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Milk Gallery

문화적 감각이 있는(Culturally coscious) 회사라는 소개글을 달아 놓은 Milk 그룹에서 운영하는 Milk 갤러리는 뉴욕의 여타 상업 갤러리라기보다는 비정기적으로 이벤트성 전시를 진행하는 공간에 가깝다. Milk Group Company는 뉴욕과 LA에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인화를 포함한 디지털 이미징 작업, 홍보/마케팅 이벤트 운영, 모델 캐스팅 및 메이크업까지 일종의 통합 문화/이미지 서비스 기업이다.

첼시 마켓 건물의 끝자락과 길 하나를 건너 마주한 450 West 15번가 건물의 지상층에 위치한 Milk 갤러리는 외부로 향한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볕이 매우 잘 드는 구조이다. 반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간 높이에 있는 갤러리는 중간중간 회전 및 이동이 가능한 가변 벽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시 외 다른 이벤트를 위해서도 활용하기 때문에 공간 면적이 매우 넓은 편이다.

이번에* Milk 갤러리를 찾아간 까닭은 사진집단 매그넘과 후지필름의 협업 프로젝트인 <HOME>**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16명의 매그넘 사진가들이 “집(Home)”이라는 단일한 주제 아래 각자의 시선으로 담은 작품들로 후지필름의 중형 디지털카메라인 GFX50S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X 시리즈 카메라들로 보완하며 작업한 프로젝트이다.

참여 작가들은 올해로 90세인 엘리엇 어윗(Elliot Erwitt)과 아시아 최초의 매그넘 멤버인 히로지 구보타(Hiroji Kubota) 등의 노장들부터 비교적 최근 매그넘에 합류한 조나스 벤디크센(Jonas Bendiksen) 등 신진 세대들까지 다양하게 아우르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 후지필름의 홍보성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무리 매그넘이라 해도 전시 자체에 많이 끌렸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일 도슨트이자 강연회를 진행한 데이빗 앨런 하비(David Alan Harvey)가 아니었다면 아마 굳이 전시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Cuba>와 <Divided Soul> 등으로 유명한 하비 선생님은 작년 12월 뉴욕에서 열린 제주 해녀 특별 전시회 오프닝 때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가까이서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하비의 작품 설명은 사진 자체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살짝 가미된 유머들이 더 귀에 들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 제목에 보이는 것처럼 집(Home)을 담는 것이었어요. 그냥 집에 있으면서 사진을 찍고 돈을 받으면 되니 솔직히 이번처럼 편한 일은 없었죠. :)”

대부분의 사진을 실제 살고 있는 집에서 찍은 엘리엇 어윗의 작품들 앞에선 부동산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여기 이 사진 속의 뉴욕 풍경 멋지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어윗에게는 센트럴파크가 아주 잘 보이는 집이 있어요. 그것도 두 채나 있죠. 전 솔직히 조금 부러워요.”

이탈리아 출신 작가 알렉스 마졸리(Alex Majoli)의 작품들 앞에선 요리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알렉스 마졸리는 칼라를 아주 인상적으로 찍는 친구죠. 이 사진들 보시면 아실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 실은 파스타를 엄청 맛있게 요리한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그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 있어도 그의 요리는 좋아하게 될 겁니다.”

16명의 시선으로 바라 본 “집(Home)”은 그 시선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로웠다. 물리적인 집의 공간에서 시작해 가족의 범위로 확장되는 집의 개념, 그리고 고향과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로 퍼져 나가는 집까지. 단순히 단어 하나의 의미로 정의될 수 없는 “집(Home)”의 모습들이었다.

전시 관람에 이어진 하비의 강연회는 준비된 100석의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찰 만큼 성황이었다. 매그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하비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니 물론 그럴 법도 하다 싶었다.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사진의 길과 최근 작업들,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 대한 조언은, 언뜻 들으면 이미 성공한 선배 세대의 충고쯤으로 비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새겨들을만했다. 미래의 결과를 기대하기 전에 눈 앞의 작업에 충실하라는 것. 자신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돈도, 이름도, 그 아무것도 없이 그저 아이 딸린 유부남 학생 사진가였던 하비의 이야기는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하비는 특히 지금 세대의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많이 주었는데, 명성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라는 이야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당연한 것이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해 주었다. (하비는 자신이 창간한 온라인 매거진 Burn***을 통해 신진 사진가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을 여러모로 하고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매거진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 전시 방문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하비가 자신의 학생이라고 소개한 사진가 아거스 폴(Argus Paul)****의 작업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하비의 강연회가 끝난 후 잠시 훑어보기 위해 집어 든 폴의 사진집은 놀랍게도 세월호와 단원고 학생들에 관한 다큐 작업이었다.

“어? 이거? 너 이 일을 어떻게 알고 작업한 거니?”

“아.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사촌을 사고로 잃었거든. 그 이후 세월호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

뉴욕의 한적한 갤러리에서 마주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작업이라, 그리고 마침 4월이 찾아오고 있던 터라 아마도 폴의 작업이 더 눈에 들어왔을 테다. 알고 보니 서울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교포 사진가인 폴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사회의 여러 이슈들에 관해 많은 기록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이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지금 이곳은 4월 16일이다. 4년 전 그때, 나는 독일에 머물고 있었는데 수십 년째 독일에 살고 계신 고모님과 독일계 혼혈인 사촌 형, 동생을 보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저 어린 학생들을 저렇게 보내 버리는 나라의 모습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라는 생각이었다.

다만 뉴욕 한 구석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언젠가는 그날의 모든 슬픔들이 보듬어지길 바라본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Milk Gallery
  • 주소: 450 W 15th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월-금 10:00 am – 6:00 pm / 토-일 11:00 am – 7:00 pm
  • 홈페이지: http://www.themilkgallery.com

*18년 3월 11일 기준.

**전시 홈페이지: http://home-magnum.com/en/

***http://www.burnmagazine.org

****http://www.arguspaul.com

DSCF9954

전시장 풍경. 가변 벽들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을 구성하였다.

DSCF9952

<HOME> 전시.

DSCF9962

작품 설명을 진행 중인 하비 선생님.

DSCF9956

엘리엇 어윗의 작품들. 올해로 90세인 어윗의 2017년 최신작이다.

DSCF9955

어윗 사진 속의 위트는 여전한 것 같다.

DSCF9953

알렉스 마졸리(Alex Majoli).

DSCF9958

유년의 기억을 좇아간 히로지 구보타의 작품들.

DSCF9959

알렉 소스(Alec Soth)와 알렉스 웹(Alex Webb).

DSCF9961

전시장 한편에 있던 후지필름 체험 및 서비스 공간. GFX50S는 생각보다 작고 가벼웠다.

#17. Gladstone Gallery

(이번 탐방기는 일부 불편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트 딜러인 바바라 글래드스톤(Barbara Gladstone)이 1980년 설립한 Gladstone 갤러리는 소호 Wooster 가의 작은 공간에서 첫출발을 시작하여 90년대에 첼시로 자리를 옮기며 현재까지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오너인 글래드스톤은 2012년 포브스지의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 기사에서 9위로 선정되기 했을 정도로* 명망 있는 딜러로 지금은 첼시 두 곳을 포함하여 뉴욕에만 세 곳,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세운 벨기에 브뤼셀의 갤러리까지 세계적으로 총 네 곳의 공간을 운영 중이다. Gladstone 갤러리는 사진을 포함하여 조각,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컨템퍼러리 예술작품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키스 헤링(Keith Haring)의 작품들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를 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첼시의 515 West 24번가에 위치한 전시 공간이다. 인도에 접해 있는 커다란 젖빛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어 있는 갤러리는 내부 배치에 따라 1, 2, 3 세 개의 전시홀로 구분되어 있다. 출입문 바로 앞에 위치한 데스크 뒤쪽으로 2 전시홀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간이벽을 사이에 두고 그 왼쪽으로 1 전시홀이 위치한다. 1 전시홀과 2 전시홀이 비슷한 크기로 메인 전시홀을 형성하고 있다면 갤러리 뒤쪽 좁은 통로를 지나 연결되어 있는 3 전시홀은 매우 작은 공간으로 천장에 난 자연채광창이 특징이다. 전시홀을 연결하는 좁은 통로 사이에는 사무실로 연결되는 별도의 문이 있다.

전시를 보기 위해 갤러리를 방문한 날**, 1 전시홀 한쪽에서 작품들을 둘러보던 장년 커플의 소곤대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Isn’t is disturbing? (좀 불편하지 않아요?)”

“So disturbing! (굉장히요!)”

