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EI 35 SE

나에게 필름 카메라는 M6 하나로 차고 넘치기에 다른 카메라 따위 눈 하나 팔지 않았다. 다른 카메라의 부류에는 지인이 쓰던 롤라이35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 오밀조밀 이쁘장하게 생긴 색다른 매력의 카메라는 당시 내게 일말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했다. 한창 라이카와 사랑에 빠진 탓이리라.

밀월은 달콤하나 짧을 수 밖에 없는 운명, 라이카시스템은 수려하면서도 충분히 실용적이었지만 필부의 일상을 함께하기엔 그 잘난 몸값이 늘 걸리적거렸다. 앞만 보고 달리던 경주마의 눈가리개가 벗겨진 듯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 마침 이 곳 비급매거진에 “Minolta TC-1 Review”라는 천민수님의 필름카메라 리뷰가 포스팅되었다. 화사한 샴페인색으로 화장한 조막만한 얼굴에 G-Rokkor 28mm f3.5 렌즈는 컬러와 흑백을 넘나들며 발군의 성능을 뿜어내고 있었다.

.

고민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은듯 신이 난 나는 곧장 이런 덧글을 남겼다.

“흑백도 좋지만 쬐그마한 녀석이 뽑아주는 컬러에 마음이 빼앗겨버렸습니다. 손에 들린 도구에 따라 찍는 이의 마음가짐도 변하기 마련인지라 엠육의 엄숙함을 이런 녀석이 벗겨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장비리스트에 올려둡니다.”

나는 곧장 미놀타 TC-1, 콘탁스 T3 같은 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간 귓등으로 듣던 얘네들 몸값이었는데 중고 거래가를 직접 확인해보니 진짜 장난없다. 특히 T3는 몇몇 셀레브리티들이 소장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치솟아 M6랑 몸값으로 비등비등하다. 모시고 다니려 찾는 카메라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고민의 실타래는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

척박한 땅에 내쳐진 씨앗일지라도 적절한 수분과 볕이 주어지면 싹이 트는 법인가.

지름에 고민하는 어둠의 다크에서 문득 송도 바닷가에서 지인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카메라, 롤라이 35가 운명처럼 생각났다. 시세 확인을 위해 당장 장터로 향했다. 싱가폴/독일, 실버/블랙, 35/35S/35TE 등 언뜻 봐도 그 종류가 방대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필름똑딱이들에 비하면 대체로 부담없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노출계와 구도확인용 파인더가 장착되어 있고 노출은 100% 소유주에게 종속적인 매뉴얼 설정방식이다.

1966년 첫 생산을 시작한 롤라이35는 당시 35mm 범용필름을 장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카메라였다. 하지만, 자이스社의 Tessar렌즈와 1/500초를 지원하는 Compur셔터 그리고 고센社의 CdS미터를 사용하는 등 성능은 결코 작은 카메라가 아니었다. 다만, 렌즈 촛점거리는 롤라이35라는 이름과 달리 40mm였고 목측식 초점방식이라는 점이 다소 걸림돌이었다.

.

스스로 학습은 여기까지로 하고 설계자로 불리는 지인의 영도를 받기로 했다. 메신저로 롤라이 35에 대해 문의하자 모니터 너머의 그는 자세를 고쳐앉더니 롤라이35의 탄생과 배경부터 실타래처럼 엉겨 복잡해보이던 다양한 롤라이35 시리즈를 꼬치꿰듯 한방에 정리해주는 신기神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가 덧붙여 보여주는 롤라이35의 결과물은 Summicron에 결코 뒤지지 않는 샤프함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

20180602_35_m6 hp5 9호관사(2) 송도
leica m6, summicron 35mm, ilford hp5+

.

.

20180613_22_후지기록용100 롤라이35 오도리 효자동 산책
rollei 35 se, sonnar 2.8/40, fujicolor 100

(라이카는 35mm, 롤라이35는 40mm인 초점거리 차이로 원근감 차이가 있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면 가격 차이가 무색해보임)

.

.

.

괜찮은 카메라라는 지인의 개런티까지 보태어 나의 세컨 카메라는 이미 롤라이35로 결정되었다. 이제 장터링만 남았다.

“제꺼 쓰실래요?”

문득 건네는 그의 말이 놀랍고도 다행스러웠다. 안그래도 판매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멀리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느니 가까운데 보내면 좋겠다라는 그의 말. 혹시라도 쓰다가 팔 생각이면 자기에게 팔아달라는 조건과 함께 나는 운명처럼 영혼 충만한 그의 롤라이35SE를 분양 받아냈다받게 되었다.

.

Rollei 35SE 모델은 1979년에서 1981년 싱가폴에서 15만대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델은 롤라이35S 기반에 CdS 노출계 대신 전자식 노출계가 장착돼있어 뷰파인더에서 LED 불빛으로 노출 과부족을 확인 가능하다. 렌즈셔터는 벌브~1/500초를 지원하고 Sonnar 2.8/40 렌즈는 f2.8~22, 감도는 25~1600까지 세팅할 수 있다. 특히 조리개 설정시 다이얼 하단에 Lock버튼이 없는 모델이므로 뷰파인더에서 노출을 확인하면서 조리개 다이얼을 손가락 감각만으로 조정할 수 있어 더욱 실용적이기도 하다.

.

새 장비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까지 패키징되어 온다. 요 며칠 40년 된 카메라로 출퇴근길, 동네 산책을 함께 했다. 손목스트랩을 걸고 손바닥으로 감싸면 손아귀에 폭 안기는 컴팩트한 카메라지만 335g의 무게감이 그리 만만치 만은 않다. 일포드 hp5+ 1롤과 후지필름 기록용필름 100 2롤을 사용해 보았다.

.

나처럼 롤라이35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사용소감을 적어보면,

(그닥 많은 카메라를 섭렵해보지 못한 처지라, 주된 비교대상은 롤라이에게 ‘에브리데이-캐리-카메라’ 자리를 잠시 내어 준 라이카 엠육이 되시겠다)

.

첫째, 엠육은 셔터를 장전해야 노출계가 동작하는 반면 롤라이35는 미장전 상태에서도 반셔터로 노출 확인이 가능해 편리하며, 카메라 내장노출계는 외장노출계 값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정확한 수치를 제시해 줌

둘째, 목측식이라 초점에 대해 걱정했으나 풍경 혹은 사물 위주의 스냅일 경우 “피사체와의 거리추정-초점값 세팅-노출확인-조리개/셔터속도 조정-프레이밍-촬영”등의 순서로 차근차근 진행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음. 다만, “프레이밍-초점세팅-노출확인/조정”이 동시에 가능한 라이카시스템에 비해서는 촬영이 두, 세호흡 느릴 수 밖에 없어 순발력이 필요한 스냅에는 활용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됨

셋째, 35mm도 아니고 50mm도 아닌 어정쩡한 40mm 초점거리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몇 롤 찍어본 소감으로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래서 너무 들어갈 필요도 물러날 필요도 없는 균형감 있는 초점거리인듯 함. (35mm와 달리) 인물을 중심으로 (50mm와 달리) 주변 풍경을 살짝 녹여넣을 수 있어 가족 나들이에 적합해 보이기도 함

넷째, 셔터와인딩과 셔터릴리즈의 감각은 라이카의 그것과 비교할만한 것은 아님(가격도 그러하니 뭐). 라이카의 조작감에 대해 흔히 얘기하는 “Silky smooth’가 이런거였구나를 새삼 깨닫게 됨. 그렇다고 롤라이 만듦새가 토이 수준이거나 그런 것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라며, 조작감 측면은 라이카가 월등해서 생기는 차이일 뿐임

.

.

롤라이35는 이른바 ‘찍는 재미’가 있는 카메라다. 손목에 걸고서 가벼운 마음 가벼운 발걸음에 스치는 풍경 목측으로 어림잡아 담아내야 만 카메라. 초점이 맞는지 맞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런게 중요하지 않은 카메라.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란 걸 일깨워 주는 카메라가 바로 롤라이35라는 생각이 든다.

