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자유부남

목요 자유부남

어제 목요일 급 하루 휴가가 생겨서 여기저기 좀 쏘다녔습니다.

우선 아침에 간단하게 두유 한잔 원샷하고 피사장님 계시는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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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뵈었지만 형님은 여전히 그 미소 그대로 저를 맞이해 주십니다.

밥부터 먹자며 저를 끌고간 곳은 정말 “할매”가 해주시는 추어탕집이였습니다.
저희 집안은 안동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경북음식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할매가 내주신 맑은 국물의 추어탕도 넘나 맛났지만
곁가지로 나온 겉절이가 얼마나 맛나던지,
보기엔 참 간단해 보이는데 이게 왜 부산서는 그 맛이 안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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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밥 잘 먹고 인근 다원으로 들어 갔습니다.
들어서기 전에 형님께서 여긴 뭐 내가 오히려 가르쳐주는 그런 곳이야라고 말씀하실땐
뭔가 일반인은 알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역시 대구 이곳은 그의 나와바리인 겁니다.
보이차와 귤(?)을 15년 이상 말린 차를 우려 주셨는데
차 맛이 이렇게 오묘하고 깊고
담는 용기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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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너무 많이 마셔 화장실 들렀다 바로 대구의 필름 성지 솔리스트로 향했습니다.
예전부터 형님께 대구 가면 꼭 솔리스트에 한번 데려다 달라고 조르곤 했었는데 드디어 제가 갑니다.
그렇게 만나뵌 솔리스트 선생님은 너무나 반듯하고 깔끔하셨습니다.
그 성향 그대로 흑백인화물들도 얼마나 정직하고 깔끔하게 뽑아내시는지
저는 그런 성향이 참 좋았지만 약간 깔롱한걸 좋아하시는 울 피형님은
좀 더 양념을 쳐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몰래 저한테만 주셨습니다.
제가 본 솔리스트는 네가인화의 정점에 다달은 현상소였습니다.
샘플로 몇장 본 수작업 네가 인화의 사진들이 어쩜 그렇게도 이쁜지
톤과 느낌이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늘 흑백만 다루어 왔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네가로도 좀 찍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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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울 설계자 동생이 열심히 뺑이치고 있는 건천으로 찾아갔습니다.
네비의 목적지인 건천읍사무소에 도착해서 보니 여긴 어디? 나는 어쩌다?
결국 내가 진짜 건천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조금 기다리니 울 피요동생이 일에 찌든 얼굴이지만 공장에서 탈출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저를 맞아줍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갈비뼈 부서지게 부둥켜 안고 먼저 말을 꺼냅니다.
행님 소고기 무글래요? 잡어매운탕 무글래요?
도시에선 흔히 먹기 힘든 민물매운탕을 먹기로 하고 건천 최고 맛집 현일식당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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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로컬맛집은 다릅니다.
저녁 시간에 이 외딴 곳에 사람들이 꽉 찹니다.
딱 안동에 어른들이랑 형님들이 해 먹던 그 맛입니다.
민물매운탕 몇숟가락 떠먹으니 울 아버지가 참 좋아하시는데 하는 생각이 납니다.

저녁 배불리 먹고 추위도 피하고 담소도 더 나눌겸 커피 한잔 마실려고 하니
어설픈 건천표 아메리카노 보단 이번 기회에 같이 지역 다방으로 한번 가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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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다방 아가씨를 기대하며 들어선 우리의 선택지 백조다방엔
불행히도 아가씨는 없었습니다.ㅠㅠ
쌍화차랑 말 그대로 다방커피를 한잔씩하며 새로 장착했다고 하는 orako를 들여다 봅니다.
역시 설계자는 틈을 주지 않습니다.

