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기억들 – Hanoi Old Quarter

시간이라는 씨줄과 사람이라는 날줄로 엮어낸 장소, Hanoi Old quarter.

통칭 Hanoi Old Quarter라는 구역은 정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Hoankiem 호수의 북쪽에서부터 더 북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Dong Xuan 시장까지를 이야기 한다. 꽤나 좁다란 길에 얽히고 설켜 오가는 사람들을 처음 본다면 가벼운 현기증이 잠시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복잡한 곳이다.

과거 하노이에 모여드는 모든 물산과 사람이 거쳐가고, 도시 내에서 상거래가 집중되는 곳이 이 곳 이었다. 각각의 길은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물건들이 있었고, 그런 길들을 모아놓으면 36개의 길이 되어, Old Quarter는 하노이 63길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는 하노이 여행자들에게 유명해 진 Ta hien 맥주거리 부터, 지금은 실크제품 보다는 기념품을 더 많이 파는 실크거리도 있다. 길의 유래에 맞는 물건을 파는 가게도 남아있고, 지금의 삶에 맞게 바뀐 품목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구석구석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고 재현해 놓은 장소들도 볼 수 있다.

하노이에서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에게도 매우 중요한 장소가 Old Quarter다. 골목마다 소규모 현지 여행사가 모여있어, 하노이에서 가까운 곳은 사파와 할롱베이부터 멀리는 다낭이나 호치민 까지, 여행 상품과 교통편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Old quarter를 꼭 기억하자.

Old Quarter는 보행자에게 불친절 하기로 손에 꼽을 수 있는 곳이다.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걷기보단 한줄로 서서 걷는것이 더 편하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일행의 뒤를 봐주며 걷거나, 앞서가며 일행을 이끌게 된다. 이게 또 희한한 느낌인 것이, 앞서가며 한번씩 돌아다 보면 누군가를 챙긴다는 생각에, 뒤에서 앞사람이 걸어가는걸 바라보면 앞사람을 지켜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 진다. 비록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거리의 분위기 속에서도,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장소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오늘을 사는 하노이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일단, Old Quarter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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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 LeicaM6 / m-Rokkor 40mm F2 / RPX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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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2 / LeicaM6 / m-Rokkor 40mm F2 / AristaPremium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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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2 / LeicaM6 / m-Rokkor 40mm F2 / AristaPremium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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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 Leica M6 / BlackElmar 50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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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 Leica M6 / BlackElmar 50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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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Contax iia / CarlZeiss Biogon 21mm f4.5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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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Contax iia / CarlZeiss Biogon 21mm f4.5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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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Contax iia / CarlZeiss Biogon 21mm f4.5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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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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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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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 Kentmere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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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 Leica M6 / m-Rokkor 40mm F2 / Seagull400(EI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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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 Leica IIIc / Orion-15 28mm f6 / Seagull400(EI800)

꽃보다 청춘

3월29일~ 4월2일

4박5일간의 미래숲 내몽골 쿠부치 사막 나무심기 행사에 촬영으로 동행하여 다녀왔습니다.
아직까지 환경보호나 이런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닌지라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감등 그런 감정 보다는
하나의 경험의 일환으로써, 촬영이 주 목적으로 따라간 일정 이였습니다.

가기전 저를 이곳으로 이끈 실장님과 발대식 끝난 이후에 소주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눴죠
저야 어짜피 촬영이니 모든 스냅은 맡아서 하는거고
실장님께서 망원렌즈 하나 준비하셔서 이미지컷만 담으시는게 어떤가 하고 말이죠
그리고 나서 장비 구성을 마무리 하고 출발했습니다.
D4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D850 하나 챙겼구요
렌즈는 24-120 ,14-24 줌렌즈 두개에 58.4 단렌즈 하나 챙겼습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Q는 챙기지도 않았죠 . 놀러가는게 아니니까요.
카메라 쥔 팔자가 사진에 찍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Sofort 하나 챙겨서 필름 3팩도 챙겨봅니다.(사막 인증샷 같은거나 찍어보자 뭐 이런…)

첫날 역시나 어색한 관계
낯가림이 심한 저로썬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잘 못나누는데 (일하는거랑 실제 성격이 좀 다르죠) 아무래도 나이차이도 많고 하니 먼저 다가오기도 어려워 하는거 같고
그냥 저는 제 일이나 하면 되니까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물론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알콜의 힘을 빌린것도 사실이나
참여한 단원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이들의 생각도 공유하며
또한 제 얘기에도 귀기울여주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뭐랄까요? 무장해제 된 기분?

