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Laurence Miller Gallery

오는 2월이면 개관 34년째가 되는 Laurence Miller 갤러리는 지금까지 250여 회 이상의 전시를 개최하면서 컨템퍼러리 사진과 순수 사진의 빈티지 프린트들을 소개해 왔다. 갤러리 안내글에 따르면 특히 1940년 이후의 미국 사진, 1950년 이후의 아시아 사진들과 사진을 베이스로 한 현대 예술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갤러리 창립자이자 오너인 로렌스 밀러(Laurence Miller)는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초기에는 70년대 미국에 있던 세 곳의 사진 갤러리* 중 하나였던 뉴욕의 LIGHT 갤러리에서 어소시에이트로 근무했었다.

첼시 521 West 26번가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갤러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앞쪽으로 데스크가 있고 그곳에 전시 체크리스트와 방명록이 놓여 있다. 오른쪽은 두 개로 구분된 사무 공간이며 왼쪽으로 주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바로 왼쪽 통로는 작품 보관실로 이어진다. 전시장은 메인 전시 공간과 뒤쪽의 작은 별실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공간은 넓게 트여 있고 아늑했지만 박스 형태의 형광등 조명이 작품 감상에 의외로 불편함을 주었다. 다른 갤러리들에서는 특별히 조명으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수준에서도 느껴질 정도라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루카 캄피조토(Luca Campigotto)의 <Nocturne>과 해리 캘러핸(Harry Callahan),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의 <When Harry Met Aaron> 전 두 개다.

이탈리아 사진가인 캄피조토는 대형 포맷으로 담은 풍경의 대형 인화(큰  작품은 긴 쪽의 길이가 60인치 가까이 된다)가 특징인 작가인데, 이번 전시는 베이징, 상하이, 뉴욕, 런던 등 주요 대도시 랜드마크의 야경 작품들을 걸어 놓았다. 이러한 사진들을 내가 잘 알지 못해 별다른 생각거리가 든 건 없었지만, 이 정도 크기의 대형 인화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디테일이 뭉개지는 건가라는 궁금증은 생겼다. (애초 가까이 다가서 감상할 목적의 작품들이 아니기에 지근거리 디테일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현재 대형 인화의 기술력과 해상도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기술적 호기심이다.)

Laurence Miller 갤러리에 온 이유는 바로 별실에서 전시 중인 <When Harry Met Aaron> 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Gitterman 갤러리의 시스킨드전***을 다녀왔던 이유도 바로 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시회 작명 센스가 어딘가 모르게 살짝 아쉽다는 것만 제외하면(이건 누가 봐도 영화 제목 차용 아닌가? 한때는 내 인생작이었던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다.^^) 전시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전시된 작품은 총 40여 점인데 시스킨드의 초기 작업인 <Harlem Document> 빈티지 프린트도 한 점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미국 추상 사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했던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감상하니 미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각자만의 색깔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았다. 시스킨드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한 추상 표현에 몰두했다면, 앤설 애덤스(Ansel Adams)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고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캘러핸은 사진을 통한 스스로의 내적 감정 표현(그것이 추상이든 무엇이든 간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진의 목적성과 표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두 사람 작품이 선명히 각자의 색을 품게 된 연유일 것 같기도 하다.

1949년에 캘러핸이 자신이 교직에 있던 시카고 디자인 스쿨(The Institute of Design in Chicago)로 시스킨드를 부른 이후 두 사람은 실제로 꽤 오랜 시간 공인된 예술적 동반자 겸 경쟁자 관계였다고 한다. 피터 맥길(Peter MacGill, Pace/MacGill 갤러리 창립자)은 캘러핸을 만날 때면 보통 시스킨드가 함께였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흑백 작품들만 전시를 해 놓았지만 캘러핸은 칼라 작업에 꽤 몰두하기도 했는데, 70년대 초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는 작가 스스로 칼라에만 천착할 것을 다짐하면서 오직 칼라 사진만 찍기도 했었다.

