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sepiaEYE Gallery

에사 엡스테인(Esa Epstein)이 2009년 설립한 sepiaEYE 갤러리는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아시아권 작가들을 전문으로 소개하고 있는 갤러리이다. 소속 작가들을 살펴보면 아시아권 작가들 중에서도 주로 인도와 일본 작가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도 작가 라후비르 싱(Raghubir Singh)과 부펜드라 카리아(Bhupendra Karia)를 포함하여 이십여 명 남짓의 작가들을 대표하고 있다. 현재 소속된 한국인 사진가로는 김수강(Sookang Kim)이 있는데 일상 속 사물들을 정물로 담아 고무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방식으로 인화하는 것이 특징으로 사진 인화가 아닌 듯한 무채색 파스텔톤의 느낌이 인상적인 작품들이다.

첼시 서쪽 끝자락 11번가 쪽에 자리한 547 West 27번가 건물 6층에 위치한 sepiaEYE 갤러리는 중앙의 메인 전시 공간과 차단벽 뒤쪽으로 나누어진 두 곳의 사무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높은 층고 때문에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트인 인상을 주는 전시실로 들어서면 문 왼쪽으로 놓인 작은 사각 테이블 위에 팸플릿과 체크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다. 전시실 가운데에 놓인 둥근 탁자는 갤러리에서 출판한 여러 작가들의 사진집을 늘어놓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사무 공간은 한쪽의 관장실, 그리고 반대쪽의 작품 보관 및 다른 물품들을 놓는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관장실 한 켠에는 전직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 대통령하고 같이 사진 찍었네?”

“그래.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전 대통령이지.”

“하하…”

내가 뉴욕의 사진 갤러리들만 찾아다니고 있다고 하니 혹시 필요한 자료는 없을지 이것저것 챙겨 주려던 친절한 관장과의 대화를 뒤로 하고 한번 더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일본계 사진작가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Osamu James Nakagawa)의 <Kai> 전이다. 50점의 흑백, 칼라 사진과 4분 35초 분량의 영상 작업 한편으로 구성된 전시는 개략의 시간순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여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교 교수인 나카가와가 20여 년에 걸쳐 작업한 Kai 시리즈의 출발점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마주한 1998년이었다. 마침 아이를 임신 중이던 아내와 함께 새 생명을 기다리던 나카가와에게 불현듯 가까이 다가온 아버지의 병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담기 시작한 그와 가족들의 삶이 일본어로 순환을 뜻하는 Kai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내밀한 가족사의 기록이 된 나카가와의 사진들은 한 사람의 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휴머니즘의 내러티브가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도 있지만 이렇게 세월을 관통한 작업을 만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건 사진이 품고 있는 시간의 힘이다. 아버지의 죽음, 아이의 탄생,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장성한 딸의 출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쌓여 간 시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 순간의 이미지로는 쉽사리 담아낼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는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시간과 사진들이 함께 켜켜이 누적되어 가면서 만들어낸 힘에 다름 아니다.

전시된 작품들 중 특별히 더 와 닿았던 건 늙은 어미의 손에 달라붙은 이쿠라(연어알)를 클로즈업 한 <Ikura, Tokyo, Summer 2010>과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거친 숨결을 반복되는 영상으로 편집한 <Breath, Single chanel video with audio>였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가까이 다가가며 기운 빠진 늙은 어미의 손가락에 달라붙은 새 생명들(이쿠라)이 주는 역설적인 느낌은 단순한 한 장의 사진 이상의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쿠라가 무엇인지 조금 더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이기에 받은 인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임종 직전의 거친 숨소리와 초점 흐린 어머니의 시선이 아무런 말 없이 반복적으로 보이는 <Breath>의 영상은 의도적인 흔들림을 통해 어머니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나카가와의 날 것의 감정을 전달했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마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차면서도 계속적으로 들고 나는 숨소리는 목전에 와 있는 죽음을 그대로 맞닥뜨리는 느낌이다.

sepiaEYE 갤러리가 아시아 작가 전문이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인도와 일본 작가들에 편중되어 있기에 아주 다양한 나라들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한국 작가들이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있다. 그리고 특별히 포트폴리오 리뷰 여부에 대한 코멘트는 없지만 관심이 있는 작가라면 적극적으로 연락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아시아권을 전문으로 하고 있으니 어떤 경로로든 괜찮은 작가가 눈에 띈다면 갤러리로서도 반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가서 갤러리 소개나 정보를 찬찬히 둘러보며 파악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sepiaEYE Gallery
  • 주소: 547 West 27th st., #608,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수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s://www.sepiaeye.com

*Gum biochromate:  19세기 말 개발된 염료 인화 기법으로 사진 톤의 콘트라스트와 디테일한 부분들의 부드러움으로 유명하였음. 인화 과정에서의 이미지 수정이 상대적으로 쉽고 화가가 그린 듯 부드러운 톤으로 인해 회화주의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은염이 쓰이지 않아 안정성도 높았음.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 프레스, 2017, p. 189. 발췌.