돈을 받고 촬영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인지라
일할때는 너무 가까워지는건 좀 꺼려 하는데도
점점점 제가 단원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거 같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사실 굳이 제가 찍지 않아도 되는 사진들이였죠, 행사 관련 스케치와 스냅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인스탁스 필름 30장 중에 저한테 온건 2장이구요
사막을 가지 못한지라 저녁먹고 밤거리의 예쁜 불빛을 볼때면
D5에 105.4도 챙기고 28.4도 챙길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더 많이 담아주고 더 예쁘게 인생샷 남겨줬더라면….
모두와 말좀 걸어보고 얘기를 나눴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들…
인스탁스 필름도 좀 넉넉히 챙겨가서 줄걸 하는 아쉬움들
그렇게 4박5일이 총알같이 지나고 지나간 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곱씹어봅니다.

아쉬운게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버스를 계속 하나만 타서 다른 버스 팀과 교류가 적었던 부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막에서 별을 못본거죠
하지만 비록 사막에서 별을 보진 못했지만
별빛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단원들의 눈빛이 저에게 사막의 별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들과 함께 하게 해주신 미래숲 관계자 분들과
(네다바이의 스멜이 좀 나지만…)어쨌던 저를 사막으로 인도해주신 Starless 실장님께도 감사합니다.

목요 자유부남

목요 자유부남

어제 목요일 급 하루 휴가가 생겨서 여기저기 좀 쏘다녔습니다.

우선 아침에 간단하게 두유 한잔 원샷하고 피사장님 계시는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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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뵈었지만 형님은 여전히 그 미소 그대로 저를 맞이해 주십니다.

밥부터 먹자며 저를 끌고간 곳은 정말 “할매”가 해주시는 추어탕집이였습니다.
저희 집안은 안동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경북음식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할매가 내주신 맑은 국물의 추어탕도 넘나 맛났지만
곁가지로 나온 겉절이가 얼마나 맛나던지,
보기엔 참 간단해 보이는데 이게 왜 부산서는 그 맛이 안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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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밥 잘 먹고 인근 다원으로 들어 갔습니다.
들어서기 전에 형님께서 여긴 뭐 내가 오히려 가르쳐주는 그런 곳이야라고 말씀하실땐
뭔가 일반인은 알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역시 대구 이곳은 그의 나와바리인 겁니다.
보이차와 귤(?)을 15년 이상 말린 차를 우려 주셨는데
차 맛이 이렇게 오묘하고 깊고
담는 용기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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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너무 많이 마셔 화장실 들렀다 바로 대구의 필름 성지 솔리스트로 향했습니다.
예전부터 형님께 대구 가면 꼭 솔리스트에 한번 데려다 달라고 조르곤 했었는데 드디어 제가 갑니다.
그렇게 만나뵌 솔리스트 선생님은 너무나 반듯하고 깔끔하셨습니다.
그 성향 그대로 흑백인화물들도 얼마나 정직하고 깔끔하게 뽑아내시는지
저는 그런 성향이 참 좋았지만 약간 깔롱한걸 좋아하시는 울 피형님은
좀 더 양념을 쳐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몰래 저한테만 주셨습니다.
제가 본 솔리스트는 네가인화의 정점에 다달은 현상소였습니다.
샘플로 몇장 본 수작업 네가 인화의 사진들이 어쩜 그렇게도 이쁜지
톤과 느낌이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늘 흑백만 다루어 왔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네가로도 좀 찍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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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울 설계자 동생이 열심히 뺑이치고 있는 건천으로 찾아갔습니다.
네비의 목적지인 건천읍사무소에 도착해서 보니 여긴 어디? 나는 어쩌다?
결국 내가 진짜 건천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조금 기다리니 울 피요동생이 일에 찌든 얼굴이지만 공장에서 탈출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저를 맞아줍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갈비뼈 부서지게 부둥켜 안고 먼저 말을 꺼냅니다.
행님 소고기 무글래요? 잡어매운탕 무글래요?
도시에선 흔히 먹기 힘든 민물매운탕을 먹기로 하고 건천 최고 맛집 현일식당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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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로컬맛집은 다릅니다.
저녁 시간에 이 외딴 곳에 사람들이 꽉 찹니다.
딱 안동에 어른들이랑 형님들이 해 먹던 그 맛입니다.
민물매운탕 몇숟가락 떠먹으니 울 아버지가 참 좋아하시는데 하는 생각이 납니다.

