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갑 마을

포르투갈에서의 5일째, 리스보아(Lisboa) 일정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여행의 후반부를 보낼 포르투(Porto)까지는 320km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포르투로 향하면서 몇 군데의 도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의 도시, 코임브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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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까지는 210km로 제법 먼 거리였지만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포장상태가 좋았고, 도로에는 차량이 많지 않아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사실 코임브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적지는 네비게이션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템포를 맞추느라 시속 200km 가까이 달린 탓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두시간이 채 안 걸려 코임브라에 도착했습니다. 대학 부속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있는 것 같았는데, 대학도시는 처음 와보는 터라 자꾸 두리번 거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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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임브라대학교는 1290년 설립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입니다. 2013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언덕위의 대학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설립자인 디니스1세(Dinis I)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로는 다소 낡았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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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엽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코임브라대학교를 위해 기부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제게는 큰 영광일 것입니다, 엽서를 보여주는데 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원하시는대로,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엽서도 마음에 들어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아뿔싸, 차에 지갑을 두고 온걸 알았습니다. 실수다, 지갑을 두고 왔다, 정말 미안하다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엽서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한 장을 고르세요. 당신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순간이 지나고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과 코임브라대학교를 기억하겠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구대학의 건물들이 그려진 엽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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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학교(Velha Universidade) 광장으로 들어서자 주앙3세(João III)의 석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본격적인 돌아다닐 시간은 없어서 광장 주변과 탑, 도서관 정도를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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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방문을 뒤로 하고 코임브라대학교를 떠났습니다. 시간을 좀 더 할애해서 돌아봐도 좋았겠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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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레일라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좋겠지, 나보다 훨씬 잘하니까 싶어서 키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을 자처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뒷좌석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테일 스핀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좌우로 흔들림이 제법 있었습니다. 줄곧 멀미가 날 것 같다던 레일라의 얘기가 이해되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메르세데스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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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목적지인 아베이루(Aveiro)로 접어드는 고속도로에서 산불을 만났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고온현상으로 여기저기 큰 불이 나고 있다더니 실제로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산불을 본 것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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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베니스(Venice)라고 불리우는 아베이루에서 운하의 풍경을 만났습니다. 운하를 중심으로 예쁜 건물들이 서있었습니다만, 어쩐지 전형적인 관광지로 보였습니다. “그냥 갈까?” 레일라의 제안에 따라 곧장 코스타 노바(Costa Nova)로 차를 돌렸습니다. 아졸레주(Azulejo)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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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여 분을 달려 코스타 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코스타 노바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포르투갈의 도자기 제품명으로 더 알려졌습니다만, 본래 대서양과 아베이루강 사이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코스타 노바 제품에 새겨진 로고는 이 마을의 독특한 건축양식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찌보면 인형의 집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성냥갑 같기도 한 형형색색의 스프라이트 무늬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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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의 집들이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이유는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달이고 돌아오지 못했고, 안개가 자욱한 지역 특성상 돌아와서도 자기 집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길을 잃지 말라고 각자 독특한 색과 무늬로 집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기만 한 것 같은 풍경이 사실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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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양과 무늬의 집들 사이를 질리도록 걸어다녔습니다. 스프라이트 뿐 아니라 다양한 색과 무늬로 칠해진 집들이 파란 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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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와 아베이루강으로 걸어갔습니다. 강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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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인근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트립어드바이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역 3위 안에 드는 곳이라면 가도 좋지 않을까?” 앞장 선 레일라를 따라 길가의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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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식 조개찜(Ameijoas a Bulhao Pato)과 해산물 리조또(Arroz de Mariso)를 주문했습니다. 셋이 먹기에 너무 많은 양에 놀라고 해산물이 정말 신선해서 놀랐습니다.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라며 웨이터가 엄지를 내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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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마을의 반대편으로 걸어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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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를 소개하는 가이드북과 웹사이트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니 집안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 집들은 숙소로 제공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정도 머물며 대서양의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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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 뒷골목으로 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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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디냐(Sardina)겠지, 바닥의 물고기 문양을 구경하다 고개를 들자 일광욕 중인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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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자 바닥에 뒹굴뒹굴, 잔뜩 애교를 부렸습니다만, 줄 게 없어서 열심히 머리만 쓰다듬어 줬습니다. 궁딩팡팡도 해줄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간혹 싫어하는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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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하얀 꽃들을 잠시 바라보다 코스타 노바를 떠났습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