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EI 35 SE

나에게 필름 카메라는 M6 하나로 차고 넘치기에 다른 카메라 따위 눈 하나 팔지 않았다. 다른 카메라의 부류에는 지인이 쓰던 롤라이35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 오밀조밀 이쁘장하게 생긴 색다른 매력의 카메라는 당시 내게 일말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했다. 한창 라이카와 사랑에 빠진 탓이리라.

밀월은 달콤하나 짧을 수 밖에 없는 운명, 라이카시스템은 수려하면서도 충분히 실용적이었지만 필부의 일상을 함께하기엔 그 잘난 몸값이 늘 걸리적거렸다. 앞만 보고 달리던 경주마의 눈가리개가 벗겨진 듯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 마침 이 곳 비급매거진에 “Minolta TC-1 Review”라는 천민수님의 필름카메라 리뷰가 포스팅되었다. 화사한 샴페인색으로 화장한 조막만한 얼굴에 G-Rokkor 28mm f3.5 렌즈는 컬러와 흑백을 넘나들며 발군의 성능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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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은듯 신이 난 나는 곧장 이런 덧글을 남겼다.

“흑백도 좋지만 쬐그마한 녀석이 뽑아주는 컬러에 마음이 빼앗겨버렸습니다. 손에 들린 도구에 따라 찍는 이의 마음가짐도 변하기 마련인지라 엠육의 엄숙함을 이런 녀석이 벗겨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장비리스트에 올려둡니다.”

나는 곧장 미놀타 TC-1, 콘탁스 T3 같은 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간 귓등으로 듣던 얘네들 몸값이었는데 중고 거래가를 직접 확인해보니 진짜 장난없다. 특히 T3는 몇몇 셀레브리티들이 소장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치솟아 M6랑 몸값으로 비등비등하다. 모시고 다니려 찾는 카메라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고민의 실타래는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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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 내쳐진 씨앗일지라도 적절한 수분과 볕이 주어지면 싹이 트는 법인가.

지름에 고민하는 어둠의 다크에서 문득 송도 바닷가에서 지인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카메라, 롤라이 35가 운명처럼 생각났다. 시세 확인을 위해 당장 장터로 향했다. 싱가폴/독일, 실버/블랙, 35/35S/35TE 등 언뜻 봐도 그 종류가 방대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필름똑딱이들에 비하면 대체로 부담없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노출계와 구도확인용 파인더가 장착되어 있고 노출은 100% 소유주에게 종속적인 매뉴얼 설정방식이다.

1966년 첫 생산을 시작한 롤라이35는 당시 35mm 범용필름을 장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카메라였다. 하지만, 자이스社의 Tessar렌즈와 1/500초를 지원하는 Compur셔터 그리고 고센社의 CdS미터를 사용하는 등 성능은 결코 작은 카메라가 아니었다. 다만, 렌즈 촛점거리는 롤라이35라는 이름과 달리 40mm였고 목측식 초점방식이라는 점이 다소 걸림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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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학습은 여기까지로 하고 설계자로 불리는 지인의 영도를 받기로 했다. 메신저로 롤라이 35에 대해 문의하자 모니터 너머의 그는 자세를 고쳐앉더니 롤라이35의 탄생과 배경부터 실타래처럼 엉겨 복잡해보이던 다양한 롤라이35 시리즈를 꼬치꿰듯 한방에 정리해주는 신기神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가 덧붙여 보여주는 롤라이35의 결과물은 Summicron에 결코 뒤지지 않는 샤프함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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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2_35_m6 hp5 9호관사(2) 송도
leica m6, summicron 35mm,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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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_22_후지기록용100 롤라이35 오도리 효자동 산책
rollei 35 se, sonnar 2.8/40, fujicolor 100

(라이카는 35mm, 롤라이35는 40mm인 초점거리 차이로 원근감 차이가 있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면 가격 차이가 무색해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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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카메라라는 지인의 개런티까지 보태어 나의 세컨 카메라는 이미 롤라이35로 결정되었다. 이제 장터링만 남았다.

“제꺼 쓰실래요?”

문득 건네는 그의 말이 놀랍고도 다행스러웠다. 안그래도 판매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멀리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느니 가까운데 보내면 좋겠다라는 그의 말. 혹시라도 쓰다가 팔 생각이면 자기에게 팔아달라는 조건과 함께 나는 운명처럼 영혼 충만한 그의 롤라이35SE를 분양 받아냈다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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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i 35SE 모델은 1979년에서 1981년 싱가폴에서 15만대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델은 롤라이35S 기반에 CdS 노출계 대신 전자식 노출계가 장착돼있어 뷰파인더에서 LED 불빛으로 노출 과부족을 확인 가능하다. 렌즈셔터는 벌브~1/500초를 지원하고 Sonnar 2.8/40 렌즈는 f2.8~22, 감도는 25~1600까지 세팅할 수 있다. 특히 조리개 설정시 다이얼 하단에 Lock버튼이 없는 모델이므로 뷰파인더에서 노출을 확인하면서 조리개 다이얼을 손가락 감각만으로 조정할 수 있어 더욱 실용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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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비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까지 패키징되어 온다. 요 며칠 40년 된 카메라로 출퇴근길, 동네 산책을 함께 했다. 손목스트랩을 걸고 손바닥으로 감싸면 손아귀에 폭 안기는 컴팩트한 카메라지만 335g의 무게감이 그리 만만치 만은 않다. 일포드 hp5+ 1롤과 후지필름 기록용필름 100 2롤을 사용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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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롤라이35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사용소감을 적어보면,

