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의 겨울

3년 만의 닛카위스키(ニッカウヰスキー) 요이치증류소(余市蒸溜所)입니다.

리타의 종을 찾아나섰던 그날은 푸르른 여름날이었습니다. 언젠가 눈쌓인 풍경을 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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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위로 퍼지는 닛카의 향취는 여름날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매화처럼 짙으면서도 서늘한 향취는, 닛카가 겨울날을 위한 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요이치증류소가 지금처럼,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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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사진 홋카이도(北海道)여행 중

Strum’s

Strum’s

110 Jupiter St. Bel-Air Makati City
Tel. 895-4636, 890-1054
Open from 5:30pm to 2:30pm, Monday to Sunday

스트럼은 마닐라의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입니다. 마닐라에 간다면 꼭 들러야죠.

늦은밤이면, 가게 앞에서 꽃 파는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될겁니다. 장미 한 송이를 건네며, 유어 파인 레이디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어, 라고 말하겠죠. 거절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했다잖아요. 세 번 쯤 마주치면 꽃 대신 미소를 건네며 “오늘은 늦었네?”라고 말을 걸어올겁니다. 그럼,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그 날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게 되겠죠.

아주머니 옆에는 나무 상자를 끈으로 목에 걸고 까치담배를 파는 아저씨가 있을 겁니다. 담배를 고르면 불을 붙여주는데, 가끔 직접 입에 물고 불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당신이 취해보인다거나, 당신의 하루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거나 하면 말이죠. 어떤 위로라고 느껴질 겁니다. 그리고, 그 담배 맛있을 겁니다.

가게에 들어가면, 아주 포멀한 정장을 입은 늙은 웨이터가 자리로 안내해줄겁니다. 마닐라의 ‘진짜’ 음악이 연주되는 스테이지 바로 앞에 앉을 수도 있고, 연주자와 관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도 있는 먼 구석에 앉을 수도 있겠죠. 메뉴는 없습니다. 당신이 마시고 싶은 걸 얘기하면 적당히 가져다줄겁니다. 그리고, 가게 앞의 아주머니처럼, 늙은 웨이터도 세 번 쯤 마주치면 당신을 기억할겁니다. 그 증거로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대신 “늘 드시던 걸로?”라고 물어올 겁니다. 멋진 일이죠.

마닐라에 간다면 스트럼에 세 번 쯤 가보세요.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적어도 셋은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이 건네는 하루의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멋진 일이겠죠.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이 당신을 기억하는 공간이라니. 그리고, 어쩌면 마닐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장담하는데, 그건 좋은 일입니다. 세상 어딘가에 사랑하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이 존재한다는 건 여행자가 되는 첫걸음이거든요.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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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노오(栂尾)에서 버스를 타고 교토역(京都驛)에 내렸습니다. 열심히 걸은 덕에 버스에서는 한숨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늦은 오후,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 어정쩡한 때가 되었습니다. 첫날 하푸(Hafuu)에서의 저녁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메뉴가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오늘도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 뭐 되는대로 해보자 싶어서 나라센(奈良線)을 타고 이나리역(稲荷駅)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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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째 장어를 굽고 있는 네자메야(祢ざめ家)입니다. 가격이 비싸고, 전형적인 관광지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지만, 장어구이의 맛은 교토 원탑이 맞습니다. 일년만에 찾아간 네자메이야에서는 여전히 거리를 향해 냄새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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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기동(うなぎ丼)과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간식이라기는 우스운 메뉴를 신나게 맛본 뒤 자리를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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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길어지는 풍경을 보며 후시미이나리역(伏見稲荷駅)으로 향했습니다. 게이한혼센(京阪本線)을 타고 쥬쇼지마역(中書島駅)으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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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 년만의 후시미(伏見)였습니다. 볼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풍경을 잠시 내려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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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마지막 만찬은 토리세이혼텐(鳥せい本店)입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간사이 최고의 꼬치구이집입니다. 작년 가을 B급 사진 출사의 대미를 장식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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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섰습니다. 술에 취해, 밤에 취해 휘적휘적 늦은밤 마실을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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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사이묘지, 진고지 西明寺 神護寺