캘러핸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그의 평생 모델이었던 부인 엘레노어(Eleanor)이다. 20세기 미국 사진의 역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유명한 모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엘레노어******는 캘러핸이 사진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피사체였다. 캘러핸은 자신이 자연, 도시, 사람들을 찍으면서 결국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엘레노어의 사진 속에 섞여 들어갔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All of these is blended in with my photographing Eleanor”)*******

캘러핸을 공부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하나는 다중 노출 사진들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한 장소에서 나무를 다중 노출한 <Chicago, 1956>과 건물 창문을 찍은 <Chicago, 1948>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다중 노출 작품들 중 특별히 더 내 관심을 끌었던 건 1952년에 찍은 <Eleanor, Chicago> 사진이었다. (계란을 찍고 배경으로 나무를 담은 후, 마치 나뭇가지에서 나온 것처럼 가운데에 부인 엘레노어의 실루엣을 담은 사진.********) 여러 번의 노출을 한 장의 필름에 담아내면서 정확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찍은 작품인데,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미적, 기술적 감각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흥미로만 보면 시스킨드의 사진이 조금 더 와 닿지만 다양한 기술적 변화 – 포맷, 색상, 노출 등 – 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사진을 통한 감정 표현에 대해 고민했던 캘러핸의 생애에 걸친 작업과 노력은 배울 점이 많았다. 캘러핸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디까지 보여줄 수(표현할 수) 있고, 또 담아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뉴욕의 Witkin, LIGHT, 미시간의 Halsted

**18년 1월 16일 기준

***#03. Gitterman 갤러리 방문기

****<Harry Callahan:Retrospektive=Retrocspective>, Kehrer Verlag, 2013, p. 20.

*****같은 책, p. 11.

******같은 책, p. 47.

*******(영상) Edgara B. Howard and Seth Schneidman, <Harry Callahan:Elaenor and Barbara>, Checkerboard Film Foundation, 1983.

********https://www.artsy.net/artwork/harry-callahan-eleanor-chicago-double-exposure (링크 제목은 double exposure이지만 엄밀히는 triple exposure임.)

기본정보

  • 갤러리명: Laurence Miller Gallery
  • 주소: 521 West 26th Street 5th floor,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금 10:00 am-6:00 pm / 토 11:00 am-6:00 pm
  • 웹사이트: http://www.laurencemiller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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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마주하게 되는 풍경.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캄피조토의 <Nocturne>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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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는 두 개의 사무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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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 공간. 뒤쪽 별실이 <When Harry Met Aaron> 전을 진행 중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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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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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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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Callahan, <Eleanor, Chicago, 1948>. – 캘러핸 평생의 모델이었던 부인 엘레노어. / Aaron Siskind, <Peru, 1977>.

#03. Gitterman Gallery

Gitterman 갤러리는 2004년 개관한 사진 전문 갤러리이다. 현재 직원은 오너인 Tom Gitterman과 갤러리 매니저 한 명을 더하여 총 두 명인 소규모지만 개관 이후 매년 4~5 차례 이상의 사진전을 꾸준히 열고 있는, 작지만 내실이 느껴지는 곳이다.

개관부터 현재까지의 전시 및 모든 작품 목록들은 갤러리 웹사이트에서 감상 가능한데 그 히스토리를 보면 다양한 스타일의 사진들을 꾸준히 전시하면서 갤러리의 안목을 키워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13년 간 사진전 이외의 전시는 2017년 Joe Gitterman의 조각전이 유일한데 오너인 Tom의 아버지 작품 전시이다.^^)

Gitterman 갤러리는 Howard Greenberg 갤러리도 들어와 있는 57번가와 메디슨가 코너의 The Fuller 빌딩 11층에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로 들어 서면 바로 전시 공간이며 중앙의 홀에는 4인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쉬거나 작품 목록을 감상하며 숨을 돌릴 수 있다. 메인 홀 뒤쪽으로는 작품 보관 및 업무를 위한 두 개의 방이 있는데 사무실 벽면을 활용하여 일부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기도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사진전이다. 사진을 시작한 초창기인 1930년대에는 할렘에 대한 기록 작업(Harlem Document) 등 다큐멘터리 사진에 집중하였던 시스킨드는 1940년대 이후 인간이 만든, 또는 인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상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 표현에 몰두했다.

