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Paul Kasmin Gallery

Paul Kasmin 갤러리는 아트 딜러인 Paul Kasmin이 1989년 소호에 처음 문을 연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전후 및 미국 모더니즘 사조의 예술작품들에 집중하여 온 갤러리이다. 미술, 조각, 설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대표하고 있으며 사진 전문 갤러리는 아니지만 티나 바니(Tina Barney), 로버트 폴리도리(Robert Polidori) 등의 사진가들도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갤러리 소속 작가 중에는 ‘LOVE’ 조각상으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도 포함되어 있다.

Paul Kasmin 갤러리는 현재 첼시에 세 곳의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동시에 다른 전시들을 병행하기 때문에 여러 전시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게다가 2018년 말 첼시에 또 하나의 전시 공간을 열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전시들을 동시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중 이번에 찾아간 곳은 297 10번가에 자리한 갤러리로 10번가와 27번가가 만나는 사거리의 북서쪽 코너에 자리 잡고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첼시 공원과 마주하고 있는 갤러리 공간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높은 천장고로 탁 트인 느낌을 주는 직방형의 홀로 한쪽 구석에 직원이 근무하는 간이 책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단출한 공간이다. 출입구가 있는 동쪽 전면 및 남쪽 벽의 일부가 유리이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강한 햇살이 전시를 방해하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내려 두었다. 책상 위에는 체크리스트와 전시 관련 자료 등이 함께 놓여 있다.

지금* 전시를 진행 중인 <Landscapes>는 미국 사진작가 티나 바니의 새로운 작품들로 그녀가 대형 뷰 카메라로 담은 풍경 사진들이다. 작품 수는 11점으로 많지는 않은데, 큰 사진은 긴 폭이 60인치 가까이 되는 대형 인화물들로 작가가 80년대 말과 2017년에 작업한 사진들을 함께 걸어 두었다.

바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속해 있던 미국 동부 최상류 층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잘 알려진 사진가이다. 가족, 친구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에 대한 스냅들인데 작가 자신이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하며 사진을 담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네오-다큐멘터리 장르로 불리기도 한다.** 가족을 담은 첫 작업 이후 지금까지 사진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 오는 동안 바니의 작업은 그 대상과 주제가 무엇이든 모두 인물을 담은 작업들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발표된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전시는 그녀가 처음으로 보여 주는 풍경 사진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80년대 말 일부 풍경 사진을 시도했던 바니는 그 작업이 자신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고 느꼈고, 이후 최근까지 풍경은 그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2017년에 발간된 회고록 성격의 새로운 사진집****을 위해 예전의 네거티브들을 다시 살펴보던 중 오래전에 찍었던 풍경 작업들이 다시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이후 2017년에 새롭게 담은 사진들과 예전 사진들을 함께 이번 전시를 통해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사람이 아예 들어있지 않거나 (<Drive-in, 2017>, <Dusk, 1989>) 또는 있더라도 사람이 그저 거대한 풍경 안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지금까지 보여 줬던 인물 사진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존 작업들이 단지 인물 사진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계층(미국 동부의 상류층) 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번 작품들 또한 단순한 지리적 풍경이 아닌 바로 그 상류층 지역의 사회적 풍경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의 논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근 30년의 세월을 건너뛴 80년대 말과 2017년의 작품들이 체크리스트에 명기된 연도가 아니었다면 직관적으로는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이물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겠지만, 어찌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근본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덧붙이자면 이번 전시도 좋았지만 티나 바니라는 작가를 알게 되면서 찾아본 그녀의 예전 작업들이 나는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특히 초기 작업인 <Family & Relations>와 <Theater of Manners>는 단순히 소재(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최상류 층의 생활)의 흥미로움뿐만 아니라 사진들이 품고 있는 묘한 긴장감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그 긴장감은 단지 구성 때문일 수도 있고, 사진 속 인물들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연유가 무엇이었든 관람자의 시선에까지 와 닿는 긴장감의 기운이 그녀의 작품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기록’이라는 순수한 언어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 바니의 초기 작업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한 단면을 담고 있는 매우 훌륭한 기록이며 이는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바니는 자신의 작업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상류층의 생활방식(to live with quality – in a stlye of life that has quality)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작업들이 상류사회와 그들의 생활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한다면 이는 자신이 아닌 보는 이가 문제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가 ‘엘리트’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져 인식되는 것을 불쾌해했다.********) 그러니, 혹여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그럴 분은 없겠지만, 고까운 시선 말고 순수한 눈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

