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Bruce Silverstein Gallery

2001년 문을 연 Bruce Silverstein 갤러리는 모든 장르의 예술을 커버하지만 그중에서도 모던 및 컨템퍼러리 사진에 특화된 갤러리로 모던 거장들뿐만 아니라 젊은 컨템퍼러리 예술가들까지 폭넓게 집중하고 있는 곳이다.

설립자이자 관장인 브루스 실버스타인(Bruce Silverstein)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경제학을 전공하고 90년대에 천연가스 및 전력 상품 등을 거래하는 브로커 펌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이십 대 중반에 이미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그때 당시 기준으로 벌이가 6-figure도 아닌 7-figure였으니 대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던 실버스타인은 잘 나가던 커리어를 끝내고 2001년 첼시 한 구석에 작은 갤러리를 설립하면서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뉴욕 포토 리그* 출신의 사진가 아버지 래리 실버(Larry Silver)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사진을 좋아하던 실버스타인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갤러리 운영, 전시 홍보, 홈페이지 관리부터 바닥 청소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면서 고생하였지만** 15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 온 지금은 서른 명 이상의 작가들을 대표하는 큰 갤러리로 성장하였다. 어찌 보면 흔히 듣는 ‘고생했지만 꿈을 좇아 성공했어요’ 스토리인데 무엇이 되었든 부럽기는 하다.

첼시 중심부인 529 West 20번가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는 규모가 크지 않아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게 혼재되어 있다. 공간이 넓지 않은 대신 이곳, 저곳의 모든 벽들을 오밀조밀 활용하여 작품들을 전시하여 가급적 많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출입문 왼쪽으로 있는 작은 데스크에 전시 자료와 책자 등이 놓여 있고, 오른쪽으로 붙어 있는 정방형 별실이 일종의 메인 전시 공간이다. 앞쪽으로 이어지는 곳은 사무실, 전시 공간, 관장실, 작품 보관고 등등이 혼합된 공간으로 직원들 사이사이를 지나며 조심스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네덜란드 작가 마얀 티운(Marjen Teeuwen)의 <Destroyed House>이다. 유럽 밖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갤러리 전시로 <Destroyed House> 시리즈는 낡고 철거된, 또는 폭파된 건물의 잔해들을 통해 만들어 낸 그녀만의 재해석이다. 무너진 건축물들의 벽과 기둥, 바닥과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 – 시멘트 덩어리들, 철근, 깨진 유리들, 슬레이트, 각양각색으로 부서진 조각들 등등 – 을 세심하게 재구성하여 담은 사진들은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추상 작품들로 느껴진다.

하지만 형상이 주는 느낌에서 벗어나 눈 앞의 작품 속에 담긴 피사체의 근원으로 흘러 들어가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담고 있을 시간의 역사가 새삼 마음속에 떠오른다. 어디선가 태어나 만들어졌을 재료들이 오랜 세월을 지탱하다가 다시 처음의 그 형태로 돌아가는 순환 속에서 티운은 사라져 가는 것들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였다. 렌즈를 통해 사진이 담긴 것은 순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은 응축된 세월이다.

<Destroyed House> 시리즈의 처음 시작은 작가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발견한 철거 중인 건물들이었다. 철거를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건물 안으로 들어 간 작가는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파편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었다. 그렇게 티운이 만들어 낸 기하학적 질서는 무너진 건축물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재탄생시켰다.

고향의 건물들에서 범위를 확장해 나간 작가가 마주한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는 폭격으로 무너진 집들이었다. 네덜란드에서의 작업과 비교해 보자면 같은 무너진 건물이되 그것이 품고 있는 풍경과 의미와 주변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졌다.**** 그 수명이나 기능을 다해 철거되고 사라져 가는 운명을 마주했던 고향의 건물들과 달리 가자 지구의 무너진 집들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그 운명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인한 환경 속에서 티운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시장에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함께 상영되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과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무너져 내린 건물을 세심하게 재구축하는 작업을 보고 있으니 사진을 만들기 위해 들였을 노력이 느껴졌다. 다른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take) 것과 달리 <Destroyed House> 시리즈의 사진은 구성(constructed) 되었다고 표현한 티운의 말이 와 닿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Bruce Silverstein Gallery
  • 주소: 529 W 20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brucesilverstein.com

*포토 리그(Photo League): 1936년 뉴욕에서 설립된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협동조합. 사진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투쟁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설립 목표였다. 폴 스트랜드(Paul Strand), 앤설 아담스(Ansel Adams), 애런 시스킨드(Aaron Siskind) 등이 이 리그의 회원이었다.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프레스, 2017, p. 315.

