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자기_건수자도

젠수이(建水)는 아름다운 도시다. 2009년 처음 왔을 때 아직 이곳은 고풍스런 한적한 도시였다. 십여 년이 지났건만 눈부신 개발 한편으로 옛것을 보존하려는 몸부림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젠수이는 윈난의 다른 큰 도시들에 비해 일찍 발전된 곳이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 말이기도 하다. 리장, 따리와 함께 윈난 3대 고성이 있는 곳이다. 중국 3대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 가운데 하나가 중원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창대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이방인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이곳은 일찍 유가풍의 문화가 자리 잡은 선비의 도시이기도 하다. 글줄이나 읽은 노인들이 심심파적 삼아 붓 놀이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먹을 것 볼 것이 풍부하고 소박하고 깨끗한 환경 덕분에 근래 중국에서도 뜨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젠수이 여행 마지막 날, 자도(紫陶)공방을 다시 찾았다. 첫날 도예촌에서 실망한 탓도 있으려니와 자도와 관련된 문화나 자도의 제작과정이 궁금하던 터였다. 형님을 졸랐더니 꽌시가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공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젠수이 자도는 우리에게 비교적 늦게 알려진 도자기다. 송대에 시작된 자도의 역사는 산업화와 함께 근래까지 다른 전통도자기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양길을 걸으며 명맥을 유지하다가 전통문화 부흥 정책과 보이차의 역대급 히트에 힘입어 근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천연의 오색토((五色土: 적, 황, 청, 갈, 백의 다섯 가지 색깔의 원료) 원료를 숙성시켜 기물의 형태를 만들고 상감기법으로 문양, 그림, 글자를 넣는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온(1150 ~ 1200 ℃)으로 소성한 후 숫돌로 물광을 내서 완성한다. 이싱의 자사호와 비슷한 듯 다른 점은 재료, 상감기법 그리고 물광을 내는 것 정도가 되겠다. 항아리, 병, 화분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들지만 근래에 차호로 각광받고 있는 아름다운 도자기다.

R0073062[오후 도자촌 거리는 한산하다. 작은 공방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섰다.]

 

R0073064[누가 오거나 말거나 저 할일에 집중하던 도공이 작업 한대목을 마치자 차를 내며 자리를 청한다. 잡히면 한 두개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아 사양하고 물러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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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쌍용교 근처 제법 갖추어진 공방을 찾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이 어리둥절한 여사장은 속살을 내어보이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R0073353[원료창고, 오색토로 자도의 원료가 된다. 소성되면 각각의 빛깔을 낼 것이다. 덩어리가 보이는 것은 괴상으로 보이지만 만져보면 분처럼 부드럽다.]

 

R0073356[제토과정을 거쳐서]

 

R0073352[정제된 원료를 숙성한다.]

 

R0073362[자사호는 대부분 판성형을 하는데 자도는 물레로 성형한다. 이름 없는 도공이지만 숙련도가 장난아니다. 공방에 소속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기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을 것인데…]

 

R0073359[성형된 기물이 어느정도 건조되면 형태를 다듬는다.]

 

R0073364[깍고 다듬고]

 

R0073365[또 깍고 다듬고]

 

R0073369[건조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 공방에선 철저한 분업이다. 제토하는 사람, 성형하는 사람, 다듬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상감하는 사람 등…20여명의 여성들이 지난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 마디 물어도 대꾸를 안한다…ㅠㅠ]

 

R0073367[밑그림이 그려진 자도 성형품에 그림을 따라 기벽을 파낸다. 색깔이 다른 흙으로 파낸 부위를 채우고 다시 다듬는다. 상감기법이다. 글, 그림, 문양 등 다양한 장식을 하는데 우리 정서는 아니다 싶다.]

 

R0073372[소성하기 전 바닥에 시그니쳐!]

 

R0073375[나서기 전에 전시장을 찾았다. 내내 쫄쫄 따라다니면서 낮빛이 울그락 불그락 하던 여사장이 이 대목에선 판매담당경리라면서 소개시켜 주고 방구새듯 빠져 버린다. 여우같으니라고…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깍아 달랬더니 자기는 깍아줄 권한이 없고 쿤밍과 젠수이 시내 총판이 있는데 그곳과 가격 차이가 나면 안된단다. 여사장이 도망간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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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물든 쌍용교가 교태롭다.

