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자기_건수자도

젠수이(建水)는 아름다운 도시다. 2009년 처음 왔을 때 아직 이곳은 고풍스런 한적한 도시였다. 십여 년이 지났건만 눈부신 개발 한편으로 옛것을 보존하려는 몸부림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젠수이는 윈난의 다른 큰 도시들에 비해 일찍 발전된 곳이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 말이기도 하다. 리장, 따리와 함께 윈난 3대 고성이 있는 곳이다. 중국 3대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 가운데 하나가 중원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창대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이방인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이곳은 일찍 유가풍의 문화가 자리 잡은 선비의 도시이기도 하다. 글줄이나 읽은 노인들이 심심파적 삼아 붓 놀이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먹을 것 볼 것이 풍부하고 소박하고 깨끗한 환경 덕분에 근래 중국에서도 뜨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젠수이 여행 마지막 날, 자도(紫陶)공방을 다시 찾았다. 첫날 도예촌에서 실망한 탓도 있으려니와 자도와 관련된 문화나 자도의 제작과정이 궁금하던 터였다. 형님을 졸랐더니 꽌시가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공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젠수이 자도는 우리에게 비교적 늦게 알려진 도자기다. 송대에 시작된 자도의 역사는 산업화와 함께 근래까지 다른 전통도자기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양길을 걸으며 명맥을 유지하다가 전통문화 부흥 정책과 보이차의 역대급 히트에 힘입어 근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천연의 오색토((五色土: 적, 황, 청, 갈, 백의 다섯 가지 색깔의 원료) 원료를 숙성시켜 기물의 형태를 만들고 상감기법으로 문양, 그림, 글자를 넣는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온(1150 ~ 1200 ℃)으로 소성한 후 숫돌로 물광을 내서 완성한다. 이싱의 자사호와 비슷한 듯 다른 점은 재료, 상감기법 그리고 물광을 내는 것 정도가 되겠다. 항아리, 병, 화분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들지만 근래에 차호로 각광받고 있는 아름다운 도자기다.

R0073062[오후 도자촌 거리는 한산하다. 작은 공방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섰다.]

 

R0073064[누가 오거나 말거나 저 할일에 집중하던 도공이 작업 한대목을 마치자 차를 내며 자리를 청한다. 잡히면 한 두개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아 사양하고 물러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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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쌍용교 근처 제법 갖추어진 공방을 찾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이 어리둥절한 여사장은 속살을 내어보이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R0073353[원료창고, 오색토로 자도의 원료가 된다. 소성되면 각각의 빛깔을 낼 것이다. 덩어리가 보이는 것은 괴상으로 보이지만 만져보면 분처럼 부드럽다.]

 

R0073356[제토과정을 거쳐서]

 

R0073352[정제된 원료를 숙성한다.]

 

R0073362[자사호는 대부분 판성형을 하는데 자도는 물레로 성형한다. 이름 없는 도공이지만 숙련도가 장난아니다. 공방에 소속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기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을 것인데…]

 

R0073359[성형된 기물이 어느정도 건조되면 형태를 다듬는다.]

 

R0073364[깍고 다듬고]

 

R0073365[또 깍고 다듬고]

 

R0073369[건조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 공방에선 철저한 분업이다. 제토하는 사람, 성형하는 사람, 다듬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상감하는 사람 등…20여명의 여성들이 지난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 마디 물어도 대꾸를 안한다…ㅠㅠ]

 

R0073367[밑그림이 그려진 자도 성형품에 그림을 따라 기벽을 파낸다. 색깔이 다른 흙으로 파낸 부위를 채우고 다시 다듬는다. 상감기법이다. 글, 그림, 문양 등 다양한 장식을 하는데 우리 정서는 아니다 싶다.]

 

R0073372[소성하기 전 바닥에 시그니쳐!]