다시 야근하러 들어가는 동생을 뒤로하고 차의 방향을 퐝으로 돌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뿡회장을 만나고 가야 오늘의 마무리가 되는거죠.
퐝 공식 만남의 장소 파스쿠찌 지곡점에서 조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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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해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저쪽에서 자이즈이콘 슈퍼이콘타를 한손에 달랑 달랑 들고 나타납니다.
이 밤에 꼭 제 초상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서 감도 800으로 세팅해서 들고 왔다기에
오늘 하루의 무리한 일정으로 피로가 겹겹이 쌓인 얼굴을 한 저는
눈 밑이 아니라 턱 밑까지 내려온 저것은 분명…다크서클인가? 아닌가?
하지만 기꺼이 쾡한 모델이 되어 줍니다.
우리 둘의 나이차이는 조금 있지만 아이들은 같은 나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막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피요를 굳이 파스쿠찌로 불러들입니다. ㅋㅋㅋ
마지막까지 퐝 커피숖 구탱이에서 건너편 테이블의 아줌시들이 보던말던
카메라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성인 남자 세명이서 이렇게 저렇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다이나믹했던 하루를 마감합니다.

그렇게 새벽에 고잉홈을 하고 쓰러지듯 잠이든
부산->대구->건천->포항->부산
단 하루 자유 유부남의 목요일 일기 끝

p.s.
올려진 모든 사진은 아이폰 5s로 담은 것들입니다.
담번엔 다른 지역구 횐님들도 투어로 꼭 한번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필름으로 생활하기

제목을 너무 거창하게 붙였나 봅니다.

저는 결혼할때 아내가 혼수로 올림푸스 뮤2 줌카메라를 가지고 시집 오던 필름 세대입니다.

제게 필름은
특별히 필름이 좋아서 필름을 고집하고 꼭 필름으로만 내 가족의 일상을 담아야겠다는 등의
거창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사용하던 시스템을 계속 사용하는 자연스러움이였습니다.

학창시절 소풍 갈때에도 소풍가방에 아버지의 카메라를 빌려 갔었고,
아내와 데이트 할때도 장농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갔었습니다.
결혼식 사진도 역시 모두 필름으로 담아져 있는 것이 당연했던 세대입니다.

결혼 후 디지탈 카메라의 보급으로 필름 카메라에서 갈아 탈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게으르고 미루기 좋아하는 느린 행동 탓도 있지만 그 가격이면 예전부터 들이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싸 침만 흘리던 필름 바디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현상이 있어
오히려 디지틀의 열풍 속에서 저는 필름 바디를 여럿 들였다 내놓기를 반복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흔한 디카 하나 없이 오로지 필름만으로 가족의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휴대하고 있는 스마트폰으로도 가볍게 많이 담습니다.
하지만 행사든 일상이든 메인은 여전히 필름입니다.
그것도 slr이 아닌 좀 더 불리하지만 이쁜(?) rf입니다.

필름으로 일상을 담을려면 적어도 감도가 800은 되어야 저녁에도 가능합니다.
집에 있는 카메라에는 항상 kodak tx를 한스탑 증감해서 세팅해 둡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행사에서 가족을 담을려면 90mm이상의 망원도 필요합니다.
사실 135mm 정도는 되어야 아이 얼굴이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만,
rf에서는 저는 90mm가 한계입니다.