저녁 배불리 먹고 추위도 피하고 담소도 더 나눌겸 커피 한잔 마실려고 하니
어설픈 건천표 아메리카노 보단 이번 기회에 같이 지역 다방으로 한번 가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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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다방 아가씨를 기대하며 들어선 우리의 선택지 백조다방엔
불행히도 아가씨는 없었습니다.ㅠㅠ
쌍화차랑 말 그대로 다방커피를 한잔씩하며 새로 장착했다고 하는 orako를 들여다 봅니다.
역시 설계자는 틈을 주지 않습니다.

다시 야근하러 들어가는 동생을 뒤로하고 차의 방향을 퐝으로 돌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뿡회장을 만나고 가야 오늘의 마무리가 되는거죠.
퐝 공식 만남의 장소 파스쿠찌 지곡점에서 조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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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해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저쪽에서 자이즈이콘 슈퍼이콘타를 한손에 달랑 달랑 들고 나타납니다.
이 밤에 꼭 제 초상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서 감도 800으로 세팅해서 들고 왔다기에
오늘 하루의 무리한 일정으로 피로가 겹겹이 쌓인 얼굴을 한 저는
눈 밑이 아니라 턱 밑까지 내려온 저것은 분명…다크서클인가? 아닌가?
하지만 기꺼이 쾡한 모델이 되어 줍니다.
우리 둘의 나이차이는 조금 있지만 아이들은 같은 나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막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피요를 굳이 파스쿠찌로 불러들입니다. ㅋㅋㅋ
마지막까지 퐝 커피숖 구탱이에서 건너편 테이블의 아줌시들이 보던말던
카메라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성인 남자 세명이서 이렇게 저렇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다이나믹했던 하루를 마감합니다.

그렇게 새벽에 고잉홈을 하고 쓰러지듯 잠이든
부산->대구->건천->포항->부산
단 하루 자유 유부남의 목요일 일기 끝

p.s.
올려진 모든 사진은 아이폰 5s로 담은 것들입니다.
담번엔 다른 지역구 횐님들도 투어로 꼭 한번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ほっかいどう D-12

삿포로 예비모임 2018.1.13

벌써 반년전? 쯤이군요.
삿포로 겨울 출사를 진행 하시는걸 보고 꽤 많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영업자라서 내가 저길 갈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악마같은)Starless 님께서 저에게 그러셨죠

`우리같은 술꾼은 꼭 가야할 곳이야!’

마침 개인적인 비보도 있었고 바람좀 쐬러 자주 가는 제주도는 슬슬 지겹고
(그러면서 2월에 또 간다죠? ㄷㄷ)
그냥 못먹어도 Go!

그렇게 시작된 출사 준비가 하나둘 착착착 진행이 되더니
결국 이렇게 오늘 예비모임도 하게 되었습니다.
누추한 공간에 참석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합니다.
특히나 여행 준비로 진두지휘 하고 계신 Starless , Human 두분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12일 정도 남았는데 (오늘이 딱 D-12 더군요)
2주 후에는 신나게 일본 여행기를 올릴 그날이 오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히 1월25일에 만나요

p.s 오늘 제비 뽑기 하신 두 형님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ㄷㄷ

 

B급 정산_’17년을 마무리하며

* 피사장님의 역점사업인 ‘응답하라 2017_12달의 기억’ 참가용 포스팅입니다.

