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블루스

 

가끔씩 한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바다가 그리운 순간이 다가온다.

섬에서 동백꽃이 필 때 쯤엔 더욱 그렇다.

막 피어오른 새빨간 동백꽃에는 비릿한 첫사랑의 냄새가 스며있고,

가지에서 떨어져 발에 밟히는 꽃에는 실체의 고통으로 밖에 치유할 수 없는 허무함이

짓이겨 있다.

그렇게 한참을 포구와 마주하고 있자면,

어느새 허무와 자해의 욕망을 초월하고 바다에 떠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가학의 계절 앞에서 무방비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찾아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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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Leica MP (Film), Leica M-Monochrom (CCD), Ricoh GR

Lens : Ricoh GR Lens 28mm F2.8 (M39)

Film : Kentmere400

<끝>

 

 

광고

봄날의 통영, 연대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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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전날 물보라 다찌 외에는 더 이상의 알코올 섭렵 활동이 없었기 때문인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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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부족으로 인한 거부감도 없이 개운하다.

주저 없이 주섬주섬 챙겨 서호시장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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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훈이 시락국.

조금 유명해져서인지 예전보다 사장님의 무뚝뚝함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반찬 가짓수는 여전히 하나씩만 맛보기에도 벅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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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의 목적(물보라 다찌, 훈이 시락국)은 다 이뤘으니 이제 섬으로.

배를 타고 15분 정도면 갈 수 있으며, 2015년에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가 완성돼서 트래킹 장소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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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에서 바라본 한려해상공원.

가운데 제일 높이 솟은 섬이 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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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에서는 연대도로 들어가기가 불편하다.

연대도로 가기 위해서는 미륵도에 있는 달아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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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대양을 항해하는 항해사였겠지?

표를 받는 조수 외에는 모든 것을 혼자 움직이는 선장의 능숙한 솜씨를 보면서 잠시 마도로스의 과거를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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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보이는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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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이층 집에 짐을 풀었다.

방금 도착한 배에서 내려 분주하게 트래킹 코스로 이동하는 관광객과, 일상으로 바쁜 주민들의 동선이 이리저리 엉키면서 마치 약속된 군무를 추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관조할 수 있는 전망이 좋았다.

최백호의 도라지 위스키가 떠올랐다.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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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망중한을 즐기다 바다로 나섰다.

넓은 바다를 보니 안주거리를 직접 포획하고 싶은 야생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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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님은 좌대낚시터에 도착해서 우리가 권하는 위스키를 사양하시며 연대도에서 크게 어장을 벌려서 잘 나갔던 젊은 시절, 그리고 다 날려버린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때의 위스키 이야기와 짧지만 꿈같은 인생 이야기도…

선장님은 그렇게 좌대 낚시터에 우리를 내려놓고 두 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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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만선을 자랑하며 귀향하는 배를 바라보며 우리도 푸짐한 횟감을 꿈꿔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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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살생에의 커다란 의지가 없던 그들은 지지부진한 두 시간의 광합성 시간을 보내는 동안,

두어 마리 단촐한 횟감을 포획한 다음에야 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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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는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간이 횟집이 있다.

아주머니들은 양을 채우려면 참돔을, 아니면 제철인 볼락을 권했고, 우리는 볼락 세꼬시 한접시를 주문하면서 우리가 잡은 횟감도 부탁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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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테이블에 자리를 편 마도로스 형님들의 포스에 기죽지 않고, 15년 산 보모어를 들이켰다.

천국보다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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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신장군비석

정월 초순과 좋은 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남해안 별신굿을 모시는 별신대라고 한다.

연대도는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연대(봉화대)를 이 섬의 정상에 설치했고 그래서 연대도라고 불리게 됐다고 하며, 그 후 1665년에 충무공 사패지(임금이 내려주는 논밭)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작농이 됐다고 한다.

1949년에 농지개혁이 일어났지만 일부 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의 사패지로 남았으며, 1989년에서야 마을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한다.