우연히 듣게 된 대화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던 이번 전시는 바로 <Robert Mapplethorpe>. 작품의 소재와 표현 때문에 많은 논란의 중심이었고, 스스로의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없었던 듯 결국 후천성 면역결핍증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이다. 작가 사후의 순회 사진전이었던 <Mapplethorpe: The Perfect Moment>와 이를 둘러싼 법정 공방, 그리고 그 시기에 벌어진 수백 건의 논쟁***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작품들이 촉발시켰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아마 지금도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를 꼽으라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뉴욕 퀸즈의 가톨릭 가정에서 여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메이플소프는 특별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무언가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겠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그 방향성은 불명확했다. 특히 향후 그의 사진 세계를 지배한 핵심 주제인 동성애는 가톨릭 교육의 영향을 받았던 메이플소프가 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맹인 판매인의 가판대에서 훔친 동성애 포르노 잡지를 통해 처음 접한 이미지들은 향후 그가 죽을 때까지 천착하게 된 소재가 되는데, 이는 직접적인 성적 자극보다는 이러한 소재를 통해 오직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해 내겠다는 생각에 더 가까웠다.****

전시 작품 수는 총 50점으로 메이플소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한 육체, 성애의 이미지들과 함께 단아한 미가 느껴지는 정물 사진들, 그리고 몇몇 인물 포트레이트들이다.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메이플소프의 사진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주었고, 전시장을 거닐던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날 정도의 사진들도 제법 있었다. 반면 진짜 같은 작가의 작업인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정갈한 꽃 사진들은 매우 부드러운 미를 품고 있어 다른 작품들에 놀란 마음과 눈을 진정시켜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메이플소프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 퀸즈 플로랄 파크의 교구 성당에서 재임했고, 그의 장례 미사를 집전했던 스택(Stack) 신부는 메이플소프의 이러한 정물 작품들이 그가 찍은 다른 성향 – 동성애/S&M(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Sex & Magic*****) – 의 작품들을 상쇄해 주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는 사진가인 로 에쓰리지(Roe Ethridge)*******로 전시 작품들의 선정부터 배치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번 MOMA <Stephen Shore> 전의 언론 간담회 때 쇼어(Stephen Shore)의 말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전시에 관한 그의 생각이었다. “이번 전시는 제가 아니고 (큐레이터인) 퀜틴 바젝(Quentin Bajac)의 전시입니다. 제가 76년 MOMA 전시 때 받았던 조언 중 하나가 전시는 큐레이터에게 맡기라는 것이었죠. 제가 지금까지 쭉 지켜 온 조언이기도 하고요.”******** 전시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큐레이터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Robert Mapplethorpe> 또한 모든 작품을 리뷰하고 선정하고 구성한 에쓰리지의 전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작가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사진들의 선정에 있어 전적으로 큐레이터의 생각과 소신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금번 전시에서 사진들이 주는 임팩트를 특히 강화시켜 준 것은 작품들의 배치였다. 성애 이미지들 사이사이 병치된 정물과 꽃 사진들의 대비는 각각의 작품이 원래 담고 있던 느낌을 훨씬 배가시켜 주었다. 이러한 전시 구성은 메이플소프의 작품들을 바라 보고, 또 보여 주려 하는 큐레이터 에쓰리지의 관점이며 그러한 점에서 결국 그가 바라본 작가 메이플소프의 세계일 것이다.

Gladstone 갤러리가 뉴욕에서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대표하게 된 것은 작년 4월로 이제 일 년이 되었다. 그전까지 약 15년간은 Sean Kelly 갤러리가 뉴욕에서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대표하는 갤러리였다. 관련 기사*********를 보면 이전 갤러리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마무리하고 Gladstone과 시작하는 새로운 동거를 기대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코멘트가 나온다. 물론 예술가의 작품 세계와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 갤러리와 소속 작가들 관계의 시작이겠지만, 어느 정도 상업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본다면, 메이플소프 같은 유명인을 대표하게 된 건 Gladstone 갤러리에게 분명 득이 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생은 짧았지만, 그 뒤에 남겨진 발자취만큼은 결코 짧지 않았던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이미 그가 죽은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작품들이 뿜어 내는 힘은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강렬했다. 오래간만에 볕이 좋던 날씨인 지난 토요일 오후에 뉴욕 퀸즈 미들 빌리지의 St. John 공동묘지를 찾았다. 메이플소프의 뜻에 따라 화장된 유해는 그곳에서 그의 부모님과 함께 잠들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묘비 하나가 다인 곳. 온갖 논란을 불러왔던 예술가의 마지막 안식처는 몇몇 장례 행렬 차량을 제외하면 적막하리만치 고요했다. 마치 잠시 구름 사이로 비친 작은 햇살만이 그가 여기서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듯.

기본정보

  • 갤러리명: Gladstone Gallery
  • 주소: 515 W 24th St. New York, NY 10011 / 530 W 21st St. New York, NY 10011 / (Gladstone64) 130 East 64th St. New York, NY 10065.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s://gladstonegallery.com

*포브스 기사: https://www.forbes.com/sites/michaelnoer/2012/05/03/americas-most-powerful-art-dealers/#2beb0b1262a6 (크리스티, 소더비 등의 대형 업체 및 퍼블릭 갤러리를 운영하지 않는 딜러들은 선정에서 제외한 순위임.)

**18년 3월 9일 기준.

***진동선, <현대사진가론>, 태학원, 1998, p. 75.

****Patricia Morrisroe, <Mapplethorpe>, Random House, Inc., 1995, Location 492 of 8138.

*****같은 책, Location 2488 of 8138.

******같은 책, Location 188 of 8138.

*******Roe Ethridge는 Gladstone 갤러리 소속 사진가로 곧 전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갤러리 아티스트 소개 페이지 참조: https://gladstonegallery.com/artist/roe-ethridge/work#&panel1-1

********MOMA 전시 안내 페이지: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3769?locale=en.

*********Art News: http://www.artnews.com/2017/04/28/gladstone-gallery-now-represents-the-estate-of-robert-mapplethorpe/

DSCF9827

갤러리 정문.

DSCF9826

입구로 들어서 처음 마주하는 풍경은 데스크와 천장까지 맞닿은 높은 책장이다.

DSCF9818

1 전시홀 풍경. 우연히 들려온 장년 커플의 대화는 내가 누구의 전시에 왔는지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DSCF9823

2 전시홀 풍경.

DSCF9811

좁은 통로를 지나면 3 전시홀로 이어진다. 3 전시홀에는 작가의 자화상 한 점만이 걸려 있었다.

DSCF9825

왼쪽부터 <Pictures / Self Portrait, 1977>, <Pictures / Self Portrait, 1977>.

DSCF9819

<Eva Amurri, 1988>.

DSCF9817

왼쪽부터 <Lisa Lyon, 1982>, <Apples and Urn, 1987>, <Jim and Tom, Sausalito, 1977>.

DSCF9814

왼쪽부터 <Freesia, 1982>, <Marty Gibson, 1982>, <Daisy, 1978>.

DSCF9822

왼쪽부터 <Carol Overby, 1979>, <Phillip Prioleau / Cock, 1980>, <Azalea, 1979>, <Patti Smith, 1978>, <Watermelon with Knife, 1985>, <Baby Larry, 1978>, <Sean Young, 1985>.

DSCF9824

위쪽부터 <Richard Gere, 1982>, <Robert Rauschenberg and Trisha Brown, 1983>.

DSCF9815

<Self Portrait, 1988>. 죽기 직전 해의 자화상이다.

DSCF0415

뉴욕 퀸즈 St. John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메이플소프의 묘비.

#16. Yossi Milo Gallery

2000년에 개관한 Yossi Milo 갤러리는 사진을 중심으로 한 컨템퍼러리 예술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는 곳으로 2012년 현재의 첼시 공간으로 이전하며 십 년이 넘는 연혁을 쌓아 가고 있는 곳이다. 갤러리의 현재 소속 작가 중에는 <Tree> 시리즈 작업을 진행한 한국인 사진가 이명호(Myung Ho Lee)가 있으며 2009년과 2017년에 작가의 해당 시리즈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한국 작가 윤지선(Yoon Ji Seon)의 프로젝트 작업을 전시하기도 했으니 Yossi Milo 갤러리는 상대적으로 한국 작가들과 연이 많은 곳이다.

