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지 않는 캠퍼스

6월 20일 오전 9시 30분. 전국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관계자들은 이날 교육부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올 초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대학 기본역량진단 1단계 평가에 대한 결과였는데, 비록 잠정결과라고는 하나 평가 대상교의 64% 비율로 합격 판정된 자율개선대학의 범주에 들지 못한 탈락 대학은 정원감축 권고와 정부 재정지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일부 대학들에는 그야말로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발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정대로 발표된 ‘살생부’로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4년제 대학 120개교, 전문대학 87개교가 합격으로 안도의한숨을 내쉰 반면, 4년제 67곳, 전문대 49곳 등 116개교는 정원감축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정부는 이들 대학의 정원을 총 2만 명 가량 줄일 계획에 있다.

.

오늘날, 대학 정원이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른 원인은 90년대 대학설립 간소화로 무분별한 대학설립에 따른 정원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정원은 60만 명 수준으로 2000년도만 하더라도 대입자원인 학령인구는 80만 명 수준이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대학이 학생을 골라서 선발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6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2020년 이후엔 50만 명 아래로 급감할 예정이다. 즉, 대입자원 전원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대학 재정이 탄탄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90년대 등록금 장사를 위해 설립된 사학들 재정이 여유로울 리 만무하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부실사립대학의 대량 폐교사태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인 것이다.

.

학령인구_wecangogo

.

정부는 이러한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1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사업 초기 54만 명이던 대학정원을 48만 명 수준으로 5년간 6만 명 가량을 감축하였다. 이어서 올해 후속으로 추진되는 2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은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형태로 대학 전반에 걸친 평가를 통해 대학별 ‘체력’을 평가하고 함량 미달인 대학들은 정원감축 권고 또는 정부재정지원의 제한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골자로 하고 있다.

수 년간 지속하고 있는 대학등록금 상한제(라고는 하지만 실질적 동결)와 부실사립에 대한 정원감축으로 인해 실제 대학이 문을 닫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12년부터 올해까지 12개 대학이 폐교되었다고 한다.

.

종종 찾아뵙는 처가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2017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폐교된 학교가 하나가 있어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 대학 정문 주변은 이미 대형화물차들의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낯설게 변해버린 주변 풍경 속에 활짝 열린 정문은 아직 이곳은 학생들의 마음과 추억이 떠나지 않은 캠퍼스라며 큰 소리로 시위하는 듯 보였다. 나는 정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가 무색하게 캠퍼스에서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을 학생들은 보이질 않는다.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것은 조로(早老)하는 것일까. 본관까지 이어진 캠퍼스 중심도로 양옆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등하교 시 북적였을 법한 통학버스 정류장과 텅 빈 게시판, 해진 채로 힘없이 펄럭이는 본관 앞 태극기는 버려진 캠퍼스의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다.

.

근시안적 교육정책의 폐해는 앞뒤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온 우리 사회의 업이라 흘리기엔 아픔이 절대 만만치 않을 듯하다. 특히, 2주기 구조조정에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린 지금으로서는 대학 간 통폐합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학사회는 변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불어 폐교 후 캠퍼스 토지와 건물, 교육/연구용 기자재 등과 같은 학교 기본자산의 처분방법, 재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지역 경제의 직격탄이 될 교직원의 실업 문제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해 보인다.

.

univ-1

.

.

.

univ-2

.

.

.univ-3

.

.

.univ-4

.

.

.

univ-5

.

.

.

univ-6

.

.

.

univ-7

.

.

.univ-8

.

.

.univ-9

.

.

.

univ-10

.

.

.univ-11

.

.

.univ-12

.

.

.univ-13

.

.

.univ-14

.

.

.univ-15

.

.

.univ-16

.

.

.univ-17

.

.

.univ-18

.

.

.univ-19

.

.

.univ-21

.

 

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ilford hp5+

.

.

광고

홋카이도 대학

JR 삿포로역에서 북으로 10여분 걸으면 북해도 유일의 종합대학 홋카이도대 캠퍼스를 만날 수 있다. 교직원으로 밥벌이하는 탓에 여행을 가서도 직업적, 사진적 호기심 범벅으로 그 지역 주변의 학교를 둘러보는 편인데, 운 좋게도 우리 숙소가 지척이라 이른 아침시간을 빌어 살짝 다녀오기로 했다.

.

hokkaido-1
홋카이도 대학의 남문, 정문과 불과 50여미터 떨어져 있을 뿐이다.

.

.

hokkaido-2
도시 중심에 한적하고 너른 캠퍼스는 삿포로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

.

유신 이후, 본격적인 근대화의 행로에서 북해도는 본토의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아메리카 대륙과도 같았으리라. 비옥한 토지와 동해의 풍부한 수산자원은 철저히 개척되어야 할 대상이었을테고, 이를 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의 수요는 당시 북해도 개발의 거점도시였던 삿포로시에 대한 대학 설립의 명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을 업고 홋카이도 대학은 학생 24명으로 1876년 삿포로농학교[札幌農學校]로 문을 열었다. 이후 20세기에 접어들어 도호쿠 제국대학과 홋카이도 제국대학 농과대학을 거쳐 패망 직후인 1947년 종합대학으로서 편제를 갖춘 채  홋카이도 대학으로 교명을 변경 후 학생수 15,000명에 달하는 현재에 이르렀다.

