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리스보아(Lisboa)에서의 두번째 아침, 벨렝지구(Belém)로 길을 나섰습니다.

벨렝지구는 포르투갈(Portugal)의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세워진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을 비롯, 벨렝탑(Torre de Belém), 발견 기념비(Padrão dos Descobrimentos)가 있으며, 타구스강(Tagus) 하구와 맞닿은 대서양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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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앞 정류장으로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아침 내내 버스 티켓 구입방법을 고민하다가 지하철 자판기에서 구입했는데, 다행히 사용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안내를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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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의 골목을 휘감아 달린 버스는 40여 분만에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알파마지구(Alfama)의 트램(Tram)에 비해 훨씬 다이내믹한 코스를 자랑한다는 벨렝지구의 트램이 정류장에 멈춰있었습니다. 잠시 트램 안을 구경하다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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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완공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Manueline)의 걸작이기도 하지만, ‘탐험가들의 안식처’라는 별명으로 유명합니다. 본래는 왕의 무덤으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의 성공적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탐험가들과, 그들을 기다렸을 가족들의 염원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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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수도원 내부 관람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보수공사중이라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서성이고 있으니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손을 훠이훠이 저었습니다. 방해가 된 것 같아 꾸벅 인사하고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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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바깥을 한바퀴 돌고 길을 건너 발견 기념비로 향했습니다. 멀리 타구스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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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기념비로 향하는 광장에서 다시 칼사다 포르투게사(Calçada Portuguesa)를 만났습니다. 그 가운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다가가보니 바닥에 세계지도가 그려져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기 나라를 찾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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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가운데서 우리나라를 발견하고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아래로는 마카우(Macau)가 보였습니다. 식민지라고 크게 기록해둔 것인가,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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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기념비는 타구스강을 넘어 대서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해양왕 엔리케(D. Henrique)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는 기념비에는 엔리케왕을 필두로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져있었습니다. 무엇이 저들을 바다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게 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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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꿈, 염원이라는 단어가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 벨렝탑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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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탑은 본래 리스보아 방어 요새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정치범 수용소, 세관, 우편국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대항해시대 탐험대의 출발점이 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수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척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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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탑을 돌아보며 인근의 카페테리아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의 테이블에서 맥주와 포르투갈식 샌드위치를 즐겼습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늘 아래에 시원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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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 먹었겠다, 발걸음을 돌려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벨렝지구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파스테이스 지 벨렝(Pastéis de Belém)은 수도원 바로 옆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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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타르트를 세계 최초로 만든 곳이 제로니무스 수도원입니다. 그리고, 그 레시피를 이어 받은 유일한 곳, 파스테이스 지 벨렝은 1873년 이후 세계 최고의 에그타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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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이전까지 먹어본 모든 에그타르트를 가짜로 만드는, 그야말로 오리지널 에그타르트였습니다. 어쩌면 이 에그타르트를 먹기 위해 포르투갈에 올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가게에서 즐기고도 모자라, 레일라를 위한 한 박스와 내일을 위한 한 박스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는 행복한 기분으로 리스보아 시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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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로 30여 분, 어느새 익숙해진 코메르시우광장(Praça do Comércio)에 도착했습니다. 타구스강을 돌아보며 바이샤지구(Baixa)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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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나쳤던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를 와이프와 함께 보러 갔습니다. 잔뜩 줄 서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늦은 오후를 보내기 위해 알파마지구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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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마지구로 올라가는 길에 28번 트램의 정류장을 발견했지만, 도무지 탈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리스보아를 떠날 때까지 트램은 타지 못했습니다. 일정에 넣지 않았던 벨렝지구의 트램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쪽은 사람이 많지 않아보였고, 트램에서 바다도 보인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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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 트램을 따라 천천히 걸어 대성당(Sé Cathedral)으로 향했습니다. 1150년 세워진, 리스보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리스보아만큼이나 수수하고 경건한 건물 안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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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28번 트램을 따라 걸었습니다. 알파마지구를 지나 길은 어느새 그라사지구(Graça)로 향했습니다. 여러 전망대 중 가장 높은 전망대가 그라사지구에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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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사지구로 올라가는 길은 바이샤지구나 알파마지구보다 고풍스러웠습니다. 이 지역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인 것 같았습니다. 걷기를 잘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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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사지구의 중심가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은 각종 재료를 구워주는 곳 같았습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조금은 한산한 식당 한구석에 자리잡고 웨이터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조금은 딱딱한 미소가 돌아왔습니다. 문득, 엄청나게 정성스러운 프랑스어 발음으로 주문을 확인하던 상트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의 한 웨이터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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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주머니와 치즈덩어리, 문어샐러드가 기본으로 나왔습니다.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치즈도 샐러드도 맛이 궁금해서 손대지 않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사실상 무료 서비스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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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와 문어요리를 즐겼습니다. 농어구이는 우리의 임연수구이와 요리법이 비슷해보였는데, 살이 훨씬 부드러워서 놀랐습니다. 문어 역시 흔히 아는 문어와는 달랐습니다. 데쳐서 숙성한 것을 구워내는 것일까, 껍질은 바삭했지만 속살은 질기지 않았습니다. 함께 플레이팅된 으깬 감자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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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두들기며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리스보아 시내를 내려다며 잠시 바람을 느끼다, 일몰은 어제의 전망대가 좋을 것 같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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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내려오는데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에 오면 볼 수 있다던 분홍색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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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화려하게 변해있었습니다. 부드러운 컨트라스트와 과하지 않은 색이 포르투갈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박하고 빈티지한 건물들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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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전망대에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어제의 파두(Fado)를 들을 수 없었지만, 오늘도 전망대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스름이 짙어질 때까지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알파마지구도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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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골목 사이로 한참을 걸었습니다. 거리에 켜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다 숙소로 향했습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