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이야기

하늘에 매화꽃이 날렸다.

‘응? 바람도 안부는데?’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이었다.

‘3월에 눈이라니…’

잔뜩 찌푸린 하늘 탓에 매화가 싱그럽게 담기지 않을 것 같아 불만이던 차에 눈까지 내리다니. 아무래도 날씨 좋았던 지난 주에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다시 밀려온다. 남자는 삼각대를 접었다.

다압면에서 섬진교를 건너 다시 하동읍으로 돌아온 남자는 눈을 피해 터미널로 들어왔다. 이 날씨에 어디를 가나. 그냥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몇개 적혀져 있지도 않은 행선지 시간표를 바라보던 중 마침 화개행 버스가 들어오길래 남자는 이내 올라탔다. 뿌옇게 김이 서린 차창을 손을 문질러 달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막막한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새학기가 시작됐고 학교는 활기가 넘쳤지만 남자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는 동기끼리의 신인전 전시회가 막 끝난 후였다. 남자는 최종 프린트를 담당하게 된 3명의 작화 위원 중 한명이었고 저녁 때 암실에 들어가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 반나절 동안 기절하는 생활을 몇주간 해왔던 터였다. 전시회 후 이어진 임원진 선거에서 남자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간발의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암실을 관리하고 후배들 기술 지도를 맡는 기술부장 자리를 남자는 몹시 하고 싶어했고 그럴만한 충분한 실력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종이 한장 차이도 나지 않을 그 어설픈 실력만이 전부가 아님을 남자는 선거가 끝나고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고 싶었다. 어제밤 청량리발 마지막 무궁화호에 오르자 마자 남자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두었다.

화개장터 앞에서 남자는 버스에서 내렸다. 평일 아침, 눈까지 내리는 궂은 날, 섬진강 동편의 19번 국도에는 돌아다니는 차조차 거의 없었다. 딱히 어디로 가야할지 떠오르진 않았지만 남자는 텅빈 도로의 중앙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남자의 어깨 위에 소복히 쌓여만 갔다. 거짓말처럼 온통 하얗게 변한 섬진강 일대에 오로지 남자만이 있는 것 같았다. 얇은 외투가 눈에 젖으며 남자는 추위를 느꼈다.

전시회는 막을 내렸고 임원진 선거는 이미 결론이 났지만 남자는 사실 하나를 더 결정해야 했다.

J는 애초에 동아리에서 그리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은 아니었다. 그런 J가 신인전 준비에는 열정을 쏟기 시작했고 암실 순번을 먼저 맡으려고 첫 차로 학교로 오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새벽부터 동아리방에 도착해 전기 난로를 쬐며 암실이 비길 기다리던 J와 암실에서 나온 남자는 자주 마주쳤고 퀭한 눈으로 동아리방 쇼파에 쓰러지는 남자를 J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곤 했다.

전시회 기간동안 닷징, 버닝 따위를 알려주거나 프린트의 톤을 봐주기도 하며 남자는 J와 조금 가까워졌다. 사실 남자에겐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활동이 별로 없었던 J와는 그런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남자는 약간 떨리는 듯한 J의 목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했고, 암실에 먼저 들어가려고 캄캄한 새벽에 첫차를 타고 학교로 오는 J의 모습을 보며 야무진 면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 익숙하지 않은 화장이었지만 파우더를 칠한 뽀얀 볼이 싱그러웠다.

왼편에 화개나루라고 써진 작은 간판이 보였다. 미끄러운 눈길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가자 줄을 잡고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다. 강 건너 광양 사람들이 화개장에 나올 때 이용하는 작은 나루였다. 소복히 눈이 쌓인 강건너의 모습은 오히려 솜이불을 덮은 듯 따뜻하고 또 아련했다. 눈 덮인 섬진강을 남자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에 젖지 않기 위해 가방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며칠전 농구를 하다 넘어져 다친 손바닥에 카메라가 닿자 찌릿했다. 생각보다 살이 깊이 패인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아 진물이 계속 나오고 있어 카메라를 잡기가 꽤 불편했다. 눈 덮인 섬진강과 강너머를 바라보며 세로로 두 컷을 찍었다. 제대로 파지가 되지 않아 약간 흔들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픈 손으로 차가운 삼각대를 펴기 싫었던 남자는 미련없이 나루를 떠났다.

꺼두었던 핸드폰은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꾸만 존재를 알렸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이던 남자는 전원을 켜보았다. 몇시간 동안 수신되지 않고 있던 문자 메시지 몇개가 동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J가 보낸 메시지들이었다.

남자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용택 – 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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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섬진강 화개나루

 

KODAK PORTRA 400

어디든 한 해 한 번으로 족했던 가족여행이었다.

그런데 올해 아이가 10살이 되면서 아내와 나는 여행욕심을 좀 부렸다. 여름 한 철에만 마카오와 일본을 연이어 가기로했던 것.

2주를 사이에 두고 떠나는 두 번의 여행이지만, 단촐한 여행용 숄더백엔 필름카메라와 노출계 그리고 흑백필름 10롤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떠나기 몇일 전, 컬러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가 여행가서 이것도 한번 써보라며 내 손에 포트라 400을 쥐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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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컬러가 처음은 아니었다. 호기심에 코닥 엑타100이나 컬러플러스, 후지 수퍼리아 200 정도는 한 두롤 써보았다. 하지만 포트라는 처음이었다. 귀동냥에 인물 피부톤 표현에 있어 포트라만한 필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추측에 ‘포트레이트_portrait’ 전용으로 개발된 필름이라 이름을 ‘포트라_portra’로 지었나보다 했다.

그랬다. 비싼데다 인물사진에 특화된 필름이라는 생각에 그렇잖아도 흑백을 좋아하고 거리스냅을 즐기는 나와는 인연이 멀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어진 컬러필름으로 뭘 찍어야 하나? 더군다나 인물톤 표현이 좋다는 포트라인데 아무렇게나 스냅을 찍기엔 한 몸값하는 이 녀석에게 실례일 것만 같다. 어차피 가족여행이니 아내와 아이를 모델삼아 찍을까도 생각해보지만 그간 축적된 경험상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에라 모르겠다. 고민은 현장에서 하기로 하고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고민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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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카오 콜로안빌리지

환락과 타락의 도시 소돔의 현대판 코타이스트립을 남쪽으로 조금 벗어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문닫지 오래된 포르투갈 테마파크 같은 마을인 콜로안빌리지가 있다. 영화 ‘도둑들’에서 전지현이 가짜목걸이를 건네받는 장면이 촬영된 성 자비에 성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비에 성당과 더불어 콜로안도서관 그리고 로드스토우즈의 달콤한 에그타르트까지 매혹적인 Pale yellow가 인상적인 마을이었으므로 나는 큰 고민없이 카메라 하판을 열고 친구의 선물을 조심스럽게 로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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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 돗토리현

빛 바랜 노랑의 도시 마카오와 달리 컬러를 떠올려봤자 온통 회색 시멘트와 노인들의 흰머리만 생각나는 일본은 컬러 고자인 내게 한층 더 어려운 숙제였다. 내 돈내고 산 필름이야 연습삼아 찍고 구석에 던져두면 그만이지만 선물받은 것인만큼 이왕이면 좋은 사진으로 고마움을 답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나기가 ON/OFF를 반복하는 장마철 돗토리에도 불구하고, 예보상 날씨가 좋을 것 같은 날 아침 친구의 두번째 포트라를 경건(?)한 마음으로 넣은 후 와인딩 레버를 힘차게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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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DAK PORTRA : 1998년 처음 소개된 포트라 필름은 현재 Portra160, 400, 800 세 종류만 판매되고 있으며, Portra 100T(텅스텐), Portra B&W 그리고 NC 및 VC는 단종되었다. 다양한 조명 조건에서도 최고의 피부 색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색 재현력과 미세한 입자의 주광용 컬러 네거티브라고 함.

 

올해 마지막 고추 따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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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7. 청송

처가에서 올해 마지막 고추 따던 날의 기록.

