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made photo by GR

 

보통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들어 버리기에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일찍 잠든 덕분에 오랜만에 잠든 아이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형의 장난으로 중간에 깨어버리기도하고… 늘 안방 안, 손에 잡히는 거리에 두는 GR로 아이가 주는 평안, 따뜻함,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감상해봅니다.

최고의 카메라는 내 손에 있는 카메라이고, 최고의 출사지는 내가 있는 곳이고, 최고의 모델은 가족입니다…

 

 

 

 

 

 

 

 

 

 

GR000001

 

 

 

 

 

 

 

 

 

 

 

 

 

 

 

 

 

 

GR000006

 

 

 

 

 

 

 

 

 

 

 

 

 

 

 

 

 

GR000010

 

 

 

 

 

 

 

 

 

 

 

 

 

 

 

 

 

GR000013

 

 

 

 

 

 

 

 

 

 

 

 

 

 

 

 

GR000019

 

 

 

 

 

 

 

 

 

 

 

 

 

 

 

GR000020

 

 

 

 

 

 

 

 

 

 

 

 

 

 

 

 

 

 

GR000025

 

 

 

 

 

 

 

 

 

 

 

 

GR000045

 

 

 

 

 

 

 

 

 

 

 

 

 

 

 

 

 

 

GR000041

 

 

 

 

 

 

 

 

 

 

 

 

 

 

GR000034

 

 

 

 

 

 

 

 

 

 

 

 

 

 

 

 

 

 

 

GR000029

 

 

 

 

 

 

 

 

 

 

 

 

 

 

 

 

 

GR000048

 

 

 

 

 

 

 

 

 

 

 

 

 

 

 

 

 

 

 

 

GR000051

 

 

Advertisements

#29. sepiaEYE Gallery

에사 엡스테인(Esa Epstein)이 2009년 설립한 sepiaEYE 갤러리는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아시아권 작가들을 전문으로 소개하고 있는 갤러리이다. 소속 작가들을 살펴보면 아시아권 작가들 중에서도 주로 인도와 일본 작가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도 작가 라후비르 싱(Raghubir Singh)과 부펜드라 카리아(Bhupendra Karia)를 포함하여 이십여 명 남짓의 작가들을 대표하고 있다. 현재 소속된 한국인 사진가로는 김수강(Sookang Kim)이 있는데 일상 속 사물들을 정물로 담아 고무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방식으로 인화하는 것이 특징으로 사진 인화가 아닌 듯한 무채색 파스텔톤의 느낌이 인상적인 작품들이다.

첼시 서쪽 끝자락 11번가 쪽에 자리한 547 West 27번가 건물 6층에 위치한 sepiaEYE 갤러리는 중앙의 메인 전시 공간과 차단벽 뒤쪽으로 나누어진 두 곳의 사무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높은 층고 때문에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트인 인상을 주는 전시실로 들어서면 문 왼쪽으로 놓인 작은 사각 테이블 위에 팸플릿과 체크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다. 전시실 가운데에 놓인 둥근 탁자는 갤러리에서 출판한 여러 작가들의 사진집을 늘어놓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사무 공간은 한쪽의 관장실, 그리고 반대쪽의 작품 보관 및 다른 물품들을 놓는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관장실 한 켠에는 전직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 대통령하고 같이 사진 찍었네?”

“그래.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전 대통령이지.”

“하하…”

내가 뉴욕의 사진 갤러리들만 찾아다니고 있다고 하니 혹시 필요한 자료는 없을지 이것저것 챙겨 주려던 친절한 관장과의 대화를 뒤로 하고 한번 더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일본계 사진작가 오사무 제임스 나카가와(Osamu James Nakagawa)의 <Kai> 전이다. 50점의 흑백, 칼라 사진과 4분 35초 분량의 영상 작업 한편으로 구성된 전시는 개략의 시간순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여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교 교수인 나카가와가 20여 년에 걸쳐 작업한 Kai 시리즈의 출발점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마주한 1998년이었다. 마침 아이를 임신 중이던 아내와 함께 새 생명을 기다리던 나카가와에게 불현듯 가까이 다가온 아버지의 병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담기 시작한 그와 가족들의 삶이 일본어로 순환을 뜻하는 Kai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내밀한 가족사의 기록이 된 나카가와의 사진들은 한 사람의 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휴머니즘의 내러티브가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도 있지만 이렇게 세월을 관통한 작업을 만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건 사진이 품고 있는 시간의 힘이다. 아버지의 죽음, 아이의 탄생,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장성한 딸의 출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쌓여 간 시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 순간의 이미지로는 쉽사리 담아낼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는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시간과 사진들이 함께 켜켜이 누적되어 가면서 만들어낸 힘에 다름 아니다.