**<From Wall Street to Walker Evans>, Wall Street Journal 2007년 6월 8일 인터뷰 기사.

***18년 4월 18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brucesilverstein.com/exhibitions/marjan-teeuwen/4

*****작품 제작 과정 영상은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http://www.marjanteeuwen.nl/lukk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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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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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의 데스크에 전시 관련 자료들이 놓여 있다. 오른쪽으로 메인 전시 공간으로 연결되며 앞쪽으로 보이는 곳이 사무실, 책장, 작품 보관고 및 전시 공간으로 함께 활용되는 곳이다. 전시 제목 옆에 걸려 있는 작품은 <Destroyed House Gaza 9, 201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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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관 및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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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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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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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House Krasnoyarsk 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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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House Piet Mondriaanstraat 1, 2011>. 이 사진은 가까이서, 멀리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언가 빗나간 원근감의 느낌이 계속 들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어 디지털 작업을 통해 합친 작품이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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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lizabeth Houston Gallery

2015년 문을 연 Elizabeth Houston 갤러리는 다양한 장르의 컨템퍼러리 예술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곳으로 컨템퍼러리뿐만 아니라 20세기 빈티지 사진 프린트들도 다수 컬렉션하고 있다. 관장인 엘리자베스 하우스턴(Elizabeth Houston)은 이전까지 Hous Project라는 갤러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다수의 대회 및 포트폴리오 리뷰에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직 역사가 짧은 신생 갤러리이다 보니 소속 작가는 8명으로 많지는 않은데 이 중 5명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사진가들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갤러리 이름과 똑같은 이스트 빌리지 끝자락의 하우스턴 거리에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갤러리는 1층의 메인 전시 공간과 지하의 사무실 및 작품 보관고로 이루어져 있다. 직방형의 1층 전시 공간에는 작은 책상 위에 전시 자료와 체크리스트가 놓여 있고 직원 한 명이 앉아서 근무하고 있다. 1층에서 이어지는 철로 된 원형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벽면에 소속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전시해 놓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두 개 층을 다 합쳐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최대한으로 공간을 활용해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존 시르(John Cyr)의 <Developer Trays>이다. 1981년생의 젊은 작가인 시르는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사진가이다. 2010년 School of Visual Art에서 MFA 과정을 마쳤고 ICP에서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현재는 Suffolk County Community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전시인 <Developer Trays>는 2010년대 초반에 그가 작업한 시리즈로 제목 그대로 사진 인화를 위한 현상 트레이들을 찍은 사진이다. 전문 프린터(a professional silver gelatin printer)이기도 했던 시르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한 트레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한 사진가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일종의 유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시르의 작품 속에 담긴 트레이들이 보여 주는 오랜 현상 작업의 흔적들 – 스크래치, 시간이 배인 색조 등 – 은 이 단순한 사물 – 현상 트레이 – 을 담은 사진을 한 장의 추상화로 변모시켜 주었고 그렇게 시르의 카메라가 포착한 흔적들은 그대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통해 담은 구십여 개의 서로 다른 트레이들의 사진은 정형화된 배경과 형태를 통해 하나의 아름다운 유형학으로 비치기도 한다.

“우와, 이 샐리 만(Sally Mann)은 바로 그 샐리 만을 얘기하는 거니?”

전시장에 걸려 있는 십여 점의 사진 중 한 작품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바로 그 샐리 만의 트레이야.”

직원의 대답을 듣고는 새삼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눈에 담았다. 마치 만이 담았던 가족들***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진 않았지만 2014년 출간된 동명의 사진집에는 앤설 애덤스(Ansel Adams), 마이클 케냐(Micahel Kenna), 메이플소프(Mapplethorpe), 아널드 뉴먼(Arnold Newman), 애런 시스킨드(Aaron Siskind) 등등 쟁쟁한 사진가들이 사용했던 트레이들이 찍혀 있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그 사진가들의 트레이 하나하나를 보고 있으면 왠지 그들의 작품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해가는 시대, 특히 사진에 있어서는 필름 회사들이 파산하고 과거의 아날로그 툴들이 점점 더 희귀해져 가고 있는 세상이다. 거기에 더해 암실에서 약품 냄새 맡으며 이루어지는 아날로그 인화는 더욱더 드물어져 가고 있다.

시르도 <Developer Trays>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사진가들을 찾아다닐 때 이미 많은 수가 아날로그 암실 작업을 접으면서 과거의 도구들을 남겨놓지 않아 아쉬운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르의 이번 프로젝트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또 하나의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처음에 사진들만 마주했을 때도 좋았지만 나중에 찾아본 작가의 사진집 서문을 읽고 다시 한번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할 때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을 볼 때 이미지보다 말을 우선하지는 않지만 잘 정리된 생각과 글은 작품을 읽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사진들도 조금 더 정갈한 언어로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 시선과 사고의 흐름을 나부터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기본정보

*18년 4월 26일 기준

**John Cyr, <Developer Trays>, powerHouse Books, 2014, p. 4-5.

***샐리 만의 <Immediate Family>는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John Cyr, <Developer Trays>, powerHouse Books, 2014, p.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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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 바라 본 1층의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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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및 작품 보관고로 사용되는 지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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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Barsil’s Developer Tra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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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Adam Fuss’ Developer Tray, 2010>, <Barbara Mensch’s Developer Tr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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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y Mann’s Developer Tra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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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Developer Tray from the George Eastman Legacy Collection of the George Eastman House, 2011>, <Jim Megargee’s Developer Tray,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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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er Tray form the Photo History Collection of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2010>.