고잔지(高山寺)를 벗어나 사이묘지(西明寺)가 있는 마키노오(槇尾)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별도로 인도가 있지 않은 탓에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도로의 차들도 적절히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레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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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단풍 명소답게 표지판에도 단풍 그림이 그려져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런걸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자기하고 귀엽지만 촌스럽지 않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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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나무의 풍경은 화려함보다는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였습니다. 바짝 마른 나무의 색과 바랜 단풍의 색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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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을 걸어 사이묘지로 이어지는 붉은 다리를 만났습니다. 도리이(鳥居)의 붉은색을 떠올리며, 제례적 의미는 같은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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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묘지는 아주 작은 곳이었습니다. 10여 분 정도면 돌아볼 크기였습니다. 경내 이곳 저곳에 세워둔 석등이 자꾸 눈길을 끌었는데, 역시나, 석등이 이 절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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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나지(仁和寺)의 긴 회랑에서 보이던 액자정원을 발견했습니다. 두 칸에 불과했지만, 나름 운치있는 풍경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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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하나는 다실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저곳에 앉으면 어떤 풍경일까, 궁금했지만 길을 재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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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앞의 석등들에 일일이 손을 대보고 돌아섰습니다.  이제 진고지(神護寺)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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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진고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물가에 놓인 평상들이, 화려했을 여름날을 떠올렸습니다. 왁자지껄 모여앉아 잔을 기울였겠지요. 폭이 좁은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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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개의 찻집을 지나쳐 낙엽을 태우는 풍경을 만났습니다. 무작정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서서 한동안 연기를 구경했습니다. 냄새도, 풍경도 근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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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의 세 사찰 중 진고지가 가장 큰 절입니다. 그대로 자연에 융화된 듯한 고잔지와 작고 아담한 사이묘지에 비해 웅장하고 남성적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엔랴쿠지(延曆寺)와도 무척 닮아서 같은 시대에 지어진 것인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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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경내를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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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난 길을 따라 한무리의 사람들을 따라가니 가와라케나게(かわらけ投げ)를 할 수 있는 곳이 나왔습니다. 가와라케나게는 질그릇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것인데, 깊은 계곡을 향해 멀리 던질수록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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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질그릇을 던졌습니다.