245 10번가 건물 1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가운데의 좁은 통로를 중심으로 이스트 홀과 웨스트홀 두 곳의 전시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전시홀 중간에는 노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으며, 가운데 통로 양 옆으로 데스크와 별도의 뷰잉 룸 및 사무공간, 그리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출입구와 붙어 있는 이스트 홀은 일부 자연광과 조명을 활용하여 전시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고, 안쪽의 웨스트홀은 이스트 홀에 비해 조금 더 넓으며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 점을 감안하여 더 밝은 조명을 준비해 놓았다. (참고로 지금은 갤러리 건물 전면이 공사 중이라 이스트 홀은 조금 어두운 편이다.) 통로의 데스크 위에 체크리스트, 보도 자료 등과 작가의 사진집이 놓여 있어 전시와 함께 감상할 수도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는 독일 사진작가 마쿠스 브루네티(Markus Brunetti)의 <FACADES – Grand Tour>이다. Yossi Milo 갤러리에서 열리는 브루네티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지속해서 작업해 온 <FACADES> 시리즈의 최신작들을 전시 중이다. ‘Facade(파사드)’는 건축 용어로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또는 인상적인 면’을 뜻하는 용어이다. 현대에 들어 다양한 디자인으로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건물의 정면(현관)이 한 건물을 대표하는 ‘파사드’라 할 수 있다. 사진작가인 브루네티는 컴퓨터 장비를 가득 실은 차를 끌고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성당, 교회, 수도원 등의 고건축물의 파사드를 채집, 기록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 중에는 밀라노의 두오모 등 유명 건축물부터 리투아니아의 정교회 건물이나 노르웨이 보르군드의 목조 교회당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들도 있다. 서유럽 지역 중심으로 작업을 시작했던 작가가 점차 전유럽으로 관심의 범위를 확장하여 작업해 온 결과이다.

전시장에 들어서 사진을 둘러보며 처음 든 생각은 독일 출신인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Bernd & Hilla Becher)의 유형학(Typology) 사진이었다. <급수탑>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 유형학 사진 계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베허 부부는 자신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일명 베허학파 작가들을 만들어 내 왔다. 이번 전시작들도 이러한 유형학 사진의 전통을 따라 여러 건축물의 파사드들을 일종의 규칙적 형을 따라 담은 작품들로 전시 보도 자료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베허 부부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당신의 사진 감상 능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예전에 베허 부부의 작품들에 관한 기계/사진 비평가 이영준 교수님의 북 토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교수님이 말한 작품에 대한 감상평이었는데 대략의 요지는 이랬다.

“여러분은 베허 부부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있나요? 저는 베허 부부 사진들의 힘은, 유형학이고 뭐고 다 떠나서 일단 그 작품의 디테일과 정교함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급수탑> 사진들을 보세요. 일체의 왜곡 없이, 정면 그대로의 모습을 이렇게 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래서 베허 부부의 작품들은 단순히 유형학이 아니라 사진 자체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되죠.”

(베허 부부의 작품들에 감동하여, 마침 조금 친분이 있던 갤러리라 할인을 좀 받아 작품을 살까 하고 가격을 문의하였는데 교수님 생각보다 영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는 후일담은 덤이었다.^^)

이번 전시에 걸린 브루네티의 사진들에서 내가 느낀 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우와, 뭐지? 도대체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한 사진들. 성당 기둥에 새겨진 조각상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세세하게 손에 잡힐 듯했다. 60인치가 넘는 대형 인화물에서 느껴지는 디테일의 정교함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브루네티 사진들의 디테일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사진을 만든 방법에 있었다. 예를 들어 <Trondheim, Nidarosdomen> 작품에 대해 명기된 체크리스트의 제작연도는 2007-2017이다. 11년에 걸쳐 한 장의 사진의 만든 것이다. 다른 사진들도 이보다 길지는 않지만 최소 몇 년의 시간을 작품 제작에 소요하였다.

이른 아침의 옅은 빛을 광원으로 택한 브루네티는 파사드의 제일 아래부터 위까지 렌즈를 따라가며 1제곱미터 단위로 면의 일부분을 잘라 수천 장의 사진들을 담는 작업을 몇 주, 몇 년에 걸쳐 진행했다. 이후 정교한 컴퓨터 작업을 거쳐 파사드 전체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한 것이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작업을 거쳐 기둥 조각상 하나하나의 섬세함과 건물 대리석 한 장 한 장이 담고 있는 세월의 질감이 생생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이번 갤러리 탐방에 함께했던 짝꿍도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갤러리 매니저에게 가격을 물어본다. 인화 사이즈에 따라 대략 천~이천만 원 중반대의 가격. 에라 모르겠다 하고 미국을 떠날 때 한 장 지르자는 걸, 보관할 곳도 없다고 말리긴 했지만 이런 작품 하나 집 안에 걸어 두고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즐거운 시간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Yossi Milo Gallery
  • 주소: 245 10th Ave. (between 24th & 25th St.),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yossimilo.com

*18년 3월 1일 기준.

**전시 보도 자료. http://www.yossimilo.com/exhibitions/2018_02-markus_brunetti/

***전시 보도 자료.

DSCF9789

건물 전면은 공사 중이라 족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DSCF9785

이스트 홀 전시 풍경. 뒤쪽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데스크이며 통로를 지나 웨스트홀로 연결된다.

DSCF9782

웨스트홀 전시 풍경.

DSCF9781

가장 큰 작품은 긴축이 113인치에 달했다. <Nürnberg, Sankt Lorenz, 2012–2017>

DSCF9783

<Vendome, Eglise de la Trinité, 2013–2018>

DSCF9787

<Lichfield, Cathedral, 2014–2017>

DSCF9788

<Nürnberg, Sankt Lorenz, 2012–2017>. 부분.

#15. Benrubi Gallery

창립자인 보니 벤루비(Bonni Benrubi)가 자신의 이름을 딴 Bonni Benrubi 갤러리를 설립한 것은 1987년이다. Howard Greenberg, Gitterman 갤러리 등이 있는 57번가의 풀러 빌딩에 첫 둥지를 틀었다가 이후 첼시로 자리를 옮겨 왔고, 2012년 설립자인 보니 벤루비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현재는 Benrubi 갤러리로 이름을 바꾸고 3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갤러리 소개글에 따르면 20세기 및 컨템퍼러리 사진 작품들에 특히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갤러리 소속 작가들 중에는 일본 작가 와타나베 히로시(Watanabe Hiroshi)도 포함되어 있다.

갤러리가 위치한 521 W 26번가 건물은 이전에 방문했던 Laurence Miller 갤러리도 들어와 있는 곳으로 Benrubi 갤러리는 2층에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왼쪽은 데스크 및 작은 사무공간으로 체크리스트 등 전시 관련 자료가 놓여 있으며, 오른쪽은 회의실인데 유리창을 통해 안에 걸려 있는 작품들은 자유로이 볼 수 있다. 앞쪽으로 직방형의 메인 전시홀이 펼쳐져 있으며 왼쪽의 데스크를 돌아 통로 쪽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 별실인 프로젝트 스튜디오가 메인홀과 별개의 전시를 진행할 수 있도록 구분되어있다. 그 뒤쪽은 사무실과 작품 보관고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간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갤러리 소속 작가인 제프리 밀스타인(Jeffrey Milstein)의 <Leaning Out>과 갤러리가 작품을 보유 중인 패트릭 D. 파그나노(Patrick D. Pagnano)의 <Empire Roller Disco> 두 개다.

이 중 ‘몸을 굽혀 밖으로 내밀다’는 뜻을 가진 <Leaning Out>은 제목이 은연중에 드러내듯 헬기와 소형 비행기를 타고 수 km 상공에서 담은 항공사진 작품들 전시이다. 작가인 밀스타인은 오래 시간 동안 LA, 뉴욕 등 대도시와 공항, 항만 등을 담은 항공사진 작업을 진행해 왔고 이번 전시에 그 작업들 중 일부가 걸렸다. 전시 작품 수는 총 14점이며 큰 사진은 긴 폭의 길이가 70인치, 작은 작품들도 40인치 이상은 되는 대형 작업들이다.

밀스타인의 항공사진들은 수천만의 인구가 밀집한 메트로폴리탄, 기술 발전의 산물인 대형 발전소와 항만, 공항 등 인간이 만든 풍경이지만, 바로 그 인간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을 보여 준다. 기존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질서와 아름다움이다. 뉴욕 5번가를 담은 사진은 수직으로 솟아오른 건물들이 촘촘한 작은 블록이 되어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차와 길 속으로 섞여 들어가 만든 풍경이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런던의 게이트윅 공항을 담은 작품은 분명 인공의 풍경인데 마치 남미 평원의 미스터리한 고대 그림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2차원의 평면에 출력된, 게다가 사선이 아닌 평행한 시선으로 바라본 경치가 그 높이로 인한 아찔함 때문에 보는 이에게 현기증까지 느껴지게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사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사진이 표현 가능한 영역에 대한 외연적 확장은 필연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니엡스가 담은 최초의 사진이 8시간을 노출을 필요로 한 반면, 지금은 우리가 눈 한번 깜박할 시간보다 빨리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타임이 선정한 100대 사진에도 선정되었던 해럴드 에드거튼(Harold Edgerton)의 우유 방울 왕관 사진**이나 머이브리지(Edward Muybridge)의 달리는 말의 연속 사진*** 등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항공사진 또한 기술 발전의 혜택을 적지 않게 입은 분야일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엔 단순히 카메라와 렌즈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기술들(항공, 기계 공학 등)들의 발전까지 포함해서이다.