그간의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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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오후에는 스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출렁거리는 출렁다리를 지나서 만지도 트래킹을, 다음날 아침에는 연대도 트래킹을 하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고립된 섬의 역사와 함께 육지와의 단절에서 오는 고독을 느끼고 싶다면, 통영 근처의 섬으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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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Leica M-Monochrom (CCD), Ricoh GR

Lens : Ricoh GR Lens 28mm F2.8(M39)

<끝>

봄날의 통영, 연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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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누가 뭐라고 해도 봄이 좋다.

한 번이라도 남도의 봄기운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통영은 봄이면 찾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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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을 지내오는 동안 잔뜩 움츠리고 있던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 생명력이 느껴지는 봄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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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첫 관문은 뭐니 뭐니 해도 충무김밥이다.

통영에 갈 때면 늘 가는 집이 있었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게 이 가게로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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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과 TV 출연 자료들.

빛바랜 사진만큼 세월을 견뎌온 내공이 있을까?

아련하다. 가끔씩 떠오를 때면 한 번씩 펼쳐보는 사진이 아닌 늘 눈앞에 놓여있는 화사했던 과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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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특미는 무김치와 오징어 어묵 무침 외에도 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당연히 “굴 주세요”

살짝 익힌 굴에 직접 만드셨다는 굴 소스를 비밀리에 바르고 계시는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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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운영해 왔고, 지금은 본인이 개발한 굴 충무김밥을 내놓으셨다는 사장님.

충무김밥집의 원조를 놓고 말이 많지만 처음 시작하셨다는 분들이 거의 돌아가신 지금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르면 그만이다.

서글서글한 사장님의 인상에서 다음에 통영을 찾아도 다시 찾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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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을 충무김밥집에서 먹는다면 당신은 아마추어.

김밥집을 나서는 순간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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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동광식당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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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 쑥국과 볼락 매운탕이 충무김밥과 완벽하게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통영의 1차 관문을 제대로 통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업이 좋지 않은 관계로 멸치회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웠지만 이대로도 충분했다.

오전 내내 뱃일을 하고 왔다는 선장 한 분이 이미 술이 취한 채로 들어오셔서는 또다시 소주를 들이키며 연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응 그렇지요. 이 집 도다리 쑥국이 정말 맛있는기라. 암. 소주도 맛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건네는 외로움의 하소연이었고, 또한 자신에게 바다에의 삶을 다짐하는 인내의 표식이었다.

외로운 바다와 남자. 고독한 고독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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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의 여독은 지역 막걸리로 푸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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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지방의 어시장들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통영 중앙시장의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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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거칠지도 않고,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거절 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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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바라본 통영항과 서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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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르지만 내심 욕심이 났던 28 Lounge.

어이, 거기. 다음에 온다면 그쪽 옥탑을 전세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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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저녁이 오고 있다.

지금 이 포만감으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곳에 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서 허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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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부둣가의 풍경들이 정감이 간다.

불쑥 들어가서 기본 메뉴를 시켜 놓고는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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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 쪽에서 바라본 중앙시장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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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가기 위해 일부러 걸어온 해저터널.

왕복해서 돌아오면 얼추 예약 시간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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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축복의 시간이 찾아왔다.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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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허기진 채로 그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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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내어온 안주로도 미션은 가능해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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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바닷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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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전하신 백사장님~

방송에 나오셔서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너그들 딱 생각난다” 하신다.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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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에는 털게라며 해체 시범을 보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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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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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다시 오기로 하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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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연대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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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Ricoh GR

<다음에 계속…>

통영,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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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근처에서 태어나 늘 바다가 눈에 보이던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서 가슴에 품는 바다에 대한 향수는 육지 사람들이 바다를 떠올리며 느끼는 낭만과는 조금 다르다.

