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있다.

중,고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늘 주위에 친구가 있었고 외로움을 느낀적이 없었다. 일본으로 옮겨온 후에도 누구보다 사교적이었다. 주말이면 일본애들과 목욕탕을 다녔고 형제 처럼 지낸 친구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위화감이 엄습해 왔다. 그 위화감은 바로 외로움 이었다는 사실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자각을 했다만…그래서 은둔형 외톨이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직업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끔 참여 하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그 자리가 부자연스럽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일부러 여행을 떠나지 않는것은 아마도 그런 일상 자체가 내게는 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Minolta TC-1 Review

Shut up and Press the shutter!

‘일단 셔터부터 눌러 봐.’

‘응? 무슨 소리…?’

‘눌러 일단. 응.’

그래서 그냥 눌러봤다. 와? 정말 찍으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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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계가 무척이나 정확해 어떤 필름을 사용해도 정확한 노출로 촬영이 가능하다. 게다가 5군 5매 렌즈의 결과물은 손톱만한 렌즈의 결과물이라 생각하기 어렵게 깔끔하고 좋다. 특이한 조리개 방식도 TC-1의 특징인데 원형 마스크 형태의 조리개가 조리개 수치를 바꿀때마다 변경되어 매 조리개마다 원형을 유지한다. 그리고 필름 감도는 6400까지 인식되며 ISO 변경의 자유로움이나 노출보정의 편리함도 있다. 여기에 MF도 가능하고 스팟 노출 측광까지 된다. 거기에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스트로보 까지.

그리고 결정적인 건 이런 기능이 손바닥에 충분히 올라오는 자그마한 사이즈에 모두 들어가 있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진 카메라가 어디를 가든 내 외투 주머니 속에 쏙, 내 가방의 한자리에 쏙 넣을 수 있다. 이 말인 즉, 그 어떤 편의 기능보다 촬영자가 부담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설 수 있게 하는 TC-1만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화이트와인이 생각나는 아름다운 금속 바디의 질감은 손에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싶지 않게 만드는 만족스런 촉감까지, 모든것을 다 갖춘 카메라라 말하고 싶다.

G-Rokkor 28mm f3.5

버블경제기의 막바지에 출시된 카메라 다운 걸출한 기능과 함께 렌즈의 성능이 단연 압권이다. 5군 5매 렌즈 구성에서 3매가 비구면 렌즈이다. 똑딱이라고 하긴 했는데, 성능을 보면 똑딱이가 맞나 싶다. 버블경제 속에서 미놀타의 잉여이익은 저 작은 부피 안에 기능을 넣기 위해 스러져 갔나보다. 너희들은 도대체 이 카메라에 무슨짓을 한거냐, 미놀타.

결과물을 보면 컬러나 흑백에서 단단한 컨트라스트를 보여준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컨트라스트라고 하기보단 단계 단계를 딱딱 짚어내고 넘어가는 그런 느낌이다. 덕분에 흑백이나 컬러 가리지 않고 상당히 선연한 느낌이 나며, 작은 사이즈의 렌즈 치고 중심부부터 주변부까지 골고루 우수한 묘사를 보면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 신경쓰며 만들어낸 렌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은은한 묘사라는 표현보다 똑부러지게 단단한 묘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렌즈다.

워낙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한정판으로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 용도 생산이 되었던 렌즈니 TC-1이 손에 들어왔다면 일단 믿고 사용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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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나는 여행길, 여행중 좀 편안하게 마음먹고 촬영할 카메라가 필요해 뭘 챙길까 생각하던 도중, 아주 짧은 고민을 끝내고 TC-1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별 고민없이 툭툭, 노출조건이 조금 애매하다 싶으면 노출보정만을 사용해 약간의 조작을 해줬다. 현상 후 확인한 결과물은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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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출장으로 몇번이나 찾았던 하노이 여서 그랬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진을 만들만한 카메라가 필요했다. 출장길이니 만큼 다른 짐들도 많아 짐을 크게 불리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던 도중 좋은 카메라를 한번 더 빌릴 수 있었고, TC-1은 네 번째 출장의 동행이 될 수 있었다. TC-1으로 담아냈던 흑백 사진들. 그 흑백사진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필름위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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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에 살지 않는 내게는, 서울에 나가는 일도 어떻게 보면 짧은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카메라 몇대를 들고 서울을 돌아다니며 촬영 하는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가볍게 카메라 하나에 의지에 사진을 찍고싶은 날도 있다. 그런날, TC-1은 내가 믿고 셔터를 누르게 만들어 주는 카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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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용 카메라의 미덕을 궁극적으로 실현한 카메라.

작은 크기, 최고의 화질, 궁극의 휴대성까지. TC-1을 챙기고 일단 셔터부터 누르자. 그러면 사진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여행자에게 있어 꼭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추려내 만든 카메라 Minolta TC-1, 올 봄 나들이에 함께해 보는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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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촬영 : Minolta TC-1 / G-Rokkor 28mm f3.5

경주. 2017. 08. Fujifilm Provia 100F

하노이. 2017. 11 ~ 2017. 12. Seagull400 (EI 800)

서울. 2017. 10 Kentmere100 (EI 200)

장비 대여 및 장비사진 : JSFamily ( http://wjs890204.tistory.com/ )

필름과 가족사진

사진을 찍은지 어느새 십여년이 지났다.
무슨 거창한 의식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때로는 스냅에, 다큐에 빠져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을 흉내내기도 했다.
사실은 그저 셔터를 누르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2. 윤서가 태어난 날

결혼을 하고 얼마 후 첫째 ‘윤서’가 태어났다.
그날 이후 내 사진의 가장 큰 주제는 가족으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윤서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남기자!’
수년간의 사진생활 중 이보다 더 가슴뛰는 동기는 없었다.