**18년 5월 16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s://www.sepiaeye.com/exhibitions/#/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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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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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실. 뒤쪽 기둥 뒤가 출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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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반대편 차단벽 뒤로 두 곳의 사무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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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개략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크기와 배치로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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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Father’s Hands, Bloomington, Indiana, Winter 1999>, <Airplane, Bloomington, Indiana, Winter 2001>, <Pinata, Bloomington, Indiana, Spring 2004>, <Moving In, Muncie, Indiana, Summer 2017>, <Kyle’s Rock, Plainfield, Vermont, Summer 2000>, <Mt. Fuji, Japan, Summer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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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Queen Anne’s Lace, Bloomington, Indiana, Summer 2000>, <Final Conversation, Tokyo, Spring 2013>, <Mangolia, Bloomington, Spring 2010>, <Hands, Tokyo, Summer 2013>, <Blood, Kyoto, Summer 2013>, <Curtain, Tokyo, Spring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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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ura, Tokyo, Summ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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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mu James Nakagawa & Rachel Lin Weaver, <Breath, Single chanel video with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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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L. Parker Stephenson Gallery

L. Parker Stephenson 갤러리는 설립자이자 관장인 스티븐슨(Stephenson)이 2004년 프라이빗 딜러로 독립하면서 세운 곳이다. 원래 은행에서 일하다가 90년대 중반 사진계로 들어온 스티븐슨은 Howard Greenberg, 292 갤러리 등에서 경험을 쌓은 후 고객들을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아방가르드와 20세기 클래식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갤러리는 조금 더 폭넓은 대중을 향한 여타 갤러리들과는 달리 소수의 컬렉터를 대상으로 한 딜러로서의 역할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작가와 고객과의 최소한의 연결 지점을 유지하기 위해 갤러리를 운영하는 느낌이다.

Madison가 764번지에 위치한 갤러리는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작은 곳이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메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무실 및 보관고로 쓰는 안쪽의 작은 방 벽들에 추가적으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만 거실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도 이미 업무를 위해 사용하고 있어 실제적인 갤러리와 사무실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벽난로 위에는 전시 자료와 사진집 및 팸플릿 등 갤러리 관련 자료들이 놓여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네덜란드 작가 위터 웜스(Witho Worms)의 <Cette montagne c’est moi (This mountain that’s me)>와 <A Forest Reconstructed> 두 프로젝트들이다. 1959년 생인 웜스는 문화 인류학자이자 사진가로서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닿은) ‘문화’라는 두 가지 개념의 관계에 대해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 또한 이 개념들의 관계를 보여 주고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진들로 이번에 전시된 시리즈들 또한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메인 전시 공간인 거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A Forest Reconstructed>는 작가가 2016년에 완료한 가장 최근작으로 유럽 여러 지역의 숲들을 돌아다니며 담은 사진들이다. 조림(reforestation) 작업을 통해 사람의 손길이 닿은 숲들은 더 이상 자연적인 것도, 그렇다고 순수히 인공적인 것도 아닌(neither randomly organic nor solely artificial)** 자연과 문화(인간)의 경계 그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웜스가 찍은 숲의 단면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나무들의 배열이다.

경계의 모호함을 배가시키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이미지의 재현 방법이었다.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하얀 인화지(baryta paper) 위에 하얀 티타늄 가루를 적용해 인화한 사진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더 큰 흥미를 느꼈던 전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로 동명의 사진집으로도 발간된 <Cette montagne c’est moi (This mountain that’s me)>였다. 이 프로젝트는 한 때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이제는 폐광이 되어 스러져 가는 유럽 여러 지역 탄광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담은 사진들이다.

웜스의 할아버지 세대에게는 충실한 생산 활동과 활력의 공간이었고, 웜스 같은 작가 세대에게는 드넓은 놀이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곳.*** 어스름한 시간, 거대한 실루엣으로 담긴 광재 더미(slag heap)****들의 모습은 그 속에 흥망성쇠의 시간을 품고 있다.

이 작품들에 더 관심이 갔던 이유는 바로 작품의 인화 방식이었다. 웜스는 이 시리즈를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카본 프링틴(carbon process) 방식*****으로 인화를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인화의 베이스 안료가 된 카본이다. 웜스는 작품의 배경이 된 광산들의 석탄 가루를 담아 온 후 세심한 그라인딩 작업을 거쳐 각 작품의 인화에 필요한 피그먼트(pigment-안료)로 활용하였다.

