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블루스

 

가끔씩 한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바다가 그리운 순간이 다가온다.

섬에서 동백꽃이 필 때 쯤엔 더욱 그렇다.

막 피어오른 새빨간 동백꽃에는 비릿한 첫사랑의 냄새가 스며있고,

가지에서 떨어져 발에 밟히는 꽃에는 실체의 고통으로 밖에 치유할 수 없는 허무함이

짓이겨 있다.

그렇게 한참을 포구와 마주하고 있자면,

어느새 허무와 자해의 욕망을 초월하고 바다에 떠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가학의 계절 앞에서 무방비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찾아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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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Leica MP (Film), Leica M-Monochrom (CCD), Ricoh GR

Lens : Ricoh GR Lens 28mm F2.8 (M39)

Film : Kentmere400

<끝>

 

 

봄날의 통영, 연대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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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전날 물보라 다찌 외에는 더 이상의 알코올 섭렵 활동이 없었기 때문인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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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부족으로 인한 거부감도 없이 개운하다.

주저 없이 주섬주섬 챙겨 서호시장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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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훈이 시락국.

조금 유명해져서인지 예전보다 사장님의 무뚝뚝함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반찬 가짓수는 여전히 하나씩만 맛보기에도 벅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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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의 목적(물보라 다찌, 훈이 시락국)은 다 이뤘으니 이제 섬으로.

배를 타고 15분 정도면 갈 수 있으며, 2015년에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가 완성돼서 트래킹 장소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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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에서 바라본 한려해상공원.

가운데 제일 높이 솟은 섬이 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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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에서는 연대도로 들어가기가 불편하다.

연대도로 가기 위해서는 미륵도에 있는 달아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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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대양을 항해하는 항해사였겠지?

표를 받는 조수 외에는 모든 것을 혼자 움직이는 선장의 능숙한 솜씨를 보면서 잠시 마도로스의 과거를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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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보이는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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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이층 집에 짐을 풀었다.

방금 도착한 배에서 내려 분주하게 트래킹 코스로 이동하는 관광객과, 일상으로 바쁜 주민들의 동선이 이리저리 엉키면서 마치 약속된 군무를 추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관조할 수 있는 전망이 좋았다.

최백호의 도라지 위스키가 떠올랐다.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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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망중한을 즐기다 바다로 나섰다.

넓은 바다를 보니 안주거리를 직접 포획하고 싶은 야생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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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님은 좌대낚시터에 도착해서 우리가 권하는 위스키를 사양하시며 연대도에서 크게 어장을 벌려서 잘 나갔던 젊은 시절, 그리고 다 날려버린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때의 위스키 이야기와 짧지만 꿈같은 인생 이야기도…

선장님은 그렇게 좌대 낚시터에 우리를 내려놓고 두 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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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만선을 자랑하며 귀향하는 배를 바라보며 우리도 푸짐한 횟감을 꿈꿔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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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살생에의 커다란 의지가 없던 그들은 지지부진한 두 시간의 광합성 시간을 보내는 동안,

두어 마리 단촐한 횟감을 포획한 다음에야 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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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는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간이 횟집이 있다.

아주머니들은 양을 채우려면 참돔을, 아니면 제철인 볼락을 권했고, 우리는 볼락 세꼬시 한접시를 주문하면서 우리가 잡은 횟감도 부탁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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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테이블에 자리를 편 마도로스 형님들의 포스에 기죽지 않고, 15년 산 보모어를 들이켰다.

천국보다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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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신장군비석

정월 초순과 좋은 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남해안 별신굿을 모시는 별신대라고 한다.

연대도는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연대(봉화대)를 이 섬의 정상에 설치했고 그래서 연대도라고 불리게 됐다고 하며, 그 후 1665년에 충무공 사패지(임금이 내려주는 논밭)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작농이 됐다고 한다.

1949년에 농지개혁이 일어났지만 일부 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의 사패지로 남았으며, 1989년에서야 마을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한다.

그간의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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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오후에는 스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출렁거리는 출렁다리를 지나서 만지도 트래킹을, 다음날 아침에는 연대도 트래킹을 하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고립된 섬의 역사와 함께 육지와의 단절에서 오는 고독을 느끼고 싶다면, 통영 근처의 섬으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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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Leica M-Monochrom (CCD), Ricoh GR

Lens : Ricoh GR Lens 28mm F2.8(M39)

<끝>

봄날의 통영, 연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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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누가 뭐라고 해도 봄이 좋다.

한 번이라도 남도의 봄기운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통영은 봄이면 찾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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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을 지내오는 동안 잔뜩 움츠리고 있던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 생명력이 느껴지는 봄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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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첫 관문은 뭐니 뭐니 해도 충무김밥이다.

통영에 갈 때면 늘 가는 집이 있었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게 이 가게로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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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과 TV 출연 자료들.

빛바랜 사진만큼 세월을 견뎌온 내공이 있을까?

아련하다. 가끔씩 떠오를 때면 한 번씩 펼쳐보는 사진이 아닌 늘 눈앞에 놓여있는 화사했던 과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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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특미는 무김치와 오징어 어묵 무침 외에도 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당연히 “굴 주세요”

살짝 익힌 굴에 직접 만드셨다는 굴 소스를 비밀리에 바르고 계시는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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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운영해 왔고, 지금은 본인이 개발한 굴 충무김밥을 내놓으셨다는 사장님.

충무김밥집의 원조를 놓고 말이 많지만 처음 시작하셨다는 분들이 거의 돌아가신 지금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르면 그만이다.

서글서글한 사장님의 인상에서 다음에 통영을 찾아도 다시 찾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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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을 충무김밥집에서 먹는다면 당신은 아마추어.

김밥집을 나서는 순간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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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동광식당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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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 쑥국과 볼락 매운탕이 충무김밥과 완벽하게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통영의 1차 관문을 제대로 통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업이 좋지 않은 관계로 멸치회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웠지만 이대로도 충분했다.

오전 내내 뱃일을 하고 왔다는 선장 한 분이 이미 술이 취한 채로 들어오셔서는 또다시 소주를 들이키며 연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응 그렇지요. 이 집 도다리 쑥국이 정말 맛있는기라. 암. 소주도 맛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건네는 외로움의 하소연이었고, 또한 자신에게 바다에의 삶을 다짐하는 인내의 표식이었다.

외로운 바다와 남자. 고독한 고독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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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의 여독은 지역 막걸리로 푸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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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지방의 어시장들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통영 중앙시장의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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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거칠지도 않고,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거절 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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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바라본 통영항과 서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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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르지만 내심 욕심이 났던 28 Lounge.

어이, 거기. 다음에 온다면 그쪽 옥탑을 전세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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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저녁이 오고 있다.

지금 이 포만감으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곳에 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서 허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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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부둣가의 풍경들이 정감이 간다.

불쑥 들어가서 기본 메뉴를 시켜 놓고는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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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 쪽에서 바라본 중앙시장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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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가기 위해 일부러 걸어온 해저터널.

왕복해서 돌아오면 얼추 예약 시간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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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축복의 시간이 찾아왔다.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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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허기진 채로 그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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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내어온 안주로도 미션은 가능해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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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바닷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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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전하신 백사장님~

방송에 나오셔서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너그들 딱 생각난다” 하신다.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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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에는 털게라며 해체 시범을 보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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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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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다시 오기로 하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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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연대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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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통영

날짜  :  2017년 3월

Camera  :  Ricoh GR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