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신트라(Sintra) 페냐국립왕궁(Parque e Palácio Nacional da Pena)을 나와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헤갈레이라별장(Quinta da Regaleira)으로 가려면 신트라(Sintra) 중심가까지 내려가서 갈아타야했는데, 예정보다 늦어진 일정이라 중심가에서 조금 기다려보고, 바로 탈 수 없다면 신트라의 다른 유적들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걱정했던대로 갈아탈 버스는 꽤나 늦게 도착했고, 중심가의 헤비 트래픽은 차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카스카이스(Cascais)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다음에는 신트라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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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카이스는 호카곶(Cabo Da Roca)에서 가까운, 대서양 연안의 휴양도시입니다. 고급 빌라들과 리조트가 많고 대서양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드라이브나 산책을 하기 알맞은 곳입니다. 신트라로부터 1시간 쯤 달려 해안 산책로의 출발점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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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잔잔하지만 짙푸른 바다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멀리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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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낚시와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대서양에서의 수영이라, 속이 훤히 들여다보는 짙푸른 색으로 뛰어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다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지옥의 입(Voca Do Inferno)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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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향하고 있는 고급 빌라촌과 리조트를 두리번거리다, 이런 곳은 비싼가, 잠시 찾아보니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습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하루 이틀 쯤 묵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다를 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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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입에 도착했습니다. 오래전 포르투갈사람들은 바다로 입을 벌린 해식동굴을 보고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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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난 길을 따라가보니, 무서운 이름과는 달리 사람들은 여유있게 낚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바다가 이들에게는 낚시터 혹은 수영장이라는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습니다. 스케일이 다른건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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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들러 호카곶이 있을 쪽을 바라보다 이곳에서의 일몰도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예 일몰까지 보고 갈까, 얘기했더니 초행길에 야간운전은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와이프의 얘기가 돌아왔습니다. 서둘러 호카곶으로 출발했습니다. 리스보아(Lisboa)에 늦은 밤 도착하지 않으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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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시간 여를 달려 호카곶에 도착했습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오래된 마을과 산길, 절벽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은 운전하기 만만치 않았습니다.

호카곶은 유럽의 서쪽 끝으로,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이베리아반도(Península Ibérica)의 코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에서 신구할아버지가 홀로 찾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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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곶의 기념비에는 카몽이스(Camoes)의 시가 적혀있습니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CAMOES)

여기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다

호카곶의 또 다른 별명은 세상의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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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올라왔습니다. 뭔가 한고비를 넘었다는 기분도 들고, 새로운 도전과 인간의 의지라는 단어도 떠올랐습니다.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한참 동안 마주하고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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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은 명상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굳게 잡은 두 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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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이어진 길을 내려가다 문득 셀피(Selfie) 한 장을 남겼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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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에서 다시 대서양을 마주했습니다.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왔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다들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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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차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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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오기 전 다시 한번 세상의 끝을 바라봤습니다.

… to be contined

마음은 무뎌질 줄 모른다

“어둡고 짙은 바다로 떠나는 연인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희뿌연 약속만을 남기고 간다. 항해를 마치고 온 고단한 배는 그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돛을 휘날린다. 연인은 대서양의 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을 뿐 영원히 그녀의 마음 속에 있다. …운명 또는 숙명이라는 뜻의 파두는 바다로 떠나는 이의 향수와 남은 이의 그리움을 나타낸다. 지금도 리스본 골목을 파고드는 파두Fado, 시간이 흘러도 날이 선 마음은 무뎌질 줄 모른다.”  – 송윤경

대서양, 항해, 파두, 포트와인(Port wine), 아줄레주(Azulejo), 노란 트램(Tram)을 만나러 포르투갈(Porgutal)로 떠난 길입니다. 바랜 색과 어스름한 빛, 소박한 음식과 달콤한 와인으로 가득했던 시간은 기억에 깊은 각인을 남겼습니다. 흐려지지 않는 기억속에서 차곡차곡 그 순간들을 꺼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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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던 어느 여름날 푸랑크푸르트(Frankfurt)행 비행편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직항편이 없다보니 어딘가를 경유해야했는데, 마침 독일로 가는 마일리지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3시간의 대기 후 다시 3시간 비행이라는 기나긴 여정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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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행 항로의 트래픽이 많아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지루하기는 했지만, 연결시간이 단축된다는 생각도 들고 연결시간을 3시간 이상으로 잡지 않았으면 안될 뻔 했네,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결시간 1시간 반만에 입국하고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던 3년 전 모스크바에서의 기억도 났습니다. 따지고보면 참 간이 컸습니다. 비행편을 놓치기라도 하면 예약을 줄줄이 미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50분 정도 늦게 비행기는 활주로로 이동했습니다. 차가 밀리듯 줄 서있는 비행기들의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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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몽골, 러시아와 북극을 지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독일도 처음이었는데 하루 정도 머물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발권할 때 그냥 지나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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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올 때마다 보는, 구름이 낮게 떠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계속 눈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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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꼭 뭔가를 빼놓습니다. 체코에 갈 때에는 프라하(Prague)에서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로 가는 방법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떠나기 전 날 찾아보니, 옆동네도 아니고 고속버스로 3시간 반을 가야 하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못 갈 수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버스편을 찾고 예약하고 바우처를 출력해야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인천 – 프랑크푸르트 항공편과 프랑크푸르트 – 포르투갈 항공편을 각각 구입하고는 득의양양해하다가, 공항 카운터에서 두 항공편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독일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짐을 찾은 다음, 다시 출국장으로 이동해서 체크인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해야 했습니다. 터미널 두 군데의 동선도 복잡해서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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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터미널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며 모든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모노레일을 타고나서야 느긋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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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행 비행편에는 독일인과 포르투갈인이 각각 절반 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승객 중 동양인은 우리 뿐인 것 같았습니다. 단체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듯한 포르투갈 학생들의 큰 목소리에 익숙해질 때 쯤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창 밖으로는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대를 거꾸로 여행한 덕에 오후에 출발하고도 15시간이 지나서야 해지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두꺼운 구름 위로 사라져가는 빛을 한참을 좇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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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리스본은 영어식 표현입니다. 포르투갈식이 훨씬 매력적이죠.) 공항에 도착했을때, 시간은 이미 자정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출발 지연 탓이었는데, 호텔에 부탁해서 마중나오기로 한 기사님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약속시간이 이미 한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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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입국절차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독일과 포르투갈이 모두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 가입국인 덕분에 입국심사도 세관검사도 없었습니다. 마치 국내선을 타듯이 비행기 내려서 짐찾고 끝이었습니다. 이런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짐을 찾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느긋한 컨베이어 벨트는 한참 만에야 짐을 내줬습니다.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1시를 바라볼 때 쯤에야 공항 밖에서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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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한 늙은기사님은 오랜 시간 기다렸음에도 환한 미소로 맞아주셨습니다. 20년은 된 듯한  낡은 벤츠에 올라 30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리스보아에서의 첫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