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

20160817-_d5k1745502

루디와의 데이트립(Day Trip) 이틀째입니다.오늘은 브사끼사원(Pura Besakih)과 물의 궁전 띠르따 강가(Tirta Gangga)에 가기로 했습니다.

전날밤 두곳을 보고 싶다고 하자 루디는 두 곳이 아궁산(Gunung Agung)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있다며 하루에 보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종일 차만 타고 다녀야할 수도 있다며, 가능하면 이틀에 걸쳐서 보는게 좋다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오늘이 우붓에서의 사실상 마지막날이고, 내일은 떠나야한다고 하자 루디는 스케줄을 조정해줬습니다. 시간이 약간 남을 것이라며 바롱 댄스(Barong Dance)도 일정에 넣어줬습니다.

20160817-_d5k1762507

발리(Bali)행을 준비하며 깨짝 댄스(Kecak Dance)를 보려고 했었습니다.
일명 원숭이 춤이라고도 부르는 깨짝이 꽤 재미있다는 후배의 추천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루디는 기왕이면 바롱 댄스를 보라며 강력 추천해왔습니다. 발리 전통 춤과 전통 음악이 어우러진 것은 바롱 댄스 뿐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입장권을 사고 팸플릿을 읽어본 후에, 바롱 댄스를 봐야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롱 댄스는 현대에 와서 재해석된 공연이지만, 발리니스들의 종교와 철학, 정신세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선을 상징하는 바롱과 악의 상징 랑다(Rangda)의 영겁의 대결을 그린 바롱 댄스에 대한 해설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08963

20160817-_d5k1788515

20160817-_d5k1770509

20160817-_d5k1752503

20160817-_d5k1798516

20160817-_d5k1806518

20160817-_d5k1837522

20160817-_d5k1842524

발리에 처음 온 사람들은 발리니스들의 선한 표정과 미소에 매혹당하고는 합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고, 그런 미소가 발리니스들의 천성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바롱 댄스를 보고나서, 그것은 사실 종교적인 이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존재는 내면에서 선과 악의 끝없는 투쟁이 일어나고 있고, 정진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악에 잡아먹힐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밝은 웃음을 짓고 선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라지만 꽤 괜찮은 이유라고 생각됐습니다.

20160817-_d5k1839523

20160817-_d5k1780513

20160817-_d5k1850525

공연 내내 연주하던 전통악단 할아버지들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무대를 한바퀴 돌아봤습니다.

20160817-_d5k1851526

랑다가 휘두르던 풀채를 한참 들여다보다, 차를 타고 브사끼로 향했습니다.

20160817-_d5k1876530

브사끼는 발리 힌두교의 총본산이자 어머니 사원(Mother Temple)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발리니스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아궁산 중턱에 위치한 브사끼에서는 매년 50개가 넘는 제례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20160817-_d5k1879532

입장권을 사고 안내를 자처하는 사제에게 가이드비용을 지불하고, 루디가 빌려준 사롱(Sarong)을 두르고 사원에 오르자 거대한 스플릿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60817-_d5k1897534

본래 외국인, 특히 힌두신자가 아닌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가이드 비용을 받는 사제들이 슬그머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20160817-_d5k1906537

브사끼의 한가운데에서는 보름달 제례(Full Moon Day)를 치르는 발리니스들이 이틀째의 예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전체 제례는 3일간 치러진다고 했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셔터를 자제하며 조용히 눈으로 좇았습니다.

20160817-_d5k1907538

20160817-_d5k1914540

20160817-_d5k1921543

20160817-_d5k1940547

20160817-_d5k1946548

가장 높은 곳에 오르자 멀리 바다를 배경으로 브사끼 전체의 풍경이 보였습니다.
발리니스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20160817-_d5k1950549

20160817-_d5k1953550

20160817-_d5k1959551

20160817-_d5k1961553

어머니 사원의 옆으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들어가도 될까, 고민하다 카메라를 보이며 걸어들어가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낯선 외국인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던 아주머니들이 꾸벅, 인사를 되돌려주셨습니다.

셔터를 눌렀습니다.
파인더 안쪽으로 환하게 웃어주는 눈을 마주쳤습니다. 어쩐지 눈물이 왈칵났습니다.

20160817-_d5k1972555

20160817-_d5k1978556

20160817-_d5k1984558

안내역을 맡은 사제는 수드라 – 힌두 카스트제도의 네번째 계급이자, 천민계급 – 들을 위한 사원을 보여줬습니다. 수드라들 역시 어머니 사원에서 제례를 올릴 수 있고, 이곳에서 추가적인 제례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발리의 힌두교가 인도나 네팔과는 다르다는 얘기는 이런 부분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민 역시 어머니 사원에서 아무 제약없이 제례를 올릴 수 있고, 그들만의 사원이 어머니 사원 바로 옆에 위치한다는 건 무척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20160817-_d5k1993561

20160817-_d5k1998562

20160817-_d5k2013568

끊임없이 공물을 들고 사원을 오르는 발리니스들을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20160817-_d5k2009566

떠나오기 전 다시 브사끼를 돌아봤습니다.
어쨌든 발리에 오게 되면, 매번 들를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20160817-_d5k2079582

차에 올라 띠르따 강가로 향하던 길, 한 무리의 발리니스들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역시 보름 제례를 치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들어가볼까, 잠시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데,
두 녀석이 알로- 인사를 건네더니 호기롭게 걸어갔습니다.

녀석들의 뒷모습에 인사를 건네고 차로 돌아갔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