4.

5.

6.

그러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진집이 있었다.
전몽각 교수의 ‘윤미네 집’
아빠의 시선으로 딸의 성장을 기록하고
가족의 소중한 순간을 담음 가족 다큐멘터리다.

윤서가 태어나기전 봤더라면 별 감정이 들지 않았을 터인데
아빠가 되고나니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 후, 나의 블로그에도 ‘윤서네이야기’란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12. 2011_02_21_

윤서의 돌이 지나고 얼마 후 둘째 태경이가 태어났다.
윤서 혼자일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맞벌이와 연년생의 육아에 지쳐버린 나는
가족의 기록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카메라를 드는 일이 점차 줄었고 현상, 스캔 하는 시간은 사치였다.
사용빈도가 떨어져가던 필름 카메라를 결국에는 팔았다.

16. 1주말일상-쇼파딩굴

17. 2주말일상-마구잡이 뛰기

18. R0001507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디지털 카메라를 들였으나
편하다고 해서 사진을 자주 찍지 않게 된다는 것을 얼마지나지 않아 알게되었다.
오히려 손에 익지 않은 카메라를 탓하며 몇번의 바꿈질을 했고
나중에는 아이폰이 그 역할마저 차지했다.
그렇게 5~6년을 보내고 나니 남은것은 이미지 파일 뿐이었다.

20.

21. 201504_013_resize-

22. 201507_016_수정-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필름을 놓았던 시기에 남긴 디지털 이미지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폴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23. 201508_002untitled-

24. 201510_010untitled-

25. 201511_028untitled-

지금이라도 다시 필름을 시작하자.
음영이 반전되어 상이 맺혀있는 필름.
암실에서 뽑아낸 밀착과 인화물.
훗날 아이들에게 그것을 남겨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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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예전보다 필름 인프라가 더욱 열악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필름 카메라를 구입했다.
필름을 그만두던 그때,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Leica M7로 돌아온 것이다.
내 손에 가장 익숙한 카메라를 들고 나는 다시 우리 가족을 찍는다.

29. 2016-04-400tx_012_일상

30. 2016-04-400tx_035_일상

31. 2016-05-400tx_015_일상

이 글을 쓰면서 사진들을 살펴보니 태경이가 태어나고
몇년간의 사진이 참 적다는 걸 알았다.
그 당시 나의 여유가 부족했던 탓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셔터 한번 누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고 소흘히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32. 2016-05-400tx_022_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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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17-15_M4_SA21mmf3.4_400tx_일상_33untitled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가족의 일상을 필름으로 남기자!’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사진

요즘 관점에서 보면, 걷는다는 행위는 현대인과 무척이나 동떨어진 원시적 행위가 된 듯하다. 속도와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는 걷는 것 자체를 고생스럽고 가능한 한 피해야 할 낭비적 행위로 규정한다. 어찌하면 덜 걸을까를 고민하고 부득이하게 주차를 좀 멀리해서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면 이내 짜증부터 내고 만다. 과거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걸음 수는 3만 보였던 반해 최근에는 5천 보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종사자와 학생들은 하루에 고작 5백보 정도 걷는다고 하니 건강을 위해 권고되는 하루 만보 걷기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닌 듯 하다.

주지하고 있다시피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 덕에 문명을 구축하고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네 발에 고루 분산하던 몸무게를 두 발로만 버텨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나,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척추를 바로 세우고 뒷발의 구조를 변형함으로써 중력을 이겨내고 이족보행을 실현할 수 있었다. 아울러 두 발로 걷는 행위는 네 발로 걷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이동방법이다. 예컨대 네 발로 걷는 동물은 기본적으로 네 발 중 두 발은 항상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어야 하고 전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지면을 밀어주어야 하는데 반해 두 발로 걷는 우리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무게중심을 이동함과 동시에 넘어질 듯 발을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네 발 동물에 비해 적다.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것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과 함께 지구력과 직결된다. 이러한 지구력은 인간이 수렵생활을 할 때 가졌던 차별화된 강점으로 작용하였다. 창이나 화살로 쉬이 잡을 수 없는 사나운 동물이라 할 지라도 목표물이 지칠 때까지 꾸준히 뒤를 따르면 결국엔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으로 득템한 이족보행 능력으로 도구의 사용과 더불어 두뇌를 점차 대용량으로 발달시킬 수 있었고, 결국 현생인류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걷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천대받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100만년 이상 자못 영웅적이었던 두 발에게 지못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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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현생인류보다 꽤나 원시적이라 할 수 있다. 평일에는 하루 만보에서 만 오천보, 주말이면 이만에서 삼만보까지 걷는다. 주말 아침, 2시간 정도 사진 찍고 오면 손목 만보계는 식전부터 8000보를 가리킨다.

튼튼한 두 다리는 내가 가진 최고의 사진장비이자 조력자임에 틀림없다. 지구 중력을 한발 두발 부드럽게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이따금 마음 가는 객체를 카메라에 채집하고 있노라면 도끼 썩는 줄 모르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만다.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원시인류가 했던 수렵/채집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카메라를 메고 이미지를 채집하는 일은 분명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호모 에렉투스의 삶의 흔적과 공명하는 것이리라. 이처럼 걷기와 사진의 조합은 현대인이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원시체험이자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수렵/채집에 의한 보상적 즐거움을 발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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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어느 주말, 가족과 단란하게 영천 치산계곡에 하루 묵으며 놀다 올 요량으로 짐을 꾸렸다. 우리 가족 모두 귀차니스트인 터라 텐트치고 코펠 따위로 요리하는 것은 극구 싫어하지만, 치산계곡에는 시에서 마련한 ‘카라반’ 캠핑장이 있기에 그리 많은 짐이 필요치 않다. 심지어 우리는 누구나 캠핑장에서 해야만 하는 ‘숯불피워 고기굽기’ 마저 게으름의 가치 아래 하지 않았다. 그저 간편하게 부대찌개랑 밥 지어 먹고는 후다닥 정리 끝. (그날 수십 개의 카라반 중 고기 굽지 않은 집은 우리 집 뿐인듯)