전시된 작품들 중 특별히 더 와 닿았던 건 늙은 어미의 손에 달라붙은 이쿠라(연어알)를 클로즈업 한 <Ikura, Tokyo, Summer 2010>과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거친 숨결을 반복되는 영상으로 편집한 <Breath, Single chanel video with audio>였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가까이 다가가며 기운 빠진 늙은 어미의 손가락에 달라붙은 새 생명들(이쿠라)이 주는 역설적인 느낌은 단순한 한 장의 사진 이상의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쿠라가 무엇인지 조금 더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이기에 받은 인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임종 직전의 거친 숨소리와 초점 흐린 어머니의 시선이 아무런 말 없이 반복적으로 보이는 <Breath>의 영상은 의도적인 흔들림을 통해 어머니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나카가와의 날 것의 감정을 전달했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마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차면서도 계속적으로 들고 나는 숨소리는 목전에 와 있는 죽음을 그대로 맞닥뜨리는 느낌이다.

sepiaEYE 갤러리가 아시아 작가 전문이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인도와 일본 작가들에 편중되어 있기에 아주 다양한 나라들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한국 작가들이 조금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있다. 그리고 특별히 포트폴리오 리뷰 여부에 대한 코멘트는 없지만 관심이 있는 작가라면 적극적으로 연락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아시아권을 전문으로 하고 있으니 어떤 경로로든 괜찮은 작가가 눈에 띈다면 갤러리로서도 반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가서 갤러리 소개나 정보를 찬찬히 둘러보며 파악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sepiaEYE Gallery
  • 주소: 547 West 27th st., #608,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수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s://www.sepiaeye.com

*Gum biochromate:  19세기 말 개발된 염료 인화 기법으로 사진 톤의 콘트라스트와 디테일한 부분들의 부드러움으로 유명하였음. 인화 과정에서의 이미지 수정이 상대적으로 쉽고 화가가 그린 듯 부드러운 톤으로 인해 회화주의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은염이 쓰이지 않아 안정성도 높았음.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 프레스, 2017, p. 189. 발췌.

**18년 5월 16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s://www.sepiaeye.com/exhibitions/#/kai/

DSCF0834

갤러리 입구.

DSCF0836

메인 전시실. 뒤쪽 기둥 뒤가 출입문이다.

DSCF0832

출입문 반대편 차단벽 뒤로 두 곳의 사무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DSCF0825

작품들은 개략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크기와 배치로 전시되어 있었다.

DSCF0824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Father’s Hands, Bloomington, Indiana, Winter 1999>, <Airplane, Bloomington, Indiana, Winter 2001>, <Pinata, Bloomington, Indiana, Spring 2004>, <Moving In, Muncie, Indiana, Summer 2017>, <Kyle’s Rock, Plainfield, Vermont, Summer 2000>, <Mt. Fuji, Japan, Summer 1999>.

DSCF0828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Queen Anne’s Lace, Bloomington, Indiana, Summer 2000>, <Final Conversation, Tokyo, Spring 2013>, <Mangolia, Bloomington, Spring 2010>, <Hands, Tokyo, Summer 2013>, <Blood, Kyoto, Summer 2013>, <Curtain, Tokyo, Spring 2013>.

DSCF0831

<Ikura, Tokyo, Summer 2010>.

DSCF0829

Osamu James Nakagawa & Rachel Lin Weaver, <Breath, Single chanel video with audio>.

GR 그 다음

이미 충분히 GR에 대한 무한애정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https://wp.me/p7XRSE-KE

https://wp.me/p7XRSE-QQ

https://wp.me/p7XRSE-U7

결론은 ‘(현존하는)흑백 스냅을 위한 최적의 카메라’였습니다.

 

R0000262
2013. 7 / 대구

GR을 두 대째 쓰고 있습니다. 2013년 예약주문이 끝나자마자 ‘괜찮다더라’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쓸 만한 스냅머신이 나왔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오랜만에 신품 깠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했습니다. 이때까지는요. 그러니까 5년 전 눈높이 였던거죠. 이때부터 애증의 세월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GR2가 나온다고 할 때 기대가 컸습니다. GR에서 불편한 몇 가지가 해결되어 나왔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와이파이 달랑 얹어서 신형이라고 코 풀고 맙니다. 지들이 라이카도 아니고…따라 할 걸 따라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선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꼬박 5년이나 된 기종을 사골 끓이는데 말이죠. 그 만큼 매력적인 카메라인가 봅니다. 하이엔드 유저나 프로사진가들에게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저처럼 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유저들이 있으니 말이죠. 며칠 전 지인과 이야기 중에 ‘아내 같은 카메라’라고 하고는 같이 웃었습니다. 말도 안 듣고, 맘대로 안 되고, 조심조심 다뤄야 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그러다가 한 번씩 기똥찬 결과물을 만들어 준다고 했거든요.