지금은 사실 약간 고집같은 것이 생겨나 모든 생활에서 필름으로 다 해낼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생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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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카메라를 자주 휴대하는 편입니다.
아이를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도, 오후에 데리고 오면서도,
태권도 하원차량이 도착해서 내리는 것을 마중 나가서도, 서점에 갈때도,
병원에 가서 치료 받을때도, 자전거 타러 나가서도,
이발하러 가서도, 체험하러 가서도, 등산 갈때도,
캠핑 가서도, 양궁장 가서도, 사격장 가서도, 업체에 방문해서도
가족 여행을 가서도 꼭 카메라를 휴대하고 나갑니다.
아이가 태어나 우리 가족이 늘어나기 이전부터 항상 함께하는 라이카 MP는 이젠 가족입니다.
(이젠 방출되고 없지만 바닷가나 수영장에서 방수팩 안에서 요긴하게 활약한 gr1v에게 감사를.)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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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도 아내는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남편인 저를 기다렸다가 다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합니다.
바삐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내가 저녁상을 차리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자연스럽게 아이와 같이 놀이를 하는 시간이 됩니다.
웃고 화내고 짜증내고 다양한 상황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때론 저녁식사 중에도 사진을 찍습니다.
샤워할 때도 카메라를 꺼내서 찍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응가를 할때도 급습하여 사진을 찍습니다.
다 이쁩니다.
아빠 눈엔 하는 행동 모두 다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니 사진으로 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계감도는 ISO800입니다.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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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맛난 식당에 가서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습니다.
주로 흑백필름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가족도 그렇고 음식사진들이 거진 흑백입니다.
어쩔땐 이 음식의 본래색이 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도 있습니다. ㅎㅎ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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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휴식겸 차 마실겸 카페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아내와 저는 잡지도 보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며
그 시간동안 아이는 만화를 한편 보기도 하고 엄마랑 책을 같이 읽기도 하고
다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한 낮에도 카페안은 감도 800으론 좀 버겁습니다.
하지만 손각대로 열심히 찍어 봅니다.
역시 흑백사진이 많지만 커피는 어짜피 블랙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넘어갑니다.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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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식을 강당에서 했습니다.
가장 애정하는 35mm 크론과 90mm 망원렌즈를 챙겨서 출동했습니다.
제가 가진 90mm렌즈는 조리개 4.5의 엘마릿입니다.
강당에서 셔터스피드 확보는 역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습니다.
다행히 빛이 잘 드는 교실에서는 35크론으로 무리없이 잘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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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운동회에서는 다행히 셔터스피드 걱정없이 담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멀리 있는 아이를 담기엔 90mm론 좀 역부족 임을 느낍니다.
그래도 과감하게 치고 빠지면서 요령껏 잘 담아 봅니다.
옆에서 흰색의 긴 망원렌즈를 장착한 아빠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봅니다.
모른척 얼른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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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심사가 아주 큰 실내 체육관에서 있었습니다.
실내라 셔터스피드도 안 나오지만 더 큰 문제는 거리입니다.
어찌나 멀리서 심사를 받는지 90mm가지고는 정말 택도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열심히 전체 모습이라도 담습니다.
이래저래 핑개대면 끝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이 카메라랑 이 렌즈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좀 못나오거나 흔들려도 별 불평을 안합니다.
내가 가진 장비로 그 정도만 나와도 좋은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못나오거나 흔들린 사진도 그 상황을 추억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사진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장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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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셔터스피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역광에서 주 피사체인 가족이 어둡게 나오고
해가 떨어지면 카메라를 꺼내기 두려웠던 지난 날들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전부터는 플래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력 카메라인 라이카 MP에 물려서 사용하기 위해
라이카 SF-20을 제일 먼저 들였으나 부피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대다가
스트랩으로 메고 있으면 균형을 못잡고 자꾸 기울어져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민하여 들인 것이 콘탁스 TLA200입니다.
요 녀석은 MP랑 메칭도 너무 좋고 크기도 작아 딱이였습니다.
광량도 크기에 비해 쎄서 사용하기 좋았습니다.

플래쉬를 사용하면서 역광과 실내에서도 좋은 사진을 많이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실내 체험학습장 같은 곳에 가면 그 역활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작년엔 오래된 뮤2 똑딱이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플래쉬기능이 요긴합니다.

leica mp, barnack III, ricoh gr1v, olympus mju2 zoom
kodak tx, ilford hp5+ d-76 1:1 자가현상
kodak potra400, fuji xtra400  업체현상
epson4870 자가스캔

B급 매니저님께서는 작년 한해의 매달 선정된 총 12장의 사진을 원하셨지만
저는 선택의 고민에서 머리 싸메고 헤메다가
결국,
2017년 작년 한해동안 일상에서 같이한 필름들을 다 꺼내 봤습니다.

말 그대로 필름과 함께한 저희 가족의 2017년의 기록을 고스란히 올립니다.

사진의 질이나 완성도 면에서 많이 떨어지는 사진일지 모르나,
저희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한장한장의 추억이고 기록입니다.

이렇게 많은 가족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필름으로만 찍는다는 것이 레트로가 유행인 요즘 세상에선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고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일도 아니여서
필름이 계속 생산되는 한 저는 하던대로 계속 이어갈 것 같습니다.

2018년 올해도
저랑 같이 필름으로 생활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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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P / summicron 35mm asph / HP5+ D76 self_dev. / epson4870

Hong Kong_snap
2017. 10. 03. ~ 06.