캠핑장의 시계가 빠른가 보다. 어느새 5시. 산이 깊은 곳이라 평지와 달리 석양이 지는듯 빛이 부드럽다. 해가 더 떨어져 어두워지기 전에 아들내미와 계곡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수도사까지걸어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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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의 기록 첫번째 : 2017.06.17, 17:30~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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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운동화 끈을 여며주고서 팔공산 산자락을 따라 난 길을 자박자박 걸었다. 나와 달리 지엄마 닮아 걷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라 나는 상금을 걸 수 밖에 없었다.

“목표지점까지 손잡고 잘 걸으면 천원!”

“콜”

아직 이게 먹히는 걸 보니 아직 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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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유난한 가뭄에 계곡물이 귀한 터라 예년 같으면 한 시즌 재미졌을 포장마차도 휴업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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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큰 규모로 찜질방 시설이 건립되다 자금난 때문이었는지 음침한 모습으로 굳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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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원자로를 닮아서인지 아이는 연신 이곳이 위험해 보인다며 아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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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찜질방을 지나자 허리 굽은 늙은 빛을 있는 힘껏 반사하고 있는 치산 저수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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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한 가뭄에 저수지 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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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빠보다 더 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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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디바위”라 명명하고 친히 공식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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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사까지 찍고 아들은 ‘천원 미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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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의 기록 두번째 : 2017.06.18, 05:3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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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아침 잠이 없는 나는 홀로 숙소를 나서 수도사까지 한걸음에 올랐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수도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47년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와 원효대사 두 스님이 함께 금당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후에 원효대사께서 수도하셨다하여 ‘수도사’라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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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을 대신하여 속세인을 맞이하는 귀요미 돌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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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사 극락전은 동향이나, 산이 깊은 탓에 부처님 계신 자리까지 아침 해가 미처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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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앞 살포시 합장하고, 염불 중인 스님께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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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못보고 내려간 공산폭포를 향해 수도사를 나서 5분도 채 못가 만난 풍경. 이제 막 기지개를 편 숲을 엎은 나무의 분위기에 마음이 움직여 찍었으나 사진으로는 당시 느낌의 반의 반도 안 담겨있어 실망스러웠다. 사실 못 담았다는게 옳은 표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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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케킹이라는 별칭의 summicron 35mm 4세대와 일포드 hp5 필름의 궁합. 착란원이 어지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우개로 지우듯 뭉개지지도 않은 적당한 밸런스감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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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쪽 메마른 저수지와 달리 상류는 계곡 체면치레할 만큼의 물은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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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세월이 빚은 곡선은 언제보아도 아름답고 오래보아도 쉬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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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폭포, 팔공산 10경이라기엔 안쓰러운 수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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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관람대인 ‘망폭대’ 옆 돌탑. 망폭대를 거꾸로 읽으면 대폭망..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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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시를 넘기자 치산 저수지 아래 매점에도 볕이 든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더운 날이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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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aken with leica m6, ilford hp5 plus and summicron 35mm f/2 4th generation 

 

발로찍은부산

청접장이 도착했다. 어릴적 고무신 신고 개울서 같이 뛰놀던 녀석의 늦은 결혼이다. 식은 주말에 멀지않은 부산! 대충 축의금만 보내고 말일은 아니기에 아내에게 하루 갔다와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내는 이왕 내려가는거 부산 한바퀴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그리 하란다. 우왕 성은이가 무지망극이다.

아내의 승인도 떨어졌겠다 본격적으로 지인찬스와 인터넷 검색 등으로 부산에 가볼만한 곳 몇 군데를 후보로 올리고, 도보여행인 점을 감안하여 이동거리가 짧은 코스로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자갈치시장 – 보수동(책방골목) – 국제시장”

죽도시장에 대한 애착이 다른 도시의 어판장으로도 이어지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자갈치는 꼭 가고 싶었다. 최대한 일찍 가서 운이 좋으면 경매현장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부산여행 관련 블로그에서 이미 익숙해져버린 보수동 책방골목과 군것질로 허기도 채울 겸 먹자골목이 유명한 국제시장을 코스에 끼워넣었다. 대충 장소도 정해진 만큼 이젠 장비를 고민할 차례였으나, 한창 필름찍는 재미에 빠져있는 나에겐 필름바디에 35미리 초점거리의 렌즈 하나 그리고 일포드 HP5+ 흑백필름 서너롤이면 차고넘쳤다.