 

R0073375[나서기 전에 전시장을 찾았다. 내내 쫄쫄 따라다니면서 낮빛이 울그락 불그락 하던 여사장이 이 대목에선 판매담당경리라면서 소개시켜 주고 방구새듯 빠져 버린다. 여우같으니라고…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깍아 달랬더니 자기는 깍아줄 권한이 없고 쿤밍과 젠수이 시내 총판이 있는데 그곳과 가격 차이가 나면 안된단다. 여사장이 도망간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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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물든 쌍용교가 교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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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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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아버님 뵙고 내려오던 길이 순하고 편했습니다.  문경/2018.5]

상실과 부재

주말이면 아버님 떠나신지 일곱 번의 칠일 째가 되는 날입니다. 남은 자에겐 이별과 상실을 맞는 배려의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한 덩어리 슬픔이 울컥 올라와 목구멍을 틀어쥐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쏟아집니다. 꺼억꺼억 어깨를 들썩이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크게 숨을 들이키면 눈물이 잦아 들곤 합니다. 이십여 년 병원에서 보내신 장엄한 시간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자는 남은 자의 이유로 당신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아득함에 몸서리칩니다. 고단한 서사의 복기는 불능입니다. 일곱 번의 칠일은 어쩔 수 없음의 어쩔 수 없음을 긍정하는 시간입니다. 상실과 부재의 아픔은 치유의 시간을 거치면서 승화되어 갑니다.

주고 가신 것이 큽니다.
당신 곁에서 축제를 열겠습니다.

 

봄이 오지 않는 캠퍼스

6월 20일 오전 9시 30분. 전국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관계자들은 이날 교육부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올 초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대학 기본역량진단 1단계 평가에 대한 결과였는데, 비록 잠정결과라고는 하나 평가 대상교의 64% 비율로 합격 판정된 자율개선대학의 범주에 들지 못한 탈락 대학은 정원감축 권고와 정부 재정지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일부 대학들에는 그야말로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발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정대로 발표된 ‘살생부’로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4년제 대학 120개교, 전문대학 87개교가 합격으로 안도의한숨을 내쉰 반면, 4년제 67곳, 전문대 49곳 등 116개교는 정원감축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정부는 이들 대학의 정원을 총 2만 명 가량 줄일 계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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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학 정원이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른 원인은 90년대 대학설립 간소화로 무분별한 대학설립에 따른 정원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정원은 60만 명 수준으로 2000년도만 하더라도 대입자원인 학령인구는 80만 명 수준이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대학이 학생을 골라서 선발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6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2020년 이후엔 50만 명 아래로 급감할 예정이다. 즉, 대입자원 전원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대학 재정이 탄탄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90년대 등록금 장사를 위해 설립된 사학들 재정이 여유로울 리 만무하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부실사립대학의 대량 폐교사태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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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러한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1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사업 초기 54만 명이던 대학정원을 48만 명 수준으로 5년간 6만 명 가량을 감축하였다. 이어서 올해 후속으로 추진되는 2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은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형태로 대학 전반에 걸친 평가를 통해 대학별 ‘체력’을 평가하고 함량 미달인 대학들은 정원감축 권고 또는 정부재정지원의 제한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골자로 하고 있다.

수 년간 지속하고 있는 대학등록금 상한제(라고는 하지만 실질적 동결)와 부실사립에 대한 정원감축으로 인해 실제 대학이 문을 닫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12년부터 올해까지 12개 대학이 폐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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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찾아뵙는 처가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2017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폐교된 학교가 하나가 있어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 대학 정문 주변은 이미 대형화물차들의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낯설게 변해버린 주변 풍경 속에 활짝 열린 정문은 아직 이곳은 학생들의 마음과 추억이 떠나지 않은 캠퍼스라며 큰 소리로 시위하는 듯 보였다. 나는 정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가 무색하게 캠퍼스에서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을 학생들은 보이질 않는다.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것은 조로(早老)하는 것일까. 본관까지 이어진 캠퍼스 중심도로 양옆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등하교 시 북적였을 법한 통학버스 정류장과 텅 빈 게시판, 해진 채로 힘없이 펄럭이는 본관 앞 태극기는 버려진 캠퍼스의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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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 교육정책의 폐해는 앞뒤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온 우리 사회의 업이라 흘리기엔 아픔이 절대 만만치 않을 듯하다. 특히, 2주기 구조조정에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린 지금으로서는 대학 간 통폐합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학사회는 변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불어 폐교 후 캠퍼스 토지와 건물, 교육/연구용 기자재 등과 같은 학교 기본자산의 처분방법, 재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지역 경제의 직격탄이 될 교직원의 실업 문제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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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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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미나토