포구의 삶은 생존에 대한 뭉툭한 욕망과 가공되지 않은 듯한 거친 일상의 연속이며, 연안에서 바라보는 망망대해는 자유를 꿈꾸기보다는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구속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들은 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피붙이의 끌림과 같이 알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 내는 것이다.

커다랗게 출렁이는 동해 같은 파도는 보기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서해 같은 갯벌도 찾을 수 없지만, 통영의 바다는 머릿속에서 그리는 고향의 바다와 같은 끌림이 있다.

언제나, 통영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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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블루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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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속으로

 

 

1편 다시보기  통영, 한국의 나폴리

2편 다시보기 통영, 막연한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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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서 마시는 술은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속설을 증명하려는 것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바닷가에서는 조금 더 들이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지난밤의 생각과 아침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새벽 5시에 눈을 떠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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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집과 횟집, 생선국 집이 많아 관광객이 몰리는 중앙시장과 달리, 서호시장은 건어물과 조리하지 않은 해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전통적인 어시장에 가깝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 전혀 시장 볼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나에게,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아주머니의 소심한 호객행위는 달콤한 세레나데와 다름없다.

“아재요, 찾는 거 있습니꺼? 사진은 또 뭐하로 찍는데… 그라지 말고 이거 좀 보고 가이소”

“예, 시락국 한 그릇 하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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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시장 속을 쭉 가로질러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사잇길에서 만나는 시락국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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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훈이 시락국을 찾는 이유는, 칼칼한 시락국과 함께 고를 수 있는 대여섯 가지 반찬을 마주하고 있자면 지난밤의 일들이 다시 한번 꿈같이 떠오르기 때문이랄까? 마침내 한입 뜨는 순간, 새벽 5시경에 이미 오늘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밤을 보낸듯한 얼큰한 모습의 갯가 거친 사내들 얼굴을 마주할 때면, 묘한 동질감과 함께 측은지심의 연민이 불쑥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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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를 한 잔 하고, 이제 진짜 통영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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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만약에 내가 가는 곳을 안다면, 나에게 그 길을 알려주면 좋겠다.

언젠가 내가 길을 잃어도 너의 눈으로 그곳에 찾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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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언젠가 길을 잃었을 땐 역시 천국보다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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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도의 추억은 언제나 늦여름이다. 성수기에 북적거리던 기억은 이미 아련하고, 늦더위를 타박하며 한적하게 보내는 가을의 전주곡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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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의 소매물도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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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 짐을 풀 겨를도 없이 주인에게 물때를 물어본다.

4시쯤이면 등대섬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에 급히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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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비포장이었던 등대섬 가는 길. 둘레길의 열풍으로 이곳에도 산책로를 따라 데크가 놓여있다.

힘들지 않다는 남자 친구의 말을 믿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서 등대섬으로 나섰다가 부러진 구두 굽을 부여잡고 원망의 넋두리를 쏟아내던 몇 년 전 어느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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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물때가 들어서 4시에 길이 열릴 것이라던 민박집 주인장의 물때 예보는 틀렸다.

(조금 물때 : 바닷물이 가장 적게 들고 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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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올 수 없는 곳이니 조금만 더 민박집 주인장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1시간 가까이 지나서 물길이 조금 빠진 듯했지만 기어이 길을 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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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도 없이 나선 길이라 더 기다리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는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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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숙소로 돌아오려면 한참인데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해.

등대섬에 가겠다는 욕심으로 더 머물렀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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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주말이다.

문득, 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준 등대섬으로 가는 잘못된 물때 정보가 떠올랐다.

소매물도의 주인이 누구고 원주민이 또 누구이며, 그 갈등이 어떻게 이어져 가고 있는지는 IMF 이전으로 넘어간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몇몇 사람이 공동소유로 섬을 샀지만 IMF로 인해 관리를 하지 못해 그 소유가 대리로 관리를 해주던 사람으로 넘어갔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전까지는 별 탈 없이 지내던 원주민들이 소유권이 바뀌면서 점점 합의하에(?) 밀려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원주민들은 작은 농사와 낚시, 민박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7년 전에 왔을 때 묶었던 원주민 민박집 아들의 물때는 틀리는 법이 없었다. 낚시터면 낚시터, 등대섬으로 열리는 길의 시간 등.