일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카메라를 꺼내드는 사위를 보고 우리 장모님은 ‘우서방 거 사진은 자꾸 찍어서 어디나 쓰나?’ 라고 물으셨고 나는 ‘언젠가 다 쓰일 날이 있을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장모님은 ‘그런게 다 쓸데가 있나?’ 하며 피식 웃으시곤 다시 바삐 손을 움직이셨다. 내가 송도 사진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신 후로는 ‘우리 사위가 그냥 재미로 찍는 수준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시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 사진들이 쓰일 곳이 있으랴. 거창한 사진전이나 사진집은 아닐지라도 우리 가족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이 날 찍은 사진들을 와이프에게 보여주며 얘기했다.

‘나중에 보면 눈물날거야.’

Rollei 35SE / Kodak 400TX / IVED

 

남은것들, 변하는 것들.

세상의 많은 것들은 변한다.
우리는 종종 변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변하지 않을거라 굳게 믿었던 것들이 변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변화는 때때로 절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

우리집 마루의 가운데. 나에게 할아버지는 늘 그곳에 계시는, 그런 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를 8시 10분 남짓쯤 드시고, 마루에 앉아 TV를 보셨고, 9시에는 꼭 뉴스를 보셨다. 그러다 10시쯤이 되면 마당에서 화단을 손보시다 11시쯤엔 다시 마루로 돌아오셔서 까무룩 낮잠을 주무셨다. 점심식사를 하시고는 노인정에 나가 다른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시다 약주를 한두잔 하고 들어오셨다. 저녁식사 후에는 7시 뉴스를 보시며 까무룩 졸다 9시가 되면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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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 속에서 내게 할아버지는 항상 반복되는 일상 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집에 오면 그시간 그 자리에 계셨고, 취업을 해 지방에 가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렇게 정해진 듯 매일을 보내고 계셨었다. 정말 언제나 그렇게 계속 될 것처럼.

하지만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2014. 5월의 막바지.”

노인정에서 숨이차 돌아오신 분은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같이 약주를 주고 받으시던 다른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어서 노인정으로 와보라고. 급하게 말씀하셨다.
놀라 노인정으로 뛰어갔을때 할아버지는 내가 알던 할아버지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날 알아 보시지만, 내가 알았던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가 할아버지는 입원을 하셨고 점점 쇠약해 지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그렇게 허물어져 갔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식구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걸으실 수 없었다. 식구들을 일부 알아보셨다. 걷지 못하고 움직임도 둔해지셨다. 알아보지 못하는 식구들의 수가 알아보는 식구들보다 커지기 시작했다. 주변 상황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이 왔고, 결국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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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을 할아버지와 살며 많은 추억들이 있었고, 그 추억들은 어떤 장소를 지날때 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일들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얽혀있는 장소들 덕분에 할아버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난 자리에 남아있는 나는, 변하지 않는 것으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결국 변하지 않는것은 내게 남아있는 기억이 아닐지. 하지만 이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흐려지지 않을지.

그래서 이렇게 글을 적는다.

 

사진 : 2015. 3. 14. Contax Tvs / Kodak 400TX
글 : 2015. 7. 5.

2009년 12월, 송도

사실 창고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서재’라고 부르고 싶은 내 방 책꽂이 한 켠에는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수백롤의 필름이 차곡차곡 담겨져 있는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필름들을 보다 못한 와이프가 넣어준 것들이다. 내 저것들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텐데 하며 가끔 노려보기도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만다.

‘에이, 나중에 하자.’

그러다 지난 금요일밤 괜히 한번 상자를 열어봤다. 마구잡이로 섞인 필름들을 천장의 형광등에 비추어보며 간만에 추억에 젖다가 송도 해수욕장을 촬영한 필름 하나를 발견했다. 36컷을 모두 살펴봐도 그 필름에서 기억나는 이미지는 단 한 컷도 없었다. 메모조차 해두지 않아 언제 찍은 건지도 알 수 없는 필름 속 이미지들은 전혀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빠듯한 용돈 사정으로 인해 인화지 한 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굳이 ‘불필요한’ 밀착 인화는 생략했고 확대 인화 역시 한 롤에서 고르고 고른 몇 컷 외에는 하지 않았다. 이 버릇은 나중에도 그대로 이어져 스캔할 때도 한 롤 전체를 긁지 않고 네가티브를 비추어 보고 괜찮다 싶은 몇 컷만 추려 스캔을 해왔기에 네가티브를 보다가 새롭게 눈에 띄는 컷이 있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롤에서 한 컷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아도 이 건 단 한 컷도 스캔하지 않은채 쳐박힌 필름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 필름은 왜 버림받았을까? 일단 한롤을 채로 긁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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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뒷골목 입구에서 부터 내 발걸음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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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의 유실로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송도 해변의 회생을 포기하고 해안 도로가 건설되던 때의 막바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산책로는 거의 다 되었고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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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평화의 여신상이 있는 광장 해안 축대 옆의 테트라포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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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산책로에는 아직 모래가 많이 남아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아이들이 두꺼운 차림에 장갑까지 끼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추운 날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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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은 이미지와 글에 얼마나 의존적인가. 21미리로 강아지를 이렇게 가까이서 찍었을 정도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현상 후 스캔조차 하지 않았던 탓에 이날 촬영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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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변 일주도로 건설을 맡았던 청구 건설의 현장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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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변 방파제 위에는 허름하고 어설픈 포장마차촌이 있었다. 송도 해수욕장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도 사라졌다. 당연히 무허가 불법이었을테고 태풍이라도 오는 날엔 위험하기 그지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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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수상가옥 마냥 방파제 한 귀퉁에 의지하여 바다 위에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들. 자리에 앉으면 판자로 만든 바닥과 천막 틈 사이로 파도가 출렁였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며 회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고 모래사장에 세워둔 차에서 눈을 붙히고 아침에 바로 출근했던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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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을 뒤집어 씌웠던 철골과 계단의 녹물이 방파제 바닥 곳곳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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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린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는 손길들. 포장마차가 사라진 지금, 더이상 배들은 이 곳에 접안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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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왼쪽의 풍경. 송도 해변과 포항 구항이 멀리 보인다. 늘상 보는 장면이라 새롭지 않지만 이곳이 동해안에 몇 없는 지형인 영일만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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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과다현상이 되어 콘트라스트가 강한 네가티브가 되었다. 암부가 많이 죽었음이 느껴진다만 평소 사진의 톤에 비해 칼칼한 것이 또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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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서 굿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가, 요즘은 송도에서 굿하는 장면을 거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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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방파제 위 풍경과 달리 송도의 퇴락한 뒷골목은 이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골목 사이를 누비면서 정적인 사진에 동감을 불어 넣고자 누군가 지나가기를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래본들 무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겠나 싶다.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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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가 낡은 하얀 벽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흑백인데도 차갑고 투명한 겨울 공기가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려오는 걸 보니 늙은 듯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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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덕분에 이 필름이 언제 찍은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8년전의 블로그 포스팅에는 Nikon D700으로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이 날 찍은 파일은 모두 지워 버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찍은 사진도 맘에 안들고 앞으로 어떤 사진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유와 함께. 아마 그래서 이 날 찍은 필름도 스캔조차 하지 않고 던져뒀던 듯 싶다.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날 느꼈던 회의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뭘 찍어야 하고 뭘 표현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찍어야 하는가. 아니 그런 것에 답은 있는가. 답을 찾을 필요는 또 있는 것인가. 여전히 머리 속은 복잡하지만 이렇게 출토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도저도 아닌 어설픈 사진들이라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지니 기록으로라도 가치가 있겠다 싶으니 그건 또 다행이라 해야하나. 아직도 모르겠다.

 

 

2009.12.26. 포항 송도

Contax IIa / Carl Zeiss Biogon 21mm f4.5 / Kodak 400TX / IVED

Nippon Kogaku의 Topogon : W-Nikkor 2.5cm f4.0

 

거침없이 달리시는 만수동생님 덕분에 관심있던 렌즈를 빌려 써보게 됐다.