오늘은 이 녀석 불만스런 부분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일관성 꽝인 카메라

기능, 성능에 있어서 일관성은 신뢰입니다. 카메라를 믿고 찍어야 하는데 이 녀석은 멋대로 GRal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GR이에요.

  • 화이트 밸런스 일관성 꽝이죠.
  • 노출 꽝이죠.
  • 초점도 멋대로, 어두우면 아주 난리도 아니시죠. 빠릿하지도 않아요. 결정적인 순간들에서 한 번씩 삑사리가 나는데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제는 포기하고 씁니다. RAW 쓰면 되니까…화이트 밸런스나 노출 정도는 유저 네가 알아서 해라. 뭐 이런 건가 봐요.

2. 고감도 노이즈 작열

  • 너무 하잖아요. 겨우 800 넘어가면 노이즈 작열합니다. 여기에 노출 꽝, 화이트 밸런스 꽝 조합이 함께 일어나면 장관이죠. 네!

3. 내구성은 눈물 나요.

  • 조리개 안 열려서 카메라 먹통 되는 결함은  GR에서 숙명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GR2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본 GR은 그렇습니다. 시간문제인 것 같아요. 수리비도 첨엔 카메라 가격이더니 요즘은 그나마 반 가격으로 내려왔습니다. 수리하려면 20여만 원이 듭니다. 만만치 않지요? 전 4번이나 이 증상을 겪었습니다. 마지막 한 번은 열받아서 그대로 버리려다가 지인에게 인계 했어요.
  • 아예 먹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리실에 맡겼더니 메인보드(수리실 용어) 갈아야 한다고 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4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고 살렸던 것 같아요. 지인들이 말렸더랬습니다. 새 것 사라고.
  • CCD에 먼지가 잘 끼는데 청소하려면 비용(4.5만원)이 많이 들어요. 대 여섯 번은 다녀온 것 같은데 말이죠. 지방이다 보니 서울까지 보내야 하는 절차나 시간도 만만치가 않아요. 한 동안 포토샵으로 버티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때 보내고 있습니다만 먼지는 무척 거슬립니다.
  • 손바닥에 열이 많은지 고무그립이 자주 뜹니다. 교체하는데 큰 비용(2.5만)은 아닙니다만 사용 중에 부풀어 오르면 신경 쓰여요. 지금까지 4번 정도 교체한 것 같습니다.
  • 베리어가 때때로 안 열린다거나 셔터에 먼지가 낀 듯 뻑뻑해 진다거나 휠 다이얼 에러라거나 자잘하지만 신경 쓰이는 잡고장(?)도 다수였다지요. 고치면(청소정도였지 싶은데) 된다고 해서 맡겼더니 수리비 7만 원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써 놓고 보니 이런 걸 왜 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5년여 꼬박토록 수리실에 가지 않은 한 지니고 다녔습니다.

왜 그러냐고요?

쓸 만하니까요.

대략 3년 정도 주기로 신 기종을 내 놓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내년쯤에나 새로운 GR을 내 놓지 않을까 기대가 있습니다만 아직은 감감무소식입니다. 풍문도 없네요.

이렇게 까놓고도 신형 나오면 바로 달려갈 듯합니다.^^

 

 

아름다운 도자기_건수자도

젠수이(建水)는 아름다운 도시다. 2009년 처음 왔을 때 아직 이곳은 고풍스런 한적한 도시였다. 십여 년이 지났건만 눈부신 개발 한편으로 옛것을 보존하려는 몸부림이 곳곳에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젠수이는 윈난의 다른 큰 도시들에 비해 일찍 발전된 곳이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란 말이기도 하다. 리장, 따리와 함께 윈난 3대 고성이 있는 곳이다. 중국 3대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 가운데 하나가 중원에서 멀고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창대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이방인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이곳은 일찍 유가풍의 문화가 자리 잡은 선비의 도시이기도 하다. 글줄이나 읽은 노인들이 심심파적 삼아 붓 놀이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먹을 것 볼 것이 풍부하고 소박하고 깨끗한 환경 덕분에 근래 중국에서도 뜨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젠수이 여행 마지막 날, 자도(紫陶)공방을 다시 찾았다. 첫날 도예촌에서 실망한 탓도 있으려니와 자도와 관련된 문화나 자도의 제작과정이 궁금하던 터였다. 형님을 졸랐더니 꽌시가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공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젠수이 자도는 우리에게 비교적 늦게 알려진 도자기다. 송대에 시작된 자도의 역사는 산업화와 함께 근래까지 다른 전통도자기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양길을 걸으며 명맥을 유지하다가 전통문화 부흥 정책과 보이차의 역대급 히트에 힘입어 근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천연의 오색토((五色土: 적, 황, 청, 갈, 백의 다섯 가지 색깔의 원료) 원료를 숙성시켜 기물의 형태를 만들고 상감기법으로 문양, 그림, 글자를 넣는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온(1150 ~ 1200 ℃)으로 소성한 후 숫돌로 물광을 내서 완성한다. 이싱의 자사호와 비슷한 듯 다른 점은 재료, 상감기법 그리고 물광을 내는 것 정도가 되겠다. 항아리, 병, 화분 등 다양한 기물을 만들지만 근래에 차호로 각광받고 있는 아름다운 도자기다.