(그닥 많은 카메라를 섭렵해보지 못한 처지라, 주된 비교대상은 롤라이에게 ‘에브리데이-캐리-카메라’ 자리를 잠시 내어 준 라이카 엠육이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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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엠육은 셔터를 장전해야 노출계가 동작하는 반면 롤라이35는 미장전 상태에서도 반셔터로 노출 확인이 가능해 편리하며, 카메라 내장노출계는 외장노출계 값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정확한 수치를 제시해 줌

둘째, 목측식이라 초점에 대해 걱정했으나 풍경 혹은 사물 위주의 스냅일 경우 “피사체와의 거리추정-초점값 세팅-노출확인-조리개/셔터속도 조정-프레이밍-촬영”등의 순서로 차근차근 진행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음. 다만, “프레이밍-초점세팅-노출확인/조정”이 동시에 가능한 라이카시스템에 비해서는 촬영이 두, 세호흡 느릴 수 밖에 없어 순발력이 필요한 스냅에는 활용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됨

셋째, 35mm도 아니고 50mm도 아닌 어정쩡한 40mm 초점거리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몇 롤 찍어본 소감으로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래서 너무 들어갈 필요도 물러날 필요도 없는 균형감 있는 초점거리인듯 함. (35mm와 달리) 인물을 중심으로 (50mm와 달리) 주변 풍경을 살짝 녹여넣을 수 있어 가족 나들이에 적합해 보이기도 함

넷째, 셔터와인딩과 셔터릴리즈의 감각은 라이카의 그것과 비교할만한 것은 아님(가격도 그러하니 뭐). 라이카의 조작감에 대해 흔히 얘기하는 “Silky smooth’가 이런거였구나를 새삼 깨닫게 됨. 그렇다고 롤라이 만듦새가 토이 수준이거나 그런 것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라며, 조작감 측면은 라이카가 월등해서 생기는 차이일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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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35는 이른바 ‘찍는 재미’가 있는 카메라다. 손목에 걸고서 가벼운 마음 가벼운 발걸음에 스치는 풍경 목측으로 어림잡아 담아내야 만 카메라. 초점이 맞는지 맞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런게 중요하지 않은 카메라.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란 걸 일깨워 주는 카메라가 바로 롤라이35라는 생각이 든다.

기껏 한달 써보고 끄적이는 글이라 나중에 이불킥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사용 초반의 경험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며 롤라이35 입문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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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I 35 SE with “Ilford HP5+ Black and white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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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I 35 SE with “Fujifilm 記錄用 100 Color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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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i 35SE : BW vs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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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지 않는 캠퍼스

6월 20일 오전 9시 30분. 전국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관계자들은 이날 교육부의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올 초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대학 기본역량진단 1단계 평가에 대한 결과였는데, 비록 잠정결과라고는 하나 평가 대상교의 64% 비율로 합격 판정된 자율개선대학의 범주에 들지 못한 탈락 대학은 정원감축 권고와 정부 재정지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일부 대학들에는 그야말로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발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정대로 발표된 ‘살생부’로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4년제 대학 120개교, 전문대학 87개교가 합격으로 안도의한숨을 내쉰 반면, 4년제 67곳, 전문대 49곳 등 116개교는 정원감축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정부는 이들 대학의 정원을 총 2만 명 가량 줄일 계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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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학 정원이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른 원인은 90년대 대학설립 간소화로 무분별한 대학설립에 따른 정원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정원은 60만 명 수준으로 2000년도만 하더라도 대입자원인 학령인구는 80만 명 수준이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대학이 학생을 골라서 선발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6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2020년 이후엔 50만 명 아래로 급감할 예정이다. 즉, 대입자원 전원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대학 재정이 탄탄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90년대 등록금 장사를 위해 설립된 사학들 재정이 여유로울 리 만무하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부실사립대학의 대량 폐교사태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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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러한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1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사업 초기 54만 명이던 대학정원을 48만 명 수준으로 5년간 6만 명 가량을 감축하였다. 이어서 올해 후속으로 추진되는 2주기 대학구조개혁사업은 ‘대학기본역량진단’이라는 형태로 대학 전반에 걸친 평가를 통해 대학별 ‘체력’을 평가하고 함량 미달인 대학들은 정원감축 권고 또는 정부재정지원의 제한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골자로 하고 있다.

수 년간 지속하고 있는 대학등록금 상한제(라고는 하지만 실질적 동결)와 부실사립에 대한 정원감축으로 인해 실제 대학이 문을 닫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12년부터 올해까지 12개 대학이 폐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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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찾아뵙는 처가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2017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폐교된 학교가 하나가 있어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 대학 정문 주변은 이미 대형화물차들의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낯설게 변해버린 주변 풍경 속에 활짝 열린 정문은 아직 이곳은 학생들의 마음과 추억이 떠나지 않은 캠퍼스라며 큰 소리로 시위하는 듯 보였다. 나는 정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화창한 날씨가 무색하게 캠퍼스에서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을 학생들은 보이질 않는다. 사람 손이 타지 않는 것은 조로(早老)하는 것일까. 본관까지 이어진 캠퍼스 중심도로 양옆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등하교 시 북적였을 법한 통학버스 정류장과 텅 빈 게시판, 해진 채로 힘없이 펄럭이는 본관 앞 태극기는 버려진 캠퍼스의 안타까운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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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 교육정책의 폐해는 앞뒤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온 우리 사회의 업이라 흘리기엔 아픔이 절대 만만치 않을 듯하다. 특히, 2주기 구조조정에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린 지금으로서는 대학 간 통폐합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학사회는 변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불어 폐교 후 캠퍼스 토지와 건물, 교육/연구용 기자재 등과 같은 학교 기본자산의 처분방법, 재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지역 경제의 직격탄이 될 교직원의 실업 문제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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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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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미나토

