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공원에서

일본 여행은 여러가지로 참 편리하다.

우선 생김새가 비슷하여 아무 말 않고 가만히 다니면 이방인 티가 많이 나지 않아 시선에 대한 부담이 적고(실제 나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사진을 좀 찍어달라며 부탁하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일어를 못하거나 히라가나를 몰라도 한자를 배워온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필수적인 정보는 대략 식별할 수 있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고 치안도 좋아 돌아다니기에 불편함이 적으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나긋나긋 조용하다. 현지식도 우리 일상에서도 친숙한 일식이라 거부감이 들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일본 여행을 좋아한다. 여느 관광객들처럼 대형 쇼핑몰이나 백엔샵 따위에 들러 물건을 고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 줄을 서서 기다려 가며 식도락에 탐닉하기도 하고, 사진도 신나게 찍으며 즐겁게 놀다 오곤 한다. 하지만 그런 즐겁고 편리한 일본 여행의 와중에 한편으로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고  불편해짐을 자주 느꼈었다.

성숙해져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의 사회 문화적 수준은 그나마 많이 따라갔다고 하는 일본과의 경제력 격차만큼 금방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경우에서 확인할 수 밖에 없었고, 강박적이라고까지 보여지는 그들의 타인에 대한 철저한 배려, 그리고 질서 의식에 대한 부러움은 괜한 반발심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도 뭔가 못난 모습을 발견해보려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데 시선을 낭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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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횡단하는 아가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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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횡단하는 아가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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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간혹 다소 차갑고 고압적인 태도의 공무원 등을 마주치게 되면 일제 시대에 그들이 우리를 대했을 그런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되며 식민지의 2등 신민이 겪었을 기죽고 서러운 감정이 어떠했을까 하는 씁쓸한 기분이 못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봐도 비싼 돈 들여 재미있게 놀자고 가서는 이딴 생각이나 하고 다녔으니 나도 참 피곤한 사람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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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서서 ‘저건 뭐냐?’ 하듯 나를 쳐다보던 츠키지 시장 입구의 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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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양 관광객들 옆에선 기죽은 듯 왜소한 일본인의 표정에서 페리 제독과 맥아더 장군을 대했던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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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본을 작년 여름에 또 한번 찾았다. 어쨌든 일본 여행은 ‘편리’하니까. 도쿄는 두번째였다. 특별히 볼거리가 있어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은 아니었지만 2004년에는 일정상 패스했던 우에노 공원을 이번에는 들러보기로 했다. 그저 도쿄 시민들의 편안한 일상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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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공원의 큰 나무 그늘 아래선 가족들이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잘 놀고 있다가 카메라를 겨눈 나를 보고 다소 당황한 듯한 여자아이들에게 괜시리 미안해졌고,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던 여자아이도 참 예뻤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나온 단란한 한 가정도 보기 흐뭇했고,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젊은 청년이 만들어주는 막대 풍선을 구경하는 아이들도 평화로웠다. 그들을 보며 공원을 거닐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들도 70여년 전이었다면 오늘같은 우에노 공원의 평화로움은 누릴 수 없었을테지..’

불행했던 그 시대의 아이들은 B-29 편대의 공습을 피해 겁에 질려 방공호로 뛰어들어야 했을 거고, 소이탄을 맞아 잿더미로 변해버린 동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잠들 때 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물으며 간절히 기다리던 그 아빠는 이오지마나 콰달카날에서 반자이 돌격으로 허무하게 삶을 마감했을 수도 있고, 아이들의 큰 형은 꽃다운 나이에 해군 항공대 소위가 되어 제로센 전투기를 겨우 조종할 수 있게 되던 날, 돌아올 수 없는 연료와 폭탄을 싣고 날아올라 오키나와로 몰려오는 미해군 함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런 그의 비행기를 향해 사쿠라 가지를 흔들어주며 배웅하던 여학생들은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켰겠지…

우에노 공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행복해 보이는 오늘 그들의 모습이 새삼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여겨졌다. 모두가 살기 어렵고 힘들기만한 요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간성이 파괴되고 말살되는 전쟁과 같은 그런 처절한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불행한 시대를 겪지 않았음에, 그래도 평화로운 지금에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에노 공원 사진들이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잠시나마 일본 여행에서 느껴왔던 불편함이 사라진 순간이었고, 그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과 여전히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그들의 몰염치성에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그들의 악랄한 식민 지배를 겪은 불행한 나라의 후손인지라 잊어서도 안될 일이고 그렇기에 일본 여행은 편리하면서도 내게는 또 불편한 것이었지만 우에노 공원에서는 잠시 그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었다. 문득, ‘그래.. 모든 인간은 행복해야 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2016.08.04. 도쿄