지난 연휴때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들 그렇듯이 꼬맹이 위주 가족여행이여서…

첫 날은 기차덕후 아들 원풀어주느라 트램타고 종점까지 가서 되돌아오느라 하루 다 보내고,
둘째 날은 홍콩과학관이랑 홍콩역사박물관에서 체험하느라 꼬박 하루 다보내고,
세째 날은 홍콩디즈니랜드 오픈시간에 들어가 문닫을 때까지 놀다 나왔구요.
마지막 날은 피크트램 탈려고 줄서다가 하루 다 보내고 밤에는 이유없이 스타페리만 몇번을 왕복했는지…

그 바쁜 와중에 잠시 잠깐씩 담은 홍콩스냅입니다.
담에 정말 자유의 몸으로 B급분들이랑 카메라 맘 편하게 메고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치유로서의 사진

 

사진을 취미로 시작한지 꽤나 오래되었다.
그 기간동안 사진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나는 또한 어떻게 그 영향을 받아들였나?

제목은 아주 거창하지만 실상 별것 없다.
그냥 사진이 내게 어떤 상황과 형태로 존재했는지 어느날 궁금해졌다.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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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대한민국에서 흔한 을의 직장에서 모든 것이 큰 갑과 직장내 또다른 갑들의 아래의 위치일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의 영향력을 가지는 사진을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인터넷에서 본 조금 과장된 색감의 하늘사진에 매료되어
로모나 아가트18 같은 토이카메라류를 만지긴 했었다.
그러다가 펜탁스 MX나 올림푸스 OM 같은 SLR도 다루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의미있는 기능을 시작한 사진은 묵직한 맨프로토 삼각대 위에 올려진 마미야 RB67이였다.

조선소 하청의 내가 몸 담은 회사는 모든 것이 모기업(현대중공업 같은)의 납기 및 요청(물론 강제성을 띈)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을이였다.

그 덕에 야근은 기본이고 부족한 인력으로 새벽에 퇴근하고 또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일이 참 많았다.
주말도 없이 일하던 그 시절은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될때까지
나는 늘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출근했으며, 퇴근후 집에 와서도 곤히 잠든 아기만 바라봐야했다.
해 떠있는 주말에 아이를 마주한게 몇번인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직장 생활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정을 유지하고 발전 시키고 싶은 아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다 감내하였지만
그것만으론 사실 버티는 것이 쉽진 않았다.

그런 시절을 버티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다시 출근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을까?
나 같이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상황을 다 견디며 지내 왔을까?

아이도 태어나기 한참 전에 신혼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신혼인데 나는 왜 저녁에 아내랑 밥을 먹은 기억이 없는가?
직장생활을 일년쯤 한 시점에 나는 단지 그 이유로 직장을 관둘려고 생각도 했었다.

근데 그 시절 신혼부부의 이쁜 신혼일기는 못되지만 우리에게도 나름의 반복되는 우리만의 일기가 있었다.

본가에는 아주 오래된 유물과도 같은 카메라가 한대 있었다.
아버지께서 노년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잠시 발을 들였다가
디지틀혁명으로 쫄딱 망해버린 사진관의 흔적인 중형 마미야 카메라와 삼각대 한조

나는 사진을 간간히 하면서 본가에서 그걸 들고 와서는 종종 들고 다니며 찍었다.
하지만 점점 찍을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 않으면서 그걸 밤에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는 너무 무거워 바로 롤라이플렉스나 홀가 같은 작은 중형으로 바꿨다.

우리 부부는 둘다 부산사람이지만 못난 오빠를 만난 덕에
아내는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양산 서창에서 신혼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밤에 우리의 경차 아토스를 몰고 나가면 기장 연화리까지 1시간이면 충분했다.

늦게 집에 들어와서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거운 날이면 아내는 보온병에 커피를 준비한다.
그러면 우리 부부의 재미난 야밤 드라이브 데이트가 시작된다.

바닷가에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뷰파인더로 이리저리 각을 맞추고
왼손에 찬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릴리즈 버튼을 꼭 누르고 있다가
내가 생각한 때에 릴리즈 버튼을 놓는 순간 그 사각 거리는 소음이 어찌나 좋던지

나는 그 릴리즈를 잡은 손에서 오는 감촉이 너무 좋았다.
한겨울의 바닷가 칼바람을 양뽈로 맞으며 삼각대를 세우고 파인더를 내려다 보며
흔들리는 배들과 밧줄들 그리고 가로등의 그 불빛, 그 모든 것이 좋았다.
꼭 사진으로 담아 오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행동들이 내 썩은 영혼을 청소해주고
내일의 힘을 낼수 있도록 나를 채워주는 것만 같았다.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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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카메라를 들였다가 다시 내보냈던 것 같다.
물론 엄청난 물량을 들이고 내보내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양이지만
나에게는 경제적으로도 한계까지 비용을 지불하며 들였던 경우도 있기에
적어도 내 상황에서 부릴수 있는 여유는 다 부렸던 것 같다.