54년에 발매된 W-Nikkor 2.5cm f4.0이 그 주인공. 환갑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어마무시한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녀석이다. 원래는 Zeiss Ikon의 Contax와 같은 형태의 니콘 S마운트로 발매되었지만 라이카에서도 사용가능한 M39(LTM) 마운트로도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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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on Kogaku W-Nikkor 2.5cm f4.0 (LTM버전)

 

오늘날 기준으로 25mm라는 화각은 다소 낯설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의 초광각에 해당하는 것이라 사진가들의 환호를 받았으리라. 이 렌즈에 대한 매니아층은 오늘날도 제법 두터운데 그 이유는 우수한 성능도 성능이지만 특이한 구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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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이 렌즈는 4군 4매 구성된 완벽한 좌우대칭의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극단적인 좌우 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 렌즈에서 왜곡을 비롯한 각종 수차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마치 구슬과도 같은 렌즈 알을 보고 있자면 영롱한 매력에 빠져드는데 이같은 설계의 원조는 사실 Carl Zeiss의 Topog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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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이 오리지날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화각부터 최대개방값까지 똑같다. 50년대 니폰 코가쿠, 캐논 등의 일본 메이커들은 독일 메이커들의 설계를 다분히 참고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한편 그들의 성능을 뛰어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뭐 하나라도 개선된 점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했던지라 오리지날 Topogon이 거리계와 연동되지 않는 목측식이었던 것에 반해 W-Nikkor 2.5cm는 거리계 연동이 가능하게 출시되었다. (캐논의 25mm f3.5는 최대 개방값도 아주 조금 더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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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팅 역시 당대 독일 렌즈들보다 두터워 보이는데 역시나 역광에서 버티는 능력도 제법 준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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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ogon 타입임을 증명하듯 렌즈알이 반구형으로 볼록하게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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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에서는 더욱 그 형태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정말 구슬을 하나 박아넣은 듯한 모양이라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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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Topogon 타입은 급격하게 꺾인 렌즈 끝단의 곡률로 인해 주변부의 화질이 많이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는 단점을 가지는데 이때문에 최대 개방시에도 조리개는 완전히 다 열리지 않게 설계함으로써 그 문제를 최대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에서도 최대 개방에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는 비네팅이 제법 발생하며 개방시에는 더욱 심해진다. 반면 오리지날의 위엄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지 칼 자이즈의 Topogon은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면서도 W-Nikkor에 비해 비네팅이 적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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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계의 단위는 FEET로만 적혀있고 라이카 스크류 렌즈들과 같은 형태의 무한대 잠금 장치를 가지고 있다. 크롬 코팅이나 레터링 각인의 수준은 훌륭하다. 코팅된 렌즈임을 표기해주는 빨간색 “C”마킹도 적당한 시각적 포인트가 되어준다. Carl Zeiss 렌즈들의 “T”마킹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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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구경은 상당히 특이한 34.5mm로 오늘날 해당하는 사이즈의 필터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중앙카메라 수리실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었다. 앞으로 애매한 사이즈의 필터는 비싸게 구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부탁드려 만드는 것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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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필터링에다가 광택도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되어 제짝인 듯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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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야무진 렌즈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이라 좀 깬다만 올드 렌즈에서 일반적인 금속제 슬립온 방식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클립온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앞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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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와의 매칭. 슬림한 경통에 짧은 길이의 컴팩트한 렌즈로 바르낙 바디에 제법 잘 어울린다. 25미리 파인더가 없어서 일단 Voigtlander 28mm 파인더로..ㄷ

많은 롤을 찍어보지 못해 렌즈의 특성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니콘은 니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에는 물론 장단이 존재하는데 흔히 니콘 렌즈의 특성으로 평가받는 높은 선예도와 강한 콘트라스트는 이미 이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칼라 색감 역시 화사하고 예쁜 쪽은 아니지만 Topogon타입의 특징에 기인하는 강한 비네팅 효과와 왜곡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쭉쭉 뻗는 시원시원함은 렌즈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내준다.

 

 

B/W Neagtive : Kodak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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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itive : Fujifilm RV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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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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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7 LeicaIIIf Nikkor 25mm RVP100 35-1

 

 

끝으로 귀한 렌즈 빌려주신 만수동생님과 렌즈 뒷캡으로 IIIf를 보내준 Qunaj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보다 훌륭한 리뷰를 보려면

Qunaj님의 ‘W-NIKKOR C 2.5cm 1:4 LTM

Goliathus님의 ‘[Nikon]W-Nikkor 2.5cm F4

Jupiter-12 35mm – Biogon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 전쟁의 종말

 

1945년 04월 30일 베를린.

일체의 정규 방송이 모두 중지된 베를린 라디오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신들의 황혼’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소련군에 맞서 절망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항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소련군을 저지하는 동안 보다 많은 민간인들과 패잔병들이 미,영 연합군이 있는 엘베강 너머로 투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미없는 ‘현진지 사수’와 같은 명령보다 더욱 절박한 이유였다.

이미 와해돼버려 존재하지도 않는 사단들을 가지고 ‘이리 보내라, 저리 보내라’ 심지어 역습을 가해 공세로 전환하라고 미친듯이 지시하던 히틀러도 더이상 무의미한 작전 지휘를 그만두었고 벙커 속은 침묵만이 흘렀다. 그는 이 날 발터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고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은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었다. 소련은 베를린 함락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고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그에 걸맞는 장소였다. 죽기를 각오한 독일군 수비대 6천여명이 이에 맞섰고 치열한 교전끝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소련군은 국회의사당을 점령할 수 있었다. 날이 밝고 국회의사당에 소련 국기가 걸렸다. 노동절을 맞아 가장 극적인 승리의 장면을 묘사하고 싶던 스탈린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1945년 05월 02일. 베를린을 수비하던 독일군은 항복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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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genhissung 2. Mai 1945, Reichstag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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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서의 달콤한 전리품들

 

전쟁 중에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비록 손을 잡았지만 애초부터 미국,영국과 소련은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패튼은 소련을 의식하는 아이젠하워의 조심스런 전략에 불만이 많았고 ‘그렇게 소련이 무서우면 이대로 전차군단을 계속 몰아 모스크바까지 점령해버리면 될 것 아니냐.’는 막말을 걸핏하면 내뱉었을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미,영 폭격기들이 학살 수준의 공습을 가했던 드레스덴 폭격은 진격하는 소련군의 전방에 가해지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영이 보유한 무시무시한 공군력을 소련에게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은 전쟁이 끝난 후 재무장한 독일군을 앞세워 미,영이 쳐들어올까 두려워했고 서방은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진영 확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냉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가까워 올 수록 양측은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해야했고 독일의 군사 기술은 승전국들이 노리는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Me262 제트전투기와 V1, V2 로켓은 특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미처 실전 배치되지 못하거나 연구,개발 과정에 있었던 다양한 무기들의 자료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승전국들은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소련이 탐을 낸 것이 더 있었으니 바로 세계 최고의 독일 광학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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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iss Ikon을 내놔라.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Zeiss Ikon의 생산 설비와 기술을 요구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부담해야했던 가혹한 전쟁 배상금의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참전국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은 소련 입장에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소련군 점령지에 속한 예나와 드레스덴의 Zeiss Ikon 공장 설비들이 열차에 실려 소련으로 옮겨진다. Contax와 교환렌즈의 생산 라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생산할 엔지니어와 숙련공들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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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과 함께 생산이 중지되고 소련으로 생산 설비가 옮겨진 Contax II. Biogon 35mm가 장착되어 있다.

 

그렇게 옮겨진 설비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Krasnogorsk와 우크라이나의 Kiev 등지의 공장에 설치되어 국산화 과정을 거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승전의 대가로 소련은 당대 최고의 카메라와 렌즈를 생산할 수 있게된 것이었다. 그리고 Zeiss Ikon에서 획득한 광학 기술을 통해 조준경, 잠망경, 정찰용 카메라 등 군사용 광학 장비의 성능 향상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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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viet’s Carl Zeiss – Jupiter의 탄생

 

Kiev에서 Contax II/III의 카피 모델이 생산되면서 Krasnogorsk에서는 Contax용 렌즈들을 카피하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독일에서 가져온 칼 자이즈의 부품 재고를 이용해 조립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이 시기의 제품들은 칼 자이즈 오리지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다 독일에서 가져온 부품들이 모두 소진된 1950년 이후부터는 유리알을 비롯한 모든 부품이 국산화되며 100% 소련제로 본격 대량 생산이 시작된다. 이처럼 칼 자이즈에서 원설계하고 소련에서 재생산한 렌즈들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혀지게 된다. 바로 Jupiter였다.

