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여느 벌초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안 친다.”

이 속담을 아버지를 통해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음력 8월 15일 추석 성묘 전에 벌초를 하는 우리나라 미풍양속에 관한 속담이라고 합니다. 이 날은 9월 3일 일요일. 음력 7월 14일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8월 전 벌초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근 5년 만에 오는 벌초인 듯 한데, 아버지와 삼촌들은 매년 저 속담을 지키러 이맘때 오셨다고 하네요.

충북 음성에 모셔진 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에 왔습니다. 전남 벌교가 본거지이지만, 전국 각지에 흩어진 9형제의 방문이 용이하도록 충북 음성에 장지를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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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온 길인데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벌초가위로 길을 내면서 올라가야했습니다. 큰아버지가 맨 앞에서 길을 내고 전 얌체같이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죄송한 마음에 얼른 앞장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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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오르는 길은, 가을 문턱이지만 한여름 더위를 연상케하는 뙤약볕 아래의 온통 초록색 풀들이었는데,  그 속에 눈에 띄는 짙은 보라색 열매를 품은 식물들을 여러번 발견합니다. 예쁜 색깔대비 피사체에 흑백 필름 카메라를 들이대는 저를 보고, 함께 오신 숙모가 이르기를 “자리공”이라는 외래종 식물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찾아보니, 잡초이자 독초이며, 뿌리는 인삼 도라지와 비슷하여 종종 중독사고가 일어난다고 하는군요. 기후온난화로 인해 자생 식물 터전에 아열대성 외래종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자리공은 토양 산성화의 주범이라는 잘못된 비난에 시달리며 한 때 박멸 대상이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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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산소에 도착했습니다. 묘지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려버린 무성한 잡초들이 지저분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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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1차 벌초를 마치고,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한 컷. 왼쪽에 계신 분이 큰아버지, 오른쪽에 계신 분이 저의 아버지입니다. 오랜 만에 뵈니 많이 늙으셨습니다. 가운데 뒤에 서계신 분이 넷째 삼촌, 왼쪽 양산의 부인은 여섯째 숙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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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제거되고나니 제법 깔끔해졌습니다. 할아버지가 간만에 시원하게 이발하셨다고 큰아버지가 좋아하시는군요. 중간중간 사진 찍으면서 그래도 제일 젊은 제가 가장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양쪽 팔 움직임이 정상이 아닐 정도입니다.

게다가 콘탁스의 뷰파인더를 보는 일, 그것도 초보자로서 두개를 왔다갔다 보며 땀에 범벅이 된 얼굴을 갖다대는게 여간 곤욕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포스팅하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이번 출사는 그저 “다시는 벌초 때 카메라 들고 오지 말것” 이라는 교훈만 남겼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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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는 9형제를 낳으셨습니다. 고모도 두 분이 계시구요. 살아 생전에도 금실이 좋으셨고, 지금도 이렇게 한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저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는 듯한데, 아직도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그 비스무레한 얘기만 나오면, 살짝 회피하는 기색을 보입니다. 저에게 할아버지는 엄하고, 바둑 잘 두시고, 검소하시며, 20여명의 손주를 품에 안으시고 이뻐하시는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담으로 차례상이 조용할 순간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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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다 소진된 후에는 리코 GR 디지털로 몇장 더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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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마지막 필름 사진과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인데, 21mm 와 28mm 화각의 차이만큼 딱 느껴집니다.

 

 

차례 지낸 후, 2차 벌초를 마치고나니, 묘 주변이 더욱 깔끔해졌습니다.

가을 문턱에서 이뤄진, 가족들과의 산행, 아버지의 아버지에 관한 추억담, 그리고 뙤약볕 아래 벌초라는 중노동까지… 다분이 관행적인 일상이지만, 오래오래 남기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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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는 일정이었던 것이…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서울로 바삐 올라가는 차에서 번개처럼 내리치는 공포감 엄습!!

리코 GR 을 놓고왔다는 깨달음이 번뜩!!!