어떠한 우연한 계기로 렌즈든 바디든 내 손에 들어오면
나는 꼭 그것들을 오리지날 파트들로 구성을 채웠다.

세트가 되는 대표렌즈는 꼭 광각, 표준, 망원으로 구비했고,
필터도 그 메이커에 맞는 것들로 다시 구성하고 후드며 캡이며
모두 하나씩 정성을 들여 완성시켰다.

국내에서 구해지지 않으면 외국사이트를 돌아 다녀서라도 구성을 맞췄다.
다 완성된 구성을 보고 있으며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홀로 골방에서 공셔터를 날리고 융으로 바디를 닦고 불러로 먼지를 털어내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물론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정도 완성되면 그 과정에서 이미 그 구성들은 내게 충문한 기쁨을 주었다.
마지막 최종의 구성품이 구비되는 순간 그 기능은 급격하게 쇠퇴했다.
그러면 가까운 지인에게 나의 소중한 카메라세트를 넘기고
나는 다시금 새로운 내 손길을 요하는 카메라를 찾아 나섰다.

중형 카메라 뿐만아니라 즉석카메라에 빠져 폴라로이드 기종들을
여렇 들였다 내보냈다 하면서 경험하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없는 필터를 만들기 위해 당장 추가로 필요하지도 않는 안경을
또 사면서 필터알과 필터를 주면서 가공을 부탁하기도 많이했다.
한번은 알이 두껍고 야물어서 안경알을 가공하는 기계에 무리가 와서
입장이 난처해진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수공예 카메라가방을 구하기 위해 장터에 매복하며 기다리다
결국 그 것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밤바람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가방 저 가방 여러가지를 전전하다 맘에 드는 가방을 만나서
그 메이커의 카메라가방을 모조리 사다가는 가방콜렉터가 될뻔한 과거도 참 재미있었다.

카메라 캐비넷에 단품이 홀로 있다가 로버트가 변신합체하듯 하나씩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맘에 드는 악세사리를 가공해서 만들거나, 맘에 드는 가방을 구하거나 하면서,
나는 사진을 찍는 기쁨 말고 또 다른 기쁨을 느꼈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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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기간이 지나면 어떤 것이든 소원해지고 멀어지기 마련이다.
장비질도 출사도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멀리하고 지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카메라를 든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이다.

원래 나는 움직이는 것을 찍지 못했다.
무엇이든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찍었다.
내가 찍는 사진에서 움직이는 대상은 겨우 바람이나 파도, 구름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첫번째 사진적 행동이 라이카를 사는 것이였다.
하지만 지버릇 개 못준다고 나는 KIRK 플레이트도 같이 구해서 들이긴 했다.

우선은 임신해서 배가 불러 오는 아내를 옆에서 자주 담았다.
같이 움직일 때면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해 가는 모든 과정을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담았다.
특별한 포즈를 취해주던 아니던 그냥 수시로 셔터를 눌렀다.
아내든 아이든 내가 뭘하든 별 상관하지 않고 행동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다른 시선에서는 너무나 개인적인 일상 사진들이 쌓여갔다.

덕분에 저절로 스냅의 영역에 들어섰으며 제법 그럴듯하게 장면을 잡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 돌사진도 내가 핫셀과 라이카로 아는 분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찍어서 담았다.
나는 평소 주로 감도 800으로 세팅해서 찍었다.
감도 800은 저녁에 퇴근해서도 놀고 있는 아이를 담을 수 있는 한계 감도임에 동시에
가족사진의 범위에서 허용되는 그레인의 최대 범위였다.

현상용액의 특성상 가족사진은 아이가 아주 어릴때 잠깐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어느정도 조심성이 있는 나이가 된 후로는 내가 직접 다 현상하고 스캔했다.