#24. Robert Mann Gallery

1985년 개관한 Robert Mann 갤러리는 다이앤 애버스(Diane Arbus), 앤설 애덤스(Ansel Adams),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등을 포함한 20세기 주요 사진가들의 작품들을 다수 컬렉션 하며 모던/컨템퍼러리 사진들에 특화된 사진 전문 갤러리이다. 창립자이자 관장인 로버트 만(Robert Mann)은 이전까지 뉴욕의 Light 갤러리에서 근무하다가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갤러리를 키워 왔는데 전시뿐만 아니라 주요 포토 페어들에 꾸준히 참석하며 작가와 작품들을 알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9년 첼시로 자리를 옮겨 온 이후 현재까지 첼시에 그 둥지를 틀고 있으며 홀리 안드레스(Holly Andres), 매리 매팅리(Mary Mattingly) 등 젊은 사진가들도 여럿 대표하며 작품을 보유 중이다.

맨해튼 서쪽 525 West 26번가 건물 2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전시장 중간중간 서 있는 노출 통나무 기둥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건축을 잘 알지 못하니 이 기둥들이 인테리어인지 원래 오래된 건물의 원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대적 전시 공간 사이사이 시선에 들어오는 부정형의 나무 기둥들이 공간에 대한 색다른 인상을 만들어 주는 건 틀림없다. 출입문으로 들어 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데스크와 사무 공간이 있고 다른 크기의 직방형 두 개가 붙은 모양의 기다란 홀이 메인 전시 공간이다. 전시홀 끝자락에서 연결되는 별실은 컬렉터와의 상담 등 손님맞이로 활용하는 응접 공간이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머레이 프레데릭스(Murray Fredericks)의 <Vanity>이다. 호주 출신의 사진가인 프레데릭스는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타임랩스 비디오 및 다큐멘터리 영상도 제작하는 멀티미디어 예술가로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프레데릭스의 최신작인 <Vanity> 시리즈는 호주의 아웃백 지역에 위치한 염전인 Lake Eyre에서 촬영한 사진들로 전작이었던 <Salt> 시리즈에 이어 동일한 지역에서 담아낸 작품들이다. 다만 이전의 시리즈가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그곳의 풍경을 순수하게 담아내었다면 이번 작업은 현장에 설치한 두 개의 거울을 통한 비정형의 반영을 보여 주는 일종의 설치 작업에 가깝다.

전시 작품은 총 8점으로 동틀 녘과 해 질 녘부터 별의 일주를 담은 한 밤의 풍경까지 다양한 시간대에 걸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 장면 속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거울에 비치는 반영의 모습은 카메라 렌즈의 시야를 벗어나 보이는 풍경 속의 풍경이자,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거울을 통해 바라 보이는 것은 그 앞에 서 있는 작가나 카메라 뒤쪽의 풍경이 아닌 완전한 시야 밖의 모습이다. 한 장이 아닌 두 장의 거울을 활용해 부정한 각도 속의 장면을 반영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바깥’의 풍경을 의도적으로 담기 위함이다.

작가는 나르시시즘의 상징인 거울을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자신에 대한 집착의 상징”으로 보았는데 <Vanity> 작업에서 거울의 반영은 “스스로에게서 벗어난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구속에서 벗어난) 곳으로 우리의 시야를 이끌어 주어 자연 속의 빛과 색, 그리고 공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하였다. 즉, 프레데릭스의 거울은 우리의 허영(vanity)을 채워 주는 거울이 아니라 그곳에서 빠져나오도록 해 주는 것이다.

Lake Erye에서 <Salt> 작업을 할 때 프레데릭스는 홀로 그곳을 찾아 길게는 몇 주에 걸쳐 머물며 사진을 찍었다. 이번 <Vanity> 시리즈도 그런 방식으로 제작하였는데 거울을 설치하고, 노출과 프레임을 조정하며 세심히 움직이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가볍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진중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진행하는 모습은 그 과정의 지난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가 느낀 감정을 우리에게 보이는 이미지로 전환하는 과정의 동작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Robert Mann Gallery
  • 주소: 525 W 26th St.,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금 10:00 am – 6:00 pm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robertmann.com

*18년 3월 22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robertmann.com/17-fredericks-press

***<Vanity> 작업 영상. 작가 홈페이지. (http://murrayfredericksphotography.com.au/motion-video/the-vanity-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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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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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 공간. 중간중간 서 있는 통나무 기둥이 인상적이다. 제일 뒤편 오른쪽으로 응접 공간으로 활용하는 별실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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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데스크에 전시 자료와 책자 등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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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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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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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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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7, 2017>.

#18. Milk Gallery

문화적 감각이 있는(Culturally coscious) 회사라는 소개글을 달아 놓은 Milk 그룹에서 운영하는 Milk 갤러리는 뉴욕의 여타 상업 갤러리라기보다는 비정기적으로 이벤트성 전시를 진행하는 공간에 가깝다. Milk Group Company는 뉴욕과 LA에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인화를 포함한 디지털 이미징 작업, 홍보/마케팅 이벤트 운영, 모델 캐스팅 및 메이크업까지 일종의 통합 문화/이미지 서비스 기업이다.