 

병신년이 가고 맞이한 2017년은 분명 특별한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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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직접 목격했고, 같은 달 1000일 이상 차가운 물 속에 잠겼던 세월호가 인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부카니스탄에서 연이어 미사일을 쏘아대니 미일러중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골머리가 썩는 모양새구요. 비록 타의에 반으로 갈라섰지만 남과 북은 각자 악으로 깡으로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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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세계적 담론을 계속 이어갈 깜냥은 애당초 없으니, 이즈음에서 개인사로 넘어가보면 무엇보다 B급 매거진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피사장님께서 연말정산용 판을 손수 깔아주시니 응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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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10일 첫 포스팅을 개시한 후 12월 현재 총 24개의 글을 등록했네요. 얼추 격주 단위가 되는데요.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21세기 필름입문자를 위한 안내서’가 472회로 가장 높았고, 가장 많은 코멘트가 달린 포스트는 28개의 덧글이 달린 ‘아빠 카메라’라는 글이었습니다. 각각의 글 특성상 그럴 수 있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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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보름 남짓 남긴 시점에서 올 초부터 매거진에 게재했던 포스트들을 한번 돌아보고, 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하나씩 대표 포스팅을 골라 커버 사진과 함께 간단한 코멘트를 곁들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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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New year wat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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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일 포항 왕룡사입니다. 집에서 차로 15분거리라 매년 신년일출을 보는 곳입니다. 다만 올해는 삼각대와 망원렌즈 대신 필름카메라와 35미리 단초점 렌즈를 들었습니다. 모두가 일출을 볼 때 반대방향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충분히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포스팅 날짜로 치면 3월에 들어가야 맞지만 1월을 비워두기도 뭐하고 사진 자체는 또 1월에 촬영한 것이 맞기에 우격다짐으로 여기에 낑굽니다. 제목은 엘리엇 어윗의 Museum watching에서 착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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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 필름 그리고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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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매거진 데뷔 글입니다. 생짜로 새로 쓴 글은 아니었지만 개발새발 망작들에도 열렬히 환영해주신 덕분에 곧이어 가고시마어시장, 이부스키로 이어지는 망작들을 꿋꿋하게 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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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 아빠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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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내미와 생애 첫 콜라보입니다. 말하자면 “그 아들 촬영 그 아빠 보정” 정도가 되겠네요. 당시의 빅픽쳐로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사진과 장비에 취미를 붙여 아빠랑 출사도 다니고 곧이어 엄마 승인 하에 신품도 막 같이 까고 그럴라고 했는데, 녀석이 사진을 찍는 건 이때가 마지막이 되어버렸네요. 쥬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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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 심도깊은사진에관한심도얕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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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빨이 좀 섰던 포스팅입니다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거장들의 사진에 이어 붙어 있는 제 사진들은 죄다 오징어네요. 오징어가 아주 풍년입니다 풍년.

5월 – 21세기 필름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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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개월차에 욕심을 좀 내보았습니다. 필름으로의 회귀가 아닌 역행자로서의 관점으로 한번 들여다본 것입니다. 모쪼록 제 글이 중고 필카 가격방어에 일조하길 바래봅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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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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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그리고 라이카”라는 제목 포맷을 계속 이어봅니다. 전적으로 매거진을 목적으로 촬영한 첫 결과이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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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 흑백사진 그리고 실버에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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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개인 블로그에다 7편으로 나눠 연재했던 실버에펙스 사용법을 한데 묶어본 것입니다. 포스팅 아래 붙은 피사장님 덧글에 대한 답글처럼 매거진에 포진하고 계신 거장들 모셔두고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형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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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 사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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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들어간 사진에 지칠 때쯤 방문한 돗토리 사구는 제게 일종의 치유의 공간이었습니다. 웅장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말 한 마디는 수천만년 쓸리고 쌓이는 모래와 다르지 않았고, 감광층에 한 컷씩 퇴적되는 흑백의 풍경들은 그야말로 자기치유의 경험이었습니다. 바다와 산 그리고 사막이 한데 어우러진 진풍경이 궁금하시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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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 우에다쇼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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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 출신의 세계적 사진작가 우에다 쇼지. 건축가 다카마스 신이 ‘소녀사태’를 모티브로 하여 다이센산 기슭에 마련해 준 보석같은 공간 속에서 쇼지의 작품들은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했습니다. 과연 예술적 영혼이 담긴 마스터피스는 비록 담긴 그릇이 다르더라도 서로 소통하고 작용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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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 마카오스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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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태양 아래 스냅에 올인했던 5일 간의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라지만, 사람 사는 거리는 사람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법입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본 그곳의 거리는 포항송도의 거리 구룡포의 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있지만 지극히 외로운 사람들.. 그들의 표정은 곧 나의 표정이었음을 이내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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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은퇴 그리고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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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은 참 어렵습니다. 너무 가깝기에 곁에 있는 줄 모르고 너무 사랑하기에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는.. 그래서 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젊은 시절을 단 하루라도 무심히 흘려 보내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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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KODAK PORTRA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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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선물 받은 포트라 400 두 롤 가지고 풀어본 이야기입니다. 컬러필름을 흑백사진처럼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괜히 쌩돈 날리지 말고 흑백쓰자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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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텍터 피요님 권유로 시작할 당시엔 5편 정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거리가 없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하는거 10개는 채워야겠다는 야심을 품고 필진으로 참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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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정기 포스팅에 대한 의무감과 함께 때로는 오히려 매거진 포스팅을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필진으로 활동하는 일이 결론적으론 목표 없이 부유하는 사진생활보다는 좀 더 계획적인 생활로 유도하고 사진 자체에 대한 흥미와 동기부여를 유지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B급 매거진은 “사진과 글에 대한 습작의 공간으로서” 그리고 “개성 있는 필진들의 수작들을 정기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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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매거진 아래 필진 리스트에서 제 이름을 클릭해 보곤 합니다. 워드프레스 특유의 동적 레이아웃으로 펼쳐지는 포스팅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못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드네요.
내년 이맘때 펼쳐질 제 포스팅 리스트에는 과연 어떤 사진들과 이야기들이 올라와 있을지 내심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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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족 여러분,