 

황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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经开区(jīngkāiqū)! 알아듣는 택시기사가 신기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김없이 데려다 준다. 낡은 것들이 쓸려나가고 매일 아침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이곳을 사람들은 ‘경제개발구’라고 부른다. 길 건너 우람한 정원이 드리워진 화려한 아파트촌이 펼쳐지고 그곳에 황금성이 있었다. 작년엔 없던 건물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기웃거려 보지만 황금성은 거대한 담벼락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한 동안 기웃거렸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다.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는 길 잃은 실레노스를 후대하였다. 실레노스는 디오니소스를 길렀다고 알려져 있는 그의 스승이다. 디오니소스는 스승을 잘 돌봐 준 미다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제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황금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디오니소스는 의아했지만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이제 미다스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이 되었다. 손이 닿자마자 황금으로 변하는 것은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통에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야 자신의 소원이 부질없음을 알고 철회해 줄 것을 신에게 간청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 신은 파크톨로스 강에 몸을 씻으라 명했다. 미다스 왕은 신의 뜻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에 몸을 씻은 후에야 원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부터 파크톨로스 강은 사금이 넘쳐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전한 이야기다.

길 건너 고치 구이 판을 앞에 두고 난장에 앉았다. 넘어가는 해가 걸린 황금성이 붉게 물들어간다. 부귀, 영화, 권력, 탐욕…너는 어느 것의 것이냐!

 

 

바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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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장 옆 야산을 허물고 터를 닦았다. 나는 이 때 이 양반이 차 장사나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멍하이, 2015]

사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가 조탁한 세계를 말하는 것 보다 괴로운 일이다. 언어로 묘사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세계와의 만남 또는 충돌 같은 것이어서 프로토콜 맞추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표정, 채취, 숨소리, 목소리, 생김새, 어투, 습관 따위를 섞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다른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내 세계로 걸러낸 주관이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주관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어서 내 세계로 걸러지는 것 말고는 받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를 그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능이다. 그는 반드시 나로 이해된다. 근원적 한계는 절망과 고통이다.

사내를 만나면서 시간의 두께만큼 사진이 모였다. 늘어놓고 보니 그가 조금 보인다. 글 몇 줄 붙여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말 하지마. 난 이제 한 살이여!” 세상 배우고 연습하는데 한 갑자 보냈단다. 이제 살아내기 시작한다는 사내. 용렬한 글로 무구한 어떤 것이 훼손되거나 멋대로 규정되지나 않을까 걱정 되지만 이 사내를 말하고 싶다. 그는 이 용렬한 글에 갇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매섭거나 모질거나 거칠거나 소박하거나 무구한 것이 뭉치고 섞여서 만들어진 사내는 한잔 술에 늘어진 빤스 고무줄처럼 자유롭다. 결핍을 버무려 불쏘시개로 태워 쓴다.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에 변덕스럽지만 동의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한다. 즉흥적이지만 손발이 움직일 때를 알고 행동 해야 할 때 사리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뿜지만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 따위를 담배연기에 짱박아 뱉을 줄 아는 낭만이 있다.

“야~피울아!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여서 그게 그이야긴데 본론이 무엇이건 결말은 언제나 자기자랑으로 갈무리한다. ‘기승전자기자랑’ 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맘에 들어 한다. 이 별명은 내가 지어준 것이다. 굳이 생색내는 이유는 누가 지어 준 것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먹기 때문이다. 매번 그렇다.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후천적 습득의 결과다. 천성은 공인이지 싶다. 천지를 후비고 다니다 차가 나는 산에 들어서 저 닮은 사람들과 섞여 놀았다. 그러다가 차 만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차는 밥이 되었고 사내를 뜨겁게 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 불러 모아서 놀고 싶다.
황제가 마시던 차를 만들어야지.
사람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주고 싶다.
그가 그린 풍광(그는 늘 ‘그림’이라고 말한다) 가운데 내가 아는 몇 가지다.

꿈의 성공은 꿈의 달성이 아니다. 내가 열 개의 풍광을 그렸을 때 그것을 전부 이루겠다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그린 풍광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 대부분의 풍광이 아직 그림으로 있지만 … 달성되고 달성하고 달성 할 것에 관한 정렬이 아니라 풍광(꿈 또는 그림 어떤 것) 그 안에 삶의 중심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물건은 품는 순간 의미와 가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꼼짝 없이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꿈은 … 꿈꾸는 자는 뜨겁다.