기껏 한달 써보고 끄적이는 글이라 나중에 이불킥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사용 초반의 경험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며 롤라이35 입문기를 마친다.

.

.

.

ROLLEI 35 SE with “Ilford HP5+ Black and white Film”

.

 

.

.

.

ROLLEI 35 SE with “Fujifilm 記錄用 100 Color Film”

.

 

.

.

.

<Rollei 35SE : BW vs Color>

.

 

.

.

.

 

.

장소와 기억들 – Ba Dinh Square

독립 선언의 현장, 모두의 공간으로.

하노이 시내의 동부, 그곳으로 가면 하늘이 활짝 열린 광장이 한 곳 있다. Ba Dinh Square. 녹음이 짙은 여름이건, 스산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겨울이건 이곳은 열려있다.

주변의 고색 창연한 프랑스 식민양식의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넓게 펼쳐진 콘크리트 광장과 낮게 내려앉은 호치민 묘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갖는 의미는 베트남의 독립 선언이 호치민에 의해 읽힌 장소, 그리고 그의 사후에 영원히 그를 기리는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 두가지가 가장 크다.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의 항복이후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독립 선언을 했다. 왜 일본이 항복을 한 뒤 독립선언을 했을까? 19세기 프랑스의 침략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갖은 착취를 당하던 베트남은 2차대전 중 일본의 재침략을 받고, 베트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프랑스는 무장해제 후 패주, 그리고 1940년 베트남의 새로운 식민국으로 일본이 들어서게 된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5년이나 더 받은 후 일본의 항복 뒤 베트남은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호치민이 독립 선언서를 읽은 장소가 이곳 바딘 광장이다.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들 매우 존경한다. 남베트남 정부의 무능과 부패등에 대비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저항운동에서부터 시작해 일본 식민 시절에 대한 저항 운동, 그리고 이후 프랑스 및 미국 침략세력에 대한 저항까지, 그의 한 평생 청렴한 생활과 나라를 위해 저항하며 살아온 인생 자체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의 묘역을 공개하고 참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며, 이 시간에는 참배하기 위한 사람의 줄이 상당히 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호치민을 기리기 위해 묘역 뿐 아니라 호치민 박물관이 Ba Dinh Square 서남측에 자리해 있다. 호치민이 펼쳤던 베트남 독립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70년대 이후 베트남의 통일 이후의 활동상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호치민의 활동 상황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어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며, 대부분 베트남어 및 영어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바딘광장의 동편으로는 19세기 하노이로의 수도 이전과 함께 생겨난 Thang Long 황성 유적이 남아있다.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황성 유적은 과거의 건물들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으며, 그곳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프랑스 식민지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Ba Dinh Square는 식민 지배의 잔재들 사이에 낮게 자리잡은 광장과 호치민 묘역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공간 이다. 공산당의 나라, 베트콩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물론 존재하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베트남을 바라보는 시간을 이곳에서 가져보면 어떨까?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셔터 속도가 느려질수록, 사진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꼭 그러잡은 바디, 조심스럽게 누르는 셔터 버튼. 그리고 이내 열렸다 닫히는 셔터. 셔터가 열러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필름은 조용히 그 순간을 받아들인다.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멈춰세운 시간을 보기 위해 우리는 밝은 렌즈와 셔터 속도에 열광하지만, 그 열광속에 놓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어쩔수 없는 불편한 상황에서 욕심은 내려놓고 당시를 즐겨보고자 했다. 안나오면 뭐 어쩔 수 없지. 렌즈 밝기 F6, 잔뜩 흐려 부슬비가 내리는날, 그리고 감도 200의 필름은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 상황을 그저 즐기라고 나를 재촉했다.

비가 오는 골목에서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맑은 날에 비하면 한결 느려진 속도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활기는 잃지 않은 채였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와중에도 커다란 짐을 자전거에 싣고, 팔 것을 어깨에 지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잊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 장면 속에서 사람 사는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비록 부슬비가 머리와 옷을 적시다 못해 카메라 까지 눅눅하게 만드는 상황이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나서 일에 지쳐 한동한 무미건조했던 내 마음도 촉촉하게 젖을 수 있었다.

 

20180318-LeicaIIIc-Orion15_28mmf6-C200-006

 

 

20180318-LeicaIIIc-Orion15_28mmf6-C200-014

 

 

20180318-LeicaIIIc-Orion15_28mmf6-C200-020

 

 

20180318-LeicaIIIc-Orion15_28mmf6-C200-025

 

 

20180318-LeicaIIIc-Orion15_28mmf6-C200-037

 

Leica IIIc / Orion-15 28mm F6 / Fujifilm C200

Hanoi. Vietnam.

Zeiss Opton T Tessar 50mm f3.5

Carl Zeiss and Tokyo.

Carl Zeiss 렌즈를 쓰면서 문득 떠오른 도시는 도쿄였다. 높게솟은 마천루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근대 건물들,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 이번 여행을함께한 Carl Zeiss Biogon 21mm f4.5, Zeiss Opton Tessar T 50mm f3.5, Zeiss Opton Sonnar 50mm f1.5 세개의 렌즈를 통해 본 도쿄의 모습을 짧은 글과 함께 남기고자 한다.

두번째 렌즈는 Zeiss Opton T Tessar 50mm f3.5

 

IMG_20180207_132234_209

 

처음 이 렌즈를 인터넷 상에서 알아가고 접하며 엄청 깔끔하게 떨어지는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말했던 Carl Zeiss Biogon 21mm f4.5 렌즈와 같이 선명한 선들이 여기저기 있는 도시에서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 렌즈도 언젠가 도쿄에 갈 날이 있다면 챙겨가야 겠다는 맘을 먹고 있던 도중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렌즈에서 느낀 느낌은 상당히 절제되고 억눌린 색표현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21mm Biogon이 눈으로 본 그대로의 색을 사진에서 그대로 보여준다면, 50mm Tessar는 눈으로 본것보다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의 색을 보여줘 상당히 단단한 느낌의 결과물이 되곤 한다. 차분하면서도 구석구석 세밀한 묘사는 우직하게 자기의 할일을 다하는 장인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이 렌즈의 미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광택의 바디에 전면에 위치한 무광 테두리 한줄의 장식성은 차고 넘치지 않는 아름다움을 장식하는 열쇠가 된다. 굳이 촬영을 하지 않고 손으로 조작만 하고 있더라도 충분히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는 Carl Zeiss의 렌즈 다운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다.

Tessar 50mm의 첫번째 목적지는 오차노미즈역 근처. 간다 진보쵸에서 걸음을 옮겨 다음 목적지로 삼은 곳이 오차노미즈역 이었으며, 그곳에서 간다묘진 방향으로 길을 잡아 이동했다. 그 중간 오차노미즈역 근처에서 촬영한 컷들이 살아남았는데, 또렷하게 뻗은 선과 푸른하늘의 절제된 표현이 인상적인 결과물로 나왔다. 오차노미즈역은 특히 일본의 복잡한 열차 노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한 역이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다 보면 여러갈래로 얽힌 열차 노선을 보게 되는데, 그곳에서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다 보면 시간은 훌쩍 몇십분이 지나가 있고 하는 곳이다.

 

20180207-Contaxii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29

 

20180207-Contaxii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31

 

20180207-Contaxii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34

 

20180207-Contaxii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35

 

20180207-Contaxii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37

 

두번째로 향한곳은 긴자. 역시나 도시에 어울리는 렌즈를 테스트 할만한 곳은 긴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값비싼 것들은 모두 모인다는 긴자는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상당한 번화가로 자리 잡은 곳이었다. 그런 번화했던 힘의 바탕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개운치 못하지만, 일단 눈으로 보기에 근대의 건물과 유리로 둘러친 건물의 조화가 기기묘묘하다 느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사진을 촬영하러 간 날은 하늘이 매우 맑아 컨트라스트가 엄청 강하긴 했으나,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는 만큼 드라마틱한 화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잘 이용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늘과 빛이 드는 부분을 신경써 촬영했고 조금 아쉽지만 렌즈의 개성은 어느정도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20180207-Contaxiia-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01

 

20180207-Contaxiia-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03

 

20180207-Contaxiia-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04

 

20180207-Contaxiia-ZeissOptonTessar50mmf35-Provia100F-039

 

긴자에 가져간 다른 바디에 흑백필름이 마운트 되어있었던 덕분에 흑백 결과물도 같이 확인 할 수 있었다. 빛이 매우 강한 상황이었고, 덕분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긴 했지만 역광의 상황에서도 암부 표현이 이상하거나 뜨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순광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인 표현을 보여주며 화면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묘사해 내는 장인정신은 흑백필름에서도 쉬지않고 살아 숨쉬고 있었다.