1년 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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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사진 – study를 시작 하며

1. 사진의 기초

2. 노출의 이해

3. 사진 장르

4. 사진 이론

5. 빛의 이해 -1

6. 빛의 이해 -2

7. 이미지후처리

8. 사진을 보는 법

9. 프로젝트 하기

10. 과제 제출 & 비평

스터디를 시작하기로 논의가 오간 후 최종 동의를 하고 1차로 완성한 스터디 진행표입니다.

처음 구상을 하시고 진행을 진두지휘하고 계신
LaFesta 님과 Starless 님 두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스터디 강좌를 진행 해주실 분들,
그리고 이 스터디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무슨 다 끝나고 에필로그 적는 것 같은데요,
이제 시작입니다.
바로 지난 일요일 스터디 시작을 위한 예비모임을 했습니다.
1기 총 7분의 회원님들에게 카메라를 빌려드리고 필름 넣는 법부터 이 분들의 궁금점까지 3시간으론 너무 부족했던 하루였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열정적이어서 5개월동안 풀어야 할 얘기를 그자리 에서 다 해버릴 뻔 했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은 몇몇은 떼놓고 설명 할게 아니라
사실 계속 꾸준히 같이 묶어서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사진이란게 그렇죠.

좋은 분들과 만나 즐겁게 술 한잔(으로 끝나지 않아서 문제지만) 하는
즐거운 모임인 B급사진
하지만 즐겁게 술 한잔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고
남아도는 에너지가 너무 아까워서 이 에너지를
숙취 해소가 아닌 다른 걸로 풀기 위한 수단으로 스터디에 수락을 했습니다.
업무에 방해가 되면 안되지만 업무와 별개로 이것저것 해 볼 생각에
17년전 학교 처음 입학해서 교수님들 말씀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스무살 제가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는데요,
역시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심장이 흥분 되고 짜릿해집니다.

내년 5월말에서 6월 초에는 1기 멤버분들과 즐거운 척 하는 가식적인 얼굴로 스터디 마무리 단체사진을 찍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건투를 빕니다.

끝으로 카메라 빌려주신 모든 분들께 레알로 오지게 감사합니다.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모든 컬러 사진은 D5+58mm1.4N
*모든 흑백 사진은 Monochrom

** 보정 1도 안해서 사진 담긴 모든 분들께 Sorry Sorry

나른하고 느린 며칠

2017. 2. 27 ~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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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고 느린 며칠을 보냈다. 뜻하지 않게 생긴 시간이다. 한 곳쯤 더 다녀와도 될 시간이었지만  제법 지쳐 있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닥친 스펙타클한 일정이었으니까…늘어져 뒹굴거리기로 했다. 일정을 마무리하는 의식 따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텐션을 풀어놓고 며칠 보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늦은 아침을 먹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골목 구석구석 쑤시고 다니면서 낡은 흔적을 뒤적였다. 새로 지어진 건물 사이에 흙으로 쌓은 두툼한 담장과 공동으로 사용하던 화장실이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 담장 아래로 노출된 하수도라거나 그 곳에 오물을 갖다 버리는 아낙들 간혹 눈에 띄었다. 커다란 멧돌이 나뒹군다거나 절구 따위가 대문간에 방치된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이었다. 마음 닿는 곳에 이르러서는 상상과 공상을 더해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마실 나온 어르신들과 더듬더듬 소통을 시도했다.