난 사내의 서사에는 관심 없다. 몇 살이고 고향이 어디고 따위의 과거 찌꺼기나 후비적거려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 뜨거운 물건을 아직 품고 있는 사내. 그가 그려놓은 그림과 만들어질 풍광이 궁금할 뿐이다.

그는 ‘바람의 꿈’ 그것을 품고 산다.

그대도 가슴 뛰는 풍광 몇 개쯤 품고 있겠지!

2015년 멍하이 창대한 땅을 고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창(차를 만드는 제조회사)을 열었다. 이방인이 이룬 창업이다. 고수차(100년 이상 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 바람이 불면서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10 여년 축적한 힘으로 공장 옆 산을 허물고 거대한 터를 닦았다. 고향에서 친구를 청해 축제를 열었다. 이 사내가 그림을 그리고 실현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고 그것을 심을 땅을 닦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그만큼 세운다. 맘에 안 들면 허물고 기다린다. 다시 때가 오면 또 쏟아 붓고…이곳은 그가 ‘바람의 제국’을 상상하고 그린 땅이다.

R0012654[고향에서 친구들이 왔다. 잔치를 벌이기 전에 고향방식으로 의식을 치뤘다. 뭉클한 감동이 일렁거렸다. @멍하이, 2015]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그가 보냈을 시간을 생각했다. @멍하이, 2015]

 

2017년 쿤밍, 복합문화공간을 열다.
차 시장을 버리고 경제개발구 심장으로 본사를 옮겼다. 생뚱맞은 이곳으로 옮기는 것을 모두들 의아해했다고 한다. 차 사업하기엔 인프라가 모여 있는 차 시장이 적합하다는 것은 상식에 관한 것이다. 도박 같아 보이던 시도는 ‘복합문화공간’을 겸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중국 전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 분야전문가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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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 차산에 초제소와 객잔을 만들겠다고 또 땅을 밀어 놓았다. 완전 신이나서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내려다 보이는 구름이 낮설기만 했다. 이무에서 노가를 통째 업어와서 덩그러니 세워놓았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다. @의방초제소터에서, 2017]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쿤밍,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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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의방차산, 2017]

[사내들의 방황이란 것이 본디 거칠고 고단한 맛이 좀 있어야 제격인 것이다. @시솽반나, 2017]

2018년 ‘바람의 제국’ 건설 중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벅찬 일이라고 했다. 공장건물이 들어서고 나면 이어서 객잔, 공연장, 전시장, 연구소 등이 차례로 들어설 것이다. 한 귀퉁이 뼈져달라고 했더니 아무 때나 와서 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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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과정을 조금이라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이 풍광은 감격이다.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제국은 공사중. @멍하이, 2018]

[새벽까지 취했다. “이 돌대가리 같은…” “해봤어?…해 보고 말해…”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그림을 그려…그리고 가…똑바로 가” “야이 멍청한 놈아!”. 자동 재생 중이다ㅠㅠ. @쿤밍, 2018]

[차산에 가면 표정이 바뀐다. 편하고 순하다. 돼지 쓸게 받아 들고 흐뭇하다거나 꼬봉 한놈 잡아 놓고 썰을 푼다거나 새로운 차밭은 획득한다거나 모두 즐거운 일이다. @멍하이, 2018]

R0073197[다시 그림을 그린다. @젠수이, 2018]

 

 

 

 

 

떠남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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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는 인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한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부유浮遊했고 그렇게 수만 년을 흘러 다녔다. 매순간 만나는 위험과 공포에서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날선 긴장 말고는 없다. 여행을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과 흥분은 꼬리뼈 흔적마냥 부유하던 그들의 유전자가 남은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떠남은 본능적 작용이고 새로운 세계(세상)와의 만남은 필연적 결과일 수밖에 없다.