농어를 몇 마리 잡아왔는데 같이 먹자며 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던 아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회와 함께 나누던 소주를 들이키며, 당시 이 섬과 어울리지 않게 무허가로 지어 올리던 펜션을 가리키면서 “저거 허가가 안납니더. 이 청정해역에 저렇게 해서 사람 들어오면 섬도 죽고 바다도 다 죽는데…” 하던 말도.

하지만 그 펜션은 허가가 났고, 몇몇 펜션이 더 생겼다. 그때 그 민박집에 아들과 노모는 아직 소매물도에 사는지 찾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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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인파를 피해 선착장 옆쪽 한적한 곳에서 바다를 보며 망중한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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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시장 낚시점에서 산 싸구려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세월을 낚는다. 와인도 한 잔 더하면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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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멍게와 소라, 해삼을 파는 분들이 대부분 원주민이다.

애매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은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에 묻혀버리고, 어쨌든 나도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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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국보다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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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낚시꾼들에게만 아름아름 소문났던 섬이, 과자 광고로 다소 유명해지긴 했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당일 둘레길 산책로가 소문나면서 주말이면 매시간마다 통영과 거제에서 배가 들어왔다 나간다. 고요함을 넘어선 적막함이 좋았던 평일 밤은 온데간데없고, 아침부터 두런두런거리며 무례하게 민박집 안으로 불쑥 들어와 이것저것을 캐묻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더 이상 섬에서의 고독은 즐길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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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배를 타야 하는 둘레꾼들은 한두 시간 안에 줄지어 섬을 훑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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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돌아 밀물처럼 빠져나간 인파 대신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통영, 그 속에 들어가서는 꼭 두어 밤을 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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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작은 섬에서 바라보는, 커다란 응어리가 바닷속으로 잠기는 풍경은 조금 특별하다.

고립된 장소에서 느끼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함과, 별 다를 것 없는 좁은 섬에서 반복될 일상의 지루함이 한없이 작은 몸을 짓누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육지에서 느끼는 번뇌와는 결이 다른 평온함이 온 세상을 감싸는 기분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늘 문득 “농어 두어 마리 잡아왔는데, 회 안드실랍니꺼?” 하던 음성이 떠오른다.

따뜻한 봄이 오면 통영,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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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속으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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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막연한 기대감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출발 전에 이미 반 이상 채워진다. 무언가를 꼭 봐야 한다거나, 미지의 인물과 만나고 싶다거나, 꿈같은 숙소에서 잠들고 싶다거나… 막연한 기대감이 그 즐거움이다.

그 중에서도 날씨는 사람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에 있어서 더욱 더 큰 염원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  ‘날씨가 좋으면(?) 좋겠다(??)’ 정도의 애매모호한 바람만 가질 뿐, 자신에게  <좋은 날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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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서울보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기대했던 나는, 고속도로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비 때문에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그런데, 통영항을 따라 천천히 속도를 늦추면서 달라졌다.

차의 속도에 맞춰 한결 느린 속도로 찻창에 미끄러져 내리는 빗물과 함께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좋은 날씨>에 대한 애매모호한 바람도 빗물이 미끄러져 내리듯 자연스럽게 내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 시간과, 이 속도, 이 느낌을 기억하게 하는 이 비야 말로 이 순간 통영과 너무나 대책없이 잘 어울리지 않는가?

주차를 하자마자 밖으로 나서려는 일행들을 잠시 붙잡았다.

“시동 끄고, 10분만 더 있다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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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지만 해저터널 안은 노란색 등 외에는 다른 빛을 허락하지 않았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란 이름을 달고 일제 강점기인 80여년 전에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다.

