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있다.

중,고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늘 주위에 친구가 있었고 외로움을 느낀적이 없었다. 일본으로 옮겨온 후에도 누구보다 사교적이었다. 주말이면 일본애들과 목욕탕을 다녔고 형제 처럼 지낸 친구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위화감이 엄습해 왔다. 그 위화감은 바로 외로움 이었다는 사실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자각을 했다만…그래서 은둔형 외톨이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직업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끔 참여 하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 자리가 부자연스럽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일부러 여행을 떠나지 않는것은 아마도 그런 일상 자체가 내게는 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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刹那

20살 조금 넘어 홀홀 단신 일본에 와서
당시 버블경제가 붕괴된 일본의 삶 그 자체를
온 몸으로 체험 했다.
먼저 국가 그리고 민족을
부정 하는 정신교육?을 받았고
궁극적으로 목적 있는 삶이
부정 되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이 붕괴 되었을때
인간들이 겪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학문적으로 체계화 한 셈인데…
양심적 좌파 조차도 자본주의의
붕괴가 미친 정서적 충격은 대단 했다.
아무래도 소련붕괴에 대한 적절한 자기성찰과
실천을 게을리 했던 좌파가
실질적인 죽음을 맞이한 셈인데…
그러했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필요했던
시기 임에도, 대안 없는 비판은 쓸모가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넘지 못한체
폐기처분 당해 버렸다….
—-
각설하고…
여하튼 뇌사였다 육체적 죽음까지 맞이 했던 일본의
좌파들은 우파와 똑 같은 논리를 펼친다.
“목적 있는 삶이 우리를 억압한거야!
그런한 거대한 담론은 이제 필요없어.
우리의 삶을 윤택해야 할 필요가 있어” 라고 말이다.
이 세상은 어떤 목적도 그리고 어떠한 철학도 필요없는 찰나 주의적 행태들이 일본 열도에 만연 한다.
학교 교육은 하향 평준화에 맞추어서 재편 되었고
젊은이들에게는 출세 지향적인 삶에서 내 꿈을 가꾸고 실현 하는 이상주의적 사회로 급속하게 탈 바꿈하기 시작한다.
고용형태는 아주 느슨하게..그리고 노동력 강화보다 양적 팽창을 유도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만 해도 먹고 살수 있는
유토피아 같은 사회를 실현해 버린다.
——–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러한 담론 아닌 거대한 담론에 갇혀 버린 일본사회에 떨구어진 나는 일본의 한세대를 초월하는 요상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오죽 하면 학위논문 조차도 “모든 경쟁을 그만두고
평화롭게 살자”였겠는가!
이후 그러한 의식이 지배되는 동안에 사진을 시작했다. 그래서 편향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사진으로 도배된다. 한때 다큐멘타리 사진이나 휴머니즘 넘치는 사진은 혐오의 대상이었다.ㅎㅎㅎ
어쨋든간에 그런한 세대를 초월한 남의 나라의 이기는 하다만 “일본 사회” 라는 커뮤니티를 체험한
나에게 그것이 일종의 트라우마 인것만은 명확하다.

작년에 공짜로 해준다는 사진전을
그만둔 일이 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잘한 결정이었다.
서화전 끝나면 제대로 한번 전시회 열어야 겠다…..

tessar2.8cm/f8

戦前의 예나제 렌즈군중, 약 75도라고 하는 가장 넓은 화각. 발매 당시는 경이적이었습니다. 당시는 이스만사(코닥)나 아그파사등 여러 필름 메이커로부터 시네마용 고감도 필름을 유용한 카메라용 필름이 발매된 무렵이었기 때문에, 깊은 심도를 이용한 원근 효과가 있는 작품을 추구 했던 것 같습니다. f8 이라는 약점이 조금은 상쇄된 셈인데, 렌즈 前玉의 직경은 5mm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명 단추구멍 이라고도 합니다.

3군4매의 테사 구조이며 개방이 f8 이여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어두운 렌즈이긴 합니다.  f32 까지 조일수 있고 역광에도 비교적 강하기 때문에, 뜻밖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방하에서는 콘트라스트가 낮기 때문에 실제사용시는 f11 에 고정해서 사용하는 유저가 많습니다. 심도가 깊기 때문에 당시의 여타 렌즈와 마찬가지고 거리계 연동이 되지 않더라도 사용시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거리계를 3m 위치에 고정하면 1.5m 에서 ∞까지 팬 포커스가 되어 오히려 스냅에  위력을 발휘할수 있어 개인적으로 불편한 점을 느낀적이 없습니다.상황에 따라 거리계를 2m나 5m로 바꿔 가면서 찍어 보는 맛도 즐길수 있다. 총 4가지 변형이 존재합니다. 크게는 2가지로 블랙니켈 (뿔달린 녀석, 없는 녀석) 그리고 크롬도금의 텟사(전기, 후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인 F32로 조이면 거의 핀홀카메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제 사진에서 확인 하세요). 최신 디지털과 같이 사용하면 어두운 렌즈라는 핸디캡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http://spclub.web.fc2.com/hare-moriko-17.htmlhttp://homepage1.nifty.com/chevy/new_page_9.htm