집이 좁아 내보낸 확대기만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인화까지도 직접할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 것 같다.
내 가족을 내가 담는 다는 것.
그 기록을 내가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집에는 총 7권의 가족사진집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매 일년마다 아이생일에 맞춰 일년치 사진을 모으고 선별해서 한권씩 만들었다.
일기가 차곡차곡 꼽혀있는 책꽂이 마냥 사진집이 쭈르륵 꼽혀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그 속의 사진은 결코 뛰어나다거나 거창하지 않다.
초점이 나간 사진, 현상과다로 하이라이트가 다 날아가서 흔적만 보이는 사진,
셔터스피드가 못따라가서 형체만 나온 사진 등등
하지만 가족사진은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다.
그 사진 속에 가족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때의 기억을 불러와 미소 짓게 하는데는 사진의 품질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종이 사진집도 좋지만 시대에 맞춰 온라인에도 작은 공간을 만들어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을 하면 우리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 사진집 작업과 온라인 공간 작업을 나중에 아들이 이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마지막까지 즐겁게 하면 더 좋을 일이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소하게 계속해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진이였다.
잠시 멀게도 지내고 잊고도 지냈다고 생각했었다.

범위가 크건 작건 사진은 계속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 영향이 나쁜 방향으로 이어진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살림사는 마눌입장에선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그럼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의 행위에 감각에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사진이 치유의 기능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우울한 내 기분을 다독여 주고,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내일을 맞이하게 해준 영향.

내속에 그렇게 사진이 작용하고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영향을 미쳐줬으면 좋겠고,
그 영향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나였으면 좋겠다.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P.S.
잠시 부산에 내려오신 피울 형님과의 대화로 오늘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혼자만의 독백같은 시작이여서 반말투인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한번의 내림으로 쓴 글이라 두서가 없고 정리가 잘 안된 느낌이 있지만
검토하지 않았다는 그것이 더 좋아 지금 그 느낌을 그대로 올립니다.

 

 

 

 

 

대성이용원

대성이용원

센텀 이전의 수영비행장 시절부터 쭈욱 이어져온 꽤나 오래된 이용원
그땐 군인들 머리를 그렇게도 많이 만지셨다는데, 지금은 동네 단골 아저씨  몇 분만 들락거릴 뿐이다.

처음에 이 이용원을 알게 된 것은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이다.
천방지축 개구쟁이 1학년 아들을 아침저녁으로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을 눈에 담게 된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다.
나는 아주 가끔 일이 빨리 끝난 날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동참하곤 했다.

우리 집에서 나와 건널목을 건너면 바로 접하게 되는 곳이 신흥반점과 나란히 붙어 있는 이 대성이용원이다.
이 신흥반점도 해운대 우동에 오래 사셨던 분들 말로는 꽤나 맛으로 유명하다 했는데 우리는 아직 시켜먹어 보진 못했다.

신흥반점은 항상 문이 굳게 닫혀있어 배달전문 중국집임을 티 내는 듯했으나,
그 옆 대성이용원은 항상 문이 열려있고 발이 바람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틈으로 얼핏 보이는 것이 서서 머리를 감는 타일욕조와 바가지가 담겨져 있는 빨간 다라이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던 풍경인가.
중학교 시절 학교 앞 단골 이발소가 꼭 이런 모양이었다.
지금은 다들 전기바리깡을 사용하지만 우리 때는 손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었다.
가끔씩 바리깡에 머리가 씹히면 어찌나 아프던지 “아야”하고 소리를 내면
이발소 아저씨는 엄살피지 마라며 꿀밤을 먹이시곤 하셨는데……

그때의 그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런 이발소가 아직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공간인 센텀에 이런 오래된 이용실이 있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그런데 내 눈에만 반갑고 신기한 곳은 아니 였나 보다.
우리 아이가 어느 날 이곳이 궁금하다며 한번 들어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나는 옳다구나 이때 구나를 속으로 외치며
“그러면 너 저기서 머리 손질해야 하는데 엄마랑 미용실 안가고 저기서 머리 깎을래?” 라고 물어 봤다.
‘응” 너무나 간단하고 명확하게 대답을 한다.