출발한 지 한시간 쯤 지난 거리의 덕평휴게소에서, 차 안을 샅샅이 뒤져도 나오질 않습니다 ㅠㅠ

저 때문에 모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서, 한시간 남은 서울까지 모두 모셔다 드리고 저 혼자 다시 산소에 갈 요량이었으나, 큰아버지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휴게소에 기다릴테니 다녀오라고 하십니다. 결국 아버지와 저만 다시 음성으로 출발했는데….

출발 하자마자 넷째 삼촌에게 전화가 옵니다.

 

“내 가방에 무슨 사진기 같은 것이 들어있다”

 

 후~  기억은 안나지만, 제가 묘를 정리하면서 무심코, 삼촌의 에코백에 카메라를 넣어둔 모양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출발하여 다시 같은 휴게소까지 오는데 20분이 넘게 걸렸고, 불필요한 톨비까지도 지출해야했지만,  그래도 최근들어 가장 행복한 운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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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의 해프닝을 끝내고, 세 분의 기념촬영.

왼쪽의 선글라스 착용하신 분이 범인?입니다. 자신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고 자수하는 장면입니다 😀 그 와중에 우리 아버지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차렷 자세를 취하시는 습관을 고이 간직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들과의 정이 한층 더 두터워진 벌초 여정이었습니다.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Ilford Delta 100

Ricoh GR II

2017.09.03 충북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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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일기

 

작년 12월 말 어느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출근과 등교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아이가 갑자기 등이 간지럽다 그런다.

긁어주려고 등짝을 갔는데 여기저기 붉은 반점이 올라와 있다.

급히 학교랑 회사에 연락하고선 병원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두 진단을 받았다. (후에 들어보니 같은 반에서만 수두 7명 발병)

그날로 휴가가 자유롭지 못한 아내를 대신해 내가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는 천벌 받은거라고 ㅎ) 이번 주는 일주일짜리 동계휴가를 내어놓았던 터라 나름 맘 편히 아이 밥이며 약을 챙기며 소소하게 놀아줄 수 있었다.

그렇게 수두 진단받고 8일째 되던 날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모두 소진하고 증상도 없어졌다.

 녀석 태어나고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후로도 없을 것 같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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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아가~ 가려워도 좀만 참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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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아픈 네 덕분에 가족이 하루 종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구나.

이런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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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물집들에 하나 둘 딱지가 생기면서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씩씩하게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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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호평 받은 아빠표 프렌치토스트.  에헴

오랜 침묵끝에 조커 2개에 힘입어 엄빠를 제치고 달성한 루미큐브 승리와

오늘도 빵빵터지는 나홀로 집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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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좁은 집안에서 초2 개구쟁이는 몸살 날 법한데도 잘 버텨주는구나.

오늘도 역시 밥 잘 먹고 약도 잘 먹어서 다행. 이젠 조커 하나 없이 루미큐브 2연승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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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6

낮에 잠시 스캔 엑스건 한판한 후 코난 극장판 “순흑의 악몽”은 아빠가 더 재밌게 봤다.

저녁엔 과일전지랑 밀가루 마술로 하루 정리.

3일 전부터 새로운 발진은 더이상 없고, 처음 생겼던 물집들에도 딱지가 얌전히 앉았다.

항생제는 하루 반 어치만 더 먹으면 끝.

좀만 더 힘내자.

아니 그리고 엄빠 상대로 루미큐브 3일 연승이라니..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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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7

주어진 항생제와 연고도 이제 곧 소진되고,

아들이랑 단 둘이 살 부비며 속닥속닥 보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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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8

처방된 약 투여가 모두 끝났다.

그리고 아빠의 겨울 휴가도 끝이 났다.

그렇지만 父子는 더욱 有親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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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렀던 Ricoh GR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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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 GR1s