비용이든, 시간이든 항공사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시선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한국에서도 한때 유명세를 탔던 ‘하늘에서 본’ 시리즈의 작가 얀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의 작품들도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쉽사리 볼 수 없는 풍경이라는 점이 인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밀스타인의 작품들은 단순히 시선의 스펙터클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무언가가 들어있다. 이는 인간이 만든 풍경들에 천착한 항공사진 <Flying> 시리즈뿐만 아니라 <Airliners>, <Helicopters and Blimps>**** 등 바로 그 하늘을 나는 기계에 집중해 왔던 작가의 눈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미를 새롭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물론 모든 사진들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대형으로 인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작품들은 그 인화물들을 실제 마주할 때의 느낌이 화면 상의 이미지를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밀스타인 전시도 직접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좋았다.

최근에 감상한 전시들 중 이와 같은 대형 작업들이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대형 인화의 세계에 빠져 들고 있는 중인데, 이다음에 이야기할 Yossi Milo 갤러리의 전시 또한 대형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한 전시이다. (그렇다, 마지막은 다음 편 떡밥이다.) 그럼 다음 편을 기다리는 분들이 생기길 바라며 이번 방문기는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기본정보

  • 갤러리명: Benrubi Gallery
  • 주소: 521 W 26th St., 2nd Fl., New York, NY 1000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benrubigallery.com

*18년 2월 28일 기준.

**http://100photos.time.com/photos/harold-edgerton-milk-drop

***http://100photos.time.com/photos/eadweard-muybridge-horse-in-motion

****갤러리 아티스트 소개 페이지 참조: http://benrubigallery.com/artist/75/jeffrey-milstein

DSCF9775

<Leaning Out> 전시 풍경.

DSCF9773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오른쪽은 회의실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DSCF9780

엘리베이터 왼쪽은 데스크와 작은 사무공간이 있다. 그 공간 벽면도 작품을 위해 활용되었다.

DSCF9777

가운데 뒤쪽으로 보이는 통로가 프로젝트 별실 및 작품 보관고로 이어지는 곳이다.

DSCF9772

<NYC Fifth Avenue, 2016>

DSCF9774

<Gatwick 2 Planes, 2016>

DSCF9771

프로젝트 공간에서 진행되던 패트릭 D. 파그나노의 <Empire Roller Disco>

#14. Paul Kasmin Gallery

Paul Kasmin 갤러리는 아트 딜러인 Paul Kasmin이 1989년 소호에 처음 문을 연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전후 및 미국 모더니즘 사조의 예술작품들에 집중하여 온 갤러리이다. 미술, 조각, 설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대표하고 있으며 사진 전문 갤러리는 아니지만 티나 바니(Tina Barney), 로버트 폴리도리(Robert Polidori) 등의 사진가들도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갤러리 소속 작가 중에는 ‘LOVE’ 조각상으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도 포함되어 있다.

Paul Kasmin 갤러리는 현재 첼시에 세 곳의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동시에 다른 전시들을 병행하기 때문에 여러 전시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게다가 2018년 말 첼시에 또 하나의 전시 공간을 열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전시들을 동시에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중 이번에 찾아간 곳은 297 10번가에 자리한 갤러리로 10번가와 27번가가 만나는 사거리의 북서쪽 코너에 자리 잡고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첼시 공원과 마주하고 있는 갤러리 공간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높은 천장고로 탁 트인 느낌을 주는 직방형의 홀로 한쪽 구석에 직원이 근무하는 간이 책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단출한 공간이다. 출입구가 있는 동쪽 전면 및 남쪽 벽의 일부가 유리이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강한 햇살이 전시를 방해하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내려 두었다. 책상 위에는 체크리스트와 전시 관련 자료 등이 함께 놓여 있다.

지금* 전시를 진행 중인 <Landscapes>는 미국 사진작가 티나 바니의 새로운 작품들로 그녀가 대형 뷰 카메라로 담은 풍경 사진들이다. 작품 수는 11점으로 많지는 않은데, 큰 사진은 긴 폭이 60인치 가까이 되는 대형 인화물들로 작가가 80년대 말과 2017년에 작업한 사진들을 함께 걸어 두었다.

바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속해 있던 미국 동부 최상류 층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잘 알려진 사진가이다. 가족, 친구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에 대한 스냅들인데 작가 자신이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하며 사진을 담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네오-다큐멘터리 장르로 불리기도 한다.** 가족을 담은 첫 작업 이후 지금까지 사진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 오는 동안 바니의 작업은 그 대상과 주제가 무엇이든 모두 인물을 담은 작업들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발표된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전시는 그녀가 처음으로 보여 주는 풍경 사진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80년대 말 일부 풍경 사진을 시도했던 바니는 그 작업이 자신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고 느꼈고, 이후 최근까지 풍경은 그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2017년에 발간된 회고록 성격의 새로운 사진집****을 위해 예전의 네거티브들을 다시 살펴보던 중 오래전에 찍었던 풍경 작업들이 다시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이후 2017년에 새롭게 담은 사진들과 예전 사진들을 함께 이번 전시를 통해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사람이 아예 들어있지 않거나 (<Drive-in, 2017>, <Dusk, 1989>) 또는 있더라도 사람이 그저 거대한 풍경 안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지금까지 보여 줬던 인물 사진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존 작업들이 단지 인물 사진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계층(미국 동부의 상류층) 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번 작품들 또한 단순한 지리적 풍경이 아닌 바로 그 상류층 지역의 사회적 풍경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의 논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근 30년의 세월을 건너뛴 80년대 말과 2017년의 작품들이 체크리스트에 명기된 연도가 아니었다면 직관적으로는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이물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겠지만, 어찌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근본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덧붙이자면 이번 전시도 좋았지만 티나 바니라는 작가를 알게 되면서 찾아본 그녀의 예전 작업들이 나는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특히 초기 작업인 <Family & Relations>와 <Theater of Manners>는 단순히 소재(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최상류 층의 생활)의 흥미로움뿐만 아니라 사진들이 품고 있는 묘한 긴장감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그 긴장감은 단지 구성 때문일 수도 있고, 사진 속 인물들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연유가 무엇이었든 관람자의 시선에까지 와 닿는 긴장감의 기운이 그녀의 작품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기록’이라는 순수한 언어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 바니의 초기 작업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한 단면을 담고 있는 매우 훌륭한 기록이며 이는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바니는 자신의 작업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상류층의 생활방식(to live with quality – in a stlye of life that has quality)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작업들이 상류사회와 그들의 생활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한다면 이는 자신이 아닌 보는 이가 문제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가 ‘엘리트’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져 인식되는 것을 불쾌해했다.********) 그러니, 혹여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그럴 분은 없겠지만, 고까운 시선 말고 순수한 눈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

기본 정보

갤러리명: Paul Kasmin Gallery

주소: 293 10th Ave. / 515 W 27th St. / 297 10th Ave., New York, NY, 10001

운영시간: 화 – 토 10:00 am – 6:00 pm

웹사이트: https://www.paulkasmingallery.com

*18년 2월 27일 기준

**Tinay Barney & Andy Grundberg, <Tinay Barney: Theater of Manners>, Distributed Art Pub Inc., 1997, p. 253.

***가족, 친구들의 일상을 담은 <Family & Relations>, <Theater of Manners>와 유럽 상류층의 생활을 담은 <The Europeans>, 그리고 극단 Wooster Group의 모습을 담은 <Players> 등이 있다.

****<Tina Barney>, Rizzoli, 2017.

*****전시 보도 자료 및 작가 인터뷰 영상. (https://www.paulkasmingallery.com/exhibition/tina-barney–landscapes)

******전시 리뷰, David Rosenberg, <photograph>, March/April 2018, p.90.

*******Tina Barney, <Friends and Relations>, The Smithsonian Institution Press, 1991, p.6.

********Tinay Barney & Andy Grundberg, <Tinay Barney: Theater of Manners>, Distributed Art Pub Inc., 1997, p. 12.

DSCF9766

Tina Barney, <Landscapes>.

DSCF9765

내가 간 날은 볕이 워낙 좋은 날이라 블라인드를 내려 두었다.

