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탐방기는 일부 불편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트 딜러인 바바라 글래드스톤(Barbara Gladstone)이 1980년 설립한 Gladstone 갤러리는 소호 Wooster 가의 작은 공간에서 첫출발을 시작하여 90년대에 첼시로 자리를 옮기며 현재까지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오너인 글래드스톤은 2012년 포브스지의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 기사에서 9위로 선정되기 했을 정도로* 명망 있는 딜러로 지금은 첼시 두 곳을 포함하여 뉴욕에만 세 곳,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세운 벨기에 브뤼셀의 갤러리까지 세계적으로 총 네 곳의 공간을 운영 중이다. Gladstone 갤러리는 사진을 포함하여 조각,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컨템퍼러리 예술작품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키스 헤링(Keith Haring)의 작품들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를 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첼시의 515 West 24번가에 위치한 전시 공간이다. 인도에 접해 있는 커다란 젖빛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어 있는 갤러리는 내부 배치에 따라 1, 2, 3 세 개의 전시홀로 구분되어 있다. 출입문 바로 앞에 위치한 데스크 뒤쪽으로 2 전시홀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간이벽을 사이에 두고 그 왼쪽으로 1 전시홀이 위치한다. 1 전시홀과 2 전시홀이 비슷한 크기로 메인 전시홀을 형성하고 있다면 갤러리 뒤쪽 좁은 통로를 지나 연결되어 있는 3 전시홀은 매우 작은 공간으로 천장에 난 자연채광창이 특징이다. 전시홀을 연결하는 좁은 통로 사이에는 사무실로 연결되는 별도의 문이 있다.
전시를 보기 위해 갤러리를 방문한 날**, 1 전시홀 한쪽에서 작품들을 둘러보던 장년 커플의 소곤대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Isn’t is disturbing? (좀 불편하지 않아요?)”
“So disturbing! (굉장히요!)”
우연히 듣게 된 대화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던 이번 전시는 바로 <Robert Mapplethorpe>. 작품의 소재와 표현 때문에 많은 논란의 중심이었고, 스스로의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없었던 듯 결국 후천성 면역결핍증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이다. 작가 사후의 순회 사진전이었던 <Mapplethorpe: The Perfect Moment>와 이를 둘러싼 법정 공방, 그리고 그 시기에 벌어진 수백 건의 논쟁***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작품들이 촉발시켰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아마 지금도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를 꼽으라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뉴욕 퀸즈의 가톨릭 가정에서 여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메이플소프는 특별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무언가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겠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그 방향성은 불명확했다. 특히 향후 그의 사진 세계를 지배한 핵심 주제인 동성애는 가톨릭 교육의 영향을 받았던 메이플소프가 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맹인 판매인의 가판대에서 훔친 동성애 포르노 잡지를 통해 처음 접한 이미지들은 향후 그가 죽을 때까지 천착하게 된 소재가 되는데, 이는 직접적인 성적 자극보다는 이러한 소재를 통해 오직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해 내겠다는 생각에 더 가까웠다.****
전시 작품 수는 총 50점으로 메이플소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한 육체, 성애의 이미지들과 함께 단아한 미가 느껴지는 정물 사진들, 그리고 몇몇 인물 포트레이트들이다.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메이플소프의 사진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주었고, 전시장을 거닐던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날 정도의 사진들도 제법 있었다. 반면 진짜 같은 작가의 작업인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정갈한 꽃 사진들은 매우 부드러운 미를 품고 있어 다른 작품들에 놀란 마음과 눈을 진정시켜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메이플소프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 퀸즈 플로랄 파크의 교구 성당에서 재임했고, 그의 장례 미사를 집전했던 스택(Stack) 신부는 메이플소프의 이러한 정물 작품들이 그가 찍은 다른 성향 – 동성애/S&M(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Sex & Magic*****) – 의 작품들을 상쇄해 주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는 사진가인 로 에쓰리지(Roe Ethridge)*******로 전시 작품들의 선정부터 배치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번 MOMA <Stephen Shore> 전의 언론 간담회 때 쇼어(Stephen Shore)의 말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전시에 관한 그의 생각이었다. “이번 전시는 제가 아니고 (큐레이터인) 퀜틴 바젝(Quentin Bajac)의 전시입니다. 제가 76년 MOMA 전시 때 받았던 조언 중 하나가 전시는 큐레이터에게 맡기라는 것이었죠. 제가 지금까지 쭉 지켜 온 조언이기도 하고요.”******** 전시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큐레이터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Robert Mapplethorpe> 또한 모든 작품을 리뷰하고 선정하고 구성한 에쓰리지의 전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작가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사진들의 선정에 있어 전적으로 큐레이터의 생각과 소신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금번 전시에서 사진들이 주는 임팩트를 특히 강화시켜 준 것은 작품들의 배치였다. 성애 이미지들 사이사이 병치된 정물과 꽃 사진들의 대비는 각각의 작품이 원래 담고 있던 느낌을 훨씬 배가시켜 주었다. 이러한 전시 구성은 메이플소프의 작품들을 바라 보고, 또 보여 주려 하는 큐레이터 에쓰리지의 관점이며 그러한 점에서 결국 그가 바라본 작가 메이플소프의 세계일 것이다.