돗토리현 서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사카이미나토는 일본 국민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으로 그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를 테마로 한 요괴마을로 유명함과 동시에 산인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한 세계적 사진가 우에다 쇼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돗토리 사구는 일평생 그에게 있어 훌륭한 스튜디오였으며, 이 곳에서 가족사진과 유머러스한 셀프사진 그리고 평생의 모델이었던 아이들을 원없이 찍었다. 지금도 요괴거리 ‘미즈키 시게루 로드’ 한켠에는 70년간 우에다 쇼지 작업의 근간이 된 ‘우에다 카메라’가 그의 셋째 아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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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사카이미나토 수산진흥협회를 통해 예약해 둔 어시장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 나는 숙소를 나와 요괴들의 천국인 미즈키 시게루 로드로 들어섰다. 산인(山陰)지방의 8월 하늘은 지명마냥 우중충하고 무겁다. 인기척 없는 새벽거리를 걸으며 만나게 되는 눈알 가로등과 검은 고양이 그리고 신사나무에 둘러쳐진 금줄은 오직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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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벽적으로 깨끗하고 단조로운 골목풍경을 벗어나 탁트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출발지인 호텔로부터 어시장은 정동쪽이었으므로 왼쪽으로 꺽은 채 두 블럭 정도 걸어나가면 나카우미호에서 미호만으로 흐르는 해협을 만날 수 있다. 멋스런 구름 스카프를 걸친 해협 건너 이나리산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문득 호수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은 어떤 지점을 경계로 민물과 해수로 구분되어지는지 궁금해졌다. 학문적인 접근에서 염분의 농도구배 따위로 구분하자니 드넓은 강을 두고 일일이 측정이 가당키나 할까 싶고, 행정편의적 접근으로 지리적 생김새에 의거해 구분하자니 섬세하고 정교한 자연이 섭섭해할 것만 같다. 어쨋든, 이런 저런 잡생각은 마침내 나를 목표지점인 어시장 입구로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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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 투어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예약 관계로 주고받은 메일에서 먼저 알게된 ‘에지리상’은 실제 만나보니 나이 지긋한 백발의 신사였다. 30대 전후의 젊은이일거란 내 멋대로의 추측 따위는 보기좋게 빗나간 것이다.

오전 7시 투어참가자는 나 혼자였음은 이내 알 수 있었다. 에지리상은 나를 보자마자 수산협회 사무실로 안내했고, 어판장 내 간단한 안전수칙을 일러준 후 투어참가자 식별용 노란 모자를 건넸다. 사카이미나토 항과 마찬가지로 넉넉한 동해바다를 등에 업은 죽도시장에서 사진잔뼈가 굵은 나였기에 ‘경매에 방해되지 말 것’, ‘지게차와 바닥 미끄럼 주의’ 등 어판장 투어 유의사항은 이미 체화된 터였다.

노란모자 쓰고 병아리마냥 어미닭 에지리상을 따라 어판장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봄에는 연어, 여름은 참치와 굴 그리고 가을과 겨울은 각종 게와 오징어가 주류를 이룬다며, 계절 따라 많이 잡히는 어종에 대한 설명을 곁들어주신다.

한편, 사카이미나토 어판장 풍경 중 눈에 띄인 것은 바로 호가방식이 죽도시장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수신호로 호가하고 경매사는 그 중 최고가를 제시한 입찰자를 지명하여 낙찰하였다. 오히려 같은 일본이라도 손바닥만한 수첩을 사용하던 가고시마와는 달랐다. 포항과 사카이미나토는 씁쓸한 역사 위에 동해바다를 매개로 수산자원 뿐 아니라 경매시스템 또한 공유하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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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방문 그것도 제한된 시간 50분간 찍어낼 수 있는 사진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투어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견학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시점에 이미 사진욕심은 내려두었기에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위엄서린 경매모자 사이에서 어판장이 발산하는 낯선듯 낯익은 자극들을 나의 감관을 동원하여 최대한 수용하려 애를 썼을 뿐.

사카이미나토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날의 일포드 흑백필름은 기억의 책갈피로서 나에게 훌륭한 6번째 감관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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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카이미나토 교통편: 에어서울 ‘인천-요나고’ 노선와 DBS크루즈 ‘동해-사카이미나토’ 노선이 운영 중임
  • 사카이미나토 수산경매장: 경매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으며, 수산진흥협회에서 주관하는 투어를 통해 참관이 가능함. 비용은 1인당 300엔이며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음. 투어시간은 50분이며 오전 7시, 9시, 10시에 진행됨. http://sakaiminato-suisan.jp
  • 우에다카메라 주소: 〒684-0012 Tottori-ken, Sakaiminato-shi, Nakamachi,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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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summicron 35mm 4th, ilford hp5+

장소와 기억들 – Ba Dinh Square

독립 선언의 현장, 모두의 공간으로.

하노이 시내의 동부, 그곳으로 가면 하늘이 활짝 열린 광장이 한 곳 있다. Ba Dinh Square. 녹음이 짙은 여름이건, 스산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겨울이건 이곳은 열려있다.