기본 정보

갤러리명: Paul Kasmin Gallery

주소: 293 10th Ave. / 515 W 27th St. / 297 10th Ave., New York, NY, 10001

운영시간: 화 – 토 10:00 am – 6:00 pm

웹사이트: https://www.paulkasmingallery.com

*18년 2월 27일 기준

**Tinay Barney & Andy Grundberg, <Tinay Barney: Theater of Manners>, Distributed Art Pub Inc., 1997, p. 253.

***가족, 친구들의 일상을 담은 <Family & Relations>, <Theater of Manners>와 유럽 상류층의 생활을 담은 <The Europeans>, 그리고 극단 Wooster Group의 모습을 담은 <Players> 등이 있다.

****<Tina Barney>, Rizzoli, 2017.

*****전시 보도 자료 및 작가 인터뷰 영상. (https://www.paulkasmingallery.com/exhibition/tina-barney–landscapes)

******전시 리뷰, David Rosenberg, <photograph>, March/April 2018, p.90.

*******Tina Barney, <Friends and Relations>, The Smithsonian Institution Press, 1991, p.6.

********Tinay Barney & Andy Grundberg, <Tinay Barney: Theater of Manners>, Distributed Art Pub Inc., 1997,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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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a Barney, <Landsc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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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 날은 볕이 워낙 좋은 날이라 블라인드를 내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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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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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i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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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h of July on Beach, 1989>.

#05. Laurence Miller Gallery

오는 2월이면 개관 34년째가 되는 Laurence Miller 갤러리는 지금까지 250여 회 이상의 전시를 개최하면서 컨템퍼러리 사진과 순수 사진의 빈티지 프린트들을 소개해 왔다. 갤러리 안내글에 따르면 특히 1940년 이후의 미국 사진, 1950년 이후의 아시아 사진들과 사진을 베이스로 한 현대 예술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갤러리 창립자이자 오너인 로렌스 밀러(Laurence Miller)는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초기에는 70년대 미국에 있던 세 곳의 사진 갤러리* 중 하나였던 뉴욕의 LIGHT 갤러리에서 어소시에이트로 근무했었다.

첼시 521 West 26번가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갤러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앞쪽으로 데스크가 있고 그곳에 전시 체크리스트와 방명록이 놓여 있다. 오른쪽은 두 개로 구분된 사무 공간이며 왼쪽으로 주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바로 왼쪽 통로는 작품 보관실로 이어진다. 전시장은 메인 전시 공간과 뒤쪽의 작은 별실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공간은 넓게 트여 있고 아늑했지만 박스 형태의 형광등 조명이 작품 감상에 의외로 불편함을 주었다. 다른 갤러리들에서는 특별히 조명으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수준에서도 느껴질 정도라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루카 캄피조토(Luca Campigotto)의 <Nocturne>과 해리 캘러핸(Harry Callahan),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의 <When Harry Met Aaron> 전 두 개다.

이탈리아 사진가인 캄피조토는 대형 포맷으로 담은 풍경의 대형 인화(큰  작품은 긴 쪽의 길이가 60인치 가까이 된다)가 특징인 작가인데, 이번 전시는 베이징, 상하이, 뉴욕, 런던 등 주요 대도시 랜드마크의 야경 작품들을 걸어 놓았다. 이러한 사진들을 내가 잘 알지 못해 별다른 생각거리가 든 건 없었지만, 이 정도 크기의 대형 인화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디테일이 뭉개지는 건가라는 궁금증은 생겼다. (애초 가까이 다가서 감상할 목적의 작품들이 아니기에 지근거리 디테일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현재 대형 인화의 기술력과 해상도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기술적 호기심이다.)