기필코 떠나야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내 주변머리로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삶이 정주가 아니라 여행이길 바랬다.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이 삶을 닮은 것인지 삶이 여행을 닮은 것인지 아니면 삶이 여행 그 자체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삶이 여행이라면 나는 왜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것인가!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나를 떼어내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숭고한 의식이며 순례다. 나를 내게서 떼어내 낯선 곳에 팽개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 숲에서 멀어져야 숲이 보인다.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나를 떼어내 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기실 순례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안목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순례자를 만날 수 있다. 회사에서 거리에서 마트에서 만원 지하철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간다. 그것은 마치 오체투지의 간절함이나 절정과도 같아서 뚜벅뚜벅 진리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운남으로 가야할 이유 따위는 없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익숙함과 익숙한 곳에서 그리던 낯섬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떠나온 그곳이 두발 꼭 붙이고 있어야 할 곳임을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돌아 와야 할 이유를 얻는다. 일상의 찬란함이 발견되는 순간이다.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에서 만원 버스와 지옥철에서 섞이지 못하고 박리된 나는 꼼짝없는 이방인이다.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객관적 기록으로 관조할 수 있다. 동동거리는 세상을 낯선 곳에서 발견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곳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처는 치유된다.

여행은 육십억 가운데 하나이던 내가 ‘육십억 가운데 유일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따분하고 존재감 없던 내가 나로 빛난다. 일상이 미늘달린 바늘을 삼킨 것 마냥 토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여행은 온전히 내 것인 냥 순하고 편안하다. 이 시간 안에서 비로소 나는 일상과 유리되어 일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아웃포커싱 되고 나는 세상의 주연이 된다. 생각하고 말하고 쓰고 움직이는 것이 달라졌다. 어제보다 찬란한 오늘이다. 이 순간도 결국 삶 한 덩어리 뭉툭 베어 쓰는 것이므로 삶의 살덩어리다. 일상에 함몰되어 쪼그라든 나는 사라지고 빛나는 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여행은 ‘만남’과도 맞닿아 있다. 떠나서 만나게 되는 것인지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떠남은 만남을 전제하고 만남은 떠남을 전제한다.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으니 결국 떠남과 만남은 동의어인 셈이다.

나를 떠나서 나를 만나고 나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자.

어쩌자고 또 가슴이 벌렁거리는가. 길 떠났던 먼 조상들의 부름이 잠들었던 유전자를 깨워놓고야 마는 것인가. 생활에 목매고 있지만 짐짓 그렇지 않은 듯 살 수 있길 바란다. 나란 놈은 굴림 하는 것도 굴림 당하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 생활과 관습의 봉인을 해체하고 나란 인간에게로 좀 더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내면적 울음에 기꺼이 보내는 위로, 그리고 아직 가 보지 못한 길로 들어서고 싶다. 내면의 깊고 광활함을 확인하고 싶다. 열린 가슴으로 교만을 내려놓고 더 낮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라. ‘해냈느냐?’라는 세상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해냄’으로 ‘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이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여서 내겐 여간 곤혹스런 것이 아니다. 움켜질수록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것. 정제되지 못한 욕망에 대한 반성, 세상의 욕망은 성숙한 심연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잘 쓰고 싶다. 여행은 그것을 배우는 것이다.

 

관도고진,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일요시장,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with GR

 

 

 

안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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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남쪽. 그곳은 피안이고 동경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이곳이 어째서 피안이고 동경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지 않지만 하도 오래 되서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잊어버렸다. 그땐 투하된 노력이 최소한 대등한 경제적 가치로 치환되어야 옳다고 믿었다. 투입은 줄이고 산출을 늘이려면 계획을 짜야 했고 가성비를 높이려면 그것은 더 치밀해야 했다. 바쁘게 움직였다. 계획에 맞춰 움직이고 먹고 볼거리를 찾아 다녔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면서 뿌듯했고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깃발 따라 찍고 찍고 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갑다고 생각했다. 난 그들보다 좀 다른 … 더 깊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 문득 생각났는데 윈난에 대한 로망은 ‘천룡팔부’로부터 시작되었지 싶다. 단씨성을 가진 바람둥이 녀석이 주유하면서 만나게 되는 기연과 사랑의 대서사시는 어른이에게 더 없는 재미였다. 북송과 요나라가 대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서하, 토번, 대리국에 이르는 거대한 스케일을 담아낸 ‘천룡팔부’는 김용(필명)의 구라가 절정에 이른 시절 발표한 무협지다. 단예, 교봉, 허죽 3형제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적 느낌의 이야기는 저리가라. 선술과 요술이 낭자하게 펼쳐지고 기연을 얻어 얼떨결에 신공을 익히고 초절정 고수가 되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다. 절세미인을 만나 사랑이 싹트지만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라네. 두둥!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의 원인제공자 되시는 단예의 아버지. 이야기 캐릭터 중에서 제일 부러운 이 양반은 대리국 15대 황제 단정순을 모티프로 만든 캐릭터 되시겠다. 젊은 시절 천하를 주유하러 갔다가 만나는 모든 미녀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훗날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소설 막판에 갈등이 해결되고 자신의 여인들과 함께 스스로 최후를 맞는 의리의 카사노바 아저씨. 그 아버지에 그 아들(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닌 것으로 결론나지만) 단예란 놈도 마찬가지다. 부러운 놈.