.

hokkaido-5
홋카이도 대학의 기원이었던 농과대학 건물 전경

.

.

설립 초기의 모습을 잘 간직한 농대건물 인근에는 “Boys, be ambitious”로 유명한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동상이 있다. 그는 메사추세츠 농업대학 재임시절 삿포로농학교 초대 부학장으로 1년간 부임해 설립 초기 학교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는데, 특히 삿포로를 떠나며 남긴 “소년이여, 야망을”이라는 명언은 당시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말은 아마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한일강제합방과 대동아공영권 주장 그리고 2차 세계대전까지, 어쩌면 일본 젊은이들에게 빗나간 야망마저 끈질기게 추구하게 만든 하나의 불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클라크 박사 턱밑에 새겨진 그의 말 한 마디가 고와 보이지 않았다.

.

hokkaido-4
윌리엄 클라크 박사 동상

 

.

.

140년을 자랑하는 역사 덕에 캠퍼스 곳곳에 산재된 나무들은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대학본관을 중심으로 캠퍼스의 남과 북을 잇는 메인도로는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있어 가을이면 노랑 단풍으로 채색되어 이 일대는 보나마나 장관일 듯하다. 나는 곧장 본관건물을 돌아 은행나무길과 함께 홋카이도 대학의 또 다른 명소인 포플러 애비뉴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넉넉히 걷기 좋은 폭의 길 양쪽으로 웅장한 포플러 나무들이 사열해 있는 곳이다. 초록초록 싱그러울 포플러길을 상상해보니 이 곳 역시 연인들의 성지일 것임에 분명하다. 이른 아침, 세상 하얀 눈길을 걷고 있는 나 역시 갓 스물 연인에게 뒤지지 않을 이 행복감을 기억회로에 촘촘히 기록하였다.

.

hokkaido-8
겨울이라 다소 볼품없어 뵈는 포플러 애비뉴

.

.

포플러 가도 양옆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쌓인 눈 위로 삐죽 튀어나온 철재 지지대들로 미뤄보아 연구용 작물을 재배하는 농과대학 소속의 실습농장인듯 하다. 여기 눈 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새하얀 여백은 소매가 짧아지는 속도에 맞춰 진한 초록으로 채색되어갈 것이다. 1936년 세계 최초로 인공설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 대학 물리학과 교수 나카타니 우키치로(1900~62)는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라는 말을 남겼는데, 연구실 창문너머 설경을 감상하던 그에게 하늘이 보내는 편지는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한 사랑의 메세지였음에 틀림이 없다.

.

 

hokkaido-9
하늘이 그린 풍경

.

.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캠퍼스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렇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여행자의 엉터리 날짜감각을 정정하며 어제와 다를 것 없을 그들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내일이면 오늘과 다른 일상의 쳇바퀴로 돌아갈 나 자신에게도 어깨 토닥토닥을 잊지 않았다.

.

hokkaido-7

.

.

.

hokkaido-14

.

.

.

hokkaido-13

.

.

.

hokkaido-15

.

.

.

All taken with ilford hp5+

 

성냥갑 마을

포르투갈에서의 5일째, 리스보아(Lisboa) 일정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여행의 후반부를 보낼 포르투(Porto)까지는 320km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포르투로 향하면서 몇 군데의 도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의 도시, 코임브라입니다.

20170810-D3S_86061

코임브라까지는 210km로 제법 먼 거리였지만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포장상태가 좋았고, 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아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사실 코임브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적지는 네비게이션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템포를 맞추느라 시속 200km 가까이 달린 탓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두시간이 채 안 걸려 코임브라에 도착했습니다. 대학 부속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있는 것 같았는데, 대학도시는 처음 와보는 터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되었습니다.

20170810-D3S_86121

 

20170810-D3S_86122

코임브라대학교는 1290년 설립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입니다. 201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언덕위의 대학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설립자인 디니스1세(Dinis I)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로는 다소 낡았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170810-D3S_86201

 

20170810-D3S_86241

 

20170810-D3S_86251

 

20170810-D3S_86291

 

20170810-D3S_86221

건물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엽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코임브라대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제게는 큰 영광일 것입니다, 엽서를 보여주는데 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원하시는대로,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엽서도 마음에 들어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아뿔싸, 차에 지갑을 두고 온걸 알았습니다. 실수다, 지갑을 두고 왔다, 정말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엽서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한 장을 고르세요. 당신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순간이 지나고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과 코임브라대학교를 기억하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구대학의 건물들이 그려진 엽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20170810-D3S_86503

 