R0073062[오후 도자촌 거리는 한산하다. 작은 공방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늘어섰다.]

 

R0073064[누가 오거나 말거나 저 할일에 집중하던 도공이 작업 한대목을 마치자 차를 내며 자리를 청한다. 잡히면 한 두개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아 사양하고 물러서 나왔다.]

 

R0073069

.

.

.

여행 마지막 날
쌍용교 근처 제법 갖추어진 공방을 찾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이 어리둥절한 여사장은 속살을 내어보이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R0073353[원료창고, 오색토로 자도의 원료가 된다. 소성되면 각각의 빛깔을 낼 것이다. 덩어리가 보이는 것은 괴상으로 보이지만 만져보면 분처럼 부드럽다.]

 

R0073356[제토과정을 거쳐서]

 

R0073352[정제된 원료를 숙성한다.]

 

R0073362[자사호는 대부분 판성형을 하는데 자도는 물레로 성형한다. 이름 없는 도공이지만 숙련도가 장난아니다. 공방에 소속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기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을 것인데…]

 

R0073359[성형된 기물이 어느정도 건조되면 형태를 다듬는다.]

 

R0073364[깍고 다듬고]

 

R0073365[또 깍고 다듬고]

 

R0073369[건조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 공방에선 철저한 분업이다. 제토하는 사람, 성형하는 사람, 다듬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상감하는 사람 등…20여명의 여성들이 지난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 마디 물어도 대꾸를 안한다…ㅠㅠ]

 

R0073367[밑그림이 그려진 자도 성형품에 그림을 따라 기벽을 파낸다. 색깔이 다른 흙으로 파낸 부위를 채우고 다시 다듬는다. 상감기법이다. 글, 그림, 문양 등 다양한 장식을 하는데 우리 정서는 아니다 싶다.]

 

R0073372[소성하기 전 바닥에 시그니쳐!]

 

R0073375[나서기 전에 전시장을 찾았다. 내내 쫄쫄 따라다니면서 낮빛이 울그락 불그락 하던 여사장이 이 대목에선 판매담당경리라면서 소개시켜 주고 방구새듯 빠져 버린다. 여우같으니라고…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깍아 달랬더니 자기는 깍아줄 권한이 없고 쿤밍과 젠수이 시내 총판이 있는데 그곳과 가격 차이가 나면 안된단다. 여사장이 도망간 이유를 알겠다.]

 

R0073377

하늘에 물든 쌍용교가 교태롭다.

 

#28. L. Parker Stephenson Gallery

L. Parker Stephenson 갤러리는 설립자이자 관장인 스티븐슨(Stephenson)이 2004년 프라이빗 딜러로 독립하면서 세운 곳이다. 원래 은행에서 일하다가 90년대 중반 사진계로 들어온 스티븐슨은 Howard Greenberg, 292 갤러리 등에서 경험을 쌓은 후 고객들을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아방가르드와 20세기 클래식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갤러리는 조금 더 폭넓은 대중을 향한 여타 갤러리들과는 달리 소수의 컬렉터를 대상으로 한 딜러로서의 역할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작가와 고객과의 최소한의 연결 지점을 유지하기 위해 갤러리를 운영하는 느낌이다.

