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Bruce Silverstein Gallery

2001년 문을 연 Bruce Silverstein 갤러리는 모든 장르의 예술을 커버하지만 그중에서도 모던 및 컨템퍼러리 사진에 특화된 갤러리로 모던 거장들뿐만 아니라 젊은 컨템퍼러리 예술가들까지 폭넓게 집중하고 있는 곳이다.

설립자이자 관장인 브루스 실버스타인(Bruce Silverstein)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경제학을 전공하고 90년대에 천연가스 및 전력 상품 등을 거래하는 브로커 펌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이십 대 중반에 이미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그때 당시 기준으로 벌이가 6-figure도 아닌 7-figure였으니 대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던 실버스타인은 잘 나가던 커리어를 끝내고 2001년 첼시 한 구석에 작은 갤러리를 설립하면서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뉴욕 포토 리그* 출신의 사진가 아버지 래리 실버(Larry Silver)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사진을 좋아하던 실버스타인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갤러리 운영, 전시 홍보, 홈페이지 관리부터 바닥 청소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면서 고생하였지만** 15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 온 지금은 서른 명 이상의 작가들을 대표하는 큰 갤러리로 성장하였다. 어찌 보면 흔히 듣는 ‘고생했지만 꿈을 좇아 성공했어요’ 스토리인데 무엇이 되었든 부럽기는 하다.

첼시 중심부인 529 West 20번가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는 규모가 크지 않아 사무 공간과 전시 공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게 혼재되어 있다. 공간이 넓지 않은 대신 이곳, 저곳의 모든 벽들을 오밀조밀 활용하여 작품들을 전시하여 가급적 많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출입문 왼쪽으로 있는 작은 데스크에 전시 자료와 책자 등이 놓여 있고, 오른쪽으로 붙어 있는 정방형 별실이 일종의 메인 전시 공간이다. 앞쪽으로 이어지는 곳은 사무실, 전시 공간, 관장실, 작품 보관고 등등이 혼합된 공간으로 직원들 사이사이를 지나며 조심스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네덜란드 작가 마얀 티운(Marjen Teeuwen)의 <Destroyed House>이다. 유럽 밖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갤러리 전시로 <Destroyed House> 시리즈는 낡고 철거된, 또는 폭파된 건물의 잔해들을 통해 만들어 낸 그녀만의 재해석이다. 무너진 건축물들의 벽과 기둥, 바닥과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 – 시멘트 덩어리들, 철근, 깨진 유리들, 슬레이트, 각양각색으로 부서진 조각들 등등 – 을 세심하게 재구성하여 담은 사진들은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추상 작품들로 느껴진다.

하지만 형상이 주는 느낌에서 벗어나 눈 앞의 작품 속에 담긴 피사체의 근원으로 흘러 들어가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담고 있을 시간의 역사가 새삼 마음속에 떠오른다. 어디선가 태어나 만들어졌을 재료들이 오랜 세월을 지탱하다가 다시 처음의 그 형태로 돌아가는 순환 속에서 티운은 사라져 가는 것들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였다. 렌즈를 통해 사진이 담긴 것은 순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은 응축된 세월이다.

<Destroyed House> 시리즈의 처음 시작은 작가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발견한 철거 중인 건물들이었다. 철거를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건물 안으로 들어 간 작가는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파편들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었다. 그렇게 티운이 만들어 낸 기하학적 질서는 무너진 건축물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재탄생시켰다.

고향의 건물들에서 범위를 확장해 나간 작가가 마주한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는 폭격으로 무너진 집들이었다. 네덜란드에서의 작업과 비교해 보자면 같은 무너진 건물이되 그것이 품고 있는 풍경과 의미와 주변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졌다.**** 그 수명이나 기능을 다해 철거되고 사라져 가는 운명을 마주했던 고향의 건물들과 달리 가자 지구의 무너진 집들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그 운명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인한 환경 속에서 티운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시장에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함께 상영되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과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무너져 내린 건물을 세심하게 재구축하는 작업을 보고 있으니 사진을 만들기 위해 들였을 노력이 느껴졌다. 다른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take) 것과 달리 <Destroyed House> 시리즈의 사진은 구성(constructed) 되었다고 표현한 티운의 말이 와 닿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Bruce Silverstein Gallery
  • 주소: 529 W 20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brucesilverstein.com

*포토 리그(Photo League): 1936년 뉴욕에서 설립된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협동조합. 사진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투쟁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설립 목표였다. 폴 스트랜드(Paul Strand), 앤설 아담스(Ansel Adams), 애런 시스킨드(Aaron Siskind) 등이 이 리그의 회원이었다.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프레스, 2017, p. 315.

**<From Wall Street to Walker Evans>, Wall Street Journal 2007년 6월 8일 인터뷰 기사.

***18년 4월 18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brucesilverstein.com/exhibitions/marjan-teeuwen/4

*****작품 제작 과정 영상은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http://www.marjanteeuwen.nl/lukk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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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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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의 데스크에 전시 관련 자료들이 놓여 있다. 오른쪽으로 메인 전시 공간으로 연결되며 앞쪽으로 보이는 곳이 사무실, 책장, 작품 보관고 및 전시 공간으로 함께 활용되는 곳이다. 전시 제목 옆에 걸려 있는 작품은 <Destroyed House Gaza 9, 201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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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관 및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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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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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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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House Krasnoyarsk 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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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House Piet Mondriaanstraat 1, 2011>. 이 사진은 가까이서, 멀리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언가 빗나간 원근감의 느낌이 계속 들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어 디지털 작업을 통해 합친 작품이라고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