탄성이 나왔다. 아…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사진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작업은 말 그대로 재현이었다. 눈 앞에 놓인 피사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인화지의 잉크)이 바로 그 피사체 자신이었다. 곱게 갈려 스스로를 내어 더 큰 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카본 프린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밀하면서 섬세한 톤의 묘사도 아름다웠지만 제 몸을 색소로 삼아 밀착 인화된 피사체 자체로서 뿜어 내는 힘은 비할 데가 없었다.

반년 동안 대략 오십여 곳의 사진전들을 다니면서 점점 강해진 생각은 화면이 아니라 눈 앞에 놓인 사진을 보고,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였다. 모니터가 아니라 손에 닿는 실체로 나타난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위터 웜스의 작업처럼 멋진 – 아이디어로써도, 결과물로써도 – 사진들을 만나게 되니 새삼 인화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

아직은 현상, 스캔에 머물지만 언젠가는 인화도 시도를 해야 할 텐데. 빨리 준비 안 하면 나중에는 중고 확대기라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 걱정이긴 하다. (사실 과연 시도라도 할 것인지가 더 걱정이긴 하다만서도…)

기본정보

  • 갤러리명: L. Parker Stephenson Gallery
  • 주소: 764 Madison Ave., New York, NY, 10065
  • 운영시간: 수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lparkerstephenson.com

*18년 4월 19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Cette montagne c’est moi>, Fw:Books, 2012, p.10-11.

****slag heap(광재 더미): 광석을 정련하고 남은 돌 찌꺼기 더미.

*****Carbon process: 영구적인 피그먼트 인화지(pigment print)를 만들어내는 기법. 1855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기법의 단점들에 불만을 느낀 알퐁스 루이 푸아트뱅이 새로 고안해 낸 인화법. 중크롬산염 젤라틴을 토대로 안료를 추가하였다. 1860년대에 다른 이들에 의해 결점들이 개선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인화법으로 발전하였다. 카본 인화지는 색이 풍부하고 윤이 났으며 콘트라스트가 뛰어났고 표현 가능한 색상이 다양했으며, 기타 여러 방식으로 추가 조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또 벨벳처럼 깊고 짙은 검은색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수명이 길다는 것이었다.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 프레스, 2017, p. 93.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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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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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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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rest Reconstructed> 작품들. 사진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하얀 톤의 느낌이 몽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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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tte montagne c’est moi> 작품들. 좁은 사무실 공간의 벽면을 활용하고 있어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지만 카본 인화가 주는 톤의 섬세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27. Edwynn Houk Gallery

1977년 개관한 Edwynn Houk 갤러리는 오래된 역사만큼 200회가 넘는 다수의 전시 및 사진집 출판을 통해 작품들을 소개해 오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는 특히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빈티지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브라사이(Brassaï), 빌 브란트(Bill Brandt),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등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을 독점으로 대표하여 왔다. 거기에 더해 1989년 샐리 만(Sally Mann)의 작품을 담당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닉 브란트(Nick Brandt), 모나 쿤(Mona Kuhn) 등 일군의 컨템퍼러리 사진가들도 대표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5번가, 그중에서도 센트럴 파크에 인접한 745번지 빌딩 4층에 위치한 Edwynn Houk 갤러리는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널찍한 로비와 사무 공간, 그리고 이어지는 전시홀은 단순히 넓이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서 풍겨 나오는 고급스러움이 절로 우와 소리가 나게 했다. 입구와 연결된 로비에 소파가 놓여 있고, 전시 자료가 놓인 왼쪽의 길쭉한 데스크 뒤쪽으로 직원들의 사무실이 있다. 로비에서 이어지는 전시홀은 메인홀과 안쪽의 별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인홀 오른쪽으로는 고객 상담 및 작품 보관 등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다. 뉴욕의 갤러리 외에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 분관을 열었고 유럽 진출의 창구로 삼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독일 태생의 사진가 어윈 블루멘펠드(Erwin Blumenfeld)의 1930-50년 대 작품들을 전시한 <Erwin Blumenfeld> 전이다. 독일에서 발현한 다다 운동의 일원이었고 만 레이(Man Ray)와 함께 초현실주의 사진가로도 이름을 알렸던 블루멘펠드는 잡지 <보그> 등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유명 패션 사진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 보이고 있는 21점의 흑백 작품들은 블루멘펠드의 대표작인 에펠탑에서 치마를 휘날리고 있는 모델 사진과 자화상 등의 작품도 있지만 주로 베일과 그림자, 실루엣을 활용하거나 솔라리제이션** 등의 기법을 사용해 탄생시킨 초현실적 이미지의 사진들이 많았다.