 

20180207-M4-aZeissOptonTessar50mmf35-Seagull400(EI800)-003

 

20180207-M4-aZeissOptonTessar50mmf35-Seagull400(EI800)-006

 

20180207-M4-aZeissOptonTessar50mmf35-Seagull400(EI800)-011

 

20180207-M4-aZeissOptonTessar50mmf35-Seagull400(EI800)-014

 

20180207-M4-aZeissOptonTessar50mmf35-Seagull400(EI800)-016

 

20180207-M4-aZeissOptonTessar50mmf35-Seagull400(EI800)-018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담기에 참 좋은 Zeiss Opton T Tessar 50mm f3.5 렌즈. 단단하게 손에 꽉 차는 조작감이나 차분하고 꾹 눌러 표현하는 결과물까지 마음에 쏙 드는 이 Tessar 렌즈는 50mm를 사랑하는 내게는 정말 보석같은 렌즈다. 게다가 후기 Carl Zeiss렌즈의 특징인 아름다운 코팅색 까지 더하면, 외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Carl Zeiss 렌즈중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렌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Contax IIa / Zeiss Opton T Tessar 50mm f3.5 / Fujifilm Provia 100F

M4 / Zeiss Opton T Tessar 50mm f3.5 / Seagull400 (EI800)

Carl Zeiss Biogon 21mm f4.5

Carl Zeiss and Tokyo.

Carl Zeiss 렌즈를 쓰면서 문득 떠오른 도시는 도쿄였다. 높게솟은 마천루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근대 건물들,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 이번 여행을함께한 Carl Zeiss Biogon 21mm f4.5, Zeiss Opton Tessar T 50mm f3.5, Zeiss Opton Sonnar 50mm f1.5 세개의 렌즈를 통해 본 도쿄의 모습을 짧은 글과 함께 남기고자 한다.

이번 첫 렌즈는 Carl Zeiss Biogon 21mm f4.5

20세기 최고의 21mm 렌즈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극도로 억제된 왜곡과 깔끔한 주변부 화질이 특징인 렌즈이다. 잘 설계된 덕분에 최대개방이 아니라면 중앙부 부터 화면의 바깥쪽까지 고루 선명하게 상이 맺힌다. 특히나 렌즈의 뒷부분이 필름면과 매우 가까워 해상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준다 하며, 결과물을 실제로 보면 확대했을때 상당히 정확한 표현을 해 주는걸 볼 수 있다. 전반적인 렌즈의 색 표현은 현행 렌즈와 다르지 않다 싶은 정도의 정확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딱 떨어지는 이 렌즈의 직선 표현은, 종이에 손을 베일때 뒷목이 선득선득해 지는 느낌과 비슷할 정도로 날카롭다는 느낌을 준다.

사진 촬영에 무감각한 사람들, 길게 뻗은 도쿄의 빌딩과 도로들은 비오곤의 성능이 어떨지 테스트 해보기에 참 좋은 환경이라 생각하던 차에 도쿄로 갈 기회가 생겼고 Biogon 21mm를 쓰기 위해 카메라와 렌즈를 챙겼다.

도쿄에서의 21mm 촬영에는 슬라이드 필름만 사용했다. 날씨가 워낙에 맑고 빛이 좋아 슬라이드에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Biogon 21mm를 구입하고 슬라이드를 사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잘 작동해 왔던 카메라를 믿고 촬영을 시작했다.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5.jpg

 

처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곳은 도쿄의 간다 진보쵸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서점이 많이 모여있기로 유명하다. 메이지 시대에 주변에 유명한 사립 대학교가 들어서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중고 책거래가 활발해 지기 시작하며 고서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래되기로 유명한 야구치 서점부터 골목골목 길가 곳곳에 서점이 참 많이 있었다. 일본어를 자연스레 읽을수만 있었다면 살 책을 찾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돌아다니기 바빴겠지만, 그렇지 못한 덕분에 별 다른 유혹 없이 사진만 찍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으로는 골목골목에 저렴한 커피집, 커피 로스팅 공방, 오래된 고급 커피집들이 있었다. 대학들이 밀집해 있어 학생들의 커피 수요도 많을 것이고, 오래된 책을 구하러 오는 분들이 많은 유서깊은 곳이기도 해 저렴한 커피가게 부터 고급 커피가게 까지 다양하게 잡은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한다.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7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3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4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5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6

 

20180207-Contaxiia-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8

 

다음으로 Biogon 21mm를 사용해 본 곳은 도쿄역 야에스구치 부근이었다. 흔히 많은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쿄역’의 파사드는 야에스구치가 아닌 마루노우치구치 쪽의 파사드가 유명하다. 특히 이곳의 오래된 도쿄역 건물은 우리나라의 서울역 디자인의 모태가 된다고 해 한국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인라커를 잘못 고른 덕분에(실은 신칸센 탑승구가 가까운곳에 가방을 넣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마루노우치구치까지는 돌아볼 수 없어 야에스구치부터 유락초역까지 걸어 다녀오면서 사진을 담았다. 도쿄역에서 유락초 역을 가는 길은 다르게 말해 긴자까지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야에스구치를 나오자마자 높은 빌딩들은 내 시야를 가리기 시작해 유락초 역으로 갈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빌딩 숲 사이사이에서 만나는 도카이도 선 철길을 받치고 있는 교각들은 적벽돌을 가지런히 쌓아 만든 아치와 기둥의 연속이었다. 첨단의 도시 속에서 만나는 근대라고 할 수 있다. 유락초 역에 잠시 들릴 일이 있었던 덕분에 맘에 드는 사진들도 몇장 남겨 올 수 있었다.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08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09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0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2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5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6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8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19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1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4

 

20180209-Contaxiia-CarlZeissBiogon21mmf45-Provia100F-025

 

익숙하지 않은 21mm 화각을 잘 사용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아직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Carl Zeiss Biogon 21mm f4.5를 사용했을 때는 이런 사진이 찍힌다는 것 정도는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어설프지만 짧은 사용기를 마무리 지을까 한다. 부디 조금이라도 이 렌즈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계신 분께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Fujifilm Provia 100F

내가 사랑하는 선열색 리버설 필름 Fortia SP

안녕하세요, verbal입니다.

8년전에 작성한 글인데, 아직은 새롭게 글을 쓸 여력이 없어서 기존에 없던 예제 사진을 ‘살짝’ 추가하여 게시합니다.

글쓴지가 정말 너무 오래되어서 필력 그리고 사진이 많이 부족하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또한 너무 오래 사진을 안찍다 최근 다시 찍으며 사진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오는 중이라 정신이 좀 없는 상황인데 좋은 모습으로 조금씩 글이던 사진이던 게시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슬라이드 필름 중에 하나인 Fortia SP에 대해서 가볍게 소개합니다.

fortia-sp-120_mfloverbal

위의 사진은 120(브로니) 포맷의 Fujifilm의 Fortia SP 5개들이 패키징이다.

패키징 표면에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鮮列色 リバーサル(선열색 리버설) 이라는 문구이다.

선열은 선명하고 강렬한이란 의미인데, 포장 전면에 이렇게 내걸 정도면 얼마나 그 색상이 강렬한 것일까.

뒤에 보여있는 색 팔렛트도 상당히 강렬한 채도로 표현되어있기도 하다.

Fortia SP는 포르티아 혹은 포티아라고 읽는데

일단 일어표기로는 포르티아가 맞고 개인적으로는 포티아라고 읽고 있다.