걷다기 지겨우면 차실로 갔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가면서 차 마시다 배고프면 한상 차려 먹고 또 느긋하게 차나 마셨다. 리리랑 놀다가 방군이랑 차마시다 송문이랑 사진이야기도 좀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하는 친구들 방해도 하다가 기어코 지겨워지면 택시를 탔다. 새로 사귄 풍골에 가서 쇼핑도 하고 시내서 사람 구경 하다가 저녁엔 술친구 만나서 상다리 부러지게 삥 뜯어 먹고 얼큰해져서 돌아왔다. 이렇게 꽉 채운 이틀을 보냈다. 개강날짜가 다가왔으니 내일이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지.

혼자서 며칠 더 계셔야하는 선생님이 걱정이다.
“내일 같이 돌아가시죠?”
“응, 안 그래도 좀 그래”
“저 없으면 재미없으시잖아요? 당주는 안 놀아 주던데…”
“ㅋㅋㅋ 피선생 가고나면 뭐 딱히 할 것도 마뜩찮고…”

스케줄 조정을 서둘러 마치고 꿈 같은 마지막 밤을 맞으러 나섰다. 명흥에 들러 묵은 회포를 배가 찢어지도록 풀었다. 밤의 주인이 바뀔 무렵 불이 다 꺼진 차 시장에 들러 늙은 차를 마셨다. 곡강에게서 차산 이야기라든가 늙은 차 구한 이야기 듣는 것은 흥미진진이다. 보이차 무협지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곤명. 그 깊은 밤!

2017. 2. 26 곤명으로

사위가 조용하다. 가라앉은 공기가 적막함을 더했다. 좁은 침대공간에서 뒤척이다가 창에 얼굴이 닿았는데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가 없는 것을 보니 버스는 제법 긴 시간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다. 야간 운행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운행이 금지되고 기사들이 쉬어야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버스안에 사람들이 하나 둘 뒤척이기 시작한다. 정신은 깨어났는데 눈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랫배에 가득찬 액체를 비우고 싶지만 몸도 쉬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물 먹은 솜뭉치마냥 무겁다. 떫은 감을 세 개쯤 씹고 있는 듯 텁텁한 입도 헹구고 싶고 냉수에 머리도 빨았으면 좋겠다. 젖은 창을 발로 문질렀다. 얼마나 왔을까? 주위를 살폈다. 자욱하게 내려 앉은 안개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지만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아뿔싸! 차에서 내려보니 단지 정차중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까딱 했으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바로 앞에서 커다란 트레일러가 허리를 접고 도로를 막고 있었다. 지난 밤에 일어난 사고였다. 다행인 것은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사고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시야가 닿는 끝까지 차들이 늘어섰다. 얼마나 막혀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걷거나 쉬거나 볼일을 보거나 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는 사이 날이 밝았다. 이윽고 공안들이 왔고 또 한참을 수석거리다가 아침이 익어서야 길이 열렸다. 밤새 달려왔건만 아직 반도 못 온 모양이다. 눅눅한 길을 달리던 버스는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정차하고 말았다. 이번엔 무장한 군인들이다. 검속이 만만치 않은 코스인데다 곤명터미널 칼부림 사건 이후 검속이 강화 되었다고 했다. 외국인들만 잔뜩 탄 침대버스가 뜬금없이 새벽을 달리는 상황이 그들을 긴장하게 했을까! 당주와 건군이 긴 시간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했고 거둬간 여권을 한동안 뒤적거렸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 중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위협적이었다. 야리는 폼새가 찍지 말라는 거다. 그렇다고 안 찍을 수야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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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렇게 가다가는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 떠나올 때도 쉽지 않더니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네.

“피 선생! 같이 며칠 더 있다 갑시다.”
당주도 거들었다.
“일찍 가면 뭐 할 거 있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거여!”