돗토리현 서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사카이미나토는 일본 국민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으로 그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를 테마로 한 요괴마을로 유명함과 동시에 산인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한 세계적 사진가 우에다 쇼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돗토리 사구는 일평생 그에게 있어 훌륭한 스튜디오였으며, 이 곳에서 가족사진과 유머러스한 셀프사진 그리고 평생의 모델이었던 아이들을 원없이 찍었다. 지금도 요괴거리 ‘미즈키 시게루 로드’ 한켠에는 70년간 우에다 쇼지 작업의 근간이 된 ‘우에다 카메라’가 그의 셋째 아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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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사카이미나토 수산진흥협회를 통해 예약해 둔 어시장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 나는 숙소를 나와 요괴들의 천국인 미즈키 시게루 로드로 들어섰다. 산인(山陰)지방의 8월 하늘은 지명마냥 우중충하고 무겁다. 인기척 없는 새벽거리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눈알 가로등과 검은 고양이 그리고 신사나무에 둘러쳐진 금줄은 오직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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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벽적으로 깨끗하고 단조로운 골목풍경을 벗어나 탁트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출발지인 호텔로부터 어시장은 정동쪽이었으므로 왼쪽으로 꺽은 채 두 블럭 정도 걸어나가면 나카우미호에서 미호만으로 흐르는 해협을 만날 수 있다. 멋스런 구름 스카프를 걸친 해협 건너 이나리산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문득 호수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은 어떤 지점을 경계로 민물과 해수로 구분되어지는지 궁금해졌다. 학문적인 접근에서 염분의 농도구배 따위로 구분하자니 드넓은 강을 두고 일일이 측정이 가당키나 할까 싶고, 행정편의적 접근으로 지리적 생김새에 의거해 구분하자니 섬세하고 정교한 자연이 섭섭해할 것만 같다. 어쨋든, 이런 저런 잡생각은 마침내 나를 목표지점인 어시장 입구로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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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 투어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예약 관계로 주고받은 메일에서 먼저 알게된 ‘에지리상’은 실제 만나보니 나이 지긋한 백발의 신사였다. 30대 전후의 젊은이일거란 내 멋대로의 추측 따위는 보기좋게 빗나간 것이다.

오전 7시 투어참가자는 나 혼자였음은 이내 알 수 있었다. 에지리상은 나를 보자마자 수산협회 사무실로 안내했고, 어판장 내 간단한 안전수칙을 일러준 후 투어참가자 식별용 노란 모자를 건넸다. 사카이미나토 항과 마찬가지로 넉넉한 동해바다를 등에 업은 죽도시장에서 사진잔뼈가 굵은 나였기에 ‘경매에 방해되지 말 것’, ‘지게차와 바닥 미끄럼 주의’ 등 어판장 투어 유의사항은 이미 체화된 터였다.

노란모자 쓰고 병아리마냥 어미닭 에지리상을 따라 어판장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봄에는 연어, 여름은 참치와 굴 그리고 가을과 겨울은 각종 게와 오징어가 주류를 이룬다며, 계절 따라 많이 잡히는 어종에 대한 설명을 곁들어주신다.

한편, 사카이미나토 어판장 풍경 중 눈에 띄인 것은 바로 호가방식이 죽도시장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수신호로 호가하고 경매사는 그 중 최고가를 제시한 입찰자를 지명하여 낙찰하였다. 오히려 같은 일본이라도 손바닥만한 수첩을 사용하던 가고시마와는 달랐다. 포항과 사카이미나토는 씁쓸한 역사 위에 동해바다를 매개로 수산자원 뿐 아니라 경매시스템 또한 공유하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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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방문 그것도 제한된 시간 50분간 찍어낼 수 있는 사진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투어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견학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시점에 이미 사진욕심은 내려두었기에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위엄서린 경매모자 사이에서 어판장이 발산하는 낯선듯 낯익은 자극들을 나의 감관을 동원하여 최대한 수용하려 애를 썼을 뿐.