Madison가 764번지에 위치한 갤러리는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작은 곳이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을 메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무실 및 보관고로 쓰는 안쪽의 작은 방 벽들에 추가적으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만 거실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도 이미 업무를 위해 사용하고 있어 실제적인 갤러리와 사무실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벽난로 위에는 전시 자료와 사진집 및 팸플릿 등 갤러리 관련 자료들이 놓여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네덜란드 작가 위터 웜스(Witho Worms)의 <Cette montagne c’est moi (This mountain that’s me)>와 <A Forest Reconstructed> 두 프로젝트들이다. 1959년 생인 웜스는 문화 인류학자이자 사진가로서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닿은) ‘문화’라는 두 가지 개념의 관계에 대해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 또한 이 개념들의 관계를 보여 주고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진들로 이번에 전시된 시리즈들 또한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메인 전시 공간인 거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A Forest Reconstructed>는 작가가 2016년에 완료한 가장 최근작으로 유럽 여러 지역의 숲들을 돌아다니며 담은 사진들이다. 조림(reforestation) 작업을 통해 사람의 손길이 닿은 숲들은 더 이상 자연적인 것도, 그렇다고 순수히 인공적인 것도 아닌(neither randomly organic nor solely artificial)** 자연과 문화(인간)의 경계 그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웜스가 찍은 숲의 단면들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나무들의 배열이다.

경계의 모호함을 배가시키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이미지의 재현 방법이었다.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하얀 인화지(baryta paper) 위에 하얀 티타늄 가루를 적용해 인화한 사진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더 큰 흥미를 느꼈던 전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로 동명의 사진집으로도 발간된 <Cette montagne c’est moi (This mountain that’s me)>였다. 이 프로젝트는 한 때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이제는 폐광이 되어 스러져 가는 유럽 여러 지역 탄광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담은 사진들이다.

웜스의 할아버지 세대에게는 충실한 생산 활동과 활력의 공간이었고, 웜스 같은 작가 세대에게는 드넓은 놀이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곳.*** 어스름한 시간, 거대한 실루엣으로 담긴 광재 더미(slag heap)****들의 모습은 그 속에 흥망성쇠의 시간을 품고 있다.

이 작품들에 더 관심이 갔던 이유는 바로 작품의 인화 방식이었다. 웜스는 이 시리즈를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카본 프링틴(carbon process) 방식*****으로 인화를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인화의 베이스 안료가 된 카본이다. 웜스는 작품의 배경이 된 광산들의 석탄 가루를 담아 온 후 세심한 그라인딩 작업을 거쳐 각 작품의 인화에 필요한 피그먼트(pigment-안료)로 활용하였다.

탄성이 나왔다. 아…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사진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작업은 말 그대로 재현이었다. 눈 앞에 놓인 피사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인화지의 잉크)이 바로 그 피사체 자신이었다. 곱게 갈려 스스로를 내어 더 큰 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카본 프린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밀하면서 섬세한 톤의 묘사도 아름다웠지만 제 몸을 색소로 삼아 밀착 인화된 피사체 자체로서 뿜어 내는 힘은 비할 데가 없었다.

반년 동안 대략 오십여 곳의 사진전들을 다니면서 점점 강해진 생각은 화면이 아니라 눈 앞에 놓인 사진을 보고,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였다. 모니터가 아니라 손에 닿는 실체로 나타난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번 위터 웜스의 작업처럼 멋진 – 아이디어로써도, 결과물로써도 – 사진들을 만나게 되니 새삼 인화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

아직은 현상, 스캔에 머물지만 언젠가는 인화도 시도를 해야 할 텐데. 빨리 준비 안 하면 나중에는 중고 확대기라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 걱정이긴 하다. (사실 과연 시도라도 할 것인지가 더 걱정이긴 하다만서도…)

기본정보

  • 갤러리명: L. Parker Stephenson Gallery
  • 주소: 764 Madison Ave., New York, NY, 10065
  • 운영시간: 수 – 토 11: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lparkerstephenson.com

*18년 4월 19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Cette montagne c’est moi>, Fw:Books, 2012, p.10-11.

****slag heap(광재 더미): 광석을 정련하고 남은 돌 찌꺼기 더미.

*****Carbon process: 영구적인 피그먼트 인화지(pigment print)를 만들어내는 기법. 1855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기법의 단점들에 불만을 느낀 알퐁스 루이 푸아트뱅이 새로 고안해 낸 인화법. 중크롬산염 젤라틴을 토대로 안료를 추가하였다. 1860년대에 다른 이들에 의해 결점들이 개선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인화법으로 발전하였다. 카본 인화지는 색이 풍부하고 윤이 났으며 콘트라스트가 뛰어났고 표현 가능한 색상이 다양했으며, 기타 여러 방식으로 추가 조정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또 벨벳처럼 깊고 짙은 검은색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수명이 길다는 것이었다.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 프레스, 2017, p. 93. 발췌.

DSCF0528

갤러리 입구.

DSCF0526

메인 전시 공간.

DSCF0524

<A Forest Reconstructed> 작품들. 사진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하얀 톤의 느낌이 몽환적이었다.