Laurence Miller 갤러리에 온 이유는 바로 별실에서 전시 중인 <When Harry Met Aaron> 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Gitterman 갤러리의 시스킨드전***을 다녀왔던 이유도 바로 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시회 작명 센스가 어딘가 모르게 살짝 아쉽다는 것만 제외하면(이건 누가 봐도 영화 제목 차용 아닌가? 한때는 내 인생작이었던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다.^^) 전시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전시된 작품은 총 40여 점인데 시스킨드의 초기 작업인 <Harlem Document> 빈티지 프린트도 한 점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미국 추상 사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했던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감상하니 미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각자만의 색깔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았다. 시스킨드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한 추상 표현에 몰두했다면, 앤설 애덤스(Ansel Adams)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고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캘러핸은 사진을 통한 스스로의 내적 감정 표현(그것이 추상이든 무엇이든 간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진의 목적성과 표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두 사람 작품이 선명히 각자의 색을 품게 된 연유일 것 같기도 하다.

1949년에 캘러핸이 자신이 교직에 있던 시카고 디자인 스쿨(The Institute of Design in Chicago)로 시스킨드를 부른 이후 두 사람은 실제로 꽤 오랜 시간 공인된 예술적 동반자 겸 경쟁자 관계였다고 한다. 피터 맥길(Peter MacGill, Pace/MacGill 갤러리 창립자)은 캘러핸을 만날 때면 보통 시스킨드가 함께였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흑백 작품들만 전시를 해 놓았지만 캘러핸은 칼라 작업에 꽤 몰두하기도 했는데, 70년대 초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는 작가 스스로 칼라에만 천착할 것을 다짐하면서 오직 칼라 사진만 찍기도 했었다.

캘러핸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그의 평생 모델이었던 부인 엘레노어(Eleanor)이다. 20세기 미국 사진의 역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유명한 모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엘레노어******는 캘러핸이 사진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피사체였다. 캘러핸은 자신이 자연, 도시, 사람들을 찍으면서 결국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엘레노어의 사진 속에 섞여 들어갔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All of these is blended in with my photographing Eleanor”)*******

캘러핸을 공부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하나는 다중 노출 사진들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한 장소에서 나무를 다중 노출한 <Chicago, 1956>과 건물 창문을 찍은 <Chicago, 1948>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다중 노출 작품들 중 특별히 더 내 관심을 끌었던 건 1952년에 찍은 <Eleanor, Chicago> 사진이었다. (계란을 찍고 배경으로 나무를 담은 후, 마치 나뭇가지에서 나온 것처럼 가운데에 부인 엘레노어의 실루엣을 담은 사진.********) 여러 번의 노출을 한 장의 필름에 담아내면서 정확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찍은 작품인데,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미적, 기술적 감각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흥미로만 보면 시스킨드의 사진이 조금 더 와 닿지만 다양한 기술적 변화 – 포맷, 색상, 노출 등 – 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사진을 통한 감정 표현에 대해 고민했던 캘러핸의 생애에 걸친 작업과 노력은 배울 점이 많았다. 캘러핸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디까지 보여줄 수(표현할 수) 있고, 또 담아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뉴욕의 Witkin, LIGHT, 미시간의 Halsted

**18년 1월 16일 기준

***#03. Gitterman 갤러리 방문기

****<Harry Callahan:Retrospektive=Retrocspective>, Kehrer Verlag, 2013, p. 20.

*****같은 책, p. 11.

******같은 책, p. 47.

*******(영상) Edgara B. Howard and Seth Schneidman, <Harry Callahan:Elaenor and Barbara>, Checkerboard Film Foundation, 1983.

********https://www.artsy.net/artwork/harry-callahan-eleanor-chicago-double-exposure (링크 제목은 double exposure이지만 엄밀히는 triple exposure임.)

기본정보

  • 갤러리명: Laurence Miller Gallery
  • 주소: 521 West 26th Street 5th floor,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금 10:00 am-6:00 pm / 토 11:00 am-6:00 pm
  • 웹사이트: http://www.laurencemiller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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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마주하게 되는 풍경.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캄피조토의 <Nocturne>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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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는 두 개의 사무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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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전시 공간. 뒤쪽 별실이 <When Harry Met Aaron> 전을 진행 중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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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풍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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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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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Callahan, <Eleanor, Chicago, 1948>. – 캘러핸 평생의 모델이었던 부인 엘레노어. / Aaron Siskind, <Peru, 1977>.