컬렉터 데일리***에 언급된 것처럼 어윈 블루멘펠드 정도의 유명한 작가, 게다가 대형 회고전 등을 통해 이미 많은 작품들이 알려져 있는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수장고의 작품들을 일일이 뒤져야 할 때도 있다. 보여 주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전시는 블루멘펠드의 사진들 중에서 순수하게 초현실주의 성향의 작품들에만 집중하여 큐레이팅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신선함을 득했다고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사진들은 예스러운 흑백의 느낌만 제한다면 수십 년 전의 이미지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감성을 품고 있었다. 특히 베일과 역/사광을 조합해 탄생시킨 인체의 실루엣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일률적인 미의 기준이란 물론 없겠지만 블루멘펠드의 사진들은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미를 달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긴 세월을 건너뛴 지금에 와서도 이렇게까지 와 닿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 이런 아름다운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지향하는(또는 내가 익숙한) 사진은 아니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곤 한다. 조명을 활용한 빛과 그림자의 향연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카메라라는 것이, 사진이라는 것이 빛의 예술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해 준다. 그리하여 그 빛을 이용해 탄생시킨 아름다움의 극치에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느낌 같은 것이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Edwynn Houk Gallery
  • 주소: 745 5th Ave., 4th fl., New York, NY 10151
  • 운영시간: 화-토 11:00 am – 6:00 pm (여름 개관: 월-금 11:00 am – 6:00 pm _ 7월 2일~8월 10일)
  • 홈페이지: http://www.houkgallery.com

*18년 4월 19일 기준.
**솔라리제이션: 의도적인 노출 과다로 전체 톤이 반전된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 1930년대에 나온 기법으로 물체의 윤곽과 모양, 콘트라스트가 다 바뀌고 현실 세계의 모든 물체들을 비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들이 많이 사용함.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프레스, 2017, p. 383 발췌.
***2008년 시작한 컬렉터 데일리는 갤러리, 뮤지엄의 전시들부터 사진집이나 작품 경매까지 사진과 관련한 모든 것들에 대해 팩트 – 전시 작품수, 에디션, 연도 등등 – 를 알려 주고 그 외 감상 및 작품 관련 정보를 주는 온라인 매거진이다. 이름 그대로 컬렉터들을 위한 정보지라 할 수 있는데 작품 구매 시장의 기본적인 수요가 존재하기에 유지 가능한 사업형태라고 생각된다. 블루멘펠드 전시 관련 기사는 링크 참조: https://collectordaily.com/erwin-blumenfeld-edwynn-h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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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고급스러움에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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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 뒤쪽으로 보이는 것이 별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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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실 전시 공간에는 소파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쉴 수도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은 <Nude,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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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과 이어진 벽 쪽으로 보이는 사무실. 뒤쪽 가운데로 샐리 만의 사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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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t Veil, c.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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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ed Shadow, c.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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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Nude, New York, c.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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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Paris,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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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c. 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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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Paris, Eiffel Tower, May 1939>.

#26. Bruce Silverstein Gallery

2001년 문을 연 Bruce Silverstein 갤러리는 모든 장르의 예술을 커버하지만 그중에서도 모던 및 컨템퍼러리 사진에 특화된 갤러리로 모던 거장들뿐만 아니라 젊은 컨템퍼러리 예술가들까지 폭넓게 집중하고 있는 곳이다.

설립자이자 관장인 브루스 실버스타인(Bruce Silverstein)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경제학을 전공하고 90년대에 천연가스 및 전력 상품 등을 거래하는 브로커 펌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이십 대 중반에 이미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그때 당시 기준으로 벌이가 6-figure도 아닌 7-figure였으니 대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던 실버스타인은 잘 나가던 커리어를 끝내고 2001년 첼시 한 구석에 작은 갤러리를 설립하면서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뉴욕 포토 리그* 출신의 사진가 아버지 래리 실버(Larry Silver)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사진을 좋아하던 실버스타인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갤러리 운영, 전시 홍보, 홈페이지 관리부터 바닥 청소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면서 고생하였지만** 15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 온 지금은 서른 명 이상의 작가들을 대표하는 큰 갤러리로 성장하였다. 어찌 보면 흔히 듣는 ‘고생했지만 꿈을 좇아 성공했어요’ 스토리인데 무엇이 되었든 부럽기는 하다.

첼시 중심부인 529 West 20번가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는 규모가 크지 않아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게 혼재되어 있다. 공간이 넓지 않은 대신 이곳, 저곳의 모든 벽들을 오밀조밀 활용하여 작품들을 전시하여 가급적 많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출입문 왼쪽으로 있는 작은 데스크에 전시 자료와 책자 등이 놓여 있고, 오른쪽으로 붙어 있는 정방형 별실이 일종의 메인 전시 공간이다. 앞쪽으로 이어지는 곳은 사무실, 전시 공간, 관장실, 작품 보관고 등등이 혼합된 공간으로 직원들 사이사이를 지나며 조심스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네덜란드 작가 마얀 티운(Marjen Teeuwen)의 <Destroyed House>이다. 유럽 밖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갤러리 전시로 <Destroyed House> 시리즈는 낡고 철거된, 또는 폭파된 건물의 잔해들을 통해 만들어 낸 그녀만의 재해석이다. 무너진 건축물들의 벽과 기둥, 바닥과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 – 시멘트 덩어리들, 철근, 깨진 유리들, 슬레이트, 각양각색으로 부서진 조각들 등등 – 을 세심하게 재구성하여 담은 사진들은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추상 작품들로 느껴진다.