일정을 조율해 보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건군에게 비행기 스케줄 조정을 부탁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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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가 지나서 곤명에 닿았다. 공항난민 신세로부터 꼬박 하루만이다. 일행들도 모두 잘 견뎠다.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했다. 긴 하루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일행은 차 시장 관광을 떠났다. 이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차우회 때 개발해 둔 차도구점을 소개했다. 죽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인연과 질, 가격 모두 괜찮은 곳이었다. 몇 대의 승합차에 나눠 탄 일행은 지묵당 직원의 안배를 받으며 떠났다. 불현듯 찾아 온 고요와 평화가 주는 안도감이라니. 이럴 때는 차를 마셔야 한다. 차와 함께 삼매에 있을 무렵 반가운 손님이 래방 했다. 곡강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감로 같은 술과 벗이 함께 있으니 놀기 좋은 밤이다. 늦은 밤토록 먹고 마셨다. 이날 밤 곤명은 몹시 추웠다.

…이어서

필름, 라이카 그리고 일년

필름 시작한지 어느새 1년이 지난 것을 깨닫고는 새삼 놀랐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올라오는 걸 보니 디지털에서 필름으로 넘어 온 일년이 꽤나 즐겁긴 했나보다. 이미 필름 입문 100일 기념으로 한 차례 우려먹었던 터라 올챙이적 썼던 초반의 글은 생략하기로 한다.

  § 궁금하면 클릭 → “필름 그리고 라이카

일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사실 필름을 쓰기 전 내 사진생활은 어느덧 기억 속에서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솔직히 흑백 필름에 이렇게까지 빠져들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주변의 지인들은 이런 나를 보고 적응하고 말 것도 없이 금방 필름에 익숙해졌다며 놀라워했지만 실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오리발은 물 아래에서 조낸 저어대고 있었던 것..

그 와중에 사진만 찍으려는 나를 가만두지 않는 짓궂은 지인들은 끊임없는 뽐뿌와 감언이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곤 했지만 내심 그 조차도 나쁘지 않았다. 없는 살림에 선택과 집중으로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며 어느새 나도 8매가 뭔지 알게 되고 콘탁스가 어쩌네 자이즈가 어쩌네 귀에 담은 풍월이 제법 늘어갔다.

때로는 선문답 같기도 하고 때로는 저 무슨 한심한 시간낭비인가 싶기도 했던 환자들의 농담따먹기도 어느새 익숙해지자 한없이 가볍고 쓸데없어 보였던 그들의 ‘놀이’도 필름 사진과 올드카메라를 사랑하는 동호인 그룹만의 유니크 한 재미임을 알게 되었다. ‘놀이’라는 필터를 적용해보았더니 적어도 내 주변에 자칭 환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치고 진짜 환자들은 없었다. 장비질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사진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쏟았던 있는 이들이라는 걸  그들과 가까워 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영원히 쓸 것 같았던 렌즈를 바꿨다. 10년은.. 아니 평생 써야지 했던 헥사논은 1년도 되지 않아 집을 나가 주미크론으로 돌아왔다. 내년에도 주미크론이 내 곁에 있을지 장담할 순 없으나 어찌하랴?

Que Sera, Sera

 

 

발로찍은부산

청접장이 도착했다. 어릴적 고무신 신고 개울서 같이 뛰놀던 녀석의 늦은 결혼이다. 식은 주말에 멀지않은 부산! 대충 축의금만 보내고 말일은 아니기에 아내에게 하루 갔다와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내는 이왕 내려가는거 부산 한바퀴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그리 하란다. 우왕 성은이가 무지망극이다.

아내의 승인도 떨어졌겠다 본격적으로 지인찬스와 인터넷 검색 등으로 부산에 가볼만한 곳 몇 군데를 후보로 올리고, 도보여행인 점을 감안하여 이동거리가 짧은 코스로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자갈치시장 – 보수동(책방골목) – 국제시장”

죽도시장에 대한 애착이 다른 도시의 어판장으로도 이어지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자갈치는 꼭 가고 싶었다. 최대한 일찍 가서 운이 좋으면 경매현장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부산여행 관련 블로그에서 이미 익숙해져버린 보수동 책방골목과 군것질로 허기도 채울 겸 먹자골목이 유명한 국제시장을 코스에 끼워넣었다. 대충 장소도 정해진 만큼 이젠 장비를 고민할 차례였으나, 한창 필름찍는 재미에 빠져있는 나에겐 필름바디에 35미리 초점거리의 렌즈 하나 그리고 일포드 HP5+ 흑백필름 서너롤이면 차고넘쳤다.