다른 소원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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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되짚어 내려왔습니다. 진고지는 다른 두 절에 비해 상당히 높은 곳에 있는 탓에 내려가는 계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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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올 때 보아둔 찻집에 들렀습니다. 만추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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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특산인 모미지(紅葉)떡과 맛차(末茶)를 주문했습니다. 주인할머니가 함께 내주신 모나카는 그리운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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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람소리를 듣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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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되짚어 사이묘지를 멀리서 바라보며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에 올라, 언젠가 녹음이 가득한 여름, 혹은 눈 쌓인 겨울에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주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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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교토(京都)를 가보지 못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악전고투 끝의 이직과 포르투갈로의 늦은 휴가로 일정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지간히 좋아하는 도시,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도 훌쩍 떠나게 되는 곳, 교토로의 주말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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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도착한 간사이공항(関西国際空港)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습니다. 단풍시즌 마지막 주인데다 금요일 아침이라 잔뜩 긴장했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문과 홍채 등록 프로세스를 별도로 구축한 것이 주효한 것 같았습니다. 별도 카운터를 설치하고 한국어, 중국어가 어느 정도 되는 직원들이 진행을 돕고 있었습니다. 처음 일본에 오시는 듯한 분들의 “대체 지문등록은 왜 하는거냐?”는 클레임에 씁쓸한 기분을 공유하면서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여러 번 경험해도 매번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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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공항리무진 왕복을 끊고 버스에 올라 오사카만(大阪湾)을 지났습니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고 했는데, 청명한 하늘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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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교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한적한 풍경은 볼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길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오사카-교토 간 전철은 영영 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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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방문 때 이세탄(伊勢丹)백화점의 라멘골목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늘 가던 스미레(すみれ) 교토점이 없어졌으니 새로운 라멘집을 찾아갔습니다. 트립어드바이저 라멘 부문 2위, 음식점 전체로는 25위를 차지한 혼케 다이치아사히 다카하시(本家 第一旭 たかば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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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가게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잠깐 세어보니 55명이었습니다. 허허.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것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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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납품하는 아저씨의 바쁜 모습을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한 시간 남짓,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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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오면 받는 인상 중 하나는, 작은 가게, 큰 가게를 떠나 대부분의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무척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곳 역시 그랬습니다. 바쁜 스탭들의 모습이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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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와 특제라멘을 주문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꽤 괜찮은 라멘집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푹 우려낸 돼지뼈 육수에 두 종류의 차슈와 신선한 파를 푸짐하게 얹어서 내주는 라멘은, 보통의 일본 라멘보다 덜 짜고 덜 느끼했습니다. 가게에 외국인이 많은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메뉴에서 한, 중, 일 3개국의 흔적이 느껴지는 점이었습니다. 군만두는 중국식으로 한쪽만을 바삭하게 구워서 내주고, 사이드 메뉴에는 김치가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걸 보니 한국식이었습니다. 공기밥도 주문할 수 있는데, 라멘만 주문하면 주지 않던 쓰케모노(漬物)를 함께 내줬습니다. 라멘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 다양한 메뉴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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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清水寺)에서 가까운 숙소는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짐만 내려놓고 저녁을 보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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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데라마치도리(寺町通り)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맛보지 못한 교토규(京都牛) 스테이크집 하푸(Hafuu)에서 저녁을 먹고, 부탁받은 차를 사러 잇포도차호(一保堂茶舗) 교토 본점에도 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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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간에 맞춰 갔지만, 하푸는 예약이 모두 차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예약받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고 더 이상은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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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잇포도차호를 찾아갔습니다. 1717년 영업을 시작했다는 차 명문가는 외관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내공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차를 시향하거나 마실 수 있고, 체험도 할 수 있는 매장 안에서 차향에 취해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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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받은 차와 두 종류의 티백을 구입하고 점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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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가게의 시바를 쓰다듬어주고 가와라마치(河原町) 방향으로 길을 걸어내려갔습니다. 양쪽으로, 고풍스럽고 세련된 상점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산책하러 와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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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지카키모토(紙司柿本)에 잠시 들렀습니다. 가미지라니, 자부심 가득한 이름답게 가게 안은 온갖 종류의 종이와 공예품들로 가득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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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카드를 구입하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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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마지않는 앙제르(ANGERS)에 도착했습니다. 일년만에 찾은 매장에는 여전히 세련되고 흥미로운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1층에서 신형 융한스(Junghans)의 블랙 페이스와 70년대 펠리컨(Pelikan)에 정신을 뺏겼다, 2층에서는 요모우또오하나(羊毛とおはな)의 음악을 들으며 매대 사이를 걸어다녔습니다. 브래디(Brady)의 꽃모양 파우치를 들여다보다,  3층의 무민(Muumi) 한정판 식기 세트를 한참 노려보고 나서야 가게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위험한 방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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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쇼윈도의 순록 모형에 손을 흔들고 산조(三条)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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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척이나 바쁘군, 스시노무사시(寿しのむさし 三条本店)의 도시락을 잠깐 구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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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헌책방을 흘낏 들여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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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페(Parfait)전문점의 모형을 신기하게 쳐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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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시조(祇園四条)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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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가와(鴨川)를 따라 늘어선 가시와야초(柏屋町)의 음식점들에는 오늘도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한번쯤은 저곳에서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엄청 취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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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건너 기온(祇園)거리로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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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들의 불빛 사이를 걸어 이즈우(いづう)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에서는 아무래도 이요마타(伊豫又)지만, 한번 쯤은 사바스시(鯖寿司)로 이름 높은 이곳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1781년 열었다는 가게는 작고 정갈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품격있는 공간이 묘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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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마타(400년)보다 업력이 짧다(236년)고는 하나, 그 세월이 결코 만만치 않겠습니다. 