필름의 전성기이던 1990년대말~2000년대 초에 걸쳐 여러 카메라 제조사에서는 끝판왕급 P&S 카메라들을 시장에 선보였다. 뛰어난 성능의 단렌즈와 촬영 의도에 부합하는 다양한 수동 설정이 가능하여 프로들의 서브 카메라로 혹은 항시 휴대할 수 있는 메인 카메라로도 부족함이 없었던 이들의 등장은 분명 이전 세대의 컴팩트 카메라들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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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에서 내놓은 GR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개성이 강한 카메라였다. 작은 크기와 고성능의 렌즈라는 측면에서 여타 브랜드의 그것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손에 쥐어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물리적인 크기와는 별개로 손에 딱 맞는 그립감과 조작의 편이성은 단순하게 작기만 한 다른 카메라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GR만의 매력이다.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진 몸체는 무광 검정에 까슬한 질감이 살아있어 곱게 모시고 다녀야할 것 같은 Contax T3나 Leica Minilux에 비해 보다 터프하게 다뤄도 될 것 같아 심리적으로 부담이 덜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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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시리즈는 스냅에 특화된 카메라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작고 가벼워 늘상 가지고 다닐 수 있어 보다 많은 셔터 찬스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험상 작다는 것은 가지고 다니기에만 편할 뿐 그것만으로 꼭 스냅에 유리한 것과 직결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빠른 가동 시간과 AF속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필수 요소는 초점과 조리개를 수동으로 간편하게 설정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거리에서 빠른 포착을 위해서는 그 어떤 AF방식보다 피사계심도를 이용한 과초점 방식이 가장 유리하지 않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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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GR1s는 스냅에 가장 적합한 P&S라 할 수 있다. 모드 버튼을 두번 누르면 AF모드는 곧바로 SNAP모드로 진입한다. 2미터 고정이다. 28미리의 깊은 심도를 고려하면 8~11이상으로 조리개를 조이면 사실상 거의 전 영역에 초점이 맞으니 ISO400 필름을 넣고 스냅모드에 조리개 11로 설정한 GR1s를 한 손에 쥐고 어슬렁거리면 더이상 신경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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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모드 뿐 아니라 수동으로 거리를 세팅할 수 있는데 AF모드를 스팟으로 놓고 원하는 위치에 반셔터를 눌러 초점을 고정시킨 후 모드 버튼을 길게 누르면 해당 거리에서 초점이 고정된다. 이때 부터는 셔터 버튼에서 손을 떼어도 초점 설정이 유지된다. 개인적으로 길거리나 골목에서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장면(자전거가 지나간다거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셔터 찬스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AF-LOCK을 유지하기 위해 반셔터를 계속 누르고 있는 것은 꽤나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는데 GR1s의 초점 고정 모드는 이러한 귀찮음을 해소시켜준다. GR시리즈가 스냅에 특화되어 있다는 얘기는 괜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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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렌즈 성능은 어떨까. GR1s에 탑재된 4군 7매의 28미리 렌즈는 성능이 좋기로 유명했다. 비구면 렌즈까지 넣어준 리코의 성의가 고맙다. 성능의 판단을 해보자면 같은 28미리를 선택한 미놀타 TC-1과의 견주어보거나 RF카메라를 위해 발매된 28미리 교환 렌즈들과도 비교를 해봐야 좋겠지만 왕성한 호기심과는 별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엔 나의 귀차니즘이 너무 강했다. 이쯤이면 언제나 면죄부 처럼 하는 말 ‘그게 뭐 의미가 있나. 사진을 잘 찍어야지!‘로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곤 하지만 어쨌든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성능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샤프니스나 콘트라스트, 어디에서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케케묵은 올드 렌즈만 주로 쓰다보니 이 정도만 나와도 놀라울 지경이다. 