주변의 고색 창연한 프랑스 식민양식의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넓게 펼쳐진 콘크리트 광장과 낮게 내려앉은 호치민 묘역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갖는 의미는 베트남의 독립 선언이 호치민에 의해 읽힌 장소, 그리고 그의 사후에 영원히 그를 기리는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 두가지가 가장 크다.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의 항복이후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독립 선언을 했다. 왜 일본이 항복을 한 뒤 독립선언을 했을까? 19세기 프랑스의 침략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갖은 착취를 당하던 베트남은 2차대전 중 일본의 재침략을 받고, 베트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프랑스는 무장해제 후 패주, 그리고 1940년 베트남의 새로운 식민국으로 일본이 들어서게 된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5년이나 더 받은 후 일본의 항복 뒤 베트남은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호치민이 독립 선언서를 읽은 장소가 이곳 바딘 광장이다.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들 매우 존경한다. 남베트남 정부의 무능과 부패등에 대비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저항운동에서부터 시작해 일본 식민 시절에 대한 저항 운동, 그리고 이후 프랑스 및 미국 침략세력에 대한 저항까지, 그의 한 평생 청렴한 생활과 나라를 위해 저항하며 살아온 인생 자체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의 묘역을 공개하고 참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며, 이 시간에는 참배하기 위한 사람의 줄이 상당히 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호치민을 기리기 위해 묘역 뿐 아니라 호치민 박물관이 Ba Dinh Square 서남측에 자리해 있다. 호치민이 펼쳤던 베트남 독립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70년대 이후 베트남의 통일 이후의 활동상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호치민의 활동 상황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어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며, 대부분 베트남어 및 영어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바딘광장의 동편으로는 19세기 하노이로의 수도 이전과 함께 생겨난 Thang Long 황성 유적이 남아있다.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황성 유적은 과거의 건물들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으며, 그곳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프랑스 식민지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Ba Dinh Square는 식민 지배의 잔재들 사이에 낮게 자리잡은 광장과 호치민 묘역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공간 이다. 공산당의 나라, 베트콩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물론 존재하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베트남을 바라보는 시간을 이곳에서 가져보면 어떨까?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20170626 / Rolleiflex MX-EVS / Xenar 75mm f3.5 / Pro160

똥손의 필름생활 엿보기

나는 똥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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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저지르는 어이없는 실수에 페친들은 이제 덤덤해하는듯. 가깝게는 지난달 현상액 대신 맹물을 넣는 바람에 두 롤을 통째로 날려먹은 사건부터 필름이 든 채로 카메라 하판을 오픈한다거나, 다 찍은 필름을 현상릴에 전부 감기도 전에 암백을 해맑게 열어버리는 등 필름을 시작한 후 크고작은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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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맹물현상 + (오) 하판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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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얼핏 망할놈의 똥손남에게 다소 벅차보였던 ‘필름으로 찍고 직접 현상, 스캔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럭저럭 잘 해온 것 같다. 디카로 입문 후 필름으로 역주행하기까지 수많은 선택과 고민, 주변의 도움과 더불어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이에 즈음하여 한때의 나처럼 필름으로 ‘즐기는’ 사진에 대해 궁금하지만 두려움 혹은 걱정이 앞서는 분을 위하여 비록 ‘정석’은 아닐지 몰라도 ‘즐기기’에는 적당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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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앞서 디카와 달리 필름으로 하는 사진생활은 왠지 돈, 시간, 노력 같은 것들이 많이 들 것 같다. 실제로도 필름전성시절에 비하면 필름값이 많이 올랐으며 한때 스타벅스만큼 흔하던 동네현상소들마저 거진 사라져버렸으니 불편하기도 하다.

흑백필름을 주로 쓰는 입장에서 현상소 문제는 직접 현상하면 되니 큰 장애가 아니라지만 비용 문제는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봤다. 디지털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가 필요한 필름카메라와 스캐너 구입 비용은 별도로 하고 소모품 위주로 계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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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물품>
① 필름: ilford hp5+ 100 feet roll film – 65불
② 현상액: kodak d-76 – 7불
③ 정착액: kodak fixer – 13불
④ 수세촉진제: kodak hypo – 7불
   * 가격: ‘18년 5월, B&H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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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피트 벌크필름을 필름로더로 감으면 36방짜리 20롤을 만들 수 있다. 20롤에 7만원이니 국내 유통되는 흑백필름의 반값인 롤당 3500원으로 해피 프라이스!

현상액, 정책액, 수세촉진제 역시 파우더 타입의 제품은 한 봉지당 1 갤런(3.8리터)의 솔루션을 만들 수 있으며, 이 역시 직구하면 국내 유통가의 절반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연간 소요비용 산출에 있어 편의상 일주일에 1롤 소비를 전제하였고, 필름과 현상액은 1회 사용, 정착액과 수세촉진제는 3회 재사용으로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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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1롤이면 자가현상을 기준으로 연간 218,605원으로 나온다. 주당 4,200원 꼴이니 아메리카노 1잔값인셈. 누군가에게는 이 금액조차 클수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을수도 있으니 금액의 크고작음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며, 이제 본격적으로 벌크필름으로부터 필름을 준비하고 촬영된 필름을 현상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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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름 준비하기