http://www.classicphoto.co.kr/cp/home/essay.php?mid=2&r=view&uid=3140

http://www.mir.com.my/rb/photography/companies/nikon/nikkoresources/RF-Nikkor/Contax_RF/ContaxRF28f8_tessar.htm

http://carlzeiss-zeissikon.tistory.com/6?category=99745 [carlzeiss/zeissikon]

소련의 별이여..영원하라!

Orion28미리는  구소련 (현 러시아)의 GOI (정부 광학 연구소 / Government Optical Institute)가 1930 년대부터 개발을 진행 해온 Topogon (토포곤) 타입의 광각 렌즈이다.다Topogon이라 하면 Zeiss사의 Robert Richter (로베르토 리히테르)가 1930 년대 초에 개발한 4군4매의 대칭형 광각 렌즈이다.

뛰어난 광각 묘사와 왜곡을 극한까지 억제 할 수있는 성능으로 인해 항공측량용 카메라로 이용되어 왔다.  GOI는 러시아와 독일의 국교가 번성했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1919 ~ 1933 년)에 양국간 기술협력의 일환으로 독일에서 Topogon F6.3의 설계에 관한 기술 지원을 받고 있으며,  1930 년대 후반에는 Orion-1A 20cm F6.3 (30x30cm 대형 포맷),  Orion2- 150mm F6.3 (18 x 18cm 대형 포맷 1937 년에 등장) 의 개발에 성공했다. 두 렌즈 모두 항공 측량에 사용 되었으며 지금도 이베이에서 심심치 않게 출품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렌즈는 GOI가 1944 년에 개발한  Orion-15  28mm/ F6이다. 렌즈 이름의 유래는 그리스 신화의 사냥꾼 오리온 이다.  발매 당초는 Kiev 마운트 (구 Contax 호환) 만 지원했으며,  1944 년부터 1949 년에 걸쳐 소량만 생산되었다.  렌즈의 생산이 본격화 된 것은 1951 년부터이다.  KMZ (크라스노고르스크 기계 공장; Krasnogorsk Mekanicheski Zavod)가  Orion-15의 생산을 GOI로 부터 계승하여,   Kiev 용 (구 Contax 호환)와 FED 용 (Leica M39 호환) 2 종을 재출시하였다.

하기의 그림 에서도 알수 있듯이  1963년부터 생산된 렌즈는 공장도 틀릴뿐 더러 설계도 간소화 되었다.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렌즈는 1959년 제품으로 성능면에서 매우 뛰어난 렌즈인데,  1959 년에 개최된 제 2 회 소련 국가 경제 성과 전시회 (the 2nd degree diploma of the Exhibition of Achievements of the National Economy of the USSR)에서 우수한 공업 제품으로 인정될 정도 였다 한다.  1963 년경부터는 ZOMZ (자고루스쿠 광학 기계 공장; Zagorsky Optiko-Mechanichesy Zavod)가 렌즈의 생산을 계승하고있다. ZOMZ 의한 생산이 언제까지 계속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고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일련 번호를 조사한 바로는 적어도 1978 년까지 생산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또한,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개체의 대부분이 크롬경통이나,   1966 – 1967 년에 생산된 블랙 컬러 모델도 소량이지만 유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각의 차이를 별개로 본가인 topogon25mm렌즈와 버금가는 묘사성능을 보여주는 렌즈라고 생각 한다. 물론 내가 보유한 개체에 한해서이다. 지금까지 다른 개체의 오리온렌즈를 3개 정도 사용한 경험이 있는데  현재 보유한 개체와 비교할때 현저하게 묘사성능이 떨어짐을 확인한 바 있다. 가능하면 1959년 이전 개체나 적어도 1962년까지의 개체를 추천하는 바이다.

출처: http://carlzeiss-zeissikon.tistory.com/tag/orion28mm/f6

 

인생은 짧다?