이렇게 저렇게 친구의 결혼식 날이 밝았고, 이른 아침 터미널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노포동에 떨어진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남포역에 당도했다. 구멍을 빠져나오니 하늘에 구름이 빼곡하다. 야외에서 수동카메라 쓰기엔 참 좋은 날씨다. 카메라 셔터속도 다이얼과 렌즈의 조리개링을 적당한 값에 세팅하고 영도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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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스무걸음 남짓 걸었나? 약재상을 하시는 할머니와 강아지를 만났다. 잠시 물건가지러 가시는 할머니와 놀아달라고 조르는 강아지의 실랑이를 첫 컷에 담았다. 뭔가 재밌는 순간을 잡아낸 듯 했으나 필름카메라기에 당장 확인할 길이 없다. 디지털이었으면 재생버튼 눌러 그 자리에서 확인했겠건만.. 스냅 결과물에 대한 궁금증이 잠시 일었으나 어찌할 도리 없이 영도다리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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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대교를 건너지 않고, 반세기 전 점집들이 성황을 이루던 다리 옆 좁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익숙한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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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평일 같았으면 분주했을 어판장 옆 해산물 창고도 한가한 일요일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잉? 잠깐만..혹시 어판장도 한가한가? 아니나 다를까 서둘러 도착한 자갈치 어판장은 고요했다. 아뿔싸! 내심 기대했던 경매풍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하릴없이 노점 몇 개를 지나 탁 트인 바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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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과연 부산하면 갈매기 갈매기 하면 부산이로구나. 포항보다 백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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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바다를 품은 사내는 버거운 일상의 의연함을 잠시 내려놓고 센티멘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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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주변을 돌며 게으른 시장의 일요일 풍경을 필름 몇 컷에 구겨넣은 후 국제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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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텍스트는 강력하다. 이미지와 형태 따위보다 수만배 힘이 있다. 우리 안구는 자동인식기능이 탑재된 양 흘러넘치는 텍스트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조목조목 색인한다. 그리고 나와 1이라도 관계된 것들은 연결점을 생성하여 붙잡아두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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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도착한 광복동 젊음의 거리는 간밤의 술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고약한 풍경이었다.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에 혀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40줄 어엿한 아재임을 셀프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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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보수동 책방골목. 흘러가며 몇 컷 찍고 금세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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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간격으로 재밌는 순간을 발견했던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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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흥미 없었던 보수동 책골목에서 보다 외려 여기서만 족히 20분 가량 머물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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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삼거리 코너를 돌아 가파른 언덕을 지긋이 밟으며 올랐다. 숨이 가빠질 무렵 용두산공원 부산타워를 품은 옛 부산의 아기자기한 풍광을 만났다. 그래 바로 이게 부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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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언덕을 내려와 국제시장 먹자골목으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에 지하철 그리고 바지런히 걸었던 탓에 꽤나 허기가 진다. 뜨끈한 오뎅국물도 좋고, 내 평생 페이보릿 떡볶이도 무지 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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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이리저리 재지않고 적당한 식당을 골라 곧장 들어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음식 나올때가지 가게 안을 살폈는데,  개업할 때 시집와 가게의 역사를 묵묵하게 목도하고 있는 벽시계와 오래된 등유난로 그리고 좁은 가게 안에서 긴 시간동안 최적화된 테이블과 조리도구들의 배치까지.. 모든 것에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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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이제 친구의 결혼식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이곳에 도착했던 남포역으로 되돌아가는 길에서 우연히 용두산공원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손목시계는 시간이 빠듯하다고 아우성이었으나 언제 또 이곳에 오겠나 싶어 다녀와보기로 했다. 용두산은 실제 해발 49m로 높지 않은데다 광복동 방향에서 손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부담은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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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도중 용두산 어깨치에 마련된 야외 체육시설이 흥미롭다. 어르신들 모두 기구 하나씩 맡아서 각자의 운동에 열중하고 계신다. 20년 뒤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사진은 계속 찍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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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용두산공원을 마지막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오전 내내 부지런히 걸었던 탓에 딱딱한 철제의자임에도 꽤나 아늑하다. 노곤함을 친구삼아 목적지까지 꾸벅꾸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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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친구야. 결혼 축하한다.

역사가 있는 풍경 – 금척리 고분군

빛이 좋은 오후다.

간만에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어 하늘이 청명하다. 낮은 해가 만들어주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세상에 입체감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사진가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황금 시간대, 이대로 사무실에 쳐박혀 있을 수는 없겠다. 단촐한 카메라 하나를 달랑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밥은 안먹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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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차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 금척리. 경주와 건천을 동서로 잇는 도로 양편에 38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한 곳이다. 금척이란 금으로 만든 자를 말하는데 이 곳에 금척이 묻힌 무덤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금척리다. 금척리 고분군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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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라에 금자를 왕에게 바친 사람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라도 이 금자로 한번 재면 다시 살아나고, 무슨 병이라도 금자로 한번 쓰다듬으면 그 자리에서 낫는다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왕은 이 금자를 국보로 여겨 매우 깊숙한 곳에 두었다. 이런 소문이 당나라에 전해지자 당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금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왕은 국보에 해당하는 금자를 달라고 하는 무뢰한 당나라 사신에게 순순히 금자를 내줄 수가 없었다. 곧 신하에게 명하여 토분을 만들고 그 속에 금자를 파묻었으며 주변에 다른 토분을 만들어 어느 곳에 금자를 묻었는지 알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당나라 사신은 그 많은 토분을 헤치고 금자를 찾아낼 기력이 없었던 듯 물러나고 말았다. 왕의 지략으로 금자를 당나라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나, 이후 어느 토분에 금자가 묻혔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척리 고분군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초판 1994., 개정판 23쇄 2012.,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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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2 LeicaIIIa Canon28mm HP5 10-1

금척리로 가는 길. 오후 5시가 넘자 인근 농공단지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띄엄띄엄 퇴근해서 오고 있었다. 평소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이 곳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낯선 이를 홀깃 쳐다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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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2 LeicaIIIa Canon28mm HP5 14-1

금척리 고분군은 도로를 따라 좌우로 나뉘어 있는데(정확히는 도로가 신라의 국립묘지를 감히 가로질러 난 셈) 북쪽보다 남쪽에 더 많은 고분들이 산재되어 있다. 1951년 도로 확장 공사당시 파괴된 상태의 고분 2기를 급한대로 발굴 조사를 했고 금귀고리와 곡옥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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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2 LeicaIIIa Canon28mm HP5 24-1