필름로더에 벌크필름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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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들지 않는 암실에서 오로지 손감촉에 의지하는 작업이라 밝은 데서 여분의 필름스트립을 가지고 사전 연습이 필요하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로더 배출구로 필름을 끼울 때 아래와 같이 삼각뿔 모양으로 자르면(물론 암실에서) 그닥 어렵지 않게 필름 끝단부를 밖으로 빼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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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로더, 100피트 롤필름, 가위, 암실(이를 테면 야밤에 창문 없는 화장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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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방법>
① 필름로더 뚜껑을 미리 열어두고 손이 닿는 위치에 가위를 준비함
② 화장실 불을 끄고 완전히 빛이 차단된 암실상태에서 100피트 롤필름 상자뚜껑을 열면 손바닥 크기의 롤필름이 검은 비닐봉지로 포장되어 있음
③ 봉지에서 필름을 꺼낸 후 점착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는 필름 끝단부를 찾아 떼어냄
④ 필름 끝단부를 찾아 준비된 가위를 이용해서 (대충) 삼각형 모양으로 커팅
⑤ 필름로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필름 끝단부를 빼낸 후 톱니바퀴에 걸리는게 확인되면 필름 전체를 필름로더 축에 끼운 뒤 뚜껑을 닫음
  * 유튜브 참고영상 – How To: Bulk Load Film by Tim Heu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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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로더를 이용한 감은필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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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로더, 끝단부가 조금 남아있는 빈 필름통, 가위, 스카치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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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착방법>
① 빈 필름통 끝단부에 스카치테이프를 절반가량 접착되도록 붙임
② 방향에 유의하여 필름로더에 혀처럼 빠져나와 있는 필름과 연결 (필름의 툭 튀어나온 꼭지부분이 오른쪽으로 향하게)
③ 필름을 되감아 빈필름통을 필름로더에 밀착시킴
④ 뚜껑을 덮고 필름카운터를 ‘▲’에 맞게 다이얼을 조정한 후 ‘크랭크’를 끼움
⑤ 크랭크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필름 카운터가 돌아감과 동시에 필름이 감기기 시작함
⑥ 시중에 파는 필름과 유사한 길이를 말아넣기 위해서는 필름카운터를 ‘▲+1’에 위치할 때까지 크랭크를 돌림
⑦ 다 감았으면 크랭크를 빼고 뚜껑을 열어 적당한 길이로 빼낸 후 필름을 자름
⑧ 카메라 로딩이 쉽도록 끝단부를 곡선 모양으로 잘라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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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촬영이 끝난 필름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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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릴에 끼우려면 필름 혀가 나와있어야 한다. 그러니 한 롤 촬영이 끝나면 리와인딩을 끝까지 하지말고, 충분히 감았다싶으면 천천히 돌리면서 딸깍하고 풀리는 소리와 느낌(?)을 기다린다. 이 때 반바퀴 정도만 더 돌린 후 필름을 빼면 적당히 혀가 나온 상태로 필름을 뺄 수 있다. (라이카 M6 리와인딩 놉의 경우 32번 가량 회전하면 풀림)
그래도 필름이 들어가버렸다면 ‘Film Picker’라는 도구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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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필름피커, 혀가 말려들어가버린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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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방법>
① 필름통 입구에 필름피커의 ‘1번’ 부분을 끼움
② 필름피커와 필름통을 잡은채로 ‘2번’ 버튼을 필름으로 밀어넣기
③ 이어서 필름피커와 필름을 잘 고정한 채로 반시계방향으로 필름을 감으면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는 지점이 발생함
④ ‘딸깍’소리가 들리면 감는 것을 중지하고 ‘3번’ 버튼을 필름으로 밀어넣기. 이때 필름이 밀려 돌아가지 않도록 꼭지까지잘 붙잡아 고정시켜야 함
⑤ 마지막으로 필름을 빼기 위해 필름피커를 필름통으로부터 당겨 빼면 필름 끝단부가 ‘메롱’하듯 튀어나옴. 이때는 반대로 필름이 내부에서 잘 돌아 빠지기 쉽도록 필름꼭지를 고정시키지 말아야 함

* 유튜브 참고영상 – How to retrieve the film leader from a 35mm cassette using a film picker by Jack the Hat Phot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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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 찍은 필름, 현상 릴에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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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성들여 찍은 필름을 현상해 볼 차례다.
현상을 위해서는 다 쓴 필름을 릴(Reel)이라는 장치에 두루마리 휴지 말듯 감아넣어야 하는데, 자가현상을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되고 까다로워보였던 작업이기도 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여러 번 숙지한 후 암백에서 첫 릴을 감았고 입구만 잘 찾아끼워넣으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무 걱정하진 말자. 개인적으로 초기에는 암백을 이용했으나 좁고 답답한 관계로 화장실에서의 작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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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암백 혹은 암실, 다찍은 필름, 현상릴(Reel), 현상탱크,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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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는방법>
① (옵션) 현상 릴(Reel)에 잘 감기도록 필름 끝단부 양 귀퉁이 커팅해서 준비해 둠
② 현상을 앞 둔 필름은 100% 차광된 공간에서 릴에 감아야 하므로 암백을 이용하고, 암백이 없는 경우 완전히 해가 진 후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불 끄고해도 좋음
③ 암백에 필름, 가위, 현상탱크, 현상릴을 넣고 손끝 감각에 의존하여 플라스틱 릴에 감은 후 가위로 커팅
④ 릴에 모두 감았다면 현상탱크에 릴을 넣고 뚜껑을 확실하게 닫아 차광한 후 암백에서 빼냄
* 유튜브 참고영상 – Loading 35mm Onto Patterson Reel by Nam Tran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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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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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노광된 필름을 적절한 약품처리를 통해 이미지를 나타내는 과정이다. 크게 “현상-정착-수세”의 과정을 거치는데, 라면 끓이는 것보단 좀 더 복잡하지만 어쨋든 요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냄비-현상탱크에 재료-필름을 넣고 물과 양념-현상약품-을 레시피에 따라 요리해주면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참고로 라면 따라 레시피가 다르듯 필름 따라 현상시간이 다른데, 구글에 ‘(필름이름) Datasheet’로 검색하면 제조사에서 공개한 표준 현상데이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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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6 35mm 400/27 기준으로 제조사별 주요 필름의 현상시간은 아래와 같다.