2004년 2월 25일 벨비아를 능가하는 고채도 필름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이 녀석은 무려 일본내에서만 한정 발매를 했었다.

이후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최근까지 1회 더 한정 생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까지 남아있는 물품들은 유통기한이 모두 지난 것이 맞다.

이제부터 Fortia SP 결과물들을 보며 간단하게 얘기해볼까 한다.

개인적인 눈에 의한 색감 조절 등의 보정이 이루어졌기에 라이트 박스 위에서 보던 완벽한 색재현은 힘들었는데,  지금 보니 필름별로 퍼포레이션 색이나 밝기 또한 미묘하게 다르니 원본 필름과 완전 동일하지는 않다는 전제하에 사진을 보아주셨으면 한다.

 img03006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강원도 영월

이보다 더 멋진 하늘과 구름을 분리해내는 듯한 필름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img03009_tx-1_fortia_mfloverbal 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강원도 영월, 한반도 지형

싱그러운 녹색 표현을 보면, 마치 살아있는 식물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img03010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강원도 영월, 한반도 지형

현존 최고의 극채도 필름임이 분명하지만 그 발색은 튄다기 보다, 산뜻한 느낌이다.

img03013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강원도 평창, 양떼목장

Fortia SP의 최대의 단점은 누가 뭐래도 극도로 좁은 노출 관용도와 계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img03014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강원도 평창, 양떼목장

그러한 좁은 계조로 이런 드라마틱한 느낌을 만들어 주기도 하며,

img03026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강원도 평창, 양떼목장

강한 대비로 인하여 묘한 입체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img03019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명일동

빨강, 노랑, 녹색, 파랑의 모든 원색이 들어가있는 컷. 원색의 살아있음이 느껴지는가?

 묘하게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img03020_tx-1_fortia_mfloverbalFuji TX-1, SUPER-EBC Fujinon 45mm f4, Fortia SP @고덕동

이 필름이 가진 모든 느낌을 제대로 표현한건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Super-EBC 코팅의 Fujinon 렌즈와 매우 궁합이 잘맞았던 것 같다.

원색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렌즈를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는 필름이다.

벨비아 혹은 E100VS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름이기도 하고. 🙂

다만, 언제 다시 발매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점이다.

Fortia SP의 재발매 소식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다. 🙂

아래는 약간 추가하는 Fortia SP의 예제 사진들입니다.

IMG02240_mz-3_fortia

IMG01866_503cxi_fortia

IMG01856_503cxi_fortia

IMG00230_t3_fortia

IMG00229_t3_fortia

IMG00225_t3_fortia

IMG07492_@-7_Sigma28-70_FortiaSP

IMG07479_@-7_Sigma28-70_FortiaSP

 

 

Orion-15 28mm F6

바이칼의 푸르름을 닮은 Lens. Orion-15 28mm F6

겨우 한 롤 사용해 본 느낌으로 뽑은 제목 치고는 너무 거창했나 싶다. 하지만 결과물을 봤을때의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 발색은 이 제목을 사용하고 싶게끔 만들었다.

맑고 화창한 가을 초입의 경주 하늘, 바람이 불듯 구불구불 펼쳐지는 주변 산들의 부드러운 능선, 하늘에서 투명하게 떨어지는 빛은 먼 한국까지 애써 넘어온 러시아 태생의 렌즈를 테스트 해 보기에 충분했다.

급한 마음에 장비사진은 남기지도 못하고 테스트 부터 시작했다. 조합은 CanonP와 Voigtlander 28mm Finder. 노출계가 없는 카메라인 덕분에 휴대폰의 Light meter 어플과 Sekonic 408을 사용 했다. 조리개는 최대개방이 6까지 가능해 약점으로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눈이 부시게 청명했던 날의 경주에서 F6의 조리개는 한계가 될 수 없었다. 일반적인 광각렌즈 촬영 상황의 특성상 필드에서 촬영을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고, 필드 촬영의 경우 광량이 부족한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사진의 발색은 시원한 느낌이다. 실제 필름에서도 마젠타(Magenta)를 느낄 수 없었고, 이 특징은 스캔 후에도 같았다. 마젠타가 끼지 않고 표현된 하늘은 눈이 시릴정도로 파란 색이었고, 숲의 초록은 눈이 시리다 못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날이 청명했던 만큼 악조건의 상황도 일부러 만들어 촬영했으나 결과물은 걱정했던것 보다 훨씬 좋은 – 어떻게 보면 걱정을 했던게 바보같다고 생각할 만큼 좋은 –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역광 상황에서 조리개 모양에 따라 플레어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암부가 뜨는 현상이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색이 틀어지는 현상은 잘 보이지 않았다.

작은 사이즈, 괜찮은 가격, 시원한 결과물이란 장점을 갖춘 Orion-15.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사용 해 보고 싶은 렌즈다.

마지막으로 이 렌즈를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PIYOPIYO님의 리뷰를 링크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ㅡ 토포곤의 영혼 / Orion-15 28mm f6.0 – by PIYOPIYO

::매거진 첫 포스팅으로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Nippon Kogaku의 Topogon : W-Nikkor 2.5cm f4.0

 

거침없이 달리시는 만수동생님 덕분에 관심있던 렌즈를 빌려 써보게 됐다.

54년에 발매된 W-Nikkor 2.5cm f4.0이 그 주인공. 환갑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어마무시한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녀석이다. 원래는 Zeiss Ikon의 Contax와 같은 형태의 니콘 S마운트로 발매되었지만 라이카에서도 사용가능한 M39(LTM) 마운트로도 발매되었다.

 

 

DSCF2484.JPG

Nippon Kogaku W-Nikkor 2.5cm f4.0 (LTM버전)

 

오늘날 기준으로 25mm라는 화각은 다소 낯설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초광각에 해당하는 것이라 사진가들의 환호를 받았으리라. 이 렌즈에 대한 매니아층은 오늘날도 제법 두터운데 그 이유는 우수한 성능도 성능이지만 특이한 구조에 기인한다.

 

NikkorRF25mm4.jpg

보다시피 이 렌즈는 4군 4매 구성된 완벽한 좌우대칭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극단적인 좌우 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 렌즈에서 왜곡을 비롯한 각종 수차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마치 구슬과도 같은 렌즈 알을 보고 있자면 영롱한 매력에 빠져드는데 이같은 설계의 원조는 사실 Carl Zeiss의 Topogon이었다.

 

 

topogon2.jpg

요것이 오리지날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화각부터 최대개방값까지 똑같다. 50년대 니폰 코가쿠,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은 독일 메이커들의 설계를 다분히 참고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한편 그들의 성능을 뛰어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뭐 하나라도 개선된 점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했던지라 오리지날 Topogon이 거리계와 연동되지 않는 목측식이었던 것에 반해 W-Nikkor 2.5cm는 거리계 연동이 가능하게 출시되었다. (캐논의 25mm f3.5는 최대 개방값도 아주 조금 더 밝아졌다.)

 

 

DSCF2485.JPG

코팅 역시 당대 독일 렌즈들보다 두터워 보이는데 역시나 역광에서 버티는 능력도 제법 준수하다.

 

 

DSCF2486.JPG

Topogon 타입임을 증명하듯 렌즈알이 반구형으로 볼록하게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DSCF2482.JPG

뒷면에서는 더욱 그 형태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구슬을 하나 박아넣은 듯한 모양이라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DSCF2487.JPG

다만 Topogon 타입은 급격하게 꺾인 렌즈 끝단의 곡률로 인해 주변부의 화질이 많이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는데 이때문에 최대 개방시에도 조리개는 완전히 다 열리지 않게 설계함으로써 그 문제를 최대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에서도 최대 개방에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는 비네팅이 제법 발생하며 개방시에는 더욱 심해진다. 반면 오리지날의 위엄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지 칼 자이즈의 Topogon은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면서도 W-Nikkor에 비해 비네팅이 적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이다.

