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Fear

고요했던 마음의 다시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애써 잡아놓은 마음이래야 세찬 파도 한번에 이렇게 일렁이니
애초 잔잔하니 이제 되었다라는 생각은 오판이었나보다..

본디 생각이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생각이 생각을 낳고 마음의 허상이 스스로 자라나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끊으려해도 끊지 못하고  커져만 가는 번민들..

이쯤되면 정리.. 생각이란 단어는 더 이상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불안한 영혼은 영원의 나락으로 내몰리고 말아 버린다..

두려움.. 아픔.. 그리고 실의와 상념들…

생각치 못한 하찮음에서 비롯된 소소한 것들로 부터의 시작

그래서 만들어진 공포…

벗어나려해도 옥죄인 발길은 더디게만 움직이고
이곳에서 꺼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건만..

단단히 굳어버린 입술…

진정한 공포는 입술을 얼게 만든다…

내속의 소리를 입밖에 낼수 없다는게

얼마나 환장할 노릇인지…

쉽게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절대 알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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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노량진 am 3:45

초저녁 종로께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밤이 깊어도 끝날 줄 모르고 을지로로 또 논현동으로 그렇게 강을 넘나들며 술한잔 한잔 얹고 또 얹다가 그래도 술이 모자랐는지 누군가의 호기로 인해 새벽 3시가 넘어 알콜에 재여진 몸을 이끌고 찾았던 노량진 수산시장…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그 수만큼의 사연들로 북적였을 시장은 상인들도 손님들도 철수한 파장이라 어둡고 한산했다.

평상시였으면 문에 달라붙어 서로 자신의 가게로 들이려는 이모들의 호객행위로 이동조차 쉽지 않았을텐데 이 시간의 시장을 찾은 취객들은 아무래도 달가운 손님이 아닐터…

호객은 커녕 몇안되는 불켜진 식당들도 대부분 비어있었고 졸음을 참느라 연신 하품중인 이모들의 심드렁한 표정만이 우리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모두 한마음으로 저 이상한 술꾼들의 마지막 술자리가 우리가게가 아니었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환영 받지 못하는 손님이라니…풉~’

그래도 그나마 표정이 나은 이모를 찾아 평소엔 와보지 못했던 외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술이 두어순배 더 돌고 취기에 잦아진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을 찾아 가게를 나섰다.

낮선 건물의 지하에 자리잡은 화장실에서 시원스레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노래자락이 흘러 나온다. 오래된 축음기 소리마냥 앵앵 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온 방향과 반대편 복도로 들어서자 노래는 좀더 뚜렷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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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 백설희 할매의 ‘봄날은 간다.‘ 의 2절이다..

그래 봄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대어 밤이 밤인줄도 모르게 밝게 비쳐주던 벚꽃들도 져내리고 그렇게 노래가사마냥 가버리는 그 짧고 찬연했던 봄날의 끝자락이 노래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바닥에 흘러내리는 붉은 핏물과 노래 소리를 따라 가다 도착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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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자락에 붉은 핏물을 실어 보내던 원천…

아뿔사 나에게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전날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새날이었다.
신성한 작업장을 침범한 한량에게 꼿히는 날카로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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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손질을 마친채 얌전히 상품이 되어 있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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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되기 위해 대기중인 녀석들과 상품조차 될 수 없이 격리된 망가진 녀석에게 뜬금없이 내 자신이 투영되는 통에 괜시리 울컥한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 화장실에 빠져 죽었냐는 일행의 전화에 부랴부랴 남겨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식당으로 돌아가는 그 길목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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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끝자락의 새벽녘.. 취했으나 말짱하고 말짱하나 비틀거렸던 한량의 화장실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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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웬 쌩뚱맞은 소리냐 싶겠지만 내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각각의 얼굴이 있고 그 얼굴은 여러 표정으로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을 전달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마주하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통해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 상태 등의 여러 정보를 전달받아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응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의 표정이 주는 다양한 정보는 사진으로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물이 주가되는 포트레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길거리 스냅이나 캔디드 사진에 인물이 포함된 경우에도 인물의 얼굴표정을 통해 드러나있는 감정이 전체 프레임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이 인물을 배치한 거리 스냅사진을 찍는 나 역시도 가능하면 프레임을 구성할 때 인물의 얼굴과 표정이 드러나도록 촬영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레임속 공간에 배치된 인물의 표정은 촬영순간의 상황을 전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관념인지 강박인지 모를 생각은 2007년이던가 매그넘 작가들이 방한해 촬영한 한국의 모습들을 전시한 매그넘 코리아展을 관람하고 시원하게 깨졌다.