– Ilford : HP5+ 400 11분, Delta 100 9.5분, Delta 400 14분, FP4 125 9분, PanF 50 6분
– Kodak : 400tx 9.75분, Tmax 100 9.5분, Tmax 400 12.5분
– Fujifilm : Across 100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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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 현상탱크, 현상릴(플라스틱 릴 추천), 필름피커, 암백, 가위, 온도계, 비어커, 필름클립, 타이머 혹은 현상어플(iOS의 경우 무료앱인 “Develop!” 추천)
– 현상액, 정지액, 정착액, 수세촉진제, 포토플로(수적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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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방법>  * Ilford HP5+기준

a. 전습(Pre-wetting), 물 20도 내외, 1분간 실시
– 전습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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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현상(Develop), D76 working solution 300ml : 물 300ml, 현상액 온도 20도, 11분간 실시
– 현상액 투입 후 60초간 연속교반
– 30초마다 5초 교반
– 마지막 10초 전부터 버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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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정지(Stop-bath) Kodak Indicator Stop bath, 스탑배스 9.6ml : 물 590.4ml, 20도 내외, 1분간 실시
– 정지액 투입 후 1분간 연속 교반 실시
– 노란색의 용액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할때까지 재활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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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정착 (Fix), 파우더 타입으로 만들어 둔 Kodak Fixer 600ml (working soltuion 600ml), 20도 내외, 10분간 실시
– 현상방법과 동일하게 교반
– 최초 1분간 연속교반 후 매 30초마다 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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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수세 (Washing) , 파우더 타입으로 만들어 둔 Kodak Hypo Clearing Agent를 물과 1 : 4비율로 희석 (stock solution 120ml : 물 480ml)
– 흐르는 물에 30초 수세 (수시로 교반 및 물교체)
– 수세촉진제에 2분 연속 교반
– 흐르는 물에 5분 이상 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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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포토플로 (Photo Flo), 1 : 200 비율(3ml : 600ml), 1분 담그기
– 포토플로에 1분간 담그면 됨. 거품 생기므로 교반금지
– 필름클립에 끼운 후 그늘진 곳 매달아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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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자잘하게 준비할 것도 많고 절차도 복잡해보이지만, 약품 섞는 ‘비율’과 ‘온도’ 그리고 ‘시간’만 잘 지키면 별 문제 없이 현상이 잘 되어나온다.

제시된 수치들은 한 치의 오차 정도는 가볍게 허용해주므로 너무 강박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으니 안 그래도 머리아픈 세상 이런걸로 스트레스 받지는 마시라. 다만 현상과정의 화학반응은 온도에 민감하므로 현상액 온도만은 최대한 20도±0.5로 맞추어 작업하자.

 * 유튜브 참고영상 – Developing B&W film by Mat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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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상 이후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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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된 필름은 6컷씩 잘라 “니콘 쿨스캔 4ED”로 스캔한다. 최대 해상도 TIFF포맷으로 스캔하며, 1컷에 2분정도 소요되므로 1롤 38컷을 다하면 통상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스캔이 끝난 6컷짜리 필름스트립은 “HAMA Negative Sleeves”에 끼워 바인더 형태로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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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파일은 ‘촬영날짜_촬영장소_필름명”의 형태로 작명된 폴더에 저장한 후 포토샵 힐링브러시와 도장툴을 이용해 스캔이미지의 결함(먼지, 스크래치 등)을 제거해준다. 이로서 필름의 ‘디지털 원본’을 확보하게 되며, 원본파일들은 라이트룸으로 Import 후 트리밍과 후작업, 리사이징(900~1200px)을 통해 블로그나 SNS용 사진을 별도로 Export하여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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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기억들 – Hanoi Old Quarter

시간이라는 씨줄과 사람이라는 날줄로 엮어낸 장소, Hanoi Old quarter.

통칭 Hanoi Old Quarter라는 구역은 정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Hoankiem 호수의 북쪽에서부터 더 북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Dong Xuan 시장까지를 이야기 한다. 꽤나 좁다란 길에 얽히고 설켜 오가는 사람들을 처음 본다면 가벼운 현기증이 잠시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복잡한 곳이다.

과거 하노이에 모여드는 모든 물산과 사람이 거쳐가고, 도시 내에서 상거래가 집중되는 곳이 이 곳 이었다. 각각의 길은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물건들이 있었고, 그런 길들을 모아놓으면 36개의 길이 되어, Old Quarter는 하노이 63길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는 하노이 여행자들에게 유명해 진 Ta hien 맥주거리 부터, 지금은 실크제품 보다는 기념품을 더 많이 파는 실크거리도 있다. 길의 유래에 맞는 물건을 파는 가게도 남아있고, 지금의 삶에 맞게 바뀐 품목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구석구석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고 재현해 놓은 장소들도 볼 수 있다.

하노이에서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에게도 매우 중요한 장소가 Old Quarter다. 골목마다 소규모 현지 여행사가 모여있어, 하노이에서 가까운 곳은 사파와 할롱베이부터 멀리는 다낭이나 호치민 까지, 여행 상품과 교통편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Old quarter를 꼭 기억하자.

Old Quarter는 보행자에게 불친절 하기로 손에 꼽을 수 있는 곳이다.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걷기보단 한줄로 서서 걷는것이 더 편하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일행의 뒤를 봐주며 걷거나, 앞서가며 일행을 이끌게 된다. 이게 또 희한한 느낌인 것이, 앞서가며 한번씩 돌아다 보면 누군가를 챙긴다는 생각에, 뒤에서 앞사람이 걸어가는걸 바라보면 앞사람을 지켜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 진다. 비록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거리의 분위기 속에서도,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장소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오늘을 사는 하노이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일단, Old Quarter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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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 LeicaM6 / m-Rokkor 40mm F2 / RPX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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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2 / LeicaM6 / m-Rokkor 40mm F2 / AristaPremium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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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2 / LeicaM6 / m-Rokkor 40mm F2 / AristaPremium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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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 Leica M6 / BlackElmar 50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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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 Leica M6 / BlackElmar 50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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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Contax iia / CarlZeiss Biogon 21mm f4.5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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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Contax iia / CarlZeiss Biogon 21mm f4.5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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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Contax iia / CarlZeiss Biogon 21mm f4.5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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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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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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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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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 Leica M6 / m-Rokkor 40mm F2 / Seagull400(EI800)

 

 

20180422-LeicaIIIc-Orion15_28mmf6-Seagull400(EI800)
20180422 / Leica IIIc / Orion-15 28mm f6 / Seagull400(EI800)

Minolta TC-1 Review

Shut up and Press the shutter!

