에서 하얀 밤토록 나눈 여러 가지 모색들을 그려내거나 구체화를 도모하는 시도는 하지 못했다. 소심함이 병통이라 내지르지 못한 탓이다. 그런 와중에도 차 벗을 만나러 의정부, 광주, 이천, 괴산, 부산으로 짬짬이 다녔다.

“피 선생 뭐해”
“예~~서울이에요.”
“언제 와?”
“모레 내려가요.”
“주말에 우리 집에 차 한잔 하러 와”
“누가 오세요?”
귀한 차 벗을 만나고 똘 끼와 개그 충만했지만 진지함을 잃지 않은 농염한 다담이 늦은 밤토록 흘렀다.

“선생님! 뭐하세요?”
“풀 뽑아~~”
“한 번 내려오세요.”
집 근처 차방에 둘러 앉아 이 차 까고 저 놈 까면서 놀았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하고 생산적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뉴비(newbie)들을 위한 심플하고 담백한 아카데미도 필요할 것 같은데…이런 고민을 나누다 피곤해지면 다시 운남이야기로 돌아오곤 했다.

운남은 이렇듯 휴식 이었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 있으니 다시 다녀와야지. 이번엔 대설산쪽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샹그릴라에서 시작해서 훑으면서 내려 와도 좋겠다. 호도협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사람들 발걸음이 비교적 한적한 서쪽 변방이나 동쪽 변방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필름에 남은 흔적들 / Leica MP + Summicron 50mm 4th + 400TX & Minolta TC-1]

나른하고 느린 며칠

2017. 2. 27 ~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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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고 느린 며칠을 보냈다. 뜻하지 않게 생긴 시간이다. 한 곳쯤 더 다녀와도 될 시간이었지만  제법 지쳐 있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닥친 스펙타클한 일정이었으니까…늘어져 뒹굴거리기로 했다. 일정을 마무리하는 의식 따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텐션을 풀어놓고 며칠 보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골목 구석구석 쑤시고 다니면서 낡은 흔적을 뒤적였다. 새로 지어진 건물 사이에 흙으로 쌓은 두툼한 담장과 공동으로 사용하던 화장실이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 담장 아래로 노출된 하수도라거나 그 곳에 오물을 갖다 버리는 아낙들 간혹 눈에 띄었다. 커다란 멧돌이 나뒹군다거나 절구 따위가 대문간에 방치된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이었다. 마음 닿는 곳에 이르러서는 상상과 공상을 더해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마실 나온 어르신들과 더듬더듬 소통을 시도했다.

걷다기 지겨우면 차실로 갔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가면서 차 마시다 배고프면 한상 차려 먹고 또 느긋하게 차나 마셨다. 리리랑 놀다가 방군이랑 차마시다 송문이랑 사진이야기도 좀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하는 친구들 방해도 하다가 기어코 지겨워지면 택시를 탔다. 새로 사귄 풍골에 가서 쇼핑도 하고 시내서 사람 구경 하다가 저녁엔 술친구 만나서 상다리 부러지게 삥 뜯어 먹고 얼큰해져서 돌아왔다. 이렇게 꽉 채운 이틀을 보냈다. 개강날짜가 다가왔으니 내일이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지.

혼자서 며칠 더 계셔야하는 선생님이 걱정이다.
“내일 같이 돌아가시죠?”
“응, 안 그래도 좀 그래”
“저 없으면 재미없으시잖아요? 당주는 안 놀아 주던데…”
“ㅋㅋㅋ 피선생 가고나면 뭐 딱히 할 것도 마뜩찮고…”

스케줄 조정을 서둘러 마치고 꿈 같은 마지막 밤을 맞으러 나섰다. 명흥에 들러 묵은 회포를 배가 찢어지도록 풀었다. 밤의 주인이 바뀔 무렵 불이 다 꺼진 차 시장에 들러 늙은 차를 마셨다. 곡강에게서 차산 이야기라든가 늙은 차 구한 이야기 듣는 것은 흥미진진이다. 보이차 무협지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곤명. 그 깊은 밤!

2017. 2. 26 곤명으로

사위가 조용하다. 가라앉은 공기가 적막함을 더했다. 좁은 침대공간에서 뒤척이다가 창에 얼굴이 닿았는데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가 없는 것을 보니 버스는 제법 긴 시간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다. 야간 운행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운행이 금지되고 기사들이 쉬어야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버스안에 사람들이 하나 둘 뒤척이기 시작한다. 정신은 깨어났는데 눈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랫배에 가득찬 액체를 비우고 싶지만 몸도 쉬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물 먹은 솜뭉치마냥 무겁다. 떫은 감을 세 개쯤 씹고 있는 듯 텁텁한 입도 헹구고 싶고 냉수에 머리도 빨았으면 좋겠다. 젖은 창을 발로 문질렀다. 얼마나 왔을까? 주위를 살폈다. 자욱하게 내려 앉은 안개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지만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아뿔싸! 차에서 내려보니 단지 정차중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까딱 했으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바로 앞에서 커다란 트레일러가 허리를 접고 도로를 막고 있었다. 지난 밤에 일어난 사고였다. 다행인 것은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사고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시야가 닿는 끝까지 차들이 늘어섰다. 얼마나 막혀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걷거나 쉬거나 볼일을 보거나 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는 사이 날이 밝았다. 이윽고 공안들이 왔고 또 한참을 수석거리다가 아침이 익어서야 길이 열렸다. 밤새 달려왔건만 아직 반도 못 온 모양이다. 눅눅한 길을 달리던 버스는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정차하고 말았다. 이번엔 무장한 군인들이다. 검속이 만만치 않은 코스인데다 곤명터미널 칼부림 사건 이후 검속이 강화 되었다고 했다. 외국인들만 잔뜩 탄 침대버스가 뜬금없이 새벽을 달리는 상황이 그들을 긴장하게 했을까! 당주와 건군이 긴 시간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했고 거둬간 여권을 한동안 뒤적거렸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 중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위협적이었다. 야리는 폼새가 찍지 말라는 거다. 그렇다고 안 찍을 수야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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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렇게 가다가는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 떠나올 때도 쉽지 않더니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네.

“피 선생! 같이 며칠 더 있다 갑시다.”
당주도 거들었다.
“일찍 가면 뭐 할 거 있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거여!”

일정을 조율해 보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건군에게 비행기 스케줄 조정을 부탁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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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가 지나서 곤명에 닿았다. 공항난민 신세로부터 꼬박 하루만이다. 일행들도 모두 잘 견뎠다.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했다. 긴 하루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일행은 차 시장 관광을 떠났다. 이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차우회 때 개발해 둔 차도구점을 소개했다. 죽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인연과 질, 가격 모두 괜찮은 곳이었다. 몇 대의 승합차에 나눠 탄 일행은 지묵당 직원의 안배를 받으며 떠났다. 불현듯 찾아 온 고요와 평화가 주는 안도감이라니. 이럴 때는 차를 마셔야 한다. 차와 함께 삼매에 있을 무렵 반가운 손님이 래방 했다. 곡강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감로 같은 술과 벗이 함께 있으니 놀기 좋은 밤이다. 늦은 밤토록 먹고 마셨다. 이날 밤 곤명은 몹시 추웠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