매그넘 소속의 여러 작가들의 섹션중 엘리엇 어윗의 작품 코너에서 마주한 몇장의 사진 덕분이다.

당시 어윗이 담당했던 테마는 바로 ‘한국의 여성’ 이었는데 그중에서 여성들의 무릎 아래쪽 다리와 발만 찍었던 사진들 앞에서 한참을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묘하게도 단지 신발의 종류와 치마 끝단 또는 무릎 아래 바지만 보이는데도 이 발의 주인인 여성의 연령대와 직업군, 그리고 생활수준등등까지 의외로 쉽게 유추하게 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 때를 계기로 굳이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분을 통한 전체의 이미지 전달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부분’ 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우리가 쉽게 흘려 보내는 부분을 생각하다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당장 나만 해도 마주하는 이의 얼굴과 표정이 아닌  뒷모습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집중하지 않았었다는 생각에 ‘사람의 뒷모습이 전하는 메세지는 정말 없을까?’ 라는 단순한 의문이 떠올랐고 그뒤로 조금씩 사람들의 뒷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전엔 볼 수 없었던 사람의 뒷모습이 전하는 이야기가 조금씩 읽혀 지고 사람의 뒷모습 또한 얼굴이나 표정 못지 않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거리에서 셔터를 누를 때도 이전처럼 반드시 인물의 얼굴 표정을 담으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뒷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보며 당사자의 감정을 떠올려 보는 걸 즐긴다.

단순히 길을 걸어가거나 직업적인 행위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멈춰서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고개를 떨구고, 늘어진 어깨선 등등의 여러가지 뒷모습의 표정으로 부터 당사자의 감정을 읽어내는 행위말이다.

아마 이글을 읽는 분들도 사진 속 인물의 여러가지의 뒷모습과 주변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반드시 ‘아! 사람의 뒷모습에도 분명 표정이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이 이전과 다르게 사람의 뒷모습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당신은 이 퍼즐게임 같은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당사자를 방해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뒷모습이 전하는 표정과 나름의 상상을 통해 상대의 생각을 유추해내는 이 재미있는 게임을 시도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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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쩌다 보니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모든 일들 성취하시는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사진 한장

한잔하고 들어 온 늦은 밤, 요즘은 왜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인가. 묵은 폴더를 뒤지는 것은 멜랑콜리한 밤을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삐급 포스팅 꺼리나 찾아 보자. 사진들이 묵은 먼지같은 추억을 쏟으면서 한장 한장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대비하지 못한 채 과속방지턱을 넘듯 뭉클거리는 장면들이다.

아~ 이거!

한 장의 사진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상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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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세브란스 병원 / Voigtlander Bessa R3A + Nokton 40mm f:1.4]

그 때 나는 초보딱지를 뗄까말까한 사진계의 뉴비였다. 지인의 수술보호자로 소환되어 소아병동을 지키게 되었고 수술이 진행되던 시간에 잠시 바람 쐬러 테라스로 나갔을 때 이 사진을 찍었다.