51년의 조사에 이어 76년에도 밭 사이에서 소고분들이 발견되어 발굴이 이루어졌고 81년에도 민가 보수 중 발견된 파괴된 소고분들을 발굴한 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금척리 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대규모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 알려진 부분은 많지 않다. 비교적 도굴이 힘든 돌무지덧널무덤이긴 하다만 유물들이 멀쩡히 잘 남아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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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2 LeicaIIIa Canon28mm HP5 20-1

공원으로 깔끔히 조성된 대릉원 쪽과 달리 금척리 고분군은 주변 정리 정도만 해둔 상태로 유지되고 있어 태고의 신비와 같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신라 고분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외국인이 이 사진을 본다면 아주 특이한 지형을 찍은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 같다. 얼핏 제주의 오름을 찍은 것 처럼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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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같은 대릉원 쪽 고분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오늘날 고만고만한 촌동네에 불과한 이 곳에 당시에는 어떤 강성한 세력이 자리했었기에 이토록 많은 고분들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문헌 자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계로 인해 풀리지 않는 비밀은 너무나 많은데 신라 지배층의 정체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금 부장품이 유독 많고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일대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무덤의 형식으로 인해 4-5세기 신라의 지배층은 스키타이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계가 한반도까지 남하한 무리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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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2 LeicaIIIa Canon28mm HP5 26-1

이 일대가 정비되기 전에는 분명 무너져내린 봉토 사이사이에 민가와 밭들이 들어차 있고 겨울이면 동네 꼬마들이 고분 위에서 눈썰매를 타곤 했겠지만(아마 지금도?) 지금은 중간중간 멋지게 서있는 나무들 말고는 넓은 풀밭으로 정리되어 있다. 고도제한으로 인해 높은 건물이 적은 경주이긴 하지만 경주의 서쪽 변경 건천에서 만나는 넓은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제법 시원하게 뚫어준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씨라면 더할 나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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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모를 고분에 세들어 살고 있는 묘도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곳에 제단석까지 놓인 묘가 쓰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적 지정 전부터 있던 묘라면 이해가 간다. 천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겠지만 같은 공간을 나눠쓰며 또 천년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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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셨다. 늘상 듣게 되는 ‘뭐 찍는교? 어디서 나왔는교?’ 따위의 질문을 예상했으나 잠시 쳐다보시곤 갈 길을 가셨다. 자전거 바퀴가 구르기도 힘든 풀밭에 왜 들어오셨나 했더니 바로 옆 대밭에서 가는 대나무 몇 그루를 잘라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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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를 다닌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이 곳을 카메라에 담다니. 역시 가까운 곳은 언제나 홀대하기 마련인가. 해가 짧아지면 5시부터인 저녁시간에 나와서 이 곳을 찍기도 버거워 질테니 틈나는 대로 소소하게 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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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경주