DSCF0527

<Cette montagne c’est moi> 작품들. 좁은 사무실 공간의 벽면을 활용하고 있어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지만 카본 인화가 주는 톤의 섬세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27. Edwynn Houk Gallery

1977년 개관한 Edwynn Houk 갤러리는 오래된 역사만큼 200회가 넘는 다수의 전시 및 사진집 출판을 통해 작품들을 소개해 오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는 특히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빈티지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브라사이(Brassaï), 빌 브란트(Bill Brandt),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등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을 독점으로 대표하여 왔다. 거기에 더해 1989년 샐리 만(Sally Mann)의 작품을 담당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닉 브란트(Nick Brandt), 모나 쿤(Mona Kuhn) 등 일군의 컨템퍼러리 사진가들도 대표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5번가, 그중에서도 센트럴 파크에 인접한 745번지 빌딩 4층에 위치한 Edwynn Houk 갤러리는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널찍한 로비와 사무 공간, 그리고 이어지는 전시홀은 단순히 넓이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서 풍겨 나오는 고급스러움이 절로 우와 소리가 나게 했다. 입구와 연결된 로비에 소파가 놓여 있고, 전시 자료가 놓인 왼쪽의 길쭉한 데스크 뒤쪽으로 직원들의 사무실이 있다. 로비에서 이어지는 전시홀은 메인홀과 안쪽의 별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인홀 오른쪽으로는 고객 상담 및 작품 보관 등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다. 뉴욕의 갤러리 외에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 분관을 열었고 유럽 진출의 창구로 삼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독일 태생의 사진가 어윈 블루멘펠드(Erwin Blumenfeld)의 1930-50년 대 작품들을 전시한 <Erwin Blumenfeld> 전이다. 독일에서 발현한 다다 운동의 일원이었고 만 레이(Man Ray)와 함께 초현실주의 사진가로도 이름을 알렸던 블루멘펠드는 잡지 <보그> 등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유명 패션 사진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 보이고 있는 21점의 흑백 작품들은 블루멘펠드의 대표작인 에펠탑에서 치마를 휘날리고 있는 모델 사진과 자화상 등의 작품도 있지만 주로 베일과 그림자, 실루엣을 활용하거나 솔라리제이션** 등의 기법을 사용해 탄생시킨 초현실적 이미지의 사진들이 많았다.

컬렉터 데일리***에 언급된 것처럼 어윈 블루멘펠드 정도의 유명한 작가, 게다가 대형 회고전 등을 통해 이미 많은 작품들이 알려져 있는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수장고의 작품들을 일일이 뒤져야 할 때도 있다. 보여 주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전시는 블루멘펠드의 사진들 중에서 순수하게 초현실주의 성향의 작품들에만 집중하여 큐레이팅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신선함을 득했다고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사진들은 예스러운 흑백의 느낌만 제한다면 수십 년 전의 이미지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감성을 품고 있었다. 특히 베일과 역/사광을 조합해 탄생시킨 인체의 실루엣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일률적인 미의 기준이란 물론 없겠지만 블루멘펠드의 사진들은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미를 달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긴 세월을 건너뛴 지금에 와서도 이렇게까지 와 닿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 이런 아름다운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지향하는(또는 내가 익숙한) 사진은 아니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곤 한다. 조명을 활용한 빛과 그림자의 향연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카메라라는 것이, 사진이라는 것이 빛의 예술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해 준다. 그리하여 그 빛을 이용해 탄생시킨 아름다움의 극치에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느낌 같은 것이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Edwynn Houk Gallery
  • 주소: 745 5th Ave., 4th fl., New York, NY 10151
  • 운영시간: 화-토 11:00 am – 6:00 pm (여름 개관: 월-금 11:00 am – 6:00 pm _ 7월 2일~8월 10일)
  • 홈페이지: http://www.houkgallery.com

*18년 4월 19일 기준.
**솔라리제이션: 의도적인 노출 과다로 전체 톤이 반전된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 1930년대에 나온 기법으로 물체의 윤곽과 모양, 콘트라스트가 다 바뀌고 현실 세계의 모든 물체들을 비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들이 많이 사용함.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프레스, 2017, p. 383 발췌.
***2008년 시작한 컬렉터 데일리는 갤러리, 뮤지엄의 전시들부터 사진집이나 작품 경매까지 사진과 관련한 모든 것들에 대해 팩트 – 전시 작품수, 에디션, 연도 등등 – 를 알려 주고 그 외 감상 및 작품 관련 정보를 주는 온라인 매거진이다. 이름 그대로 컬렉터들을 위한 정보지라 할 수 있는데 작품 구매 시장의 기본적인 수요가 존재하기에 유지 가능한 사업형태라고 생각된다. 블루멘펠드 전시 관련 기사는 링크 참조: https://collectordaily.com/erwin-blumenfeld-edwynn-houk/

DSCF0523

갤러리 입구. 고급스러움에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DSCF0517

메인 전시홀. 뒤쪽으로 보이는 것이 별실 공간.