육지와 미륵도를 잇는 구름다리가 있었지만 임진왜란 당시에 죽은 자기네 조상들의 수몰 현장 위로 조선인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 아래로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는 사연이, 습하고 침침한 터널의 길이만큼 눅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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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안에는 개통당시 사람들이 우마차와 함께 지나다니던 모습의 사진과 함께, 이곳 출신의 예술가들의 사진도 함께 볼 수 있게 해놨다.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 놓았겠지만, 한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부유했던 중소도시에서 가끔씩 이런 장면들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변기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문호들의 글에서 발췌한 한 줄 메모들이다. 인생의 통찰은 온데간데 없고 그 허무함의 껍데기만 가득 쌓아놓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런 껍데기 까모으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산양면을 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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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동 전혁림 미술관.

작가가 30여 년 동안 생활하던 집을 미술관으로 바꾼 이 공간이 좋아서 통영을 갈 때마다 들르곤 한다. 한적한 길 주위로 은행잎이 나부낄 때면 이곳에 눌러 앉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작가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색채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독특한 색감과 작품세계를 구축해서 한국 추상화를 개척했다고 한다.

예술은 선생이 필요없다. 자기 혼자 배우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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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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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통영 사람들이 그 이전부터 스스로 조선의 나폴리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작품을 통해서 그렇게 표기한 사람은 아마도 박경리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 나폴리를 가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외국 것이라면 다 좋아보이던 시절이니 또 이해가 간다. 조그마한 항구에 그만한 찬사가 또 있었을까? 아, 조선의 나폴리.

김약국의 딸들을 읽어본 것도 아주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올해는 토지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껍데기를 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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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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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약국의 딸들 이야기 때문에 살아서 통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박경리,

이념문제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윤이상,

그외 친일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예술인들…

어쩌면 통영은 근대 우리 역사의 증거를 아프게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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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면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왜 조선의 나폴리와 같은 수식어를 붙였는지 알만하다. 굽이굽이 아름답고, 가끔씩 만나는 포구는 고즈넉하며, 그곳에서 지는 해를 보고 있자면 온갖 생명의 기운이 잠들 듯 평온한 마음을 얻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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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와 미륵도를 잇는 충무교 아래이자, 해저터널 위 등대.

다시 뭍으로 돌아와서…통영에 가게 된다면? 이란 마음으로 통영에서 마주치길 기대하는 것들을 다시 기억해보자.

1. 바다

2. 산양면

3. 역사적 배경들

4. 다찌집

5. 다찌집

6. 다찌집

7. 다찌집

8. 다찌집

그래 다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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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다찌집에 예약을 하지 않고 갔더니 초저녁에 벌써 재료가 다 떨어져서 장사를 마친다고 했다. 매번 올 수 있는 통영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통 머리속은 다찌집인데 애매한 횟집을 갈 수도 없어서 근처에 있는 만포진 다찌집을 찾았다. 우리를 반기는 젋은 사장님의 외모를 보고는 그 음식 내공이 조금은 의심이 들었지만, 안방 구석에 자리를 내주는 마음씨를 보고 불안감은 운에 맡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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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들은 당연히 회가 좋지만, 이렇게 여러가지 해산물로 한 상을 차리는 집들도 유명하다.

군산은 실비집이라고 하고, 마산은 통술집, 그리고 통영은 다찌집이라고 한다.

잡어회, 전복, 멍게, 굴 등등 날것에서부터 찐 게, 아구수육, 찜같은 요리, 그리고 볼락구이까지…

회를 좋아해서 돌돔, 감성어 같이 고급 회로만 배를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곳이지만, 이것저것 제철 해산물을 맛보면서 한 잔 나누기에는 다찌만 한 곳이 없다.