Leica IIIa / Canon 28mm f2.8 LTM / Ilford HP5+ 400 / IVED

심도깊은사진에관한심도얕은이야기

사진을 처음 배우면 노출의 3요소인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의 삼각관계를 공부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서 등가노출일지라도 이들간 조합에 따라 촬영자가 의도하는 시각적 효과를 부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예컨대 느린 셔터스피드는 정적 사진에 운동감을 부여할 수 있으며, 조리개를 열면 아웃포커스(out of focus)로 배경으로부터 피사체를 분리하거나 몽환적 사진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적 표현기법 중 특히 얕은 심도를 활용한 사진은 분명 육안으로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과는 다른 특별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준다. ‘사진은 뺄셈’이라는 말마따나 프레임 안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가 좋은 사진의 기준 중 하나임을 생각해본다면 아웃포커스 효과는 주 피사체를 제외한 관심 외의 풍경들을 지워주니 갑자기 사진 실력이 향상된 듯한 착각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진을 막 시작한 초심자들의 경우 모든 사진을 극히 얕은 심도로 찍으려는 경향(나 역시 그랬다)을 보이곤 하는데, 사실 아웃포커스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카메라와 렌즈의 기계적, 광학적 특성을 이용해 촬영자의 의도를 표현하게끔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시의적절하게 활용하지 않고 남발한다면 결국 장비가 만들어주는 일률적인 이미지일 뿐 촬영자 만의 독특한 시각적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조리개를 한껏 조여볼 차례인데, 처음 깊은 심도의 사진을 촬영해보면 생각만큼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카메라(디지털이 가지는 무한한 시도가능성에도)임에도 똑딱이 혹은 핸드폰카메라로 사진이라는 취미에 입문하기 쉽지 않은 부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핸드폰카메라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의 센서가 생산하는 사진들은 속칭 풀프레임이라 일컬어지는 DLSR 비해 깊은 심도를 가지게 마련이고, 이는 곧 얕은 심도에 의한 프레임 안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진적 덜어냄을 실현하기 위하여 프레임워크, 화면의 정리정돈과 배치, 피사체와의 거리 혹은 하염없는 기다림 등 다른 옵션과 방도들을 모색해야만 하고, 실제 이러한 방법들은 터득하기까지는 다소 지루한 연습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심도 깊은(팬포커스) 사진에 끌리는 이유는 바로 선배들의 눈물나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심도 깊은 사진들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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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1
Josef Koudelka, Ireland,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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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2
임응식, 서울,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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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3
Henri Cartier-Bresson, Spain,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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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4
Constantine Manos, Crete,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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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5
Dimitri Baltermants, Crimea,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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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6
Henri Cartier-Bresson, Italy,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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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7
Henri Cartier-Bresson, Tokyo,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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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8
Jean Gaumy, Iran,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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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9
Jean Gaumy, France,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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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10
Alex Webb, West Texas,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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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 깊은 사진은 원경이든 근경이든 모두 선명하게 찍히기 때문에 냉혹한 느낌을 주는 시각적 특성을 갖는다. 아울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있는 빠짐없이 기계적으로 기록하기에 정서나 감정을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소위 ‘감성사진’이라는 것이 극히 얕은 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진 류들을 말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깊은 심도의 사진은 전체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객관적인 사실 자체를 중시하는 시각이며 어느 것 하나도 빠짐없이 현실에 근거한 냉엄한 시각이므로 철두철미하게 대상을 관찰하는 리얼리즘의 성격을 띄고 있다. 우리 인생이 TV 속에 비치는 호수의 반영과 같은 허상이 아닌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실전인 까닭에 팬 포커스는 우리네 삶을 기록하고 서로 공감하기 위한 미디엄으로서의 사진을 기술적으로 가장 잘 지지해주는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촬영현장에서의 심도 깊은 사진은 다루기 어려운 ‘양날의 검’과도 같다. 특히 거리에 서서 조리개를 조이게 되면 매뉴얼포커스로도 캐논이나 니콘의 기함급 DSLR의 오토포커스를 능가하는 섬광 같은 촬영이 가능한 반면, 프레임 내 객체간 관계설정과 균형, 서사구조 또는 미학적 중심과 이를 적절한 텐션으로 지지하는 주변부를 사진가가 창조주의 관점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사진은 이내 어수선하고 흡인력 없는 이미지로 전락하고 만다. 사실 촬영자가 렌즈 앞의 풍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연출 사진이 아닌 다음에야 사진적 행위는 창조주의 위치에 결코 설 수 없는 운명이다. 그저 관찰자 혹은 발견자에 머물 뿐이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겐 5cm만 옆으로 이동해도 확연히 다른 사진을 만들 수 있으며, 5초만 기다려도 차원이 다른 순간을 잡을 수 있는 ‘창조의 권능’에 버금가는 ‘선택의 권능’이 주어져 있으니 말이다. 가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내가 비록 다른 이에게 심도 깊은 사진에 대해 심도 깊게 이야기 할 깜냥이 안된다하더라도 나 자신은 심도 깊은 사진을 오래도록 애정하려 한다. 왜냐면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현재 나의 대답이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피사체 하나하나가 모두 빛을 발하는 그래서 사소한 단 하나의 객체라도 소외되거나 희생되지 않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잘라낸 프레임 안의 모든 객체는 서로 연결되어 총체적 밸런스를 이루는 상태가 되어야 하고 이것은 깊은 심도의 사진에서 보다 쉽게 달성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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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TX, 안강,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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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TX, 죽도시장,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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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TX, 포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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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송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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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포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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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TX, 포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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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송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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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TX, 대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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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자갈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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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남포동,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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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부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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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포항,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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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동빈내항,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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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죽도시장,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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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죽도시장,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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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5+, 송도, 2017

 

소제동

작년 11월 말 즈음으로 기억한다. 친구의 SNS에 올라 온 골목사진들이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느긋한 오후의 햇살을 끌어안은 골목길을 담은 사진 한장 그 자체로 포근한 느낌이었다. 방범을 위해 담 위에 꽂아둔 뾰족한 각양각색의 유리조각들은 유년기를 보낸 시골의 기억을 고스란히 환기시켰고, 이내 사진이 찍힌 장소가 궁금해졌다.

타임라인에 이어 올라온 글을 통해 여기가 소제동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운이 좋게도 친구의 감상까지 접할 수 있었다. 짧은 글이니 전문을 인용한다.

“소제동”

대전의 중심이자 상징이 어디냐고 꼽는다면 단연 대전역을 꼽고 싶다. 대전역은 대전의 현재 뿐 아니라 과거까지 품고있다.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주말의 대전역 지척, 철길 바로 옆에는 소제동이라는 사람들에겐 낯선 작은 동네가 있다. 소제동에는 일제시대 철도관사촌이 남아있다. 육이오 전쟁시 폭격에도 살아남은 관사가 아직 남아있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

소제동 산책, 촬영을 마치고 교육장소로 소제동을 빠져나오는데 철도관사촌과는 좀 떨어진 곳의 이곳도 소제동이었다. 어르신 두 분이 대화 중이셨다. 먼저 인사를 건냈더니, 카메라를 멘 내가 혹시 시청이나 관공서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셨단다. 또 종종 사진기 들고 아주머니들이 이곳에 온다고도 한다. 20년, 아니 거의 30년 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왔지만 아직은 명확한 계획이 없다.

그대로 흘러가다 마을을 더욱 쇠락해져만 간다. 재개발 얘기가 없다면 집을 가꾸고 최소한의 마을이 유지될텐데 그 재개발때문에 여기저기 빈집 투성이이다. 많은 빈집들은 서울 등 타지사람들의 소유라고 한다. 이곳서 50년을 살아오신, 그리고 40년을 살아오신 어르신들께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못해 아쉽고. 현재가 중요하지 왜 옛날 풍경은 찍냐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재개발이라는 미래가 오히려 마을의 자연스런(?) 변화를 가로막아 마치 박물관처럼 옛 모습을 보존케 했다는 역설적 사실… 어르신들은 10년도 전에 받았다던 동네 지도를 보며 빠른 개발을 두런두런 천천히 얘기 나누셨다.

©김상호 (페이스북: http://goo.gl/L9xSda)

 

대전?