모자는 조금전 복도에서 만났었다. 테라스에서 이 장면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병원이란 공간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는 들리지 않는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고 엄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크기만한 근심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지킬 것이었다. 담너머 쏟아지듯 찬란한 세상이 마냥 궁금한 아이와 내려 앉은 해 만큼이나 깊은 심연의 근심을 품은 엄마가 맞이하는 담너머의 세상은 동상이몽이었겠다.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찍고 싶다. 내가 아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마음대로 될 것 같았으면 난 이미 쿠델카였거나 어윗이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와 엄마를 다시 만나면서 사진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진가가 대상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독자가 사진의 이야기를 알 수 있기나 한 것인지…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사진가의 개인적 의미 이상은 아닐 것이지만 거리를 헤메고 낮선 골목을 후비고 다닌 짧지 않은 지난 시간을 매개하는 열쇠같은 것이라면 나름의 의미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난 여전히 이야기를 이미지에 담아 전달하는데 장애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내 닿지 못할 천공의 성일지라도 쉽게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진으로 말하고 싶은 욕망은 또 그렇게 이글거린다.

누구에게나 ‘계기’는 있기 마련이다.

좌천동(더딘 시간속으로의 여행)

언젠가 우연히 보게된 사이트에서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에 켜켜히 쌓인 세월과 소시민의 삶의 애환이 가득 담긴.. 그러면서도 무언가 살가운 느낌의 골목사진을 발겼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 말미에 ‘좌천동’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좌천동??  여기 어디지? 분위기 정말 좋은데 조만간 꼭 가봐야겠다.’ 라는 결심 아닌 결심을 하게되었다.

처음엔 서울이나 경기도 어디쯤 붙어있는 동네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좌천동을 검색하자 지도의 화면은 부산의 어느 지점에 화살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산…멀다.. 물리적 거리도 멀지만 무엇보다 당시 여러 상황의 여의치 못함으로 인한 심리적 거리가 더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있던 그 정겨운 골목길 풍경이 나에게 계속 어서오라고 재촉하는 통에 나는 결국 어느 여름날 좌천동 좁디 좁은 풍경속에 서 있었다.

좌천동 – 부산 동구의 법정동으로 동네를 끼고 흐르는 소하천인 좌자천(左自川)에서 유래된 동명이라 한다.

긴세월 여러번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이웃한 범일동과 합치고 나눠질 정도로 인접해 있어서 실제 내가 다닌 골목들도 좌천동과 범일동에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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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첫 인상은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익숙한 골목길 풍경에 마음은 편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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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쉬이 보기 힘든 프로판 가스배달집이나 난방용 등유를 파는 기름집을 보니 이곳의 시간은 골목바깥 세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듯 하여 정겨운 풍경에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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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좁은 골목길에 이렇게 집집마다 보일러며 장독이며를 내놓고 있다보니 골목은 더 좁아졌고 두사람이 나란히 다닐 수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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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마다 늘어져 있는 각양각색의 빨래들은 이곳이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임을 말해주지만 문만 열면 마주하는 앞집과는 코앞이요.

골목길을 지나는 이에게 조차 삶의 속살이 창을 통해 훤히 내비치는 이곳의 환경은 외지인에겐 그 불편함의 정도를 예상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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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보는 연탄 보일러인가.. 연탄재 조차 쉽게 보기 힘든 시절인데…

그렇게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 혼자 감성에 젖어 이골목 저골목을 다니던 중
어디선가 왁자한 소리가 들리길래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곳에는..

할마씨들이 그림맞추기 놀이 삼매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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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즈씨예~ 거 와 찍는데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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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다~ 보자 내 잘나왔나??”    “………….”

그렇게 할머니들 틈에 끼어서 훈수도 두고 재롱좀 떨다 코피두 한곱뿌 얻어마시고 다시 골목길 탐험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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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얼마나 겪었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추억의 미원 진열대(?)  정말 오랜만에 본다.
그 밑에 추를 달아 계량하는 저울도 이젠 보기 힘든 골동품..