둥글게 말린 다시마를 벗겨내고 맛을 보니, 과연, 적어도 사바스시로는 이요마타보다 한 수 위라고 느껴졌습니다. 기온마쯔리(祇園祭)의 공식 지정 도시락이라는 설명도 납득이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가끔은 들러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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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스시 외에도 도미와 여러 종류의 초밥을 맛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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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가는 길에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있었습니다. 확실히 이요마타와는 방향이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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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도 먹었겠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기다란 줄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당고를 사기 위한 줄이었습니다. 눈 짐작으로 대략 30명 쯤,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무슨 당고길래 이런 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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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넘게 줄을 서서 받은 당고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떡을 숯불에 구워 콩가루를 듬뿍 뿌린 뒤, 말린 바나나잎에 조청과 함께 싸주셨습니다. 뭔 당고를 이렇게까지, 싶으면서도 과연 일본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작 110엔의 당고지만, 그 정성에 살짝 감동까지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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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산타 장식을 올려다보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 to be continued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은 이목을 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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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Porto)에서의 세번째 아침을 맞았습니다. 오늘은 레일라가 먼저 떠나는 날입니다. 고작  하루 차이지만, 헤어짐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레일라의 숙소로 짐을 옮겨주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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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나 신세를 진 상 니콜라우(Adega de São Nicolau) 앞을 지났습니다. 수석 웨이터 빌에게 “내일도 먹으러 와도 돼?”라고 물었을 때, “아, 내일도 오고 싶으면 우리집으로 와. 이 가게는 내일 쉬거든.”이라고 했었습니다. 워낙 진담과 농담이 구별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한껏 웃어넘겼는데, 실제로 쉬는 날이 맞았습니다. 아,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작별인사를 하는 거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올게, 빌. 다시 만나요.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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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의 숙소는 아파트였습니다. 물어보니 가격도 호텔과 차이가 없는데, 뭔가 무척 근사한 곳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도우루(Douro)강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아파트에 묵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레일라의 짐을 꺼내 택시에 태워 보냈습니다. (무거운 짐 덕분에 사진은 없습니다.) 한국, 또는 마닐라, 만약 브랜치 이동을 한다면 싱가폴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택시가 떠나는 것을 보고 돌아서니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함께 온 여행은 함께 떠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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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기 위해 히베이라(Ribeira)의 한 카페를 찾아갔습니다. 프랑세지냐(Francesinha)와 문어샐러드를 시켰는데, 샐러드 쪽이 훨씬 맘에 들었습니다. 전날 찾아갔다가 공사중이어서 헛걸음 한 카페 산티아고(Cafe Santiago Da Praca)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최고의 프랑세지냐를 먹어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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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광장으로 나오자 전통 복장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역동적인 동작으로 깃발을 돌린 청년은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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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쇼핑몰(El Corte Inglés de Gaia)을 잠시 구경하고 다시 알리아두스(Aliados)지구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오후는 여유있게 보내기로 맘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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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고 걸어서 건넜던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Luís I)를 전철로 건넜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우루강이 벌써부터 그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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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내려 알리아두스 뒷골목을 어슬렁거렸습니다. 느긋하게 걷다가 자꾸 옆길로 새면서 클라우스 포르토(Claus Porto)의 매장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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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포르토는 1887년 설립된 천연향수비누 브랜드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포르투갈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았고, 최근에는 오프라 윈프리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사용 중이라고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깔끔하고 세련된 매장에서 여러 종류의 비누를 구경했습니다. 한국의 매장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하나 저것도 하나 고르다보니 잔뜩 사버렸습니다. 매혹적인 향기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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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은 늦은 오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Taberna Dos Mercardores)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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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간에 맞춰 달려갔지만, 이미 식당 앞은 만원이었습니다. 여덟팀이 줄을 서 있고, 입구의 웨이터와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일부는 들어가고 일부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차례가 되어 물어보니, 이미 예약은 다 찼고(정확히는 5일 후까지 예약이 다 찼고) 자리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안쪽을 보니 테이블이 여섯개, 아주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혹시 기다린다면 들어갈 수 있을까 물어보니, 예약한 손님이 취소하거나 나타나지 않으면 기회를 준다고 했습니다. 식당 앞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40분 쯤 지났을까, 웨이터가 다가왔습니다. “자리로 안내하죠. 예약한 분이 오지 않았네요.” 기꺼운 마음에 안쪽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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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드라이한 도우루산 화이트와 함께 조개찜, 농어구이, 문어볶음밥을 즐겼습니다. 오지 않았다면 정말 평생 후회했겠다 싶은 맛이었습니다. 다른 포르투갈 식당에 비해 덜 짜고 풍미가 훌륭했습니다. 모노클(Monocle Restaurant Awards 2017) 수상은 당연한 것 같았습니다.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경험하게 해준 스탭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습니다.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포르투의 골목을 걸었습니다. 깊은 밤의 골목에서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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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의 밤을 오랫동안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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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호텔 앞의 길냥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 녀석은 틈만 나면 호텔로 들어와서 앉아있다가 스탭들에게 쫓겨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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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공항(Aeroporto Francisco Sá Carneiro)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Frankfurt Airport)으로 향한 뒤, 올 때처럼 짐을 찾고 터미널을 옮기고 다시 수속을 밟았습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귀국행 비행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독일까지 왔으니 소세지는 먹어봐야지, 라운지에서 맥주와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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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를 봤었습니다. 삶이, 사랑이 눈부시게 빛나는 장면들을 보고,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맑은 눈물 한방울 떨궜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의 짧은 시간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지만, 삶의 방향이 어쩌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방향이 다시 포르투갈로 향할 때, 그 때는 다시 세상의 끝에 가서 바다와 마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방향이 영원히 바뀌어질 때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들은 가끔씩 믿을수 없을 만큼 이목을 끌지 않는다… 이 환상적인 침묵 안에 특별한 고결함이 있다.” – 파스칼 메르시어