DSCF9763

전시장 풍경.

DSCF9764

<Drive-in, 2017>.

DSCF9760

<4th of July on Beach, 1989>.

#13. Deborah Bell Gallery

Deborah Bell 갤러리는 사진 딜러로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아 온 데보라 벨(Deborah Bell)이 2001년 첼시에 개관한 퍼블릭 갤러리이다. 이후 2011년까지 10년간 운영되다가 관장인 벨이 크리스티의 사진 부문 수장으로 옮겨 가면서 잠시 문을 닫았고, 이후 201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와 재개관한 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갤러리 소개글에 따르면 다양한 보유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세계대전 사이의 유럽 사진들,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미국 사진들에 집중하고 있다. 갤러리가 작품을 보유한 작가들은 지금 전시 중인 로즈 만델(Rose Mandel)을 포함하여 일본 사진작가 다이도 모리야마(Daido Moriyama), 유형학 사진의 독일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등이 있다.

센트럴 파크 동쪽 16 East 71번가의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는 가정집 공간을 개조하여 사무실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입구에서 벨을 누른 후 문을 열어주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예스러운 타원형의 계단을 따라 갤러리가 있는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메인 전시홀인 갤러리의 거실 한가운데에는 탁자와 의자, 전시 관련 보도 자료 및 사진집 등이 놓여 있으며, 동쪽 벽면에 자리 잡은 벽난로 위에는 체크리스트와 기타 전시 자료들이 놓아져 있다. 출입문 바로 왼쪽에 위치한 작은 방은 사무실 및 작품 보관고이다.

현재* 진행 중인 로즈 만델(Rose Mandel)의 그룹전 <Rose Mandel & Friends>는 로즈 만델,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 그리고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의 그룹전이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Rose Mandel : A Sense of Abstraction>에 이어 연속한 만델 관련 전시로 아마 올해 갤러리에서 조금 더 집중하기로 한 작가인 듯하다.

1910년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인 만델은 당시의 유명한 사진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오랜 시간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단단히 쌓아 올린 작가로 앤설 애덤스(Ansel Adams)와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도 인정하였던 작가이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만델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소개로 CSFA***에서 애덤스의 수업을 들으면서 사진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만델이 화이트와 커닝햄과 교류하게 된 시기도 이때이며, 특히 만델의 사진을 높이 샀던 화이트는 CSFA에서의 공동 강의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 동안 만델의 사진 세계에 대한 지지자가 된다.****

이번에 전시된 총 20점의 작품들 중 만델의 작품은 12점으로 주로 작가가 사진 인생의 후반기(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에 집중하였던***** 물결, 파도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들의 순간을 포착한 추상 사진들이다. 사진을 배우던 초기에 찍었던 도시 사진들에서 점차 자연과 풍경의 불명확한 형들로 포커스를 옮겨 간 만델은 후기에는 장노출과 확대를 통한 이미지 생산에 집중하였다(본격적인 추상 사진 작업 전까지는 4×5 사이즈의 밀착 인화만 하였으나 이후 8×10으로 확대 인화를 하게 된다). 여러 작품들 중 특히 물결 위에서 늘어진 실 조각처럼 부서지는 햇빛의 잔상들은 사진 설명이 없다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진 자체가 주는 미묘한 형이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한번 작품들을 살펴보던 중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마침 안 그래도 질문이 있는데 여기 걸려 있는 커닝햄 사진 말이야. 체크리스트에는 촬영 연도가 1930년대로 되어 있는데 마운트에 연필로 작게 적혀 있는 것은 1920년이거든. 그래서 혹시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아, 정말이네? 잠깐만 기다려 봐. 저기 데보라, 여기 손님이 질문이 하나 있으신데요.”

갤러리 매니저가 사무실에 있던 관장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거? 맞다. 나도 다시 확인해 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다른 일 때문에 깜박하고 있었네. 알려줘서 고마워.”

사진이 레퍼런스 된 책들을 뒤져 다시 연도를 확인하고 마운트의 작은 글씨가 1920이 맞는지 한번 더 들여다보고 정신없이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지금 다시 한번 수전의 메일을 확인했는데 (촬영 연도가) 1930년대로 되어 있거든. 지금 그 메일을 전달했으니까 나를 cc로 넣고 네가 수전에게 메일 좀 보내 줘. 확인해 보자.”

그러더니 내게로 고개를 돌린 데보라가 말했다.

“알려 줘서 다시 한번 고마워. 사실 이렇게 오래된 (거진 100년 가까이 된 사진이다) 사진들의 연대를 아주 정확하게 확인한다는 것이 조금 어려울 때도 있긴 하거든. 보통은 작가가 적어 놓은 연대가 맞긴 한대 그들도 가끔 틀리는 경우가 있긴 하기 때문에 다시 확인해 볼게.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로버트 프랭크도 자기 작품의 연대를 틀리게 적은 적이 있었어. :)”

지난번에 다른 갤러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음, 아마 우리가 미스-프린트했나 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데보라의 반응은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허투루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체크리스트를 확인해 보니 해당 작품의 촬영 시기를 1920년대로 수정하여 놓았다.)

이러한 태도는 관장인 데보라 벨이 수십 년의 세월을 사진에 천착하며 쌓아 온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러한 걸 느끼게 해 준 또 하나의 사례는 전시 체크리스트였다. 전시된 각각의 사진들이 실렸던 사진집들에 대한 모든 reference를 함께 적어 놓은 건 그만큼 디테일 하나 가벼이 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뉴욕에서 즐기고 있는 모든 전시, 작품 하나하나가 경중 구분 없이 소중하지만 Deborah Bell 같은 작은 갤러리에서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배움의 시간들은 역시 큰 갤러리들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할 즐거움일 것이다. 시간이 들더라도 조금 더 다양한 곳들을 찾아다니며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뉴욕에 오게 된다면 유명한 박물관뿐만 아니라 구석구석 숨겨진 갤러리들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Debora Bell Gallery
  • 주소: 16 East 71st Street, Suite 1D, 4th Floor, New York, NY 10021
  • 운영시간: 화 – 일 11:00 am – 6:00 pm
  • 웹사이트: http://www.deborahbellphotographs.com

*18년 2월 23일 기준.

**Susan Ehrens, <The Errand of the Eye: Photographs by Rose Mandel>, Prestel, 2013, p.9 & p.22. – 저자인 Susan Ehrens는 예술사가이자 사진 큐레이터 및 컨설턴트로 오랜 기간 작가와 연을 쌓아 오며 만델의 작품 세계를 탐구해 왔다.

***California School of Fine Arts(현재는 Sanfrancisco Art Institute).

****Susan Ehrens, <The Errand of the Eye: Photographs by Rose Mandel>, Prestel, 2013, p.26-27. – 화이트는 만델 전시의 서문을 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기회를 통해 만델의 사진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만델은 화이트의 제안들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책, p.28-29.

DSCF9758.jpg

고풍스러운 타원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DSCF9756

갤러리 입구. 부슬비가 내리던 날, 문 앞에 작은 우산이 놓여 있다.

DSCF9751

전시 풍경. 벽난로 위에는 체크리스트와 다른 자료들이 놓여 있고 테이블에는 전시 관련 책자들과 보도 자료들이 있었다. 의자에 걸려 있는 옷과 짐들은 내 것이다.

DSCF9752

뒤쪽의 아치형 구조 뒤로 보이는 것이 출입문, 오른쪽 벽 끝에 붙어 있는 것이 사무실 입구이다.

DSCF9748

Rose Mandel, <Untitled (Sunshine on a wave)>, 1964.

DSCF9749

Immogen Cunningham, <Amarilys>, 1933.

DSCF9750

Immogen Cunningham, <Triangles>, 1928.

#12. ICP Museum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이하  ICP)는 뉴욕에 위치한 사진 및 시각 예술 전문 교육 기관이다. 사진집단 매그넘의 창설 멤버였던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동생이자 역시 사진가인 코넬 카파(Cornell Capa)가 훌륭한 사진들의 유산을 보존하겠다는 이념 아래 1974년에 설립하였다. 현재는 Bard 대학과 연계한 2년의 MFA 과정, 중-고급 1년 자격증 과정 및 그 외 여러 단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으며 ICP 뮤지엄을 통해 다양한 전시도 열고 있다.

ICP 학교는 시내 중심가 브라이언트 공원 근처 43번가와 6번가의 코너에 위치하고 있다. 지상의 유리 입구를 통과해 지하에 자리 잡은 학교로 들어갈 수 있으며 강의실과 도서관, 암실 등이 이곳에 함께 있다. ICP 뮤지엄은 맨해튼 남쪽 Bowery가 250번지에 자리한 단층 건물로 지상층과 지하 1층 두 곳의 전시 공간으로 나누어 별 건의 전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뮤지엄 로비에는 서적 및 기념품 가게와 CAPA 카페가 있으며, 빙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스크린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따로 놓여 있다.