 

 

DSCF2488.JPG

거리계의 단위는 FEET로만 적혀있고 라이카 스크류 렌즈들과 같은 형태의 무한대 잠금 장치를 가지고 있다. 크롬 코팅이나 레터링 각인의 수준은 훌륭하다. 코팅된 렌즈임을 표기해주는 빨간색 “C”마킹도 적당한 시각적 포인트가 되어준다. Carl Zeiss 렌즈들의 “T”마킹을 보는 듯 하다.

 

 

DSCF2494.JPG

필터 구경은 상당히 특이한 34.5mm로 오늘날 해당하는 사이즈의 필터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중앙카메라 수리실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었다. 앞으로 애매한 사이즈의 필터는 비싸게 구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부탁드려 만드는 것이 더 좋을 듯.

 

 

DSCF2495.JPG

얇은 필터링에다가 광택도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되어 제짝인 듯 잘 어울린다.

 

 

DSCF2493.JPG

단단하고 야무진 렌즈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이라 좀 깬다만 올드 렌즈에서 일반적인 금속제 슬립온 방식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클립온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앞캡.

 

 

DSCF2478.JPG

바디와의 매칭. 슬림한 경통에 짧은 길이의 컴팩트한 렌즈로 바르낙 바디에 제법 잘 어울린다. 25미리 파인더가 없어서 일단 Voigtlander 28mm 파인더로..ㄷ

많은 롤을 찍어보지 못해 렌즈의 특성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니콘은 니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는 물론 장단이 존재하는데 흔히 니콘 렌즈의 특성으로 평가받는 높은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는 이미 이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칼라 색감 역시 화사하고 예쁜 쪽은 아니지만 Topogon타입의 특징에 기인하는 강한 비네팅 효과와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쭉쭉 뻗는 시원시원함은 렌즈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준다.

 

 

B/W Neagtive : Kodak 400TX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03-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04-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06-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11-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15-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1-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2-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4-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29-1

 

 

170614 LiecaIIIf nikkor25mm 400TX 30-1

 

 

11

 

 

12

 

 

13

 

 

Positive : Fujifilm RVP 100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03-1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07-1

 

 

170615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15-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2-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9-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3-1

 

 

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5-1

 

 

끝으로 귀한 렌즈 빌려주신 만수동생님과 렌즈 뒷캡으로 IIIf를 보내준 Qunaj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보다 훌륭한 리뷰를 보려면

Qunaj님의 ‘W-NIKKOR C 2.5cm 1:4 LTM

Goliathus님의 ‘[Nikon]W-Nikkor 2.5cm F4

Jupiter-12 35mm – Biogon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 전쟁의 종말

 

1945년 04월 30일 베를린.

일체의 정규 방송이 모두 중지된 베를린 라디오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신들의 황혼’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소련군에 맞서 절망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소련군을 저지하는 동안 보다 많은 민간인들과 패잔병들이 미,영 연합군이 있는 엘베강 너머로 투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미없는 ‘현진지 사수’와 같은 명령보다 더욱 절박한 이유였다.

이미 와해돼버려 존재하지도 않는 사단들을 가지고 ‘이리 보내라, 저리 보내라’ 심지어 역습을 가해 공세로 전환하라고 미친듯이 지시하던 히틀러도 더이상 무의미한 작전 지휘를 그만두었고 벙커 속은 침묵만이 흘렀다. 그는 이 날 발터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고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은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었다. 소련은 베를린 함락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고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그에 걸맞는 장소였다. 죽기를 각오한 독일군 수비대 6천여명이 이에 맞섰고 치열한 교전끝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소련군은 국회의사당을 점령할 수 있었다. 날이 밝고 국회의사당에 소련 국기가 걸렸다. 노동절을 맞아 가장 극적인 승리의 장면을 묘사하고 싶던 스탈린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1945년 05월 02일. 베를린을 수비하던 독일군은 항복을 선언했다.

.

.

Flaggenhissung 2. Mai 1945, Reichstag Berlin

.

.

.

■ 독일에서의 달콤한 전리품들

 

전쟁 중에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비록 손을 잡았지만 애초부터 미국,영국과 소련은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패튼은 소련을 의식하는 아이젠하워의 조심스런 전략에 불만이 많았고 ‘그렇게 소련이 무서우면 이대로 전차군단을 계속 몰아 모스크바까지 점령해버리면 될 것 아니냐.’는 막말을 걸핏하면 내뱉었을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미,영 폭격기들이 학살 수준의 공습을 가했던 드레스덴 폭격은 진격하는 소련군의 전방에 가해지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영이 보유한 무시무시한 공군력을 소련에게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은 전쟁이 끝난 후 재무장한 독일군을 앞세워 미,영이 쳐들어올까 두려워했고 서방은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진영 확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냉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가까워 올 수록 양측은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해야했고 독일의 군사 기술은 승전국들이 노리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Me262 제트전투기와 V1, V2 로켓은 특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미처 실전 배치되지 못하거나 연구,개발 과정에 있었던 다양한 무기들의 자료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승전국들은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소련이 탐을 낸 것이 더 있었으니 바로 세계 최고의 독일 광학 기술이었다.

.

.

.

■ Zeiss Ikon을 내놔라.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Zeiss Ikon의 생산 설비와 기술을 요구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부담해야했던 가혹한 전쟁 배상금의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참전국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은 소련 입장에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소련군 점령지에 속한 예나와 드레스덴의 Zeiss Ikon 공장 설비들이 열차에 실려 소련으로 옮겨진다. Contax와 교환렌즈의 생산 라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생산할 엔지니어와 숙련공들도 함께였다.

.

.

419084976a5a4

패전과 함께 생산이 중지되고 소련으로 생산 설비가 옮겨진 Contax II. Biogon 35mm가 장착되어 있다.

 

그렇게 옮겨진 설비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Krasnogorsk와 우크라이나의 Kiev 등지의 공장에 설치되어 국산화 과정을 거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당대 최고의 카메라와 렌즈를 생산할 수 있게된 것이었다. 그리고 Zeiss Ikon에서 획득한 광학 기술을 통해 조준경, 잠망경, 정찰용 카메라 등 군사용 광학 장비의 성능 향상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

.

■ Soviet’s Carl Zeiss – Jupiter의 탄생

 

Kiev에서 Contax II/III의 카피 모델이 생산되면서 Krasnogorsk에서는 Contax용 렌즈들을 카피하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독일에서 가져온 칼 자이즈의 부품 재고를 이용해 조립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이 시기의 제품들은 칼 자이즈 오리지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다 독일에서 가져온 부품들이 모두 소진된 1950년 이후부터는 유리알을 비롯한 모든 부품이 국산화되며 100% 소련제로 본격 대량 생산이 시작된다. 이처럼 칼 자이즈에서 원설계하고 소련에서 재생산한 렌즈들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혀지게 된다. 바로 Jupiter였다.

로마 신화에서 최고의 신으로 여겨지는 Jupiter는 승리의 주피터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집정권들이 취임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참배하는 대상이었고 로마의 스타틀 신전은 로물루스가 주피터에게 기원한 후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대가로 얻어낸 렌즈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은 Jupiter 시리즈의 본격 출시에 나서면서 오리지날인 Contax 베이요닛 마운트와 함께 LTM버전도 병행하여 생산했는데 자국의 Zorki나 Fed 카메라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는 소련의 자체적인 재설계로 볼 수는 없고 전쟁 기간 중 Carl Zeiss에서 아주 극소량으로 생산했던 LTM버전 렌즈들을 자국의 필요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Carl Zeiss에서 자사의 Contax용이 아닌 경쟁사인 Leica에 맞는 LTM버전의 렌즈들을 만들어 낸 것에는 사연이 있다. 전쟁 기간 중 드레스덴의 Contax 제조 시설이 폭격을 맞아 생산이 중단되자 Carl Zeiss는 렌즈를 생산해도 함께 판매할 카메라의 공급이 끊어져 버렸고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경쟁기종이던 라이카에 사용할 수 있는 LTM버전 렌즈들을 잠시 생산했던 것이다.