‘일단 셔터부터 눌러 봐.’

‘응? 무슨 소리…?’

‘눌러 일단. 응.’

그래서 그냥 눌러봤다. 와? 정말 찍으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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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계가 무척이나 정확해 어떤 필름을 사용해도 정확한 노출로 촬영이 가능하다. 게다가 5군 5매 렌즈의 결과물은 손톱만한 렌즈의 결과물이라 생각하기 어렵게 깔끔하고 좋다. 특이한 조리개 방식도 TC-1의 특징인데 원형 마스크 형태의 조리개가 조리개 수치를 바꿀때마다 변경되어 매 조리개마다 원형을 유지한다. 그리고 필름 감도는 6400까지 인식되며 ISO 변경의 자유로움이나 노출보정의 편리함도 있다. 여기에 MF도 가능하고 스팟 노출 측광까지 된다. 거기에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스트로보 까지.

그리고 결정적인 건 이런 기능이 손바닥에 충분히 올라오는 자그마한 사이즈에 모두 들어가 있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진 카메라가 어디를 가든 내 외투 주머니 속에 쏙, 내 가방의 한자리에 쏙 넣을 수 있다. 이 말인 즉, 그 어떤 편의 기능보다 촬영자가 부담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설 수 있게 하는 TC-1만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화이트와인이 생각나는 아름다운 금속 바디의 질감은 손에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싶지 않게 만드는 만족스런 촉감까지, 모든것을 다 갖춘 카메라라 말하고 싶다.

G-Rokkor 28mm f3.5

버블경제기의 막바지에 출시된 카메라 다운 걸출한 기능과 함께 렌즈의 성능이 단연 압권이다. 5군 5매 렌즈 구성에서 3매가 비구면 렌즈이다. 똑딱이라고 하긴 했는데, 성능을 보면 똑딱이가 맞나 싶다. 버블경제 속에서 미놀타의 잉여이익은 저 작은 부피 안에 기능을 넣기 위해 스러져 갔나보다. 너희들은 도대체 이 카메라에 무슨짓을 한거냐, 미놀타.

결과물을 보면 컬러나 흑백에서 단단한 컨트라스트를 보여준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컨트라스트라고 하기보단 단계 단계를 딱딱 짚어내고 넘어가는 그런 느낌이다. 덕분에 흑백이나 컬러 가리지 않고 상당히 선연한 느낌이 나며, 작은 사이즈의 렌즈 치고 중심부부터 주변부까지 골고루 우수한 묘사를 보면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 신경쓰며 만들어낸 렌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은은한 묘사라는 표현보다 똑부러지게 단단한 묘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렌즈다.

워낙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한정판으로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 용도 생산이 되었던 렌즈니 TC-1이 손에 들어왔다면 일단 믿고 사용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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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나는 여행길, 여행중 좀 편안하게 마음먹고 촬영할 카메라가 필요해 뭘 챙길까 생각하던 도중, 아주 짧은 고민을 끝내고 TC-1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별 고민없이 툭툭, 노출조건이 조금 애매하다 싶으면 노출보정만을 사용해 약간의 조작을 해줬다. 현상 후 확인한 결과물은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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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출장으로 몇번이나 찾았던 하노이 여서 그랬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진을 만들만한 카메라가 필요했다. 출장길이니 만큼 다른 짐들도 많아 짐을 크게 불리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던 도중 좋은 카메라를 한번 더 빌릴 수 있었고, TC-1은 네 번째 출장의 동행이 될 수 있었다. TC-1으로 담아냈던 흑백 사진들. 그 흑백사진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필름위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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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에 살지 않는 내게는, 서울에 나가는 일도 어떻게 보면 짧은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카메라 몇대를 들고 서울을 돌아다니며 촬영 하는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가볍게 카메라 하나에 의지에 사진을 찍고싶은 날도 있다. 그런날, TC-1은 내가 믿고 셔터를 누르게 만들어 주는 카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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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용 카메라의 미덕을 궁극적으로 실현한 카메라.

작은 크기, 최고의 화질, 궁극의 휴대성까지. TC-1을 챙기고 일단 셔터부터 누르자. 그러면 사진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여행자에게 있어 꼭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추려내 만든 카메라 Minolta TC-1, 올 봄 나들이에 함께해 보는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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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촬영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경주. 2017. 08. Fujifilm Provia 100F

하노이. 2017. 11 ~ 2017. 12. Seagull400 (EI 800)

서울. 2017. 10 Kentmere100 (EI 200)

장비 대여 및 장비사진 : JSFamily ( http://wjs890204.tistory.com/ )