일상이라는 상처

일상은 지루하다. 그래서, 이벤트 없는 일상을 일일이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패터슨(PATERSON)’을 보고난 후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지 않는 것도, 어느 순간 이게 영화 속 어느 날이었는지 지난달 나의 하루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도, 그게 주인공이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던 풍경이었는지 어제 내가 본 차창 밖 풍경이었는지 알 수 없어져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영화는 일주일을 – 아침으로부터 밤까지 – 그저 보여주는 식이다. 월요일, 화요일, … 시간은 흐르고 카메라는 기계적으로 정면, 혹은 측면에서 주인공을 관조한다. 주인공은 매일 침대에서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하고, 와이프에게 애정표현을 하(거나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리얼을 먹고, 출근하고, 차에 올라 취미인 시(詩)를 끄적이고, 배차원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버스를 운전하고, 승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차창 밖 풍경을 보고, 점심을 먹고, 시를 쓰고, 다시 버스를 운전하고, 승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차창 밖 풍경을 보고, 버스를 주차장에 대고, 퇴근을 하고, 집 앞 우편함을 바로 세우고, 와이프의 하루를 듣고/보고/칭찬하고, 개와 산책을 하고, 개를 단골 술집 앞에 묶어두고, 바텐더와 얘기를 나누고, (주인공의 의도와 관계없이 주인공의 일상에 뛰어든) 이웃들의 일상에 관여하고,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잔다. 그러면서 일상의 시간의 흐름과, 늘 같아보이지만 늘 다른 관계들, 일상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균열들을, 문득 문득 보여준다.

사실 화요일의 이야기 정도까지는 주인공의 그 이상한 시 – 아마도 언어의 갭에서 오는, 혹은 영문학에 대한 완전한 무지로 인한 몰이해인 것 같지만 – 를 읽으며, 이 속에 무슨 메타포를 숨겼을까 고민했었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라 시 외에는 아무것도 들여다볼 게 없는 것 같았다. 수요일 쯤에는 살짝 졸았다. 아, 이건 너무 지루하잖아. 차라리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이 나았던 것 같아. 그건 최소한 옴니버스 아니었나. 그렇게 반쯤 의자에 파묻혀 있다가, 목요일에 갑자기  “이게 그렇게 편안한 얘기던가?”라고 묻는 듯한 주인공의 얼굴을 마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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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일상에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끼어든다. 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번거롭게 루틴을 바꾸기 싫은 주인공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결혼생활의 근간을 되묻는 듯한 이웃 커플의 사건, 문제될 게 없던 휴대폰의 부재가 만든 작은 불편함과 두려움, 처음부터 존재하기는 했었는지 의심스러운 ‘내’ 공간에 대한 반복적인 침해, 나와는 ‘별’ 관계없이 살아가는 나의 와이프, 그리고 두근거리는 기쁜 소식도 잠시, 수년 동안 써온 원고를 통째로 잃어버리는 일이 이어지는 동안, 그저 무표정한 줄 알았던 주인공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져간다.

영화는, 일상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언제라도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과, 그런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의 항상성에 대한 의지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주인공은 잽처럼 날아드는 상처를 흘려보내는게 아니라 그대로 두들겨 맞으며 쓰러지고 싶은 욕망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일상의 무게를 슬금슬금 관객들에게 전이시키다가 어느 순간 어깨를 짓누르면서, 그렇지, 사실 모든 것이 상처였지, 그렇지 않은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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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운전하기 전(일을 시작하기 전), 점심 먹고 잠시 짬을 내서, 퇴근 후 골방에 박혀서 시를 쓰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출근길의 풍경을, 때로는 점심시간과 퇴근 후의 거리를,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카메라로 바라보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모습과 닮았다. 사실, 어딘가에서 혼자 악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연필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수많은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취미’라고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아마도 스스로를 치유하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탈출구일 수 있겠다. 그런 공감이 생겨서였을까, 주인공의 원고가 사라졌을 때의 망연자실한 상황에서도 그랬지만, 그동안 수고했다, 황망하겠지만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제 자신을 조금 더 위하라며 노트가 건네지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일상은 상처투성이고, 비가역적이다. 그래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견뎌내는 과정이다. 견뎌내기 위해 (영화의 주인공처럼) 시를 쓰던, 카메라를 들고 삶을 관조하던, 일상이 그리워지도록 여행을 떠나던, 그 모든 행위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상을 견뎌내고 다시 살아내고 있는 당신께 이 글을 드린다. 그런 당신이라면, ‘패터슨’을 좋아할 것 같다는 얘기도 속닥하게 해야겠다.