다시한번 이곳의 시간이 골목 바깥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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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의 골목길 탐험을 마치고 동네를 벗어나는 경계쯤에  일본식 적산가옥과 쌀집 간판뒤로 신식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새로움의 가치만을 추구하고 보다 크고 보다 높은 것들에 대한 열망만을 우선시하면서 반대로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대한 존중은 결여되어 가고 있다.

이 사진만 봐도 고층아파트와 대비되는 오래된 가옥 둘중 어느 것이 보기 좋은가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갈릴 것이다.

요즘들어 전국의 오래된 동네들마다 새롭게 칠을 하고 그림을 그려넣어 새상품처럼 바꾸고 관광지화 하는 사업이 엄청 늘어나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가 우리의 지나온 삶의 시간을 어떻게 여기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오래되고 낡았다고 무작정 허물거나 바꾸는 것 말고도 있는 그대로의 삶의 흔적들을 보존할 방법을 같이 논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낙후된 지역의 주민들의 불편한 삶을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되겠지만 통영의 동피랑이나 부산의 감천동처럼 벽화를 그리고 채색을 새로 해서 관광객이 몰리는 현상역시 거주민들에겐 더 많은 불편함을 강요하는 행위인 만큼 삶의 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시간의 흔적을 지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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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동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철길을 가로지르는 육교는 마치 현재와 골목의 다른 시간을 잇는 통로처럼 보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골목을 벗어나 현재의 시간으로 복귀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조금 더딘 그 곳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억 #1

사진가에게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서 그 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그런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는 측면에선 분명한
행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누구나 기뻐하고 환희하는 순간이 아닌 가슴 아프고 속상할 비극적
사건의 순간이라면  그 순간이 함께한 사진가에게 여전히 행운일까?

2008년 2월 대한민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버렸다.

국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방비 상태에서 허망하게 불에 타 무너져 내렸다.
대한민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한나라의 국격이 불에 타오르고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곳에 내가 있었다.

한번도 소중하다는 느낌은 커녕 그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외국인들을 보며
저게 뭐라고 찍냐며 힐난의 시선을 보내던 나인데…

붉게 타오르고 우지끈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서까래를 보면서 일렁이는 불길속에
내 마음도 일그러지고 도무지 원인을 알수없는 안타까움과 애끓음의 묘한 밤이었다.

화재 당일 절친한 후배 K와 서울역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후 스트로보를 구입한다는 후배K와 함께 남대문시장 카메라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부터 개방되어 조선시대  복식의 수문장이 지키는 남대문앞에서
외국인 관광객 요청으로 사진도 두어장 찍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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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눈앞에서 보게될 마지막 남대문일 줄은 그때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리고 후배 K와 홍대에서 간단한 테스트 촬영을 마치고 저녁겸 술한잔 하러 선술집에 들어서서
주문을 마치고 언몸을 녹이던 중 티비 뉴스에서 숭례문 화재 속보를 보게 되었다.

당시 화면에선 지붕위 기와 사이로 작게 흰연기만 모락 모락 피어 오르던 상황이었다.
나와 K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이어서 “우리 저기 가자” 라고 동시에 말을 꺼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차량 통제가 시작된 광화문 이순신동상앞에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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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도착했을 때 잠시 사그러졌던 불길은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소화방법 이견으로
지체된 틈을 타 처음보다 더 거센 불길로 숭례문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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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매고 있던 Contax G1 과 G28 Biogon 2.8 과 필름 여섯통으로 새벽까지
눈앞에서 국보1호와 더블어 함께 타오르고 무너져 내리는 국격을 기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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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꽤 오래 찍었고 서울의 지금은 철거되거나 재개발 되어 남아있지 않은 많은 공간과 장소들의 사진을 남겨왔지만 내게는 남대문 사진이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시내에 나가면 마주치는 게 동대문, 남대문이니 흔하디 흔한 풍경인데다
무려 국보1호로 지정된 유적이니 앞으로 사라질 걱정따윈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개화보나 웬만한 달력에선 전문가의 솜씨좋은 작품으로 늘 마주하니 내 스스로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한적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내손으로 남긴 사진 한장 없는 남대문이 그립다.
전문가의 솜씨좋은 남대문이 아닌 투박하고 보잘 것 없겠지만 온전히 내 시선과 느낌으로 담은