그래서 … 아무튼 사랑과 모험이 넘치는 이곳은 상상속 샹그리라였다. 왕소저나 목꾸냥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희미해질 무렵 이야기의 무대가 실제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산과 강이 갈라놓은 작은 문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하는 그곳이 궁금했지만 아직은 로망일 뿐 닿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푸얼차와 다큐멘터리 ‘차마고도’가 아니었다면 운남은 아직까지 상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안오냐?”
“가야죠!”
“언제 올래?”
“마음은 거기 살아요.”
“후다닥 다녀갈 거면 오지마.”
“…”
“여긴 그러고 와서는 몰라. 적어도 한 달은 작정하고 와라.”

계획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 말고는 정한 것이 없다. 눈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어디라도 가게 되면 가겠지. 처음 며칠은 어슬렁거렸다. 눈뜨면서 찻물 올리고 있으면 화롯불을 바쳐들고 할아버지가 올라오신다. 차 마시다 할머니 차려 놓은 늦은 아침을 먹거나 집 앞 식당에서 미시엔(운남 쌀국수)이나 콩국물과 튀긴 빵을 먹었다. 차실에 가서 놀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해질녘엔 친구만나 한잔하고는 꽁꽁 얼어서 들어왔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차곡차곡(차와 술을 번갈아 마시는 것) 뼈가 녹았으면 싶을 만큼 마시기도 하고 이마저 시큰둥해지면 츄리닝 바람으로 안마집가서 코를 골았다.

말하자면 이곳은 쿤밍에서도 신도시랄까! 경제개발구로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현대식 초고층 건물에 삐까번쩍한 세단부터 70년대나 있을 법한 풍광이 공존한다. 물론 옛 풍광들은 쾌속으로 지워지고 있다. 거리 노점 뒤로 황금빛 초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하수도 시설도 마무리 하지 못한 너덜너덜한 길목에서 화이트칼라 삐끼들이 분양광고 짜라시를 돌리는 활화산 같은 이곳에서 동네아저씨마냥 어슬렁거리면서 눌러 놓은 기록 몇 장을 늘어놓고 보니 쌉쌀하던 공기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여행! 잘 하고 온 것 같다.

Kunming, Yunnan, China / 2017. 12

남는 건 사람 뿐

초상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 사람이 전부다. 이번 여행에선 TC-1 덕분에 MP에 50mm를 물려 떠났다. 덕분에 초상사진이 다른 여행에 비해 많이 남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미지를 보는 순간 잊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났고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Leica MP + Summicron 50mm + 400TX
Ricoh GR

사족: 각 인물들과의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이다 사족 같아서 결국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아쉬워서 또 사족을 단다. 처음 인연이 다수지만 이미 십년이 넘은 인연도 있고 몇년 째 만나는 친구도 있다. 늘어 놓고 보니 남기지 못한 기록이 많다. 취재 설계 따위를 하지 않으니 계통이 있을리 없고 나중에 끼워 맞추자니 엉성하고 남루하다. 의미여서 찍은 것인지 찍어서 의미인 것인지 더더욱 모르겠다.