#01. Aperture Gallery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Aperture는 1952년 창간한 사진 계간지이자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사진계 주요 단체 중 하나이다. Aperture는 계간지 발행뿐만 아니라 매년 십여 권 이상의 사진집 및 사진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주요 출판사로서 한국 사진가 김아타와 이정진도 이곳에서 사진집을 출간한 적이 있다. 연간 두 차례 사진집 리뷰 간행물도 발간하며 그 외 다수의 전시, 교육, 워크숍 진행 및 신진 사진가들 작품의 한정판 인화물도 제작/판매한다. 또한 최근에는 전자책 출판과 앱 활용, 데일리 블로그 운영 등등 온라인/모바일 시대에 발맞추려는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

Aperture의 설립자들은 앤설 애덤스(Ansel Adams),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바바라 모건(Barbara Morgan)과 유명한 <사진의 역사>를 쓴 버몬트 뉴홀(Beaumont Newhall)과 그의 부인이자 작가인 낸시 뉴홀(Nancy Newhall)이다. 최초의 설립 목적은 사진가들 서로가 토론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공론의 장을 만들고, 또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창간 이후 마이너 화이트가 1976년까지 편집자로 활약하며 Aperture의 성장을 이끌었다.

Aperture 갤러리는 여러 곳의 갤러리들이 들어와 있는 547 West 27번가 첼시 랜드마크 아트 빌딩의 4층에 자리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재 이사회 멤버들과 재단 설립자 6명의 이름, 그리고 지난 2년 간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흰 벽이다. 비영리 재단이라는 성격 상 기부자들에 대한 감사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사진계의 거장들이라 할 수 있는 설립자들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갤러리 메인 홀 오른편은 주 전시 공간으로 널찍한 사면 벽에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메인 홀 왼편으로는 커다란 통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가운데 Aperture에서 출간한 사진집 및 관련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고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소파도 놓여 있다. 그리고 그곳 끝자락 작은 별실에 별도의 소규모 전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기부자 명단 바로 옆 작은 통로는 한정판 사진의 전시 및 판매를 위한 작은 방으로 이어진다. 판매 작품들은 클래식 사진들의 빈티지 프린트보다는 최근 작가들의 작업이 더 많은데 웹 사이트 소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주로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수상작을 포함한 최종 후보 4팀(개인 3명 및 듀오 1팀)의 작품을 전시하는 2017년 Deutsche Börse Photography Foundation Prize, 2017년 Aperture Portfolio Prize 수상작, 그리고 2017년 Paris Photo–Aperture Foundation PhotoBook Awards 수상작 및 최종 후보작 전시까지 총 3건이다.

이중 Deutsche Börse 사진 재단상 수상작전을 메인 전시 공간에서 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17년 최종 수상자인 다나 릭센버그(Dana Lixenberg)의 <Imperial Courts>이다. 이 작업은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LA 폭동 취재를 위해 중남부 LA를 방문했던 릭센버그가 소외되고 차별받던 Imperial Courts 지역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자 이후 20여 년에 걸쳐 그 지역을 계속 찾아가며 담은 작품들이다.

1993년 릭센버그의 카메라 앞에 섰던 한 아이는 그 2010년 자신의 아이와 함께 다시 한번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1993년의 사진 속에 담긴 또 다른 아이 토니의 포트레이트 옆에 나란히 걸려 있는 2010년의 사진은 바로 그 아이의 추모비이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에 담겨 있는 세월과 그곳의 역사는 이러한 긴 호흡의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만 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릭센버그의 작업은 단순한 포트레이트 작업이 아닌 커뮤니티의 역사, 그리고 그 커뮤니티를 둘러싼 세계를 관통하는 심도 깊은 역사의 기록이다.