하지만 형상이 주는 느낌에서 벗어나 눈 앞의 작품 속에 담긴 피사체의 근원으로 흘러 들어가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담고 있을 시간의 역사가 새삼 마음속에 떠오른다. 어디선가 태어나 만들어졌을 재료들이 오랜 세월을 지탱하다가 다시 처음의 그 형태로 돌아가는 순환 속에서 티운은 사라져 가는 것들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였다. 렌즈를 통해 사진이 담긴 것은 순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은 응축된 세월이다.

<Destroyed House> 시리즈의 처음 시작은 작가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발견한 철거 중인 건물들이었다. 철거를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건물 안으로 들어 간 작가는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파편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었다. 그렇게 티운이 만들어 낸 기하학적 질서는 무너진 건축물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재탄생시켰다.

고향의 건물들에서 범위를 확장해 나간 작가가 마주한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는 폭격으로 무너진 집들이었다. 네덜란드에서의 작업과 비교해 보자면 같은 무너진 건물이되 그것이 품고 있는 풍경과 의미와 주변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졌다.**** 그 수명이나 기능을 다해 철거되고 사라져 가는 운명을 마주했던 고향의 건물들과 달리 가자 지구의 무너진 집들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그 운명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인한 환경 속에서 티운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시장에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함께 상영되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과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무너져 내린 건물을 세심하게 재구축하는 작업을 보고 있으니 사진을 만들기 위해 들였을 노력이 느껴졌다. 다른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take) 것과 달리 <Destroyed House> 시리즈의 사진은 구성(constructed) 되었다고 표현한 티운의 말이 와 닿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Bruce Silverstein Gallery
  • 주소: 529 W 20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brucesilverstein.com

*포토 리그(Photo League): 1936년 뉴욕에서 설립된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협동조합. 사진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투쟁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설립 목표였다. 폴 스트랜드(Paul Strand), 앤설 아담스(Ansel Adams), 애런 시스킨드(Aaron Siskind) 등이 이 리그의 회원이었다.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프레스, 2017, p. 315.

**<From Wall Street to Walker Evans>, Wall Street Journal 2007년 6월 8일 인터뷰 기사.

***18년 4월 18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brucesilverstein.com/exhibitions/marjan-teeuwen/4

*****작품 제작 과정 영상은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http://www.marjanteeuwen.nl/lukk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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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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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의 데스크에 전시 관련 자료들이 놓여 있다. 오른쪽으로 메인 전시 공간으로 연결되며 앞쪽으로 보이는 곳이 사무실, 책장, 작품 보관고 및 전시 공간으로 함께 활용되는 곳이다. 전시 제목 옆에 걸려 있는 작품은 <Destroyed House Gaza 9, 201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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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관 및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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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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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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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House Krasnoyarsk 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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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House Piet Mondriaanstraat 1, 2011>. 이 사진은 가까이서, 멀리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언가 빗나간 원근감의 느낌이 계속 들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어 디지털 작업을 통해 합친 작품이라고 알려주었다.

#25. Elizabeth Houston Gallery

2015년 문을 연 Elizabeth Houston 갤러리는 다양한 장르의 컨템퍼러리 예술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곳으로 컨템퍼러리뿐만 아니라 20세기 빈티지 사진 프린트들도 다수 컬렉션하고 있다. 관장인 엘리자베스 하우스턴(Elizabeth Houston)은 이전까지 Hous Project라는 갤러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다수의 대회 및 포트폴리오 리뷰에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직 역사가 짧은 신생 갤러리이다 보니 소속 작가는 8명으로 많지는 않은데 이 중 5명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사진가들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갤러리 이름과 똑같은 이스트 빌리지 끝자락의 하우스턴 거리에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갤러리는 1층의 메인 전시 공간과 지하의 사무실 및 작품 보관고로 이루어져 있다. 직방형의 1층 전시 공간에는 작은 책상 위에 전시 자료와 체크리스트가 놓여 있고 직원 한 명이 앉아서 근무하고 있다. 1층에서 이어지는 철로 된 원형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벽면에 소속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전시해 놓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두 개 층을 다 합쳐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최대한으로 공간을 활용해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존 시르(John Cyr)의 <Developer Trays>이다. 1981년생의 젊은 작가인 시르는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사진가이다. 2010년 School of Visual Art에서 MFA 과정을 마쳤고 ICP에서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현재는 Suffolk County Community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전시인 <Developer Trays>는 2010년대 초반에 그가 작업한 시리즈로 제목 그대로 사진 인화를 위한 현상 트레이들을 찍은 사진이다. 전문 프린터(a professional silver gelatin printer)이기도 했던 시르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한 트레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한 사진가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일종의 유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시르의 작품 속에 담긴 트레이들이 보여 주는 오랜 현상 작업의 흔적들 – 스크래치, 시간이 배인 색조 등 – 은 이 단순한 사물 – 현상 트레이 – 을 담은 사진을 한 장의 추상화로 변모시켜 주었고 그렇게 시르의 카메라가 포착한 흔적들은 그대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통해 담은 구십여 개의 서로 다른 트레이들의 사진은 정형화된 배경과 형태를 통해 하나의 아름다운 유형학으로 비치기도 한다.