와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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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량시장(Mercado do Bolhão)의 전리품을 호텔방에 가져다두고, 와이너리 투어를 나섰습니다. 어제의 퍼레이라(Ferreira) 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쉬워, 두어군데는 더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우루(Douro)강의 부두에는 수영복 차림의 청년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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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익숙해진 히베이라(Ribeira)지구의 파스텔톤 건물들 사이를 걸어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Luís I)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다리 위에는 점프를 시도하는 청년들이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었습니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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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노바 지 가이아(villa nova de gaia)의 언덕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등 뒤로 도우루강과 히베이라지구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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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하나를 넘어 테일러(Taylor’s Port)에 도착했습니다.

1692년 설립된 테일러는 포르투에서 가장 오래된 포트와인 와이너리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와이너리입니다. ‘올해의 포트와인’을 수 차례 수상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최상급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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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투어 프로그램은 퍼레이라와 사뭇 달랐습니다. 퍼레이라가 투어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약 40분 정도의 코스를 도는 식이라면, 테일러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형태였습니다. 투어 코스의 규모도 퍼레이라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자료들과 설명도 풍부해서 꼼꼼히 보려면 서너시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와인의 향기가 물씬 나는 오크통 사이를 헤매는 경험은 똑같이 황홀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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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으로 가득한 셀러를 걸어 4만 리터의 와인이 들어있다는, 거대한 오크통 앞에 섰습니다. 뭔가 아스트랄한 기분이 들어 멍하니 통만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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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마치고 뒷뜰로 향했습니다. 두 종류의 와인을 든 소믈리에가 어색한 프랑스어 억양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술만 달라고 하기에는 염치가 없는 것 같아, 설명을 한참 듣고 잔을 건네 받았습니다. 칩 드라이(Chip Dry)의 품질은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두 잔을 마시고, 판매처에 들러 빈티지를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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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를 떠나 강가로 향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건물의 귀퉁이에 장식된 토끼를 보다가 샌드맨(Sandeman)의 라운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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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라 투어에서도, 또 테일러에서도 브랑코(Branco)는 칵테일로 마시면 좋다고 했었습니다. 그 맛이 궁금해서 또다른 명문 와이너리인 샌드맨으로 향한 것입니다.

토닉워터와 라임 정도를 더하고 가벼운 스터로 향을 올린 듯한 브랑코 칵테일은 꽤나 맛이 좋았습니다. 레몬그라스와 설탕을 더해 복잡한 맛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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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잠시 앉아서 도우루강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포르투 크루즈(Porto Cruz) 의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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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가 어디선가 받아온 시음권을 내밀고 토니(Tawny)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다른 와이너리들이 전통과 품격을 강조한다면, 이곳은 젊고 트렌디한 분위기로 조성된 공간이었습니다. 흡사 고급차 전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와인 역시 가볍고 드라이한 풍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젊다는 것은 무겁지 않다는 뜻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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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사이 네 잔을 마신 덕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와인과 달리 20도가 넘는 포트와인은 위험한 술인 것 같았습니다. 달콤한 맛과 높은 도수라니, 방심하다가는 뻗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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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깰 겸, 골목 사이를 걸어 천천히 언덕 위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일몰을 보며 어제 구입한 와인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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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에서 로얄 오포르투(Royal Oporto)의 전시장을 만났습니다. 들를까, 잠시 생각했지만 머리를 흔들어 떨쳐버리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더 마셨다가는 공원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몇 병이고 마시게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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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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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삶을 무척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데, 왜 이런 장면을 보는 것 조차 그렇게 힘든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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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라의 브랑코를 꺼냈습니다. 만원도 하지 않지만,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와인입니다. 포르투갈에 와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와인으로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알게된다는 말이 납득이 갔습니다. 이 맛과 이 순간이 꽤나 그리워질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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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루강 너머로 해지는 풍경에 취해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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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Luís I)를 건너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 to be continued