20170810-D3S_86431

구대학교(Velha Universidade) 광장으로 들어서자 주앙3세(João III)의 석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인 돌아다닐 시간은 없어서 광장 주변과 탑, 도서관 정도를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20170810-D3S_86391

 

20170810-D3S_86441

 

20170810-D3S_86451

 

20170810-D3S_86461

 

 

20170810-D3S_86501

 

20170810-D3S_86502

 

20170810-D3S_86481

 

20170810-D3S_86571

짧은 방문을 뒤로 하고 코임브라대학교를 떠났습니다. 시간을 좀 더 할애해서 돌아봐도 좋았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70810-D3S_86611

 

20170810-D3S_86621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레일라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좋겠지, 나보다 훨씬 잘하니까 싶어서 키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을 자처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뒷좌석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테일 스핀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좌우로 흔들림이 제법 있었습니다. 줄곧 멀미가 날 것 같다던 레일라의 얘기가 이해되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메르세데스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20170810-D3S_86641

 

20170810-D3S_86681

두번째 목적지인 아베이루(Aveiro)로 접어드는 고속도로에서 산불을 만났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고온현상으로 여기저기 큰 불이 나고 있다더니 실제로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산불을 본 것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20170810-D3S_86721

 

20170810-D3S_86751

포르투갈의 베니스(Venice)라고 불리우는 아베이루에서 운하의 풍경을 만났습니다. 운하를 중심으로 예쁜 건물들이 서있었습니다만, 어쩐지 전형적인 관광지로 보였습니다. “그냥 갈까?” 레일라의 제안에 따라 곧장 코스타 노바(Costa Nova)로 차를 돌렸습니다. 아졸레주(Azulejo)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20170810-D3S_86881

 

20170810-D3S_86791

 

20170810-D3S_87631

다시 30여 분을 달려 코스타 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코스타 노바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포르투갈의 도자기 제품명으로 더 알려졌습니다만, 본래 대서양과 아베이루강 사이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코스타 노바 제품에 새겨진 로고는 이 마을의 독특한 건축양식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찌보면 인형의 집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성냥갑 같기도 한 형형색색의 스프라이트 무늬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170810-D3S_86931

 

20170810-D3S_86951

 

20170810-D3S_86981

 

20170810-D3S_87061

 

20170810-D3S_87091

 

20170810-D3S_87111

코스타 노바의 집들이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달이고 돌아오지 못했고, 안개가 자욱한 지역 특성상 돌아와서도 자기 집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길을 잃지 말라고 각자 독특한 색과 무늬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기만 한 것 같은 풍경이 사실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20170810-D3S_87121

 

20170810-D3S_87051

각기 다른 모양과 무늬의 집들 사이를 질리도록 걸어다녔습니다. 스프라이트 뿐 아니라 다양한 색과 무늬로 칠해진 집들이 파란 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20170810-D3S_87141

 

20170810-D3S_86991

 

20170810-D3S_87011

 

20170810-D3S_86941

 

20170810-D3S_87142

 

20170810-D3S_87071

 

20170810-D3S_87151

 

20170810-D3S_87171

 

20170810-D3S_87221

 

20170810-D3S_87271

 

20170810-D3S_87231

 

20170810-D3S_87191

 

20170810-D3S_87491

골목을 빠져나와 아베이루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20170810-D3S_87321

 

20170810-D3S_87492

 

20170810-D3S_87341

 

20170810-D3S_87541

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트립어드바이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역 3위 안에 드는 곳이라면 가도 좋지 않을까?” 앞장 선 레일라를 따라 길가의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20170810-D3S_87542

 

20170810-D3S_87543

 

20170810-D3S_87544

 

20170810-D3S_87545

 

20170810-D3S_87546

포르투갈식 조개찜(Ameijoas a Bulhao Pato)과 해산물 리조또(Arroz de Mariso)를 주문했습니다. 셋이 먹기에 너무 많은 양에 놀라고 해산물이 정말 신선해서 놀랐습니다.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라며 웨이터가 엄지를 내밀었습니다.

20170810-D3S_87641

점심을 먹고 마을의 반대편으로 걸어내려갔습니다.

20170810-D3S_87711

코스타 노바를 소개하는 가이드북과 웹사이트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니 집안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 집들은 숙소로 제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정도 머물며 대서양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20170810-D3S_87762

마을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 뒷골목으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20170810-D3S_87941

 

20170810-D3S_87971

 

20170810-D3S_87881

 

20170810-D3S_87801

아마도 사디냐(Sardina)겠지, 바닥의 물고기 문양을 구경하다 고개를 들자 일광욕 중인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70810-D3S_88001

다가가자 바닥에 뒹굴뒹굴, 잔뜩 애교를 부렸습니다만, 줄 게 없어서 열심히 머리만 쓰다듬어 줬습니다. 궁딩팡팡도 해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간혹 싫어하는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20170810-D3S_88091

길가의 하얀 꽃들을 잠시 바라보다 코스타 노바를 떠났습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