리코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GR의 렌즈를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별도로 제작하여 한정 발매했고 여전히 높은 중고가를 자랑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성능에 대한 평가를 갈음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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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발매된 GR28mm f2.8 / 블랙 색상도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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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듯 GR1s에도 단점은 분명 존재한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액정 번짐 현상. 촬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발매 후 20년이 지나면서 점차 멀쩡한 녀석이 드물어지고 있다.
두번째는 느리고 곧잘 버벅이는 AF. T3나 TC-1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느껴진다. (스냅 포커스 모드로 극복!)
세번째는 어둡고 좁고 흐린 뷰파인더. 파인더 내부의 각종 정보 표시의 밝기와 컨트라스트가 낮아 시인성이 높지 않고 뷰파인더 역시 시원스럽지 못하다. 컴팩트함을 얻기 위해 파인더의 크기도 작은 대부분의 P&S들 역시 마찬가지긴 하다.
네번째로는 수동 감도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Contax T3 역시 마찬가지긴 하지만 감아쓰는 필름을 넣거나 증감 촬영을 하고자 할 때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이 점은 GR1v가 출시되며 개선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낮은 내구성. 이는 모든 P&S들의 숙명이다. 외장 케이스는 마그네슘이든 티타늄이든 견고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지만 내부를 보면 어느 기종을 막론하고 프라스틱 부품들이 빼곡히 차있으며 좁은 케이스 안에 각종 기어와 전선, 기판들을 구겨넣느라 애초에 충격에도 강한 튼튼한 구조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렌즈가 들고 나는 베리어 부분은 이같은 기종들의 최대 취약점 중 하나로 렌즈가 나와있는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면 그 길로 사망 판정을 받을 수도 있어 무척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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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후 한동안 신나게 잘 사용하던 나의 GR1s도 어느 날 갑작스레 셔터를 눌러도 렌즈셔터가 열리지 않는 고장이 나버렸다. GR1s의 일반적인 고장 현상인 액정 번짐이나 베리어 문제도 아니라 더욱 난감했다. 최악의 경우는 기판이 나갔다며 폐기 판정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그 길로 GR1s는 제습함에 쳐박혔고 다른 카메라들을 쓰느라 한동안 잊고 지냈다. 물론 GR1s로 찍어둔 얼마 안되는 사진들을 볼 때면 다시 생각나긴 했지만 기계식 카메라들 오버홀하는데도 적잖은 돈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라 GR1s의 수리는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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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포항지부에 유일하게 필름을 사용하지 않던 멤버 한 분이 드디어 필름을 사용해보겠노라 결정하셨다. 한번에 라이카로 가기엔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필름 생활에 확신이 없으셨던 차에 GR1s같은 고성능 똑딱이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더군다나 디지털인 GR2를 사용 중이시니 적응에 더욱 유리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수리가 되면 구입하고 싶다는 그 분을 핑계 삼아 쳐박혀 있던 GR1s는 충무로 삼성사로 떠났다. 2주 후 돌아온 녀석은 다시 쌩쌩하게 작동되고 있었고 그렇게 새 주인의 품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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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Contax T3도 내 품을 떠났고 올림푸스 뮤2는 전투형으로 군대에서 굴린 후 고장나버렸고 Ricoh GR1s 역시 한 차례 고장 후 내 품을 떠났다. 이제 내게 똑딱이는 남아있지 않다. 작은 크기로만 치자면 ROLLEI 35SE 정도만이 남은 셈. 사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면 회사를 가든, 장을 보러 가든, 산책을 가든, 언제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가 간절해 진다. 크기는 작아도 렌즈의 화질과 카메라의 성능은 메인 카메라 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누구나 들게 마련. 그럴 때 마다 T-3나 TC-1, Minilux 같은 카메라들이 다시금 생각나겠지만 역시 내 촬영 용도에 가장 맞는 녀석은 GR시리즈인 것 같다. 곁에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녀석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역시 좋은 카메라였단 생각이 든다.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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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 GR1s – Spec