지진 그 후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모니터에 띄워진 워드프로세서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파리 물소떼라도 몰려오는 듯이 세상 낯선소음과 함께 사무실 바닥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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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덜….크르렁…드르르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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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더더기 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책상 아래 몸을 구겨넣었다. 1년 전 규모 5.8의 역대급 경주 지진에 따른 실전경험 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머리를 조아린 채 두려운 지진파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 뿐이었다. 사무실 내 모든 집기비품들이 점호라도 하듯 일제히 큰 소리를 내며 덜그덕거리고, 거대한 손이 건물외벽을 뒤흔드는 듯 바닥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같은 사무실 직원들은 흔들림이 멈추자 즉시 건물 밖으로 튀어나갔다. 계단은 어찌 내려갔는지 문은 어떻게 열었는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쳐나왔다. 안전한 야외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가족 걱정에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주머니가 허전하다. 급한 마음에 핸드폰이고 뭐고 몸만 빠져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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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일평생 겪음직한 사고와 재난이 어디 하나, 둘이겠냐만은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기에 미리 조심하고 주의한다면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엄습하는 무지막지한 지진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진정한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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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공포로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에 미디어에서는 한술 더 떠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만약 일본처럼 규모 7이상의 대지진이라도 발생한다면 어떻게 되나. 1995년 한신대지진의 영상을 찾아봤다. 육중한 건물과 고가도로는 맥없이 무너지고 화재로 인한 검은 연기가 도시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아비규환이다. 고베 시가지에 자꾸만 포항 풍경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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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다시 지진 온다 한들 목구멍 풀칠용 직장에 단단히 매인 신세라 포항 땅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손에 쥐어진 유일한 옵션은 그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미소가 늘 함께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존재의 무력감은 참으로 잔인한 것이다. 지진은 그렇게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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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는 주로 진앙지에 인접한 포항 흥해지역에 집중되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곳으로 알려진 흥해 대성아파트는 지진 후 전체 6개 동 가운데 절반인 3개 동이 붕괴 우려가 높아 시에서는 사용금지 처분을 내렸고 3∼4도 가량 기울어진 건물 1동은 철거가 이미 결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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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관련 뉴스를 매일 접하니 실제 피해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선뜻 현장을 찾을 용기가 없었다. 치기어린 행동으로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지진에 큰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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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은 그곳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은 결코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사진으로부터 배웠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안된다. 십년 뒤 후회하지 않을 자신 따위는 없었다. 결국 시간을 내어 흥해에 들렀다. 무거운 마음에 장비는 최소한으로 챙긴 터였다. 카메라는 크로스로 매고 여분의 필름 한 통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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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금지처분으로 인기척 없는 대성아파트는 늦오후의 따뜻한 햇살로도 을씨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3~4도 기울었다는 건물은 실제 10도 이상 휘청한듯 보였다. 기울어진 쪽 기단부 콘크리트는 과도한 압축력을 이기지 못하여 부서지고 으스러졌으며, 팔뚝만한 크랙이 여기저기로 음흉하게 손을 뻗쳤다. 한때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돕던 관리실은 재난안전대책본부로 변한듯 보였고 아파트 한켠의 단촐한 놀이터에는 깊은 슬픔으로 영원히 볕이 들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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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파트를 벗어나 옆으로 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주변 빌라와 주택들 역시 아물지 못한 상처를 드러낸 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노랑색 어린이집 승합차는 난데없는 낙하물에 속 빈 맥주캔마냥 힘 없이 찌그러져 버렸다. 평소 즐겨 마지않던 채집행위였지만 오늘만은 금세 지쳐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감정이입의 결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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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의 거대한 재해 앞에서 일개 인간이 느끼는 참을 수 없는 무기력함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끔 만든다. 트라우마 이전의 삶을 지탱하던 규칙이나 목표, 신념 따위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재난 발생 후 시간이 흘러 피해자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과 사람들이 차차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트라우마는 오롯이 남겨진 자들만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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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일수록 그 기억은 잔인하도록 디테일하기에 나는 이들의 아픔이 이들만의 아픔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여기 사진들은 다만 잊지않기 위한 나만의 다짐이자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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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 taken with summicron 35mm and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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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속도가 느려질수록, 사진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꼭 그러잡은 바디, 조심스럽게 누르는 셔터 버튼. 그리고 이내 열렸다 닫히는 셔터. 셔터가 열러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필름은 조용히 그 순간을 받아들인다.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멈춰세운 시간을 보기 위해 우리는 밝은 렌즈와 셔터 속도에 열광하지만, 그 열광속에 놓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 어쩔수 없는 불편한 상황에서 욕심은 내려놓고 당시를 즐겨보고자 했다. 안나오면 뭐 어쩔 수 없지. 렌즈 밝기 F6, 잔뜩 흐려 부슬비가 내리는날, 그리고 감도 200의 필름은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 상황을 그저 즐기라고 나를 재촉했다.

비가 오는 골목에서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맑은 날에 비하면 한결 느려진 속도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활기는 잃지 않은 채였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와중에도 커다란 짐을 자전거에 싣고, 팔 것을 어깨에 지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잊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 장면 속에서 사람 사는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비록 부슬비가 머리와 옷을 적시다 못해 카메라 까지 눅눅하게 만드는 상황이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나서 일에 지쳐 한동한 무미건조했던 내 마음도 촉촉하게 젖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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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IIIc / Orion-15 28mm F6 / Fujifilm C200

Hanoi. Vietnam.

데자뷰

깜깜한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볼이 시린 날씨였지만 어쩌자고 이렇게 포근한 것일까요. 짊어지고 온 피로에 까무러칠 것 같았습니다만 어디서 온 것인지 스멀스멀 밀려드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집니다. 늘어지고 싶었습니다. 반듯하게 각진 택시 타고 숙소로 가는 잠시 동안 창밖 풍경은 신비였습니다.

밤새 끙끙 앓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습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거실 창을 열었습니다. 쌓이는 눈이 세상 평화롭습니다. 한참 멍 때리다 감전된 듯 챙겨 입고 길을 나섰습니다. 발이 이끄는 곳으로 걸었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했고, 어느 골목에서 한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셔터를 몇 번 눌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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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가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는 … 이 곳에서 그렇게 한 동안 어슬렁거렸다. ]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한 동안 서 있던 그 골목이 그리웠습니다. 영화 보다가 스프링 튕기듯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 골목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그랬던거죠. 언제인지도 모를 언젠가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곤 하얗게 잊었어요. 세월이 흘러 영화의 장면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의식 저편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던 장면하나가 의지와 관계없이 소환되었습니다. 포근함, 안도감, 익숙함 따위의 느낌은 깊숙히 저장되었던 몇 개의 장면 덕분이었을까요.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겪게 되는 영혼의 끌림처럼 말이죠.

 

Love.Letter.1995.1080p.BluRay.x264.AC3-ONe.mkv - 00.10.54.863

[영화 ‘러브레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