남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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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떠난 화살 같다는 따위의 표현이 마뜩찮지만 허망한 시간을 표현할 마땅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겠다. 여행을 다녀 온 지 반년이 흘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자마자 심장이 팔닥 거리며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불편하고 불안한 기분은 어미품을 떠난 아이같다. 피안에서 멀어지는 듯 팍팍한 현실로 쾌속 돌진하는 비행기 소음이 몹시 거슬렸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으나 지난 시간들이 영사기를 돌려 놓은 듯 흘렀다. 3할 쯤은 투덜거리면서 보냈고 3할 쯤은 의무감으로 보냈으며 3할 쯤은 즐겁게 마시고 떠들며 보냈지 싶다. 잘난 척 하느라 1할 쯤 썼을 것이다. 작은 시비 때문에 심장이 새가슴처럼 촐싹거린다거나 여러 사람 빈정 상하게 한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면구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이 어렵지만 또 그렇다고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탓에 매순간 성찰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돌아와서 제법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운남에서 하얀 밤토록 나눈 여러 가지 모색들을 그려내거나 구체화를 도모하는 시도는 하지 못했다. 소심함이 병통이라 내지르지 못한 탓이다. 그런 와중에도 차 벗을 만나러 의정부, 광주, 이천, 괴산, 부산으로 짬짬이 다녔다.

“피 선생 뭐해”
“예~~서울이에요.”
“언제 와?”
“모레 내려가요.”
“주말에 우리 집에 차 한잔 하러 와”
“누가 오세요?”
귀한 차 벗을 만나고 똘 끼와 개그 충만했지만 진지함을 잃지 않은 농염한 다담이 늦은 밤토록 흘렀다.

“선생님! 뭐하세요?”
“풀 뽑아~~”
“한 번 내려오세요.”
집 근처 차방에 둘러 앉아 이 차 까고 저 놈 까면서 놀았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하고 생산적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뉴비(newbie)들을 위한 심플하고 담백한 아카데미도 필요할 것 같은데…이런 고민을 나누다 피곤해지면 다시 운남이야기로 돌아오곤 했다.

운남은 이렇듯 휴식 이었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 있으니 다시 다녀와야지. 이번엔 대설산쪽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샹그릴라에서 시작해서 훑으면서 내려 와도 좋겠다. 호도협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사람들 발걸음이 비교적 한적한 서쪽 변방이나 동쪽 변방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필름에 남은 흔적들 / Leica MP + Summicron 50mm 4th + 400TX & Minolta TC-1]

나른하고 느린 며칠

2017. 2. 27 ~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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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고 느린 며칠을 보냈다. 뜻하지 않게 생긴 시간이다. 한 곳쯤 더 다녀와도 될 시간이었지만  제법 지쳐 있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닥친 스펙타클한 일정이었으니까…늘어져 뒹굴거리기로 했다. 일정을 마무리하는 의식 따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텐션을 풀어놓고 며칠 보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골목 구석구석 쑤시고 다니면서 낡은 흔적을 뒤적였다. 새로 지어진 건물 사이에 흙으로 쌓은 두툼한 담장과 공동으로 사용하던 화장실이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 담장 아래로 노출된 하수도라거나 그 곳에 오물을 갖다 버리는 아낙들 간혹 눈에 띄었다. 커다란 멧돌이 나뒹군다거나 절구 따위가 대문간에 방치된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이었다. 마음 닿는 곳에 이르러서는 상상과 공상을 더해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마실 나온 어르신들과 더듬더듬 소통을 시도했다.

걷다기 지겨우면 차실로 갔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가면서 차 마시다 배고프면 한상 차려 먹고 또 느긋하게 차나 마셨다. 리리랑 놀다가 방군이랑 차마시다 송문이랑 사진이야기도 좀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하는 친구들 방해도 하다가 기어코 지겨워지면 택시를 탔다. 새로 사귄 풍골에 가서 쇼핑도 하고 시내서 사람 구경 하다가 저녁엔 술친구 만나서 상다리 부러지게 삥 뜯어 먹고 얼큰해져서 돌아왔다. 이렇게 꽉 채운 이틀을 보냈다. 개강날짜가 다가왔으니 내일이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지.

혼자서 며칠 더 계셔야하는 선생님이 걱정이다.
“내일 같이 돌아가시죠?”
“응, 안 그래도 좀 그래”
“저 없으면 재미없으시잖아요? 당주는 안 놀아 주던데…”
“ㅋㅋㅋ 피선생 가고나면 뭐 딱히 할 것도 마뜩찮고…”

스케줄 조정을 서둘러 마치고 꿈 같은 마지막 밤을 맞으러 나섰다. 명흥에 들러 묵은 회포를 배가 찢어지도록 풀었다. 밤의 주인이 바뀔 무렵 불이 다 꺼진 차 시장에 들러 늙은 차를 마셨다. 곡강에게서 차산 이야기라든가 늙은 차 구한 이야기 듣는 것은 흥미진진이다. 보이차 무협지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곤명. 그 깊은 밤!