Lens: GR Lens 28mm f/2.8 (7 elements, 4 groups) multi-coating aspherical glass lenses.

Focusing: Passive type multi-autofocus (with focus lock, automatic auxiliary AF light under low lighting, distance measuring range: 0.35m – infinity, Single AF mode, Fixed focus mode.

Shutter Speeds: Programed mode Approx 2 to 1/500 second.

Aperture Priority Mode: Approx. 2 to 1/250 second, 1/500 (at f/16), Time Mode.

Viewfinder: Reverse Galilean type with LCD bright frame, in-finder illumination under low lighting.

Viewfinder Field: Vertically: 81%, Horizontally: 83%

Viewfinder magnification: 0.43

Exposure Compensation: +/- 2EV (1/2EV Steps)

Film Speeds: ISO25 to ISO3200 (DX) ISO 100 for non-DX.

Flash Guide: 7 (ISO 100)

Flash Charge: Approx 5 Seconds

Battery Life: Approx 500 shots (50% f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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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블루스

 

가끔씩 한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바다가 그리운 순간이 다가온다.

섬에서 동백꽃이 필 때 쯤엔 더욱 그렇다.

막 피어오른 새빨간 동백꽃에는 비릿한 첫사랑의 냄새가 스며있고,

가지에서 떨어져 발에 밟히는 꽃에는 실체의 고통으로 밖에 치유할 수 없는 허무함이

짓이겨 있다.

그렇게 한참을 포구와 마주하고 있자면,

어느새 허무와 자해의 욕망을 초월하고 바다에 떠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가학의 계절 앞에서 무방비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찾아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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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Leica MP (Film), Leica M-Monochrom (CCD), Ricoh GR

Lens : Ricoh GR Lens 28mm F2.8 (M39)

Film : Kentmere400

<끝>

 

 

봄날의 통영, 연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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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누가 뭐라고 해도 봄이 좋다.

한 번이라도 남도의 봄기운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통영은 봄이면 찾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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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을 지내오는 동안 잔뜩 움츠리고 있던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 생명력이 느껴지는 봄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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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첫 관문은 뭐니 뭐니 해도 충무김밥이다.

통영에 갈 때면 늘 가는 집이 있었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게 이 가게로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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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과 TV 출연 자료들.

빛바랜 사진만큼 세월을 견뎌온 내공이 있을까?

아련하다. 가끔씩 떠오를 때면 한 번씩 펼쳐보는 사진이 아닌 늘 눈앞에 놓여있는 화사했던 과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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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특미는 무김치와 오징어 어묵 무침 외에도 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당연히 “굴 주세요”

살짝 익힌 굴에 직접 만드셨다는 굴 소스를 비밀리에 바르고 계시는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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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운영해 왔고, 지금은 본인이 개발한 굴 충무김밥을 내놓으셨다는 사장님.

충무김밥집의 원조를 놓고 말이 많지만 처음 시작하셨다는 분들이 거의 돌아가신 지금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르면 그만이다.

서글서글한 사장님의 인상에서 다음에 통영을 찾아도 다시 찾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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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을 충무김밥집에서 먹는다면 당신은 아마추어.

김밥집을 나서는 순간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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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동광식당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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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 쑥국과 볼락 매운탕이 충무김밥과 완벽하게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통영의 1차 관문을 제대로 통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업이 좋지 않은 관계로 멸치회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웠지만 이대로도 충분했다.

오전 내내 뱃일을 하고 왔다는 선장 한 분이 이미 술이 취한 채로 들어오셔서는 또다시 소주를 들이키며 연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응 그렇지요. 이 집 도다리 쑥국이 정말 맛있는기라. 암. 소주도 맛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건네는 외로움의 하소연이었고, 또한 자신에게 바다에의 삶을 다짐하는 인내의 표식이었다.

외로운 바다와 남자. 고독한 고독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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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의 여독은 지역 막걸리로 푸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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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지방의 어시장들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통영 중앙시장의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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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거칠지도 않고,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거절 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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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바라본 통영항과 서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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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르지만 내심 욕심이 났던 28 Lounge.

어이, 거기. 다음에 온다면 그쪽 옥탑을 전세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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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저녁이 오고 있다.

지금 이 포만감으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곳에 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서 허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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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부둣가의 풍경들이 정감이 간다.

불쑥 들어가서 기본 메뉴를 시켜 놓고는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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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 쪽에서 바라본 중앙시장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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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가기 위해 일부러 걸어온 해저터널.

왕복해서 돌아오면 얼추 예약 시간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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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축복의 시간이 찾아왔다.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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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허기진 채로 그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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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내어온 안주로도 미션은 가능해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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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바닷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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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전하신 백사장님~

방송에 나오셔서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너그들 딱 생각난다” 하신다.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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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에는 털게라며 해체 시범을 보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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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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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다시 오기로 하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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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연대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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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Ricoh GR

<다음에 계속…>

쉽게 얻은 사진

더 쉽고 가까워진 사진 예술

이른 바 ‘예술’이라는 불리는 것들 중에서 사진 만큼 진입 장벽이 낮은 분야가 또 있을까.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촬영을 위한 거대한 카메라와 현상, 인화의 까다로움으로 소수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특수한 기술이었지만 코닥 필름의 출시와 라이카를 비롯한 소형 카메라의 대중화는 보다 편리하고 신속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의 변화를 뒤엎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던 디지털 카메라의 쓰나미가 밀려오면서 사진의 대중화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올리고 공유하며 즐거워한다.