Gladstone 갤러리가 뉴욕에서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대표하게 된 것은 작년 4월로 이제 일 년이 되었다. 그전까지 약 15년간은 Sean Kelly 갤러리가 뉴욕에서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대표하는 갤러리였다. 관련 기사*********를 보면 이전 갤러리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마무리하고 Gladstone과 시작하는 새로운 동거를 기대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코멘트가 나온다. 물론 예술가의 작품 세계와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 갤러리와 소속 작가들 관계의 시작이겠지만, 어느 정도 상업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본다면, 메이플소프 같은 유명인을 대표하게 된 건 Gladstone 갤러리에게 분명 득이 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생은 짧았지만, 그 뒤에 남겨진 발자취만큼은 결코 짧지 않았던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이미 그가 죽은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작품들이 뿜어 내는 힘은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강렬했다. 오래간만에 볕이 좋던 날씨인 지난 토요일 오후에 뉴욕 퀸즈 미들 빌리지의 St. John 공동묘지를 찾았다. 메이플소프의 뜻에 따라 화장된 유해는 그곳에서 그의 부모님과 함께 잠들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묘비 하나가 다인 곳. 온갖 논란을 불러왔던 예술가의 마지막 안식처는 몇몇 장례 행렬 차량을 제외하면 적막하리만치 고요했다. 마치 잠시 구름 사이로 비친 작은 햇살만이 그가 여기서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듯.
기본정보
- 갤러리명: Gladstone Gallery
- 주소: 515 W 24th St. New York, NY 10011 / 530 W 21st St. New York, NY 10011 / (Gladstone64) 130 East 64th St. New York, NY 10065.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s://gladstonegallery.com
*포브스 기사: https://www.forbes.com/sites/michaelnoer/2012/05/03/americas-most-powerful-art-dealers/#2beb0b1262a6 (크리스티, 소더비 등의 대형 업체 및 퍼블릭 갤러리를 운영하지 않는 딜러들은 선정에서 제외한 순위임.)
**18년 3월 9일 기준.
***진동선, <현대사진가론>, 태학원, 1998, p. 75.
****Patricia Morrisroe, <Mapplethorpe>, Random House, Inc., 1995, Location 492 of 8138.
*****같은 책, Location 2488 of 8138.
******같은 책, Location 188 of 8138.
*******Roe Ethridge는 Gladstone 갤러리 소속 사진가로 곧 전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갤러리 아티스트 소개 페이지 참조: https://gladstonegallery.com/artist/roe-ethridge/work#&panel1-1
********MOMA 전시 안내 페이지: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3769?locale=en.
*********Art News: http://www.artnews.com/2017/04/28/gladstone-gallery-now-represents-the-estate-of-robert-mapplethorpe/
갤러리 정문.
입구로 들어서 처음 마주하는 풍경은 데스크와 천장까지 맞닿은 높은 책장이다.
1 전시홀 풍경. 우연히 들려온 장년 커플의 대화는 내가 누구의 전시에 왔는지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2 전시홀 풍경.
좁은 통로를 지나면 3 전시홀로 이어진다. 3 전시홀에는 작가의 자화상 한 점만이 걸려 있었다.
왼쪽부터 <Pictures / Self Portrait, 1977>, <Pictures / Self Portrait, 1977>.
<Eva Amurri, 1988>.
왼쪽부터 <Lisa Lyon, 1982>, <Apples and Urn, 1987>, <Jim and Tom, Sausalito, 1977>.
왼쪽부터 <Freesia, 1982>, <Marty Gibson, 1982>, <Daisy, 1978>.
왼쪽부터 <Carol Overby, 1979>, <Phillip Prioleau / Cock, 1980>, <Azalea, 1979>, <Patti Smith, 1978>, <Watermelon with Knife, 1985>, <Baby Larry, 1978>, <Sean Young, 1985>.
위쪽부터 <Richard Gere, 1982>, <Robert Rauschenberg and Trisha Brown, 1983>.
<Self Portrait, 1988>. 죽기 직전 해의 자화상이다.
뉴욕 퀸즈 St. John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메이플소프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