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장 옆 야산을 허물고 터를 닦았다. 나는 이 때 이 양반이 차 장사나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멍하이, 2015]
사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가 조탁한 세계를 말하는 것 보다 괴로운 일이다. 언어로 묘사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세계와의 만남 또는 충돌 같은 것이어서 프로토콜 맞추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표정, 채취, 숨소리, 목소리, 생김새, 어투, 습관 따위를 섞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다른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내 세계로 걸러낸 주관이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주관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어서 내 세계로 걸러지는 것 말고는 받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를 그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능이다. 그는 반드시 나로 이해된다. 근원적 한계는 절망과 고통이다.
사내를 만나면서 시간의 두께만큼 사진이 모였다. 늘어놓고 보니 그가 조금 보인다. 글 몇 줄 붙여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말 하지마. 난 이제 한 살이여!” 세상 배우고 연습하는데 한 갑자 보냈단다. 이제 살아내기 시작한다는 사내. 용렬한 글로 무구한 어떤 것이 훼손되거나 멋대로 규정되지나 않을까 걱정 되지만 이 사내를 말하고 싶다. 그는 이 용렬한 글에 갇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매섭거나 모질거나 거칠거나 소박하거나 무구한 것이 뭉치고 섞여서 만들어진 사내는 한잔 술에 늘어진 빤스 고무줄처럼 자유롭다. 결핍을 버무려 불쏘시개로 태워 쓴다.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에 변덕스럽지만 동의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한다. 즉흥적이지만 손발이 움직일 때를 알고 행동 해야 할 때 사리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뿜지만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 따위를 담배연기에 짱박아 뱉을 줄 아는 낭만이 있다.
“야~피울아!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라고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여서 그게 그이야긴데 본론이 무엇이건 결말은 언제나 자기자랑으로 갈무리한다. ‘기승전자기자랑’ 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는데 맘에 들어 한다. 이 별명은 내가 지어준 것이다. 굳이 생색내는 이유는 누가 지어 준 것인지 까마득하게 잊어먹기 때문이다. 매번 그렇다.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후천적 습득의 결과다. 천성은 공인이지 싶다. 천지를 후비고 다니다 차가 나는 산에 들어서 저 닮은 사람들과 섞여 놀았다. 그러다가 차 만들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차는 밥이 되었고 사내를 뜨겁게 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 불러 모아서 놀고 싶다.
황제가 마시던 차를 만들어야지.
사람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주고 싶다.
그가 그린 풍광(그는 늘 ‘그림’이라고 말한다) 가운데 내가 아는 몇 가지다.
꿈의 성공은 꿈의 달성이 아니다. 내가 열 개의 풍광을 그렸을 때 그것을 전부 이루겠다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그린 풍광의 본질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 대부분의 풍광이 아직 그림으로 있지만 … 달성되고 달성하고 달성 할 것에 관한 정렬이 아니라 풍광(꿈 또는 그림 어떤 것) 그 안에 삶의 중심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물건은 품는 순간 의미와 가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꼼짝 없이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꿈은 … 꿈꾸는 자는 뜨겁다.
난 사내의 서사에는 관심 없다. 몇 살이고 고향이 어디고 따위의 과거 찌꺼기나 후비적거려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 뜨거운 물건을 아직 품고 있는 사내. 그가 그려놓은 그림과 만들어질 풍광이 궁금할 뿐이다.
그는 ‘바람의 꿈’ 그것을 품고 산다.
그대도 가슴 뛰는 풍광 몇 개쯤 품고 있겠지!
2015년 멍하이 창대한 땅을 고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창(차를 만드는 제조회사)을 열었다. 이방인이 이룬 창업이다. 고수차(100년 이상 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 바람이 불면서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10 여년 축적한 힘으로 공장 옆 산을 허물고 거대한 터를 닦았다. 고향에서 친구를 청해 축제를 열었다. 이 사내가 그림을 그리고 실현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고 그것을 심을 땅을 닦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면 그만큼 세운다. 맘에 안 들면 허물고 기다린다. 다시 때가 오면 또 쏟아 붓고…이곳은 그가 ‘바람의 제국’을 상상하고 그린 땅이다.
[고향에서 친구들이 왔다. 잔치를 벌이기 전에 고향방식으로 의식을 치뤘다. 뭉클한 감동이 일렁거렸다. @멍하이, 2015]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그가 보냈을 시간을 생각했다. @멍하이, 2015]
2017년 쿤밍, 복합문화공간을 열다.
차 시장을 버리고 경제개발구 심장으로 본사를 옮겼다. 생뚱맞은 이곳으로 옮기는 것을 모두들 의아해했다고 한다. 차 사업하기엔 인프라가 모여 있는 차 시장이 적합하다는 것은 상식에 관한 것이다. 도박 같아 보이던 시도는 ‘복합문화공간’을 겸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중국 전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 분야전문가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의방 차산에 초제소와 객잔을 만들겠다고 또 땅을 밀어 놓았다. 완전 신이나서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내려다 보이는 구름이 낮설기만 했다. 이무에서 노가를 통째 업어와서 덩그러니 세워놓았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 가운데 하나다. @의방초제소터에서, 2017]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3일 동안 이어졌다. @쿤밍, 2017]
[바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의방차산, 2017]
[사내들의 방황이란 것이 본디 거칠고 고단한 맛이 좀 있어야 제격인 것이다. @시솽반나, 2017]
2018년 ‘바람의 제국’ 건설 중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벅찬 일이라고 했다. 공장건물이 들어서고 나면 이어서 객잔, 공연장, 전시장, 연구소 등이 차례로 들어설 것이다. 한 귀퉁이 뼈져달라고 했더니 아무 때나 와서 놀라고 한다.
[지난한 과정을 조금이라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이 풍광은 감격이다. 2015년 닦아 놓은 터에 지붕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제국은 공사중. @멍하이, 2018]
[새벽까지 취했다. “이 돌대가리 같은…” “해봤어?…해 보고 말해…” “나 같은 천재는 말이야…” “그림을 그려…그리고 가…똑바로 가” “야이 멍청한 놈아!”. 자동 재생 중이다ㅠㅠ. @쿤밍, 2018]
[차산에 가면 표정이 바뀐다. 편하고 순하다. 돼지 쓸게 받아 들고 흐뭇하다거나 꼬봉 한놈 잡아 놓고 썰을 푼다거나 새로운 차밭은 획득한다거나 모두 즐거운 일이다. @멍하이, 2018]
[다시 그림을 그린다. @젠수이,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