로마 신화에서 최고의 신으로 여겨지는 Jupiter는 승리의 주피터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집정권들이 취임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참배하는 대상이었고 로마의 스타틀 신전은 로물루스가 주피터에게 기원한 후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대가로 얻어낸 렌즈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은 Jupiter 시리즈의 본격 출시에 나서면서 오리지날인 Contax 베이요닛 마운트와 함께 LTM버전도 병행하여 생산했는데 자국의 Zorki나 Fed 카메라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는 소련의 자체적인 재설계로 볼 수는 없고 전쟁 기간 중 Carl Zeiss에서 아주 극소량으로 생산했던 LTM버전 렌즈들을 자국의 필요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해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Carl Zeiss에서 자사의 Contax용이 아닌 경쟁사인 Leica에 맞는 LTM버전의 렌즈들을 만들어 낸 것에는 사연이 있다. 전쟁 기간 중 드레스덴의 Contax 제조 시설이 폭격을 맞아 생산이 중단되자 Carl Zeiss는 렌즈를 생산해도 함께 판매할 카메라의 공급이 끊어져 버렸고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경쟁기종이던 라이카에 사용할 수 있는 LTM버전 렌즈들을 잠시 생산했던 것이다.

오늘날 전쟁 기간 중 생산된 오리지날 Carl Zeiss LTM버전 렌즈들은 극히 귀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물건이라 현실적으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Jupiter LTM 버전 렌즈들은 Carl Zeiss가 설계한 올드 렌즈들을 가볍게 즐겨보고 싶은 라이카 유저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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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Zeiss에서 생산된 LTM버전 렌즈들. 소련은 이 중 5종류를 Jupiter라인으로 생산하게 되는데 Jupiter-3, 8, 9, 11, 12가 그것인데 순서대로 각각 Sonnar 50mm f1.5, Sonnar 50mm f2.0, Sonnar 85mm f2.0, Sonnar 135mm f4.0, 그리고 Biogon 35mm f2.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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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piter-12에 대한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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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12 35mm f2.8 (for Contax/Ki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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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류의 Jupiter렌즈 중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렌즈는 단연 Jupiter-12가 아닐까 싶다. RF에서 가장 대중적인 35미리 화각이라는 점, 명성이 자자하던 비오곤의 카피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다. 1950년대 당시 자국에서 생산된 세계 최고 수준의 35미리 렌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소련의 사진가들은 얼마나 흥분되었을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늘날의 처지는 그저 ‘싼맛’에 쓸만한 그냥 그런 렌즈일 뿐, 애정을 갖고 대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들이 대세가 되면서 이종교배용으로 알음알음 유저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기는 하나,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개인적으로 Biogon 타입에 대해 애정이 많아 그 영혼이 담긴 Jupiter-12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번 리뷰를 통해 조금 자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Jupiter-12의 넘버링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은 화각 순으로 번호가 진행되는데 반해 Jupiter-12는 35mm임에도 왜 맨 마지막인 12번을 얻게 되었을까? (쓸데없는 의문..ㄷㄷ) 나름의 논리로 추론해본 결과는 다른 Jupiter 시리즈들이 모두 Sonnar타입이니 Biogon타입에는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 주려다가 ‘그냥 얘도 주피터로 해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거나, 아니면 제조가 까다로운 탓에 가장 늦게 재설계가 이루어졌던 탓에 가장 늦게 번호를 부여받았던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Biogon이 원래 Sonnar 설계에서 파생된 형식이니 소련에서 Jupiter라는 이름을 붙힌 것 자체가 광학설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12번이라는 가장 늦은 번호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 넘어가자.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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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nnar에서 Biogon으로 다시 Juputer-12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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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를 보면 Sonnar부터 Biogon, 그리고 Jupiter-12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Sonnar에서 파생된 Biogon 35mm는 전쟁 후 서독의 Zeiss Opton Biogon 35mm와 소련의 Jupiter-12로 나뉘어지게 된다. 서독의 비오곤은 새롭게 개발된 Contax IIa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비오곤의 상징과도 같았던 엄청나게 큰 후옥의 크기가 작아지고 백포커스가 조금 길어지는 여유있는 설계를 택하게 되는 반면 Jupiter-12는 오리지날 비오곤의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아 여전히 큰 후옥과 짧은 백포커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Jupiter-12는 전전형 비오곤과 같은 설계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얻게 되었는데 위 그림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설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Jupiter-12는 렌즈 구성이 Biogon의 4군 7매에서 4군 6매로 간략화 되었고 각매의 렌즈알 크기나 곡률도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소련제 렌즈알에 따라 최적화 설계를 다시해낸 것인지 원가절감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혹은 소련에 끌려간 독일 기술진에 의해 보다 향상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설계가 이뤄진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일본에서는 Jupiter-12를 전후 서독에서 생산된 Zeiss Opton Biogon보다 높게 친다고 하니 성능의 저하도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호들갑스런 일본애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겠지만 또 걔들만큼 집요한 애들도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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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부보다 훨씬 큰 후옥과 필름면 가까이 들어오는 짧은 백포커스를 가진 Jupiter-12, Biogon의 설계가 충실히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리지날인 Contax용은 아답터를 이용해도 라이카 바디에서 사용할 수 없었는데 소련에서 LTM버전을 대량으로 생산해준 탓에 라이카에서도 Biogon 설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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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Zeiss Sonnar나 Biogon에는 일명 ‘자이즈 버블’이라는 기포가 한두개씩 흔히 발견되는데 Jupiter-12 역시 이러한 기포가 발견된다. 화질에 영향은 전혀 없기에 구매시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고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오리지날 칼 자이즈와 유사한 재료를 이용해 동일 제조 공법으로 생산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발가락도 닮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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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piter-12의 세대별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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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x II의 카피 Kiev II와 Biogon 35mm의 카피 Jupiter-12. 위 사진과 같은 50년대 Kiev는 오리지날 Contax II와 거의 같아 거래가격이 제법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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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12는 1950년부터 90년대까지 무려 40여년에 걸쳐 생산될 정도로 생산 기간이 긴데다 2개의 제조사(KMZ, LZOS)에서 생산되었던 탓에 자잘한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이베이에 떠있는 수많은 매물 중 어느 것을 구해야할지 구매자들은 난감해 지곤 하는데, 사실 뭐 열심히 공부해서 족보를 꾀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는 렌즈는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리뷰이니 이참에 한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우선 마운트에 따라 Contax/Kiev용과 LTM 버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마운트만 다를 뿐이니 사실상 같은 렌즈로 보는 것이 맞겠고 이번 리뷰에서는 LTM버전에 한정하여 생산 시기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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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MZ제조 BK (Biogon-Krasnogorsk) : 1947~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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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라는 이름이 붙기 전의 최초기 버전이다. KMZ에서 오리지날 자이즈의 부품과 유리알을 사용해 조립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외관상으로도 오리지날 비오곤 LTM버전과 거의 동일하다. 이중 47~48년에 생산된 PT0805 버전은 100%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49~50년의 PT0810은 100% 혹은 부분적으로 자이즈 유리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관상 이를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으며 시리얼넘버가 00으로 나가는 것은 PT0805, 49 혹은 50으로 시작하는 년도가 앞에 붙으면 PT0810이라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본격 양산형이라기 보단 Jupiter-12를 생산하기에 앞서 이루어진 과도기적인 시기의 렌즈라 자료가 명확하지 않고 생산 수량도 적어 오늘날 구하기가 쉽지 않다.