이런 디지털 시대의 사진 생활에서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면 이제는 누구나 내가 찍은 사진을 쉽게 편집하고 보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과거에는 사진을 찍고 나면 필름을 빼서 동네 사진관에 가져다주고 ‘사람수 대로 뽑아주세요.’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같은 필름도 사진관에 따라 사진의 색감과 노출이 다르게 뽑혀 나오기도 했지만 거기에 대해 불만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보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사진을 다루기 위해서는 암실에서의 현상/인화 테크닉을 어렵게 배워야했고 숙달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포토샵, 라이트룸 같은 전문 보정프로그램이 등장한 후에도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해야했으며 능숙하게 다루는 일은 암실 테크닉 못지 않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Snapseed나 VSCO같은 어플리케이션을 핸드폰에 설치하기만 해도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사진을 보정할 수 있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전 필터 효과 몇개만 이리저리 적용해보아도 훨씬 분위기 있고 멋진 사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어렵게 익힌 테크닉들이 터치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허무하기까지 할 지경이다.

쉽게 얻은 사진

가끔 RAW 포맷으로 찍은 사진을 라이트룸에서 보정하지 않고 카메라에 내장된 현상 프로그램을 통해 JPG로 변환하기도 한다. 애초에 RAW로 찍을 필요가 없었던 간단히 SNS에 올리거나 자료로서 써먹을 사진들의 경우다. 그런데 때론 라이트룸에 옮기기까지 기다리기가 귀찮고 빨리 결과물을 모니터로 보고 싶어서 카메라 내장 프로그램으로 현상해보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일단 대충 먼저 보자는 취지로..) 이게 간혹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r0012018[2016.06.06. 포항 죽도시장 / Ricoh GR]

이 사진이 그런 경우로 Ricoh GR로 찍은 컷을 간단히 카메라의 포지티브 모드로 설정하여 JPG로 뽑아낸 컷이다. 포지티브 모드는 채도와 콘트라스트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세팅이 되어 있는데 보통의 경우 그 효과가 다소 과하여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는데 유독 이 컷에는 꽤 어울려 라이트룸에서 다시 손 볼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라이트룸에서 보정했다면 내 기준으로는 다소 과한 채도와 콘트라스트의 이런 느낌이 나오지 않았을테다.)

버튼 몇번 꾹꾹 눌러줘서 만든 이미지치곤 꽤나 쨍하고 임팩트 있는 느낌이 맘에 들어 그 상태 그대로 ‘성의없이’ 모 사진 커뮤니티에 포스팅 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그 날 바로 베스트갤러리에 올라 버렸다. 너무나 쉽게 만들어낸 사진이라 그런지 별 애착도 없던 컷이 뜨거운 반응을 받으니 ‘응? 이게?’ 하며 살짝 당황했던 것도 사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사진은 결과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맞거늘 나는 언제나 그 과정과 수단에도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던 것은 아닌가. 아무리 좋은 사진을 봐도 그것이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면 ‘에이 저렇게 좋은 컷을 찍을거면 카메라로 찍지.’ 라며 혀를 찼고 디지털 카메라로 좋은 사진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아 저 사람 필름으로 찍으면 더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최신 DSLR과 AF렌즈를 사용해 찍은 다이내믹하면서 칼 같이 초점이 맞은 사진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구닥다리 라이카를 이용해 찍은 결정적 순간에는 더 후한 점수를 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같은 프린트물이라도 작가가 FB인화지에 직접 수동 인화했다고 하면 ‘아 그래요?’ 하면서 그제서야 다시 눈을 가까이 들이대고 작품을 살폈으니…

모든 기술은 보다 편리하게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칭송하고 편리함을 평가절하 하는 이 못된 심보는 아날로그부터 사진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꼰대스런 심리때문인지, 아니면 프로와 달리 작업의 신속성이 중요하지 않고 대량의 이미지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 사진가로서 즐길 수 있는 재미가 불편함 속에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너무 쉬우면 재미는 없지 않냔 말이지.

