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Yossi Milo Gallery

2000년에 개관한 Yossi Milo 갤러리는 사진을 중심으로 한 컨템퍼러리 예술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 곳으로 2012년 현재의 첼시 공간으로 이전하며 십 년이 넘는 연혁을 쌓아 가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의 현재 소속 작가 중에는 <Tree> 시리즈 작업을 진행한 한국인 사진가 이명호(Myung Ho Lee)가 있으며 2009년과 2017년에 작가의 해당 시리즈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한국 작가 윤지선(Yoon Ji Seon)의 프로젝트 작업을 전시하기도 했으니 Yossi Milo 갤러리는 상대적으로 한국 작가들과 연이 많은 곳이다.

245 10번가 건물 1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가운데의 좁은 통로를 중심으로 이스트 홀과 웨스트홀 두 곳의 전시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전시홀 중간에는 노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으며, 가운데 통로 양 옆으로 데스크와 별도의 뷰잉 룸 및 사무공간, 그리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출입구와 붙어 있는 이스트 홀은 일부 자연광과 조명을 활용하여 전시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고, 안쪽의 웨스트홀은 이스트 홀에 비해 조금 더 넓으며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 점을 감안하여 더 밝은 조명을 준비해 놓았다. (참고로 지금은 갤러리 건물 전면이 공사 중이라 이스트 홀은 조금 어두운 편이다.) 통로의 데스크 위에 체크리스트, 보도 자료 등과 작가의 사진집이 놓여 있어 전시와 함께 감상할 수도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독일 사진작가 마쿠스 브루네티(Markus Brunetti)의 <FACADES – Grand Tour>이다. Yossi Milo 갤러리에서 열리는 브루네티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지속해서 작업해 온 <FACADES> 시리즈의 최신작들을 전시 중이다. ‘Facade(파사드)’는 건축 용어로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또는 인상적인 면’을 뜻하는 용어이다. 현대에 들어 다양한 디자인으로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건물의 정면(현관)이 한 건물을 대표하는 ‘파사드’라 할 수 있다. 사진작가인 브루네티는 컴퓨터 장비를 가득 실은 차를 끌고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성당, 교회, 수도원 등의 고건축물의 파사드를 채집, 기록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 중에는 밀라노의 두오모 등 유명 건축물부터 리투아니아의 정교회 건물이나 노르웨이 보르군드의 목조 교회당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들도 있다. 서유럽 지역 중심으로 작업을 시작했던 작가가 점차 전유럽으로 관심의 범위를 확장하여 작업해 온 결과이다.

전시장에 들어서 사진을 둘러보며 처음 든 생각은 독일 출신인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Bernd & Hilla Becher)의 유형학(Typology) 사진이었다. <급수탑>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 유형학 사진 계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베허 부부는 자신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일명 베허학파 작가들을 만들어 내 왔다. 이번 전시작들도 이러한 유형학 사진의 전통을 따라 여러 건축물의 파사드들을 일종의 규칙적 형을 따라 담은 작품들로 전시 보도 자료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베허 부부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당신의 사진 감상 능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예전에 베허 부부의 작품들에 관한 기계/사진 비평가 이영준 교수님의 북 토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교수님이 말한 작품에 대한 감상평이었는데 대략의 요지는 이랬다.

“여러분은 베허 부부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있나요? 저는 베허 부부 사진들의 힘은, 유형학이고 뭐고 다 떠나서 일단 그 작품의 디테일과 정교함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급수탑> 사진들을 보세요. 일체의 왜곡 없이, 정면 그대로의 모습을 이렇게 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래서 베허 부부의 작품들은 단순히 유형학이 아니라 사진 자체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되죠.”

(베허 부부의 작품들에 감동하여, 마침 조금 친분이 있던 갤러리라 할인을 좀 받아 작품을 살까 하고 가격을 문의하였는데 교수님 생각보다 영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는 후일담은 덤이었다.^^)

이번 전시에 걸린 브루네티의 사진들에서 내가 느낀 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우와, 뭐지? 도대체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한 사진들. 성당 기둥에 새겨진 조각상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세세하게 손에 잡힐 듯했다. 60인치가 넘는 대형 인화물에서 느껴지는 디테일의 정교함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브루네티 사진들의 디테일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사진을 만든 방법에 있었다. 예를 들어 <Trondheim, Nidarosdomen> 작품에 대해 명기된 체크리스트의 제작연도는 2007-2017이다. 11년에 걸쳐 한 장의 사진의 만든 것이다. 다른 사진들도 이보다 길지는 않지만 최소 몇 년의 시간을 작품 제작에 소요하였다.

이른 아침의 옅은 빛을 광원으로 택한 브루네티는 파사드의 제일 아래부터 위까지 렌즈를 따라가며 1제곱미터 단위로 면의 일부분을 잘라 수천 장의 사진들을 담는 작업을 몇 주, 몇 년에 걸쳐 진행했다. 이후 정교한 컴퓨터 작업을 거쳐 파사드 전체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한 것이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작업을 거쳐 기둥 조각상 하나하나의 섬세함과 건물 대리석 한 장 한 장이 담고 있는 세월의 질감이 생생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이번 갤러리 탐방에 함께했던 짝꿍도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갤러리 매니저에게 가격을 물어본다. 인화 사이즈에 따라 대략 천~이천만 원 중반대의 가격. 에라 모르겠다 하고 미국을 떠날 때 한 장 지르자는 걸, 보관할 곳도 없다고 말리긴 했지만 이런 작품 하나 집 안에 걸어 두고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즐거운 시간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Yossi Milo Gallery
  • 주소: 245 10th Ave. (between 24th & 25th St.),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yossimilo.com

*18년 3월 1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yossimilo.com/exhibitions/2018_02-markus_brunetti/

***전시 보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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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전면은 공사 중이라 족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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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홀 전시 풍경. 뒤쪽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데스크이며 통로를 지나 웨스트홀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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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홀 전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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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작품은 긴축이 113인치에 달했다. <Nürnberg, Sankt Lorenz, 201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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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dome, Eglise de la Trinité, 201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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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hfield, Cathedral, 201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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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ürnberg, Sankt Lorenz, 2012–2017>.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