사카이미나토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날의 일포드 흑백필름은 기억의 책갈피로서 나에게 훌륭한 6번째 감관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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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카이미나토 교통편: 에어서울 ‘인천-요나고’ 노선와 DBS크루즈 ‘동해-사카이미나토’ 노선이 운영 중임
  • 사카이미나토 수산경매장: 경매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으며, 수산진흥협회에서 주관하는 투어를 통해 참관이 가능함. 비용은 1인당 300엔이며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음. 투어시간은 50분이며 오전 7시, 9시, 10시에 진행됨. http://sakaiminato-suisan.jp
  • 우에다카메라 주소: 〒684-0012 Tottori-ken, Sakaiminato-shi, Nakamachi,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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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ilford hp5+

장소와 기억들 – Ba Dinh Square

독립 선언의 현장, 모두의 공간으로.

하노이 시내의 동부, 그곳으로 가면 하늘이 활짝 열린 광장이 한 곳 있다. Ba Dinh Square. 녹음이 짙은 여름이건, 스산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겨울이건 이곳은 열려있다.

주변의 고색 창연한 프랑스 식민양식의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넓게 펼쳐진 콘크리트 광장과 낮게 내려앉은 호치민 묘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갖는 의미는 베트남의 독립 선언이 호치민에 의해 읽힌 장소, 그리고 그의 사후에 영원히 그를 기리는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 두가지가 가장 크다.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의 항복이후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독립 선언을 했다. 왜 일본이 항복을 한 뒤 독립선언을 했을까? 19세기 프랑스의 침략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갖은 착취를 당하던 베트남은 2차대전 중 일본의 재침략을 받고, 베트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프랑스는 무장해제 후 패주, 그리고 1940년 베트남의 새로운 식민국으로 일본이 들어서게 된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5년이나 더 받은 후 일본의 항복 뒤 베트남은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호치민이 독립 선언서를 읽은 장소가 이곳 바딘 광장이다.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들 매우 존경한다. 남베트남 정부의 무능과 부패등에 대비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저항운동에서부터 시작해 일본 식민 시절에 대한 저항 운동, 그리고 이후 프랑스 및 미국 침략세력에 대한 저항까지, 그의 한 평생 청렴한 생활과 나라를 위해 저항하며 살아온 인생 자체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의 묘역을 공개하고 참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며, 이 시간에는 참배하기 위한 사람의 줄이 상당히 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호치민을 기리기 위해 묘역 뿐 아니라 호치민 박물관이 Ba Dinh Square 서남측에 자리해 있다. 호치민이 펼쳤던 베트남 독립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70년대 이후 베트남의 통일 이후의 활동상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호치민의 활동 상황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어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며, 대부분 베트남어 및 영어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바딘광장의 동편으로는 19세기 하노이로의 수도 이전과 함께 생겨난 Thang Long 황성 유적이 남아있다.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황성 유적은 과거의 건물들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으며, 그곳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프랑스 식민지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Ba Dinh Square는 식민 지배의 잔재들 사이에 낮게 자리잡은 광장과 호치민 묘역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공간 이다. 공산당의 나라, 베트콩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물론 존재하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베트남을 바라보는 시간을 이곳에서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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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손의 필름생활 엿보기

나는 똥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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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저지르는 어이없는 실수에 페친들은 이제 덤덤해하는듯. 가깝게는 지난달 현상액 대신 맹물을 넣는 바람에 두 롤을 통째로 날려먹은 사건부터 필름이 든 채로 카메라 하판을 오픈한다거나, 다 찍은 필름을 현상릴에 전부 감기도 전에 암백을 해맑게 열어버리는 등 필름을 시작한 후 크고작은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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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맹물현상 + (오) 하판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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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얼핏 망할놈의 똥손남에게 다소 벅차보였던 ‘필름으로 찍고 직접 현상, 스캔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럭저럭 잘 해온 것 같다. 디카로 입문 후 필름으로 역주행하기까지 수많은 선택과 고민, 주변의 도움과 더불어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이에 즈음하여 한때의 나처럼 필름으로 ‘즐기는’ 사진에 대해 궁금하지만 두려움 혹은 걱정이 앞서는 분을 위하여 비록 ‘정석’은 아닐지 몰라도 ‘즐기기’에는 적당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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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앞서 디카와 달리 필름으로 하는 사진생활은 왠지 돈, 시간, 노력 같은 것들이 많이 들 것 같다. 실제로도 필름전성시절에 비하면 필름값이 많이 올랐으며 한때 스타벅스만큼 흔하던 동네현상소들마저 거진 사라져버렸으니 불편하기도 하다.