바로 그 남대문의 사진이…

그렇게 모두에게 아쉬움과 충격이었던 숭례문의 화재는 나에게 더이상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가치있다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다시 첫 문장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  ‘역사적 현장의 환희와 기쁨이 순간이 아닌  슬픔과 비극적 현장이어도 그 순간을 함께하는
여전히 사진가에겐 행운인가?’

나의 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더이상 마주하고 싶은 행운은 아니다.

화재이후 문화재청과 관할 구청인 종로구청등등 많은 담당 부처의 어긋난 공조로 인해
조기진화에 성공하고도 2차 발화로 인해 전소되다시피한 화재를 두고 늦장대응, 안일한 관리등이
질타를 받았고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의 
안전 방재 시스템의 점검과 재정비의
기회가 되었지만 8년이 흐른 지금 우린 그 뒤로도 
여전히 쉽게 망각하고 동일한 실수로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잃는 큰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결정적 사건의 현장과 마주하는 꿈을 꾸고 있다.
또 다시 
언제 이와 같은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순간이 행운이라며 내앞에 펼쳐질 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많은 이의 비애가 소수의 행운으로 작용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새마을 카페

서울 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

청수장을 향해 오르다 산장아파트 뒤편 개천을 건너면 북한산 국립공원과 인접한 덕에 개발이 늦어진 산비탈을 따라 아직도 많은 집과 골목이 서울의 옛향기를 머금은채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골목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좁은 골목과 언덕을 따라 오르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도 환한 웃음을 내어주길 마다 않는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과의 미소를 나누며 걷다보면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바로 새마을 카페다.
간판엔 새마을 슈퍼라고 쓰여 있건만 그앞에 모인 동네 어르신들은 한사코 이곳을 새마을 카페라 부르신다.

어린 시절부터 한동네에서 자라 환갑이 넘도록 한동네를 지키며 사는 김상사 아저씨 일당들..

천상병 시인을 닯은 대추나무집 아저씨부터 왕년에 장돌뱅이로 전국을 누비셨다며 트로트 한자락 기가막히게 뽑아내시던 회장님, 그리고 낮술에도 불구하고 저녁 성당 레지오 모임엔 틀림없이 가신다는 미카엘 아저씨등등…

낯선이의 방문과 촬영에 불편하실 법도 한데 그저 웃으시며 동네 이야기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막걸리 한사발까지 내어주시며 아낌없이 풀어내신다. 그 마음이 감사해 새 막걸리 몇병을 내어드리고 돌아설라치면 술사놓고 어딜 가냐고 자리 한켠을 내어주시며 함께하길 권하신다.

그야말로 생각치 못한 낮술이지만 영락없이 잡혀 앉아 이잔 저잔에 술을 채우며 귀를 세워 그 골목의 세월을 담고 눈을 열어 그 골목의 사람을 담는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지다.

술이 몇순배 돌고 쌓여가는 막걸리 병에 따라 나도 그 골목에 세월이 된듯한 묘한 성취감도 든다. 그렇게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 해져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서 산장아파트 앞 개천 다리앞에 서면 도로변 현대식 간판 불빛에 마치 타임슬립을 하다 현세로 되돌아 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그 작은 개천다리는 어쩌면 나에게는 서울의 과거로의 시공을 이어주는 포탈인 셈이다.

그렇게 초여름 어느 날 마주친 새마을 카페는 계절을 넘어 눈내리는 겨울까지 6개월간 지속되었으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열어 본 사진들을 보는 내내 그때의 기억들로 행복했다.
카페 멤버들의 근황도 궁금해지고 그리고 이렇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걸 보니 나는 아마 수일내에 새마을  카페에 낮술 한번치러 다녀오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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