“우와, 이 샐리 만(Sally Mann)은 바로 그 샐리 만을 얘기하는 거니?”

전시장에 걸려 있는 십여 점의 사진 중 한 작품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바로 그 샐리 만의 트레이야.”

직원의 대답을 듣고는 새삼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눈에 담았다. 마치 만이 담았던 가족들***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진 않았지만 2014년 출간된 동명의 사진집에는 앤설 애덤스(Ansel Adams), 마이클 케냐(Micahel Kenna), 메이플소프(Mapplethorpe), 아널드 뉴먼(Arnold Newman), 애런 시스킨드(Aaron Siskind) 등등 쟁쟁한 사진가들이 사용했던 트레이들이 찍혀 있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그 사진가들의 트레이 하나하나를 보고 있으면 왠지 그들의 작품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해가는 시대, 특히 사진에 있어서는 필름 회사들이 파산하고 과거의 아날로그 툴들이 점점 더 희귀해져 가고 있는 세상이다. 거기에 더해 암실에서 약품 냄새 맡으며 이루어지는 아날로그 인화는 더욱더 드물어져 가고 있다.

시르도 <Developer Trays>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사진가들을 찾아다닐 때 이미 많은 수가 아날로그 암실 작업을 접으면서 과거의 도구들을 남겨놓지 않아 아쉬운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르의 이번 프로젝트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또 하나의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처음에 사진들만 마주했을 때도 좋았지만 나중에 찾아본 작가의 사진집 서문을 읽고 다시 한번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할 때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을 볼 때 이미지보다 말을 우선하지는 않지만 잘 정리된 생각과 글은 작품을 읽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사진들도 조금 더 정갈한 언어로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 시선과 사고의 흐름을 나부터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기본정보

*18년 4월 26일 기준

**John Cyr, <Developer Trays>, powerHouse Books, 2014, p. 4-5.

***샐리 만의 <Immediate Family>는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John Cyr, <Developer Trays>, powerHouse Books, 2014, p.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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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 바라 본 1층의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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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및 작품 보관고로 사용되는 지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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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Barsil’s Developer Tra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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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Adam Fuss’ Developer Tray, 2010>, <Barbara Mensch’s Developer Tr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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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y Mann’s Developer Tra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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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Developer Tray from the George Eastman Legacy Collection of the George Eastman House, 2011>, <Jim Megargee’s Developer Tr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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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er Tray form the Photo History Collection of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2010>.

#24. Robert Mann Gallery

1985년 개관한 Robert Mann 갤러리는 다이앤 애버스(Diane Arbus), 앤설 애덤스(Ansel Adams),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등을 포함한 20세기 주요 사진가들의 작품들을 다수 컬렉션 하며 모던/컨템퍼러리 사진들에 특화된 사진 전문 갤러리이다. 창립자이자 관장인 로버트 만(Robert Mann)은 이전까지 뉴욕의 Light 갤러리에서 근무하다가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갤러리를 키워 왔는데 전시뿐만 아니라 주요 포토 페어들에 꾸준히 참석하며 작가와 작품들을 알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9년 첼시로 자리를 옮겨 온 이후 현재까지 첼시에 그 둥지를 틀고 있으며 홀리 안드레스(Holly Andres), 매리 매팅리(Mary Mattingly) 등 젊은 사진가들도 여럿 대표하며 작품을 보유 중이다.