인생은 짧고 할일은 많다 하지만...
나는 어릴적 부터 이상한 감각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다.
난 왜이리도 따분할까? 라는 감각이다. 
이런 경험은 사회생활 하면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곤 했는데... 
실상 늘 한가한 것만도 아닌데다가 
참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이건만...
참으로 따분한 인생이다! 라는 감각 만큼은 
아물지 않는 상처 처럼 늘 아리곤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위안을 삼곤 한다. 
카메라、 시계、 만년필、 재즈、
그리고 시서화、花道、도자기、茶道、
전각(篆刻)에 이르기 까지 
취미의 영역은 한낱 쓸모없는 
道楽 이라 할 지라도.... 
따분한 삶을 풍요롭게 해준
벗이지 않았나 싶다. 
요즘 한2、3개월 열심히 하고 있는것이 전각이다. 
전각이라고 하면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일반적인 부류인지라 
전각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가 겪어온 근대화라는 태풍은 
전통적인 우리의 문화를 선택할 여유를
가질수 없었다.그래서 시서화라는 품격을 
완성해주는 전각을 역사의 뒷켠으로 
몰아내 버렸다. 

전각은 서예의 대미를 장식하는 하나의 
증표와 같은 역활을 한다. 
낙관을 함으로서 시서화는 완성 되는 것이다.
낙관의 격식에 의해 작품의 품격이 정해지는 것은 
조금 이나마 글을 아는 사람에게는 상식이긴 하나...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스스로 상실해 버렸다.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느낀 이후 전각에 대한 
생각이 매일매일 커져만 갔다.
어느날 무조건 칼과 돌을 사서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스승은 없다.
(내 인생 통틀어 선생님이라 
감히 불러볼수 있는 분은 
차를 가르쳐 주신 단 한분 뿐이다).
그냥 내 마음 가는데로 시작했고 
파다 보니 자연스럽게 칼 쥐는 법을 알았고 
돌을 보는 심미안이 생긴 듯한 기분 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 것이 모두 착각이라 할 지라도 
따분한 인생을 슬기롭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잠을 줄여가며 코피를 쏟아 가면서도 
불현듯 밀려 오는 환희는
일종의 중독 같은 것이다.  
간절함은 독이라 하는데....
편하게 살기는 이미 진작에 그르친 듯 하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돌을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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痕跡、余韻、哀憐、凛、戯、破片、彼方 

“내게 있어 사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들을 나열해 보았다. 여지까지 제일 감사하는 것이 한자 문화권에서 조금이나마 한자를 공부 했다는 사실이다. 한자는 중국에서 발생해서 한 중 일 대만 그리고 화교문화권까지 영역을 확대 했지만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총괄 하면서 그 잔영을 반영해 왔다.

같은 한자 이지만 다양성을 내포 하면서 발전했다는 것, 그리고 한자 자체가 시각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서 존립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과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그리고 저마다 그 이미지가 내포하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오늘 왜 이런 무거운 화제를 선택했는가 하면,  “내게 있어 사진이란 무엇인가? 와 동일하게 사진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하는가?”  라는 나의 화두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이다. 대개의 많은 사람 아니 주위의 사진을 하는 친구들 한테, “사진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거의 대 부분의 사람은 한결같이 “죽기전에 사진집이나 한권 내면 되지”…라는  가벼운 대답이 돌아온다. 과연 그리 간단히 사진집을 낼수 있을까? 평생 찍어온 사진을 하나의 통일된 주제 하에 셀렉에 들어가는 순간..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중 하차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진 셀렉이  끝난다 하더라도 다음에 밀려올…출판사, 종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금전적인 압박으로 인해   “사진집 한권 내지” 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 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사진 하는 분 들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진집을 내시는 분들이 계시고 또 전시회를 통한 나름의 사진 활동을 잘 영위 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인 ” 사진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라는 점이다. 이게 해결된다면 죽을때 까지 사진을 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오늘 나름대로 자문자답을 해 본것이다. 나열한 한자중에는 어려운 글자도 있을 것이고 쉬운 글자도 있을 것이다. 이 모두를 종합해서 말 하자면….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그것들의 영원성”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흔적 일 수도 그리고 아련하게 파고 드는 추억일수도 그리고 여운일수도…또 허무 일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은 그 모든것이 生命의 꿈틀거림 일 것이다.

지난주에 갑잡스런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정말로 우연히 프로 사진작가에게 “사진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을 갑자기 받았을때 지금까지의 고민이 한꺼번에 분출되었다. 평소 고민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그리고 뜻 밖에도 전시회 제안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 12월에 여러분들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을듯 하다. 전시회가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남은 시간”내게 있어 사진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 ” 에 대해 고민 할 시간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감사 할 뿐이다.

그 분 말씀에 오늘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담겨져 있을 듯 하다.

“저는 당신의 사진이 어떤지 모릅니다.  전시회는 잘 찍은 사진을 걸어 놓는 곳이 아닙니다. 사진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고민이 어떻게 각 개인에게  발현 되는 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입니다.”