첼시 마켓 건물의 끝자락과 길 하나를 건너 마주한 450 West 15번가 건물의 지상층에 위치한 Milk 갤러리는 외부로 향한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볕이 매우 잘 드는 구조이다. 반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간 높이에 있는 갤러리는 중간중간 회전 및 이동이 가능한 가변 벽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시 외 다른 이벤트를 위해서도 활용하기 때문에 공간 면적이 매우 넓은 편이다.

이번에* Milk 갤러리를 찾아간 까닭은 사진집단 매그넘과 후지필름의 협업 프로젝트인 <HOME>**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16명의 매그넘 사진가들이 “집(Home)”이라는 단일한 주제 아래 각자의 시선으로 담은 작품들로 후지필름의 중형 디지털카메라인 GFX50S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X 시리즈 카메라들로 보완하며 작업한 프로젝트이다.

참여 작가들은 올해로 90세인 엘리엇 어윗(Elliot Erwitt)과 아시아 최초의 매그넘 멤버인 히로지 구보타(Hiroji Kubota) 등의 노장들부터 비교적 최근 매그넘에 합류한 조나스 벤디크센(Jonas Bendiksen) 등 신진 세대들까지 다양하게 아우르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 후지필름의 홍보성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무리 매그넘이라 해도 전시 자체에 많이 끌렸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일 도슨트이자 강연회를 진행한 데이빗 앨런 하비(David Alan Harvey)가 아니었다면 아마 굳이 전시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Cuba>와 <Divided Soul> 등으로 유명한 하비 선생님은 작년 12월 뉴욕에서 열린 제주 해녀 특별 전시회 오프닝 때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가까이서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하비의 작품 설명은 사진 자체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살짝 가미된 유머들이 더 귀에 들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 제목에 보이는 것처럼 집(Home)을 담는 것이었어요. 그냥 집에 있으면서 사진을 찍고 돈을 받으면 되니 솔직히 이번처럼 편한 일은 없었죠. :)”

대부분의 사진을 실제 살고 있는 집에서 찍은 엘리엇 어윗의 작품들 앞에선 부동산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여기 이 사진 속의 뉴욕 풍경 멋지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어윗에게는 센트럴파크가 아주 잘 보이는 집이 있어요. 그것도 두 채나 있죠. 전 솔직히 조금 부러워요.”

이탈리아 출신 작가 알렉스 마졸리(Alex Majoli)의 작품들 앞에선 요리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알렉스 마졸리는 칼라를 아주 인상적으로 찍는 친구죠. 이 사진들 보시면 아실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 실은 파스타를 엄청 맛있게 요리한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그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 있어도 그의 요리는 좋아하게 될 겁니다.”

16명의 시선으로 바라 본 “집(Home)”은 그 시선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로웠다. 물리적인 집의 공간에서 시작해 가족의 범위로 확장되는 집의 개념, 그리고 고향과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로 퍼져 나가는 집까지. 단순히 단어 하나의 의미로 정의될 수 없는 “집(Home)”의 모습들이었다.

전시 관람에 이어진 하비의 강연회는 준비된 100석의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찰 만큼 성황이었다. 매그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하비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니 물론 그럴 법도 하다 싶었다.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사진의 길과 최근 작업들,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 대한 조언은, 언뜻 들으면 이미 성공한 선배 세대의 충고쯤으로 비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새겨들을만했다. 미래의 결과를 기대하기 전에 눈 앞의 작업에 충실하라는 것. 자신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돈도, 이름도, 그 아무것도 없이 그저 아이 딸린 유부남 학생 사진가였던 하비의 이야기는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하비는 특히 지금 세대의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많이 주었는데, 명성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라는 이야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당연한 것이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해 주었다. (하비는 자신이 창간한 온라인 매거진 Burn***을 통해 신진 사진가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을 여러모로 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매거진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 전시 방문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하비가 자신의 학생이라고 소개한 사진가 아거스 폴(Argus Paul)****의 작업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하비의 강연회가 끝난 후 잠시 훑어보기 위해 집어 든 폴의 사진집은 놀랍게도 세월호와 단원고 학생들에 관한 다큐 작업이었다.

“어? 이거? 너 이 일을 어떻게 알고 작업한 거니?”

“아.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사촌을 사고로 잃었거든. 그 이후 세월호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

뉴욕의 한적한 갤러리에서 마주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작업이라, 그리고 마침 4월이 찾아오고 있던 터라 아마도 폴의 작업이 더 눈에 들어왔을 테다. 알고 보니 서울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교포 사진가인 폴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사회의 여러 이슈들에 관해 많은 기록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이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지금 이곳은 4월 16일이다. 4년 전 그때, 나는 독일에 머물고 있었는데 수십 년째 독일에 살고 계신 고모님과 독일계 혼혈인 사촌 형, 동생을 보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저 어린 학생들을 저렇게 보내 버리는 나라의 모습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라는 생각이었다.