흑백필름을 주로 쓰는 입장에서 현상소 문제는 직접 현상하면 되니 큰 장애가 아니라지만 비용 문제는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봤다. 디지털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가 필요한 필름카메라와 스캐너 구입 비용은 별도로 하고 소모품 위주로 계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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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물품>
① 필름: ilford hp5+ 100 feet roll film – 65불
② 현상액: kodak d-76 – 7불
③ 정착액: kodak fixer – 13불
④ 수세촉진제: kodak hypo – 7불
   * 가격: ‘18년 5월, B&H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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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피트 벌크필름을 필름로더로 감으면 36방짜리 20롤을 만들 수 있다. 20롤에 7만원이니 국내 유통되는 흑백필름의 반값인 롤당 3500원으로 해피 프라이스!

현상액, 정책액, 수세촉진제 역시 파우더 타입의 제품은 한 봉지당 1 갤런(3.8리터)의 솔루션을 만들 수 있으며, 이 역시 직구하면 국내 유통가의 절반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연간 소요비용 산출에 있어 편의상 일주일에 1롤 소비를 전제하였고, 필름과 현상액은 1회 사용, 정착액과 수세촉진제는 3회 재사용으로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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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1롤이면 자가현상을 기준으로 연간 218,605원으로 나온다. 주당 4,200원 꼴이니 아메리카노 1잔값인셈. 누군가에게는 이 금액조차 클수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을수도 있으니 금액의 크고작음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며, 이제 본격적으로 벌크필름으로부터 필름을 준비하고 촬영된 필름을 현상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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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름 준비하기

필름로더에 벌크필름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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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들지 않는 암실에서 오로지 손감촉에 의지하는 작업이라 밝은 데서 여분의 필름스트립을 가지고 사전 연습이 필요하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로더 배출구로 필름을 끼울 때 아래와 같이 삼각뿔 모양으로 자르면(물론 암실에서) 그닥 어렵지 않게 필름 끝단부를 밖으로 빼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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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로더, 100피트 롤필름, 가위, 암실(이를 테면 야밤에 창문 없는 화장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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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방법>
① 필름로더 뚜껑을 미리 열어두고 손이 닿는 위치에 가위를 준비함
② 화장실 불을 끄고 완전히 빛이 차단된 암실상태에서 100피트 롤필름 상자뚜껑을 열면 손바닥 크기의 롤필름이 검은 비닐봉지로 포장되어 있음
③ 봉지에서 필름을 꺼낸 후 점착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는 필름 끝단부를 찾아 떼어냄
④ 필름 끝단부를 찾아 준비된 가위를 이용해서 (대충) 삼각형 모양으로 커팅
⑤ 필름로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필름 끝단부를 빼낸 후 톱니바퀴에 걸리는게 확인되면 필름 전체를 필름로더 축에 끼운 뒤 뚜껑을 닫음
  * 유튜브 참고영상 – How To: Bulk Load Film by Tim Heu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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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로더를 이용한 감은필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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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로더, 끝단부가 조금 남아있는 빈 필름통, 가위, 스카치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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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방법>
① 빈 필름통 끝단부에 스카치테이프를 절반가량 접착되도록 붙임
② 방향에 유의하여 필름로더에 혀처럼 빠져나와 있는 필름과 연결 (필름의 툭 튀어나온 꼭지부분이 오른쪽으로 향하게)
③ 필름을 되감아 빈필름통을 필름로더에 밀착시킴
④ 뚜껑을 덮고 필름카운터를 ‘▲’에 맞게 다이얼을 조정한 후 ‘크랭크’를 끼움
⑤ 크랭크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필름 카운터가 돌아감과 동시에 필름이 감기기 시작함
⑥ 시중에 파는 필름과 유사한 길이를 말아넣기 위해서는 필름카운터를 ‘▲+1’에 위치할 때까지 크랭크를 돌림
⑦ 다 감았으면 크랭크를 빼고 뚜껑을 열어 적당한 길이로 빼낸 후 필름을 자름
⑧ 카메라 로딩이 쉽도록 끝단부를 곡선 모양으로 잘라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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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촬영이 끝난 필름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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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릴에 끼우려면 필름 혀가 나와있어야 한다. 그러니 한 롤 촬영이 끝나면 리와인딩을 끝까지 하지말고, 충분히 감았다싶으면 천천히 돌리면서 딸깍하고 풀리는 소리와 느낌(?)을 기다린다. 이 때 반바퀴 정도만 더 돌린 후 필름을 빼면 적당히 혀가 나온 상태로 필름을 뺄 수 있다. (라이카 M6 리와인딩 놉의 경우 32번 가량 회전하면 풀림)
그래도 필름이 들어가버렸다면 ‘Film Picker’라는 도구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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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피커, 혀가 말려들어가버린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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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방법>
① 필름통 입구에 필름피커의 ‘1번’ 부분을 끼움
② 필름피커와 필름통을 잡은채로 ‘2번’ 버튼을 필름으로 밀어넣기
③ 이어서 필름피커와 필름을 잘 고정한 채로 반시계방향으로 필름을 감으면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는 지점이 발생함
④ ‘딸깍’소리가 들리면 감는 것을 중지하고 ‘3번’ 버튼을 필름으로 밀어넣기. 이때 필름이 밀려 돌아가지 않도록 꼭지까지잘 붙잡아 고정시켜야 함
⑤ 마지막으로 필름을 빼기 위해 필름피커를 필름통으로부터 당겨 빼면 필름 끝단부가 ‘메롱’하듯 튀어나옴. 이때는 반대로 필름이 내부에서 잘 돌아 빠지기 쉽도록 필름꼭지를 고정시키지 말아야 함