쉬워도 탈인가…

저 방어 사진은 그 사진 커뮤니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스트 갤러리에 남아 남들에게 보여지며 꾸준히 추천수가 한두개씩 더 늘어나겠지만, 너무 쉽게 얻어낸 사진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론 크게 의미를 두거나 애착이 가지 않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아무도 카메라 내장 프로그램으로 보정한 줄 모르고 안다고 한들 사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참 희한한 심리가 아닐 수 없다.

Ricoh GR Lens 28mm F2.8 (M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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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카메라 M System을 쓰는 여러가지 이유가 많겠지만, LTM 어댑터를 이용해서 라이카 또는 타브랜드의 스크류렌즈를 쓸 수 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올드렌즈에 속하는 스크류 렌즈들은 아담한 크기나 역광에서의 빛번짐, 부족한 해상력 등등을 자기만족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중심부의 선예도, 주변부의 해상력, 역광에서 빛의 억제력 등등 렌즈의 성능을 판단하는 이성적인 잣대에 대해 무척 관대해지기 쉽다. 그리고 이처럼 심미적인 아름다움에 반해 콩닥콩닥 뛰는 가슴의 뜻에 따라 정처없이 가다가는 하늘의 별처럼 많다는 라이카향 렌즈들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비어가는 통장잔고를 마주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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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스크류 렌즈들, 왼쪽부터…

Steinheil München 85mm f2.8

Canon 50mm f1.2

Chiyoko Super Rokkor 45mm f2.8

Canon 35mm f2.0

Ricoh GR Lens 28mm F2.8

Voigtlander heliar 15mm 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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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 GR Lens 28mm F2.8

“28mm 만큼은 기꺼이 가슴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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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 GR Lens 28mm F2.8 렌즈는 전설적인 필름똑딱이 카메라 Ricoh GR1시리즈의 단촛점 렌즈를 1997년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로 복각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한정판.

실버와 블랙을 총 3,000개 한정으로 만들었다니, 어찌 심장이 콩닥콩닥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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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한때(?)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라이카에 딱 어울리는 크기는 심미적으로도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킬 만큼 매력적이다.

결과물과는 상관없는 이런 비이성적인 감수성이 내 머리까지 차 올랐을 때, 비로소 바보같지만 아름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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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심지어 깔맞춤때문에 색깔별로 보유한 적도 있었다.

오~ 3,000개 중에 두개가 내 손안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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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에서는 Leica의 28mm Summicron f2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선예도를 보여주며, 가끔씩 빛이 강할 때는 글로우 현상도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런 특성이야말로 현행렌즈에서 느낄 수 없는 애틋한 느낌 정도로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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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에서 색감은 전체적으로 다소 차분한 편이지만, RGB를 포함한 원색에는 짙은 반응을 나타낸다.

이 특성은 흑백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흑백의 대비가 강한 사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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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 렌즈를 사용해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본 바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전형적인 일본 렌즈 느낌이다. 날카로운 표현력, 차분한 색감.”

“선은 날카롭지만 굵지는 않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조여도 역광에서 빛번짐이 있다.”

현행 Leica 렌즈들의 딱 떨어지는 느낌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현행 이전의 렌즈들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런 특색에 어쩌면 더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28mm에서 만큼은 Leica를 선택하지 않고 이 렌즈를 고수하는 이유는

“작고 예쁘다 + 한정판인 것이냐 + 개인 취향적인 표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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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렌즈에 대한 비이성적인 향수는 아마도 모리야마 다이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난번 QUANJ님의 Ricoh GR1v에 관한 글 (https://bphotokr.com/2016/11/11/ricoh-gr1v/) 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도 복각 렌즈를 가졌으니 모리야마 다이도같이 멋진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장비를 소유하는 것과 실력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소유한 이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니 호기심이 곧 병이라 하겠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게 다이도에 대한 오마쥬 정도로 칭해주자.

오마쥬든 흉내든 거친 거리를 꿈꾸며 가끔은 아름다운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애정할 수 밖에 없는 너.

Ricoh GR Lens 28mm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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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oh GR Lens 28mm F2.8

with

Leica MP, Leica M-Monochrom(ccd), Leica M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