그 주 일요일 오후 드디어 대성이용원에 우리 세 식구 총 출동을 한다.
이발소 아저씨랑 사모님이랑 손님 한 분이 오잉? 요 사람들 뭐지?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본다.

꼬맹이를 앞세우며 “요 녀석 요기 앞에 초등학교에 이번에 입학했는데 요기서 머리 깎고 싶다고 해서 왔습니다.”
하며 인사드리니 ” 그래 미용실에서는 파마만 할줄알지 그냥 사내 머리는 잘 못짤러”라며 반겨주신다.

능숙한 손짓으로 어린이용 보조의자를 이발소 의자에 걸치시며
“여기 와 앉아 보거래이, 아빠가 올려줘야겠네”
머리를 자르시다가 나를 힐끔 한번 보신다.
“아..저..결국 남는 건 사진 뿐이더라고예, 옆에서 쫌 찍어도 되지예?”
“그라면 뭐 그라던가”
옆에 계시던 사모님께서 거들어 주신다.
“맞다 낸중에 보면 사진빡에 없다. 마이 찍어가소”

그렇게 몇장의 기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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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 / 35cron asph /  hp5+ 1stop push / D-76 self-dev. 16’30” / epson4870

 

 

 

 

 

 

 

 

 

 

 

 

도시가 잠들 준비를 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밤의 가로등불이 어두운 밤을 오히려 더 밝고 화려하게 만드는 그 시간들이 지나고,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만 땅을 스치는 가로등 마져도 꺼질려고 준비하는 시간,
완전한 어둠으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의 시간, 그 고요의 고독의 스산한 도시의 시간

그 시간의 도시의 풍경이 궁금했습니다.
특히 퇴근 후 저녁시간 많은 사람들이 저녁 운동으로 산보로 나들이로 붐비는 도시의 강변
그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간 시간의 그 곳이
그래서 담았던 풍경들입니다.

이 사진들로 제 옆테의 아름다움의 뽐뿌에 못이겨
B급에 불어 닥친 SWC의 바람에 힘을 실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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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selblad 903swc / TMX / D-76 / epson4870 / 2010년 01월 부산 수영천]

 

 
 
 

도시가 나이가 들어가면

도시가 나이가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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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은 새것에 비해 초라해 보이고 그 구실을 못할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으나,
오래되었기에 가지는 아우라가 분명 있습니다.
굳이 나대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아봐 주는 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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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가 그랬습니다.
도시가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이런 모습이면 좋겠구나.
낡고 퇴색된 지하철, 아직도 당당히 운행되는 트램, 오래된 목조 건물들과 그 골목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치열하게 닦고 조이고 정비했을 그 오래된 것들.
지금껏 존재한다는 건 그 동안의 시간을 오롯이 품고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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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서 잘 보존되어온 사찰과 역사적 건물들이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던 곳.
그것이 오래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천천히 커온 것이기에
같이 세월을 겪어온 나무와 물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사람을 불러들이는 힘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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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시즌이 끝을 향해 달릴 때 도착한 교토는 그랬습니다.
일본에서도 이 맘 때가 되면 애써 맘 먹고 찾아 온다는 그 곳, 교토.
단풍이 아름다운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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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토는 단풍만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균형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사람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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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단풍은 우리 경주의 불국사도 절대 뒤지지 않고 이쁘고 좋습니다.
하지만 그 즐김은 우리가 훨씬 못한 듯 했습니다.
천천히 보존하며 즐길 줄 아는 그들이 사실 조금 얄밉고 또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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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멋진 곳에는 어김없이 빨간 테이블들이 있었습니다.
단풍을 눈으로 즐기며 차 한잔할 줄 아는 그들의 여유와 평온이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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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는 왜 그러했는가.
자연을 왜 천천히 보지 못했는가.
왜 여유있게 타인을 배려해주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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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거리가 깨끗한 것은 단지 그들의 문화의식이 높기 때문만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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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을 떠날 때쯤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도시
제가 처음 방문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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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는 그랬습니다.