2017. 2. 26 곤명으로

사위가 조용하다. 가라앉은 공기가 적막함을 더했다. 좁은 침대공간에서 뒤척이다가 창에 얼굴이 닿았는데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가 없는 것을 보니 버스는 제법 긴 시간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다. 야간 운행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운행이 금지되고 기사들이 쉬어야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버스안에 사람들이 하나 둘 뒤척이기 시작한다. 정신은 깨어났는데 눈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랫배에 가득찬 액체를 비우고 싶지만 몸도 쉬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물 먹은 솜뭉치마냥 무겁다. 떫은 감을 세 개쯤 씹고 있는 듯 텁텁한 입도 헹구고 싶고 냉수에 머리도 빨았으면 좋겠다. 젖은 창을 발로 문질렀다. 얼마나 왔을까? 주위를 살폈다. 자욱하게 내려 앉은 안개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지만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아뿔싸! 차에서 내려보니 단지 정차중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까딱 했으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바로 앞에서 커다란 트레일러가 허리를 접고 도로를 막고 있었다. 지난 밤에 일어난 사고였다. 다행인 것은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사고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시야가 닿는 끝까지 차들이 늘어섰다. 얼마나 막혀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걷거나 쉬거나 볼일을 보거나 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는 사이 날이 밝았다. 이윽고 공안들이 왔고 또 한참을 수석거리다가 아침이 익어서야 길이 열렸다. 밤새 달려왔건만 아직 반도 못 온 모양이다. 눅눅한 길을 달리던 버스는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정차하고 말았다. 이번엔 무장한 군인들이다. 검속이 만만치 않은 코스인데다 곤명터미널 칼부림 사건 이후 검속이 강화 되었다고 했다. 외국인들만 잔뜩 탄 침대버스가 뜬금없이 새벽을 달리는 상황이 그들을 긴장하게 했을까! 당주와 건군이 긴 시간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했고 거둬간 여권을 한동안 뒤적거렸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 중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위협적이었다. 야리는 폼새가 찍지 말라는 거다. 그렇다고 안 찍을 수야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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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렇게 가다가는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 떠나올 때도 쉽지 않더니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네.

“피 선생! 같이 며칠 더 있다 갑시다.”
당주도 거들었다.
“일찍 가면 뭐 할 거 있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거여!”

일정을 조율해 보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건군에게 비행기 스케줄 조정을 부탁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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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가 지나서 곤명에 닿았다. 공항난민 신세로부터 꼬박 하루만이다. 일행들도 모두 잘 견뎠다.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했다. 긴 하루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일행은 차 시장 관광을 떠났다. 이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차우회 때 개발해 둔 차도구점을 소개했다. 죽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인연과 질, 가격 모두 괜찮은 곳이었다. 몇 대의 승합차에 나눠 탄 일행은 지묵당 직원의 안배를 받으며 떠났다. 불현듯 찾아 온 고요와 평화가 주는 안도감이라니. 이럴 때는 차를 마셔야 한다. 차와 함께 삼매에 있을 무렵 반가운 손님이 래방 했다. 곡강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감로 같은 술과 벗이 함께 있으니 놀기 좋은 밤이다. 늦은 밤토록 먹고 마셨다. 이날 밤 곤명은 몹시 추웠다.

…이어서

곤명으로

2017. 2. 25 / 곤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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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없는 날이다. 오늘처럼 손이 비는 날은 찌짐에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 아침부터 과년한 남자들이 한방에 모여 앉아 차판을 벌렸다. 보이차가 재미있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야기 꺼리가 많다는 것이다. ‘오~~차 좋네요.’ 이러고 나면 할 말이 심심한 다른 차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다. 독특한 역사, 문화, 풍광을 지닌 운남이라는 지역적 배경과 광대하게 펼쳐진 차밭들, 산을 넘을 때 마다 달라지는 족속들과 그들의 차별적 문화, 보이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들, 노차에 얽힌 전설과 실체적 흔적들, 공산화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일어난 질곡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뒤섞여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화수분이다. 까야 제 맛이라고 성토로 끝나기 일쑤인 차판 이야기가 오늘은 무척 건설적이다. 총론은 언제나 옳다.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는 각론에서 사단이 나는 거지.