DSCF0519

별실 전시 공간에는 소파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쉴 수도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은 <Nude, 1942>.

DSCF0521

메인 전시홀과 이어진 벽 쪽으로 보이는 사무실. 뒤쪽 가운데로 샐리 만의 사진도 보인다.

DSCF0518

<Wet Veil, c. 1937>.

DSCF0516

<Projected Shadow, c. 1941>.

DSCF0515

<Untitled Nude, New York, c. 1952>.

DSCF0514

<Untitled, Paris, 1936>.

DSCF0513

<Untitled, c. 1940s>.

DSCF0512

<Vogue Paris, Eiffel Tower, May 1939>.

ROLLEI 35 SE

나에게 필름 카메라는 M6 하나로 차고 넘치기에 다른 카메라 따위 눈 하나 팔지 않았다. 다른 카메라의 부류에는 지인이 쓰던 롤라이35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 오밀조밀 이쁘장하게 생긴 색다른 매력의 카메라는 당시 내게 일말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했다. 한창 라이카와 사랑에 빠진 탓이리라.

밀월은 달콤하나 짧을 수 밖에 없는 운명, 라이카시스템은 수려하면서도 충분히 실용적이었지만 필부의 일상을 함께하기엔 그 잘난 몸값이 늘 걸리적거렸다. 앞만 보고 달리던 경주마의 눈가리개가 벗겨진 듯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 마침 이 곳 비급매거진에 “Minolta TC-1 Review”라는 천민수님의 필름카메라 리뷰가 포스팅되었다. 화사한 샴페인색으로 화장한 조막만한 얼굴에 G-Rokkor 28mm f3.5 렌즈는 컬러와 흑백을 넘나들며 발군의 성능을 뿜어내고 있었다.

.

고민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은듯 신이 난 나는 곧장 이런 덧글을 남겼다.

“흑백도 좋지만 쬐그마한 녀석이 뽑아주는 컬러에 마음이 빼앗겨버렸습니다. 손에 들린 도구에 따라 찍는 이의 마음가짐도 변하기 마련인지라 엠육의 엄숙함을 이런 녀석이 벗겨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장비리스트에 올려둡니다.”

나는 곧장 미놀타 TC-1, 콘탁스 T3 같은 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간 귓등으로 듣던 얘네들 몸값이었는데 중고 거래가를 직접 확인해보니 진짜 장난없다. 특히 T3는 몇몇 셀레브리티들이 소장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치솟아 M6랑 몸값으로 비등비등하다. 모시고 다니려 찾는 카메라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고민의 실타래는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

척박한 땅에 내쳐진 씨앗일지라도 적절한 수분과 볕이 주어지면 싹이 트는 법인가.

지름에 고민하는 어둠의 다크에서 문득 송도 바닷가에서 지인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카메라, 롤라이 35가 운명처럼 생각났다. 시세 확인을 위해 당장 장터로 향했다. 싱가폴/독일, 실버/블랙, 35/35S/35TE 등 언뜻 봐도 그 종류가 방대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필름똑딱이들에 비하면 대체로 부담없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노출계와 구도확인용 파인더가 장착되어 있고 노출은 100% 소유주에게 종속적인 매뉴얼 설정방식이다.

1966년 첫 생산을 시작한 롤라이35는 당시 35mm 범용필름을 장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카메라였다. 하지만, 자이스社의 Tessar렌즈와 1/500초를 지원하는 Compur셔터 그리고 고센社의 CdS미터를 사용하는 등 성능은 결코 작은 카메라가 아니었다. 다만, 렌즈 촛점거리는 롤라이35라는 이름과 달리 40mm였고 목측식 초점방식이라는 점이 다소 걸림돌이었다.

.

스스로 학습은 여기까지로 하고 설계자로 불리는 지인의 영도를 받기로 했다. 메신저로 롤라이 35에 대해 문의하자 모니터 너머의 그는 자세를 고쳐앉더니 롤라이35의 탄생과 배경부터 실타래처럼 엉겨 복잡해보이던 다양한 롤라이35 시리즈를 꼬치꿰듯 한방에 정리해주는 신기神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가 덧붙여 보여주는 롤라이35의 결과물은 Summicron에 결코 뒤지지 않는 샤프함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

20180602_35_m6 hp5 9호관사(2) 송도
leica m6, summicron 35mm, ilford hp5+

.

.

20180613_22_후지기록용100 롤라이35 오도리 효자동 산책
rollei 35 se, sonnar 2.8/40, fujicolor 100

(라이카는 35mm, 롤라이35는 40mm인 초점거리 차이로 원근감 차이가 있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면 가격 차이가 무색해보임)

.