2016. 11. 27.

body: leica MP
lens: leica summicron 35mm asph
b&w: ilford hp5+ 1stop push, rollei retro400 1stop push, kodak tx400 1stop push
color: rdp3, potra400
scan: epson4870

p.s.
다같이 갔다왔는데… 그래서 뭐라도 하나 올려야하는데…
사진도 여행도 너무 멍하게 남아서 숙제를 혼자만 아직 제출 못한 학생 마냥 맘이 참 무거웠습니다.
그냥 이번 교토 이후의 감정은 저는 “역시 하나”와 “멋지게 세월을 받아들이는 것이란”입니다.
교토여행을 추진해주시고 같이 도와주며 준비해주신 보든 분들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요즘도 폴라로이드 많이 찍으시나요?

요즘도 폴라로이드 많이 찍으시나요?
요즘은 다들 후지필름에서 나온 인스탁스미니로 많이 찍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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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폴라로이드를 많이 찍었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 완전 폴라로이드로 아이 담느라 월급을 필름값에 다 갖다 바쳤죠. ㅎㅎ
처음 사용한 기종은 SX-70이예요.
이 녀석은 워낙 이뻐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인기가 참 좋았죠.
근데 이녀석을 한참 잘 사용하고 있는데 폴라로이드사가 사업을 접는 불행이…
폴라로이드 600 필름 값이 엄청 나게 오르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웃돈을 주고 구할려해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 있던 몇대의 sx-70들은 장식품 신세가 되어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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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신하게 된게 같은 회사의 랜드카메라예요.
폴라로이드사가 필름생산을 접었지만 이 녀석의 필름은 다행히 일본 후지필름에서도 생산하고 있었거든요.
흑백도 있고 칼라도 있도 필름이 생산되고 있으니 우선 안심하고 넘어 왔죠.
흑백필름은 감도가 어마어마해서 실내고 밤이고 왠만하면 다 사진이 잘 나와줘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제껀 랜드360 이라고 보급기인데 이 녀석의 고급기인 랜드180 같은 건 수동 조작도 다 되고
랜즈도 워낙 좋아서 지금은 대형필름용으로 개조가 많이 되었어요.
그덕에 매물수가 급격하게 줄어 구하기도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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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녀석도 이젠 장식장으로 갈 팔자예요.
후지에서 랜드 카메라용 즉석필름을 단종 시켰거든요.

물론 임파서블이라고 열심히 폴라로이드사의 공장을 인수해서 폴라로이드 필름을 다시 생산해낼려고 노력하는 회사가 있어요.
근데 그들이 생산하는 필름은 솔직히 예전의 그 필름으로 복각하는데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세피아니 모노니 하며 다양한 형태로 내 놓고 있지만 저는 맘에 안들더군요.

물론 후지 인스탁스도 즉석카메라이긴 하지만 너무 작고 색이 금방 변질되요.
인스탁스 와이드라고 판형이 조금 더 큰 폴라로이드가 있긴한데 얘는 맑은날 야외에서만 잘 나와요.
실내나 조금이라도 어두운 곳에선…..ㅠㅠ

폴라로이드 매니아인 친한 동생이 마미야에 인스탁스 와이드용 필름이 사용가능하게 개조에 성공했다는데
어떤지 한번 담에 물어 봐야겠습니다.

이젠 우리 꼬마도 사진을 직접 찍고 놀기를 좋아해서 꼬맹이용으로 인스탁스미니가 하나 있어요.
오늘 저녁에 할로윈 파티때 입을 의상이 택배와서 좋다며 입고 노는 모습이길래
얼른 귀한 마지막 필름이 들어 있는 랜드360을 꺼내서 한장찍고,
나중에 다시 인스탁스 미니로도 한장 찍어서 이렇게 보니 참 다르네요.

저 느낌을 이젠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게 참 슬퍼요.
지금 사용하는 필름들은 더 이상 단종되지 말고 계속 생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 한쪽면에 찍은 것들 중 기억하고 싶은 폴라로이드 필름을 붙여둔 폴라사진벽이 있어요.
왔다갔다하면서 오래된 사진들 보면 추억도 되고 우리 아이 어릴때 보며 미소도 지으며 참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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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퇴근 길에 get/gilberto LP를 한장 사들고 왔는데
나이들어 감에 점점 옛것이 찾아지고 그리워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어린놈이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뭐라도 B급사진에 글을 올리고 싶어 얼마전 온라인에 올린 글을 재탕합니다.
또 재탕이라 죄송합니다. 담번엔 꼭 새로운 글과 사진을 올릴께요.

이거 마무리가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