위 사진의 왼쪽이 50년에 생산된 이른바 BK렌즈이며 우측이 55년에 생산된 Jupiter-12다. 내가 가진 BK는 각인은 BK이지만 경통의 형태가 Jupiter-12와 거의 같고 최초기형임에도 렌즈의 코팅이 더 두터워보여 각인을 조작한 짝퉁이 아닌가 의심도 들지만, 그렇게 해봐야 이게 100만원짜리가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괜히 이런거 구하려고 애쓰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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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MZ 생산 Jupiter-12 (1950~60년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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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50년부터 생산된 버전으로 이때부터 비로소 Jupiter-12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렌즈에는 엷은 블루톤의 코팅이 되어 있는데 전쟁 전 자이즈의 T코팅과 아주 유사한 느낌이다. 코팅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붉은 색 ‘n’ 마킹이 찍혀있는데 이는 키릴어로 ‘P’에 해당한다. 이 마킹은 BK부터 60년대 초반 생산 렌즈에만 존재하는데 칼 자이즈의 빨간색 ‘T’코팅 표기와 같이 검정과 흰색 뿐인 밋밋한 렌즈 전면부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되어주어 예쁘다. 그래서인지 이베이에서도 매물 설명에 굳이 ‘Red P’를 강조하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KMZ생산 버전은 PT0815와 PT0820으로 나뉘는데 PT0815는 앞선 BK와 마찬가지로 경통의 형태가 오리지날 비오곤과 유사한 형태로 1950-52년 사이 적은 수량이 생산되어 오늘날 매우 드물고 흔히 보이는 버전은 PT0820으로서 경통이 다소 길어지고 지름이 조금 늘었다. 이 시기의 생산 제품들은 소련 공산품 수준이 막장이 되기 전이라 가장 만듦새가 좋고 품질 관리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가장 인기가 높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래봤자 200불 미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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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ZOS 생산 Jupiter-12 (1950년대 말 ~ 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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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LZOS 생산 버전이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초반에 걸쳐 Jupiter-12는 KMZ와 LZOS 양쪽에서 병행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62년쯤 부터는 LZOS에서만 생산되게 된다. 이때부터 빨간색 ‘n’코팅 마킹이 사라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뭐 그게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고 오래된 렌즈니만치 관리 잘된 개체면 크게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

PT0825, 0833, 0835 등에 해당하는 버전으로 KMZ 생산 시절과 비교해 외관상 달라진 부분은 거의 없고 코팅이 다소 진해지고 키릴어로 표기되었던 Jupiter 표기가 수출을 염두에 둔 듯 영문으로 바뀌기도 했다. 71년부터는 크롬 버전을 대신해 검정 페인트로 마감된 버전(PT0835)이 생산되게 된다. (물론 블랙 페인트라고 해서 라이카의 멋진 도장 상태 따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위 사진의 렌즈는 91년 시리얼 블랙 페인트 버전인데 코팅이 두터워져 제일 바깥 쪽 렌즈에는 노란색이 선명하고 안쪽은 분홍, 보라, 주황 등 코팅색이 아주 유치찬란하고 요란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역광에서의 성능은 앞선 버전들에 비해 더욱 좋아졌다고 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생산된 탓에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은 물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50년대 시리얼에 비해 가격이 낮아 가장 가성비가 높은 버전이기도 하다. 지인 한 분이 얼마전 이 버전의 렌즈를 블랙 페인트 Leica III에 마운트하여 가지고 오신걸 보았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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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Leica III와 88년 시리얼 Jupite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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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렇게 크게 세가지로 분류를 해보았지만 막상 이베이에서 만나는 물건들은 천차만별의 상태와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60년 시리얼인데도 붉은 색 ‘n’마킹이 없는 경우도 있고 조리개 수치 폰트나 눈금선의 형태도 제각각이고 세대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인 경우도 많다. 이래서 소련제의 진정한 문제는 광학적 성능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QC라는 말이 나왔나 싶기도 하다.

각 세대에 속하는 다양한 타입들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 가보시면 되겠다.

http://www.sovietcams.com/index.php?-73622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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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puter-12의 성능

그렇다면 이 렌즈의 성능은 어떨까. 태생 자체가 Carl Zeiss Biogon 35mm이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Carl Zeiss Biogon 35mm는 당시로서 놀라운 해상도로 유명했고 f2.8이라는 밝은 개방값을 가지고도 수차를 효과적으로 억제한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렌즈였다. (같은 시기 라이츠의 Elmar 3.5cm와 비교해보라 ㄷㄷ) 그런 Biogon의 설계를 이어받았다는 점이 오늘날까지도 애호가들이 Jupiter-12에 관심을 가지는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화면 중앙부는 최대 개방에서도 제법 높은 해상도를 보여주며 대부분의 렌즈가 그러하듯 f8.0~11 정도에서 최대 해상도에 도달한다. 비네팅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며 약간의 실패형 왜곡을 보인다. 주변부 빛망울의 흐려짐은 쐐기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Sonnar와도 유사하다. 초기형부터 모두 코팅이 적용되어있어 역광에 버티는 능력도 괜찮으며 색감과 콘트라스트는 과하지 않고 중립적이다.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무척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데 한눈에 느껴지는 확실한 개성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실 올드 렌즈의 개성이라는 부분은 제어되지 못한 각종 수차와 비네팅, 떨어지는 해상도 등이 어울어진 이른바 ‘병신력’에서 기인하기 마련인데 그런 결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Biogon, 그리고 Jupiter-12를 보면 당시 칼 자이즈의 렌즈 설계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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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Build Quality

사실 Jupiter를 구입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못생긴 외모와 허접한 빌드 퀄리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다고 한들 모양도 예뻐야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게다가 후기형으로 갈수록 레터링 각인의 수준도 떨어지고 경통 표면은 부식되거나 때가 잔뜩 끼어 지저분한 경우도 많다. 가격이 싸다 보니 돈들여 오버홀하는 이들도 드물어 윤활유는 떡져 포커스링을 돌리는 느낌도 싼티가 철철 넘치기 십상이다. 소련도 나름 할말은 있다. 못생긴 디자인은 애초에 칼 자이즈의 LTM버전이 그렇게 생겨먹었고 전쟁 중에 생산된 것들이라 고급스럽고 화려한 크롬 코팅이 아닌 알루미늄 혹은 두랄루민으로 제작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 Jupier-12였기에 ‘소련제라서 그렇다’라는 평가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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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날도 요따구로 생겼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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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유에 더해,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서 오는 불신(주피터가 좋아봤자지..), 그리고 ‘소련제’라는 편견 때문에 비싸고 고급진 카메라(라이카?)를 사용하는 유저들의 눈에 찰리가 없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던 주변 지인 몇분이 나의 권유에 못이겨 Jupiter-12를 구입하셨는데 몇롤을 찍어보시고는 렌즈 성능에 모두들 놀라 예찬론자가 되셨다. 개인 취향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Jupiter-12 때문에 Summaron 3.5cm f3.5를 내친 분도 계시고 80불 짜리 렌즈가 아니라 800불 정도의 가치는 하는 렌즈라고 평가하신 분도 계시다. 그 중 한분이 못생긴 외모를 빗대어 ‘양동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고 그 이후 우리는 양동이 만쉐이를 외치고 다니고 있다. 정말 비싸봐야 20만원도 안하는 가격으로 이 정도 성능의 35미리 f2.8이라니. 이건 사실 거저라고 봐야한다. (요즘 Summaron 35mm f2.8 LTM버전 구하려면 100만원 이상을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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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Juputer-12

Jupiter-12는 1950년부터 무려 40여년간 생산되었다. 자본주의 진영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소련에서는 가능했다. 경쟁이 사라진 경제 체제에서 굳이 더 좋은 렌즈를 개발해야할 동기가 충분할리가 없었다. 물론 그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을 만큼 Biogon의 탄탄한 기본 설계을 이어받은 Jupiter-12의 성능이 우수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오리지날인 Carl Zeiss Biogon 35mm는 서독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60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지만 Contax IIa의 단종과 함께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후 카메라 시장의 대세는 SLR이 되었고 퀵 리턴 미러가 자리잡은 공간에 Biogon처럼 필름면 가까이 들어가는 광각렌즈는 들어갈 수 없었다.