다만 뉴욕 한 구석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언젠가는 그날의 모든 슬픔들이 보듬어지길 바라본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Milk Gallery
  • 주소: 450 W 15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월-금 10:00 am – 6:00 pm / 토-일 11:00 am – 7:00 pm
  • 홈페이지: http://www.themilkgallery.com

*18년 3월 11일 기준.

**전시 홈페이지: http://home-magnum.com/en/

***http://www.burnmagazine.org

****http://www.arguspa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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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풍경. 가변 벽들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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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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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을 진행 중인 하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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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어윗의 작품들. 올해로 90세인 어윗의 2017년 최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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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윗 사진 속의 위트는 여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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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마졸리(Alex Maj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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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을 좇아간 히로지 구보타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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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소스(Alec Soth)와 알렉스 웹(Alex We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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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편에 있던 후지필름 체험 및 서비스 공간. GFX50S는 생각보다 작고 가벼웠다.

#11. Staley-Wise Gallery

Miranda (메릴 스트립) :
Get me Demarchelier. (드마쉘리에 연결해.)

Andy (앤 해서웨이) :
(On the phone) I have Miranda Priestly calling for – Okay. (미란다 프리슬리 전홥니다 – 예.)
(to Miranda) I have Patrick. (패트릭 연결됐습니다.)

패션지 보그의 편집장 애나 윈투어(Anna Wintour)를 실제 모델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기 보단 뭇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은 앤 해서웨이의 거리 패션쇼 워킹으로 더 유명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이다. 대사 속의 주인공은 저 장면만으로 그 위상을 짐작케 하는 유명 패션 사진가 패트릭 드마쉘리에. 지금* 소호의 Staley-Wise 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 <Patrick Demarchelier : 1992-2017>을 진행 중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공동 창립자인 Etheleen Staley와 Takouhy Wise을 이름을 따서 1981년 소호에 처음 문을 연 Staely-Wise 갤러리는 패션 사진 전문 화랑으로 30년 넘는 역사를 쌓아 왔다. 소속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 드마쉘리에를 포함하여 데이빗 라샤펠(David LaChapelle), 갤러리 창립 개관 전시의 주인공이었던 호스트 P. 호스트(Horst P. Horst), 마릴린 먼로 사진이 유명한 버트 스턴(Bert Stern) 등이 있고 할리우드 유명인사들의 인물 사진부터 풍경, 일상, 누드 사진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Staely-Wise 갤러리는 Sous Les Etoiles 갤러리와 같은 소호 100 Crosby가 빌딩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후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빌딩 서쪽 끝자락 공간에 위치한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지그재그 모양의 전시홀 양 벽면을 따라 작품들을 전시 중이며 메인홀 중간에 데스크가 있어 체크리스트와 보도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홀 끝자락의 기둥을 돌아서 좁은 통로를 지나면 작품 보관 및 사무 공간으로 이어지는데, 특이한 점은 주 전시홀과 다른 공간들의 이동이 자유로워 메인 전시뿐만 아니라 작품 보관고 벽면에 진열된 다양한 작품들을 마음대로 보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오를 조금 앞둔 시각,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 선 갤러리는 이미 개관 시간이 지났는데 조명도 켜져 있지 않고, 전시 작가의 이름마저 아직 설치 중인지 공사용 사다리 등이 늘어서 있었다. ‘뭐지, 불도 다 안 켜 놓고. 요즘 갤러리 운영이 어려운가?’라는 생각도 잠시, 오프닝 날짜를 착각하여 저녁에 리셉션이 열리는 전시 준비 날 아침부터 찾아온 바보는 나였다. 하지만 다행히 친절한 직원이 편히 보라며 조명을 켜 준 덕에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패션 사진이라면 당연히 1g의 일가견도 없는 나이기에 이번 전시를 읽는 눈이 그다지 높을 수는 없다. 다만 지난번 Pace/MacGill 갤러리에서 관람한 리처드 애버든(Richard Avedon)의 <Nothing Personal> 전시***에서 느꼈던 것처럼 패션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결국 인물을 잘 담는다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 중간에 걸린 몇몇의 흑백 포트레이트 사진들을 보며 다시 한번 그때의 생각을 떠 올렸다. 그중에는 재미있게도 드마쉘리에가 담은 애버든의 사진도 있었다.

흑백 포트레이트가 아닌 다른 사진들은 강렬한 원색과 함께 프레임 안 선과 면, 색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역동적인 육상 포즈의 모델, 고요한 호수면 위 외발 자전거 위에 올라 선 모델 사진 등은 정지하고 있지만 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지는 사진들이기도 했다. 패션 사진은 다큐나 스트레이트처럼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던 어떤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의 새로운 형과 미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발견이 아닌 창조의 미학이 더 많이 요구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화려한 의상과 화장의 보그 화보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새로이 창조된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압도할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미적 창조는 결국 작가의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다.