.

.

괜찮은 카메라라는 지인의 개런티까지 보태어 나의 세컨 카메라는 이미 롤라이35로 결정되었다. 이제 장터링만 남았다.

“제꺼 쓰실래요?”

문득 건네는 그의 말이 놀랍고도 다행스러웠다. 안그래도 판매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멀리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느니 가까운데 보내면 좋겠다라는 그의 말. 혹시라도 쓰다가 팔 생각이면 자기에게 팔아달라는 조건과 함께 나는 운명처럼 영혼 충만한 그의 롤라이35SE를 분양 받아냈다받게 되었다.

.

Rollei 35SE 모델은 1979년에서 1981년 싱가폴에서 15만대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델은 롤라이35S 기반에 CdS 노출계 대신 전자식 노출계가 장착돼있어 뷰파인더에서 LED 불빛으로 노출 과부족을 확인 가능하다. 렌즈셔터는 벌브~1/500초를 지원하고 Sonnar 2.8/40 렌즈는 f2.8~22, 감도는 25~1600까지 세팅할 수 있다. 특히 조리개 설정시 다이얼 하단에 Lock버튼이 없는 모델이므로 뷰파인더에서 노출을 확인하면서 조리개 다이얼을 손가락 감각만으로 조정할 수 있어 더욱 실용적이기도 하다.

.

새 장비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까지 패키징되어 온다. 요 며칠 40년 된 카메라로 출퇴근길, 동네 산책을 함께 했다. 손목스트랩을 걸고 손바닥으로 감싸면 손아귀에 폭 안기는 컴팩트한 카메라지만 335g의 무게감이 그리 만만치 만은 않다. 일포드 hp5+ 1롤과 후지필름 기록용필름 100 2롤을 사용해 보았다.

.

나처럼 롤라이35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사용소감을 적어보면,

(그닥 많은 카메라를 섭렵해보지 못한 처지라, 주된 비교대상은 롤라이에게 ‘에브리데이-캐리-카메라’ 자리를 잠시 내어 준 라이카 엠육이 되시겠다)

.

첫째, 엠육은 셔터를 장전해야 노출계가 동작하는 반면 롤라이35는 미장전 상태에서도 반셔터로 노출 확인이 가능해 편리하며, 카메라 내장노출계는 외장노출계 값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정확한 수치를 제시해 줌

둘째, 목측식이라 초점에 대해 걱정했으나 풍경 혹은 사물 위주의 스냅일 경우 “피사체와의 거리추정-초점값 세팅-노출확인-조리개/셔터속도 조정-프레이밍-촬영”등의 순서로 차근차근 진행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음. 다만, “프레이밍-초점세팅-노출확인/조정”이 동시에 가능한 라이카시스템에 비해서는 촬영이 두, 세호흡 느릴 수 밖에 없어 순발력이 필요한 스냅에는 활용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됨

셋째, 35mm도 아니고 50mm도 아닌 어정쩡한 40mm 초점거리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몇 롤 찍어본 소감으로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래서 너무 들어갈 필요도 물러날 필요도 없는 균형감 있는 초점거리인듯 함. (35mm와 달리) 인물을 중심으로 (50mm와 달리) 주변 풍경을 살짝 녹여넣을 수 있어 가족 나들이에 적합해 보이기도 함

넷째, 셔터와인딩과 셔터릴리즈의 감각은 라이카의 그것과 비교할만한 것은 아님(가격도 그러하니 뭐). 라이카의 조작감에 대해 흔히 얘기하는 “Silky smooth’가 이런거였구나를 새삼 깨닫게 됨. 그렇다고 롤라이 만듦새가 토이 수준이거나 그런 것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라며, 조작감 측면은 라이카가 월등해서 생기는 차이일 뿐임

.

.

롤라이35는 이른바 ‘찍는 재미’가 있는 카메라다. 손목에 걸고서 가벼운 마음 가벼운 발걸음에 스치는 풍경 목측으로 어림잡아 담아내야 만 카메라. 초점이 맞는지 맞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런게 중요하지 않은 카메라.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란 걸 일깨워 주는 카메라가 바로 롤라이35라는 생각이 든다.

기껏 한달 써보고 끄적이는 글이라 나중에 이불킥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사용 초반의 경험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며 롤라이35 입문기를 마친다.

.

.

.

ROLLEI 35 SE with “Ilford HP5+ Black and white Film”

.

 

.

.

.

ROLLEI 35 SE with “Fujifilm 記錄用 100 Color Film”

.

 

.

.

.

<Rollei 35SE : BW vs Color>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