* 유튜브 참고영상 – How to retrieve the film leader from a 35mm cassette using a film picker by Jack the Hat Phot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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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 찍은 필름, 현상 릴에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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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성들여 찍은 필름을 현상해 볼 차례다.
현상을 위해서는 다 쓴 필름을 릴(Reel)이라는 장치에 두루마리 휴지 말듯 감아넣어야 하는데, 자가현상을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되고 까다로워보였던 작업이기도 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여러 번 숙지한 후 암백에서 첫 릴을 감았고 입구만 잘 찾아끼워넣으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자. 개인적으로 초기에는 암백을 이용했으나 좁고 답답한 관계로 화장실에서의 작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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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암백 혹은 암실, 다찍은 필름, 현상릴(Reel), 현상탱크,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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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는방법>
① (옵션) 현상 릴(Reel)에 잘 감기도록 필름 끝단부 양 귀퉁이 커팅해서 준비해 둠
② 현상을 앞 둔 필름은 100% 차광된 공간에서 릴에 감아야 하므로 암백을 이용하고, 암백이 없는 경우 완전히 해가 진 후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불 끄고해도 좋음
③ 암백에 필름, 가위, 현상탱크, 현상릴을 넣고 손끝 감각에 의존하여 플라스틱 릴에 감은 후 가위로 커팅
④ 릴에 모두 감았다면 현상탱크에 릴을 넣고 뚜껑을 확실하게 닫아 차광한 후 암백에서 빼냄
* 유튜브 참고영상 – Loading 35mm Onto Patterson Reel by Nam Tran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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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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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노광된 필름을 적절한 약품처리를 통해 이미지를 나타내는 과정이다. 크게 “현상-정착-수세”의 과정을 거치는데, 라면 끓이는 것보단 좀 더 복잡하지만 어쨋든 요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냄비-현상탱크에 재료-필름을 넣고 물과 양념-현상약품-을 레시피에 따라 요리해주면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참고로 라면 따라 레시피가 다르듯 필름 따라 현상시간이 다른데, 구글에 ‘(필름이름) Datasheet’로 검색하면 제조사에서 공개한 표준 현상데이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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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6 35mm 400/27 기준으로 제조사별 주요 필름의 현상시간은 아래와 같다.

– Ilford : HP5+ 400 11분, Delta 100 9.5분, Delta 400 14분, FP4 125 9분, PanF 50 6분
– Kodak : 400tx 9.75분, Tmax 100 9.5분, Tmax 400 12.5분
– Fujifilm : Across 100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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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 현상탱크, 현상릴(플라스틱 릴 추천), 필름피커, 암백, 가위, 온도계, 비어커, 필름클립, 타이머 혹은 현상어플(iOS의 경우 무료앱인 “Develop!” 추천)
– 현상액, 정지액, 정착액, 수세촉진제, 포토플로(수적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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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방법>  * Ilford HP5+기준