메인 전시를 보고 여기저기 자유로이 놓인 다른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중 재미있으면서도 살짝 소름 돋게 하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높은 빌딩의 튀어나온 꼭대기에 불안히 서서 작업하는 한 사진가를 담은 작품. 연필로 쓰여 있는 작가의 서명은 존 로엔가드(John Loengard). 마침 마음 편히 둘러 보라며 신경 써 줬던 직원이 옆을 지나가기에 말을 걸었다.

“저기, 이 사진 혹시 애니(Annie)니?”

“아, 이거? 저 뒤쪽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니까 크라이슬러 타워일 거야. 여기 보이니, 사진가와 장비를 건네주는 어시스턴트, 그리고 발을 묶고 있는 줄 말이야. 네 말이 맞아, 애니 레이보비츠(Annie Leibovitz). 난 이 사진 볼 때마다 몸이 으스스 떨린 다니까.”

대답하면서 살짝 몸을 떠는 직원을 보고, 다시 수십 층 타워의 꼭대기에서 스스럼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보는데 나 또한 으스스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런 곳에 서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마도 이런 것이 저 사진가의 열정을 보여 주는 한 장면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난 저기 서서 사진을 찍으라면 못 할 것 같지만.

Staley-Wise 갤러리에 간 날은 내 실수 때문에 허탕 친 날이 될 뻔했는데 친절한 직원 덕에 좋은 전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작품들까지 즐길 수 있던 기분 좋은 하루였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그렇듯 좋은 첫인상은 오래가는 법. 아마도 이 곳은 남은 기간 동안 종종 와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Staley-Wise Gallery
  • 주소: 100 Crosby St. #305, New York, NY 10012
  • 운영시간: 화-토 11:00 am – 5:00 pm
  • 홈페이지: http://www.staleywise.com

*18년 2월 8일 기준

**순서대로 <Part I>, 2008 / <Part II>, 2013 / <Photographs : 1975-2015>, 2015.

***https://bphotokr.com/2018/01/23/04-pace-macgill-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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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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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시를 보러 갔다. 사진은 왼쪽부터 <Karlie Kloss, Dressed Up Face, New York, Vogue, 2009> / <Karlie Kloss, Feast for the Eyes, New York, Vogu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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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 뒤쪽으로 보이는 사진은 역시 무도 출연으로 익숙한 스테판 커리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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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RuPaul, 1998> / <Leonardo DiCaprio, 1999> / <Richard Avedon, New York, 1993> / <Gisele Bündchen, 2002> / <Lion, 1997> / <Princess Diana,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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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자유로이 진열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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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과 사무실을 잇는 작은 통로. 가운데 사진은 아마도 가가. 왼쪽 사진은 <Twiggy in front of Bridget Riley Painting, 1967> by Bert S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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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연인. <Marilyn Monroe with Pink Roses, 1962> by Bert S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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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던 애니 레이보비츠의 사진. <Annie Leibovitz with her assistant, Robert Bean on the Chrysler Building> by John Loengard.

#09. 303 Gallery

1984년 리사 스펠맨(Lisa Spellman)이 설립한 303 갤러리의 이름은 갤러리 주소였던 파크가 303번지를 따른 것이지만,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eiglitz)가 운영하였던 Intimate 갤러리가 Anderson Galleries 건물의 303호에 자리 잡았던 것에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개관과 함께 쌓아 온 시간 자체도 짧지 않지만 이름부터도 가볍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는 이스트 빌리지, 소호 등 몇 번의 자리 이전을 거쳐 1996년 첼시에 새 둥지를 틀었으며, 이후 첼시 안에서 몇 번 더 이전하다가 2016년 현재 위치인 첼시 서쪽 끝자락 West 21번가로 옮겨 왔다..

빌딩 1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거대한 유리문 입구와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만큼 넓고 시원하게 조성되어 있는 전시 공간이 인상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 서면 바로 오른쪽이 데스크이며 앞쪽의 작은 책상 위에 체크리스트와 방명록, 전시 작가의 책 몇 권이 함께 놓여 있다. 전시홀 끝 쪽은 사무실과 작품 보관고로 이어지는 곳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의 2017년 신작 전시이다. 303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쇼어의 여섯 번째 개인전으로 갤러리는 2000년 진행한 첫 번째 전시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쇼어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판매, 보유하고 있다.

2017년 신작은 작가가 핫셀블라드 X1D 디지털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다. 아이폰, 인스타그램 등의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과 장비를 활용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아 왔던 쇼어는 사용하기 편리하면서도 예전에 쓰던 대형 8×10 카메라의 디테일을 가능케 하는 X1D의 가능성에 반하여 이 카메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긴 폭의 길이가 60인치가 넘는 대형 인화인  전시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클로즈업 풍경임에도 디테일이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진은 작고, 한 손에 들어오고, 가급적이면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카메라로 찍는 걸 좋아하지만 최근엔 화면 상의 이미지보다 인화가 그리워지면서 중형을 좀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이 X1D의 인화물들을 보니 한 번쯤은 사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마존 가격 검색해 보고는 그냥 좋은 작품들 감상을 한 것으로 끝내긴 했지만…^^)