학교와 뮤지엄은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2019년에는 맨해튼 Lower East Side의 신축 건물로 통합, 이전할 계획이며 이에 따라 ICP 뮤지엄은 2018년 가을 전시 이후 이전 준비를 위해 잠시 문을 닫을 예정이다. 맨해튼의 공간들 이외에 뉴저지에 작품 보관고와 갤러리, 미디어 랩 등이 자리한 ICP at MANA Contemporary도 운영 중이다.

ICP 뮤지엄의 전시 기간은 보통 4~5개월로 한 전시의 기간이 여타 갤러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현재*는 지상층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재미 일본인들을 가둔 강제수용소의 역사에 대한 <Then They Came for Me : Incarceration of Japanese Americans during World War II>가 전시 중이며, 지하 1층에서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에드문드 클락(Edmund Clark)의 <Edmunud Clark: The Day the Music Died> 전시가 진행 중이다.

지상층 전시인 <Then They Came for Me>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재미 일본인들의 강제 수용에 관한 역사를 그 시작부터 끝까지 되돌아보는 전시이다. 지난 1월 Howard Greenberg 갤러리의 <Immigrants> 전시 때 보았던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과 앤설 애덤스(Ansel Adams)의 사진들이 바로 이 사건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1942년 당시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의 서명과 함께 발효된 재미 일본인들에 대한 강제 소개법에 따라 약 3년 간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 그들에 대한 강제 소개부터 수용소에서의 생활, 당시 이들을 바라보던 사회상들까지 랭, 애덤스를 포함한 여러 작가들의 사진들과 당시 자료 등을 통해 되짚어 보며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시대 – 지금 이곳이든, 그때의 그곳이든 – 를 바라보게 하는 일종의 창이라는 걸 생각할 때, 이번 ICP 전시를 포함해 올해 보았던 몇 건의 전시들**은 사진 속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지금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진 속 과거의 시간들이 프레임 밖에서 살아 남아 지금 여기까지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기록, 다큐멘터리를 가능케 하는 사진의 힘에 매료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여름 뉴욕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연회비 $75를 내고 ICP 연간 회원에 가입한 것이다. 전시 무료입장 등의 혜택을 고려한 것이지만 조금 솔직해지자면 허세 9, 회원 특전 활용 1을 기대하고 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무언가 뉴욕에 산다는 기분을 좀 내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자면 이곳에서의 소비 중 가장 잘한 일이 바로 ICP 회원 가입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갤러리 탐방기 작업은 ICP 도서관의 자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전 메이젤라스(Susan Meiselas)의 <Carnival Strippers> 전시를 보고 나서 1976년 발간된 초판본을 바로 찾아볼 수 있고, 티나 바니(Tina Barney)의 <Landscapes> 전시를 보고 나서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출간되었던 그녀의 모든 사진집들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다른 곳에서 쉽게 얻기 힘든 특전이다. 필요한 자료는 마음껏 복사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또 얼마나 좋은가. 특히 직접 서가를 뒤져 책을 찾고 읽어 보며 얻는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한 자료 탐색과는 비교가 안 되는 즐거움이다. (물론 도서관의 방대한 소장 자료들을 내가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지는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다.)

당신이 뉴욕 여행을 왔을 때 ICP 뮤지엄에 들러 CAPA 카페의 커피 한 잔을 즐긴 후, ICP 로고가 새겨진 컵 하나쯤을 사고, 전시를 본다면 괜찮은 반나절 일정이 될 것이다. 혹여나 조금 더 장기로 머물 일정이라면 ICP 연회원 가입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투자가 될 것이다. 원하는 만큼 마음껏 사진집의 바다에 빠져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ICP Museum
  • 주소: 250 Bowery, New York, NY 10012
  • 운영시간: 화 – 일 10:00 am – 6:00 pm (목요일은 9:00 pm 폐관)
  • 웹사이트: https://www.icp.org

*18년 2월 18일 기준.

**방문 순서대로 Howard Greenberg 갤러리의 <Immigrants>, Pace/MacGill 갤러리의 <Nothing Personal>, Sous Les Etoiles 갤러리의 <Turbulent America>, Jack Shianman의 <Gordon Parks – I am You : Part 2> – 각 갤러리들에 대한 탐방기는 B급사진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DSCF0607

ICP 학교 입구. 공터에 홀로 솟은 유리 건물 입구를 통해 지하로 들어간다.

DSCF9733

뮤지엄 로비 풍경. 왼쪽이 기념품 가게 및 서적이며 뒤쪽으로 스크린과 긴 테이블, 전시장 입구가 보인다.

DSCF9943

CAPA Cafe (이름이 무려 CAPA.)

DSCF9727

전시 시작.

DSCF9731

전시 풍경.

DSCF9728

당시의 사료. 일본인과 중국인을 구별하는 방법이 잡지 기사로 나왔다.

DSCF9729

위쪽부터 <San Francisco, California, April 11, 1942> / <Oakland, California, March 13, 1942> by Dorothea Lange. 위쪽은 일본인들에 대한 소개 명령 공고문. “나는 미국인입니다.”라는 간판을 내걸었던 가게 주인은 모든 걸 남긴 채 수용소로 끌려갔다.

DSCF9721

Ansel Adams, <Owens Valley, California, 1943>. Howard Greenberg 갤러리의 전시에서 보았던 사진의 장소인 Manzanar 수용소 입구이다.

IMG_4388

우리의 인식은 어떤 것들을 표현하는 말에 많은 부분을 지배당한다. 이번 전시는 당시 사용되던 순화된(혹은 왜곡된) 표현을 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바꿔 사용하였다.

#11. Staley-Wise Gallery

Miranda (메릴 스트립) :
Get me Demarchelier. (드마쉘리에 연결해.)

Andy (앤 해서웨이) :
(On the phone) I have Miranda Priestly calling for – Okay. (미란다 프리슬리 전홥니다 – 예.)
(to Miranda) I have Patrick. (패트릭 연결됐습니다.)

패션지 보그의 편집장 애나 윈투어(Anna Wintour)를 실제 모델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기 보단 뭇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은 앤 해서웨이의 거리 패션쇼 워킹으로 더 유명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이다. 대사 속의 주인공은 저 장면만으로 그 위상을 짐작케 하는 유명 패션 사진가 패트릭 드마쉘리에. 지금* 소호의 Staley-Wise 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 <Patrick Demarchelier : 1992-2017>을 진행 중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공동 창립자인 Etheleen Staley와 Takouhy Wise을 이름을 따서 1981년 소호에 처음 문을 연 Staely-Wise 갤러리는 패션 사진 전문 화랑으로 30년 넘는 역사를 쌓아 왔다. 소속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 드마쉘리에를 포함하여 데이빗 라샤펠(David LaChapelle), 갤러리 창립 개관 전시의 주인공이었던 호스트 P. 호스트(Horst P. Horst), 마릴린 먼로 사진이 유명한 버트 스턴(Bert Stern) 등이 있고 할리우드 유명인사들의 인물 사진부터 풍경, 일상, 누드 사진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Staely-Wise 갤러리는 Sous Les Etoiles 갤러리와 같은 소호 100 Crosby가 빌딩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후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빌딩 서쪽 끝자락 공간에 위치한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지그재그 모양의 전시홀 양 벽면을 따라 작품들을 전시 중이며 메인홀 중간에 데스크가 있어 체크리스트와 보도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홀 끝자락의 기둥을 돌아서 좁은 통로를 지나면 작품 보관 및 사무 공간으로 이어지는데, 특이한 점은 주 전시홀과 다른 공간들의 이동이 자유로워 메인 전시뿐만 아니라 작품 보관고 벽면에 진열된 다양한 작품들을 마음대로 보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오를 조금 앞둔 시각,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 선 갤러리는 이미 개관 시간이 지났는데 조명도 켜져 있지 않고, 전시 작가의 이름마저 아직 설치 중인지 공사용 사다리 등이 늘어서 있었다. ‘뭐지, 불도 다 안 켜 놓고. 요즘 갤러리 운영이 어려운가?’라는 생각도 잠시, 오프닝 날짜를 착각하여 저녁에 리셉션이 열리는 전시 준비 날 아침부터 찾아온 바보는 나였다. 하지만 다행히 친절한 직원이 편히 보라며 조명을 켜 준 덕에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패션 사진이라면 당연히 1g의 일가견도 없는 나이기에 이번 전시를 읽는 눈이 그다지 높을 수는 없다. 다만 지난번 Pace/MacGill 갤러리에서 관람한 리처드 애버든(Richard Avedon)의 <Nothing Personal> 전시***에서 느꼈던 것처럼 패션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결국 인물을 잘 담는다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 중간에 걸린 몇몇의 흑백 포트레이트 사진들을 보며 다시 한번 그때의 생각을 떠 올렸다. 그중에는 재미있게도 드마쉘리에가 담은 애버든의 사진도 있었다.