주된 전시 작품들은 벽, 나무문, 포도밭의 암석 등등의 대상에 중형 또는 대형 카메라로 클로즈업하여 디테일을 담은 1950년대 ~ 70년대 초반까지의 사진들이다. 무엇을 찍은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작품도 있고, 또는 한참을 생각하며 보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사진 속의 대상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없게 한 것은 작가가 의도한 모호함일 것이다. 하지만 시스킨드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그의 사진들은 모호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는 사진 속에 대상(material)과 자신을 함께 투영하며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질서(order)를 창조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긴장감(order with the tensions continuing)을 그는 피할 수 없으면서도(inevitable), 즐겁고(pleasurable) 또는 혼란스러운(disturbing)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시스킨드는 자신이 만든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찾아내길 바랐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편히 둘러보라며 반갑게 인사했던 직원이 전화가 끝나고 나서 말을 걸어왔다.

“미안, 내가 통화가 길었지? 혹시 뭐 궁금한 것 있니?”

“어, 마침 한 가지 질문이 있어. 다른 사진들은 그래도 좀 알겠는데 저기 첫 번째 사진 말이야, <West Street>. 어떠한 질감(texture)이나 이런 것을 전혀 모르겠는데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야?”

“질감이 안 느껴진다고? 아닐 텐데. 자, 이리 와서 자세히 봐봐. 여기 톤의 차이(tonality)가 보이니? 완벽한 백과 흑, 그리고 그 사이 그레이의 미세한 톤들. 그리고 더 자세히 보면 표면의 질감도 느껴질 거야. 이 사진도 벽을 클로즈업하여 찍은 거야.”

“아, 그렇구나.”

“혹시 사진사나 예술사에 대해 좀 알고 있니?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와 만 레이(Man Ray)는?”

“응, 조금은.”

“잘 됐네. 예를 들면 만 레이는 상이하면서도 인식 가능한 물체들을 한 프레임 안에 넣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줬다면, 모홀리-나기는 대상이 무엇인지 인식하기 어려운 포토그램을 만들면서 어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 주고자 했어. 공간의 깊이를 제거하고 평면적인 세계를 만들었지. 시스킨드 작업들은 일면 모홀리-나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 클로즈업을 통한 깊이의 제거를 통해 평면적인 이미지를 구성하였거든. 그리고 시스킨드는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지 못하던 것들을 그의 작업을 통해 보여 주려 했어. 그래서인지 때로는 시스킨드의 작업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떤 휴머니티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물론 시스킨드 작품이 처음 봤을 때 바로 이해가 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각예술(Visual arts)이라는 것이 너무 이해하기 쉬우면 재미없지 않겠니? 이렇게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마치 문학이 단어들의 무수한 조합으로 해석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렇게 자세히 답변해 줘서 너무 고마워.”

“그래, 들러 줘서 고마워. 난 톰이야.”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 준 직원이 참 고마웠는데 알고 보니 갤러리 오너였다. 작은 갤러리에 오니 이런 경험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며칠 뒤 ICP 도서관에 들러 시스킨드에 관한 책들을 찾아본 후 한 번 더 갤러리에 들렀다. 그리고 제일 난해하게 느껴졌던 <West Street>만 한동안 바라보았는데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표면의 질감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보이는 거구나,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우는구나 하는 기분에 즐거워졌다.

갤러리들을 찾아가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진 않다. 지난 열흘 동안에만 일곱 군데의 갤러리에 다녀왔다. 보통 한 곳에 가서 집중하여 감상하고 나면 기운이 빠져 버려 같은 날 여러 곳을 돌기도 쉽지 않다. 또 다녀왔거나 보러 갈 전시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 보면 그것만으로 하루를 다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보면서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어 피곤해도 자꾸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려 노력한다. 지금 이 경험들은 진짜로 여기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18년 1월 10일 기준

**Aaron Siskind, <Art News>, Dec. ’55 / Aaron Siskind, “Credo” from <Spectrum>, Vol. 6, No. 2, ’56.

기본정보

갤러리명: Gitterman Gallery

주소: The Fuller Building 41 East 57th St. Suite 1103, New York, NY 10022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하절기 월-금 10:00 am – 6:00 pm)

웹사이트: https://gitterman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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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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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전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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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홀. 오른편 끝으로 주 사무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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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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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ron Siskind. <West Street>, 1950. /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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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78>, 1963. /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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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ago 15>, 1965. /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