작품 수는 총 9점으로 많지는 않은데 뉴욕, 런던, 그리고 몬태나에서의 어느 하루 동안 촬영된 이미지들 중에 골랐다. 뉴욕 길바닥의 담배꽁초와 쓰레기봉투, 런던 어딘가의 나무들, 몬태나의 흙바닥에 대한 클로즈업 사진들. 이런 사진들 – 언뜻 보면 쓸모없고, 아름답지 않고, 의미를 알 수 없는 – 로 전시를 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건 결국 쇼어가 지난 수십 년 간 보여 주며 쌓아 올린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에서 어떤 의미와 조형성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작가의 사진 세계가 있었기에 새로운 작품들도 그 세계관에 비추어 읽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도대체 이런 것을 왜 담았는데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나한텐 꽤나 마음에 드는 전시였다. X1D의 해상력에서 오는 디테일뿐만 아니라 피사체들과 그들이 내게 보이는 방식이 좋았다. 물론 아직 나는 아스팔트 위의 담배꽁초와 나뭇가지, 잎사귀의 조화에서 마치 초창기 칸딘스키(Kandisky)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사진을 읽지는 못한다.*** 사진 감상에 정답이 있다고 할 순 없겠지만 더 깊이 읽기를 위해서는 내 배움의 창고를 더 채울 필요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전시의 보도 자료에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대해 꽤 세세한 평이 나온 것은 결국 이번 작품들의 읽기가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정 부분 감안한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 속의 풍경들이 내게는 무척 좋았기에 오히려 조금 더 이 시선을 따라가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일 같이 걸어 다니고 있는 이곳 뉴욕의 길바닥을 조금 더 자세히 좀 보아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뉴욕 대부분 갤러리들의 주요한 목적이 상업 활동이라는 걸 감안하면 303 갤러리의 이번 쇼어 전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 5월까지 MoMA에서 진행 중인 스티븐 쇼어의 대규모 회고전 때문에 아무래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곳뿐만 아니라 EDWYNN HOUK 갤러리에서도 쇼어의 <Uncommon Places> 시리즈 빈티지 프린트 전시를 진행하고 있으니 한 갤러리만의 일도 아니다. 물론 나로서는 여러 전시를 볼 수 있으니 그저 좋을 뿐이지만, 이 곳의 갤러리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303 Gallery
  • 주소: 555 W 21st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303gallery.com

*18년 2월 1일 기준.

**전시 보도자료. http://www.303gallery.com/gallery-exhibitions/stephen-shore6/press-release
***전시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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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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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바로 앞에는 작은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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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 자료와 체크리스트, 그리고 쇼어의 사진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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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큰 전시 공간에 9점의 대형 인화물만 걸려 있으니 매우 한적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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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New York, New York, May 19, 2017>, <London, England, July 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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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New York, May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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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Forks, Montana, August 6, 2017>.

#07. Danziger Gallery

1990년 웨스트 브로드웨이에 처음 문을 연 Danziger 갤러리는 몇 번의 이사를 거쳐 2016년 현재의 이스트 빌리지 자리에 정착하였다. 개관 후 10년째인 2000년에는 창업자인 제임스 덴지거(James Danziger)가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사진 사업을 구상하며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04년에 첼시에서 재개관한 이후 현재 위치에서 계속 그 맥을 이어 오고 있다.

갤러리 안내글에 따르면 인화지를 직접 물속에 담근 채 노광하여 물의 흐름, 그림자 등을 담아낸 포토그램 작업인 수잔 더져스(Susan Derges)의 작품들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의 결정을 포착한 유지 오바타(Yuji Obata) 작품 등의 실험적 작업들을 처음으로 전시한 곳이기도 하다. 갤러리 홈페이지에 소개된 더져스와 오바타의 작품들을 보면 새삼 사진이라는 매체가 표현하고 담아낼 수 있는 시각과 감각의 범위가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것은 The Sartorialist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는 패션 사진작가의 작품 중 한 점이다. 서울 시내 Bank street(어디지?)에서 찍은 사진인데 내가 애정하는 무한도전에 종종 출연했던 ‘정남이’가 모델이다. 탑 모델이라는 얘기를 연예 기사들에서 좀 보긴 했는데 이렇게 뉴욕 갤러리의 작품 사진에서 보게 되니 멋져 보인다. 🙂

