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L. Parker Stephenson Gallery

L. Parker Stephenson 갤러리는 설립자이자 관장인 스티븐슨(Stephenson)이 2004년 프라이빗 딜러로 독립하면서 세운 곳이다. 원래 은행에서 일하다가 90년대 중반 사진계로 들어온 스티븐슨은 Howard Greenberg, 292 갤러리 등에서 경험을 쌓은 후 고객들을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아방가르드와 20세기 클래식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갤러리는 조금 더 폭넓은 대중을 향한 여타 갤러리들과는 달리 소수의 컬렉터를 대상으로 한 딜러로서의 역할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작가와 고객과의 최소한의 연결 지점을 유지하기 위해 갤러리를 운영하는 느낌이다.

Madison가 764번지에 위치한 갤러리는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작은 곳이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메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무실 및 보관고로 쓰는 안쪽의 작은 방 벽들에 추가적으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만 거실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도 이미 업무를 위해 사용하고 있어 실제적인 갤러리와 사무실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벽난로 위에는 전시 자료와 사진집 및 팸플릿 등 갤러리 관련 자료들이 놓여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네덜란드 작가 위터 웜스(Witho Worms)의 <Cette montagne c’est moi (This mountain that’s me)>와 <A Forest Reconstructed> 두 프로젝트들이다. 1959년 생인 웜스는 문화 인류학자이자 사진가로서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닿은) ‘문화’라는 두 가지 개념의 관계에 대해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 또한 이 개념들의 관계를 보여 주고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진들로 이번에 전시된 시리즈들 또한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메인 전시 공간인 거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A Forest Reconstructed>는 작가가 2016년에 완료한 가장 최근작으로 유럽 여러 지역의 숲들을 돌아다니며 담은 사진들이다. 조림(reforestation) 작업을 통해 사람의 손길이 닿은 숲들은 더 이상 자연적인 것도, 그렇다고 순수히 인공적인 것도 아닌(neither randomly organic nor solely artificial)** 자연과 문화(인간)의 경계 그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웜스가 찍은 숲의 단면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나무들의 배열이다.

경계의 모호함을 배가시키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이미지의 재현 방법이었다.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하얀 인화지(baryta paper) 위에 하얀 티타늄 가루를 적용해 인화한 사진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더 큰 흥미를 느꼈던 전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로 동명의 사진집으로도 발간된 <Cette montagne c’est moi (This mountain that’s me)>였다. 이 프로젝트는 한 때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이제는 폐광이 되어 스러져 가는 유럽 여러 지역 탄광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담은 사진들이다.

웜스의 할아버지 세대에게는 충실한 생산 활동과 활력의 공간이었고, 웜스 같은 작가 세대에게는 드넓은 놀이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곳.*** 어스름한 시간, 거대한 실루엣으로 담긴 광재 더미(slag heap)****들의 모습은 그 속에 흥망성쇠의 시간을 품고 있다.

이 작품들에 더 관심이 갔던 이유는 바로 작품의 인화 방식이었다. 웜스는 이 시리즈를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카본 프링틴(carbon process) 방식*****으로 인화를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인화의 베이스 안료가 된 카본이다. 웜스는 작품의 배경이 된 광산들의 석탄 가루를 담아 온 후 세심한 그라인딩 작업을 거쳐 각 작품의 인화에 필요한 피그먼트(pigment-안료)로 활용하였다.

탄성이 나왔다. 아…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사진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작업은 말 그대로 재현이었다. 눈 앞에 놓인 피사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인화지의 잉크)이 바로 그 피사체 자신이었다. 곱게 갈려 스스로를 내어 더 큰 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카본 프린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밀하면서 섬세한 톤의 묘사도 아름다웠지만 제 몸을 색소로 삼아 밀착 인화된 피사체 자체로서 뿜어 내는 힘은 비할 데가 없었다.

반년 동안 대략 오십여 곳의 사진전들을 다니면서 점점 강해진 생각은 화면이 아니라 눈 앞에 놓인 사진을 보고,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였다. 모니터가 아니라 손에 닿는 실체로 나타난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위터 웜스의 작업처럼 멋진 – 아이디어로써도, 결과물로써도 – 사진들을 만나게 되니 새삼 인화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

아직은 현상, 스캔에 머물지만 언젠가는 인화도 시도를 해야 할 텐데. 빨리 준비 안 하면 나중에는 중고 확대기라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 걱정이긴 하다. (사실 과연 시도라도 할 것인지가 더 걱정이긴 하다만서도…)

기본정보

  • 갤러리명: L. Parker Stephenson Gallery
  • 주소: 764 Madison Ave., New York, NY, 10065
  • 운영시간: 수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lparkerstephenson.com

*18년 4월 19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Cette montagne c’est moi>, Fw:Books, 2012, p.10-11.

****slag heap(광재 더미): 광석을 정련하고 남은 돌 찌꺼기 더미.

*****Carbon process: 영구적인 피그먼트 인화지(pigment print)를 만들어내는 기법. 1855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기법의 단점들에 불만을 느낀 알퐁스 루이 푸아트뱅이 새로 고안해 낸 인화법. 중크롬산염 젤라틴을 토대로 안료를 추가하였다. 1860년대에 다른 이들에 의해 결점들이 개선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인화법으로 발전하였다. 카본 인화지는 색이 풍부하고 윤이 났으며 콘트라스트가 뛰어났고 표현 가능한 색상이 다양했으며, 기타 여러 방식으로 추가 조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또 벨벳처럼 깊고 짙은 검은색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수명이 길다는 것이었다.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 프레스, 2017, p. 93.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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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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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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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rest Reconstructed> 작품들. 사진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하얀 톤의 느낌이 몽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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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tte montagne c’est moi> 작품들. 좁은 사무실 공간의 벽면을 활용하고 있어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지만 카본 인화가 주는 톤의 섬세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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