군산의 실비집은 가격대비 좋지만 이처럼 화려하지 않고, 마산의 통술집은 날것보다는 익힌 것들 위주라, 진정 해산물을 좋아하는 식도락가들에게는 통영 다찌집은 가히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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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지상낙원에 갈 때 무얼 가지고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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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만포진 다찌집은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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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포진에 만족했다고 처음의 목표가 꺾인 것은 아니다. 그 다음에 통영을 찾았을 때에는 이른 시간에 예약을 하고 물보라다찌로 갔다. 몇몇 통영 출신 후배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자기 가족은 다들 여길 간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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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라다찌에 오려고 서울에서 친구들을 몰고 왔다며, 익히 몸에 베여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너스레를 떨고… (20년 전 수법이라 이제는 통하지 않는 개그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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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이리도 많이 나오나 싶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돌돔, 감성돔, 농어 따위가 없을 뿐이지 제철 잡어회도 훌륭하다.

원래 볼락은 고급 어종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구워먹을 수 있는 것도 호사로운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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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무르익을 즈음에 물보라다찌 주인장인 백여사님이 자리에 앉았다.

“총각들은 서울에서 뭐한다꼬 여까지 왔노?”

“어무이, 내가 통영 구경도 못해본 서울 촌놈들 델꼬 왔다아입니꺼 “

음식이 한참 더 나올텐데 이렇게 못먹으면 어쩌냐고 타박하고는 일일이 한 잔씩 권해주시면서, 과년한 딸이 있는데 어디 좋은 사윗감이 없냐며 우리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시기도 한다.

아직은 그렇게 옆집 아주머니 같은 정겨운 맛이 있었는데, 얼마전 TV에 소개되고 나서는 가보지 않아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다. 발붙일 자리가 없다고해도 통영에 가면 물보라다찌 백여사님을 다시 찾게 되겠지?

배가 불러서 더이상은 못먹겠다는데 기어코 직접 깐 오도르를 일일이 입에 넣어주시던 백여사님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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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기대감을 빼면 여행은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그 옛날 시인 백석이 천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막연히 찾았던 통영.  그리고 그 이루어지지 못한 상실감으로 헤매던 것처럼 우리도 항남동 골목골목 대폿집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언제나 인생이 그렇지만, 천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기억속에 그렇게 통영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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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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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국의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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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마치 첫사랑 같은 곳이다.

별 볼일 없는 자그마한 항구를 아무 이유없이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유롭게 산양면 해안도로를 달리다가도 문득 비진도, 매물도 같은 섬으로 들어가 스스로 고립되기를 즐기는.

뭍으로 나와서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이제와 그러기에는 새삼 회한만 가득한 꿈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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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여전히 거친 바다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같은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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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고 한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겠지만,  사대적인 기분이 들어서 그런 별칭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폴리를 가보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통영이 좋다. (실제로 나폴리를 다녀온 분들의 반응을 들어도 뭐 통영이 훨씬 낫다던데?) 

더군다나, 이 생뚱맞은 나폴리 모텔을 지나칠 때면 도대체 누가, 언제 그렇게 붙인 것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미항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로테스크한 각진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속으로 되뇌이는 것이다.

‘아 맞다. 한국의 나폴리(?)…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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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의 예전 이름은 충무시였다. 1990년대 중반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통영시가 정식 이름이 되었는데, (삼천포와 사천시가 통합되면서 거론됐다는 칠천포의 에피소드가 겹치는…)

이름이 바뀔 당시에, 묘하게 애국심을 강요하는 듯한 충무시보다 통영시가 훨씬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토영이라고 발음해서 그 정겨움이 더했다.

기억이 거기까지 떠오르자 문득, 과연 한국의 나폴리 통영의 최초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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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 12국 중 고자미동국에 속했던 지역이며, 6가야 중 소가야에 속했던 곳이다. 또한 신라 때 포상팔국 중 고자국(지금의 고성군)에 속했고, 뒤에 고자군을 설치하였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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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첫사랑 같은 애틋함과 태고적부터 고자였다는 전설(?)이 뒤엉켜있는 그곳. 

통영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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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