다행히 대전엔 출장 갈 일이 종종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접점이니 전국 단위의 세미나를 하기엔 지리적으로 안성맞춤인 이유일 것이다. 맘 먹는다고 당장 대전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으나 갈 일이 생긴다면 꼭 한번 가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운 좋게 오래지 않아 대전으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서류가방 한 켠에 카메라를 슬쩍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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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 대전역 플랫폼에 마중나온 겨울 바람은 포항의 그것보다 확연히 차다. 출장길 목적한 바 일정을 완수하고서 오후 4시경 소제동으로 발길을 향했다. 대전역 동광장으로 걸어나와 역 주차장을 끼고 좌회전. 네이버 지도에 마킹된 소제동 위치와 내 위치를 번갈아 확인하며 계속 나아갔다. 10여 미터 앞서가는 아저씨도 같은 방향 같아보여 따라 걷는데, 갑자기 이 아저씨가 좁은 골목으로 쑤욱 빨려든다.

게을러 터진 내 직감이 이 날 작동한 것일까?
호기심에 얼른 나도 좁은 틈으로 들어섰다. 일방통행만 허용하는 무뚝뚝한 좁은 길에 원색으로 채색된 벽화를 따라 그 아저씨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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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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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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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누르고서 비좁은 골목에 행여 맞은 편 행인이 들어올까 서둘러 안쪽으로 접어드니 방금 그 아저씨는 온데간데 없고, 다소 내밀한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생경한 풍경에 나는 마치 앨리스의 토끼를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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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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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슈퍼를 지나 소제동 골목을 좀 더 탐색해보기로 했다. 이곳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집인 듯 했고, 군데군데 무너진 담벼락과 깨진 계단은 수십년 간 재개발의 덫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풍경은 우유부단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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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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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좁은길이 익숙해질 무렵 골목의 끝에서 만난 건물은 프랭크 게리의 기상천외한 매스 배치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서너 채의 건물이 담쟁이 넝쿨처럼 가파른 경사지를 타고오르며 지어져 있고, 기댄 자리의 각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건물의 방향도 제 각각 결정된 듯 보였다. 짧지 않은 세월 하나의 덩어리로 온기를 주고받으며 지냈을 터인데, 어떠한 이야기가 있는건진 모르겠으나 지금은 부분적으로 철거된 후 마감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다소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변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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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이 소제동의 경계지점인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앨리스의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양슈퍼 가까이 도착하니 골목 안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세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데 내심 얼마나 반갑던지.. 처음의 생경한 풍경은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익숙한 풍경이 되어 있었고, 그 익숙함을 근거로 나는 셔터를 한번 더 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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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슈퍼 맞은편 좀 더 비좁은 골목에 도전할 차례다. 미지의 통로로 스무걸음이나 걸었을까? 이런 막다른 골목이다.  아니 아니다. 일견 막힌 길이었으나, 왼쪽으로 그늘 진 곳으로 좁은 길이 끊어질 듯 아슬하게 이어져 있다. 이에 안도하며 잠시나마 가슴 졸이게 했던 괘념한 벽을 쳐다본다. 문득 벽의 크랙 하나가 해방의 몸짓으로 날카롭게 갈라진 것이 가슴 한 구석을 쿡쿡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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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의 담은 대체로 낮다. 행인의 눈 높이로도 본의 아니게 담 너머 풍경이 불쑥 찾아든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엔 어깨를 한 쪽씩 양보해야 할 만큼 비좁은 골목길에 만약 담까지 높았다면, 아마도 이곳은 적막한 수용소의 이동통로를 연상케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담을 낮게 잡아 비록 좁더라도 답답하지는 않도록 골목이 동네 풍광을 배려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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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담, 낮은 지붕 그리고 지붕 너머 신묘한 몸짓으로 춤추는 무당집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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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담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드디어 친구의 시선을 멈추게 했던 유리조각 꽂힌 담을 발견했다. 나를 소제동으로 이끈 “바로 그 풍경”이다. 이 풍경을 어찌 갈무리할까 잠시 고민하다 까슬한 질감의 벽면을 존쓰리로 잡고, 베일듯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그 곁을 아슬하게 지나는 전선을 잘 정돈하여 셔터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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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골목사진을 크게 즐기는 류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진 핑계로 옛 향수 머금은 골목을 걸을 때면 내심 오래도록 보존되었음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우리 동네 골목길을 김기찬선생님의 사진집에서만 감상하게 되는 건 싫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소제동 골목길은 어린 시절 내가 뛰어 놀던 그 골목이 아니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죄수 마냥 점차 쇠락하여 을씨년스런 풍경으로 변해가는 이 곳은 불안함과 미안함, 연민과 안타까움 외 다른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크지 않았고, 결국 두 시간 남짓 소제동의 시간은 친구의 SNS에서 보았던 온기 어린 풍경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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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적 행위가 결국 연속된 시간과 공간을 촬영자의 (의식하든 그렇지않든) 의도에 따라 재단(프레임)하고 박제(촬영)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는 이 곳의 그늘진 모습을 강화시킨 것이고 내 친구는 이와 반대였던 것이다. 친구는 과연 어떤 인상과 과정으로 소제동을 만나고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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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커피 한잔하자고 불러야겠다.

