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연히 보게된 사이트에서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에 켜켜히 쌓인 세월과 소시민의 삶의 애환이 가득 담긴.. 그러면서도 무언가 살가운 느낌의 골목사진을 발겼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 말미에 ‘좌천동’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좌천동?? 여기 어디지? 분위기 정말 좋은데 조만간 꼭 가봐야겠다.’ 라는 결심 아닌 결심을 하게되었다.
처음엔 서울이나 경기도 어디쯤 붙어있는 동네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좌천동을 검색하자 지도의 화면은 부산의 어느 지점에 화살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산…멀다.. 물리적 거리도 멀지만 무엇보다 당시 여러 상황의 여의치 못함으로 인한 심리적 거리가 더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던 그 정겨운 골목길 풍경이 나에게 계속 어서오라고 재촉하는 통에 나는 결국 어느 여름날 좌천동 좁디 좁은 풍경속에 서 있었다.
좌천동 – 부산 동구의 법정동으로 동네를 끼고 흐르는 소하천인 좌자천(左自川)에서 유래된 동명이라 한다.
긴세월 여러번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이웃한 범일동과 합치고 나눠질 정도로 인접해 있어서 실제 내가 다닌 골목들도 좌천동과 범일동에 걸쳐 있었다.
동네의 첫 인상은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익숙한 골목길 풍경에 마음은 편안했지만
이제는 쉬이 보기 힘든 프로판 가스배달집이나 난방용 등유를 파는 기름집을 보니 이곳의 시간은 골목바깥 세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듯 하여 정겨운 풍경에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느낌이다.
안그래도 좁은 골목길에 이렇게 집집마다 보일러며 장독이며를 내놓고 있다보니 골목은 더 좁아졌고 두사람이 나란히 다닐 수 없을 정도이다.
골목길마다 늘어져 있는 각양각색의 빨래들은 이곳이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임을 말해주지만 문만 열면 마주하는 앞집과는 코앞이요.
골목길을 지나는 이에게 조차 삶의 속살이 창을 통해 훤히 내비치는 이곳의 환경은 외지인에겐 그 불편함의 정도를 예상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얼마만에 보는 연탄 보일러인가.. 연탄재 조차 쉽게 보기 힘든 시절인데…
그렇게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 혼자 감성에 젖어 이골목 저골목을 다니던 중
어디선가 왁자한 소리가 들리길래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곳에는..
할마씨들이 그림맞추기 놀이 삼매경중..
“어~ 아즈씨예~ 거 와 찍는데예?? “ “…………”
“옛다~ 보자 내 잘나왔나??” “………….”
그렇게 할머니들 틈에 끼어서 훈수도 두고 재롱좀 떨다 코피두 한곱뿌 얻어마시고 다시 골목길 탐험을 재개했다.
세월을 얼마나 겪었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추억의 미원 진열대(?) 정말 오랜만에 본다.
그 밑에 추를 달아 계량하는 저울도 이젠 보기 힘든 골동품..
다시한번 이곳의 시간이 골목 바깥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대략의 골목길 탐험을 마치고 동네를 벗어나는 경계쯤에 일본식 적산가옥과 쌀집 간판뒤로 신식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새로움의 가치만을 추구하고 보다 크고 보다 높은 것들에 대한 열망만을 우선시하면서 반대로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대한 존중은 결여되어 가고 있다.
이 사진만 봐도 고층아파트와 대비되는 오래된 가옥 둘중 어느 것이 보기 좋은가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갈릴 것이다.
요즘들어 전국의 오래된 동네들마다 새롭게 칠을 하고 그림을 그려넣어 새상품처럼 바꾸고 관광지화 하는 사업이 엄청 늘어나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가 우리의 지나온 삶의 시간을 어떻게 여기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오래되고 낡았다고 무작정 허물거나 바꾸는 것 말고도 있는 그대로의 삶의 흔적들을 보존할 방법을 같이 논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낙후된 지역의 주민들의 불편한 삶을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되겠지만 통영의 동피랑이나 부산의 감천동처럼 벽화를 그리고 채색을 새로 해서 관광객이 몰리는 현상역시 거주민들에겐 더 많은 불편함을 강요하는 행위인 만큼 삶의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을 지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좌천동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철길을 가로지르는 육교는 마치 현재와 골목의 다른 시간을 잇는 통로처럼 보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골목을 벗어나 현재의 시간으로 복귀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조금 더딘 그 곳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