비록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철의 장막 속으로 들어간 Biogon은 Jupiter-12로 다시 태어나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Jupiter-12는 단순히 ‘소련제 짝퉁 비오곤’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Biogon 35mm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렌즈로 평가해줘야 함이 더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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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12 35mm f2.8 (1950~1990’s)

Elements/Gropus : 6/4
Number of Aperture Blades : 5
Close Focus Distance : 1m
Filter Diameter : 40.5mm
Weight : 130g
Mount : Contax Bayonet or L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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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례

 

1. B/W Negative (Kodak TMY &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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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lar Negative (Kodak Color Plus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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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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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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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sitive (Fujifilm RDP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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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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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두물머리

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옆에서 자고 있는 와이프와 딸냄이 깰라 얼른 알람을 끄고 이불 밖으로 기어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동생도 부시시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 있다. 얼굴에 물만 바르고 카메라를 챙겨 차에 올랐다. 여름이라 벌써 밖이 환하다. 지금 가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나기엔 늦었겠다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강바람 맞으며 잠시 유유자적하면 될것인데.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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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을 달려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역시나 새벽부터 부지런함을 떤 수많은 사진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팔당호를 지나며 보니 물안개가 제법 피었던 것 같은데 저들은 늦잠을 포기한 보람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 같다. 다 늦은 시간 도착해 삼각대도 없이 허접해보이는 낡은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혀를 찼을 이도 있었으리라. ‘난 꼭 사진찍으러 온게 아니라니깐.’ 괜히 속으로 변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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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16-1

사실 저들처럼 나도 두물머리를 자주 찾은 적이 있었다. 회기역 뒷편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은 물안개가 피어올라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사실 잘 찍어봐야 달력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그 땐 그래도 그 한 컷을 건지고 싶었다. 일교차가 큰 늦가을, 초겨울에 주로 찾아야 했던 탓에 강가의 새벽 한기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고, 심지어 두물머리에 가면 서 있는 커다른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쪽잠을 자며 밤을 샌 적도 있었지만 한번도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  두물머리 출사는 고생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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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2-1

해가 이미 높다. 작정하고 사진을 찍으러 왔으면 역시 더 일찍 왔어야겠다. 예쁜 풍경 사진, 이른바 달력 사진은 전형적인 아마추어들의 몫이지만 어쨌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 또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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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4 LeicaIIIa Elmar50mm 400TX 23-1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로 구성된 동호회 회원들은 이제 철수를 시작했다. 저마다 최신의 DSLR에 짓조 삼각대 따위를 갖추고 있었다. 같은 위치에서 우루루 모여서 셔터를 눌러댔으니 얼마나 다른 컷들이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기대를 안고 메모리 카드를 PC에 꽂아 오늘의 수확물을 확인하며 즐거워 하리라. 저 모임 안에서도 이른바 사진을 제일 잘 찍는다는 에이스가 있을거고 좋은 장비를 많이 가져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있겠지. 고만고만한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누가 더 잘 찍고 못 찍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역시 ‘이놈의 사진 찍어봤자 뭐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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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배가 조금 지긋해보이는 분에게 셔터를 좀 눌러달라고 부탁드렸다. ‘하나~두울~ 셋!’ 셔터를 누르시고 나더니 버릇처럼 카메라 뒷면을 보신다. ‘아 이거 필름 카메라네요? 라이카네.’ 내 니콘 D700은 제습함에 들어가 나오지 못한지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세상의 주류는 역시 디지털인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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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 하고 싶은건 하겠다며 돈지랄인 필름 사진질을 놓지 않고 있는 나와 달리 직장 생활과 육아에 지친 동생은 이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대학교 다닐 땐 이 곳에서 찍은 슬라이드 컷으로 학교 동아리 전시회에 걸기도 했던 동생이지만 이제는 핸드폰으로나 두물머리의 풍경을 찍고 있다.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렇게 어른이, 가장이 되어가는건가 싶기도 하고 피곤에 찌든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늘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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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3군 사령부 직할 통신대에서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선임들이 칼 같이 다려준 전투복을 입고 100일 휴가를 나와 할머니께 ‘선봉!’하고 경례를 붙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휴가 나올 때와 달리 복귀 때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않을 정도로 의기소침했던 동생은 부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아직 복귀 시간이 남았다며 들어가기 싫어했다. 돌아갈 길이 먼 부모님과 나는 그냥 일찍 들어 가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복귀 시간까지 더 있어줬고 그래서 시간을 떼우러 들른 곳이 이 곳 두물머리였다. 동생의 중대는 이 근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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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져 있고 주변엔 까페도 많이 생겼다. 땅값도 제법 올랐을텐데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개발이 호락호락하지 않은지 낡은 빈집은 그대로 남아있다. 변하지 않은 건 한강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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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는 그동안 찾은 횟수에 비해 건진 사진이 그리 없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법 많은 추억이 쌓여진 곳이었다. 이제 예전처럼 여기에 오면서 뭔가 ‘작품’을 건져야겠다는 욕심은 들지 않지만 서울에 오게되면 동생과 드라이브 삼아 찾고 싶은 곳은 여전히 두물머리긴 하다.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는 사실이 소스라치게 놀랍지만, 동생이 막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출장 길에 서울에 들른 나는 늦은 밤에 문득 두물머리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지금 가보지 뭐.’ 라며 동생은 차를 돌렸다. 아버지께서 물려준 구형 SM520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중형차라 하기에 실내 공간도 좁고 인테리어도 올드했지만 전형적인 세단처럼 생긴 디자인이 멋졌고 탄탄한 서스펜션의 주행감각도 나름 좋았다. (게다가 수동 미션이었다) 동생이 운전하는 그 SM520을 타고 음악을 크게 틀고 하늘만큼 캄캄한 한강을 거슬러 두물머리로 향하던 그 날 밤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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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양평

Leica IIIa / Elmar 5cm f3.5 / Kodak 400TX / IVED

 

 

 

Topogon의 영혼 / Orion-15 28mm f6.0

▶ Orion하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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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코파이, 포카칩, 고래밥, 오감자 따위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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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잡는 대잠초계기 P-3C ORION이 생각난다면 당신은 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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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자리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천체나 신화에 관심이 많은 고상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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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면, 당신은 환자! ㄷ 환자들을 위한 오리온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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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e in U.S.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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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츠와 자이스이콘(칼 자이즈)이라는 막강 원투 펀치로 대표되는 독일 업계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당시 여러 나라의 여러 군소업체들은 그 나름의 방식대로 수많은 카메라와 렌즈를 생산하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당시의 제품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거래되고 있는 것들은 소수에 불과한데 그 중에서 소련제 카메라와 렌즈들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로 남아 있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당시에 제대로 된 카메라와 렌즈를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았다. 비록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보유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괜찮은 성능의 제품을 대량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가진 가장 큰 무기였다. 게다가 라이카와 콘탁스를 카피한 제품들을 출시했기에 구하기 어렵고 가격이 비싼 올드 라이카와 콘탁스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오늘날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중에는 독일제 카피가 아닌 독자적인 설계로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비오곤과 슈퍼 앵글론에 앞서 등장한 Russar 20mm가 그러하고 오늘 리뷰하려는 Orion-15 28mm 역시 손에 꼽을 수 있는 렌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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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ion-15 28mm f6.0 : 소비에트 Topogon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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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하고 동부전선의 소련군이 독일군을 점차 서쪽으로 밀어내고 있던 1944년. Orion-15라는 새로운 28미리 렌즈의 프로토 타입이 등장했다. 온 국토가 그야말로 초토화된 소련에서 정신없는 전쟁의 와중에도 새로운 민수용 렌즈가 연구 개발되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은 이 렌즈의 특이한 설계 방식때문이었다. Orion-15는 Carl Zeiss가 선보였던 4군 4매 좌우대칭의 Topogon 설계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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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 28mm f/6.0의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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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의 설계는 결국 수차와의 싸움인데 다양한 수차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매수의 렌즈를 투입해 보정해야 하지만 코팅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렌즈 매수의 증가는 결국 투과율 저하로 인한 해상도, 콘트라스트의 저하와 내부 난반사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고 결국 최소한의 렌즈로서 최대한 수차를 억제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Tessar나 Elmar같은 3군 4매의 단순한 렌즈들이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를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Topogon은 정확한 좌우대칭 구조를 통해 광각렌즈에서의 왜곡 수차를 극도로 억제할 수 있었고 4군 4매라는 적은 렌즈 매수 덕분에 해상도와 콘트라스트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렌즈의 높은 곡률로 인해 구슬과도 같은 렌즈알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자칫 주변부의 해상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비네팅이 심하게 발생하기 쉬웠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한 구성에 비해 생산이 쉽지 않았던 것인지 Topogon타입을 개발한 Carl Zeiss조차 Topogon 25mm f4.0를 대량으로 생산해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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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의 전설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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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1944년에 소련에서 이러한 Topogon 설계를 적용한 Orion-15를 개발했다는 점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Topogon의 본가 Carl Zeiss와 달리 소련의 광학 기술에는 한계가 느껴지는데 Orion-15가 비록 Topogon 설계를 따랐다고는 하나 렌즈의 단면도를 보면 날렵하고 얇게 만들어낸 오리지날 Topogon과 달리 상당히 두툼하고 곡률도 낮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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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주변부의 성능도 본가의 명성에는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화각이 다르긴 하지만 Carl Zeiss의 Topogon은 25mm에 f4.0을 달성한 반면 Orion-15은 28mm에 f6.0에 머물고 있다. 물론 당시 Carl Zeiss의 Tessar 28mm가 f8.0, Leitz의 Hektor 28mm도 f6.3에 불과했으니 Orion-15의 f6.0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이 6.0이란 개방수치는 소련제 토포곤의 한계로 인한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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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열리지 않는 조리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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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를 살펴보면 최대개방 상태에서도 조리개가 모두 열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한참이나 더 열릴 것 같은데 f6.0이 최대 개방으로 멈춰지게 만들어져 있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일부 환자분들께서 직접 개조를 해본 결과 f2.8 정도에 해당하는 값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강제로 개방값을 확장했을 경우 사실상 중앙부를 제외하곤 쓸 수 없는 수준의 화질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Topogon 구조의 특성상 주변부 화질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고 앞서 언급하였는데 Orion-15를 개조해 완전히 개방해보면 그 같은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대 개방에서의 화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기에 ‘의미없는’ 최대개방값은 포기하고 ‘사용가능한 수준’의 최대개방치에 맞춘 것이 f6.0이었던 것이다. f4.0에서도 조리개가 거의 다 열리는 Carl Zeiss의 Topogon과의 기술 격차를 엿보게 해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어쨌든 이 같은 선택으로 결론적으로 렌즈 설계의 결점이 감춰질 수 있었고 원래 6.0부터라 생각하고 사용하면 전혀 문제는 없는 부분이긴 하다(응?). 이미 충분히 조여진 상태를 최대 개방으로 ‘표기’하다 보니 1스탑만 조여도 최대 해상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는 장점도 있고 최대개방시에도 비네팅이나 주변부 화질 저하가 적다. (뭔가 크롭바디에 풀프레임 렌즈를 꽂은 느낌이..)