오늘날 전쟁 기간 중 생산된 오리지날 Carl Zeiss LTM버전 렌즈들은 극히 귀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물건이라 현실적으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Jupiter LTM 버전 렌즈들은 Carl Zeiss가 설계한 올드 렌즈들을 가볍게 즐겨보고 싶은 라이카 유저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

.

zLTM_5xb

Carl Zeiss에서 생산된 LTM버전 렌즈들. 소련은 이 중 5종류를 Jupiter라인으로 생산하게 되는데 Jupiter-3, 8, 9, 11, 12가 그것인데 순서대로 각각 Sonnar 50mm f1.5, Sonnar 50mm f2.0, Sonnar 85mm f2.0, Sonnar 135mm f4.0, 그리고 Biogon 35mm f2.8이었다.

.

.

.

■ Jupiter-12에 대한 재인식

.

6717604335_59d24b628e_b

Jupiter-12 35mm f2.8 (for Contax/Kiev)

.

.

5종류의 Jupiter렌즈 중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렌즈는 단연 Jupiter-12가 아닐까 싶다. RF에서 가장 대중적인 35미리 화각이라는 점, 명성이 자자하던 비오곤의 카피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1950년대 당시 자국에서 생산된 세계 최고 수준의 35미리 렌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소련의 사진가들은 얼마나 흥분되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늘날의 처지는 그저 ‘싼맛’에 쓸만한 그냥 그런 렌즈일 뿐, 애정을 갖고 대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들이 대세가 되면서 이종교배용으로 알음알음 유저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기는 하나,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개인적으로 Biogon 타입에 대해 애정이 많아 그 영혼이 담긴 Jupiter-12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번 리뷰를 통해 조금 자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Jupiter-12의 넘버링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은 화각 순으로 번호가 진행되는데 반해 Jupiter-12는 35mm임에도 왜 맨 마지막인 12번을 얻게 되었을까? (쓸데없는 의문..ㄷㄷ) 나름의 논리로 추론해본 결과는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이 모두 Sonnar타입이니 Biogon타입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 주려다가 ‘그냥 얘도 주피터로 해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거나, 아니면 제조가 까다로운 탓에 가장 늦게 재설계가 이루어졌던 탓에 가장 늦게 번호를 부여받았던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Biogon이 원래 Sonnar 설계에서 파생된 형식이니 소련에서 Jupiter라는 이름을 붙힌 것 자체가 광학설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12번이라는 가장 늦은 번호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 넘어가자. ㄷㄷ)

.

.

.

■ Sonnar에서 Biogon으로 다시 Juputer-12까지

.

BIOGON

위 자료를 보면 Sonnar부터 Biogon, 그리고 Jupiter-12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Sonnar에서 파생된 Biogon 35mm는 전쟁 후 서독의 Zeiss Opton Biogon 35mm와 소련의 Jupiter-12로 나뉘어지게 된다. 서독의 비오곤은 새롭게 개발된 Contax IIa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비오곤의 상징과도 같았던 엄청나게 큰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백포커스가 조금 길어지는 여유있는 설계를 택하게 되는 반면 Jupiter-12는 오리지날 비오곤의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아 여전히 큰 후옥과 짧은 백포커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Jupiter-12는 전전형 비오곤과 같은 설계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는데 위 그림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설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Jupiter-12는 렌즈 구성이 Biogon의 4군 7매에서 4군 6매로 간략화 되었고 각매의 렌즈알 크기나 곡률도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소련제 렌즈알에 따라 최적화 설계를 다시해낸 것인지 원가절감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혹은 소련에 끌려간 독일 기술진에 의해 보다 향상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설계가 이뤄진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일본에서는 Jupiter-12를 전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 Opton Biogon보다 높게 친다고 하니 성능의 저하도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호들갑스런 일본애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겠지만 또 걔들만큼 집요한 애들도 없기에…)

.

DSCF2598-1

입사부보다 훨씬 큰 후옥과 필름면 가까이 들어오는 짧은 백포커스를 가진 Jupiter-12, Biogon의 설계가 충실히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리지날인 Contax용은 아답터를 이용해도 라이카 바디에서 사용할 수 없었는데 소련에서 LTM버전을 대량으로 생산해준 탓에 라이카에서도 Biogon 설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

DSCF2583-1

Carl Zeiss Sonnar나 Biogon에는 일명 ‘자이즈 버블’이라는 기포가 한두개씩 흔히 발견되는데 Jupiter-12 역시 이러한 기포가 발견된다. 화질에 영향은 전혀 없기에 구매시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고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오리지날 칼 자이즈와 유사한 재료를 이용해 동일 제조 공법으로 생산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발가락도 닮은 셈.

.

.

.

■ Jupiter-12의 세대별 구분

.

0_12a5e0_15fcb911_XXL

Contax II의 카피 Kiev II와 Biogon 35mm의 카피 Jupiter-12. 위 사진과 같은 50년대 Kiev는 오리지날 Contax II와 거의 같아 거래가격이 제법 높다.

.

.

Jupiter-12는 1950년부터 90년대까지 무려 40여년에 걸쳐 생산될 정도로 생산 기간이 긴데다 2개의 제조사(KMZ, LZOS)에서 생산되었던 탓에 자잘한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이베이에 떠있는 수많은 매물 중 어느 것을 구해야할지 구매자들은 난감해 지곤 하는데, 사실 뭐 열심히 공부해서 족보를 꾀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는 렌즈는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리뷰이니 이참에 한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우선 마운트에 따라 Contax/Kiev용과 LTM 버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마운트만 다를 뿐이니 사실상 같은 렌즈로 보는 것이 맞겠고 이번 리뷰에서는 LTM버전에 한정하여 생산 시기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

.

1. KMZ제조 BK (Biogon-Krasnogorsk) : 1947~50년

.

DSCF2585-1

Jupiter라는 이름이 붙기 전의 최초기 버전이다. KMZ에서 오리지날 자이즈의 부품과 유리알을 사용해 조립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외관상으로도 오리지날 비오곤 LTM버전과 거의 동일하다. 이중 47~48년에 생산된 PT0805 버전은 100%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49~50년의 PT0810은 100% 혹은 부분적으로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관상 이를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으며 시리얼넘버가 00으로 나가는 것은 PT0805, 49 혹은 50으로 시작하는 년도가 앞에 붙으면 PT0810이라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본격 양산형이라기 보단 Jupiter-12를 생산하기에 앞서 이루어진 과도기적인 시기의 렌즈라 자료가 명확하지 않고 생산 수량도 적어 오늘날 구하기가 쉽지 않다.

위 사진의 왼쪽이 50년에 생산된 이른바 BK렌즈이며 우측이 55년에 생산된 Jupiter-12다. 내가 가진 BK는 각인은 BK이지만 경통의 형태가 Jupiter-12와 거의 같고 최초기형임에도 렌즈의 코팅이 더 두터워보여 각인을 조작한 짝퉁이 아닌가 의심도 들지만, 그렇게 해봐야 이게 100만원짜리가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괜히 이런거 구하려고 애쓰지 마시라;;

.

.

2. KMZ 생산 Jupiter-12 (1950~60년대 초)

.

DSCF2589-1

두번째는 50년부터 생산된 버전으로 이때부터 비로소 Jupiter-12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렌즈에는 엷은 블루톤의 코팅이 되어 있는데 전쟁 전 자이즈의 T코팅과 아주 유사한 느낌이다. 코팅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붉은 색 ‘n’ 마킹이 찍혀있는데 이는 키릴어로 ‘P’에 해당한다. 이 마킹은 BK부터 60년대 초반 생산 렌즈에만 존재하는데 칼 자이즈의 빨간색 ‘T’코팅 표기와 같이 검정과 흰색 뿐인 밋밋한 렌즈 전면부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되어주어 예쁘다. 그래서인지 이베이에서도 매물 설명에 굳이 ‘Red P’를 강조하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KMZ생산 버전은 PT0815와 PT0820으로 나뉘는데 PT0815는 앞선 BK와 마찬가지로 경통의 형태가 오리지날 비오곤과 유사한 형태로 1950-52년 사이 적은 수량이 생산되어 오늘날 매우 드물고 흔히 보이는 버전은 PT0820으로서 경통이 다소 길어지고 지름이 조금 늘었다. 이 시기의 생산 제품들은 소련 공산품 수준이 막장이 되기 전이라 가장 만듦새가 좋고 품질 관리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가장 인기가 높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래봤자 200불 미만이지만..