Danziger 갤러리는 복층 구조의 공간인데 Street-level에 위치한 갤러리 입구로 들어 서면 반지하층은 데스크와 사무실, 작품 보관고가 있고 반지상층은 전시홀이다. 직방형의 홀은 높은 천장 덕분에 형광등 조명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감상하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중간보다 조금 더 끝 쪽에 위치한 직사각의 기둥 벽면 양쪽도 작품을 걸기 위한 공간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SUSAN MEISELAS: “CARNIVAL STRIPPERS” 1972 -1975> 전시는 수전 메이젤라스(Susan Meiselas)가 70년대 초반에 작업한 것이다. 매그넘 소속 사진가인 메이젤라스는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남미의 분쟁 지역에 대한 취재로 잘 알려져 있는데 <Carnival Strippers> 작업은 그녀가 매그넘 소속이 되기 전, 사진을 시작한 초창기에 찍은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1948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칠순이 넘은 메이젤라스는 2015년에 구겐하임 재단 지원금을 받는 등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메이젤라스는 1972년 파트너와 함께 로드 트립을 하다가 카니발의 Girl Show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세 해의 여름 동안 뉴잉글랜드주의 소도시들과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던 카니발을 따라다니며 스트리퍼들의 공연장 안팎에서의 삶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녀들이 공연 준비를 하거나 잠시 숨을 돌리던 백스테이지의 모습, 들뜬 남성 관중들 앞에서 공연이 한창인 텐트 안, 공연 전 관중을 끌어 모으기 위한 가설무대에서의 퍼포먼스, 그리고 각자가 한껏 자신의 멋을 뽐내며 카메라 앞에 선 포트레이트 사진들까지. 메이젤라스의 작업은 고단하고 자조적이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카니발 스트리퍼들의 생활을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스트리퍼라 했지만 그때그때 머물렀던 마을들의 법규와 관습에 따라 공연의 정도는 꽤 달라졌다.** 지역에 따라서는 매매춘까지도 이루어졌던 것 같다.)

렌즈를 통해 담긴 그녀들의 모습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이는 메이젤라스가 댄서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함께 지내고 고락을 함께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작업의 첫 해에는 스스로 말하길 마치 카니발 공연장을 거닐고 들락거리던 관객이나 행인처럼 사진을 담던 그녀가 신뢰를 쌓아 가면서 한 발짝씩 그녀들의 삶 속으로 더 들어가 그 안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 때문인지 그녀의 사진들은 생생하게 그때, 그곳의 시간과 분위기를 잡아 내어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어두운 환경에서 촬영된 감도 높은 흑백 필름의 입자감은 이러한 시간의 느낌을 더 배가 시켜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전시는 사진들과 함께 메이젤라스가 담은 작업의 녹취록 일부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중에는 그녀의 작업에서 특히 자주 모델이 되었던 레나(Lena)가 처음 댄서 일을 하기 위해 찾아왔던 날의 대화도 녹음되어 있어 있어 책 속 텍스트의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저 춤 좀 출 줄 알아요, 아주 잘 출 수 있죠. 스트립 댄스라면 그렇게 잘 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건 괜찮아, 어떻게 하는지 우리가 알려줄 거야.”****

1973년 처음 레나가 카니발에 몸을 담았을 때 마주한 순간부터 1975년 카니발 생활 3년째가 되는 해의 포트레이트까지 담긴 레나의 사진들은 메이젤라스의 말처럼 그녀의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레나는 약물 문제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메이젤라스는 니카라과 다큐 작업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레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그룹전도 좋지만 이처럼 한 작가의 한 프로젝트에 대한 전시를 보는 것은 마치 하나의 주제를 가진 사진집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 더 깊이 있는 보기를 할 수 있어 좋다. 전시 기간은 아직 한 달 정도 여유가 있으니 몇 번 더 가서 오디오를 들으며 슬쩍 더 감상할까 싶기도 하다.

참조로 메이젤라스가 하버드 대학원 시절 찍었던 <44 Irving St.>부터 시작하여 가장 최근인 2015년까지의 모든 프로젝트와 작업들이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 이미지, 텍스트, 오디오까지 포함하여 굉장히 잘 정리되어 있다. 메이젤라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기본정보

갤러리명: Danziger Gallery

주소: 95 Rivington St., New York, NY, 10002

운영시간: 화-금 11:00 am – 6:00 pm / 토 12:00 am – 5:00 pm

웹사이트: http://www.danzigergallery.com/exhibitions

*2018년 1월 23일 기준
**Susan Meiselas, <Carnival Strippers>, Farrar, Straus & Giroux, 1976, p.7.
***<Susan Meiselas: In History>, Steidl, 2009, p.14-15.

****Susan Meiselas, <Carnival Strippers>, Farrar, Straus & Giroux, 1976, p.142.
*****Kristen Lubben, <Magnum Contact Sheets>, Thames & Hudson, 2014, p. 222.

******http://www.susanmeisel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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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로 들어 서면 복층의 공간으로 구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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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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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레이트. 다음 번 공연을 찾아갈 때마다 이전에 자신이 찍었던 사진들의 밀착인화를 들고 갔던 메이젤라스는 그녀들이 포트레이트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중형 포맷으로 그녀들을 사진에 담아 주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Extra girl, Fryeburg, ME, 1975> / <Coffee, Carlisle, PA, 1975> / <Mitzi, Tunbridge, VT, 1974> / <New girl, Tunbridge, VT, 1975> / <Ginger, Carlisle, PA, 1975> / <Sammy, Essex Junction, VT,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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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a’s first day, Essex Junction, VT, 1973>.

DSCF9581 <Lena on the Bally Box, Essex Junction, VT,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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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a, Barton, VT,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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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a in the motel, Barton, VT,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