이렇게 저렇게 친구의 결혼식 날이 밝았고, 이른 아침 터미널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노포동에 떨어진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남포역에 당도했다. 구멍을 빠져나오니 하늘에 구름이 빼곡하다. 야외에서 수동카메라 쓰기엔 참 좋은 날씨다. 카메라 셔터속도 다이얼과 렌즈의 조리개링을 적당한 값에 세팅하고 영도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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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스무걸음 남짓 걸었나? 약재상을 하시는 할머니와 강아지를 만났다. 잠시 물건가지러 가시는 할머니와 놀아달라고 조르는 강아지의 실랑이를 첫 컷에 담았다. 뭔가 재밌는 순간을 잡아낸 듯 했으나 필름카메라기에 당장 확인할 길이 없다. 디지털이었으면 재생버튼 눌러 그 자리에서 확인했겠건만.. 스냅 결과물에 대한 궁금증이 잠시 일었으나 어찌할 도리 없이 영도다리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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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영도대교를 건너지 않고, 반세기 전 점집들이 성황을 이루던 다리 옆 좁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익숙한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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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평일 같았으면 분주했을 어판장 옆 해산물 창고도 한가한 일요일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잉? 잠깐만..혹시 어판장도 한가한가? 아니나 다를까 서둘러 도착한 자갈치 어판장은 고요했다. 아뿔싸! 내심 기대했던 경매풍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하릴없이 노점 몇 개를 지나 탁 트인 바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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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음.. 과연 부산하면 갈매기 갈매기 하면 부산이로구나. 포항보다 백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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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바다를 품은 사내는 버거운 일상의 의연함을 잠시 내려놓고 센티멘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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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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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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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자갈치 주변을 돌며 게으른 시장의 일요일 풍경을 필름 몇 컷에 구겨넣은 후 국제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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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텍스트는 강력하다. 이미지와 형태 따위보다 수만배 힘이 있다. 우리 안구는 자동인식기능이 탑재된 양 흘러넘치는 텍스트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조목조목 색인한다. 그리고 나와 1이라도 관계된 것들은 연결점을 생성하여 붙잡아두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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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도착한 광복동 젊음의 거리는 간밤의 술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고약한 풍경이었다.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에 혀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40줄 어엿한 아재임을 셀프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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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보수동 책방골목. 흘러가며 몇 컷 찍고 금세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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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간격으로 재밌는 순간을 발견했던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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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흥미 없었던 보수동 책골목에서 보다 외려 여기서만 족히 20분 가량 머물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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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코너를 돌아 가파른 언덕을 지긋이 밟으며 올랐다. 숨이 가빠질 무렵 용두산공원 부산타워를 품은 옛 부산의 아기자기한 풍광을 만났다. 그래 바로 이게 부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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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와 국제시장 먹자골목으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에 지하철 그리고 바지런히 걸었던 탓에 꽤나 허기가 진다. 뜨끈한 오뎅국물도 좋고, 내 평생 페이보릿 떡볶이도 무지 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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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재지않고 적당한 식당을 골라 곧장 들어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음식 나올때가지 가게 안을 살폈는데,  개업할 때 시집와 가게의 역사를 묵묵하게 목도하고 있는 벽시계와 오래된 등유난로 그리고 좁은 가게 안에서 긴 시간동안 최적화된 테이블과 조리도구들의 배치까지.. 모든 것에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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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이제 친구의 결혼식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이곳에 도착했던 남포역으로 되돌아가는 길에서 우연히 용두산공원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손목시계는 시간이 빠듯하다고 아우성이었으나 언제 또 이곳에 오겠나 싶어 다녀와보기로 했다. 용두산은 실제 해발 49m로 높지 않은데다 광복동 방향에서 손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부담은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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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도중 용두산 어깨치에 마련된 야외 체육시설이 흥미롭다. 어르신들 모두 기구 하나씩 맡아서 각자의 운동에 열중하고 계신다. 20년 뒤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사진은 계속 찍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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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공원을 마지막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오전 내내 부지런히 걸었던 탓에 딱딱한 철제의자임에도 꽤나 아늑하다. 노곤함을 친구삼아 목적지까지 꾸벅꾸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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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결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