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점에서 보면, 걷는다는 행위는 현대인과 무척이나 동떨어진 원시적 행위가 된 듯하다. 속도와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는 걷는 것 자체를 고생스럽고 가능한 한 피해야 할 낭비적 행위로 규정한다. 어찌하면 덜 걸을까를 고민하고 부득이하게 주차를 좀 멀리해서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면 이내 짜증부터 내고 만다. 과거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걸음 수는 3만 보였던 반해 최근에는 5천 보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종사자와 학생들은 하루에 고작 5백보 정도 걷는다고 하니 건강을 위해 권고되는 하루 만보 걷기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닌 듯 하다.
주지하고 있다시피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 덕에 문명을 구축하고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네 발에 고루 분산하던 몸무게를 두 발로만 버텨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나,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척추를 바로 세우고 뒷발의 구조를 변형함으로써 중력을 이겨내고 이족보행을 실현할 수 있었다. 아울러 두 발로 걷는 행위는 네 발로 걷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이동방법이다. 예컨대 네 발로 걷는 동물은 기본적으로 네 발 중 두 발은 항상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어야 하고 전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지면을 밀어주어야 하는데 반해 두 발로 걷는 우리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무게중심을 이동함과 동시에 넘어질 듯 발을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네 발 동물에 비해 적다.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것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과 함께 지구력과 직결된다. 이러한 지구력은 인간이 수렵생활을 할 때 가졌던 차별화된 강점으로 작용하였다. 창이나 화살로 쉬이 잡을 수 없는 사나운 동물이라 할 지라도 목표물이 지칠 때까지 꾸준히 뒤를 따르면 결국엔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으로 득템한 이족보행 능력으로 도구의 사용과 더불어 두뇌를 점차 대용량으로 발달시킬 수 있었고, 결국 현생인류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걷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천대받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100만년 이상 자못 영웅적이었던 두 발에게 지못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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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현생인류보다 꽤나 원시적이라 할 수 있다. 평일에는 하루 만보에서 만 오천보, 주말이면 이만에서 삼만보까지 걷는다. 주말 아침, 2시간 정도 사진 찍고 오면 손목 만보계는 식전부터 8000보를 가리킨다.
튼튼한 두 다리는 내가 가진 최고의 사진장비이자 조력자임에 틀림없다. 지구 중력을 한발 두발 부드럽게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이따금 마음 가는 객체를 카메라에 채집하고 있노라면 도끼 썩는 줄 모르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만다.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원시인류가 했던 수렵/채집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카메라를 메고 이미지를 채집하는 일은 분명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호모 에렉투스의 삶의 흔적과 공명하는 것이리라. 이처럼 걷기와 사진의 조합은 현대인이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원시체험이자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수렵/채집에 의한 보상적 즐거움을 발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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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어느 주말, 가족과 단란하게 영천 치산계곡에 하루 묵으며 놀다 올 요량으로 짐을 꾸렸다. 우리 가족 모두 귀차니스트인 터라 텐트치고 코펠 따위로 요리하는 것은 극구 싫어하지만, 치산계곡에는 시에서 마련한 ‘카라반’ 캠핑장이 있기에 그리 많은 짐이 필요치 않다. 심지어 우리는 누구나 캠핑장에서 해야만 하는 ‘숯불피워 고기굽기’ 마저 게으름의 가치 아래 하지 않았다. 그저 간편하게 부대찌개랑 밥 지어 먹고는 후다닥 정리 끝. (그날 수십 개의 카라반 중 고기 굽지 않은 집은 우리 집 뿐인듯)
캠핑장의 시계가 빠른가 보다. 어느새 5시. 산이 깊은 곳이라 평지와 달리 석양이 지는듯 빛이 부드럽다. 해가 더 떨어져 어두워지기 전에 아들내미와 계곡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수도사까지걸어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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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의 기록 첫번째 : 2017.06.17, 17:30~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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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운동화 끈을 여며주고서 팔공산 산자락을 따라 난 길을 자박자박 걸었다. 나와 달리 지엄마 닮아 걷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라 나는 상금을 걸 수 밖에 없었다.
“목표지점까지 손잡고 잘 걸으면 천원!”
“콜”
아직 이게 먹히는 걸 보니 아직 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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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한 가뭄에 계곡물이 귀한 터라 예년 같으면 한 시즌 재미졌을 포장마차도 휴업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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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큰 규모로 찜질방 시설이 건립되다 자금난 때문이었는지 음침한 모습으로 굳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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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로를 닮아서인지 아이는 연신 이곳이 위험해 보인다며 아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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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찜질방을 지나자 허리 굽은 늙은 빛을 있는 힘껏 반사하고 있는 치산 저수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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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한 가뭄에 저수지 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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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빠보다 더 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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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디바위”라 명명하고 친히 공식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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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사까지 찍고 아들은 ‘천원 미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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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의 기록 두번째 : 2017.06.18, 05:3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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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아침 잠이 없는 나는 홀로 숙소를 나서 수도사까지 한걸음에 올랐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수도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47년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와 원효대사 두 스님이 함께 금당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후에 원효대사께서 수도하셨다하여 ‘수도사’라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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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을 대신하여 속세인을 맞이하는 귀요미 돌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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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사 극락전은 동향이나, 산이 깊은 탓에 부처님 계신 자리까지 아침 해가 미처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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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앞 살포시 합장하고, 염불 중인 스님께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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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못보고 내려간 공산폭포를 향해 수도사를 나서 5분도 채 못가 만난 풍경. 이제 막 기지개를 편 숲을 엎은 나무의 분위기에 마음이 움직여 찍었으나 사진으로는 당시 느낌의 반의 반도 안 담겨있어 실망스러웠다. 사실 못 담았다는게 옳은 표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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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케킹이라는 별칭의 summicron 35mm 4세대와 일포드 hp5 필름의 궁합. 착란원이 어지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우개로 지우듯 뭉개지지도 않은 적당한 밸런스감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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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쪽 메마른 저수지와 달리 상류는 계곡 체면치레할 만큼의 물은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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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세월이 빚은 곡선은 언제보아도 아름답고 오래보아도 쉬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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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폭포, 팔공산 10경이라기엔 안쓰러운 수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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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관람대인 ‘망폭대’ 옆 돌탑. 망폭대를 거꾸로 읽으면 대폭망..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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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시를 넘기자 치산 저수지 아래 매점에도 볕이 든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더운 날이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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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ilford hp5 plus and summicron 35mm f/2 4th gen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