차 마시다 지겨워지자 강가를 어슬렁거렸다. 한적한 곳이라 산책 말고는 할 것도 없다. 사람 구경이라도 하려면 차를 타던지 해야 하니 성가신 일이다. 정돈된 길을 따라 식당과 차방들이 늘어섰고 사이마다 별장들이 무식하리만큼 고급지게 들어앉았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반동이 함께 일렁거렸다. 욕망하지만 땅을 딛고 선 발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뱉어내지 못한 욕망은 그렇게 반동이 되고 외소하고 영세한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움직였다. 이제 이 여행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돌아가야지. 15시에 출발한다는 비행기가 온다간다 말도 없다. 30분, 한 시간, 두 시간 … 아~~역시 짱꼴라야. 이래야 중국스러운거지. 어째 너무 순탄하다 했어. 당주와 건군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상황을 추적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항공사 대답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항공 경로도 확인하고 날씨도 확인해 보지만 어째 느낌이 좋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은 기약 없이 길어진다. 세 시간, 네 시간 … 일행들은 지치다 못해 꺼져버릴 지경이다. 돌겠네 진짜.

15시에는 떠야하는 비행기가 22시가 되어서야 취소되었다. 느닷없이 28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이다. 당주와 건군이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힘들더라도 오늘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내일도 기상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거니와 나는 내일, 일행은 모래 한국으로 떠나야하니 버스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경에 텐션이 걸린다. 당주와 건군이 상황을 체크하고 스케줄을 조율하는 사이 나는 일행들을 인솔해서 역 수속을 밟아야 했으며 실어 보냈던 짐을 다시 찾아야 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흐트러진 좌중의 멘탈도 수습해야 했고 돌발적인 행동들도 통제해야 했다. 찾아 놓으면 금방 없어지고 또 찾아 놓으면 다른 사람이 사라졌다. 화장실 같다는 사람을 면세점에서 찾아오는 따위의 촌극이 수시로 벌어졌다. 겨우 수속을 마치고 빠져 나왔는데 또 몇 사람이 안보인다. 아이고야~~

“선생님들! 지금부터는 개인행동을 삼가 해 주십시오. 화장실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움직이실 때는 반드시 2명 이상 함께 움직이시고 저나 여기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움직이셔야 합니다. 이동 간에 서로 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짐은 각자가 챙겨 주십시오.”

늘어져 꺼질 지경이 되어서야 우리 일행을 태우겠다고 버스가 왔다. 살펴보니 곤명은 고사하고 징홍을 벗어나기도 전에 분해되고 말 것 같은 중형버스 두 대였다. 상황이 점점 꼬여간다. 일행은 스트레스와 기다림에 파김치가 되어갔다. 갖은 삽질끝에 다시 버스를 섭외했으나 징홍까지는 알아서 이동해야 했다. 빵차, SUV, 승용차등 여러 대에 짐과 사람을 실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아직까지 멘붕 상황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환자라도 발생하면 정말이지 낭패지 않은가. 몇 팀으로 나눠 이동한 탓에 다시 모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들 간에 의사소통 역시 한번 만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후~~이 징그러운 놈들!

한참 만에 이고 진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여기저기 흩어져 도착한 사람들을 수습하고 보니 하늘이 뱅글뱅글 돈다. 인원파악만 수십 번은 했나보다. 비행기 요금 보다 비싸게 대절한 버스는 침대가 놓인 럭셔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행들이 하나 둘 버스에 타는데 버스 기사가 뭐라고 떠들더니 급기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지 놈 자리를 차지했던 모양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일행들이 알아 들을 리 없을테지만 그 놈은 저 하고 싶은 욕지거리를 실컷 쏟아내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일행은 징홍을 출발할 수 있었다. 침대버스가 처음인 일행들은 버스가 출발하자 셀카를 찍는다거나 하루를 회상하는 수다로 다시 시끌벅적하다. 전쟁 같은 시간을 겪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다행이다. 피곤한 하루였다. 불편하나마 머리를 둘 수 있는 자리를 얻었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 꺽다리(창 사장)가 사다준 옥수수를 빨면서 깜깜한 밤을 달렸다. 오후 내 굶었더니 속이 쓰리다. 차나 한 사발 들이켰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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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