.

.

3. LZOS 생산 Jupiter-12 (1950년대 말 ~ 90년대)

.

R0031075.JPG

세번째는 LZOS 생산 버전이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초반에 걸쳐 Jupiter-12는 KMZ와 LZOS 양쪽에서 병행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62년쯤 부터는 LZOS에서만 생산되게 된다. 이때부터 빨간색 ‘n’코팅 마킹이 사라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뭐 그게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고 오래된 렌즈니만치 관리 잘된 개체면 크게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

PT0825, 0833, 0835 등에 해당하는 버전으로 KMZ 생산 시절과 비교해 외관상 달라진 부분은 거의 없고 코팅이 다소 진해지고 키릴어로 표기되었던 Jupiter 표기가 수출을 염두에 둔 듯 영문으로 바뀌기도 했다. 71년부터는 크롬 버전을 대신해 검정 페인트로 마감된 버전(PT0835)이 생산되게 된다. (물론 블랙 페인트라고 해서 라이카의 멋진 도장 상태 따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위 사진의 렌즈는 91년 시리얼 블랙 페인트 버전인데 코팅이 두터워져 제일 바깥 쪽 렌즈에는 노란색이 선명하고 안쪽은 분홍, 보라, 주황 등 코팅색이 아주 유치찬란하고 요란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역광에서의 성능은 앞선 버전들에 비해 더욱 좋아졌다고 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생산된 탓에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은 물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50년대 시리얼에 비해 가격이 낮아 가장 가성비가 높은 버전이기도 하다. 지인 한 분이 얼마전 이 버전의 렌즈를 블랙 페인트 Leica III에 마운트하여 가지고 오신걸 보았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

IMG_6228

지인의 Leica III와 88년 시리얼 Jupiter-12

.

대략 이렇게 크게 세가지로 분류를 해보았지만 막상 이베이에서 만나는 물건들은 천차만별의 상태와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60년 시리얼인데도 붉은 색 ‘n’마킹이 없는 경우도 있고 조리개 수치 폰트나 눈금선의 형태도 제각각이고 세대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인 경우도 많다. 이래서 소련제의 진정한 문제는 광학적 성능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QC라는 말이 나왔나 싶기도 하다.

각 세대에 속하는 다양한 타입들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 가보시면 되겠다.

http://www.sovietcams.com/index.php?-736220353

.

.

.

■ Juputer-12의 성능

그렇다면 이 렌즈의 성능은 어떨까. 태생 자체가 Carl Zeiss Biogon 35mm이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Carl Zeiss Biogon 35mm는 당시로서 놀라운 해상도로 유명했고 f2.8이라는 밝은 개방값을 가지고도 수차를 효과적으로 억제한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렌즈였다. (같은 시기 라이츠의 Elmar 3.5cm와 비교해보라 ㄷㄷ) 그런 Biogon의 설계를 이어받았다는 점이 오늘날까지도 애호가들이 Jupiter-12에 관심을 가지는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화면 중앙부는 최대 개방에서도 제법 높은 해상도를 보여주며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f8.0~11 정도에서 최대 해상도에 도달한다. 비네팅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며 약간의 실패형 왜곡을 보인다. 주변부 빛망울의 흐려짐은 쐐기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Sonnar와도 유사하다. 초기형부터 모두 코팅이 적용되어있어 역광에 버티는 능력도 괜찮으며 색감과 콘트라스트는 과하지 않고 중립적이다.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무척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데 한눈에 느껴지는 확실한 개성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실 올드 렌즈의 개성이라는 부분은 제어되지 못한 각종 수차와 비네팅, 떨어지는 해상도 등이 어울어진 이른바 ‘병신력’에서 기인하기 마련인데 그런 결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Biogon, 그리고 Jupiter-12를 보면 당시 칼 자이즈의 렌즈 설계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알 수 있다.

.

.

.

■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Build Quality

사실 Jupiter를 구입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빌드 퀄리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다고 한들 모양도 예뻐야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후기형으로 갈수록 레터링 각인의 수준도 떨어지고 경통 표면은 부식되거나 때가 잔뜩 끼어 지저분한 경우도 많다. 가격이 싸다 보니 돈들여 오버홀하는 이들도 드물어 윤활유는 떡져 포커스링을 돌리는 느낌도 싼티가 철철 넘치기 십상이다. 소련도 나름 할말은 있다. 못생긴 디자인은 애초에 칼 자이즈의 LTM버전이 그렇게 생겨먹었고 전쟁 중에 생산된 것들이라 고급스럽고 화려한 크롬 코팅이 아닌 알루미늄 혹은 두랄루민으로 제작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 Jupier-12였기에 ‘소련제라서 그렇다’라는 평가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

$_57.jpg

오리지날도 요따구로 생겼다. -_-

.

위와 같은 이유에 더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서 오는 불신(주피터가 좋아봤자지..), 그리고 ‘소련제’라는 편견 때문에 비싸고 고급진 카메라(라이카?)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눈에 찰리가 없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던 주변 지인 몇분이 나의 권유에 못이겨 Jupiter-12를 구입하셨는데 몇롤을 찍어보시고는 렌즈 성능에 모두들 놀라 예찬론자가 되셨다. 개인 취향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Jupiter-12 때문에 Summaron 3.5cm f3.5를 내친 분도 계시고 80불 짜리 렌즈가 아니라 800불 정도의 가치는 하는 렌즈라고 평가하신 분도 계시다. 그 중 한분이 못생긴 외모를 빗대어 ‘양동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고 그 이후 우리는 양동이 만쉐이를 외치고 다니고 있다. 정말 비싸봐야 20만원도 안하는 가격으로 이 정도 성능의 35미리 f2.8이라니. 이건 사실 거저라고 봐야한다. (요즘 Summaron 35mm f2.8 LTM버전 구하려면 100만원 이상을 줘야한다).

.

.

.

■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Juputer-12

Jupiter-12는 1950년부터 무려 40여년간 생산되었다. 자본주의 진영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소련에서는 가능했다. 경쟁이 사라진 경제 체제에서 굳이 더 좋은 렌즈를 개발해야할 동기가 충분할리가 없었다. 물론 그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을 만큼 Biogon의 탄탄한 기본 설계을 이어받은 Jupiter-12의 성능이 우수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오리지날인 Carl Zeiss Biogon 35mm는 서독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60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지만 Contax IIa의 단종과 함께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후 카메라 시장의 대세는 SLR이 되었고 퀵 리턴 미러가 자리잡은 공간에 Biogon처럼 필름면 가까이 들어가는 광각렌즈는 들어갈 수 없었다.

비록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철의 장막 속으로 들어간 Biogon은 Jupiter-12로 다시 태어나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Jupiter-12는 단순히 ‘소련제 짝퉁 비오곤’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렌즈로 평가해줘야 함이 더 옳지 않을까?

.

.

DSCF2602-1.jpg

Jupiter-12 35mm f2.8 (1950~1990’s)

Elements/Gropus : 6/4
Number of Aperture Blades : 5
Close Focus Distance : 1m
Filter Diameter : 40.5mm
Weight : 130g
Mount : Contax Bayonet or LTM

.

.

.

■ 작례

 

1. B/W Negative (Kodak TMY & 400TX)

.

170306 LeicaIIIa Jupiter35mm TMY 14-1

.

.

170306 LeicaIIIa Jupiter35mm TMY 15-1

.

.

170407 LeicaM6 Jupiter35mm 400TX 13-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08-1.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09-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18-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19-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20-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22-1

.

.

170609 LeicaM6 Jupiter12 400TX 31-1

.

.

.

2. Colar Negative (Kodak Color Plus 200)

.

4

.

.

1

.

.

3

.

.