Leica M3 / Elmar-M 50mm f2.8 / Kodak 400TX / IVED

우에노 공원에서”에 대한 답글 23개

  1. 여행의 으뜸은 현지인의 일상을 맛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현지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요.)
    물론 느긋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서 여행자로서는 취하기 쉽지 않은 스텐스인 것 같아요.
    핫스팟들을 이리 저리 휘저으며 찍고 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일상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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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핫스팟들을 찾아 돌고 돌다보면 돌아와서는 어디가 어디였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참 많지요. 무엇이든 욕심을 줄이는 일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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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인적으로 과거와 현재에서 사람을 가장 헷갈리게 하는 곳이 일본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그들의 친절을 느낄 때 마다 사실 “과거에 안그랬으면 참 좋았잖아.” 하며 속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제가 좀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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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세계에서 일본에 대해 가장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진 나라가 우리나라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숙하지 못하시다니요. 일본 사회도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으니 우리가 꼭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단, 그들의 좋은 면은 우리도 닮아갔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앞으로 그리 될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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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벚꽃필 때 규슈의 구마모토성에 꼭 가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일본에서의 개개인의 삶도 나름 팍팍하겠지만 분명 모든 면에서 우리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보였습니다. 우리도 조금더 넉넉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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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처음 가 봤습니다만.
    복잡한 감정선에서 헷갈려 하는 것도 이 세대가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은데 … 이게 좋은건지 어떤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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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본에서 좀 찾아다니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죽기전에’ 같이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몽연합군이 규슈 연합군을 초전에 박살낸 전적지라든지, 조선 도공을 모신 신사라든지, 조선 통신사 이동 루트라든지 그런 곳 말이지요.
      복잡한 감정선은 그래도 더 오래가지 않을까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들이 반성할리가 없으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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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뭐가 부끄러우시나요 ㅎㅎ 이제 현의 노래, 남한산성도 읽어보셔야 합니다. 칼의 노래의 먹먹함은 남한산성은 막막함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남한산성..이 겨울에 어울리는 소설이네요. 인조가 남한산성에 웅크린 채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던 그 답답한 시절이 딱 이맘 때의 겨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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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들 그런 것 같아요.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방문을 했고
    또 다음달에 예약을 제 자신이 한편으로는 놀랍습니다.
    일본을 상당히 싫어하는 데
    그들의 습관이나 태도등은 어떻게 따라잡을 방법이 없어서 부럽기까지 합니다.

    글 너무 감사히 잘 봤어요.
    사진은 말할 것도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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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로벌적 시각으로 봐도 일본은 상당히 매력적인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행바님이 그토록 짧은 기간동안 여러차례 방문하실 정도니까요. 사실 우리가 일본을 싫어한다고 말할 때 해당하는 일본은 군국주의 시절의 만행과 지속되는 우경화 정책을 일컫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 가서 그들의 음식과 문화를 즐기고 배울 점을 얻어 돌아오는 것은 더욱더 많은 사람이 겪어야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여행 속에서도 우리의 주관과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언젠가 함께 다녀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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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언제나 애증,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밖에 없는 관계인 거 같아요..
    사실 어느 나라나 어느 곳이나 어떤 사람이든 명암은 존재 하는 법인데
    일본과는 같으면서도 무언가 다른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거 같습니다.
    역시나 믿고보는 피요님의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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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깝고도 먼 나라, 정말 이 이상으로 한일관계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글재주가 부족해 다소 일본에서 배워야 할 점만 많은 것처럼 쓰진 않았나 조심스럽습니다만 저 역시 말씀하신대로 어느 곳에나 명암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장점도 분명 큽니다만 또 좋은 점은 우리도 배워야 할테니까요. 그네들의 안좋은 점은 닮아갈 필요가 없지요(하지만 아쉽게도.. ㅠㅠ)
      믿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에 부응하고자 하는데 점점 글발이 안나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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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꼭 매사에 비판적이고 따져보는 성격도 아닌데 여행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네요 ^^;
      믿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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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다녀보면 촬영이라는 행위에 가장 인색하게 반응하는 곳이 우리나라인듯 해요.
    사진을 담는 사람들에겐 여행은 진리인듯 합니다. 좋은 글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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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거리 사진을 하기란 참 힘들지요. 흔히 듣게 되는 ‘어디서 나오셨냐?’ 라는 질문부터가 어두운 사회 분위기와 현대사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해외로 나가면 오히려 더 사진찍기 마음이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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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일본은 출장으로 여행으로 참 많이 간 나라이고 금년에도 한두번은 방문할텐데 갈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곤합니다.
    우에노 공원은 흐드러지게 사쿠라가 핀 봄날에 처음 갔었는데,,,
    잔잔히 깔린 벚꽃향과 인산인해의 사람들,, 그리고 지독한 알콜냄새에 놀랬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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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벚꽃이 필 때 찾으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지독한 알콜 냄새라니요? 거기서도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나요?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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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에노공원같이 일본의 유명한 벚꽃이 피는 곳에는 신입사원들이 대낮부터 큰 술통을 짊어지고 가서 돗자리펴놓고 자리를 잡고
      선배들이 퇴근하길 기다립니다. 그래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우에노 공원의 밤은,, 거대한 술집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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