a. 전습(Pre-wetting), 물 20도 내외, 1분간 실시
– 전습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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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현상(Develop), D76 working solution 300ml : 물 300ml, 현상액 온도 20도, 11분간 실시
– 현상액 투입 후 60초간 연속교반
– 30초마다 5초 교반
– 마지막 10초 전부터 버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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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정지(Stop-bath) Kodak Indicator Stop bath, 스탑배스 9.6ml : 물 590.4ml, 20도 내외, 1분간 실시
– 정지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실시
– 노란색의 용액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할때까지 재활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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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정착 (Fix), 파우더 타입으로 만들어 둔 Kodak Fixer 600ml (working soltuion 600ml), 20도 내외, 10분간 실시
– 현상방법과 동일하게 교반
– 최초 1분간 연속교반 후 매 30초마다 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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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수세 (Washing) , 파우더 타입으로 만들어 둔 Kodak Hypo Clearing Agent를 물과 1 : 4비율로 희석 (stock solution 120ml : 물 480ml)
– 흐르는 물에 30초 수세 (수시로 교반 및 물교체)
– 수세촉진제에 2분 연속 교반
– 흐르는 물에 5분 이상 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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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포토플로 (Photo Flo), 1 : 200 비율(3ml : 600ml), 1분 담그기
– 포토플로에 1분간 담그면 됨. 거품 생기므로 교반금지
– 필름클립에 끼운 후 그늘진 곳 매달아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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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자잘하게 준비할 것도 많고 절차도 복잡해보이지만, 약품 섞는 ‘비율’과 ‘온도’ 그리고 ‘시간’만 잘 지키면 별 문제 없이 현상이 잘 되어나온다.

제시된 수치들은 한 치의 오차 정도는 가볍게 허용해주므로 너무 강박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으니 안 그래도 머리아픈 세상 이런걸로 스트레스 받지는 마시라. 다만 현상과정의 화학반응은 온도에 민감하므로 현상액 온도만은 최대한 20도±0.5로 맞추어 작업하자.

 * 유튜브 참고영상 – Developing B&W film by Mat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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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상 이후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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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된 필름은 6컷씩 잘라 “니콘 쿨스캔 4ED”로 스캔한다. 최대 해상도 TIFF포맷으로 스캔하며, 1컷에 2분정도 소요되므로 1롤 38컷을 다하면 통상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스캔이 끝난 6컷짜리 필름스트립은 “HAMA Negative Sleeves”에 끼워 바인더 형태로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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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파일은 ‘촬영날짜_촬영장소_필름명”의 형태로 작명된 폴더에 저장한 후 포토샵 힐링브러시와 도장툴을 이용해 스캔이미지의 결함(먼지, 스크래치 등)을 제거해준다. 이로서 필름의 ‘디지털 원본’을 확보하게 되며, 원본파일들은 라이트룸으로 Import 후 트리밍과 후작업, 리사이징(900~1200px)을 통해 블로그나 SNS용 사진을 별도로 Export하여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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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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经开区(jīngkāiqū)! 알아듣는 택시기사가 신기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김없이 데려다 준다. 낡은 것들이 쓸려나가고 매일 아침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이곳을 사람들은 ‘경제개발구’라고 부른다. 길 건너 우람한 정원이 드리워진 화려한 아파트촌이 펼쳐지고 그곳에 황금성이 있었다. 작년엔 없던 건물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기웃거려 보지만 황금성은 거대한 담벼락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한 동안 기웃거렸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다.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는 길 잃은 실레노스를 후대하였다.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를 길렀다고 알려져 있는 그의 스승이다. 디오니소스는 스승을 잘 돌봐 준 미다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제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황금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디오니소스는 의아했지만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이제 미다스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이 되었다. 손이 닿자마자 황금으로 변하는 것은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통에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야 자신의 소원이 부질없음을 알고 철회해 줄 것을 신에게 간청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신은 파크톨로스 강에 몸을 씻으라 명했다. 미다스 왕은 신의 뜻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에 몸을 씻은 후에야 원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부터 파크톨로스 강은 사금이 넘쳐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전한 이야기다.

길 건너 고치 구이 판을 앞에 두고 난장에 앉았다. 넘어가는 해가 걸린 황금성이 붉게 물들어간다. 부귀, 영화, 권력, 탐욕…너는 어느 것의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