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침, 일찌감치 택시를 타고 료안지(龍安寺)로 향했습니다.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후시미(伏見)에서 오는 것보다 요금이 더 나왔습니다. 이러저러한 교통편을 생각없이 타고 다니다보니 거리감이 없었나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토(京都)에 오면 아무래도 료안지를 들러야합니다. 단정한 숲 사이로 걷다가 좌불(坐佛)을 뵙고, 세키테(石庭)에 앉아야 여행을 마무리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교토의 단풍 중 으뜸은 젠린지(禅林寺)라지만, 료안지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화려한 가을 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일년 만에 뵙는 좌불입니다. 우리의 부처상과 닮아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가능한 한 찾아뵙고는 합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세키테로 향했습니다.
료안지의 세키테는 대표적인 가레산스이(枯山水)양식의 정원입니다. 가로 25m, 세로 10m의 장방형 정원에 잘게 부순 돌과 흰 모래, 이끼를 깔고 그 위에 15개의 바위를 배치하여 바다나 호수에 떠있는 섬과 산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15개의 바위는 정원 내 어느 곳에서 봐도 한 개가 숨겨져 보이지 않는 점입니다. 일본 선종의 사상을 통해 우주만물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는데, 정원 앞 마루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정원의 한 귀퉁이에서 서양인으로 보이는 노부인을 만났습니다. 조용히 서서 정원을 바라보는데, 입가에는 미소가,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한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삶의 황혼기에 노부인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한동안 머리속이 복잡했습니다.
정원의 뒷편으로 츠쿠바이(蹲踞)에 손과 입을 씻으러 갔습니다. 가운데에는 구(口)자가, 네 방향으로 각각 오(吾), 유(唯), 족(足), 지(知)가 새겨져있습니다. ‘나는 오직 만족을 안다’는 선종의 글귀라고 합니다. 츠쿠바이는 본래 다도(茶道)에서 손과 입을 씻는 곳을 말하는데, 별세계(別世界, 다실(茶室))로 들어가기 전 중간 길인 정원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습니다. 차를 마시러 온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깨끗해진 것 같았습니다.
세키테를 나와 다시 숲길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코요치(鏡容池)를 한번 더 돌아보고 료안지를 떠났습니다. 2017년 가을에 안녕을 고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오코노미야키 카츠(お好み焼き 克)로 향했습니다. 트립어드바이저 교토 음식점 1위를 차지한 곳입니다.
외국인 많이 오는 탓인지 영어 메뉴도 있고, 주인 아주머니의 영어실력도 상당했습니다. 메뉴에 대한 설명부터 주문, 각 요리를 먹는 법까지 모두 설명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본격 오코노미야키는 처음이었습니다.) 다찌(立) 혹은 다다미(たたみ)를 고르라는 얘기에 아무 생각없이 다다미를 선택했는데, 덕분에 눈앞에서 요리해주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찌앞의 철판에서 요리해서 옮겨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쨌든 두부구이(豆腐鷸焼)와 오코노미야키, 야키소바(焼きそば)입니다.
제법 양이 되어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떠났습니다. 주인 부부에게 인사하고 나오니, 교토에 오면 들를 곳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번에는 다찌에 앉아 요리하는 것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료안지역을 지나 버스를 타고 후지다이마루(藤井大丸)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요즘 교토에서 뜨고 있다는 % 아라비카(% ARABICA) 커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럭저럭 매우 무난한 맛의 라떼를 마시고, 원두 두 봉을 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마셔보고 알게 되었습니다만, 원두 역시 매우 무난한 맛이었습니다.)
이제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리무진을 타고 오사카만(大阪湾)으로 향했습니다.
2박 3일의 주말 여행을 마쳤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