맨해튼 서쪽 525 West 26번가 건물 2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전시장 중간중간 서 있는 노출 통나무 기둥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건축을 잘 알지 못하니 이 기둥들이 인테리어인지 원래 오래된 건물의 원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대적 전시 공간 사이사이 시선에 들어오는 부정형의 나무 기둥들이 공간에 대한 색다른 인상을 만들어 주는 건 틀림없다. 출입문으로 들어 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데스크와 사무 공간이 있고 다른 크기의 직방형 두 개가 붙은 모양의 기다란 홀이 메인 전시 공간이다. 전시홀 끝자락에서 연결되는 별실은 컬렉터와의 상담 등 손님맞이로 활용하는 응접 공간이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머레이 프레데릭스(Murray Fredericks)의 <Vanity>이다. 호주 출신의 사진가인 프레데릭스는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타임랩스 비디오 및 다큐멘터리 영상도 제작하는 멀티미디어 예술가로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프레데릭스의 최신작인 <Vanity> 시리즈는 호주의 아웃백 지역에 위치한 염전인 Lake Eyre에서 촬영한 사진들로 전작이었던 <Salt> 시리즈에 이어 동일한 지역에서 담아낸 작품들이다. 다만 이전의 시리즈가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그곳의 풍경을 순수하게 담아내었다면 이번 작업은 현장에 설치한 두 개의 거울을 통한 비정형의 반영을 보여 주는 일종의 설치 작업에 가깝다.

전시 작품은 총 8점으로 동틀 녘과 해 질 녘부터 별의 일주를 담은 한 밤의 풍경까지 다양한 시간대에 걸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 장면 속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거울에 비치는 반영의 모습은 카메라 렌즈의 시야를 벗어나 보이는 풍경 속의 풍경이자,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거울을 통해 바라 보이는 것은 그 앞에 서 있는 작가나 카메라 뒤쪽의 풍경이 아닌 완전한 시야 밖의 모습이다. 한 장이 아닌 두 장의 거울을 활용해 부정한 각도 속의 장면을 반영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바깥’의 풍경을 의도적으로 담기 위함이다.

작가는 나르시시즘의 상징인 거울을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자신에 대한 집착의 상징”으로 보았는데 <Vanity> 작업에서 거울의 반영은 “스스로에게서 벗어난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구속에서 벗어난) 곳으로 우리의 시야를 이끌어 주어 자연 속의 빛과 색, 그리고 공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하였다. 즉, 프레데릭스의 거울은 우리의 허영(vanity)을 채워 주는 거울이 아니라 그곳에서 빠져나오도록 해 주는 것이다.

Lake Erye에서 <Salt> 작업을 할 때 프레데릭스는 홀로 그곳을 찾아 길게는 몇 주에 걸쳐 머물며 사진을 찍었다. 이번 <Vanity> 시리즈도 그런 방식으로 제작하였는데 거울을 설치하고, 노출과 프레임을 조정하며 세심히 움직이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가볍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진중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진행하는 모습은 그 과정의 지난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가 느낀 감정을 우리에게 보이는 이미지로 전환하는 과정의 동작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Robert Mann Gallery
  • 주소: 525 W 26th St.,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금 10:00 am – 6:00 pm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robertmann.com

*18년 3월 22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robertmann.com/17-fredericks-press

***<Vanity> 작업 영상. 작가 홈페이지. (http://murrayfredericksphotography.com.au/motion-video/the-vanity-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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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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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 공간. 중간중간 서 있는 통나무 기둥이 인상적이다. 제일 뒤편 오른쪽으로 응접 공간으로 활용하는 별실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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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데스크에 전시 자료와 책자 등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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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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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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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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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7, 2017>.

#23. Flowers Gallery

Flowers 갤러리는 안젤라 플라워(Angela Flowers)가 1970년 런던 웨스트 엔드 지역에 처음 개관한 갤러리로 근 50년 가까운 세월을 거쳐 온 유서 깊은 갤러리이다. 현재는 창립자인 안젤라의 아들이 갤러리를 운영 중이며 런던 두 곳과 뉴욕 첼시 한 곳, 총 세 곳의 갤러리가 있다. 뉴욕의 Flowers 갤러리는 1997년 LA에 문을 열었던 미국 지점을 2003년 뉴욕으로 옮겨 오며 시작되었는데, 메디슨가에서 첼시로 자리를 옮겨 현재 자리에 안착한 것은 2009년이다. 큰 규모의 갤러리답게 작품을 보유한 작가를 포함하여 70여 명의 작가들을 대표하고 있으며 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중 사진작가로는 출근길 도쿄 지하철의 풍경 작업(<Tokyo Compression>)과 아파트 같은 도시 건축물을 밀도 있게 대형 화면에 담은 시리즈(<Arcitecture of Density>) 작업을 한 독일 사진가 마이클 울프(Michael Wolf)와 얼마 전 ICP 뮤지엄에서 전시를 진행했던 에드문드 클락(Edmund Clark) 등이 있다.

