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Edwynn Houk Gallery

1977년 개관한 Edwynn Houk 갤러리는 오래된 역사만큼 200회가 넘는 다수의 전시 및 사진집 출판을 통해 작품들을 소개해 오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는 특히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빈티지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브라사이(Brassaï), 빌 브란트(Bill Brandt),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등 쟁쟁한 거장들의 작품을 독점으로 대표하여 왔다. 거기에 더해 1989년 샐리 만(Sally Mann)의 작품을 담당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닉 브란트(Nick Brandt), 모나 쿤(Mona Kuhn) 등 일군의 컨템퍼러리 사진가들도 대표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5번가, 그중에서도 센트럴 파크에 인접한 745번지 빌딩 4층에 위치한 Edwynn Houk 갤러리는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널찍한 로비와 사무 공간, 그리고 이어지는 전시홀은 단순히 넓이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서 풍겨 나오는 고급스러움이 절로 우와 소리가 나게 했다. 입구와 연결된 로비에 소파가 놓여 있고, 전시 자료가 놓인 왼쪽의 길쭉한 데스크 뒤쪽으로 직원들의 사무실이 있다. 로비에서 이어지는 전시홀은 메인홀과 안쪽의 별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인홀 오른쪽으로는 고객 상담 및 작품 보관 등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다. 뉴욕의 갤러리 외에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 분관을 열었고 유럽 진출의 창구로 삼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독일 태생의 사진가 어윈 블루멘펠드(Erwin Blumenfeld)의 1930-50년 대 작품들을 전시한 <Erwin Blumenfeld> 전이다. 독일에서 발현한 다다 운동의 일원이었고 만 레이(Man Ray)와 함께 초현실주의 사진가로도 이름을 알렸던 블루멘펠드는 잡지 <보그> 등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유명 패션 사진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 보이고 있는 21점의 흑백 작품들은 블루멘펠드의 대표작인 에펠탑에서 치마를 휘날리고 있는 모델 사진과 자화상 등의 작품도 있지만 주로 베일과 그림자, 실루엣을 활용하거나 솔라리제이션** 등의 기법을 사용해 탄생시킨 초현실적 이미지의 사진들이 많았다.

컬렉터 데일리***에 언급된 것처럼 어윈 블루멘펠드 정도의 유명한 작가, 게다가 대형 회고전 등을 통해 이미 많은 작품들이 알려져 있는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수장고의 작품들을 일일이 뒤져야 할 때도 있다. 보여 주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전시는 블루멘펠드의 사진들 중에서 순수하게 초현실주의 성향의 작품들에만 집중하여 큐레이팅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신선함을 득했다고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사진들은 예스러운 흑백의 느낌만 제한다면 수십 년 전의 이미지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감성을 품고 있었다. 특히 베일과 역/사광을 조합해 탄생시킨 인체의 실루엣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일률적인 미의 기준이란 물론 없겠지만 블루멘펠드의 사진들은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미를 달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긴 세월을 건너뛴 지금에 와서도 이렇게까지 와 닿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 이런 아름다운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지향하는(또는 내가 익숙한) 사진은 아니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곤 한다. 조명을 활용한 빛과 그림자의 향연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카메라라는 것이, 사진이라는 것이 빛의 예술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해 준다. 그리하여 그 빛을 이용해 탄생시킨 아름다움의 극치에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느낌 같은 것이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Edwynn Houk Gallery
  • 주소: 745 5th Ave., 4th fl., New York, NY 10151
  • 운영시간: 화-토 11:00 am – 6:00 pm (여름 개관: 월-금 11:00 am – 6:00 pm _ 7월 2일~8월 10일)
  • 홈페이지: http://www.houkgallery.com

*18년 4월 19일 기준.
**솔라리제이션: 의도적인 노출 과다로 전체 톤이 반전된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 1930년대에 나온 기법으로 물체의 윤곽과 모양, 콘트라스트가 다 바뀌고 현실 세계의 모든 물체들을 비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들이 많이 사용함. – 나탈리 허시도르퍼, <포토그래피 바이블>, 시그마프레스, 2017, p. 383 발췌.
***2008년 시작한 컬렉터 데일리는 갤러리, 뮤지엄의 전시들부터 사진집이나 작품 경매까지 사진과 관련한 모든 것들에 대해 팩트 – 전시 작품수, 에디션, 연도 등등 – 를 알려 주고 그 외 감상 및 작품 관련 정보를 주는 온라인 매거진이다. 이름 그대로 컬렉터들을 위한 정보지라 할 수 있는데 작품 구매 시장의 기본적인 수요가 존재하기에 유지 가능한 사업형태라고 생각된다. 블루멘펠드 전시 관련 기사는 링크 참조: https://collectordaily.com/erwin-blumenfeld-edwynn-h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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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고급스러움에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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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 뒤쪽으로 보이는 것이 별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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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실 전시 공간에는 소파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쉴 수도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은 <Nude,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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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홀과 이어진 벽 쪽으로 보이는 사무실. 뒤쪽 가운데로 샐리 만의 사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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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t Veil, c.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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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ed Shadow, c.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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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Nude, New York, c.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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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Paris,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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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c. 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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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Paris, Eiffel Tower, May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