최종 후보작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 작가 아오이스카 반 데어 몰렌(Awoiska van der Molen)의 흑백 사진들은 일상적인 풍경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면서, 풍경을 벗어나 추상으로까지 나아가는 작품들이다.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 줄기를 담은 한 이미지는 톤을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칠흑의 산과 한 줄기 용암의 대비가 강하게 와 닿았다. 땅, 바다, 하늘을 한 화면에 담은 또 다른 사진은 각각의 경계가 미묘하게 존재하면서도 흐릿한 느낌에 어떤 새로운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Deutsche Börse 사진 재단상의 다른 후보작들은 소피 칼(Sophie Calle)과 영상/사진 작업을 병행한 듀오 타이요 오노라토(Taiyo Onorato)와 니코 크렙스(Nico Krebs)의 작업이다. 소피 칼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기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보여 주는 작업들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수상 후보작이었던 <My All> 사진집과 헤어짐과 슬픔에 관한 <Exquisite Pain>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은 별실에서는 2017년 Paris Photo–Aperture Foundation PhotoBook Awards의 각 부문별 최종 수상작들과 후보작들을 전시 중이다. 물론 올해의 사진집으로 선정된 인도 사진가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의 <Museum Bhavan>나 올해의 데뷔작 수상작인 매튜 아셀린(Mathieu Asselin)의 <Monsanto, A Photographic Investigation> 작업도 좋았다. 하지만 올해의 데뷔작 부문 후보 중 하나였던 Dawn Kim의 <Creation.IMG>가  조금 더 신기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링 제본 형태의 자가출판 사진집인데 창세기에 나오는 첫 7일 동안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구글의 유사-이미지 검색 기능을 활용하여 검색한 이미지들을 나열하여 보여주려 한 작업이다. 예전에 플리커에서 검색한 이미지만으로 작업을 진행한 작가도 보긴 했지만, 조금 더 일반적인 방식의 사진 작업에 익숙한 내게는 아직 이런 새로운 시도가 난해하다. 다만 이런 시도와 작업들이 인정받는 것을 보면 조금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로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읽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Aperture는 매년 말 Aperture Portfolio Prize를 진행하는데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중 하나가 이 대회의 수상작인 나탈리 크릭(Natalie Krick)의 사진들이다. 이 포트폴리오 상은 비교적 작품이나 작업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진 사진가들을 주 대상으로 하며 소정의 상금과 함께 Aperture 전시도 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기회이다. 한 가지 유의점은 참가 대상이 Aperture의 정기 구독자로 한정되므로 내년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단 정기 구독을 신청하기 바란다. 🙂

*18년 1월 8일 기준

**한인 피해도 매우 컸던 LA폭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으로 당시 억압되어 있던 지역 흑인 사회가 폭발하는 계기였음

기본 정보

갤러리명: Aperture Foundation Gallery

주소: 547 West 27th Street, 4th Floor, New York, N.Y. 10001

운영시간: 월~금 10:00 am – 5:30 pm

웹사이트: https://apertu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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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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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현관에 진열 되어 있는 Aperture의 출간 도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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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흰 벽. 이사회 멤버, 설립자들과 기부자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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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시 공간. 릭센버그의 <Imperial Courts> 작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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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및 휴게 공간. 뒤쪽 벽은 17년 포트폴리오 수상작 나탈리 크릭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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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s Memorial, 2010. Tony, 1993. From <Imperial Cou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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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용암 줄기, 그리고 하늘. From <Blanco at Foam>. 내가 반영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All photos taken by X-Pro2 + CS 21mm.

리뷰인지 먹방인지 헷갈리는 RX100 이야기

RX100이 출시된지도 어언 5년.
버전은 벌써 Ⅴ까지 발표되었다. (2016년 10월 발표)
컴팩트한 사이즈에 1인치 CMOS 이미지센서, 2,020만 화소, 환산화각 28 – 100mm, 최대밝기 F1.8.
가히 최강의 똑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컴팩트한 사이즈로 언제나 휴대가 간편해서
스냅샷과 이른바 먹방에 최적화된 카메라이다.

게다가 꼼수 바운스가 가능한 스트로보가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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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X100을 쓸 때 거의 최대광각으로만 찍어서 별 쓸 일이 없었지만 줌이 된다는 건 이런 샷들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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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P모드에 놓고 오토화밸에 그냥 똑딱똑딱 찍기만 하면 된다.

달리는 차안에서 운전하다가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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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다가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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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스냅샷도 찍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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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된 사진 효과로도 찍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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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상황에서도 부담없이 찍어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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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인 먹방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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