첼시 529 West 20번가 건물의 2층에 위치한 Flowers 갤러리는 바닥의 차가운 콘크리트와 흰 벽이 주는 인공적이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인상적인 장소이다. 널찍한 전시 공간은 크게 세 곳의 섹션으로 나누어지는데 출입문 바로 앞에 마주한 곳에 전시 타이틀과 메인 작품이 걸려 있다. 출입문 왼쪽으로 난 직방형의 공간은 가운데 작은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또 다른 전시 공간과 함께 사무실과 별도의 작품 보관고 및 판매 중인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방이 있다. 사무실 앞의 데스크에는 전시 소개 자료와 작가의 사진집 등이 놓여 있고, 작품 보관고 방 안에는 소장 중인 작품들을 일부 전시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부문(Boomoon)의 <Falling Water>로 부문은 1955년 생 한국인 사진작가 권부문**의 영문명이다. 작가의 영문명과 전시 이름만 보고 갤러리에 오기로 했을 때는 한국인 작가인 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터라 우연한 마주침이 무척 반가웠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첫 번째 뉴욕전으로 아이슬란드의 스코가(Skogar) 폭포에서 작업한 시리즈 중 일부와 이후의 <Falling Water> 시리즈 작업들을 걸어 놓았다. 서울과 속초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부문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을 오랜 시간 진행해 왔는데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기존 자연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 사진들이다.

걸려있는 사진 수는 7점으로 많지 않지만 긴 폭의 길이가 90인치 정도 되는 대형 인화 작품들이라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널찍한 전시 공간을 가득 채웠다는 느낌을 준다. 2015년에 찍은 <스코가(Skogar)> 사진들은 순수한 흑백 작업으로 떨어지는 폭포와 그 물줄기를 받아 내는 수평의 수면, 역동적인 폭포의 물살과 상대적으로 고요한 아래 수면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반면 2017년에 청색의 흑백(monochromatic blue)으로 새로이 작업한 <Falling Water> 시리즈는 폭포의 물줄기만을 크롭 하여 물방울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세밀히 잡아 내면서 더욱 추상에 가까운 작업으로 변모했다. 처음 작품을 마주했을 때 아주 진한 밤하늘 은하수를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밀도 있는 물방울들의 응집이 마치 촘촘한 별무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부문 작가의 작업에 대해 많은 글을 써 온 일본인 평론가 쿠라이시 시노는 <Falling Water> 작업에 대해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지칭을 통해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닌 대상) 그 자체로 회귀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였다고 평했다. 그리고 이번 최신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청색조인데 이는 실존하는 대상의 “색채를 찍은 것이 아니”라 “작가가 체험한 현장의 인상이자 사고의 결과물”****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흑백의 <스코가> 작품들과 청색의 <Falling Water> 작품들을 같이 보고 있으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여담이지만 이번 작품들의 판매가는 그동안 관람한 여러 전시들 중 비교적 높은 편에 속했는데 – 대략 에디션 당 3만 달러 초반 – 역시 돈이 되는 예술은 추상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역시 진정한 예술은 이해하기 힘들어야 하는 것…?

뉴욕이 예술과 문화의 글로벌 중심이라 하지만 파리, 베를린, 런던 같은 전통적인 유럽 도시들의 문화적 저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Flowers 갤러리는 그중 런던에서 오래 둥지를 틀면서 자리를 잡아 온 곳이고 뉴욕까지 그 세를 넓혔으니 가히 ‘글로벌’ 커버리지를 가진 갤러리라 할 만할 것이다. 또한 컨템퍼러리 사진 작품들과 관련한 사진집 및 프린트들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는 갤러리이므로 이곳 뉴욕에 오게 된다면, 또는 런던에 가게 된다면 시간 내어 들러 보기를 추천한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Flowers Gallery
  • 주소: 529 W 20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s://www.flowersgallery.com

*18년 3월 22일 기준.

**작가 홈페이지(http://www.boomoon.net/index.html)에 작업들, 전시, 출판 및 작가에 관한 텍스트들까지 다양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살펴보기 바란다.

***쿠라이시 시노, “폭포의 몸”, <Falling Water>, Kim Art Lab, 2018, p. 64-65.

****같은 책, 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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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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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이 출입문과 마주한 메인 전시 공간, 뒤쪽으로 보이는 곳이 출입문 왼쪽으로 자리한 전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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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오른쪽으로 펼쳐진 전시 공간. 앞쪽에 보이는 데스크 뒤쪽으로 사무실이 연결되어 있으며 데스크 앞쪽의 통로로 들어서면 작품 보관고와 책장으로 연결된다. 뒤쪽 가운데 보이는 작품은 <Waterfall #454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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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관고 및 책들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작은 방. 뒤로 보이는 작품은 부문 작가의 <Naksan #1231, 20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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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 전시 관련 자료와 작가의 사진집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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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fall #669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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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Skogar #0384, 2015>, <Skogar #5594,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