2-1

.

.

4-1

.

.

.

3. Positive (Fujifilm RDPIII)

.

5

.

.

6

.

.

7

.

.

8

.

.

9

.

.

끝.

 

Leica Super-Elmar 21mm f3.4 ASPH

Super-Elmar-M-21-Window-Module_teaser-1200x470

Leica Super-Elmar 21mm f3.4 ASPH (2011년 ~ 現)

.

.

친구 K군이 어느날 이 렌즈를 보내주었다. 필름 사진을 거의 찍지 않고 있는지라 이 렌즈를 필름에서 테스트할 여유가 부족하니 한번 써봐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과연 이 정도의 해상력이 필름에서 의미가 있을지 묘사력은 어떨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생각이 되었다. 꽤나 고가의 렌즈를 선뜻 써보라고 보내주는 것은 환자들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곱게 쓴다 해도 쓰다보면 이래저래 자잘한 스크래치도 나게 마련이라 빌려주는 이나 받아쓰는 이나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빌려달라고도 하지 않은 렌즈를 써보라며 빌려주는 그의 진짜 의도는 뭘까. (뽐뿌?) 화두라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슈퍼 엘마를 택배로 받았다.

.

.

Leica Super-Elmar 21mm f3.4 ASPH는 그전까지 21mm 화각을 담당하던 Elmarit 21mm 대신해 2011년 6월에 등장했다. 7군 8매의 구성에 비구면렌즈가 포함된 이 새로운 렌즈는 고해상도 디지털 카메라들에 발 맞추어 해상도가 훨씬 향상되어 거의 모든 조리개 영역에서 극도로 샤프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현존 최고의 21미리 렌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 세대의 엘마리트에 필터 구경을 비롯한 전체적인 사이즈는 보다 컴팩트해졌고 그로인해 최대개방값은 다소 어두워져 f2.8에서 f3.4가 되었다. f3.4? 이 어중간한 수치는 그리 낯설지 않다. Carl Zeiss Biogon에 맞섰던 라이카의 Super Angulon 21mm의 2세대가 바로 f3.4였다. 슈퍼 엘마의 등장은 오랜 라이카 유저들에겐 슈퍼 앵글론의 귀환으로 느껴질만한 일이었다.

.

.

Leica-Super-Elmar-M-21mm-f3.4-ASPH-Lens-051.png

슈퍼 엘마의 렌즈 구성을 보면 3군 4매의 간단한 설계의 Elmar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라이카는 이 신형 21미리 렌즈에 슈퍼 앵글론이란 이름을 다시 붙혀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슈나이더와 혐업하여 탄생한 이전 렌즈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새롭게 개발된 이 렌즈에 그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왠지 모르게 보급형, 2선급의 느낌이 드는 Elmarit의 이름을 다시 쓰기는 싫고, 결국 그래서 렌즈 설계와는 무관한 슈퍼 ‘엘마’가 되지 않았을까.

.

.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Carl Zeiss Biogon 21mm나 Leitz Super Angulon 21mm에 대한 매니아들의 지지는 열렬한데 이 녀석들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된다. 렌즈 뒷면이 바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설계 특성상 디지털 바디에서는 측광이 안되거나 비네팅과 마젠타 캐스트가 심각하게 발생했던 것. 이 같은 문제가 발생치 않도록 렌즈 후면이 셔터막에서부터 충분한 여유를 갖도록 설계된 Super-Elmar는 덕분에 전자들에 비해 길이가 제법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컴팩트한 비오곤에 익숙한 내게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어딘지 꼼수를 부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엘마릿에 비해 작아졌다지만 길이가 길다보니 실제보다 더 크고 무겁게 느껴졌고 현행 라이카 렌즈 특유의 고운 반광택 도장면에 흠집이라도 날까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렌즈를 받아들고 나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 한롤을 겨우 꾸역꾸역 찍고는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

.

.

170421 LeicaM6 Superelmar21 HP5 12-1

.

.

170430 LeicaM6 Superelmar21 HP5 21-1

.

.

170501 LeicaM6 Superelmar21 HP5 35-1

꾸역꾸역 샷들. 필름을 넣고 빼기까지 무려 2주가 걸렸다.

.

.

.

렌즈를 빌려준 K군은 한참이 지나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약간 서운해 하는 듯 느껴졌고 나역시 괜시리 미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친구가 큰맘먹고 렌즈를 빌려줬으면 신이 나서 마구 찍어서 ‘이거 해상도가 끝내주네?!’, ‘왜곡도 거의 없어!’ 등등의 호들갑을 떨어줘야 그도 재미있을터. 밍기적 거리는 나의 반응이 못내 심심했으리라. 그래도 어쩌랴. 이 렌즈가 ‘내 것’이었다면 부담없이 휘두르고 다녔겠지만 어쨌든 잠시 빌려 써보는 렌즈인 것을. 이 곱게 자란 렌즈를 가지고 ‘야전’에 뛰어들기는 어려웠다. 결국 두번째 필름도 슬라이드를 넣고 금척리 고분군을 살랑살랑 찍어대는데 사용됐다.

.

.

.

170620000009460003

.

.

170620000009460008

.

.

170620000009460011

.

.

170620000009460012

.

.

170620000009460034

.

.

.

그럼에도 뭔가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다. 곱게만 찍으려니 이 렌즈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문득 친구가 바랬던 것은 이런 테스트 샷이 아니라 필름 유저가 실전에 투입한 슈퍼 엘마의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멋대로의 생각이었겠지만(ㅋㅋ) 생각이 그렇게 이르자 21미리가 가장 잘 활약할 수 있는 전장으로 데려가 실전 데뷔를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새로운 렌즈가 생기고 어느 정도 손에 익고 특성 파악을 간략히 하고 나면 데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어판장이다. 어판장에서 정밀한 구도와 노출, 포커싱을 할 여유는 많지 않다. 복잡한 현장에서 부대끼며 순간순간의 장면을 재빨리 잡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버벅이지 않고 촬영을 하고 그 결과물 또한 만족스러웠을 때 그제서야 그 렌즈, 혹은 그 카메라는 비로소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

그래서 5월의 어느 토요일 새벽. 송도의 수협 위판장을 찾았다. 자주 갔던 죽도시장 어판장과 달리 제대로 촬영차 가본 적은 없는 곳이라 손에 익지 않은 렌즈로 가당키나 할지 처음엔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슈퍼 엘마는 빠른 속도로 현장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3-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4-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5-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7-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9-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0-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3-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7-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9-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20-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24-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27-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29-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30-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32-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33-1

.

.

170520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37-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2-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8-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09-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0-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2-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15-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20-1

.

.

170520-1 LeicaM6 SuperElmar21mm 400TX 22-1

.

.

.

넓은 렌즈는 넓은 공간에서 오히려 힘을 잃는다. 21미리가 어울리는 곳은 그런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뒤엉킨 좁고 한정된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21미리의 다이나믹한 앵글은 평범한 장면을 비범한하게 바꾸어 주고 현장의 싱싱한 활력을 생생하게 극대화 해줄 수 있다. 비로소 물을 만났듯 나는 신나게 셔터를 눌러댔다. 두 롤의 필름을 난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사실 그동안 잔재주 없이 최선의 광학적 설계만으로 최상의 화질을 구현하고자했던 슈퍼 앵글론이나 비오곤을 열렬히 추종해왔던 나였던지라 ‘영혼없는’ 슈퍼 엘마나 엘마리트 21미리 따위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찾았던 송도 어판장에서 맹활약한 슈퍼 엘마의 결과물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한눈에 봐도 높은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는 슈퍼 엘마가 녀석의 선배 슈퍼 앵글론과는 확연히 다른 신세대 21미리임을 강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취향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

.

마지막 송도 어판장 필름을 스캔하고 나서야 나는 솔직하고 시원하게 K군에게 소감을 얘기할 수 있었다.

‘야 슈엘 겁나 좋은데?!’

.

.

.

2017.05.20. 포항

Leica M6 / Super Elmar 21mm f3.4 ASPH / Kodak 400TX / I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