성냥갑 마을

포르투갈에서의 5일째, 리스보아(Lisboa) 일정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여행의 후반부를 보낼 포르투(Porto)까지는 320km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포르투로 향하면서 몇 군데의 도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의 도시, 코임브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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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까지는 210km로 제법 먼 거리였지만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포장상태가 좋았고, 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아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사실 코임브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적지는 네비게이션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템포를 맞추느라 시속 200km 가까이 달린 탓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두시간이 채 안 걸려 코임브라에 도착했습니다. 대학 부속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있는 것 같았는데, 대학도시는 처음 와보는 터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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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대학교는 1290년 설립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입니다. 201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언덕위의 대학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설립자인 디니스1세(Dinis I)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로는 다소 낡았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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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엽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코임브라대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제게는 큰 영광일 것입니다, 엽서를 보여주는데 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원하시는대로,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엽서도 마음에 들어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아뿔싸, 차에 지갑을 두고 온걸 알았습니다. 실수다, 지갑을 두고 왔다, 정말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엽서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한 장을 고르세요. 당신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순간이 지나고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과 코임브라대학교를 기억하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구대학의 건물들이 그려진 엽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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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학교(Velha Universidade) 광장으로 들어서자 주앙3세(João III)의 석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인 돌아다닐 시간은 없어서 광장 주변과 탑, 도서관 정도를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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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방문을 뒤로 하고 코임브라대학교를 떠났습니다. 시간을 좀 더 할애해서 돌아봐도 좋았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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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레일라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좋겠지, 나보다 훨씬 잘하니까 싶어서 키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을 자처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뒷좌석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테일 스핀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좌우로 흔들림이 제법 있었습니다. 줄곧 멀미가 날 것 같다던 레일라의 얘기가 이해되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메르세데스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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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목적지인 아베이루(Aveiro)로 접어드는 고속도로에서 산불을 만났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고온현상으로 여기저기 큰 불이 나고 있다더니 실제로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산불을 본 것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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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베니스(Venice)라고 불리우는 아베이루에서 운하의 풍경을 만났습니다. 운하를 중심으로 예쁜 건물들이 서있었습니다만, 어쩐지 전형적인 관광지로 보였습니다. “그냥 갈까?” 레일라의 제안에 따라 곧장 코스타 노바(Costa Nova)로 차를 돌렸습니다. 아졸레주(Azulejo)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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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여 분을 달려 코스타 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코스타 노바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포르투갈의 도자기 제품명으로 더 알려졌습니다만, 본래 대서양과 아베이루강 사이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코스타 노바 제품에 새겨진 로고는 이 마을의 독특한 건축양식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찌보면 인형의 집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성냥갑 같기도 한 형형색색의 스프라이트 무늬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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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의 집들이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달이고 돌아오지 못했고, 안개가 자욱한 지역 특성상 돌아와서도 자기 집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길을 잃지 말라고 각자 독특한 색과 무늬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기만 한 것 같은 풍경이 사실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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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과 무늬의 집들 사이를 질리도록 걸어다녔습니다. 스프라이트 뿐 아니라 다양한 색과 무늬로 칠해진 집들이 파란 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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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와 아베이루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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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트립어드바이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역 3위 안에 드는 곳이라면 가도 좋지 않을까?” 앞장 선 레일라를 따라 길가의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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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식 조개찜(Ameijoas a Bulhao Pato)과 해산물 리조또(Arroz de Mariso)를 주문했습니다. 셋이 먹기에 너무 많은 양에 놀라고 해산물이 정말 신선해서 놀랐습니다.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라며 웨이터가 엄지를 내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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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마을의 반대편으로 걸어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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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를 소개하는 가이드북과 웹사이트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니 집안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 집들은 숙소로 제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정도 머물며 대서양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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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 뒷골목으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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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디냐(Sardina)겠지, 바닥의 물고기 문양을 구경하다 고개를 들자 일광욕 중인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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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자 바닥에 뒹굴뒹굴, 잔뜩 애교를 부렸습니다만, 줄 게 없어서 열심히 머리만 쓰다듬어 줬습니다. 궁딩팡팡도 해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간혹 싫어하는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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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하얀 꽃들을 잠시 바라보다 코스타 노바를 떠났습니다.

… to be continued

아데우스, 리스보아

에보라(Évora)를 떠나 서쪽으로 달렸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늦은 오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시네스(Sines)와 대서양 연안 도시들을 돌아보기에는 빠듯할 것 같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정을 변경해서 아름다운 해변 콤포르타(Comporta)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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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반 쯤 달려 콤포르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행 정보를 다루는 사이트들에서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추천하는 곳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데크를 따라 잠시 걸으니 눈앞에 대서양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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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이트의 리뷰와 달리 제법 큰 해변이었습니다. 발리(Bali)의 쿠타(Kuta) 정도는 아니었지만,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보기에 부족하지 않은 크기였습니다.