그러나 Topogon타입에서 이런 꼼수(?)를 쓴 것은 Orion-15 뿐은 아니었다. 50년대에 Topogon타입에 매력을 느낀 니폰고가쿠와 캐논도 이런 렌즈를 출시하게 되는데 이들은 보다 Carl Zeiss Topogon 설계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화각도 동일한 25mm로 출시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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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폰고가쿠의 W-Nikkor 2.5cm f4.0은 렌즈 단면도에서부터 오리지날 Topogon의 향기가 강하게 난다. 같은 25mm 화각에 최대 개방값도 f4.0으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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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K.님의 W-Nikkor 2.5cm f4.0 L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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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렌즈 역시 최대 개방시에 조리개가 살짝 덜 열린다. 물리적으로는 f3.5 이하의 개방값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W-Nikkor도 f4.0에서 멈췄다. 당시 독일 렌즈보다 더 밝게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일본 기술진들이 토포곤을 뛰어넘자고 덤볐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역시 f4.0으로 리밋을 걸어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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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에서도 Topogon 타입 25mm f3.5를 출시했다. 니폰고가쿠와 달리 칼자이즈보다 조금 더 밝은 개방값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역시 조리개날이 완전히 열리지는 않는다. 사실 이 렌즈는 Topogon타입의 변형인데 완벽한 좌우대칭 4군 4매가 아니라 후면의 2매가 조금 더 크고 아주 특이하게도 맨 뒤에 평면유리가 자리하고 있다. 저 평면유리의 역할이 무척 궁금했는데 Goliathus님의 실험에 따르면 저 렌즈를 빼고 촬영하면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고.. 어쨌든 이 렌즈는 순수한 Topogon 타입으로 보긴 어렵겠지만 그리 많지 않은 형식이니 끼워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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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날의 위엄. Carl Zeiss Jena Topogon 25mm f4.0의 경우 짝퉁(?)들과 달리 최대개방에서도 조리개가 거의 대부분 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quanj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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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ion-15 의 두가지 타입, Contax Mount & M39 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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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 브로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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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는 프로토타입이 등장할 1944년 당시 콘탁스용 베이요닛 마운트로 설계되었다. 소련이 콘탁스 마운트 렌즈들을 본격 양산하게 되는 시기는 1948~9년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나와 드레스덴의 칼자이즈와 자이스이콘 콘탁스 생산 라인을 뜯어간 후 부터인데, 따라서 Orion-15를 개발할 당시 소련제 카메라 중 콘탁스 마운트를 적용한 제품이 없었음에도 왜 굳이 콘탁스용 마운트로 설계했던 것인지 다소 의아하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소련에서 콘탁스 마운트로 제작한 첫번째 렌즈가 Orion-15일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현재 콘탁스 마운트 버전 Orion-15 매물은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운데, 오늘날 콘탁스 유저가 극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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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 프로토 타입(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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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에는 드디어 M39(LTM) 마운트 버전이 출시된다. 이로써 자국의 조르키나 페드에서도 Orion-15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서방세계로 수출도 이루어졌다. 물론 당시엔 Summaron 28mm f5.6이 등장하던 시기라 듣보잡 못난이 Orion-15 따위가 고급진 라이카 유저들의 눈에 찰리는 없었겠지만 Orion-15의 출현으로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비싸기만한 주마론의 가격 대비 20% 미만의 비용을 지불하고도 바르낙에서 28미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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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 28mm f6.0(L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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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l Zeiss Jena Tessar 2.8cm와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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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의 두가지 버전(Contax용과 LTM용)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꽤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두가지 모두 Carl Zeiss Jena Tessar 2.8cm의 외관과 꼭 닮았다는 점이다. Carl Zeiss Jena Tessar 2.8cm는 세계 최초의 28미리 렌즈로서의 영혼과 상징성을 갖는 렌즈인데 Contax 마운트로만 제작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LTM 버전도 생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2차대전 중 칼 자이즈는 콘탁스용 교환렌즈들을 LTM 버전으로 생산하기도 했는데 그 중 Tessar 2.8cm는 관련 자료나 사진을 거의 보질 못해서 존재를 몰랐다. 이베이에서 출현한 매물과 가뭄에 콩 나듯 검색에 걸리는 몇몇 사진들을 검토해본 결과 짝퉁이나 개조 버전은 아닌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각각의 버전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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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Zeiss Tessar 2.8cm f8.0 (for Cont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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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Zeiss Tessar 2.8cm f8.0 (L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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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위아래로 왔다갔다 비교해보면 Orion과 Tessar는 정말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련에서 Fed 28mm를 개발할 때는 Leitz Hektor 28mm를 카피했고 Orion-15를 개발할 때는 Carl Zeiss Tessar 2.8cm를 카피했던게 아닐까. 외관은 거의 그대로 베낀반면 렌즈 구성은 3군 4매의 테사 형식에서 4군 4매 토포곤 형식으로 변경됐다. 아마 좀 더 밝고 왜곡이 적은 설계를 적용하려 했던 것이리라. 어쨌든 LTM 버전 Tessar 2.8cm의 존재를 확인하고 났을 때 비로소 Orion-15의 헤어진 엄마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네가 그냥 못생긴게 아니었고 근본있는 못생김이었구나!’ (결국 소련 잘못이 아니라 독일애들이 잘못한거였..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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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ogon의 영혼을 이어간 Orio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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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이후로는 렌즈 제작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서 수차를 보정하기 위한 보다 많은 매수의 유리가 들어가고도 코팅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며 더이상 제조가 까다롭고 밝은 개방값을 갖는데 한계가 있는 Topogon 타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Topogon의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지만 광학적 성능의 발전과는 별개로 구슬같이 아름다운 Topogon 타입에 대한 매니아들의 호기심과 열정은 유별나, 몇 안되는 종류의 Topogon 타입 렌즈들은 여전히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고 물건도 귀해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그런 반면 1944년 프로토타입이 처음 등장한 이후 1978년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된 Orion-15는 화석이 될뻔한 Topogon의 생명력을 유지해준 최후의 계승자가 되었다. 생산 기간이 길었던 만큼 여전히 많은 개체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LTM용 28미리에 절대 강자가 없는 현실에서 200불 내외에 구입할 수 있는 Orion-15는 Topogon 타입을 즐겨보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상당히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Orion-15가 이렇게 오랜 기간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꼭 성능의 우수함이나 소비자들의 선호에 기인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시장에서의 경쟁이 사라진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에 더 큰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긴 생산 기간에도 불구하고 성능상의 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피터 계열 렌즈들은 후기형으로 갈수록 그나마 코팅이라도 두터워지는데 반해 Orion-15는 초기형과 별반 다르지 않은 블루 계열의 싱글 코팅이 계속해서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불편한 조리개 조절 방식과 어두운 개방값도 그대로였고 못생긴 외형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이 렌즈가 주마론처럼 예뻤다면 지금 중고가격이 저렇게 싸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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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Z에서 ZOMZ로 제조사가 바뀌면서 렌즈 형태가 다소 바뀌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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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발전이 더뎠던 탓에 후기형의 메리트는 크지 않아 대부분의 소련제 렌즈들이 그러하듯 Orion-15 역시 50년대~60년대 초반까지의 제품들이 인기가 높다. 비교적 품질 관리가 우수했으리란 믿음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그런 이유보다는 KMZ 생산 60년대 초반 제품까지만 붉은 색 ‘n’코팅 마킹이 있어서 보기에 더 예쁘기 때문이다. (칼 자이즈 렌즈의 T코팅 표기와 같은 느낌) 이왕이면 영혼이 느껴지는 50~60년대초반 개체를 구하고 싶었으나 Jupiter-12와 달리 Orion-15는 이 시기의 매물이 많지 않고 있다해도 상태가 좋은 것이 드문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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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영혼있는 ‘n’마킹이 있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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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가득 볼매 Orio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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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on-15는 사실 보고 만지는 재미가 쏠쏠한 렌즈는 아니다. 개체수도 많은 편이라 소장가치가 높은 것도 아니고 알루미늄 경통은 표면이 부식되거나 때를 타 지저분한 물건이 많고 디자인도 단순 무식하기 짝이 없다. 냉장고를 뜯어서 만들었다는 우스갯 소리가 괜한 것이 아닐 정도로 못생긴 외모에 경악하곤 한다. 게다가 소련제 저질 윤활유로 인해 초점링의 조작감도 고급스럽지 못하다. 물론 윤활유야 수리실에 맡겨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10~20만원 정도 주고 산 싸구려 렌즈에 돈을 들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쓰다가 싫증나면 팔고 산 사람도 ‘소련제가 이렇지 뭐.’ 하면서 계속 그 상태로 돌고 도는 경우가 많으니 안타깝다.