흑백 포트레이트가 아닌 다른 사진들은 강렬한 원색과 함께 프레임 안 선과 면, 색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역동적인 육상 포즈의 모델, 고요한 호수면 위 외발 자전거 위에 올라 선 모델 사진 등은 정지하고 있지만 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지는 사진들이기도 했다. 패션 사진은 다큐나 스트레이트처럼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던 어떤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의 새로운 형과 미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발견이 아닌 창조의 미학이 더 많이 요구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화려한 의상과 화장의 보그 화보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새로이 창조된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압도할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미적 창조는 결국 작가의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다.

메인 전시를 보고 여기저기 자유로이 놓인 다른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중 재미있으면서도 살짝 소름 돋게 하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높은 빌딩의 튀어나온 꼭대기에 불안히 서서 작업하는 한 사진가를 담은 작품. 연필로 쓰여 있는 작가의 서명은 존 로엔가드(John Loengard). 마침 마음 편히 둘러 보라며 신경 써 줬던 직원이 옆을 지나가기에 말을 걸었다.

“저기, 이 사진 혹시 애니(Annie)니?”

“아, 이거? 저 뒤쪽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니까 크라이슬러 타워일 거야. 여기 보이니, 사진가와 장비를 건네주는 어시스턴트, 그리고 발을 묶고 있는 줄 말이야. 네 말이 맞아, 애니 레이보비츠(Annie Leibovitz). 난 이 사진 볼 때마다 몸이 으스스 떨린 다니까.”

대답하면서 살짝 몸을 떠는 직원을 보고, 다시 수십 층 타워의 꼭대기에서 스스럼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보는데 나 또한 으스스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런 곳에 서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마도 이런 것이 저 사진가의 열정을 보여 주는 한 장면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난 저기 서서 사진을 찍으라면 못 할 것 같지만.

Staley-Wise 갤러리에 간 날은 내 실수 때문에 허탕 친 날이 될 뻔했는데 친절한 직원 덕에 좋은 전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작품들까지 즐길 수 있던 기분 좋은 하루였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그렇듯 좋은 첫인상은 오래가는 법. 아마도 이 곳은 남은 기간 동안 종종 와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Staley-Wise Gallery
  • 주소: 100 Crosby St. #305, New York, NY 10012
  • 운영시간: 화-토 11:00 am – 5:00 pm
  • 홈페이지: http://www.staleywise.com

*18년 2월 8일 기준

**순서대로 <Part I>, 2008 / <Part II>, 2013 / <Photographs : 1975-2015>, 2015.

***https://bphotokr.com/2018/01/23/04-pace-macgill-gallery/

DSCF9708

갤러리 입구.

DSCF9698

전시 준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시를 보러 갔다. 사진은 왼쪽부터 <Karlie Kloss, Dressed Up Face, New York, Vogue, 2009> / <Karlie Kloss, Feast for the Eyes, New York, Vogue, 2009>.

DSCF9699

메인 전시홀. 뒤쪽으로 보이는 사진은 역시 무도 출연으로 익숙한 스테판 커리 형님.

DSCF9702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RuPaul, 1998> / <Leonardo DiCaprio, 1999> / <Richard Avedon, New York, 1993> / <Gisele Bündchen, 2002> / <Lion, 1997> / <Princess Diana, 1995>.

DSCF9705

여기저기 자유로이 진열된 작품들.

DSCF9703

메인 전시홀과 사무실을 잇는 작은 통로. 가운데 사진은 아마도 가가. 왼쪽 사진은 <Twiggy in front of Bridget Riley Painting, 1967> by Bert Stern.

DSCF9704

모두의 연인. <Marilyn Monroe with Pink Roses, 1962> by Bert Stern.

DSCF9707

사진을 보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던 애니 레이보비츠의 사진. <Annie Leibovitz with her assistant, Robert Bean on the Chrysler Building> by John Loengard.

#10. Sous Les Etoiles Gallery

Sous Les Etoiles 갤러리는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소호 100 Crosby가 고풍스러운 빌딩의 6층에 자리 잡고 있다. 2006년에 큐레이터이자 컨설턴트인 코린 타피아(Corinne Tapia)가 문을 열었고 이후 십 년 넘게 다양한 장르의 신진,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오고 있는데 갤러리 소속 작가 중 일본 사진가가 세 명(Haruna Kawanishi, Ichigo Sugawara, Fumio Tanai)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갤러리는 체 게바라의 사진으로 잘 알려진  쿠바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Corda)의 작품들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관장인 타피아는 현재 ICP를 포함한 여러 곳의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공공/사설 갤러리들과 협력하며 소속 작가들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볕이 잘 드는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작은 명패와 함께 갤러리의 유리문 입구를 마주할 수 있다. 안 쪽으로는 대형 전시 포스터와 전시명이 인쇄된 흰 벽면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 서면 바로 왼쪽으로는 데스크와 사무 공간이며 오른쪽으로는 작품 보관고와 별도의 주 사무실이 따로 있다. 중앙에 있는 전시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며, 홀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는 잠시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의자와 함께 지금 전시 중인 작가의 사진집들이 놓여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사진작가 장 피에르 라퐁(Jean-Pierre Laffont)이 2014년 출간한 사진집 <Photographer’s Paradise>의 부제를 차용한 <Turbulent America>이다. 감마 포토 에이전시(Gamma Photo Agency)**의 해외 특파원이었고, 사진 편집자이자 부인인 엘리안(Eliane Laffont)과 함께 시그마 포토 뉴스(Sygma Photo News)**를 공동 설립하기도 한 라퐁은 사진 인생 거의 전부***를 포토 저널리스트로서 살아온 작가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라퐁이 목도해 온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그중에는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끈 워터게이트 사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들도 있지만, 열악한 재소자 처우를 폭로한 커밍스 농장 사건(Cummins Farm), 켄트 주립대의 반전 시위대 학생들에 대한 경찰의 발포 및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 등 대부분 지난 세월을 살아온 미국인들이 겪었던 그들의 현대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을 바라보며 수십 년의 세월을 관통해 담긴 역사 속 장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사진이 품고 있는 기록의 힘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라퐁이 말한 것처럼 이 사진들은 “사진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것: 후대의 판단을 위해 역사 속의 결정적 순간들을 간직하는(They do what photographs do best: freeze decisive moments in time for future examination)”****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 사임 발표 이후 백악관을 떠나는 대통령 닉슨을 태운 마지막 헬기의 모습이나 워싱턴의 기념비 앞을 가득 채운 반전 시위대의 사진들은 그 시절의 시공간을 지금 이곳으로 되불러 바라보게 해 준다.

라퐁의 렌즈는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면서 목격한 역사의 현장뿐만 아니라, 거시적 풍경의 뒤꼍에 자리한 일상의 순간들도 차별 없이 담아내었다. 제멋대로 쌓인 쓰레기 더미 속의 브루클린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 불경기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된 공공 시설물, 불황으로 텅 빈 세계무역센터 건물 뒤켠의 공터에 앉아 있는 홈리스들을 담은 이미지들은 우리가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쉽게 간과하지만, 분명히 지난 시간의 속살들을 채우고 있는 미시적 역사의 순간들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Photographer’s Paradise>에 실린 이미지들 중 선별된 일부이다. 사진집은 60년대부터 80년까지 십 년 간격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정확한 수치적 연대기보다는 사건의 큰 흐름에 집중하여 총 359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책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부연 설명과 함께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스토리가 상세히 담겨 있기 때문에 이미지 프레임의 안과 밖, 그리고 그 앞, 뒤로 흘러왔던 시간의 역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사진집 전체를 먼저 본 후 인화된 작품들을 본다면 좋을 듯하다.

책 속에서 기억나는 건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의 “세기의 대결” 시합 날 찍었던 할렘의 마약왕 프랭크 루카스(Frank Lucas)와 여장남자들(transvestites)에 관한 에피소드들이다. 라퐁은 2007년 루카스를 실화로 한 할리우드 영화(<American Gangster>)가 개봉하면서 그 시합날의 필름에 루카스가 담긴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이후 이 사진이 공개되었다. 1965년 길거리에서 우연히 받은 부탁으로 담게 된 여장남자들의 하루에 관한 스케치는 그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촬영된 지 거의 50년이 지난 2014년에 사진집을 출간할 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근 반세기 가까운 역사의 순간들이 이렇게 필름을 통해 살아 남아 온 것은 사진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들이다.