잠시 파도소리를 듣다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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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이 처음이다보니 서유럽의 해변도 처음이었습니다. 그 동안 가본 해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쩐지 좀 느슨해보인다는 점과 가족 일행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느긋한 표정의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덩달아 느긋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레일라가 와인을 꺼냈습니다. 포르투(Porto)산 화이트와인이라고, 아마 바다와 어울릴 거라고 했습니다. 정말이지 마시고 싶었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레일라와 와이프가 와인을 마시는 사이 카메라를 들고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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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서양에 발을 담궜습니다. 태평양 – 인도양 – 대서양, 그러고보니 많은 바다들을 만나왔습니다. 조금은 벅찬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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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기계체조를 하고 있는 청년들을 구경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 쯤 되어보였는데 탄탄하게 발달된 근육도 그렇고, 무척이나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이 좋아보였습니다. 어릴적부터 짐(Gymnasium)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한다는 유럽의 교육 시스템은 타당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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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돌아와 다시 바다를 바라봤습니다. 바다 앞의 커플은 그야말로 레인보우 타월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마미”라고 부르는 아이 셋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딘지 근사해보였습니다. 편견 가득한 시선도, 경계하는 듯한 표정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조금 더 개방적이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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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길어지는 해 그림자를 보며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빈 와인병을 챙기고 일부러 해변을 한바퀴 돌아 차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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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보게될 지 모르는 대서양의 해변을 잠시 바라봤습니다.

아데우스. 바다에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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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에서의 마지막 밤은 바이샤지구(Baixa)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호텔에 차를 댄 후 택시를 타고 레일라와 약속한 장소로 향했습니다. 바이샤의 골목 안은 알파마(Alfama)의 그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는데, 좁은 골목 안까지 택시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쨌든 친절한 노기사님은 가게 앞까지 택시로 데려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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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는 이미 1부 공연부터 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라운지에서는 제법 실력이 좋은 밴드가 다양한 레퍼토리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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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토(Mojito)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잠시 후 2부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꽤 터프한 모히토의 맛이 라운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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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여 쉬지 않고 연주해준 밴드에게 박수를 보내고 라운지를 떠났습니다. 마지막 밤에 어울리는 근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바이샤의 골목을 되짚어 숙소로 향했습니다.

아데우스, 리스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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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리스보아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며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 to be continued