 

 

 

New year watching

인간은 많은 것을 발명했다.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은 그 중 시간의 발명이야 말로 문화심리학적으로 바퀴의 발명만큼이나 위대하다고 말한다. 일찍이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임으로써 누구도 시간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도무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음은 끊임없는 존재의 불안을 야기했기에 인간은 비록 시간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측정함으로써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과 함께 근원적 불안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시계를 발명하였고 시간은 이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되었다. 하루, 한달, 그리고 일년이라는 단위를 정해둠으로써 시간이 일직선으로 막연히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닌 반복되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심리적인 회복 가능성을 부여하였다. 사실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고안한 달력에서는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 해가 주어지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싱싱한 기회를 획득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연말연시가 되면 그렇게들 설레는가 보다. 지난 잘못은 덮어두고 새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새해가 뜬지 어느새 2개월이나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개월, 설레는 새해를 보며 다짐했던 것들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후회스러운 일상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지는 않나.
개학을 맞은 3월 초에 즈음하여 정유년 새해맞이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

2017년 1월 1일 새벽, 나는 왕룡사로 차를 몰았다. 왕룡사는 경주와 포항 접경에 위치한 해발 250미터 남짓의 형산(兄山) 어깨 치에 자리하고 있는데, 포항 시내를 조망하며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 몇 해전부터 일출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게다가 자비로운 미소 머금은 풍채 좋으신 갓부처를 모시고 있어 일출도 보고 소망하는 바 기도까지 올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곳이다.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5시 반, 너무 일찍 왔나보다. 해가 뜨려면 아직 1시간 남짓 남은 셈이다. 편의점에서 온장고 캔 커피라도 하나 사올 걸 하는 후회가 곧잘 들었으나, 고작 그거 하나 사러 산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일. 하릴없이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슬슬 동쪽 산등성이 너머로 옅은 빛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챙겨 차에서 내리니 목으로 선뜩한 찬 기운이 엄습한다. 얼른 옷깃을 당겨 여미고서 잰 걸음으로 전망대로 향했다.

부처를 향해 가족들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아주머니, 좀 더 높은 지대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뜨는 해를 보려 바위를 타고 수풀을 헤치는 아저씨, 졸린 눈 비비며 엄마아빠 따라 나온 아이들.. 사람들은 해가 뜨는 방향으로 저마다 최적의 포지셔닝을 하고 있었다.

 

순간 누군가 외친다.

“어…저기 저기…해 뜬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들 일제히 핸드폰을 치켜든다. 불과 몇 해 전만해도 일출맞이에는 똑딱이나 DSLR이 많았는데, 바야흐로 이젠 스마트폰이 대세다.

“찰칵, 찰칵”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화면 속으로 갈무리하는 새해는 저마다의 용도로 수집되거나 공유될 것이다. 구룡포 방향에서 뜨는 해는 어느덧 한 뼘 넘게 불쑥 올라와버렸다. 순식간이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무대를 뒤로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절정의 순간은 그렇게 짧다.
분주히 셔터를 끊으며 잠시 잊었던 겨울바람이 새삼 시리게 느껴진다. 옷깃을 당기며 일상의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 주차해 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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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청계천

2003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학군단 2년차 하계훈련 때문에 성남 문무대에 들어와있던 나는 몹시도 애간장이 타고 있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청계고가가 철거될 예정이었고 그 날짜가 하필이면 하계훈련 기간과 겹쳐 버린 것이다. 훈련 들어오기 전부터 청계천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오던 중이긴 했지만 정작 청계고가 철거 장면은 찍지 못하고 ‘쓸데없는’ 공수훈련이나 받으며 몸이 묶여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국방일보에 한토막씩 실려 있던 기사를 읽으며 빨리 4주가 지나기만을 빌었다.

나름 빡쎘던 고된 훈련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자 마자 카메라를 들고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청계고가는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상태였다. 청계 8가 일대를 오가며 카메라를 겨누어 봤지만 공사장 칸막이에 가려 밑에서는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했다. 청계고가 좌우를 따라 서 있던 삼일아파트로 들어섰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대표되듯, 날림으로 지어졌던 경우가 많은 당시 시민아파트들 대부분은 이미 안전등급 E등급의 붕괴 위험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청계천의 삼일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청계천 복원 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삼일아파트 역시 철거될 수순이었고 이미 사람이 떠난 빈집이 많아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아파트라 믿을 수 없을만큼 을씨년하고 음산했다.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 괜시리 무섭기도 했지만 어쨌든 옥상으로 가야했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개방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올라갔다.

옥상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니 할아버지 한 분이 공사 현장을 내려다 보며 구경하고 계셨다. 카메라를 들고 불쑥 나타난 젊은 녀석이 불편하실만도 한데, 다가가 인사를 드리니 그리 놀라는 기색도 없으시다. 삼일아파트에 사시느냐 여쭈었더니 그렇다며 고향인 전주를 떠나 서울에 와서 정착했고 이 곳 삼일아파트에서는 30년을 사셨다고 하셨다.

30년을 살아온 집이 철거되는데 서운하지 않으시냐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의외였다. 삼일 아파트가 철거되도 갈 곳이 정해져 있다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셨다.  하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좌우의 혼돈과 동족간의 전쟁, 초고속 경제 성장과 가치관의 급변, 군사독재와 민주화까지… 백여년에 걸쳐 일어날 일들이 몇십년 동안 압축해서 이루어진 격변의 현대사를 겪어오신 산 증인이실 터인데 그깟 고가도로와 낡은 아파트의 사라짐이 무어 그리 대수일까. 어설픈 감상에 젖어 드라마틱한 이야기라도 들어볼까 유도 질문을 던져본 내가 부끄러웠다.

‘할아버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할아버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시곤 청계천을 무심히 내려다 보셨다.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몇 컷 찍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셔 좋았다.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는 이가 많이 빠지셔 발음이 불분명했다. 하시는 말씀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제법 긴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음료수 하나 드리지 못한게 죄송스러 주머니에 있던 담배 한 갑을 내밀었다. 친구 녀석이 여자친구에게 걸리면 안된다며 한보루 채 내 자취방에 보관을 의뢰한 말보로 라이트였다. 양담배라 괜히 눈치가 보였지만 할아버지는 사양치 않고 받으셨다. 건강히 지내시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내게 할아버지는 엷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셨다.

학교로 돌아와 현상을 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더이상 청계천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로서는 이 정도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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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3. 서울

Nikon F3HP / ai-s 28mm f2.8 / Kodak TMX / Coolscan I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