그럼에도 이 렌즈에는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들고 나갔을 때 폼 나지도 않고 귀한 걸 갖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일도 없는 렌즈, 아니, 대부분의 이들이 ‘그런 렌즈도 있냐? 잘 나오냐?’ 정도의 약간의 호기심만 표현할 뿐 관심조차 사지 못하는 렌즈인데도 말이다.

못생긴 외모와 저렴한 가격은 이 렌즈를 객관적으로 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생긴게 못생겼으니 흥미를 갖지 않고 가격을 듣고는 ‘뭐 싸네. 사진은 그럭저럭 나오나보네.’ 정도의 반응을 넘어서는 사람도 많지 않다. 비록 못생겼어도 만약 이 렌즈가 오리지날 토포곤 처럼 비쌌다면 반응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비싼 렌즈를 좋다고 하기는 쉽지만 싼 렌즈를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꽤나 힘들구나 라는 걸 이번 리뷰를 쓰며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문과 출신이라 아는 것도 없고 객관적 테스트를 나열하며 리뷰를 쓰는 체질도 아니라 글로만 떼워 왔었는데 나 부터도 이번 리뷰는 그런 것들을 들먹이며 써야하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이거 정말 좋아요!’ ‘어 그래 안좋은 렌즈 있나.’ 이런 무미건조한 반응을 방지하려면 ‘오 그래요?’ 하는 리액션이 나올만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데이터가 나오는게 별로 없다. 그래서 결국 이번 리뷰도 이렇게 글로 떼우다가 끝내긴 하는데.

사실 사진을(카메라를?) 취미로 하면서 가성비만 찾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오리온이 싸고 좋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생각은 없다. 싸고 좋은 렌즈는 얼마든지 많으며 싸다고 해서 수십배에 달하는 가격의 라이카 렌즈와 비교해 그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싼 맛에 쉽게 살 수 있는 렌즈에 대한 호기심과 만족도는 금세 시들게 마련이다. 결국 소유에 따른 만족감은 렌즈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역사성, 그리고 적정수준의 희귀성, 즉 내가 늘 얘기하는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쿨럭, 렌즈에 무슨 영혼..) Topogon 형식이라는 이제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당대 최선의 설계로 만들어진 구슬과도 같은 앙증맞은 작은 렌즈알과 거기서 뽑아주는 왜곡 없는 시원한 이미지와 높은 해상도와 콘트라스트가 만들어주는 칼칼한 느낌. 이만하면 내 기준엔 충분히 소유할 가치가 있다.

못생겼네 어쩌네 이 렌즈를 깔 필요도 없다. 기껏해야 민트급 Irooa 후드 하나 가격밖에 안하는 렌즈에 미학적 완벽을 바라는 것부터 과한 욕심이다. Topogon의 영혼을 지닌 Orion-15, 근래 써본 렌즈 중 가장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싸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매력이 넘치는 렌즈다. (믿어주세요) 28미리 화각, 그리고 Topogon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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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자리의 사진을 다시 보니 Orion-15의 이름이 괜히 오리온이 아니란 걸 알겠다. Topogon의 특징이 좌우대칭이란 점에서 착안한 이름임에 틀림 없으리라. 렌즈 구조의 특징을 별자리에 빗대어 이름을 정하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Summaron? 무슨 뜻임?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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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디와의 장착 샷 (못생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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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바디와 매칭하면 미친듯이 못생기진 않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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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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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만쉐이~!

 

Special Thanks to LEE T.Y.

 

 

※ 참고로 뒤적였던 자료들

https://en.wikipedia.org/wiki/Topogon

http://www.sovietcams.com/index.php?398258553

http://www.sovietcams.com/index.php?1740225226

http://www.marcocavina.com/articoli_fotografici/Soviet_and_wide_lenses_on_Leica_M/00_p.htm

 

 

 

필름, 라이카 그리고 일년

필름 시작한지 어느새 1년이 지난 것을 깨닫고는 새삼 놀랐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올라오는 걸 보니 디지털에서 필름으로 넘어 온 일년이 꽤나 즐겁긴 했나보다. 이미 필름 입문 100일 기념으로 한 차례 우려먹었던 터라 올챙이적 썼던 초반의 글은 생략하기로 한다.

  § 궁금하면 클릭 → “필름 그리고 라이카

일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사실 필름을 쓰기 전 내 사진생활은 어느덧 기억 속에서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솔직히 흑백 필름에 이렇게까지 빠져들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주변의 지인들은 이런 나를 보고 적응하고 말 것도 없이 금방 필름에 익숙해졌다며 놀라워했지만 실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오리발은 물 아래에서 조낸 저어대고 있었던 것..

그 와중에 사진만 찍으려는 나를 가만두지 않는 짓궂은 지인들은 끊임없는 뽐뿌와 감언이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곤 했지만 내심 그 조차도 나쁘지 않았다. 없는 살림에 선택과 집중으로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며 어느새 나도 8매가 뭔지 알게 되고 콘탁스가 어쩌네 자이즈가 어쩌네 귀에 담은 풍월이 제법 늘어갔다.

때로는 선문답 같기도 하고 때로는 저 무슨 한심한 시간낭비인가 싶기도 했던 환자들의 농담따먹기도 어느새 익숙해지자 한없이 가볍고 쓸데없어 보였던 그들의 ‘놀이’도 필름 사진과 올드카메라를 사랑하는 동호인 그룹만의 유니크 한 재미임을 알게 되었다. ‘놀이’라는 필터를 적용해보았더니 적어도 내 주변에 자칭 환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치고 진짜 환자들은 없었다. 장비질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사진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쏟았던 있는 이들이라는 걸  그들과 가까워 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영원히 쓸 것 같았던 렌즈를 바꿨다. 10년은.. 아니 평생 써야지 했던 헥사논은 1년도 되지 않아 집을 나가 주미크론으로 돌아왔다. 내년에도 주미크론이 내 곁에 있을지 장담할 순 없으나 어찌하랴?

Que Sera, S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