키리에

아침 일찍 차를 꺼내 레일라를 태우러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포르투갈의 남부 내륙 도시들과 바닷가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왕복 600km 정도 운전을 해야 하니 제법 긴 하루가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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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를 건너 처음 찾아간 곳은 구세주 그리스도상(Santuário Nacional de Cristo Rei)입니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상(Cristo Redentor)과는 형제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브라질이 원조고 이쪽이 나중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크기도 브라질 쪽이 30m로 이쪽(26m)보다 큽니다. 브라질이 식민지였던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어쨌든 두 상은 마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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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으로 조성된 공간에서는 4월 25일 다리가 내려다보였습니다. 타구스(Tagus)강 위에 놓여 리스보아(Lisboa)와 포르투갈의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는 1966년 건립되었는데, 카네이션 혁명(Revolução dos Cravos)이후 독재자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의 이름을 버리고 혁명일인 4월 25일을 기념하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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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리스보아의 언덕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파마(Alfama)지구도 보였습니다. 그저께 밤에는 저쪽에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이 들어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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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구세주 그리스도상 외에 거대한 십자가, 성모마리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강변을 따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물며 그리스도를 올려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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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피를 형상화한 조각이 보였습니다. 다가가보니 순례자들의 이름으로 보이는 명단이 새겨져있었습니다. 조금은 무거워진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습니다.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신념에 의해 스스로를 바친 분들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 밖에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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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한참을 달렸습니다. 두번째 방문지인 에보라(Évora)는 150km 떨어진 도시였는데, 본래 포르투갈의 수도였고 오래된 중세도시라는 것 외에는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 찾아가면 어쩌나, 기대했던 풍경은 맞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시간 반 이상 고속도로를 달려 에보라 입구에 도착했을 때, 도시로부터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수도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 좀 찍고 가자, 레일라의 제안에 차를 대고 잠시 거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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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된 수도교였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다는 로마시대의 거대한 수도교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대로 남아있는 비바람과 시간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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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아 도시를 둘러싼 성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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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전반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중세도시라고 하기에는 건물들이 깨끗하고 현대적이어서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로 찾아온 것은 맞나. 공원 한쪽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을 바라보다 지랄두 광장(Praça do Giraldo)을 향해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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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은 리스보아에서 처음 만났던 흰색과 노란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낡은 골목과 최근 칠한 듯한 벽을 따라 화사한 색들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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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오자 길이 크게 넓어지며 번화가가 나타났습니다. 에보라의 중심가에 가까이 온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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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전쟁 영웅 지랄두(Geraldo Geraldes)의 이름을 딴 광장은 때로는 권력 암투의 장으로, 때로는 종교재판의 장으로 화했다고 합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의 피가 흘렀고,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이곳에서 불에 태워졌답니다. 광장을 바라보며 서 있는 상 안토니우 교회(Igreja de Santo Antonio)의 육중한 건물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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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지려는 머리를 흔들고 대성당(Sé Cathedral)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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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대성당을 한바퀴 빙 돌았습니다. 와이프와 함께 서둘러 뛰다걷다했지만, 레일라와의 약속시간은 지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각자 돌아다니다 대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걱정과 달리 느긋한 표정으로 쉬고 있는 레일라를 만나 양해를 구하고 에보라 로마 신전(Templo Romano Évora)을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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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트(Corinth)양식의 기둥이 인상적인 에보라 로마 신전은 2세기 경 전쟁의 신 다이아나(Diana)에 바치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컸으면 좋았겠다 생각하며 언덕쪽으로 나 있는 정원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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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을 구경하고 언덕 위에서 에보라 시내를 내려다봤습니다. 옅은 노란색과 벽돌색이 인상적이었는데, 깨끗하게 칠해진 벽 때문인지 낡은 도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이 도시가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왔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줬습니다. 도시의 풍경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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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으로 돌아가 레일라와 함께 상 프란시스쿠 성당(Igreja de São Francisco)으로 향했습니다. 에보라 특산이라는 코르크(Cork) 기념품들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어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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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은총의 성당(Igreja da Graça)에 들렀습니다. 굳게 닫혀 있는 성당 문앞을 서성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본 마카우(Macao)의 성 바울 성당(Ruínas de São Paulo)이 떠올랐습니다. 폭이 무척 좁은 종탑을 올려다보다 길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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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상 프란시스쿠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15세기에 건립된 성당은 그 규모도 압도적이지만, 뼈로 지어진 예배당(Capela dos Ossos)으로 유명합니다. 포르투갈에 오면서 꼭 들러보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와이프와 레일라는 들어가지 않으려 작심한 것 같았습니다. 성당 앞의 식당에 자리잡고,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조금 더 집중하는 것도 좋겠지, 혼자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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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2층 테라스에서 에보라 시내를 내려다봤습니다. 멀리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에보라 로마 신전의 뒷편에서 보는 풍경보다 좀 더 아기자기해보이는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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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서 가져온 수집품들로 가득찬 복도를 지나, 마침내 뼈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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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의 건립은 17세기였다고 합니다. 묘지가 가득차 시신의 처리가 곤란해지자, 수도사들의 뼈를 모아 예배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약 5천개의 뼈로 가득찬 예배당 입구에는 “우리는 이곳에 묻혔으며 너의 뼈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명상에 빠졌다고 합니다.

숨이 막힐듯한 압도적인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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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로 이뤄진 벽은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예배당 입구에 손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틈으로 해골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머리에 손 끝을 대보았습니다. 차가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해골은 미지근한 온기를 전해왔습니다. 어쩔 줄 모르다 잠시 눈을 감고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편안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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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와이프와 레일라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단지 식당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식당이자 식료품점이자 마트 역할을 하는 곳 같았습니다. 에보라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이 식당의 주인아저씨에게 난생 처음 ‘아이스 커피’를 가르쳐줬다며 레일라가 미지근한 커피를 건네왔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커피에 얼음을 넣어 먹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음료를 더 주문하고 식사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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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칼라우(Bacalau)였습니다. 리스보아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조금 짜고 질긴 맛이었는데, 무척이나 소박한 것이 이쪽이 원형에 가깝지 않나 생각되었습니다. 함께 나온 채소와 계란까지 싹싹 먹어치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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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POS)로 계산하는 주인아저씨를 흥미롭게 바라보다 식당을 나섰습니다. 잘 먹었다는 인사에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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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길어지는 시간, 골목길을 되짚어 차로 향했습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