여행이라는 이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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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된 기억은 영원하다.
사람마다 여행의 의미는 다르다.
의미가 다르다 해도 여행이 가지는
비일상적인 일탈은 새로운 활력 이기도
하고 혹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여행이 갖는 의미는 색 다르다.
여행의 체험에서 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이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매우 개인적인 체험 이기는 하지만 내게 각인된 여행의
기억을 잠시 소개해 볼까 한다.

여행1.
15살의 무더운 여름, 1980년대의 기억이다.
난생 처음 탄 비행기를 탔다. 여행지는 일본.
15살 소년의 첫번째 여행 이었고
또한 각인된 기억의 시작 이기도 하다.

15살 소년의 마음은 고동치고 있었다.
해외 여행이라는 설레임도 그러하지만
새로운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양감은 이내
상실감으로 변질 되었다.
누구보다 내 정체성에 자신감에
차 있던 소년에게 일본이라는
공간이 너무나 생경스러웠다.
자유롭고 활기찬 형형색색의 도심이
오히려 혼란 스러웠다.
성적 표현의 관대함도 그러했지만
막 개장한 도쿄 디즈니랜드 그리고
쯔쿠바 세계박람회에서 느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혼란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냥 사소한 감정에 불과 했다.
문화적 충격 이야말로 가장 큰 혼란 이었다.
쿄토 그리고 나라에서 본 전통 건축 양식은
제한된 경험 밖에 없었던 소년에게
너무나 불가사의 하고도 기묘한 충격이었다.
절대적으로 나의 모든 지식 체계가
부정 당하는 듯 했다.
열 아홉살을 맞이 할 때까지 난
그러한 혼란했던 기억의 편린만을
쫒아 해맨 시기였다.

여행2
열아홉살을 어렵게 넘긴 나에게
젊음은 향휴 할수 있는 사치가 아닌 고통 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오직 뿌연 매연으로 가득찬 회색 지대 였다고…

그런 어떤 추웠던 1월…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낯선 환경이 마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거라는
낙천적인 환상, 그리고 비일상적인 일탈이 필요 했는지도..
그래서 택한 곳이 일본 이었다.
15살 그 혼란스럽고 잔인했던 기억의 편린을 다시 한번
되 새겨 보고 싶은 충동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난 15살의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갔다.
다소 어른 스러워진 내게 있어 일본은 어떤 얼굴로
다가 올까 라는 설레임…그리고 그 혼란의 정체가
진짜 였는지 확인 하고 싶었다.
동경역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쿄토로…
그렇지만 이 비일상적인 일탈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기억만을 각인 시키고 끝을 맺는다.
쿄토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길을 헤맨 탓에 박물관 폐장 30분전에 겨우 입장..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박물관 한 가운데 홀로 놓여 있는
목조 불상과 마주 했다. 무지의 상태 에서의 조우.
그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난 다시 한번 압도 당하고 말았다.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존재감….
나는 그때 무너져버린 감정의 변화가 바로
실로 어떤 절대적 미에 대한 각성이 었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서야 비로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날 괴롭혔던 혼란의 정체가 어떤 건지
확실히 알수 없었다.
또 그렇게 여행은 뚜렸 하지 않은
막연한 감정만을 각인한 체 끝나 버렸다.

마지막 여행

채워지지 않는 갈증..몽롱한 허탈감…
난 인생 일대의 일탈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린체 스물한살의 어느 가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각인된 기억들이 새겨진 일본이라는 공간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어설픈 확신을 안은체…
그곳만이 무언가를 채워 주리라는 막연한 동경,
그렇게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런 비 일상적인 일탈이 그리 오래 갈 리가 없었다.
늘 그렇듯이 더 큰 허무를 감내해야 했다. 일상에서의 도피는
결국 허무함 그리고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지루함 이라는 고통을 느껴 본 사람은 알 터이다.
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난 어떤 소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에게 한줄기 빛 이었다.

어느날 그녀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말 하고 싶은게 있어요?” 라고..
그리고 천천히 자기 오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 오빠는 어릴적 부터 피아노 치는걸 좋아 했지요.
소질도 있었고 음대에 갈 실력이었지요.
그렇지만 그 꿈을 접고 의학도가 되었어요”라고…”
그러던 어느 햇살이 아름다웠던 5월 이었어요.
학교에 간다던 오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재촉 하였다.
“그래서..어떻게 되었는데?”
그녀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더웠던 8월..한 작은 카페 였어요.
오빠를 다시 만났어요. 어둡게 조명이
내린 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지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오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5월의 아름답고 눈부시던
그 햇살이 나를 여기에 이르게 했다고…”.
긴 여운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난 그때 처음 느꼈다.
감동이라 부르기기가 경박할 지경의 긴 여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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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그 어떤 혼란과 그리고
긴 여운을 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

hassel SWC, 500C,contax645,sl66(planar80mm)

사진이 두서가 없습니다만 글과 매칭되는

사진으로 뽑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