저널리스트였지만 공공적 시선뿐만 아니라 개인적 시선도 늘 잃지 않았던 라퐁이었기에 단지 사건을 보여주는 저널리즘이 아닌 시대와 역사를 간직한 순간들을 필름에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 주어진 어싸인먼트가 아닌 스스로의 자유로운 시선과 감정을 따라 가 주제를 선정하고 작업하였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라퐁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인 엘리안이 걱정한 것처럼***** 라퐁이 해 왔던 것 같은 자유로운 의지의 작업 방식 – 스스로 주제를 선택하고 시간을 들여 작업한 포토 르포, 에세이 등을 시장에 판매하여 생활을 이어가는-이 언제까지 그 생명을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변해 가는 세상에 발맞춰 이야기를 보여 주는 방식도 결국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라퐁과 같은 작업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이 어떤 형태로든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Sous Les Etoiles Gallery
  • 주소: 100 Crosby St. #603, New York, NY 10012
  • 운영시간: 월-금 10:00 am – 6:00 pm / 토 11:00 am – 5:00 pm
  • 홈페이지: http://www.souslesetoilesgallery.net

*18년 2월 6일 기준.

**각각 1960년대와 70년대에 설립된 메이저 에이전시로서 많은 포토 저널리스트들의 둥지였던 두 회사는 변해 가는 환경에 따른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가 시절 초기에는 패션 사진 일을 하기도 했다.

****Jean-Pierre Laffont, <Photographer’s Paradise>, Glitterati, 2014, p.11.

*****같은 책, p.386.

DSCF9695

볕이 잘 드는 복도를 따라 지나가면 갤러리를 찾을 수 있다.

DSCF9697

작은 갤러리 명패와 문 안쪽으로 보이는 전시 포스터.

DSCF9691

네 개의 벽면을 모두 활용한 전시 공간은 크지는 않지만 아늑하다.

DSCF9693

안쪽에서 바라 본 갤러리 입구. 오른쪽으로 데스크가 보인다.

DSCF9688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Making of the dollar in the Bureau of Engraving and Printing.  Employees checking for imperfections and right colors. Washington DC, October 1971>, <Tombs Prison, Manhattan, New York City, NY. November 1st, 1972>, <Trustee and inmates at Arkansas State Penitentiary, Cummins Farm, AR, February 1968>, <Prisoners picking cotton at Arkansas Penitentiary, Cummins Farm, AR, February 1968>.

DSCF9689

“착한 공산주의자는 오직 죽은 공산주의자뿐이다.” 베트남전 찬성 시위대. <Anti-Communist in favor of the Vietnam War Man holding Burning Vietnamese flag, New York, 1966>.

DSCF9692

어린아이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알려 주는 교육 캠프. 무거운 총을 든 아이의 손을 잡아 발사 시 지탱을 도와주는 인스트럭터의 손. <Teaching children to shoot, College Station, TX, June 1981>.

#09. 303 Gallery

1984년 리사 스펠맨(Lisa Spellman)이 설립한 303 갤러리의 이름은 갤러리 주소였던 파크가 303번지를 따른 것이지만,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eiglitz)가 운영하였던 Intimate 갤러리가 Anderson Galleries 건물의 303호에 자리 잡았던 것에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개관과 함께 쌓아 온 시간 자체도 짧지 않지만 이름부터도 가볍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는 이스트 빌리지, 소호 등 몇 번의 자리 이전을 거쳐 1996년 첼시에 새 둥지를 틀었으며, 이후 첼시 안에서 몇 번 더 이전하다가 2016년 현재 위치인 첼시 서쪽 끝자락 West 21번가로 옮겨 왔다..

빌딩 1층에 위치한 갤러리는 거대한 유리문 입구와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만큼 넓고 시원하게 조성되어 있는 전시 공간이 인상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 서면 바로 오른쪽이 데스크이며 앞쪽의 작은 책상 위에 체크리스트와 방명록, 전시 작가의 책 몇 권이 함께 놓여 있다. 전시홀 끝 쪽은 사무실과 작품 보관고로 이어지는 곳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의 2017년 신작 전시이다. 303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쇼어의 여섯 번째 개인전으로 갤러리는 2000년 진행한 첫 번째 전시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쇼어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판매, 보유하고 있다.

2017년 신작은 작가가 핫셀블라드 X1D 디지털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다. 아이폰, 인스타그램 등의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과 장비를 활용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아 왔던 쇼어는 사용하기 편리하면서도 예전에 쓰던 대형 8×10 카메라의 디테일을 가능케 하는 X1D의 가능성에 반하여 이 카메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긴 폭의 길이가 60인치가 넘는 대형 인화인  전시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클로즈업 풍경임에도 디테일이 매우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진은 작고, 한 손에 들어오고, 가급적이면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카메라로 찍는 걸 좋아하지만 최근엔 화면 상의 이미지보다 인화가 그리워지면서 중형을 좀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이 X1D의 인화물들을 보니 한 번쯤은 사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마존 가격 검색해 보고는 그냥 좋은 작품들 감상을 한 것으로 끝내긴 했지만…^^)

작품 수는 총 9점으로 많지는 않은데 뉴욕, 런던, 그리고 몬태나에서의 어느 하루 동안 촬영된 이미지들 중에 골랐다. 뉴욕 길바닥의 담배꽁초와 쓰레기봉투, 런던 어딘가의 나무들, 몬태나의 흙바닥에 대한 클로즈업 사진들. 이런 사진들 – 언뜻 보면 쓸모없고, 아름답지 않고, 의미를 알 수 없는 – 로 전시를 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건 결국 쇼어가 지난 수십 년 간 보여 주며 쌓아 올린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에서 어떤 의미와 조형성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작가의 사진 세계가 있었기에 새로운 작품들도 그 세계관에 비추어 읽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도대체 이런 것을 왜 담았는데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나한텐 꽤나 마음에 드는 전시였다. X1D의 해상력에서 오는 디테일뿐만 아니라 피사체들과 그들이 내게 보이는 방식이 좋았다. 물론 아직 나는 아스팔트 위의 담배꽁초와 나뭇가지, 잎사귀의 조화에서 마치 초창기 칸딘스키(Kandisky)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사진을 읽지는 못한다.*** 사진 감상에 정답이 있다고 할 순 없겠지만 더 깊이 읽기를 위해서는 내 배움의 창고를 더 채울 필요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전시의 보도 자료에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대해 꽤 세세한 평이 나온 것은 결국 이번 작품들의 읽기가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정 부분 감안한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 속의 풍경들이 내게는 무척 좋았기에 오히려 조금 더 이 시선을 따라가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일 같이 걸어 다니고 있는 이곳 뉴욕의 길바닥을 조금 더 자세히 좀 보아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뉴욕 대부분 갤러리들의 주요한 목적이 상업 활동이라는 걸 감안하면 303 갤러리의 이번 쇼어 전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 5월까지 MoMA에서 진행 중인 스티븐 쇼어의 대규모 회고전 때문에 아무래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곳뿐만 아니라 EDWYNN HOUK 갤러리에서도 쇼어의 <Uncommon Places> 시리즈 빈티지 프린트 전시를 진행하고 있으니 한 갤러리만의 일도 아니다. 물론 나로서는 여러 전시를 볼 수 있으니 그저 좋을 뿐이지만, 이 곳의 갤러리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기본 정보

  • 갤러리명: 303 Gallery
  • 주소: 555 W 21st St., New York, NY 10011
  • 운영시간: 화-토 10:00 am – 6:00 pm
  • 홈페이지: http://www.303gallery.com

*18년 2월 1일 기준.

**전시 보도자료. http://www.303gallery.com/gallery-exhibitions/stephen-shore6/press-release
***전시 보도자료.

DSCF9664.jpg

갤러리 입구.

DSCF9658

입구 바로 앞에는 작은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쉴 수 있다.

DSCF9660

전시 보도 자료와 체크리스트, 그리고 쇼어의 사진집들.

DSCF9654

매우 큰 전시 공간에 9점의 대형 인화물만 걸려 있으니 매우 한적한 느낌이 들었다.

DSCF9657

왼쪽부터 <New York, New York, May 19, 2017>, <London, England, July 9, 2017>.

DSCF9656

<New York, New York, May 19, 2017>.

DSCF9655

<Three Forks, Montana, August 6, 2017>.